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25여 년의 교직 생활을 하는 동안 우리의 교육 현장인 학교는 엄청난 변화와 발전을 거듭해 왔다. 교수-학습의 질적 향상은 말할 것도 없고, 최신 학습 기자재의 보급이나 교실의 냉난방 시설 등 불과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것들이 이제 일반화 되고 있다.
과거에는 중간고사나 기말고사가 가까워지면 원지를 긁는, 소위 ‘까끌판’을 확보하기 위해 새벽에 출근했던 일도 있었고, 학기말에는 생활기록부를 펜으로 기록하다가 잉크를 엎지르는 바람에 몇 장을 다시 작성한 후 다른 학교로 전출한 교사의 도장을 받기 위해 퇴근 시간에 맞추어 시외버스 주차장에서 기다린 적도 있었다. 이제 이런 이야기들은 술자리에서나 가끔 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세상은 이렇게 변했다. 그런데도 학교에서는 아직도 광복 이후 60년의 기나긴 세월 동안 유일하게 변하지 않은 게 있다. 그게 바로 교감의 자리다.
일부 학교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초·중등학교 교감 자리는 교무실 한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짐작컨대 이것은 광복 전부터 교사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 위해서 교감(광복 전에는 부교장이라 했다고 함)을 교무실 중앙에 앉혀 놓은 게 아닌가 한다. 그러나 지금은 교사를 감시해야 할 이유도 없고, 감시당하면서 살 교사도 없다. 다만 업무를 수행하는데 서로 의논하고 협조해야 할 일이 있을 뿐이다. 세상이 이렇게 바뀌었는데도 교감의 자리는 그대로다.
오늘날 교감은 교무실 중앙에 앉아 있다. 몸이 피곤해도 바로 앉아 있어야 하고, 사적인 전화가 걸려 와도 어디 마음 놓고 전화 한 번 받을 수가 없다. 잡상인이 들어오면 제일 먼저 물건 하나 팔아달라고 떼를 쓰기 좋은 곳이 교감의 자리다.
행정실장실이 있는 학교는 많이 있어도 교감실이 있는 학교는 거의 없다. 지금까지 자리를 마련해줄 생각을 한 교장도 거의 없었고, 자리를 마련해 달라고 말하는 교감도 거의 없었다. 다만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으로 알며 60년의 세월이 흘렀다.
거창하게 방을 따로 만들어 달라는 얘기가 아니다. 교감의 지위가 높아서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달라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다만 교무실의 한쪽 구석에 나지막한 가리개라도 기역자로 쳐놓고 업무를 볼 수 있게 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하루 종일 교사들의 시선을 받으며 살아야 하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여유를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