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점심시간에 밥과 반찬을 받을 때 보면 얼굴에는 웃는 모습과 찡그리는 모습으로 나누어집니다. 좋아하는 음식과 싫어하는 음식이 식판에 놓여질 때 다 표가 나지요. 누가 어떤 반찬을 좋아하는지 일년 담임을 마칠 때면 다 알게 됩니다.
학교 점심시간은 가정과 달라서 싫어하는 반찬도 먹어야 하고 좋아하는 음식도 반 어린이들이 나누고 남지 않으면 더 먹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각자의 집에서는 다르겠지요. 좋아하는 음식만 가려서 만들어 주기도 하지만 한 가지 음식만 많이 먹어도 오냐오냐 하며 많이 먹고 튼튼하게 자라기만 바랍니다.
먹기 싫어하는 음식을 다 먹으라고 하면 처음에는 얼굴을 찡그리고 자꾸 먹으라고 하면 삐치는 어린이도 있습니다. 그러나 학년을 마칠 때쯤이면 기본으로 나누어 주는 음식은 다 먹을 수 있게 되지요. 이는 편식 습관도 없애고 영양분을 골고루 섭취하게 하는 방법이기도합니다.
어린이들에게 점심 지도를 하면서 나는 가끔 옛날 내가 학교에 다닐 때를 생각해 봅니다. 점심시간이 되면 친구들이 밥을 먹을 때 점심을 못 싸가지고 간 날은 침을 꼴깍꼴깍 삼키다가 운동장 우물가에서 두레박에 물 한 바가지를 퍼서 벌컥벌컥 마시고 느티나무 아래 철봉에 매달려 놀기도 하고 하늘을 쳐다보다가 다시 우물가에서 물을 마시고 5교시에 교실로 들어가기도 했지요.
누런 알루미늄 도시락에 점심을 싸 가지고 가는 날도, 도시락을 열어보면 시커먼 꽁보리밥에 도시락의 귀퉁이에는 해묵은 무장아찌 몇 조각이 반찬의 전부였지만
그것도 2교시 마치고 몇 숟가락 3교시 마치고 몇 숟가락 먹다가 보면 점심시간에는 먹을 것이 없어 된장 물이 밴 남은 밥을 흔들어서 한 알 남김없이 먹어도 모자서서 도시락 통에 물을 부어 씻어 마시고 운동장에 나가서 뛰어 놀았지요.
중학교에 다니면서 도시락과 반찬통이 따로 되어 있는 걸 가지고 다녔는데 무를 말려 김치를 담근 반찬을 싸가지고 가는 게 좀 나은 반찬이었습니다. 도시락을 가방에 넣고 아침 버스를 타면 차는 콩나물시루와 다름없고 어쩌다 앉은 사람의 무릎 위에는 가로로 앞이 안보이게 가방이 쌓였습니다. 어느날 나는 우리 반 여학생에게 가방을 맡겼는데, '아! 이게 어찌된 일인가' 차 안에는 김치 국물이 쏟아 졌다고 난리가 나고 차에서 내려 보니 그 김치 국물은 내 가방에서 흘러내린 것이었습니다. 한 학년을 마치고 반이 바뀔 때 까지 그 여학생 앞에서 얼굴을 들지 못하고 중학교를 다녔던 일이 지금도 생각납니다.
어제 점심시간에 우리 반 어린이들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선생님이 거짓말 한다고 난리였습니다. 눈치 빠른 녀석은 그 여학생과 사귀면 좋았을 걸 기회가 왔는데 놓쳤다고 하기에 이번에는 나도 진짜 거짓말 한번 했습니다. “그 여학생이 지금 선생님 부인이다”라고 했더니 "우- 우-" 하면서 놀려댄다. 괜히 옛날이야기 하다가 놀림감만 되고 본전도 못 뽑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