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가 시작되고 벌써 한달이 되어 간다. 이제 학급 어린이들의 이름도 다 외우고 조금씩 친해져서 어린이들이 마음을 열어 줘 집안의 사소한 일도 담임인 나에게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놀랄 일이 우리 교실에서 일어나고 말았다.
“민선아 지금 집에 가는 길이지” “예” “이것 좀 2반 선생님 같다 드리고 집에 가라” “안 돼요, 지금 학원가야 하는데, 효주 좀 시키세요.”
2반이 먼 곳도 아니고 바로 옆 교실인데, 난 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래 알았다.”고 해야 하는 담임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 누구 하나라도 있을까? 저 어린이가 집에서 부모님이 심부름 시키면 뭐라고 할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면서 그 어린이에게 말 걸기가 싫어졌다.
아! 나는 너의 속마음을 알려면 아직 멀었구나. 40대 정도의 선생님들이 어렸을 때는 오빠나 형들의 심부름을 도맡아 해야 했고 심부름도 처음에는 물을 컵에 부어서 오기에서 시작해 과자 사오기, 문방구에 가서 학용품 사오기 까지. 할 수 있으면만화책 이름을 적어주면 글씨를 몰라도 빌려와야 했다.
그런 걸 못하면 바보 취급을 받았고 그게 되면 은행 심부름 까지 영역을 넓혀 가는, 심부름은 곧 사회 교육이었다. 10여 년 전만 해도 선생님의 심부름을 서로 하려고, "선생님 또 없습니까? 다음에는 제가 하겠습니다” 하지 않았는가. 선생님의 사랑을 받는 친구만 선생님 심부름을 하는 줄 알지 않았던가.
학교 폭력이 학교의 구석구석을 차지하고 학교 담당 경찰관이 지정 되어 있고 사진과 휴대전화 번호까지 다 적어 놓고 학교폭력 신고함이 층마다 설치되어 있는 세상에 빵 심부름만 하는 ‘빵셔틀’은 더 늘었다고 하더니, 선생님을 빵 심부름이나 시키는 그런 사람으로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요즘 아이들 선생님이나 부모님 누구의 시킴도 싫고 학원만 잘 다녀 학원에서 공부하면 되고 공부만 잘하면 다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건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