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사회의 구성원은 공공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힘쓰는 한편으로 시민적 권리를 찾으려는 노력도 절대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자신이 누려야 할 권리를 포기하거나 섣불리 양도하는 행위는 어리석은 짓이 될 것이다.
그래서 권리와 의무는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두 가지의 중요한 조건이다. 시민 개개인은 사회적 책임을 도외시한 채 자기 이익만을 배타적으로 추구하려 해서는 안 되거니와 반대로 당연히 누려야 할 몫을 챙기지 못한 채 굴종적인 자세로 삶을 영위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민주사회의 법이 의무와 함께 권리에 관한 규정을 소상하게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할 것이다.
권리와 의무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시민사회의 특성과 그 발전에 관하여 가르치는 중요한 교육기관이 바로 학교다.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시민교육은 확고한 이론적 기반과 상식에 기초한 보편성을 절대적인 전제조건으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에서 교육자들이 진술하는 교육논리는 매우 신중하고 또 조심스럽게 표출되어야 하는 것이다. 설득력 있는 사회철학에 기반하지 않고 보편성을 결여한 채 특정 이익집단의 입장을 옹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억지 주장을 펴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최근 일부에서 ‘연가권’을 주장한 사례가 있다. “공무원은 연간 20일 내외의 연가를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고 교원들도 이에 준한 권리를 누릴 수 있다”는 주장이다. 당연해 보이는 주장이지만 결코 이러한 논리로 연가권을 말해서는 안 될 것으로 생각한다. 특히 교원은 다른 공무원과는 달리 적극적으로 연가권을 주장하기 쉽지 않은 입장이다.
연간 2개월이 훨씬 넘는 방학기간은 연가와는 관계없는 기간이다. 방학은 다른 어떤 직업인도 누릴 수 없는 교원들만의 특권이요 교직의 매력 포인트임을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그러나 성장세대를 가르치는 특수한 신분이기 때문에 학기 중에는 매우 부자유스러운 직업이 또한 교직이다. 교직을 전문직으로 인식하는 긍지 있는 교원들이라면 학기 중의 연가를 결코 자유로이 신청할 수 없을 것이다. 전문직은 직업상의 권리에 앞서 그 직업이 갖는 사회적 책무성에 충실해야 할 의무가 전제되기 때문이다.
교원들에게 있어 연가는 결코 아무 때나 누려도 되는 권리가 아니라 지극히 불가피한 경우, 이를테면 몸이 아프거나 가정에 상을 당한 경우 등 부득이한 때에 사용하는 비상조치로 여겨야 옳다. 병가나 특별휴가도 최소한으로 억제하면서 방학기간을 연가로 활용하려는 넉넉하고 책임 있는 자세를 취해야 옳을 것으로 생각한다.
사유가 무엇이든 집단으로 수업을 거부한 채 연가를 강행하고 이를 연가권 논리로 합리화하려 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혹자는 수업을 교체했기 때문에 결손은 없었다고 말할지 모르나 수업시간의 교체 그 자체가 적지 않은 결손임을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나는 많은 직업 중에서 교직이야말로 가장 부자유스러운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수업은 학생들과, 그리고 학부모들과의 약속이다. 수업시간이 갑자기 바뀌는 것은 약속을 어기는 일이 되고 만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약속을 못 지키는 일이 전혀 없을 수는 없지만 약속을 어길 권리를 내세워 이를 변명해서는 안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