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 1월 한달 31일중 18일간이나 눈이 왔던 추운 겨울이 언제인 듯 물러가고 여름의 문턱에 서 있는 달이 6월이라지만, 지난달이 계절의 여왕답게 아직 채 가시지 않은 꽃대궐의 열기를 막바지까지 내뿜고 있다.
교육계에 입문한지도 어느덧 6년에 접어들었다. 첫 발령지가 고흥의 금산이라는 섬이였고, 군대생활도 경남 충무(통영)의 한산도 섬이였으며, 전직하기 전 9급 공무원의 첫 배명지가 소록도였기에 나는 전생에 무슨 섬과 이리 인연이 많을까 싶었다.
공직생활이 어느덧 23년째, 사범대를 졸업하면서 대학 4학년 때 우연히 9급 공무원 시험으로 법무부 공안직 공무원인 교도관에 합격하여 17년 가까이 순천, 장흥, 목포, 광주, 전주의 교정시설을 돌며 청춘의 대부분을 수용자의 교정 교화가 천직인줄 알고 근무하였었다. 문득 해묵은 상자를 정리하다가 수용자들이 내게 보낸 빛바랜 편지를 꺼내 읽어 보았다. 교정 시설에서 중입자격 검정고시, 고입자격과 고졸학력 검정고시, 독학사고시, 방송통신대등 수용자교육을 담당하면서 수용자들을 직접 가르치기도 하고, 상당수의 수용자들을 국가자격시험에 합격시키면서 그 때마다 틈틈이 받은 감사의 편지들인데 이제는 버리거나 소각시켜도 될 정도로 이름과 얼굴이 잘 기억나지 않는 한 편의 파노라마가 되어가는 것이다.
내 소형 중고차는 출퇴근을 하기 위해 지방도로를 들락거리다가 잔디깎기 작업기계에 돌이 튕겨 생긴 생채기부터 시작해서 크고 작은 흉터가 무수하다. 마치 살아오면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내 인생의 과정과 흡사하다.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이 생각난다. 이제는 두 아들을 잘 키워 묵묵히 내 앞에 주어진 인생의 숙제를 해나가는 것이 소망이다.
올해 새로 옮긴 학교가 고흥반도의 나로도 항공우주센터 방향의 포두중학교이다. 해창만으로 바닷물을 막던 옥강 갑문이 너른 평야를 이뤄 이제는 해창만 쌀 생산으로 유명해진 곳인데, 과거 중학교가 3곳, 고등학교가 1곳이었던 곳이 학령 인구의 대폭 감소로 인해 소규모 농어촌학교인 포두중학교 한 곳만이 남은 상태이다. 이 인적 드문 가난한 농촌에도 전국 곳곳에서 나로도를 가보기 위해 수학여행버스며 일반인의 관광버스가 몰려 드는 걸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나는 이곳의 풍경에 반하고, 바람에 반하고, 사람에 반하고 있다. 공중목욕탕 하나 없는 조용하고 한적한 시골, 밤에는 귀신이 나올 듯한 외진 학교 관사, 전혀 북적대지 않는 조그만 면소재지의 산아래 조그마한 교정이 눈앞에 넓게 펼쳐진 해창만의 바람같은 풍경과 어우러져 포근하게 마음에 와닿는다.
우리학교 교장선생님은 올해 8월이 정년퇴직인데 교직원들의 능력을 소리 없이 인정해 주시는 타입이어서 분위기가 좋다. 전에 다니던 직장에서도 나는 공직생활을 30~40여년간 무탈하게 지내다가 정년 퇴직한 선배들을 보면 참으로 부러워했던 적이 있다. 이 곳 교장선생님도 39년간의 교직 생활을 잘 마무리하시고, 정든 교정을 뒤로 한 채 건강하게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되는 것이니 벌써부터 부러운 마음이다.
