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은 물로 둘러싸여 육지와 상당한 정도로 분리되는 속성이 있다. 교육은 사회 일반이 돌아가는 일의 속성으로부터 일정한 거리가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육지와 분리된 섬이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이 섬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마치 육지와 상관없는 별개 사안처럼 취급하며 그 안에서 어떻게든 문제를 풀어보려 동분서주한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일수록 도무지 풀리지 않고 섬 주민들은 기진맥진할 때가 많다.
문제는 육지에서 불어오는 바람
예를 들어 보자. 모두의 감내 수준을 넘어서는 사교육의 병폐를 빨리 해결하라고 사회는 교육에 대해 아우성이다. 전인적 교육을 방해하고 학생과 학부모의 행복 지수를 갉아 먹으며 특히 비정상적 비용 지출에 따른 민심이반을 그냥 둘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역대 정부는 감옥에 보낸다는 으름장에서부터 국가가 제공하는 방송과외에 이르기까지 온갖 대책을 쏟아 냈지만 해결의 징조는 찾을 수 없었다.
대학입시 제도는 어떤가? 수능시험이 어려워 혹은 내신 비율과 논술 때문에 교육이 잘못 되고 있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아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며 셀 수도 없을 만큼의 변경을 해왔다. 이제는 왜 맨날 바꾸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비판까지 받는다.
또 학교폭력의 실상이 언론을 통해 알려질 때마다 학교는 사회적 지탄의 일차 목표가 됐고 온갖 아이디어를 모아 대책을 세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에 정부는 이러저러한 방법으로 해결해 보겠다고 대사회 선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망라적 대책에도 불구하고 희망의 싸인은 보이지 않으니 안타깝기만 하다.
이렇다 보니 사회는 교육을 향해 대놓고 말하지 않을 뿐 답답하고 무능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듯하다. 따라서 교육적 사안에 대해 교육계 인사나 교육학자의 목소리는 힘을 받지 못하고 교육 밖의 목소리, 경쟁, 효율같은 가치를 보다 중시하는 처방이 힘을 얻는 모습이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교육이라는 섬에서 발생한 문제는 많은 경우 육지에서 불어 온 바람에 의해 발생한 것이다. 사교육의 근본 원인은 풀 길 없이 공고한 학벌위주 문화가 그 출발점이 아닌가? 학교에서 가르치는 수준이 낮고 교육과정의 목적을 제대로 달성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대학입시에서 어떻게든 우위에 서야 하므로 너도나도 사교육에 매달리는 것이다. 대학입시 제도의 변경 역시 선발의 공정성과 타당성을 높이기 위한 순수한 교육적 의도보다는 누가 학벌 사회에서 기득권을 갖도록 할 것인가, 누가 선발권을 더 많이 가질 것인가에 대한 정치적 판단의 측면이 크다. 학교 폭력의 경우 존중과 배려가 결여된 사회 문화, 폭력에 무감각한 매체의 영향 같은 것들이 원인과 해결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데 학교가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된다는 말인가?
가정·학교·사회 함께 풀어야
학교가 왜 섬인지, 사회와 어떻게 분리돼 있는지를 따지려는 것이 아니다. 또 학교가 이 일에 책임이 없다거나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변명을 하려는 것도 아니다. 학교는 그 안에서 여전히 주도적으로 할 일이 많다. 사교육 줄이기든 입시 준비든 학교가 더 애를 써서 문제를 줄이도록 노력해야 한다. 가정과 사회 탓을 하기에 앞서 학교가 학교폭력의 응급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며 존중과 배려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만들고 가르쳐야 한다.
다만 교육이라는 섬에는 이미 셀 수 없이 많은 다리가 놓여 있어 육지와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으며 그 안에서 교육이 할 수 있는 부분과 그렇지 못한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자는 것이다. “교육아, 학교야, 도대체 뭐하니?” 라고 질책하는 사회에 대해 움츠러들거나 맥빠져 하기보다 할 수 있는 일에 매진하면 된다. 오히려 사회에 대해 교육은 고립된 섬이 아니라 육지라는 더 큰 환경 속에 존재하므로 함께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고 설득해야 한다. 현재가 답답할수록 교육이 미래를 푸는 열쇠임을 잊지 않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