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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윤동주문학관을 찾아

한 시대를 살다 간 영혼과 조우한 공간, 윤동주문학관

서촌 끝자락, 인왕산 자락에 자리한 윤동주문학관을 찾았다. 필자는 서울이 태(胎) 버린 고향이지만, 서촌은 발길을 자주 하지 않아 그런지 올 때마다 낯설게 느껴지는 곳이다.

 

윤동주 시인은 오래전 하늘의 별이 된 시인이지만, 그가 남긴 글은 오늘도 살아 숨 쉰다.

 

지방의 문학관은 두루 다녔으나, 바로 코앞의 윤동주문학관은 늘 마음에만 두고 찾지 못한 곳이다. 어제는 목에 생채기 난 것처럼 불편한 마음을 덜려고 작심하고 찾아 나섰다. 종로 1가에서 7212번 버스로 갈아타고 경복고등학교를 지나 언덕길을 오르니 '윤동주문학관'이 나왔다.

 

버스에서 하차하니 길 건너 박스 모양의 흰색 건물이 눈에 들어와 윤동주문학관임을 직감했다.

 

종로구는 2012년 인왕산 자락의 방치되었던 청운수도가압장과 물탱크를 개조하여 윤동주문학관을 만들었다. 특별한 시설을 개조하여 의아했으나, 느린 물살에 압력을 가해 힘차게 흐르도록 하는 곳이 가압장이다.

 

윤동주의 시가 지치고 상처 입은 영혼을 맑고 강하게 깨워주어, 영혼의 물길을 잘 흐르도록 하는 우리 영혼의 가압장이란 뜻을 담고 있다고 하니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문학관 입구는 소박했다. 시인의 삶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깊고 단단한 기운이 스며 있었다. 그의 문학의 깊이와 크기로 비견하니, 다소 작다고 느껴질 정도로 넓지 않은 전시관이 오히려 그의 시처럼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나라를 잃은 시대에서 일제의 억압과 강탈 속에서도 끝내 펜을 놓지 않았던 청년 시인의 고결한 정신은 전시실을 꽉 채우고 남아 가슴으로 전해지고 있다. 유리 너머 보이는 빛바랜 원고지는 아버지 시대의 얼룩진 펜글씨로 마음이 뭉클하게 다가왔다. 학창 시절의 검정 교복을 입은 흑백 사진과 육필 시집을 통해 내게 조용히 말을 걸어오는 듯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이 시구 앞에서 한동안 발이 떨어지지 않아 눈을 뗄 수 없었다. ‘부끄럼이 없기’를 바라는 그의 고백이 왜 이리도 묵직하게 다가오는지.... 어쩌면 지금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모습을 투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아마 나의 잃어버린 청춘을 마주하고 있는 탓일 것이다.

 

'서시(序詩)'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윤동주의 깊은 자기 질문이다. 일제의 억압 속에서도 양심적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결단의 시이다. 그러기에 '서시'는 모든 시대의 청년들에게 영혼의 기도문으로 사랑받고 있다. 무조건 외우고 따라 읊조렸던 풋풋하고 순수한 나의 10대 시절이 떠올랐다.

 

 

제1 전시실은 '시인채'라 이름하는데, 시인의 순결한 시심을 상징하는 순백의 공간이다. 9개의 전시대에는 시인의 일생을 시간순으로 배열한 사진 자료와 친필원고 영인본이 전시되어 있다.

 

뒤편으로 난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폐수지를 개조한 공간이 나왔다. 한때 버려졌던 장소가 윤동주의 시와 함께 다시 살아났다. 제2 전시실인 '열린 우물'인 것이다. 윤동주 시 '자화상'에 등장하는 우물에서 모티브를 얻어 물탱크의 지붕을 개방하고 하늘과 바람과 별이 함께하는 중정(中庭)을 만들어 놓았다.

 

 

몇 걸음 지나니 제3 전시실인 '닫힌 우물'이 나타났다. 그곳은 후쿠오카 형무소의 차가운 감방이 연상된다. 시인이 눈감았던 그 공간의 정서와 함께 시인의 일생과 시 세계를 담은 영상물을 감상할 수 있다. 시인채에서 닫힌 우물까지 20여 분 그와 대화하는 시간은 윤동주 사후 80년을 단숨에 거슬러 올라가 가슴을 울렸다.

 

잠시 햇살이 드는 창가에 앉아 조용히 시집 한 권을 펼쳐 읽으니 어느새 마음속이 평안해지고 깊고 오랜 울림이 나를 깨웠다.

 

윤동주문학관은 한 시대를 살다 간 영혼과 조우한 공간이다. 전시물 하나하나가 자기 삶을 부끄럼 없이 돌아보게 하는, 조용한 각성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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