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화점 광고를 보면 '고객은 왕'이라는 문구가 식상할 만큼 많다. 요즘에는 관공서에서까지 서비스 행정이라며 여기저기서 '王'자 돌림을 외친다. 왕공주병, 왕언니를 비롯해 학교에서도 왕따, 독서왕, 발명왕 등 왕이 좋긴 좋은 모양이다.
사회는 그렇다 치고 학교에서 왕은 누군가? 이구동성 교장이라고 할 게다. 아무리 참교육 민주화 어쩌고는 해도 학교 풍토가 워낙 보수적이고 고형된 체제이기에, 아무튼 교장의 영광과 권위에 견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전설처럼 회자되는 '교장의 강아지'는 아직도 유효하고 시사하는 바 크다.
'출근 표정과 기분'이란 표현이 있다. 출근 기분이 하루를 좌우한다는 뜻이다. 반드시 그래서만은 아니지만 나는 '마음 편하게 또는 즐겁게 근무'할 수 있는 여건을 학교경영의 근간으로 생각하고 있다. 선생님이 즐거워야 교육이 바로 선다는 우리 학교운(경)영계획의 기조다. 선생님 제일주의, 더러 행정실에서 불평이 비칠 때도 있지만 교장, 교감, 행정실(장)은 선생님을 돕기 위해 존재한다고 달랜다.
우리 학교 선생님들의 일과는 교무보조의 커피 한 잔과 방담으로 시작된다. 아울러 교감이나 교무부장 등 선생님과 접촉이 많은 분들에게도 특히 '아침 표정'을 강조해 선생님들이 기분 좋게 수업을 시작할 수 있도록 당부한다. 되풀이되는 일상과 벅찬 업무, 다소 왜곡된 교육 현장의 갈등상황에서 극히 개인적인 일로 상사의 눈치까지 보아가면서 살아야 한다면 우리 선생님들이 너무 피곤하지 않은가.
교육이 천직이네 스승이네 하기 전에 선생님도 생활인인 이상 학교가 천직의 터전이 되려면 마땅히 '지성적인 기본 여건'을 갖춰야 한다. (초등)학교는 즐거워야 하고 생기발랄해야 한다. 더 이상 학교는 중세의 수도원도 아니고 소공녀적 기숙사가 아니다. 선생님들에게 교육이 노동이냐
천직이냐의 가름은 교장의 경영철학에 크게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
설상가상, 애지중지 키운 강아지가 간밤에 쥐약을 먹고 죽었다고 아침부터 교장이 벌레 씹은 꼴을 하고 있다면 그 교무실 분위기가 어쩌겠는가. 그래서 나는 성인군자는 못되지만 속은 썩어도 늘 웃으려고 애쓴다. 워낙 낙천적인 덕도 있지만 표정만은 의도적으로 관리를 한다. 누군가 사십대에는 자기 얼굴에 책임을 지라 하지 않았던가. 일소일소(一笑一少)는 건강에도 좋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