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트막한 산 밑, 햇살이 반짝이는 바닷가 자갈 마당이 시끄럽습니다. 큰발이가 힘 자랑을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래, 그래 큰발아 힘을 내!" "으라차차-차." "우와! 큰발이가 저 무거운 돌멩이를 들어 올렸어."
큰발이를 둘러싼 친구들이 함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습니다. 큰발이는 친구들의 박수소리에 어깨를 으쓱하며, 들어 올렸던 돌멩이를 내려놓았습니다.
"야 보글이, 너 이 돌멩이 들어 올릴 수 있어?"
친구들의 눈이 일제히 보글이에게 쏠렸습니다. 가시 돋친 성게는 들어 보았지만 이렇게 큰 돌멩이는 처음입니다. 보글이는 자신이 없었지만 친구들이 겁쟁이라 놀리는 것이 싫어 용기를 내었습니다.
"그래 할 수 있어." "좋아, 그럼 해봐."
큰발이가 자리를 내 주었습니다. 보글이는 짤각, 짤각 집게발을 펼쳐 보았습니다. 그리고 힘주어 돌멩이를 잡았습니다.
"에잇, 보그르르르"
하지만 돌멩이는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와하하하하"
친구들은 모두다 배를 잡고 웃었습니다.
"그럼 그렇지 보글이가 저 무거운 돌멩이를 어떻게 들어 올려" "맞아."
보글이는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아냐, 할 수 있어, 들어 올릴 수 있단 말야."
친구들의 빈정거림에 마음이 상한 보글이가 소리쳤습니다.
"그래? 그럼 들어 올려 봐."
또 다시 친구들의 눈이 보글이에게 쏠렸습니다.
"에잇, 보그르르르"
보글이는 젖 먹던 힘까지 다 내었습니다.
"보그르르르, 보그르르르"
하지만 돌멩이는 여전히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왓하하, 우하하하"
친구들은 또 다시 배를 잡고 웃었습니다
"비켜 봐, 이 멍청아."
꾀돌이가 보글이를 밀쳐내었습니다
"힘으로 안되면 머리를 써야지."
꾀돌이는 돌멩이 밑에 수숫대를 끼워 넣었습니다. 그리고 힘껏 눌렀습니다.
"에잇!"
돌멩이는 데굴데굴 굴러가 바닷물 속으로 '풍덩'하고 빠져 버렸습니다.
"우와!"
친구들은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봤지, 이렇게 하는 거야."
보글이는 보글보글보글 울상이 되었습니다.
"왓하하하하"
친구들은 울음을 터뜨리기 일보직전이 된 보글이를 보고 또 한번 크게 웃었습니다.
"보글이는 울보래요, 보글이는 울보래요."
보글이는 바닷가 자갈 마당에 사는 게입니다. 친구들이 놀릴 때면 언제나 보글보글보글 운다고 해서 보글이입니다. 수숫대로 돌멩이를 굴려 버렸던 친구는 꾀돌이, 그리고 큰 돌멩이를 들어 올렸던 큰발이는 이 바닷가 자갈 마당에서 가장 힘이 센 게입니다.
이 밖에도 이 자갈 마당에는 여러 친구들이 살고 있습니다. 등에 빨갛고 특이한 무늬가 있는 알록이, 화가 나면 '벌컥벌컥' 몸을 일으켜 세우는 벌컥이, 납작한 몸을 가진 납작이 모두다 이곳 자갈 마당에 사는 친구들입니다.
"보글보글보글, 보글보글보글"
보글이는 멀리 자갈마당이 내려다보이는 높다란 바위절벽 위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친구들의 비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더욱 서럽게 울었습니다.
"보글보글보글, 보글보글보글"
보글이는 마음이 상할 때면 이곳으로 올라왔습니다. 이곳에서 하얗게 떠가는 흰구름과 자갈 마당으로 밀려드는 파도를 내려보며 마음을 달래 곤했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힘이 약할까?"
