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월 ○○고 야구부 더그아웃에서 흘러나온 목소리 하나에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온라인에서 놀이처럼 떠돌던 혐오가 공교육 현장에서 확인된 순간이었다. 이는 단지 특정 학교, 특정 학생의 일탈이 아니다. 교실 깊숙이 스며든 혐오 문화의 한 단면이 수면 위로 드러난 것에 가깝다. 작가 한강은 이 사건을 두고, “혐오를 ‘문제’로 인식하는 데서부터 희망이 시작된다”라고 말했다. 혐오 표현이 주목받는 지금이 해결책을 만들 골든타임이다.
교실 안 현실, 놀이가 된 혐오
오늘의 학생들은 이른바 ‘포노사피엔스(Phono Sapiens)’ 세대다. 이들에게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는 흐릿하다. 커뮤니티와 게임·SNS에서 접한 극단적 표현을 무심코 따라 하고, 여성 혐오나 세대 혐오 발언을 농담처럼 즐긴다. 교실에서 목격되는 혐오는 단순한 언어유희가 아니다. 학생들은 ‘○○충’, ‘틀딱’ 같은 표현을 아무렇지 않게 쓴 지 오래다. 처음엔 온라인 은어였지만 이제는 교실의 일상어가 되었고, 그사이 혐오의 폭력성은 옅어져 ‘그냥 재미로’ 던지는 말장난으로 인식된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이 놀이가 스스로를 강화한다는 점이다. 지역과 성별, 역사적 피해를 겨냥한 새 은어와 밈이 끊임없이 만들어진다. 또래 사이에서 그것을 함께 웃는 일은 ‘쿨하고 재미있는’ 사람으로, “그건 혐오야”라고 말하는 학생은 ‘진지충’으로 몰리게 된다. 문제를 제기한 학생이 오히려 비용을 치르는 구조는 상처받은 학생을 침묵시키고, ‘방어자’의 등장을 가로막으며 혐오를 정상화한다(한겨레, 2026).
혐오의 양상은 구체적이다. 계엄 사태 이후 극우적 발언이 청소년 사이로 번졌고, 특정 지역이나 고인을 겨냥한 조롱이 유행처럼 소비된다. 의견이 맞지 않으면 “페미냐”, “장애인이냐”는 말이 거리낌 없이 튀어나온다. 통계도 이를 뒷받침한다. 청소년 68.3%가 혐오 표현을 경험했고(국가인권위원회, 2019), 23.9%는 직접 사용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사용 이유는 혐오 내용에 동의해서(60.9%), 남들도 써서(57.5%), 재미나 농담으로(53.9%) 나타났다. 혐오와 차별을 경험한 공간은 온라인(82.9%)과 학교(57%)가 가장 많았다.
교사들은 학생 혐오 표현의 배경으로 온라인 커뮤니티의 영향(30%)과 또래의 사용(27%)을 첫손에 꼽았다. 이는 혐오가 굳은 이념이 아니라 사회적 학습과 모방의 산물이라는 뜻이며, 개별 처벌보다 교육적 접근과 환경 개선이 더 효과적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교사의 68%가 5~6년 전보다 혐오 표현을 더 자주 접했고, 가장 큰 원인으로 유튜브·쇼츠·릴스·틱톡 등 디지털 미디어 환경의 변화를 꼽았다.
여기서 한 가지는 분명히 해 두어야 한다. 반대와 혐오는 다르다. 반대는 민주주의의 일부이지만, 혐오는 민주주의를 무너뜨린다. 반대가 ‘주장’이라면, 혐오는 ‘존재의 부정’이기 때문이다.
위험한 사회화 기관이 된 온라인 플랫폼
포노사피엔스 세대에게 스마트폰은 도구가 아니라 세계관을 빚는 공간이다. 학생들이 가장 오래 머물며 세상을 배우는 곳은 이제 학교나 가정이 아니라 온라인 플랫폼이다. 유튜브·틱톡·인스타그램·디스코드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누가 내 편이고 적인지를 가르치는 ‘사회화 기관’으로 작동한다.
문제는 이 플랫폼이 공공성을 고려하지 않는, 철저히 이윤을 좇는 사적 영역이라는 점이다. 알고리즘은 이용자를 오래 붙잡아 두기 위해 더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콘텐츠를 앞세운다. 혐오 언어를 만들어 유통하는 이들은 논리가 아니라 혐오를 팔고, 팩트가 아니라 도파민을 제공한다. 호기심에 클릭한 영상 하나가 비슷하거나 더 센 영상으로 이어지고, 학생은 어느새 ‘필터 버블’에 갇힌다. 게임 영상을 보다가 특정 집단을 비하하는 콘텐츠, 역사를 왜곡하는 영상으로 흘러가는 식이다.
