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장애인의 날에 열린 음악회에서 3명의 연주자와 함께 무대에 오른 적이 있다. 한 장애우 단체에 소속된 피아니스트와 소프라노, 색소폰 연주자였다 . 그날 무대 뒤에서 피아노 연주모습을 바라보다가 잠시 놀랐다. 악보가 놓여 있어야 할 자리에 아무것도 없었다. 피아니스트는 그 많은 곡을 모두 외워 연주하고 있었다. 건반 위로 흐르는 선율을 들으며 깊은 감동을 받아 오래기억되고 있었다.
최근 그들이 한 도시의 지역방송교향악단과 협연한다는 소식을 듣고 공연장을 찾았다. 공연 시작 한 시간 전부터 관객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음악을 기다리는 설렘이 공연장 입구부터 가득했다. 막이 오르고, 방송으로만 보던 지휘자를 눈앞에서 만났다. 지휘자의 곡 해설은 음악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 주었다. 소프라노의 노래와 색소폰의 음색, 피아노의 선율이 오케스트라와 어우러질 때마다 객석의 감동도 깊어졌다.
피아니스트는 약 27분 동안 모차르트의 「피아노협주곡 제21번 다장조」를 암보로 연주했다. 수많은 음과 쉼, 오케스트라와 호흡을 맞추는 순간들이 그의 손끝에서 이어졌다. 관객들은 그 선율에 깊이 빠져들었다. 무대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처음에는 시각장애를 안고 그 긴 곡을 연주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쏠렸다. 선율에 그가 지나왔을 어려움을 겹쳐 들으며 더욱 감동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러나 음악이 흐르는 동안 조금씩 생각이 달라졌다. 내가 듣고 있는 것은 오랜 연습과 깊은 해석으로 완성한 한 음악가의 연주였다. 그의 음악을 온전히 듣기 전에 장애부터 떠올린 내 시선도 돌아보게 되었다.
연주가 끝나자 뜨거운 박수와 거듭된 앙코르 요청에 그는 같은 협주곡의 제2악장 ‘안단테’를 다시 들려주었다. 잔잔한 선율이 흐르자, 별빛이 내려앉은 조용한 밤에 들어선 듯했다.
그 음악을 듣는 동안 나는 별빛이 흐르는 조용한 밤에 들어선 듯했다. 부드럽게 이어지는 음들이 마음속 분주함을 가라앉혔다. 이 시간이 조금 더 오래 이어지기를 바라며 음악에 깊이 잠겼다.
어느 순간 무대의 불빛이 하나둘 꺼졌다. 객석과 무대의 경계가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공연장은 하나의 우주처럼 느껴졌다. 눈앞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음악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흘렀다. 칠흑 같은 밤하늘을 건너오는 별빛처럼, 선율이 더욱 또렷하게 다가왔다.
그때 문득 생각했다. 조금 전까지 무대를 밝히던 빛은 누구에게 필요했던 것일까. 적어도 그 순간의 나는 빛이 있어야 연주자의 얼굴과 손끝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어둠 속에서도 자신의 음악을 이어갔다.
나는 눈으로 볼 수 있다는 익숙함을 능력의 기준으로 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조건이 다른 누군가에게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그날 꺼진 무대의 불빛은 오히려 내 안의 편견을 환하게 비추었다.
오랫동안 학생들에게는 저마다의 가능성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해 왔다. 하지만 말로 알고 있는 것과 삶에서 깨닫는 것 사이에는 거리가 있었다. 같은 기준으로 학생을 바라볼 때, 그 기준 밖에서 자라고 있는 재능을 놓칠 수도 있다. 한 사람이 무엇을 어려워하는지 살피는 만큼, 무엇을 잘하고 어떤 방식으로 세상과 소통하는지도 깊이 보아야 한다.
공연이 끝난 뒤 연주자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4년 전 함께 무대에 섰던 인연을 떠올리며 악수하고 목소리로 반가움을 전했다. 부모님들과도 공연의 기쁨을 나누었다. 무대 위에서 전해진 감동이 그 만남 속에서 따뜻하게 이어졌다.
4년 전에는 악보가 없는 피아노 앞에서 놀랐다. 이번에는 불빛이 사라진 무대에서 나의 시선을 돌아보았다. 음악가는 자신의 연주로 관객을 만났고, 나는 그 음악을 통해 또 하나의 배움을 얻었다. 그날 밤, 무대의 빛은 꺼졌지만 내 마음에는 오래 남을 빛 하나가 켜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