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30 (수)

  • 맑음동두천 26.0℃
  • 구름많음강릉 28.0℃
  • 구름많음서울 24.5℃
  • 맑음대전 25.8℃
  • 맑음대구 26.1℃
  • 맑음울산 22.5℃
  • 맑음광주 25.0℃
  • 구름조금부산 21.0℃
  • 맑음고창 25.3℃
  • 구름조금제주 18.9℃
  • 구름조금강화 22.5℃
  • 맑음보은 25.4℃
  • 맑음금산 26.8℃
  • 맑음강진군 22.8℃
  • 맑음경주시 28.3℃
  • 맑음거제 21.0℃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현장소식

나의 중국 처녀 여행기




여름방학을 시작하면서 모든걸 훌훌 털어 버리고 1주일간 중국을 여행할 기회가 있었다. 옛 친구 한넘이 중국을 알려면 최소한 동서남북 네번은 다녀 와야 한다고 했는데, 나는 겨우 처녀 여행. 모 신문사가 주최한 고구려 유적지 답사와 민족의 영지 백두산 천지를 등반하는 게 포인트였다. 허나 중국 동북 성을 둘러보는 너무 타이트한 장거리 이동도 걱정이었고, 의외로 낯을 가리고 데면데면해서  아는 사람 하나 없는데 불편하지 않을까 고민도 되었는데, 드디어 낮잠만 자고 있는 여권을 과연 써먹는구나 하고 큰맘을 먹고 출발했다.

중국은 약 13억의 인구에 한족을 비롯한 56개 민족,  세계 2위로 떠오르는 경제 규모,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영향력이 큰 대국이다.

일요일 오후 전깃불이 절반만 켜진 대련국제공항에 도착해서 5성급 호텔 인터컨티넨탈 호텔 41층에 투숙했다.

대련시는 동북 3성 중 제일 발달한 도시라는데, 오래된 건물과 사방에 신축 공사가 벌여진 탓인지 고층빌딩들이 왠지 퇴색해 보였다. 룸메이트는 공항에서 봤던 비호감 꽁지머리 아저씨가 설마 했는데  1주일간 같은 방을 쓰게 되었다. 3호차 10조.

"대구 시지중 체육과 안기영입니다."  "읔, 체육~!"  "내 주변에는 어디가나 체육 짝꿍이 넘치는구만~"

이 분은 나보다 2년 선배였는데, 걱정은 기우, 정말 배려심 많고 죽이 잘 맞았다. 이학박사에 사진작가에 매너도 좋고, 해 본 일도 다양해 좋은 친구가 되었다.  별명은 '현지인'으로 붙여 줬다.

중국 관광버스는 노래방기기도 없고, 음악도 안틀어 주고, 네비게이션도 없이 주구장창 4~5시간은 기본으로 달려 이동했다. 다행히 힘좋은 버스기사 하오따꺼, 최고의 가이드 강성호, 일명 김제동을 닮았다 해서 '백두산 김제동'이가 성심성의껏 하나라도 더 소개하고 설명해 주는 덕에 버스 앞쪽에 앉은 나는 섭섭치 않았다. 특히 체면 문화와 숫자 8과 6을 좋아하고,붉은 색을 좋아한다는 중국인은 한가정에서 한자녀만 생산하니, 귀한 여자를 데려 오려면 내 집도 장만해야 하고, 현금 2천만원과 자동차도 준비해야 한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돈많이 벌어 내년에 장가 잘가소~"

굉장히 조용한 나도 이번 여행에서  가정을 버리고 나온 아줌마 누님선생님들이 별명을 지어 줬는데 '신달공'이라고 한다.

"신선하고 달콤한 공생원~"이란 뜻이란다. 원래 별명은 '신반장' 또는 '왕미남'이었는데, 아무튼 좀 이상하지만 받아 들이기로 했다. 변, 배 두 선배는 특히 내 팬클럽 회원이 되고자 줄을 서도 좋다며, 내 나로도 사투리를 겁나게 좋아해 부렀다. 

"백두산 호랑이는 뭐 잡아먹고 사나~, 워매 아이고 나죽것네" 이런 유의 자연스런 사투리를 말이다.

나는 집나온 배 선배의 "금강산, 설악산, 지리산, 북한산, 남산, 동산, 에베레스트" 윈드 등반 얘기를  너무 재미있게 들었다. 10조 중 신씨 자매가 가장 참했고, 남샘들과도 단합이 잘 돼서 헤어짐이 너무 아쉬웠다.

