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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칼럼> 두 건의 학교폭력 사건을 눈앞에 두고

어느 날 5교시 수업을 끝내고 교무실로 내려오니 얼마 전에 발생한 학교폭력 사건 피해학생의 아버지가 굳은 얼굴로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는 학교와 담임교사가 직무유기한 것이 아니냐며 따졌다. 생활부장인 필자는 부친의 상식을 넘어선 고압적이고 무례한 행동에 매우 불쾌하고 화도 많이 났지만 모든 것을 참고 공손하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이럴 때면 교사로서의 자존감도 상처받고, 자신이 초라해지기까지 한다. 그리고 교직이란 길 앞에 뭔가 큰 바위벽이 버티고 서있는 것 같은 막막함도 든다.

서울 S중의 여학생 자살사건 담당교사가 직무유기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사건 당시 피해학생 학부모는 “담임교사와 관리책임이 있는 담당교사 등이 학교폭력을 알면서도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며 경찰에 진정서를 제출했고 경찰은 담임교사에게 학교폭력 발생의 책임을 물어 직무유기죄로 입건했다.

그동안 교단에서는 생소했던 ‘직무유기죄’라는 법적용어가 현실로 다가온 순간이다. 이후 ‘직무유기죄’는 학교폭력이나 자살사건이 나올 때마다 자주 들을 수 있다. 사실 직무유기죄를 적용하려면 교사가 정당한 이유 없이 직무를 수행하지 않았다는 명백한 증거가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너무 쉽게 입에 오르내리는 단어가 됐다.

안 그래도 학교현장에서는 교사들이 생활지도 업무를 기피해 생활지도부장을 선임하기가 매우 어려운 실정인데, 일련의 사건들을 계기로 사회분위기가 교사들의 책임만을 요구하고 있어 그 부담이 가중됐다. 이렇게 사기가 땅에 떨어져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꿋꿋이 지키던 교직의 사명감과 자긍심이 이러한 경직된 사회의 분위기에 무너져버리고 나면 회복이 불가능해진다.

학교폭력 발생과 처리에 따른 문제가 과연 담임교사나 학교폭력 담당교사만의 책임인가? 냉정히 생각해 보자. 교사에게 직무유기의 책임을 묻는 것은 잘못된 사회 분위기와 교육정책으로 인해 발생된 학교폭력의 책임을 교사에게 전가하고, 피해학부모의 감정을 달래기 위해 담당교사를 희생양으로 삼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학교폭력을 근절하고 그로 인한 교권침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보다 근원적인 처방이 필요하다.

첫째, 사회적 폭력거부의 공감대를 만들어가야 한다. 언론, 방송, 영화, 문화, 가정생활 등에서 흔히 가볍게 경험할 수 있는 폭력을 용인하는 문화를 추방시켜야 한다.

둘째, 학교현장의 생활지도시스템 개선이 시급하다. 거칠고 반항적인 학생들, 분노조절장애를 겪고 있는 학생들, 학교부적응학생들을 위한 실질적이고 실효적인 공립 대안학교를 확충해 나가야 한다. 또 생활지도에 가장 취약한 연령대인 중학교 학급당 교원 수를 고교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보다 장기적으로는 학급당 2배수의 교원을 확보하고 교육과정을 개편해 교사의 주당 수업시수를 10% 정도 줄이는 조치도 이어져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교사가 학생 그리고 학부모와 소통하고 상담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아니면 말고’ 식의 학부모 항의나 교권침해 행위에 대해서는 보다 강력한 사법적 대응 수단이 확보돼야 한다. 밤늦은 시간 만취한 상태에서 여교사에게 전화해 폭언을 쏟아 붓는 학부모도 있는 상황에서 이들로부터 교권을 지키기 위한 실효성 있는 사법적 조치에 대한 공론화가 이뤄져야 한다. 단순히 선언적으로 가중처벌을 하겠다는 공표하는 정도로는 부족하다.

마지막으로, 학교단위에만 국한돼 있는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업무를 교육지원청 단위에서 운영하는 통합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로 개편 운영하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런 일련의 조치들은 당장 시행하기 쉽지 않을 수도 있다. 법률 제·개정과 예산 배분의 문제, 학교시스템 변화 등 어려운 과제가 너무 많다는 생각도 들겠지만 근본적 처방을 하지 않고 넘어가는 것은 땜질식 처방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 탁상공론이 이어지면 장기적으로 교육현장을 더욱 무기력하게 만드는 길로 갈 수밖에 없다.

교원단체도 교원들의 직접적 권익보호를 위해 뭉쳐야 한다. 필요한 사안은 끊임없이 건의하고 그 필요성을 역설해 사회적 공감대와 정부의 관심을 유도해야 할 것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눈앞에 처리할 학교폭력 사건이 두 건이나 있다. 이 사안들을 쳐다보면 이런 글을 써야 하는 마음도 답답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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