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여 년이 넘는 교직생활 중에서 가장 큰 학교에 근무한 경우가 학생 수 3000여명 정도였다. 운동장 조회 때 저학년은 앞에, 고학년은 뒤에서야 했으며 중간놀이 시간에 놀이나 행진을 하면 마치 군대가 사막을 행진하는 것처럼 먼지가 날려서 온통 흙먼지를 뒤집어써야 했다.
운동회 때도 달리기를 한번 하거나 학년경기, 연합경기가 한번 진행되면 아이들은 온종일 응원석에서 장난치고 군것질하면서 따분하게 보내야 했다. 70년대 대도시의 과대학교는 이보다 더 커서 한 학년이 20반이 넘었고 교실이 부족해 2부제 수업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데도 인구가 대도시로 몰리면서 콩나물 교실이 생겨 한 반에 60∼70명이 공부하던 때도 있었다. 큰 학교 부근에 사는 주민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와글와글 아이들 떠드는 소리, 노래 소리, 스피커 소리로 시장통에 사는 것 같다는 말씀들을 하셨다.
학교는 작아야 한다. 특히 초등교는 작아야 한다는게 내 생각이다. 지금 나는 전교생 50명인 5학급 학교에 근무한다. 대도시 학교 한 학급의 인원이다. 경제논리로 따지자면 막대한 투자요 낭비라는 말이 나올 만하다. 그러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그들의 권리 역시 보호돼야 하며 한 명의
아이라도 미래의 동량으로 키워야 하는 게 교육이다.
지금 농어촌은 공동화 현상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자녀를 키워 모두 도시로 내보내기 때문이다. 그 동안 학생수가 줄어 분교장으로 개편되거나 폐교된 학교가 무수히 많다. 그럴듯한 2층 건물이 폐교가 돼 잡초가 무성한 채 흉물로 방치되고 있다.
그러나 소규모 학교를 들여다보면 좋은 점이 썩 많다. 작은 학교 아이들은 그야말로 선생님의 개인지도를 받는다. 이제는 교실마다 인터넷이 연결돼 자료검색을 하고 메일을 주고받는 수업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여유 교실도 많아서 과학실, 도서실, 컴퓨터실, 보건실, 급식실에 수세식
화장실도 기본이다.
수업은 거의 토론 및 실험과 노작학습으로 이뤄진다. 교실 앞뜰 화단에는 채송화, 백일홍, 코스모스가 수줍게 피어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넓은 운동장에서는 힘껏 달리며 공을 차고, 씨름장에서는 천하장사의 꿈을 꾸는 아이들의 함성소리가 가득하다.
운동장 한 구석 큰 은행나무에는 노란 은행이 주렁주렁 달려 있고 먼 산의 푸르름이 이제는 오색 단풍으로 변신을 준비하고 있다. 코스모스 꽃길을 따라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해맑고 빨간 고추잠자리가 저공 비행을 하는 시냇가에는 송사리를 잡은 아이들의 모습이 정겹다.
이런 자연환경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는 별다른 인성교육이 필요하지 않다. 얼마나 순박하고 마음이 고운지 모두 천사 같은 모습이 얼굴에서 배어 나온다. 도시 큰 학교에 가면 저절로 공부가 잘 될 것으로 착각하는 학부모들이 이제는 없었으면 한다. 이제 도시의 과밀학급에서 아이를 키우려는 생각에서 벗어나 작은 학교, 자연의 품속에 있는 학교에서 아이를 키우고 교육을 하자는 캠페인이나 운동이 일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도시학교는 과밀에서 벗어나고 시골학교는 과소가 해소돼 서로 좋은 교육여건이 조성될 수 있을 것이다. '작은 학교가 아름답다.' 겉모양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의 마음씨가 더 깨끗하고 아름답다. 어린 시절 시골의 작은 학교에서 공부한 사람들 중에 큰 인물이 많이 나온 것은 작은 곳에서 아이의 그릇을 크게 키운 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