짧은 영상은 복잡한 문제를 단순화하고 감정을 앞세워, 학생이 긴 글을 읽고 스스로 판단할 기회를 빼앗는다. 학생은 성숙한 시민이기 이전에, 가장 취약한 정보 소비자다.
학생 개인의 각성이나 교사의 지도만으로 이 흐름을 되돌리기는 어렵다. 플랫폼은 아무런 교육적 책임도 지지 않은 채 학생의 가치관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고, ‘표현의 자유’를 방패 삼아 책임을 피한다. 이제는 플랫폼 자체에 책임을 묻는 정책적 개입이 필요하다. 이 지점에서 유럽연합의 경험이 중요한 참조점이 된다.
교사들의 딜레마, 대응할 의지는 있지만…
교실엔 혐오가 넘치지만, 교사의 대응은 쉽지 않다. 전국 교사 200명 조사에서 95% 이상이 혐오 표현을 심각한 문제로 봤다. 그러나 ‘일상적으로 대응한다’는 응답은 53%, ‘항상 대응한다’는 14%에 그쳤다(한국다양성연구소, 2025). 교사들은 ‘어떻게 개입해야 하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건 아닐까’ 망설이다가 방관자로 남는다.
대응을 가로막는 첫 번째 벽은 역량이다. 구체적인 개입 방법을 모르고, 수업 흐름이 끊기는 부담과 학교 차원의 지침 부재도 겹친다. 그러나 교사를 가장 위축시키는 것은 민원과 보복의 두려움이다. 강하게 지도하거나 보호자에게 연락했다가 아동학대 신고로 돌아올 수 있다는 불안이 크다. 혐오를 지적한 교사는 ‘촌스러운 꼰대질’로 치부되기도 한다. 특히 여성 교사에게 부담이 크며, 성소수자·여성 관련 발언을 가장 다루기 어렵다고 답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가장 뼈아픈 대목은 안전망이다. 악성 민원으로부터 보호받고 있다고 느끼는 교사는 단 7%뿐이었다. 대응할 뜻은 있어도 제도가 받쳐 주지 않으니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혐오 대응을 교사 개인의 용기에만 맡겨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학생들이 말하는 혐오, 당사자가 내놓은 예방법
지난 8월 6일, 교육부는 전국 중·고등학교 학생 대표 50여 명을 충남 천안에 모아 ‘혐오·차별 표현 예방을 위한 실천 방안’을 토의하는 학생회 공동 연수를 처음으로 열었다. 이들이 건넨 예방법은 구체적이고 교육적이었다. 혐오 표현을 올바른 말로 고쳐 쓰는 ‘혐오 표현 오답 노트’, 혐오에 맞서는 ‘대응 표현어’ 만들기, 지역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국어 시간의 사투리(지역어) 수행평가, 5·18 민주화운동을 다루는 참여형 퀴즈, 학생이 직접 이끄는 미디어 문해력 토론이 제안되었다. 제도를 바꾸자는 목소리도 나왔다. 학생회 안에 ‘혐오 예방 부서’를 두고, ‘혐오방지위원회’를 학생회처럼 교칙에 명문화하며, 여러 지역 학생이 만나는 합동 축제를 열자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 제안들은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그대로 담고 있다. 오답 노트와 대응 표현어는 대체 언어를 찾는 교실 대응이고, 사투리 수행평가와 합동 축제는 지역과 배경의 차이를 접하며 공감의 폭을 넓히는 교육이며, 혐오방지위원회는 대응을 학교의 공식 규범으로 끌어올리는 일이다. 교육부는 이날 연수를 시작으로 학교-시·도교육청-전국 단위로 이어지는 학생참여포럼을 구성해 그 논의 결과를 교육정책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학생을 계도의 대상이 아니라 해법의 주체로 세우는 이 전환이야말로, 혐오 대응이 나아갈 방향을 분명히 보여준다.
교육적 대응, 세 개의 축
대응은 번역에서 시작한다. 혐오로 오염된 아이들의 언어가 어디서 왔고 무엇을 겨누는지 읽어 내야 비로소 가르칠 수 있다. 그 바탕 위에서 다음 세 개의 축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
● 공감의 반경을 넓히는 교육
혐오에 맞서는 가장 강한 힘은 학생들의 ‘공감의 반경’을 넓히는 데 있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공감하는 능력이 아니라, 누구까지 공감할 것인가의 문제다. 그러니 교육의 과제는 공감 능력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그 반경을 넓히는 것이다.