보글이는 자신도 큰발이처럼 힘이 세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럼 친구들이 더 이상 나를 비웃지 않을 텐데."
보글이는 큰발이처럼 힘이 세어져, 무거운 돌멩이를 들어올리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았습니다. 그리고 얄미운 꾀돌이도 번쩍 들어올리는 모습도 상상해보았습니다. 정말 생각만 해 보아도 신나는 일이었습니다.
"그럼 꾀돌이는 두 손을 싹싹 빌며 내려 달라고 애원하겠지."
보글이는 신이 나서 크게 웃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하늘에서 시커먼 것이 '휙' 하고 떨어져 내렸습니다. 깜짝 놀란 보글이가 소리쳤습니다.
"어, 엄마야!" "어이쿠!"
그것은 나비였습니다.
"아이고, 놀라게 해서 미안하구나."
너덜, 너덜 날개도 빛 바랬고 얼굴에는 흰 수염이 길게 나 있는 나비였습니다.
"허허허, 너 할아버지 나비를 처음 보는구나" "네." "그렇기도 할거야, 나비들은 모두 나처럼 나이가 들면 사라져 버리니까." "사라져 버린다구요?" "그래." "어디로요?" "음, 그건 말야."
나비는 햇살이 환하게 반짝이는 바다 한 가운데를 가리켰습니다.
"저 곳으로 가서 환한 햇살이 되지." "아!"
보글이는 자갈마당 어른들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라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저도 들었어요, 갈매기한테 물려 간 제 친구들도, 모두다 고운 햇살이 된다고 했어요." "그렇지, 그런데 너는 왜 여기 혼자 있는 거니?"
보글이는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자갈 마당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친구들이 저를 좋아하지 않아요." "예."
나비 할아버지는 보글이가 안되었다는 듯 눈썹을 내렸습니다.
"걱정하지 마라, 곧 좋아 질 거야. 이 할아버지도 어릴 적에는 그랬는걸." "할아버지도요?" "그래, 그때 난 애벌레였지, 몸에는 털도 '숭숭' 나고 굉장히 못생겼더랬어, 그뿐만이 아니었어, 얼마나 느렸었던지 이쪽 잎에서 저쪽 잎으로 갈려면 반나절이 걸렸었어 그래서 친구들은 나를 보고 느림보 숭숭이, 느림보 숭숭이하고 놀렸지." "그래서 어떻게 되었어요?" "나는 그런 말에 신경 쓰지 않았단다. 왜냐하면 나는 나비가 되어 하늘을 훨, 훨 날거라는 꿈이 있었거든." "하지만 저는 나비애벌레가 아니잖아요." "그렇지, 하지만 너도 친구들에게 자랑할 만한 것이 하나쯤 있지 않니?" "아니에요, 전 자랑할 만한 것이 하나도 없어요. 저는 울보에다가 친구들이 놀리면 늘 숨기만 하는 걸요." "거봐라 너도 한가지 잘하는 것이 있잖니."
눈을 동그랗게 뜬 보글이에게, 나비 할아버지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늘 숨기만 한다면, 너는 남들보다 숨기를 잘하는 숨기대장이겠구나."
나비할아버지의 말에 보글이는 눈을 내려 보그르르 미소지었습니다.
사실이었습니다. 보글이가 돌 틈 사이에 납작 엎드려 숨어 버리면 아무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큰발이도 꽤돌이도 숨어 버린 보글이는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장기라고 생각해 보지 못한 보글이였습니다. 그래서 보글이는 할아버지가 더 고맙게 생각되었습니다.
"늦었구나, 태풍이 오기 전에 가야겠다." "할아버지 햇살이 되시면 저에게 와 주실 거죠?" "녀석."
나비할아버지는 보글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습니다 그리고 훨훨 날아올라 햇살이 환하게 반짝이는 바다 한 가운데를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얘들아 이것 좀 봐, 등에 또 아름다운 무늬가 생겼어."
바닷가 자갈 마당 친구들은 알록이의 등에 생겨난 아름다운 무늬로 이야기꽃이 한창 피었습니다.
