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왁자지껄하던 교실이 한바탕 파도가 지나간 듯 잔잔해진 뒤, 잠시 눈을 돌려 복도 쪽을 바라보니 부끄러운 듯 민희가 서있는 것이 아닌가.
민희는 지난 1학년 때 보살펴줬던 아이다. 민희는 부모님이 안 계시고 할머니와 초등학교 5학년에 다니는 언니와 함께 살고 있다. 할머니가 파출부 일을 다니시는데 그나마 연세가 많으시고 자주 편찮으셔서 일을 못 나가시는 날이 많다고 했다.
"웬일이니, 민희야? 어서 들어와."
나는 민희의 손을 잡고 곁에 앉혔다.
"선생님이 보고 싶어서요."
어느 날 민희의 그림일기장에서 “선생님이 주신 예쁜 옷을 받고 잠이 오지 않아 만져보고 입어보고 몇 번을 하다 너무 아까워서 머리 위에 올려놓고 잠을 잤다. 선생님이 우리 엄마였으면 좋겠다”는 글을 보게 되었다. "선생님 사랑해요" 하며 하트모양과 함께 예쁘게 그려진 그림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민희야, 할머니 건강은 좀 어떠시니? 언니도 잘 지내지? 일기도 잘 쓰고 있니?"
이것저것 얘기 나누다가 꼭 안아주었더니 민희는 내 품에서 눈물을 흘렸다. 나도 눈물이 흘러나왔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예의 바르고 착하고 곧게 자라는 민희가 대견스러우면서도 못내 미안하기도 했다. 한참 뒤에 민희의 눈물을 닦아주고 빵과 공책을 챙겨주면서 다음에 또 놀러오라고 했다.
다음날 민희 할머니가 학교로 찾아오셨다. “그저 우리 민희한테 너무 고맙게 잘해주셔서 미안하고 염치가 없습니다. 맛은 없지만 김치 조금 담아왔는데….”
할머니는 "살기 어려워 사람 노릇 못하고 있는데 우리 애들이 무슨 복이 많아 선생님을 잘 만났다"면서 내 손을 꼬옥 잡아주셨다. 민희가 ‘선생님이 우리 엄마였으면 좋겠다’는 말을 가끔 하는데 엄마 정이 그리워서 선생님을 무척 좋아하는 것 같다고 하시면서 목이 메여 우시는 할머니 앞에서 나 역시 뜨거운 눈물만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