이는 훈계로 되지 않는다. ‘접촉하고 교류하며 더 넓게 다정해지기’는 사회심리학이 검증한 편견 해소 전략이다. 노인복지관과 장애인 시설을 찾아가고, 다문화 가정 친구와 문화를 나누는 경험 속에서 학생은 ‘틀딱’이나 ‘다문화’라는 추상적 딱지가 아니라 이름과 이야기를 지닌 한 사람을 만난다. 문학과 영화, 다큐멘터리도 타인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하는 통로다. 사람을 진짜로 알게 되면 더는 쉽게 미워할 수 없듯, 혐오는 대개 무지와 거리에서 자라기 때문이다.
● 책임을 분산하지 않는 다층적 대응
교사 한 사람이 혐오 대응의 전부가 되어선 안 된다. 교실의 개입은 출발점일 뿐, 그 효과는 학교·교육청·교육부가 어떤 책임 구조를 짜느냐에 달려 있다. 교실에서 교사가 먼저 할 일은 발언을 억누르는 게 아니라, 그 말이 무엇을 침해했는지 분명히 드러내는 것이다. “이건 개인 의견이 아니라 특정 정체성을 이유로 존엄을 깎아내리는 말이고, 우리 교실은 그런 발언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 개입은 중립을 깨는 일이 아니라, 교실의 공적 규범을 지키는 직무다.
학교는 혐오·차별 발언을 교사 개인의 판단이 아니라 공식 기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혐오 발언은 개인 의견이 아니라 학교가 지켜야 할 존엄의 문제이며, 대응의 목적은 처벌이 아니라 인식의 전환이라는 원칙을 명시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관련 민원은 개별 교사가 아니라 학교 이름으로 접수·대응한다’는 한 문장이 교실의 공기를 바꾼다. 그때 교사는 혼자가 아니라 제도의 울타리 안에서 개입할 수 있다. 학교 공동 대응 협의체는 사안을 ‘문제 학생’의 일탈로 처리하는 기구가 아니라, 상황을 구조적으로 해석하고 역할을 나누는 기구여야 한다.
교육청과 교육부에 교사들이 바라는 것은 격려나 연수가 아니라, 책임을 함께 지는 구조다. 인권·평등·혐오 대응교육은 정치적 중립 위반이 아니며, 수업 중 개입은 정당한 교육활동이고, 민원이 생기면 교육청이 1차로 책임진다는 점을 문서로 못 박아야 한다. 혐오 대응은 정치 개입이 아니라 헌법 가치의 수호이기 때문이다. 일회성 교육이 아닌 가랑비에 옷 젖는 꾸준하고 체계적인 교육을 비롯 정밀하고 정교한 대책이 필요하다.
지난 7월 국가교육위원회가 혐오와 차별은 ‘반시민적 행위’로 가르치되, 논쟁적인 사안은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하면서 가르치도록 하는 학교 시민교육의 기본 원칙을 내놓은 것도 의미 있는 진전이다. 정부가 혐오와 차별을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행위’로 명확히 하고 이를 하지 않도록 가르치는 교육 원칙이 교육 현장에서 실질적 영향이 될 수 있도록 후속 과정을 책임 있게 추진하길 바란다.
● 플랫폼 규제부터 교사 실천까지 _ 유럽연합에서 배우는 실천 전략
독일과 핀란드 등 유럽 국가들은 청소년의 우경화와 혐오를 ‘민주주의에 대한 실존적 위협’으로 규정했다. 특히 유럽연합은 플랫폼 사업자에게 직접 책임을 지우는 길을 택했다. 혐오가 흘러나오는 플랫폼 자체에 책임을 묻지 않으면, 지우고 또 지워도 다시 새어 나오는 ‘밑 빠진 독’이 되기 때문이다.
2016년 유럽집행위원회는 ‘불법 온라인 혐오 발언 대응 행동강령(Code of Conduct)을 만들었다. 규제를 사업자에게만 맡기지 않고 정부·이용자·시민사회가 함께 참여하도록 한 점도 특징이다.
대표적인 장치가 ‘신뢰받는 신고자(trusted flagger)’ 제도다. 훈련받은 시민단체와 이용자가 불법성을 판단해 신고하면 사업자가 우선 처리하며, 실제 삭제율도 일반 신고보다 높았다. 시민을 규제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로 세웠다는 점에서 교육적 시사점도 크다.