"어 정말이네, 좋겠다." "맞아, 알록이는 이 자갈마당에서 가장 아름다운 게 일거야."
모두들 알록이가 부러운 듯 한마디씩 하였습니다.
"어, 저기 있네."
나비할아버지의 이야기에 자신감을 얻은 보글이는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친구들을 만나도 잘 지낼 수 있을 것만 같은 마음에 무척 즐거웠습니다.
"어, 저게 뭐지?"
보글이의 눈에 멀리서 가뭇하게 떼지어 날아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떼를 지어 날아오는 갈매기였습니다. 깜짝 놀라 보글이가 소리쳤습니다.
"얘들아, 얘들아!" "뭐지?" "얘들아 피해 갈매기야, 갈매기!" "뭐라고!"
친구들이 놀라 달아났습니다. 자갈 마당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악, 안돼-!"
등이 붉은 알록이가 제일 먼저 갈매기에게 붙잡혔습니다.
"살려줘!"
큰발이가 알록이를 구하려고 큰 자갈돌을 들어 올렸습니다. 하지만 너무 무거워서 던질 수가 없었습니다.
"내려 줘, 내려 줘!" "이 나쁜 갈매기야. 알록이를 내려 줘!"
큰발이가 울면서 소리쳐 보았지만 너무 늦어 버렸습니다.
"으악!"
큰발이가 갈매기의 커다란 부리에 물리고 말았습니다. 알록이를 구하려다가 뒤에서 덮치는 갈매기를 미처 보지 못한 것입니다.
"기다려, 내가 도와줄게."
보글이였습니다. 보글이는 긴 가시가 달린 성게의 들어 갈매기의 발을 찔렀습니다.
"까악!"
깜짝 놀란 갈매기가 입을 쫙 벌렸습니다. 그 바람에 갈매기의 입에서 큰발이가 떨어져 내렸습니다.
"이쪽이야."
숨을 곳을 많이 알고 있는 보글이가 외쳤습니다. 둘은 자갈 틈 사이에 몸을 숨겼습니다. 언젠가 보글이가 자신을 놀리던 친구들을 피해 숨었던 곳이었습니다.
"살려줘, 살려줘."
머리에 수숫대를 이고 이리 저리 뛰어 다니는 꾀돌이였습니다. 너무 놀란 꾀돌이는 어찌할 줄을 몰라 울고 있었습니다.
"엉, 엉 나 어떡해." "꾀돌아!"
보글이가 집게발을 높이 들어 꾀돌이를 불렀습니다.
"여기야 여기, 꾀돌아."
보글이는 달려온 꾀돌이를 꼭 안았습니다.
"괜찮아, 여기 엎드려 있으면 절대 우릴 찾지 못할 거야."
그 날 자갈 마당에는 무서운 갈매기들이 하늘을 날아다녔습니다. 그리고, 곧이어 큰 폭풍이 불어 닥쳤습니다. 집채만한 커다란 파도가 연신 자갈 마당을 덮쳤습니다. 커다란 파도는 큰 소리를 내며 부서졌습니다. 금새라도 자갈마당 식구들을 집어 삼켜 버릴 것 같았습니다. 자갈 마당 식구들은 파도에 휩쓸려 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습니다.
보글이도 큰발이, 꾀돌이와 함께 바위틈에서 버티었습니다. 세찬 파도가 사납게 부딪쳐 올 때마다 서로를 더욱 꼭 끌어안고 버티었습니다. 무서운 폭풍은 밤새 계속되었습니다.
긴긴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었습니다. 무섭게 울부짖던 바다가 잔잔해졌습니다. 바닷가 자갈마당에 다시금 평화가 찾아온 것입니다. 바닷가 자갈마당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잔잔한 파도가 밀려왔습니다. 물결 위에서 햇살이 부서져 반짝였습니다. 햇살이 부서져 반짝일 때마다 자갈마당에는 조로롱, 조로롱하는 음악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 같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