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부가 국립대학의 구조조정을 위해 대학을 평가해 하위 15% 대학은 학생 정원을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교과부가 지난해 내놓은 국립대 법인화, 성과급적 연봉제 도입, 학장 직선제 폐지 등으로 요약되는 이른바 ‘선진화 방안’과 마찬가지로 이번에 발표한 구조 조정 방침 또한 대학사회에 소모적 갈등과 대립을 초래할 것임이 틀림없다.
국립대학 법인화는 국립대학을 국가기관에서 분리, 독립적인 법인으로 만들어 국립대학에 자율성을 부여함으로써 대학 경쟁력을 높인다는 명분으로 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법인화는 국립대를 관치공기업화하고 대학교육에 시장의 원리를 도입하는 것이기 때문에 국립대의 설치목적인 대학의 공공성 실현을 저해할 수 있다.
지난해 발표한 방안들도 현재 현실성이 없는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서울대 법인화법이 절차적 정당성을 무시한 날치기 처리로 국회를 통과한 후 법인화 준비를 하고 있지만 현재 학생들의 반발로 큰 진통을 겪고 있다. 경북대에서 실시된 법인화 찬반 교수총투표에서도 64%의 교수가 투표해 87%가 법인화에 반대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울대가 아닌 다른 국립대의 법인화는 현 정부에서 더 이상 추진될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성과급적 연봉제와 학장 직선제 폐지는 대통령령으로 시행에 들어갔다. 교수들의 보수를 연구와 교육의 성과에 기초해 산정한 연봉으로 결정하는 성과급적 연봉제는 양적으로 평가하기 어려운 연구와 교육의 성과를 무리하게 양적으로 상대 평가해 연봉에 큰 차등을 두는 보수체계이다.
연구와 교육의 경쟁력을 높인다는 명분으로 강행하고 있는 성과급적 연봉제는 오히려 연구와 교육의 질을 떨어뜨리고 대학공동체를 파괴할 우려가 높은 나쁜 정책이다. 더욱이 이 제도는 교원의 보수를 자격, 경력, 직무 난이도 등에 기초해 정한다는 교육공무원법상의 규정과 어긋나게 법률이 아닌 시행령으로 성과에 기초해 보수를 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위헌의 소지가 있다.
시행령으로 학장 직선을 폐지한 것도 상위법에 기초하지 않고 교원의 기본권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위헌의 소지가 있다. 학장을 직선으로 뽑을지 아닐지는 대학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시행령으로 학장 선출을 금지하고 심지어 추천까지 못하도록 한 것은 대학의 자율성과 교원의 기본권을 유린하는 위헌적 행위라 아니할 수 없다.
국립대학을 선진화한다고 정부가 내어놓은 정책들이 모두 일방적인 구조조정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여기에다 교과부는 또 다시 국립대학을 평가해 하위 15%에 대해서는 입학정원을 줄이겠다는 일방적 구조조정 방침을 발표했다. 과연 이러한 구조조정 방식이 국립대학을 발전시킬 수 있을지 극히 의문이다. 과거 거의 모든 교과부의 상명하달식 일방적 구조조정 정책이 엄청난 혼란과 비용을 수반한 채 실패로 끝나고 말았는데, 국립대학 선진화 방안도 결국 동일한 전철을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 국립대학에 필요한 것은 이러한 빗나간 구조조정이 아니라 획기적인 정부투자와 밑으로부터의 자율적 혁신이다. 획일적 기준에 의한 위로부터 강제되는 양적 구조조정이 아니라, 국립대학이 자기 대학에 고유한 학풍을 세우며 자율적인 기준을 정하고 혁신을 추진해 대학경쟁력을 높이는 질적 구조조정이 되어야 한다.
대학경쟁력은 무엇보다 대학에 대한 투자 수준에 의해 좌우된다. 2007년에 고등교육에 대한 정부지출의 GDP에 대한 비율이 OECD 국가 평균은 1.2%이었는데 한국은 0.6%에 불과했다. 또한 고등교육에 대한 정부지출과 민간지출의 비율은 OECD 국가 평균은 69.1% 대 30.9%이었는데 한국은 20.7% 대 79.3%이었다. 그리고 국공립대 학생 1인당 정부지출액은 OECD 국가 평균이 1만424달러이었는데 한국은 6682달러에 불과했다. 이는 1만2712달러인 미국의 절반 수준이고 7442달러인 멕시코보다도 적은 수준이다.
이렇게 빈약한 고등교육에 대한 정부지출 수준으로 어떻게 국립대학의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을 것인가? 지금 한국의 국립대학에 필요한 것은 구조조정이 아니라 정부투자 확대이다. 정부는 국립대학에 대해 현재 확보하고 있는 경쟁력을 파괴할 위험이 있는 잘못된 구조조정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경쟁력을 새로이 높일 수 있는 대대적인 투자를 해야 한다. 정부는 섣부른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할 것이 아니라 고등교육에 대한 정부지출 비율과 국공립대 학생 1인당 정부지출액을 앞으로 10년 이내에 OECD 국가 수준까지 높일 수 있는 로드맵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고등교육에 대한 국가의 책무를 완수하기 위해서는 국립대학 학생수를 줄일 것아 아니라 오히려 늘려야 한다. 국공립대학 학생 비율이 OECD 국가 평균 80%인데 한국은 18%에 불과하다. 국공립대 입학정원을 줄이겠다는 구조조정 방침은 철회되어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