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수십만 원에 이르는 '관리형 독서실'을 공교육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새로운 실험이 시작됐다. 지난 9월 경기도 포천시에서 첫발을 내디딘 'EBS 자기주도학습센터'가 그 주인공이다.
'EBS 자기주도학습센터'는 단순히 공간만 빌려주는 기존 독서실이나 자습실과는 차원이 다르다. 핵심은 '관리'다. '학습 코디네이터'가 센터에 상주하며 학생 출결 관리부터 학습 습관 점검, 심리 검사, 학부모 상담까지 전담한다. AI 학습 시스템인 EBS 단추로 학생의 실력을 진단해 맞춤형 인터넷 강의 콘텐츠를 추천하고, 학습 진도를 확인해 매일 학부모와 공유하고 센터장에게 보고서를 제출한다. 학생들이 학습실에 들어오면 휴대폰을 수거하는 등 면학 분위기를 조성하는 역할도 한다.
EBS 디지털교육기획부 김재천 팀장은 "단순히 성적을 올리기보다는 학생들이 스마트폰 없이 50분이고 1시간이고 책상에 앉아 있는 힘, 즉 '엉덩이 힘'을 길러주는 것이 센터의 1차 목표"라고 설명했다. 학생의 습관을 다잡는 일인 만큼 사람의 역할이 특히 중요하다. 그래서 우수한 '학습 코디네이터'를 배치하고 관리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교육적 지식 등 업무 역량은 기본이고, 학생이 편하게 마음을 터놓을 수 있도록 연령대까지 감안해 배치한다.
학교 내에 설치된 센터는 대부분 해당 학교 학생들로 채워지지만, 학교 밖에 설치된 센터에서는 학교 추천을 받은 학생을 선발한다. 면학 분위기 조성을 위해서다. 성적보다는 학습에 대한 의지를 중요하게 본다. 학교별로 차이는 있지만, 학업 계획서 평가는 물론 면접까지 진행하는 곳도 있어 자연스럽게 공부하려는 학생이 모인다.
공공도서관이나 주민센터, 청소년 수련시설에 자리 잡은 학교 밖 센터는 여러 학교 학생이 함께하는 만큼 안전에 특히 많은 신경을 썼다. 학생이 센터에 도착하거나 나갈 때 학부모가 안심하도록 알림 문자를 발송하는 것은 물론이고, 지자체와 협력해 지역 실정에 맞는 교통편도 제공한다. 가장 먼저 문을 연 포천시의 경우 학생 전용 통학 버스인 ‘포우리 버스’와 연계했고, 청년자율방범대가 순찰 차량으로 학생의 발이 되어주겠다고 나선 지역도 있다.
또한 혹시 모를 학생 간 다툼에 대비한 매뉴얼도 마련했다. 정규 수업 시간 이후 학교 밖에서 일어난 일이므로 학폭으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그에 준하는 프로세스에 따라 사건을 빠르게 수습할 수 있는 내용을 담았다.
이용하는 학생에게는 다양한 혜택을 준다. 온라인 강의 수강 전용 태블릿과 e북 구독권, 그리고 주요 과목인 국어, 영어, 수학 교재를 지급하고, 대학생 멘토에게 주요 교과목 내용을 묻고 공부법 상담을 받을 수 있는 화상 튜터링을 지원한다. 학교 밖 센터에서는 관련 법규 때문에 저녁 식사를 제공하지는 못하지만, 대신 틈틈이 허기를 채울 간식을 마련했다.
EBS는 전국 각지의 센터가 편차 없이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사업 구상 단계부터 국내 유수의 학원 프랜차이즈를 방문해 운영 노하우를 익히고 시스템을 벤치마킹했다. 센터별로 매일 운영 현황 보고서를 광역센터장에게 올리고, 매월 전국 단위 화상 회의를 통해 주요 민원과 개선 방안을 논의하는 프로세스가 여기서 나왔다. EBS의 인프라를 활용해 학부모설명회, 진로진학 컨설팅도 제공할 계획이다.
'EBS 자기주도학습센터'는 내후년까지 전국 150개로 확대된다. 2025년 공모에서는 학교 안 25개소, 학교 밖 25개소 등 총 50개 센터가 선정됐다. 하지만 실제로 설치가 추진되고 있는 곳은 총 42개소다. 1차 선정 이후 전국의 모든 센터 후보지를 2회 이상 방문하며 미비점이 발견된 곳은 걸러냈기 때문이다. 양적 확대보다는 ‘내실’에 방점이 찍혀 있음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 같은 방침은 사업의 지속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국정과제로 추진되는 2027년 이후에도 학생들이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을 안정적으로 제공할 수 있도록 운영의 내실을 다지고, 교육청, 지자체와의 협력 네트워크를 확립하겠다는 것이다.
김 팀장은 "민간에서 운영하는 관리형 독서실이나 스터디 카페의 경우 월 이용료가 60만 원에서 80만 원에 달하기도 한다"며 "이를 무료로 제공해 경제적 여건에 구애받지 않고 '공부하는 습관'을 길러주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이어서 그는 한 지자체와의 협력을 예로 들며 “아이 한 명을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을 실천하는 사례가 될 것”이라며 EBS 자기주도학습센터에 대한 관심과 참여를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