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나마 얼마 안 되는 비중을 차지했던 전래동요를 포함한 국악이 개정되는 초등학교 음악교과서(즐거운 생활)에서 대폭 축소됐다고 한다. 참으로 개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교과서를 편찬하는 전문가들이 민요에 대해 갖고 있는 인식이 이정도 밖에 되지 않는 것이 한심하고 국문학을 전공하는 사람이 우리 음악의 중요성에 대해 중언부언해야만 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노래는 놀이의 도구
놀이공간에서는 계급과 계층을 넘어 놀이에 참여한 모든 구성원이 놀이 자체에 규정된 동일한 규칙의 지배를 받는 비일상적 공간이며 일탈의 공간이다. 때문에 놀이공간에서는 일상에서 표현할 수 없었던 내밀한 욕망과 갈등을 표출할 수 있는 것이다. 놀이 공간에서 노래는 이러한 욕구와 갈등을 진솔한 언어로 표현한다. 이런 점에서 놀이공간에서 불렸던 노래는 일상에서 표현할 수 없었던 깊은 내면을 공유하고, 나아가 공동체가 안고 있는 다양한 갈등을 해소함으로써 공동체의 삶을 건강하게 유지하게 하는 중요한 도구이다. 민요는 이런 점에서 우리 민족의 정서를 온전히 담고 있는 공동체 문화의 정수라 할 수 있다.
동요도 민요의 한 갈래이다. 아이들은 동요를 통해 기성세대가 고안한 갈등해소방식과 의사소통방식을 전수받고,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함께 더불어 살아나가는 지혜를 배우게 된다. 또한 동요는 성인들의 민요에 비해 지역성이 약하다. 그리고 동요는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와 어머니 아버지 세대가 부르고 즐긴 노래이다. 동일한 노래를 세대를 뛰어넘어 공유한다는 것은 정서와 미의식, 가치관 등을 공유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동요는 세대를 포함한 모든 장벽을 넘어 사회 구성원 전체를 통합하고 소통하게 하는 중요한 도구라 할 수 있다. 즉 동요는 교육의 중요한 목표인 민족 공동체의 삶과 정서, 미의식, 가치관 등을 담고 있는 우리문화의 보고라고 할 수 있다.
동요의 노랫말이 공동체적 삶의 지혜와 정서를 담고 있다면, 동요의 선율은 보다 근원적인 차원에서 우리 민족의 정서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국악을 듣고 노래를 부르는 과정에서 음성언어나 논리, 과학을 넘어 정서적이고 심미적인 차원에서 우리의 전통문화를 자연스럽게 체화하게 된다. 특히 음악에 대한 기호(嗜好)나 경향이 생성되기 전인 어린 시절에 듣거나 부르는 노래는 평생의 기억으로 남아 정서와 미적 감각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대한민국 짜작 짜 작작’
2002년 월드컵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간 대한민국의 응원 박수가 가능했던 것은 우리 모두의 유전자 속에 이 가락이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잘 맞추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우리도 평소에 흔히 듣지 못했던 이 박자를 대한민국 사람이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나 쉽게 구현한다. 음악은 이처럼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 내면에 깊숙이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다.
굳이 전통을 계승해야 한다는 거창한 선언이 아니더라도 전통음악은 우리 문화의 원천이자 문화 콘텐츠로써 매우 중요하다. 중국이 2008년 북경올림픽의 개막식과 폐막식을 통해 세계인을 놀라게 하며 보여 주었던 자부심은 그네들이 축적하고 전승해 온 전통예술에 기반한 것이며, 그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것이 음악이었다. 중국만큼은 바라지도 못하지만, 그나마 30%밖에 안 되던 국악의 비중을 10%까지 줄인 개정 교과서는 문화를 담당하는 주체 스스로 문화의 힘과 중요성을 부정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대단히 우려스러운 상황이라 할 수 있다.
누구도 우리가락이 중요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반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교과서에서 국악을 대폭 줄이거나 삭제한 현실적인 이유가 부르기도 힘들고 가르치기 때문이라고 한다. 배우기 힘든 것으로 치자면 외국어만 한 것이 없다. 하지만 우리는 영어를 배우기 위해 유소년기부터 많은 비용과 노력을 들인다. 어린 시절부터 생소한 언어인 영어를 접하는 것은 익숙함이 그만큼 교육적으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익숙해지면 친근해지고 친근해지면 자연스럽게 습득되는 것이다. 우리가락과 노래가 어려운 것은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음악교육에서 우리가락과 노래를 익숙하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지, 어렵다고 삭제하거나 줄이는 것은 교육의 중요한 목표를 음악인들 스스로 포기한 것이며 책임방기라 할 수 있다.
동요라고 하는 것이 대단한 기교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배우기 힘들고 가르치기 힘들다는 것은 국악 즉 우리문화를 가르치기 위해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겠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백보 양보해서 교사가 국악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가르치기 힘들다고 해도, 연수를 통해 가르칠 수 있는 능력을 함양하면 될 것이다. 이런 노력을 전혀 하지 않은 채 어렵다고 가르치기를 포기하는 것은 교육자로서의 기본적인 자세에 문제가 있다고밖에 할 수 없다. 이런 상황이 우리사회에서 음악교육을 전공하는 사람들의 인식수준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