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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師弟관계 회복, 인격적 만남으로

언제부턴가 ‘학교붕괴’, ‘교실붕괴’, ‘교육포기’, ‘학교폭력과 왕따’라는 말들이 난무했다. 이 말들 속에는 교육의 가장 근본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사제관계’의 붕괴 내지는 포기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사제관계의 붕괴는 곧 교육의 붕괴를 의미한다. 국가의 미래는 교육에 달려 있는데, 교육이 붕괴되고 있음은 국가의 미래가 붕괴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기에 사제관계의 회복은 교육의 회복, 나아가 국력의 회복을 의미한다. 교육본연의 기능을 회복하고 국가의 미래를 복원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사제 간의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바람직한 사제는 우정 관계

그러면 이 같은 사제관계 회복의 실마리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우리는 그 해답의 일부를 신학자이자 실존주의 철학자인 부버(Martin Buber)의 ‘만남’에 나타난 사상에서 찾을 수 있다. 부버는 바람직한 사제관계를 우정의 관계라고 표현한다. 이것은 구도적 동반자(求道的 同伴者) 관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교사와 학생의 관계를 상하관계로 보지 않고 진리와 삶 앞에 적나라하게 서 있는 동등한 구도자의 관계로 보는 것이다.

이 때 교사가 학생이 되기도 하고, 학생이 교사가 되기도 한다. 진리와 삶 앞에서는 교사가 교사이기를 그치고, 학생은 학생이기를 그치는 한에서 인격적 ‘만남’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학생이 교사와 만나는 경우라 하더라도 특수한 교육학적 만남의 형태 이전에 어디까지나 인간과 인간의 만남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삶과 진리 앞에 교사와 학생이 동등한 구도자적 인간으로 마주설 때 ‘만남’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다음의 비유를 보자.

눈 내리는 추운 겨울날 나그네가 길을 떠났다. 그는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서 깊은 산을 넘어야 했다. 계곡을 가다보니 웬 나그네 하나가 추위로 인해 눈 위에 쓰러져 있었다. 나그네가 쓰러진 나그네를 보살피거나 업고 가다가 지체하면 자기마저도 동사(凍死)할 것이라는 생각에 망설이다 못 본체하고 지나친다면 결국 이 나그네도 얼마 못 가 추위로 동사하고 말 것이다. 비인격적 관계의 결말이다.

나그네는 쓰러진 나그네를 업고 목적지를 향해 부지런히 걷는다면 어떨까. 이마에는 구슬 같은 땀이 흐르고 등에서는 따스한 체온이 솟아 나와 업힌 나그네의 가슴으로 전달돼 언 몸을 녹여 줄 것이다. 결국 둘 다 살게 된다. 이것이 인격적 ‘만남’ 관계의 결말이다.

위의 예에서 보듯이 망설인 나그네는 삶과 진리 앞에 떳떳이 맞서지 못했기에 결국 파멸하고 말았지만, 떳떳이 맞선 나그네는 공생(共生)을 하게 된 것이다. 진흙에 빠진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는 진흙 속으로 뛰어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교사도 학생의 실존적 삶 속으로 뛰어 들어야 한다.

교육방법보다 인격이 우선

오늘날의 사회가 지나치게 비인격적 관계로만 치닫는 것은 정말 비극적인 상황이다. 더욱이 교육기관의 사제관계마저도 기계적이고 사물적인 관계로 치닫는 것은 더 큰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의 학생들은 예의 쓰러진 나그네처럼 항상 진리와 삶의 문제로 방황하며 고뇌한다. 교사는 이런 학생들을 지나쳐 버려서는 안 된다. 진정한 교사는 그 자신이 항상 행동으로 인격적 모범을 보이며 학생의 삶을 함께해야 한다.

패터슨(Patterson)은 훌륭한 교사와 훌륭하지 못한 교사의 구분은 교육방법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교사의 인격에 있다고 했다. 학생의 인간성이나 사람됨은 인간적인 교사의 인간적인 교육방법에 의해 계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사와 학생간의 참된 관계는 교육내용에 선행한다. 즉 교사와 학생간의 인격적 ‘만남’이 교육에 선행한다는 것이다.

교육이 점차 붕괴돼 가고 있는 이 시점에서 우리 교육자 모두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참된 사제관계란 무엇인가를 되돌아봐야 할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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