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과 환희, 슬픔이나 분노, 황당함 혹은 즐거움, 격정, 심심함까지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감정들을 한마디로 표현 할 수 있는 단어는 있을까? 없을까? 정답은 성인들에게는 없고, 학생들에게는 있다는 것이다. 바로 ‘쩐다‘라는 단어다.
화창한 봄날, 버스 정류장. 삼삼오오 모인 교복 입은 여학생들의 모습이 싱그럽다. 까르르르 이야기꽃을 피우는 소녀들. 무슨 말일까 귀가 솔깃하다. 다소 더운 날씨에 대한, 그리고 비싼 참고서에 대한 일상적인 대화. 그러나 날씨는 ‘열X’ 더워서 ‘졸X’ 짜증나며, 참고서는 ‘개’ 비싸다.
위는 우리 시대 학생 언어의 너무나 일상적인 한 단면이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주인공은 가상의 현실과 실제 현실 사이를 오가며 어느 쪽이 진짜 현실인지 모호해 한다. 2012년 대한민국은 학생들의 언어와 성인들의 언어로 양분된 두 세계가 공존하는 세상이다. 감정 표현은 한두 마디 단어로 대체되고, 어떤 상황에서나 욕을 섞어야만 대화가 되는 어린 학생들이 넘쳐 난다. 이렇듯 은어, 특히 욕설은 학생 언어의 일상이고 감정의 가장 적절한 표현이며 놀이면서 문화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언어가 다르면 대화 방식도 다르다. 더구나 언어가 한정되면 사고가 한정된다. 우리가 다섯 살 때 쓰던 수준의 단어를 성인이 되어서도 그대로 쓰고 있다면 그 사람의 사고 능력에 발전이 있다고 할 수 있는가? 실제 실험에서도, 욕설을 많이 쓰는 그룹과 그렇지 않은 그룹을 나눠 단어 연상 실험이나 기억력 측정을 해 본 결과 욕설을 많이 쓰는 그룹의 어휘력은 현저히 낮은 결과를 보여 준다. 이를 통해 학생들이 지나친 은어나 욕설을 사용한다면 그들의 어휘 수준 차가 결국 두뇌 발달과 성적의 차이에까지 영향을 미치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학생 언어와 관련해 현재 우리 사회에서 문제가 되는 화두는 ‘학교폭력’이다. 요즘 우리는 거의 매일 이런저런 학교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다. 욕설, 조롱, 협박 같은 언어폭력에서 시작하여 물리적 폭력, 혹은 그 끝에서 일어나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인한 안타까움까지.
떠들썩한 물리적 폭력보다 더 근본적이고 잦은 폭력은 언어폭력이며, 이는 가장 흔하면서도 오래 남는 폭력의 유형이다. 실제 우리의 경험으로 봐도 칼에 베인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아물지만 말에 베인 상처는 시간이 지나도 아물지 않고 새록새록 더 아프지 않던가?
언어는 물리적 폭력과 이어지는 중요한 열쇠이기도 하다. 생각이 말로 표현된 다음에는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상대를 비하하는 말을 일상적으로 쓰는 사람은 상대에게 가하는 물리적 폭력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실제로 일반적인 학생에 비해 과도한 물리적 폭력을 쓰는 학생일수록 욕설에 대한 민감도가 현저히 낮아서 어지간한 욕설에는 무덤덤하다는 조사결과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은 학생들의 언어를 이해하고 개선하려는 것보다는 학교폭력과 관련한 해결책을 찾느라 여념이 없다. 사흘이 멀다 하고 신문과 방송에 폭력 관련 기사나 정책이 등장한다.
당장은 눈앞의 물리적인 폭력과 산재한 문제 해결이 급해 학생들의 언어쯤은 되돌아 볼 여력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고-말-행동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에서 학생들의 언어는 그들의 사고를 대변하는 신호다. 따라서 학생들의 언어를 바로 잡아야 그들의 행동도 바로 잡힌다. 물론 언어는 습관이라 지속성, 일관성이 필요하므로 학교 교육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 가정은 기본적 예절과 관련한 밥상머리 교육으로, 사회는 학생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방송 매체와 문화 콘텐츠로 각각 제 역할을 해야만 언어문화개선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지금 학생들의 언어를 바로잡지 않는다면, 언어 파괴에서 시작된 소통의 부재와 폭력의 소용돌이 속에서 학생들의 미래이자 우리나라의 미래라는 둑은 여기저기 작은 구멍이 나기 시작할 것이다. 지금 호미로 막을 수 있는 것을 둑 터진 뒤 가래를 들고 우왕좌왕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