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우리나라의 대학들은 학업 성적이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는 데 최우선 목표를 두었다. 내신이나 수능 성적은 물론 비교과 영역에서도 계량화된 수치로 한 줄을 세워 합격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이런 기계적이고 획일적인 방식이 교육적으로 얼마나 타당한 것인지는 검토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수치로 나타낼 수 없는 인간의 잠재력을 보다 효율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지, 신입생을 선발하는데 미세한 계수(計數)가 과연 합리적인 기준일지 등에 대한 의문을 갖게 한다.
교육은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는 인간의 정신적, 신체적 활동이다. 지나치게 결과에 집착하는 것은 교육의 본질에 맞지 않고 인격형성에도 장애가 된다. 이러한 우리나라의 입시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최근 몇몇 대학들이 의미 있는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것은 소위 ‘입학사정관(査定官)제’의 도입이다.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개념이지만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보편화된 제도라고 한다. 서울대는 이 제도를 도입하는데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그 운영의 노하우를 전수받기 위해 미국 동부 코넬대의 도리스 데이비스 입학처장과 연구 용역 계약을 맺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제도가 성공적으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되어야 하는 과제가 있다.
첫째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는 ‘입학사정관제’의 모형이 개발되고 운영되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옷이라도 본인의 몸에 맞지 않으면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의 대학입시 문화는 미국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대학을 보내고자 하는(특히 명문대학) 부모의 열망이 각별하다. 대학입시의 성공 여부가 부모의 업적으로 치부되고, 대학을 나와야 사회적으로 대접받는 나라가 되었다.
이런 현실에서 이 제도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우선 대학 입시에 관한 국민적 정서가 달라져야 한다. 소수점을 가지고 합부(合否)를 따지는 판에 합리적이고 공정하지 못한 제도는 학부모들로부터 외면을 받는다. 사정관들은 교과 성적 이외에 학생의 잠재력과 창의력은 물론 특기·리더십·봉사심·공동체 의식 등을 평가해야 한다. 그러려면 누가 봐도 합목적적이고 진정성이 내포된 기준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요즘 미국에서 입학사정의 기준으로 SAT(대학수능시험)의 점수를 반영하는 대학들이 점점 줄고 있다는 사실은 이 제도의 교육적 효용성을 뒷받침해 주는 근거가 되고 있다.
둘째는 성적 위주로 인재를 판단하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 물론 학생이라면 교육과정에 의한 학업 성취도가 좋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성적지상주의에 빠져 있다. 그러다 보니 어떤 방식이든 성적의 우열을 가리는데 익숙하다. 그러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갈 나이는 한 인간으로서 성숙이 완성되는 단계는 아니다. 얼마든지 자기계발의 여지가 남아 있고 변화의 가능성이 있는 시기이다. 기존의 정형화된 제도만으로는 학생의 잠재적인 능력을 파악하기 어렵다. 빙산의 위용은 바닷물 속에 묻혀 있는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결정되는 것이다.
셋째는 대학 입시와 고교 교육과정과의 연계성 문제이다. 이는 고교에서 공부하는 교과목이 대학입시에서 계열별, 학과별로 충실히 반영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학생들 입장에서 점수 따기 쉬운 과목이나 영역만을 지정하면 고교에서 균형 잡힌 학습이 불가능하다. 그러면 선택형 교육과정, 독서, 논술, 토론 등의 자기 주도적 학습이 불가능하고 공교육의 정상화가 이루어지기 어렵다. 최근 대학생들의 기초 학력이 부족해 별도 과외를 받아야 강의를 들을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이는 고교에서 점수만을 위한 편중 학습이 이루어진 결과이다. 이런 문제점은 고교와 대학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해결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입학사정관제에 의한 전형이 일반화되면 대학입시에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그간 우리의 대입제도는 3년을 주기로 수십 차례 변모되어 왔다. 하지만 총점 위주의 석차 순에 의한 사정방식은 개선하지 못했다. 이에 반해 입학사정관제는 다양한 인성과 함께 교과 성적에 나타나지 않는 부분까지 반영할 수 있는 좋은 제도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부모의 경제적 능력이나 지역적, 문화적인 실조(失調)로 제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던 학생들에게도 의미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이제는 대학교육협의회를 중심으로 각 대학들이 이 제도의 취지를 살리면서 현실에 맞게 운영될 수 있도록 연구하고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성적도 우수하지만 꿈과 의지를 지닌 청소년들이 대학에 많이 진학하도록 이 제도의 정착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