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발달에 가속이 붙어서 인지 인간의 삶이 자연과 점점 멀어지는 것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원시시대처럼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삶으로 돌아가자는 것은 아니요, 또한 돌아갈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요즘 어린이들의 생활은 어떠한가. 태어나면서부터 자연과 거리가 있는 아파트 속에서 장난감소리, TV소리, 컴퓨터소리를 들으며 자동차를 타고 백화점이나 대형마트를 누비며 가공식품을 먹고 자라고 있다. 키는 크고 몸집은 뚱뚱한데 상대적으로 체력은 약한 어린이로 자라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는 소풍 갈 때 친구와 손을 잡고 소풍장소에 도착해 전교생이 넓은 장소에 모여 노래도 부르고 보물찾기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요즘은 대부분의 학교가 관광버스를 타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놀이공원으로 소풍을 간다. 놀이기구를 타기 위해 길게 줄을 서서 한 시간 기다렸다가 10분 정도 타고 나면 몇 가지 구경도 못하고 사람에 밀리고 지쳐 파김치가 되어 돌아오는 소풍을 하고 있다. 야영활동도 예전에는 숲속에 들어가 직접 천막을 치고 밥을 지어먹으며 자연 속에서 심신을 단련했는데 요즈음은 수련시설에 들어가 공동급식을 하고 확성기의 굉음 속에서 몸을 흔들
몇 달 전, 학교사택에서 아침운동으로 산책할 곳을 찾다가 좋은 코스를 발견했다. 학교 옆을 가로지르는 터널을 지나면 푸른 숲이 우거진 금수산의 작은 골짜기가 나온다. 공기청정도가 전국에서 제일이라는 금수산을 오르면 온 몸에 생기가 돌고 날아오르듯이 몸이 가벼워져 온다. 얼마 전에는 산을 오르다가 발견한 산딸기 넝쿨에 손을 찔려가면서 열매를 따먹느라 시간가는 줄도 몰랐다. 색다른 체험을 하고 산을 내려오면서 '우리 학교 아이들도 산딸기를 따먹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예전에는 등·하교길에 걸어다니며 들꽃도 관찰하고 곤충도 구경하며 딸기도 따먹곤 했지만 요즘은 산골아이들도 자연을 잘 모르는 것 같다. 운동장에서 마음껏 뛰어 노는 아이들도 보기 힘들다. 아침시간은 그렇다 하더라도 방과후에도 뛰어 노는 아이들이 줄고 있다. 시골은 같이 놀아줄 또래 아이들이 없고 도시 아이들은 학원을 다니느라 놀 시간이 없다. 시간이 나더라도 컴퓨터나 TV에 매달려 친구나 가족과는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시골의 작은 학교는 이농으로 학생수가 점점 줄어 하나 둘씩 문을 닫는다. 경제 논리로 보면 너무 많은 비용이 드니까 학교 문을 닫는 것이겠지만 숲 속에 자리 잡은
30여 년이 넘는 교직생활 중에서 가장 큰 학교에 근무한 경우가 학생 수 3000여명 정도였다. 운동장 조회 때 저학년은 앞에, 고학년은 뒤에서야 했으며 중간놀이 시간에 놀이나 행진을 하면 마치 군대가 사막을 행진하는 것처럼 먼지가 날려서 온통 흙먼지를 뒤집어써야 했다. 운동회 때도 달리기를 한번 하거나 학년경기, 연합경기가 한번 진행되면 아이들은 온종일 응원석에서 장난치고 군것질하면서 따분하게 보내야 했다. 70년대 대도시의 과대학교는 이보다 더 커서 한 학년이 20반이 넘었고 교실이 부족해 2부제 수업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데도 인구가 대도시로 몰리면서 콩나물 교실이 생겨 한 반에 60∼70명이 공부하던 때도 있었다. 큰 학교 부근에 사는 주민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와글와글 아이들 떠드는 소리, 노래 소리, 스피커 소리로 시장통에 사는 것 같다는 말씀들을 하셨다. 학교는 작아야 한다. 특히 초등교는 작아야 한다는게 내 생각이다. 지금 나는 전교생 50명인 5학급 학교에 근무한다. 대도시 학교 한 학급의 인원이다. 경제논리로 따지자면 막대한 투자요 낭비라는 말이 나올 만하다. 그러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그들의 권리 역시 보호돼야 하며 한 명의 아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