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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뉘라서 나를 이토록 반겨줄 것인가?


“우와, 선생님이다!”
“숙쌤이 오셨다~”

교실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일제히 울리는 함성이다. 그것도 모자라 순식간에 아이들이 와라락 안겨든다. 구름같이 에워싼 아이들. 눈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내가 문을 열 때만 해도 삼삼오오 모여서 수다를 떨거나 딱지치기를 하던 아이들이었는데 순식간에 내게로 몰리니 이 무슨 과반김인가 싶다. 이 때만큼은 내가 연예인 부럽지 않은 스타 중의 스타가 된다. 발빠른 여학생들이 먼저 오그르르 내 품에 안겨서 주위까지 선점하다보니 남학생들은 끼일 자리가 없다. 저만치서 자기네들끼리 껴안고 눈은 내 쪽으로 향하고 있다. 겨울방학 40일 동안 못 만난게 무슨 이산가족 상봉이라도 되는 모양인지.

그 동안 나는 아이들에게 무지무지하게 무뚝뚝한 선생님이었다. 다른 선생님들처럼 그 흔한 손 한 번 잡아주지 않았고, 머리 한 번 제대로 쓰다듬어주지 않았다. 이 놈이 예뻐서 안아주면 다른 놈들이 슬퍼할까를 염려해서 저 아이를 칭찬하면 또 다른 아이가 속상해할까를 염려해서 함부로 애정표현을 하지 않았다. 아무리 예쁜 짓을 해도 겉으로 드러내어 표현 못하고 ‘어 잘했어’하는 단말마의 칭찬으로 끝나곤 했다. 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예뻐한다는 것을, 마음속으로는 수없이 안아주고 또 안아주었다는 것을 아이들은 알기나 할까?

늘 내 행동이 타인의 눈에 정제되어 보이지 않을까를 염려하며 살아온 습성 때문이었다. 곰살맞은 엄마와는 달리 무뚝뚝했지만 속정 깊었던 우리 아버지를 쏙 빼닮은 탓이기도 했다.

우리집 식구들도 인정해마지않는 곰살 애살과는 거리가 먼 무뚝뚝한 선생님이 뭬그리 반갑다고 안기고 소리지르고 난리들인지 참으로 아이들은 비위도 강한 것 같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무뚝뚝한 내게서 돌아가는 것은 그저 눈웃음한방 뿐인데 그래도 예쁜짓을 하고 싶을까 싶다. 난 일껏 마음먹고 따라해보려해도 상대방이 받아주지 않으면 머쓱해서 그만두어 버리는데 아이들의 예쁜짓은 포기라는게 없다. 나만 보면 저 멀리서도 선생니임 하면서 달려와 안기는 아이들.

그저 인연이 되어 만난 일년기한의 담임선생님일 뿐인데 아이들은 뭐가 그렇게 좋다고 야단법석을 피우는지 모르겠다. 그냥 어디에고나 흔한 평범한 손이고, 중년의 엄마들처럼 푹신푹신하지도 못한 메마른 품속인데 말이다.

이런 과반김이 속으로는 흐뭇해서 입이 귀에 걸려 있으면서도 내 입에서 나가는 말은 무미건조한 단절음의 말 한마디 뿐이다.

‘어 그래.’

그러고 보면 나도 참 어지간한 무뚝뚝이다. 어디 가서 아이들처럼 마음 가는 데로 안기고 표현할 줄 아는 예쁜 짓을 배워와야 할 것 같다. 이래서 아이들은 내 힘의 원천이다. 원인제공을 해놓고도 무조건 자기는 잘못이 없다고 고집을 피울 때도 있고, 뛰어다니는 폭탄 같아서 언제나 마음을 놓을 수는 없어 불안하지만 아이들은 근본적으로 힘들 때 나를 치켜올리는 강력한 포스가 된다.

얘들아, 개학날 손이 두 개 밖에 없어서, 품이 고작 하나라서, 너희들을 다 잡아주고 안아주지 못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너희들의 손을 다 잡았고, 모두를 껴안았고, 심지어 업어까지 주었단다. 풍족한 가정에서 사랑을 넘치게 받고 자라서 스스럼없이 표현하는 너희들이 부럽구나. 이런 마음 고대로 예쁘게 자라서 너희들의 넘치는 사랑을 소외되어 외로움에 허덕이는 사람들에게 나눠주려무나. 그럼 그 때는 쪼그랑할머니가 되어버린 내가 중년의 뱃살 두둑한 너희들의 품에 안겨야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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