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장면은 다음과 같다. 농구장에서 강사의 지도에 따라 아이들은 줄을 서서 농구 패스, 슛 연습 등을 열심히 한다. 그 시간에 아이들을 데리고 온 엄마들은 농구장에 있지 않고, 근처 커피숍에 모여서 학교 이야기, 학원 정보를 주고받는다. 농구가 끝나자 아이들은 엄마와 학교, 학원 숙제를 이야기하며 집으로 돌아간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
두번째 장면은 전혀 다르다. 코치인 두 명의 아빠가 쉬지 않고 땀흘리며 아이들과 함께 농구 경기를 한다. 아빠와 엄마,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는 아이들을 주시하고 몸짓 하나하나에 박수와 환호를 보낸다. 농구가 끝나자 아이들은 가족과 함께 자신과 팀의 플레이에 대해 이야기하며 집으로 돌아간다.
전자는 대한민국에서, 후자는 미국에서 필자가 경험한 것이다. 두 나라 사이에는 비교하기 어려운 문화와 생활 상의 차이가 있다. 그렇다고는 해도 우리의 경우 아이들의 농구, 체육활동은 주로 학업 스트레스를 풀고 체력을 다지는 시간이고 아이들끼리만 노는 시간이 되는데 비해 미국의 경우 협동, 배려 등의 덕목을 부모들과 함께 체험하고 부모와의 대화 속에서 그 덕목을 깊숙이 체화시키는 시간이라는 점은 꼭 짚고 가야 하겠다.
학교폭력으로 인해 ‘밥상머리 교육’이 다시 강조되고 있다. 우리 부모는 어떤 밥상을 차리고 있을까? 밥상머리 교육을 한다며 밥상에서 학교와 학원의 일정, 공부거리를 확인하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볼 일이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밥상머리 교육의 핵심은 아이들과의 ‘교감’에 있다. 밥상머리 교육은 아이들을 가르치고 일정을 관리하는 장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부모의 모습을 보여주며 아이들의 삶을 이해하고 교감하는 장이다. 아이들이 친구와 놀고 다툰 사건, 관심거리를 잘 경청하고 편안하게 의견을 나누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밥상머리 교육이 아닐까!
학교폭력이니, 주5일 수업제니 하면서 주말 방과 후 프로그램으로서 실시되는 학교스포츠클럽을 비롯해 다양한 체육활동이 학교에서 시도되고 있다. 앞의 두 사례 중 어떤 것을 추구할 것인가? 관리자와 구경꾼에 머물 것인가, 함께 뛰고 기뻐하며 교감하는 동료가 될 것인가?
밥상머리 교육은 밥상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부모와 함께하는 주말 체육활동은 더없이 좋은 또 하나의 밥상이다. 그 시간이 아빠에게 아이들을 엄마에게 딸려 내보내고 낮잠을 자는 구태의 시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온가족이 함께 뛰고 교감하며 대화를 나누는 주말 체육활동이 되어야 한다.
부모 역할 회복의 계기
밥상머리 교육에 담긴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본다. 밥상머리 교육은 학교폭력을 예방하기 위한 수단에 제한되지 않는다. 교육의 장으로서의 가정과 교육 주체로서 부모의 역할을 회복시키고자 하는 사회 운동까지 이어질 수 있다. 학교폭력과 같은 문제가 불거진 것은 가정의 교육적 기능이 상실되고 부모가 가정 교육의 주체가 되지 못한 상태에서 학교의 역량은 제약을 당해버린 우리 사회의 부조리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부모는 교사를 탓하고, 학교는 가정을 탓하는 한 우리 교육의 상처는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밥상머리 교육으로써의 주말 체육활동은 부모와 교사가 동등한 교육의 주체가 되고 가정과 학교가 핵심적 교육의 기능을 회복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를 구현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밥상머리 교육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장이기보다는 아이들과 교감하는 장이어야 한다. 부모와 자녀가 교감할 수 있는 주말 체육활동은 밥상머리 교육의 연장이자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