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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혐오 문화를 바라보는 삐딱한 시선

 

“가야지, 가야지, 스타벅스 가야지.”
○○고 야구부 학생들이 야구대회 중 연출한 표현이 우리 사회를 뜨거운 논쟁의 장으로 만들고 있다. 맥락을 모르는 훗날 사람들이 이 문구를 본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미래의 그들에게 이 주술 같은 표현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 욕도 없고 조롱도 없고 비난도 없다. 하지만 그 맥락을 이해하며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조롱의 언어, 혐오의 표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사회는 가차 없이 많은 질문을 쏟아낸다. ‘탱크 데이’ 같은 표현이 현재 우리에게 조롱과 혐오로 받아들여지는 맥락은 무엇인가? 우리의 청소년들이 이렇게 조롱과 혐오 문화에 빠져드는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더 근본적으로 혐오 또는 혐오 문화의 의미는 무엇이며 그 뿌리는 어디에 있는가?


이런 질문에 답하는 논의들은 대부분 청소년 혐오 문화가 발생하는 배경과 원인,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각종 방안 제시 등에 집중되어 있다. 그 고민과 노력을 응원하면서도 실제 학교 현장에서 느끼는 현장성의 측면에서 삐딱한 질문을 던져본다. 과연 청소년 혐오 문화는 학교와 학생만의 책임인가?

 

청소년 혐오 문화는 학교와 학생만의 책임인가
○○고 야구부 사태를 계기로 청소년들의 혐오 문화가 확산되는 원인에 대한 다양한 접근들이 제시되고 있다. 그 내용들은 다음 몇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온라인상의 밈(Meme) 문화에서 나타나는 맥락 없는 소비 유행이다. 지금 청소년들은 유튜브·숏폼·SNS·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수많은 밈을 접한다. 이 과정에서 성별이나 장애인 비하, 역사적 사건의 희화화, 지역을 조롱하는 표현 등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 채 ‘농담’, ‘드립’, ‘웃긴 말’ 정도로 소비하고 있다. 편견과 조롱을 ‘이 정도는 다들 하는 농담’ 정도로 생각하여 일상적인 오락으로 소비한다. 온라인상의 밈(Meme)에서는 맥락보다 ‘금기 깨기’와 ‘유머’가 청소년들의 왕이다.

 

둘째, 또래 집단에서 살아남기 위한 집단심리와 집단행동의 추종이다. 청소년기는 또래의 인정이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친구들과의 생활에서 자신의 주관보다는 집단적인 분위기에 이끌려가고, 조롱과 혐오 표현에 대해서도 제지하기보다는 동조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살아남기 위해서다. 사회심리학에서 말하는 소위 동조(conformity)나 집단사고(groupthink)의 모습이다. 특히 운동 시합의 응원처럼 흥분이 높은 상황에서는 집단 분위기가 행동을 더 크게 좌우하기도 한다.
  
셋째, 갈등과 혐오, 생존 경쟁의 사회문화가 학교와 청소년에게 전이되었다. 이것은 청소년 혐오 문화의 원인이 학교와 청소년 당사자의 문제로만 환원하기 어렵다는 견해다. 학교는 독립된 공간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된 장소이다. 김현경(<사람, 장소, 환대>, 2015)이 “마치 어른들이 입 밖에 내고 싶어 하지 않는 사회의 진실을 아이들이 연극의 형식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고 표현한 것처럼, 교실은 우리 사회의 복사판이다. 청소년 혐오 문화의 기원은 우리 사회 전체의 갈등과 혐오다.


넷째,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역사교육이나 민주시민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앞의 세 가지 원인이 혐오 문화의 출발점에 대한 지적이었다면, 이것은 혐오 문화의 확산을 끊어내지 못하는 학교교육의 비효율성에 대한 지적이다. 학교에서 역사와 민주주의를 배우지만 왜 특정 표현이 상처가 되는지, 민주사회에서는 어떻게 서로를 존중해야 하는지 제대로 교육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제대로 된 민주시민교육은 민주주의를 설명하는 교육이 아니라 학교와 교실에서 민주주의를 살아보는 생활교육이어야 한다.

 

위의 분석을 구분해 보면, 첫 번째와 두 번째의 분석은 청소년 문화의 자체 특성에 대한 지적이고, 세 번째 분석은 청소년 문제를 넘어선 사회 전체의 문제라는 구조적인 특성에 대한 지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네 번째 분석은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학교교육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청소년 혐오 문화, 왜 확산되는가  
청소년 혐오 문화가 확산되는 원인은 나름대로 근거와 논리를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속 시원하고 후련한 느낌이 들지 못하고 답답함이 남아 있는 이유는 왜일까? 세 가지를 반성 내지는 삐딱한 시선으로 들여다본다.