아무튼 관광버스는 지친 기색없이 밤 12시가 다되도록 번개와 폭우속을 무지막지하게 질주하고,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탄 만만디의 중국인들을 피해 곡예 운전을 하며, 때로는 불꺼진 비좁은 터널을 지나 반대편 차선을 위험하게 추월하여 우리의 목숨줄을 안전하게 지켜 내서 결국 상당한 팁을 받고 헤어졌다.

중국 여행에서 가장 부담스러운것이 '현지식'이라는 식사와 화장실 문화였다.

한국에서 중화요리식당  코스 요리는 비싸서 사먹어 보지도 못했지만, 중국에서 둥근 테이블에 빙 둘러 앉아 덜어 먹는 접시 요리는 처음에는 좀 신기했지만, 기름지고 음식 향이 느끼해서 몇번 원탁을 돌린 뒤 숫가락을 놓거나, 점점 참가자들은 컵라면과 깻잎통조림 들을 꺼내 먹기 시작했고, "오늘 점심은, 오늘 저녁은 현지식임다" 하는 가이드의 말을 듣는 순간 별로 안반가웠다.

화장실 문화는 충격적이었다. 집안 근처 간이휴게소에서 소변을 보는데, 소변통에 올챙이가 헤엄을 치고 있었다. 찬찬히 보니 큼직한 구데기가 유영을 하는 것이었다. 칸막이가 없는 대변실은 더욱 가관이었다. 미끄러지지 않는 것만이 최선이었다. 남성들은 옥수수밭에 암모니아수 비료를 주는게 좋았다.

가장 무난했던게, 호텔에서의 부페식 아침식사 정도였고, 그 다음이  백산가는 길목 조선족식당에서의 화롯불 고기구이가 좋았다.

이 곳에서 참가자들은 자기 고향과 학번을 밝히면서 각 조별로 조금 친해지기 시작했다. 안 박사와는 빠짐없이 새벽 5시(한국과 한시간 시차)에 재래시장으로 나와 중국 상인들과 손가락으로  푸짐한 과일을 흥정하며 노닥거린 거리 체험도 즐거웠다. 이 사람들은 더우면 식스팩을 자랑하며 웃통을 벗고 불꺼진 길거리 고치구이 포장마차에서 은은한 밤문화를 만들고 있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벌판, 오성홍기 흩날리는 관청, 온통 붉은 스레트 지붕이 옹기종기 모인 마을, 가끔 막히는 마을 시장통의 왁자지껄한 거리, 드넓게 끝없이 펼쳐진 옥수수밭이 차창 너머로 파노라마처럼 흩어지다가  길가의 플라타너스가 점점 소나무와 침엽수로 변하고 자작나무숲과 가문비나무 골짜기를 지나더니 중국인들이 장백산으로 부르는 2750m의 활화산 백두산에 도착하였고, 보기드문 맑은 날씨로  천지를 구경하였다.

평생 다시 오긴 힘들 것 같아 그 경치에 취해 그만 소원을 빌지 못하고 내려와 버려 아쉬웠다.

안 박사는 버스 안에서 새로 사귄 광주 여친이랑 쉴새없는 대화에 여념이 없었고, 나는 차창밖 풍경을 바라 보다가 가끔씩 점잖히 잠만 잤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역사를 가르치는 교사로서 도마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 여순감옥을 둘러 본 것과 집안의 국내성,산성하고분군,광개토대왕비,장군총을 답사한게 감개가 무량했으며, 단동에서 바라본 압록강 철교 너머의 북한 땅과 위화도, 그리고 묘향산 식당에서 본 새침한 북한 아가씨의 가곡 공연도 기억에 남는다. 

"위생실은 저깁네다." 인공기를 가슴에 단 북한 아가씨가 처연 하다.

중국을 배경으로 한 펄벅의 '대지'나 청초했던 장쯔이의 처녀작 '집으로 가는 길'이 아니더라도 커다란 중국 산천은 나의 마음 속에 깊게 각인될 것 같다.  나의 처녀 여행, 한여름 밤의 꿈이런가.

반가웠던  친구들이여~싱쿨러(수고했어요!), 자이지엔(잘가세요~, 다시 만나요!)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