엊그제 우리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학기 초 다른 학교에서도 번번히 일어 날 수 있는 일인데, 우리 반 교실에서 9만원과 1만원이 넘는 돈을 분실한 일이 발생했다. 담임인 나로서는 당연히 범인을 물색해서 돈을 찾아 줘야 할 일이어서 차라리 내 돈이라도 되돌려 줄까 노심초사했다.
흔히 돈을 훔쳐간 놈도 나쁘지만, 간수를 잘못해 분실한 놈도 나쁘다고들 한다. 체벌도 못하게 되어 단체 기합도 안 된다 하고, 피해학생 학부형에게 어떻게 알릴까 하다가 교장선생님께 도난 사실을 보고하게 되었다.
교장 선생님은 어떻게 할 생각이냐며 먼저 내 생각을 물으셨다. 나는 “어떻게든 범인을 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였더니, 교장선생님께서는 “잡지 말게” 하시는 것이였다. 학생부와 담임을 다년간 해온 나도 사실 용의학생을 매로 체벌을 하거나 아니면 범인이 자백하지 않는 한 색출이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였지만, 교장 선생님은 더 멀리 보시고 잡힌 학생은 평생 마음에 상처를 받을 수 있다며 걱정하시고 계셨다.
학교 생활에서 해결하기 힘든 일은 상당하다. 광주 모중학교에서 근무할 때에는 1년에 20~30여명의 학생이 교칙을 위반하여 권고전학을 가곤 했다. 쉬는 시간 마다 담배를 피고 오는 학생도 있었고, 조금 나무래면 학교 밖을 뛰쳐 나가 찾으러 다니게 하며 애를 먹이는 학생, 의외로 성적도 좋은 상당한 모범생이 대형유리창을 주먹으로 깨서 손등 힘줄을 잇는 병원수술 때문에 학부모 앞에서 죄인처럼 머리를 조아린 일, 패싸움이나 오토바이 절도, 편의점을 터는 등 강력범죄 사건도 보았고, 교직원끼리도 수평적인 구조 때문인지 선후배를 몰라보며 인사도 제대로 안하는 일부 교사들의 풍토 때문에 학교가 이렇게 변해 버렸구나 하는 자괴감마저 들었다.
더구나 글로벌시대를 맞이하여 학생들에게 사랑의 매와 같은 체벌도 점차 사라지면서, 동시에 교권도 쭈욱쭈욱 추락하여 할 말을 잊게 하였다.
개인적으로는 학생 체벌을 없애는 것은 사형제도를 없애자는 일부 사형폐지론자들의 주장을 떠올리게 하였다. 인권제도가 그만큼 선진화되고 있다는 얘기지만, 부작용도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지금도 우수한 제자들의 상당수가 장래 희망란에 교사를 적는데 능력에 비해서 너무 힘든 일을 택하지 않게 되는가 혼자 생각해 보고, 점점 추천할 자신이 없어진다.
분명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시대는 지났다. 그러나 “교사여! 고개를 떨구지 말라!”, “학생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 주는 활력소가 되겠습니다“하는 약속의 말들을 떠올려 본다.
학창시절 읽은 A.J.크로닌의 '천국의 열쇠'가 기억난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프랜치스 치셤은 마음의 상처를 안고 신학교에 들어가고, 인내와 청빈, 용기있는 삶을 일관되게 유지하며, 신과 이웃에게 끊임없는 사랑을 다하고 진정한 성자로서 헌신적인 사랑을 하였으며, 참다운 인간으로서 삶의 보람은 ‘성실한 마음으로 자기 양심의 명령대로 살려고 노력한 사람’이며 그러한 인생을 사는 사람에게는 종교와 사상에 관계없이 '천국의 문'이 열려 있다고 하였다.
나는 오늘도 '반딧불이 교실'에서 야간 자율학습에 열중인 별관의 시원한 “바람의 통로”를 변화를 위한 힘찬 발걸음으로 걸으며, 내 평범한 인생을 반추한다. 이제 점점 희어지는 머리칼의 내모습 풍경에 반하고, 훈훈한 들바람에 반하고, 이 곳 사람들에게 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