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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산서 가는길

봄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우연하게 장수읍에서 산서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잘 닦여진 길은 다른 길과 다를 바가 없었다. 요즘은 시골길도 얼핏보아 차이점을 발견하지 못한다. 아스팔트로 깔아진 길은 같은 모양의 주유소가 보이고 엇비슷한 버스 승강장과 비슷비슷한 집들 그리고 농공단지며 “베트남 처녀 소개합니다” 라는 플랑카드까지 이정표를 확인하지 않으면 이곳이 어디인가 알수 없을 정도로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18년전 그러니까 서울에서는 올림픽으로 열기를 다하고 있을즈음 나는 새내기 교사였다. 이곳 장수에 첫발을 내딘 나는 설레임을 뒤로한채 낮으로는 아이들과 지내고 초저녁에는 관사에 수북히 싸인 풀을 메고 밤으로는 고동(다슬기)을 잡으러 다녔었다. 섬머타임제를 실시한터라 퇴근시간은 대낮이였다. 하지만 퇴근후의 시간은 쪼개쓰지 않으면 안될정도로 바쁜 나날이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뭐가 그리 재미있었는지 모를일이다.

코스모스가 길따라 자태를 자랑할쯔음으로 생각된다. 장수군에 속하면서도 남원과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산서면 산서초등학교에서 공개수업참관이 있었다. 20여명의 교사들은 장수읍에서 산서로 향하는 군내버스를 타기 위해 모여들었었다. 어느 시골이든 그곳을 오가는 군내버스의 정취와 독특한 정겨움은 형언키 어렵다.

그날도 덜컹거리는 비포장 도로를 가고 있었다. 우리는 못처럼 만난 반가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창문을 계속 스치는 나뭇가지의 부스럭 소리를 들었다. 그길은 차 한대만 갈수 있는 조그만 오솔길 이였는데 혹여 두 대의 차가 만나기라도 하면 큰 모퉁이가 나올때까지 후진을 해야 했다. 그땐 그모습 자체가 즐거운 일이였다.

그렇게 중간쯤 갔을때 갑자기 버스가 멈추어 섰다. 우리 모두는 궁금한 눈빛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다음순간 운전기사 아저씨가 벌떡 일어나더니 그야말로 바람처럼 뛰어나갔다. 그리곤 다시 바람처럼 입장한 기사 아저씨의 얼굴엔 기쁨의 미소가 흘렀고 그 기대에 맞게 손에는 제법 큼직한 뱀 한 마리가 잡혀있었다. 버스안의 사람들은 대부분 여교사였으므로 한순간 난리법석이 일어났다.

“아유, 엄마~ , 세상에 맙소사, 버려요, 어떡게해, ....”

수없는 이야기가 나왔었다. 하지만 기사 아저씨는 아랑곳 하지 않았었다. 곧 검정색 비니루 하나를 꺼내들더니 “이걸 어찌코롬 버린당가, 이게 얼마나 좋은건디” 하며 뱀을 넣더니 입구를 묶고는 버스앞 후시경에 걸어놓는게 아닌가.

버스안은 매우 조용해 졌다. 도로는 비포장이므로 계속 흔들렸고 간혹 움푹패인 곳에서는 검정 비니루가 출렁거릴 정도였다. 차안의 모든 시선은 비니루 봉지를 향해 있었다. 그곳에서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아니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뱀 때문에..

하지만 그 비니루는 아무리 흔들려도 떨어지지도 뱀이 튀어나오지도 않았다. 그러자 어느틈엔가 이곳 저곳에서 이야기가 흘러 나왔고 얼마 안가서는 처음 버스를 탔을때와 마찬가지로 이야기 꽃이 피였었다. 오늘 그 길 장수읍에서 산서가는길의 잘 포장된 도로를 다녀오면서 그때 초임시절의 정겨웠던 그길, 꼬불꼬불 한없이 달렸던 그 길의 추억이 부슬부슬 내리는 봄비 탓인지 즐거움보다는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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