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으로만 모든 것을 평가하면 옆자리에 앉은 소중한 친구가 경쟁자가 됩니다. 학교는 순위를 매기는 게 아니라 각자 꿈꾸는 인생 항로를 안내해주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교육에서 무엇이 핵심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문구이다.
우리 교육 어떻게 변화를 이룰 것인가가 중요한 과제로 부상하고 있는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해 11월 21일 서울 동작중학교를 찾아 “시험으로만 모든 것을 평가하면 옆자리에 앉은 소중한 친구가 경쟁자가 됩니다. 학교는 순위를 매기는 게 아니라 각자 꿈꾸는 인생 항로를 안내해주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자유학기제라는 용어가 학교현장에 도입된 것이다. 자유학기제란 중학교에서 한 학기 동안 학생들에게 시험 부담을 주지 않고, 토론 실습 등 ‘학생 참여형 수업’을 통해 진로탐색 기회를 주는 교육과정으로 올해 2학기(9월)부터 동작중 등 일부 학교에서 시범 운영하고 있다.
이날 1학년 과학 수업을 참관한 박 대통령은 학생 4명과 한 조를 이뤄 ‘이쑤시개를 활용한 교량 하중 실험’을 함께 했다. 수의사가 되는 꿈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한 학생의 질문에는 “공자님이 말씀하시기를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선택하면 평생 일을 안 해도 된다’고 했다. 실력이 처음에는 비슷해도 나중에는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을 따라갈 수 없다”고 답했다.
박 대통령은 수업 참관 후 학부모 교사 학생들과 간담회에서, 박 대통령은 “교육은 주입식으로 넣는 게 아니라 원래 타고난 것을 잘 끌어내주는 것이라고 볼 때 자유학기제는 의미가 매우 크다. 자유학기제를 교육 개혁의 출발점으로 삼겠다”고 덧붙였다.(동아일보 2013.11.22)
청소년들이 가장 듣기 싫은 질문은 ‘너 공부는 잘하니?’라고 한다. 그리고 가장 대답하기 힘들어 하는 질문은 ‘너 꿈이 뭐니? 뭐가 되고 싶어?’라고 이야기 한다. 현행 교육현장에서도 진로교육이 강화되면서 중등 과정에 관련 과목 및 활동들이 크게 늘었다. 자신의 적성을 일찍 파악해 그 방면으로 나아갈 준비에 내실을 기하도록 돕기 위함이다. 그런데 그것이 아이들에게 학업에 가중되는 또 다른 짐이 되기도 한다. 장래의 꿈에 대해 긴 글을 쓰거나 진로 관련 포트폴리오 과제가 종종 부여되는데, 많은 아이들이 그 내용을 채우지 못해 곤혹스러워한다.
적성을 알아내는 검사도 체계적으로 행해지고, 직업을 소개하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이 학교 안팎에서 실시된다. 진로에 관해 매우 다채로운 접근이 이뤄지고 풍부한 정보가 제공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뒷받침에도 아이들의 꿈은 오히려 획일화되어 간다. 그 중심에 학부모의 지나친 욕망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은 아닌가. 더 넓은 세상을 보고 경험하는 것은 분명 아이들의 성장에 유익할 것이지만 어쩌면 부모의 삶 안에서 만나고 발견하게 된 꿈이 더 크게 다가올지도 모른데 말이다. 사회가 점점 다양해지는데도 청소년들이 원하는 직업은 몇몇 분야에 집중된다. 그마저도 실현 가능하다고 믿기보다는 요원한 희망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뭘 하고 싶은지는 잘 모르겠다면서 ‘일단 돈을 많이 벌어서…’라고 대답하는 아이들도 적지 않다.
현행 진로교육은 몇 가지 조사기법과 단편적인 프로그램들에 너무 의존하면서 삶의 복잡다기한 역동인 현장을 입체적으로 살피지 않는 듯하다. 적성은 수학의 정답처럼 명확하게 밝혀지는 것이 아니고, 꿈도 숙제를 내준다고 뚝딱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스스로 인생을 꾸려갈 수 있는 원동력이다. 우선 오늘 주어진 삶에 충실할 수 있어야 한다. 공부 이외의 여러 장에서 ‘살아있음’을 실감하고 자기를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눈으로 청소년의 모습을 진단하지 않고 장래의 직업이나 꿈을 말하라고 다그치는 것은 엄청난 부담과 억압이 될 뿐이다. 현재는 미래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고 만다.
생애의 경로는 우여곡절의 연속이고 뜻하지 않은 변곡점에서 전혀 몰랐던 자아의 어떤 모습이나 능력을 발견하기도 한다. 열쇠는 그러한 여정을 자기주도적으로 이어갈 수 있는가에 있다. 칙센트 미하이는 '어른이 된다는 것'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젊은이가 학교를 나와서 제 몫을 하는 성인으로 자라나기까지의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비단 공부에서뿐 아니라 인생 전반에서 호기심과 흥미를 잃지 않는 것이다. …자기가 하는 일이 시간 낭비라는 생각만은 절대로 갖지 말게 해야 한다. 청소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추구할 만한 매력을 가진 목표와 거기에 도달할 수 있는 실력이다.”라고….
인생 전반에 대해 호기심과 흥미를 가지려면 자아를 충분히 긍정해야 한다. 모자란 것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면서도 현재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태도 말이다. 그런데 아이들이 자라는 환경은 정반대의 심성을 키운다. 대학입시 결과가 나오는 즈음 곳곳에 현수막이 붙는다. 우리 고장 출신의 아무개가 일류대에 합격했다고 축하하는 내용이다. 충남 금산군은 2009년 읍내 도로 네거리에 17억원을 들여서 서울대 정문 등 전국 주요 대학의 상징물들을 세웠다고 하니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어느 비석에는 서울대에 진학한 읍내 젊은이들의 이름 그리고 그들의 좌우명과 손도장이 함께 새겨져 있고, 그 뒷면에는 ‘큰 꿈을 갖자’라고 쓰여 있다고 하니 누구를 위한 투자일까!
그러한 현수막이나 조형물은 대다수 젊은이들을 주눅들게 한다.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하고 지역에 남아 있는 이들이 못난이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한 시선은 청소년들의 두려움을 자아낸다. 예를 들어, 몇 해 전 강릉여고 3학년 어느 반 학생들이 급훈을 ‘맑은 공기는 노후에 마시자’라고 정한 바 있다. 수도권 대학으로 진학해서 젊을 때는 탁한 공기를 마시자는 다짐이다. 그와 비슷한 취지로 서울의 어느 학교에서는 ‘2호선 탈래, KTX 탈래?’라고 급훈을 만들기도 했다니 믿어지지 않는 현상이다.
그러한 결의 또는 협박 속에서, 미지의 세계를 탐색하는 질문은 원천 봉쇄되고 만다. 일류대 입학을 ‘큰 꿈’으로 규정하는 어른들이 창의적인 인재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욕망과 두려움이 함께 증폭되는 저성장 시대에 아이들은 어떤 꿈을 가질 수 있을까. 막연한 상상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에서 길 찾기는 시작된다. 타인과 사회에 의미있게 접속하고 다양한 경험 속에서 존재를 펼칠 수 있을 때 자기가 누구인지를 알아갈 수 있다. 자기가 누구인가를 알게 하는 것이 서울의 유명한 대학에 들어가기 전에 알아야 할 중요한 과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