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엔 따끔한 바늘이 무서웠지만, 제 혈액이 필요한 곳에 쓰일 생각을 하니 뿌듯해요. 앞으로도 헌혈 기회가 있으면 계속 할 겁니다.”
20일 안양 성문고(교장 정길진) 운동장. 송인범(고3) 학생이 막 주사 바늘을 뺀 팔을 문지르며 헌혈증을 모금함에 넣었다. 이날 봉사활동에서는 300여 명의 학생들이 헌혈을 했다.
성문고는 1년에 한 번씩 전교생이 헌혈을 하고 헌혈증을 대한적십자사에 기증하는 ‘생명의 나눔 실천’ 봉사활동을 10년째 이어오고 있다. 2003년 백혈병으로 투병 생활을 했던 학생을 돕기 위해 단체 헌혈을 했던 것을 계기가 됐다. 성문고 강태호(37) 교사는 2005년 내친김에 ‘RCY(Red Cross Youth)’라는 봉사동아리를 창단, 매년 50여 명의 학생들을 이끌고 봉사활동을 지도하기 시작했다.
RCY는 헌혈봉사활동 뿐만 아니라 ‘독거노인 위문활동’, ‘자선걷기대회’, ‘외국인노동자 컴퓨터 교육’ 등 주로 토요일에 다양한 봉사활동을 실시하고 있다.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다는 김혜원(고3) RCY 단장은 “장애인들과 함께 산책도 하고 활동 하면서 두려움을 허물고 그들과 친구가 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RCY 단원이었던 이재곤 학생은 봉사활동 1000시간이 넘어 입학사정관제로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하기도 했다.
강 교사는 “봉사활동이든 창의적 체험활동이든 학생들은 열의가 있어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교사들이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방향을 안내해줘야 학생들에게도 참여의 기회가 넓어진다”고 설명했다.
2007년 이 학교를 졸업한 이진원(25)씨는 얼마 전 졸업 후 모은 헌혈증 24개를 강 교사에게 보내왔다. “고교 3년 내내 헌혈 봉사활동을 했던 것이 몸에 익어 기회가 생길 때 마다 헌혈을 했다”는 이 씨의 말에 강 교사는 “졸업 후에도 꾸준히 봉사하는 학생을 볼 때 보람을 느낀다”고 밝혔다.
강 교사는 헌혈 봉사를 통한 가장 큰 변화는 학생들의 인성변화라고 강조했다. 학비지원 대상 학생이 절반에 가까운 등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문제행동을 일으키기도 했던 학생들이 봉사활동을 하며 변화하기 시작한 것. 헌혈뿐 아니라 봉사캠프도 함께 동행하며 학생들을 보듬어 온 강 교사는 “진정한 교권이란 권위로 다스리는 것보다 함께 공감하며 깨달음을 주는 교사에게 저절로 생기는 것 같다”며 “10년을 넘어 20년, 30년 학교의 전통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스스로 더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