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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나도 한 때 이런 제자가 있었다오


  근무지를 옮길 때면 예기치 못한 아이들과 만날 때가 있습니다. 태환이는 3년 동안 등교한 날 보다 결석한 날이 더 많았다고 했습니다. 등교를 한 날도 공부를 하다말고 슬며시 간 시간을 빼 놓아서 그렇지 결석한 날이 훨씬 더 많을 거라고 1학년, 2학년,3학년 때 선생님들이 친절하게 알려 주셨습니다.

  4학년이 되었다고 다를 수야 없지요. 나랑 만나던 첫날도 살짝 얼굴을 내비친 후 사라졌습니다. 아이들 말로는 태환이 책가방은 1년 내내 책상에 걸려 있다고 했습니다. 가끔씩 술을 드신 태환이 아버지의 술주정 때문에 선생님들은 슬슬 피하기만 한답니다.
 
  방과 후에 태환이를 불렀습니다.  간단한 셈은 커녕 자기 이름도 못씁니다. 부모님을 만나 보았습니다.

  1학년 때 회전그네를 타다가 넘어져서 머리를 심하게 다쳤답니다. 그 때 담임선생님께서는 현장에 없었답니다. 그래서 자기 자식이 다친 것은 담임 책임이라면서 아이 일로 속상하거나 술을 드시고 정신이 몽롱할 때마다 학교를 찾아가서 선생님들을 괴롭혔답니다. 앞으로도 그럴거라고 나보고 몸조심하라고 했습니다.

  학교 공부가 끝나 다른 아이들이 모두 집에 가도 태환이와 나는 함께 생활을 했습니다. 심부름도 시키면서 지루할 때면 태환이가 좋아하는 여학생 이름을 적어주면서 소리내어 읽고 쓰게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한 여학생 이름을 익히는데도 10여 일씩 걸렸습니다. 메모해 준 글자를 보지않고 쓰거나 읽으면 그 여학생과 앉을 기회를 주었습니다. 이름을 쓰고 읽어도 여햑생이 싫어하면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며칠씩 함께 좋아하면서 앉았던 여학생 이름을 잊어버립니다. 역시 태환이는 남자입니다. 더 예쁜 여학생의 이름은 한나절도 안되어 읽고 씁니다.

  태환이가 쓰고 읽는 일에는 학급 아이들의 협조가 더 컸습니다. 반 아이들은 먹을 것도 나누어 먹고 따스하게 대해 주었습니다. 학급의 예쁜 여학생과 고루 앉아 볼 수 있는 태환이는 다른 남학생들로 부터 부러움을 받았습니다.

  반 여학생과 고루 다 앉아 다시 짝을 바꾸게 되었을 때입니다. 학급회가 끝나고 오락시간. 짱구머리 반장 녀석이 태환이를 불러내어 노래를 시켰습니다. 노래를 할리 없습니다. 노래 대신 여학생 이름을 칠판에 다 쓰면 4학년이 끝날 때까지 네 마음대로 짝을 바꾸어 앉을 수 있도록 선생님께 건의하겠다고 했습니다.

  태환이가 칠판 가득히 여학생 이름을 써습니다. 반장은 "그럼 선생님 이름도 써 봐!"라고 했습니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다른 아이들도 거들었습니다. 태환이가 선생님 이름도 쓰면 파자파이를 산다고 했습니다.
 
  태환이가 내 이름을 씁니다. 쓰고 지우고를 반복하나 봅니다. 틀리게 쓰는지 아이들이 소리가 더 큽니다. 그 때처럼 학급 아이들이 단합되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박수와 환호로 온 교실이 시끄러웠습니다.
 
  한참 후
 
  발바닥으로는 마룻바닥을 손바닥으로는 책상을 두드리며 박장대소하는 아이들의 고함소리로 떠나갈 듯 했습니다. 칠판을 보니, 내 이름을 '10 종철'라고 써 놓았지 뭡니까. 아이들은 칠판에 써 놓은 글자를 합쳐서 무심코 읽다가 그만......

"와------"

  내 이름을 직접 써 보라고 한 일도 없는데...... 나는 벌떡 일어나 태환이를 덥썩 안았습니다.
 
  태환이가 눈을 뜬 것입니이다. 그 소문은 마을로 퍼졌습니다.  마을사람 몇몇이 나를 태환네 집으로 납치하다시피 데려갔습니다. 꽃게잡이 나가서 雜魚로 잡힌 고기들로 큼직큼직 회를 쳐놓은 술상머리에 둘러앉게 되었습니다.
 
  누군가가 술잔을 높이 들고 "태환이 선생님! 10종철 선생님을 위하여!"하며 선창을 했습니다. 그후 나는 그 마을을 떠나 이곳에 있지만, 아직도 아낙들은 바지락을 캐면서, 남자들은 회식 자리에서 그 때 그 이야기를 한다고 들었습니다.

  매년 이 맘때가 되면 태환이와 힘들었던 일들이 생각납니다. 그렇지만 마음은 아직도 풍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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