 

첫째, 청소년의 혐오 문화를 지나치게 청소년 문제 중심으로 대상화하여 본다. 그러다 보니 우리 사회와 어른들은 그 책임에서 살짝 비켜나는 모습이 곳곳에서 보인다. 물론 청소년 혐오 문화의 확산이니까 현재 청소년의 모습에 천착하여 분석하는 것은 당연한 순서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위의 세 번째 분석에도 언급했듯이, 포용보다는 배타의 문화가 지배하는 우리 사회와 어른들의 행태가 청소년에게 그대로 전이되고 있음도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와 어른들의 책임에 대한 언급은 너무 포괄적이고, 추상적이며, 립서비스에 가깝다. 우리 사회의 혐오와 배타 문화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처절한 반성이 보이지 않는다. “요즘 애들은 왜 이래?”라는 식으로 청소년에 대한 평가만 난무할 뿐, 그런 문화를 전수해 준 어른으로서 자신에 대한 되돌아봄은 보이지 않는다. 학생들에 대한 평가자로서의 어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피평가자로 세울 수 있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


둘째, 청소년 혐오 문화에 대한 일부 분석이나 지적이 정치화 또는 정략화되고 있다. ‘10대 학생들이 극우세력 일베발 혐오에 물들어가고 있다’는 한 언론의 기사 제목을 보면서 착잡한 마음이었다. 이 제목을 보면서 나에게 읽힌 것은 ‘혐오’가 아니라 ‘극우세력’과 ‘일베’였다. 이미 광범위하게 퍼진 문화, 그리고 다양한 배경을 가지고 있는 혐오 문화를 특정 커뮤니티가 촉발한 소수 일탈의 문제로 취급하면서 청소년 혐오 문제가 아닌 정치적·정략적·진영논리적 문법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청소년 혐오 문화에 대한 접근은 낙인이 아니라 진단이어야 한다. 의사가 환자를 진단할 때 어떤 정치적 입장으로 바라보지는 않는다. 어떤 편견과 진영논리 없이 환자의 아픈 상태를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한다. 본인들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청소년 혐오 문화에 대한 토론장에 가보면 다양한 진단들이 실제로는 낙인인 경우가 많다. 낙인은 위험하다. 낙인은 없던 진영을 만들어주고, 그 진영 간의 결속을 강화하며,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에 관하여 대화의 문을 닫는다. 혐오를 비난하기 이전에 혐오를 낙인으로 접근하는 태도부터 비판받아야 한다.

 

셋째, 청소년 혐오 문화 해결의 책무를 대부분 학교교육에 떠넘기고 있다. 학교의 부실한 역사교육이나 민주시민교육이 청소년들의 혐오 문화 확산을 막지 못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은 당연히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기에 학교에서도 바른 역사교육, 생활 속의 민주시민교육을 강조하고 있으며 다양한 방안들이 논의되고 있다. 특히 민주시민교육이 ‘무엇을 아는가?’를 넘어, 학생들이 서로를 존중하는 역할을 배우고 민주주의를 관계 속에서 연습하며 ‘어떻게 살아가야하는가?’ 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갖고 있다.

 

그런데 학교의 입장에서 볼 때는 왠지 모든 것을 떠안는 느낌이다. 우리 사회의 큰 이슈가 되고 있는 청소년 혐오 문화 해결을 위해서 전체 사회가 나름대로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데, 왠지 학교만 움직이고 있는 느낌이다. ‘한 아이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고 하면서 학교와 함께 움직여주는 마을은 보이지 않는다. 교육을 고민하는 글 중에서 ‘학교는 하류다’, ‘학교는 하수종말처리장이다’라는 내용을 보았다. 좀 지나친 표현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지금 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각종 현실을 보면 부정하기 어렵다. 학교에서는 책무성을 가지고 청소년 혐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는데, 혐오의 근본 출발지인 상류에는 별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혐오의 해결을 학교에만 맡길 것인가
혐오 표현은 나쁘다고 모두 말한다. 그렇게 학생들에게도 가르친다. 그러나 혐오 표현이 나쁘다는 사회적 합의는 빈껍데기에 불과하다. 그러한 합의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와 청소년의 혐오 문화는 줄어들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혐오 문화가 줄어들기는커녕 증가하고 있을까?


아주 단순화하여 결론 내리면 두 가지다. 하나는, 혐오의 의미 자체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신이 혐오 표현을 하면서도 그것이 혐오 행위인지를 잘 모른다. 청소년들의 혐오 문화가 대부분 이쪽이다. 다른 하나는 의도적으로 혐오 행위를 하는 경우이다. 정치적으로, 전략적으로, 이해관계 때문에 알면서도 모르는 척 혐오 행위를 한다. 어른들의 혐오가 주로 이쪽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런 결론이 맞는다면, 청소년 혐오 문화 해결은 혐오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이해시키는 인식 개선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법과 제도, 처벌로부터 접근해서는 안 된다. ○○고 야구부 학생들에게 스포츠공정위원회가 빛의 속도로 6개월 출전 정지의 징계를 내리는 것을 보면서 착잡했다. 응분의 처벌은 필요하지만, 이번에도 해결의 수순은 처벌부터이구나! 인식·상식·규범은 어디에 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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