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은 왜 학교에 가는가? 학교가 학생에게 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이들 표현대로 매우 썰렁한 농담이다. 여기 농담보다 더 썰렁한 현실이 있다.
한 교직단체에서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잠을 잘 권리가 있다’라는 문항에 설문 대상 학생 1649명의 65.3%는 ‘그렇다’라고 대답했단다.
더 안타까운 것은 이런 설문을 실시한 의도가 무엇일까 하는 점이다. 가뜩이나 요즈음 학생의 인권과 교권이 충돌하며 내는 파열음에 학교 현장이 어지러운 시점에서 말이다.
수업 시간에 잠을 자지 말아야 하는 것은 상식이다. 권리일 수 없다. 등굣길에서 선생님을 만날 때 인사를 나누는 것은 상식이며 예의이다. 웃어른에게 인사하지 않는 것도 권리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미숙한 사고의 소치이다. 수업 시간에 잠을 자지 않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그것은 상식이며 나아가 학생의 본분이다.
학생독립운동기념일에 ‘잠잘 권리’ 외치는 학생
이런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한 날이 지난 11월 2일이다. 공교롭게도 학생독립운동기념일을 하루 앞둔 날이다. 학생독립운동기념일은 어떤 날인가? 일제 치하에서 우리 학생들이 민족적 자존심과 독립정신으로 누구의 지시도 없이 자발적으로 분연히 일어났던 날이다. 그런데 선배 학생들이 목숨 걸고 독립과 애국을 외쳤던 그 즈음에, 오늘을 살고 있는 학생들은 “우리는 수업 시간에 잠잘 권리가 있다!”고 부르짖은 것이다. 통탄할 노릇이다.
더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또 있다. 그런 설문 조사를 실시한 교직단체 소속교사 1132명 중 31.4%가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잠을 잘 권리가 있다’라는 질문에 동의를 표했다고 한다. 65.3%의 철없는 학생들을 보며 피식 쓴웃음을 짓던 얼굴이 순간 얼어붙는 대목이다.
그 31.4%에 해당하는 선생님들은 자신의 수업 시간에 잠을 자는 학생들을 깨우지 않는다는 말이 아닌가. 학생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은 참교육을 수행하는 교사가 아닐 테니까 말이다. 요즘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둘러싼 갈등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학생 인권만 강조한 결과, 교사의 정당한 지도마저 보장되지 않는 교실에서 대부분 선량한 학생들의 학습권과 교사의 교수권이 무시되고 있다.
수업시간에 자는 학생 내버려둬야 한다는 교사
이러한 혼란 속에서 교실은 이미 위험 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수업 중에 잠자는 학생이 늘어나는 것보다 더 위험한 것은, 그 학생들을 깨우지 않는 교사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학생인권조례 때문에 기세등등해진 학생들의 날선 눈빛 때문에 못 깨우는 것이 아니다. 깨우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학생의 정당한 권리를 보장하는 행위라는 생각에서다. 이는 매우 위험한 교권 포기 행위요 교단 붕괴를 가속화하는 자기 무덤 파기와 다르지 않다.
교사는 가르치는 사람이고 학생은 배우는 사람이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생각마저 허물어져가고 있는 것이다. 수업시간에 잠을 자도 되고, 잠자는 학생을 깨우지 않는 것이 그들의 권리를 보장해주는 일이라면, 학교는 이미 학교로서의 정체성과 그 기능을 상실했다고 봐야할 것이다. 가르치고 배우는 곳이 학교가 아닌가 말이다.
인권조례를 제정해야만 학생의 인권이 존중되는가? 그러한 생각이 빚어내는 교단의 황폐화를 지금 목도하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학생 인권이 우선되지 않으면 교육은 유보하거나 포기해야 하는가? 그것이 흑백논리나 양자선택으로 해결될 일인가?
다시 묻고 싶다. 나 자신을 포함하여 교단에 서 있는 모든 교사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교육자인가? 학생 인권 운동가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