성과는 숫자로 나타났다. 2020년 6월 제5차 모니터링 평가에서 사업자들은 신고 콘텐츠의 90.4%를 24시간 안에 검토했고, 그중 71%를 삭제했다. 2016년 40%였던 24시간 검토율이 4년 만에 두 배를 넘어섰다(European Commission, 2020.6; 김민정, 2020). 명확한 기준과 정례 모니터링이 결합하면 자율규제도 실질적 성과를 낸다는 증거다.
신고된 혐오의 사유는 성적 지향(약 33%)과 이민자 혐오(15%)에 집중됐으며, 이는 우리 교사들이 다루기 어렵다고 답한 영역과 겹친다. 우리나라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국민 10명 중 8명이 온라인에서 혐오 표현을 접했고(문화체육관광부, 2018), 혐오 표현이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본 응답은 81.8%에 달했다(국가인권위원회, 2019).
유럽연합의 사례는 ‘규제는 곧 검열’이라는 우려를 넘어, 정부·플랫폼·시민사회·이용자가 함께 책임지는 길이 가능함을 보여준다. 우리에게도 청소년 디지털 환경영향 평가, 알고리즘 투명성 확보, 유해 콘텐츠 추천 제한, 위반 시 제재가 필요하다.
제도가 플랫폼의 책임을 묻는다면, 교사에게는 교실에서 쓸 도구가 필요하다. 유네스코는 유엔 제노사이드예방사무소와 함께 <교육을 통한 혐오표현 대응 지침>(2023)과 <세계시민교육 교사용 안내서>를 펴내, 모욕과 혐오 표현을 구분하는 법, 실제 사례와 시나리오를 활용한 토론, 사회정서학습(SEL)에 기반한 대응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미국 남부빈곤법센터(SPLC)의 교육 프로그램 ‘Learning for Justice’(구 Teaching Tolerance)가 펴낸 교사용 지침 <Speak Up at School>은 학생·동료·학부모의 편향된 발언에 어떻게 반응할지를 ‘멈춰 세우기-질문하기-가르치기-되짚기(Interrupt·Question·Educate·Echo)’의 네 단계로 정리하고, 역할극과 상황별 시나리오로 몸에 익히게 한다.
교사들이 대응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는 역량과 매뉴얼의 부재임을 고려하면, 외모·성별·성소수자·이주민·장애·지역·역사 왜곡 등 유형별 매뉴얼을 국가와 교육청 차원에서 개발·보급하고, 사례 분석·역할극·민원 시뮬레이션 중심의 워크숍을 상시 연수로 제도화해야 한다. 추상적 가치 연수가 아니라, 내일 아침 교실에서 곧바로 꺼내 쓸 수 있는 힘을 쥐여 주는 것이다.
존엄의 문화를 만드는 공화적 시민교육으로
교실에서 만난 혐오는 개인의 악의가 아니다. 오래 노출된 디지털 환경이 빚어낸 결과이자, 우리 사회가 함께 풀 구조적 과제다. 2009년 혁신학교 정책 이후 혁신교육은 민주적 의사결정과 협력수업 그리고 학생자치를 통해 학생들이 민주주의를 경험하는 공간을 넓혀 왔다. 그러나 오늘의 혐오와 분열은, 절차만 가르치는 민주주의 교육의 한계를 드러낸다. 이제 필요한 것은 공동선과 시민적 덕성을 강조하는 공화주의적 시민교육이다.
민주주의가 나의 권리를 보장한다면, 공화주의는 우리 공동체를 함께 돌보는 책임을 말한다. 학급 규칙을 정할 때 나에게 편한 규칙이 아니라 모두가 존엄하게 대우받을 규칙을 고민하는 과정, 혐오를 목격했을 때 모른 척하지 않는 용기와 피해학생에게 다가가는 연대, 이런 경험이 시민의 덕을 기른다. 무엇보다 교사가 그 본을 보여야 한다. 교사가 혐오에 맞서는 것은 개인의 취향이 아니라 공동체의 존엄을 지키는 시민의 의무이며, 이것이야말로 학생에게 ‘시민이란 무엇인가’를 가장 강하게 가르친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분명하다. 혐오를 금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존엄을 지키는 언어와 문화를 함께 만드는 것이다. 학교는 미래의 시민을 길러내는 곳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시민을 세우는 공동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