
10여년 전 내가 가르치고 있던 반에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기 위해 내려온 학생이 한 명 있었다. 아이의 부모님이 도시에서 돈을 버느라 자식을 잠시 고향의 부모님께 맡긴 것이었다.
당시 그 아이의 얼굴은 아직도 내 눈 앞에 선하다. 1년도 채 못 되는 기간 동안 함께 지내다가 떠났지만 나는 그 아이에게서 배운 정직의 아름다움을 가끔 떠올린다. 가르치는 것은 곧 배우는 것이라지 않았는가. 배움은 나이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언제 어디서건 일어난다.
나는 그 아이에게서 배운 정직을 하나의 잣대로 생각하며 꼬인 일을 풀어 나가기도 한다. 그 아름다운 일이란 실은 교사들이 제일 싫어하는 금전 도난 사건으로부터 일어났다.
그 아이의 이름은 근명이었다. 쉬는 시간에 운동장가에서 그네를 타고 놀다 들어온 근명이는 돈 천원을 잃어 버렸다고 울상을 지었다. 도난 사건이 일어나면 눈앞이 캄캄해진다. 묵살하고 수업을 진행할 수도 없고 대대적으로 소지품 검사도 할 수 없고 해서 막막해 하고 있던 차에 한 아이가 돈을 찾았다며 가져왔다. 돈을 가져온 아이는 천원을 복도에서 주워왔노라고 했다.
도난 사건이 종결된다는 기쁨에 근명이에게 그 돈을 내밀었지만 근명이로부터 의외의 대답이 되돌아왔다.
"저는 돈을 운동장에서 잃어버렸지, 복도에서 잃어버리지 않았어요. 그리고 제가 잃어버린 돈의 접었던 자국과 새 돈, 헌 돈의 느낌도 틀려요. 그러니 이 돈은 제 돈이 아닙니다."
근명이는 한사코 그 돈을 받으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떤 돈이 됐든 받을 줄 알았던 내 생각이 틀리고 말았다. 그 아이의 단호한 정직함이 마음에 들어서였던지, 우연을 가장한 또 하나의 아름다운 정직함으로부터 근명이가 잃어버린 돈은 결국 주인의 손에 들어가게 됐다.
그리고 복도에서 주운 돈도 교내 방송을 통해 주인을 찾아주었다. 근명이를 떠올리며 나는 스스로 '행복한 교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해마다 아름다운 마음을 지닌 또 다른 '근명이'들을 가르치는 즐거움을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