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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경영

[다문화 다시읽기] 집에 있는 세상, 세상에 있는 집②

언어와 언어정체성

 

코스모폴리탄들은 물리적 경계를 넘어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아이디어에 열려있으며, 이런 열린 마음으로 인종적·언어적·문화적으로 다양한 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다중정체성 (multiple identities) 개발이 중요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인종과 인종정체성에 이어 이번에는 언어와 언어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저는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6년 동안 거의 매일 영어수업을 받아왔고, 방과 후에는 영어학원에서 독해·문법·어휘력 등을 공부했으며, 대학에서는 4년 동안 영어영문을 전공했습니다. 그러니까 미국에 유학가기 전 10년 동안 영어를 배우고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제일 힘들었던 것이 방대한 분량(하루에 250~300p)을 영어로 읽고, 쓰고, 토론하고, 질문하는 일이었습니다.

 

시험을 계속 잘 봐서 안심하고 있었는데, 한 교수가 내 이름을 부르더니, 아무리 시험을 잘 보더라도 질문과 토론에 참여하지 않으면 A를 받기가 어려울 거라고 했습니다. 학점을 중요시 여겨왔던 내게는 청천벽력 같은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수업 후에 그 교수에게 가서 수업이 끝나기 5분 전에 내 이름을 불러주면 질문을 하겠으니 그리 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 교수는 웃으며 그리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날로부터 교수는 5분 전에 내 이름 ‘Little Kim’을 불렸고, 나는 준비해 온 질문들을 학기가 끝날 때까지 했습니다. 이중언어자로서의 언어정체성이 이때부터 개발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언어를 습득하는 것은 학습만으로는 해낼 수가 없습니다. 언어는 듣고 읽는 것을 다양한 경험과 연결해서 말과 제스처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각자의 언어정체성이 확립되기도 합니다.


언어
언어는 일련의 소리나 문자기호로 구성된 의사소통 시스템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특정 지역의 사람들은 말하거나 글을 쓸 때 각기 전혀 다른 소리나 문자기호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언어에는 말하기와 쓰기 외에도 읽기·듣기, 시각적 표현(제스처나 눈 맞춤 등)이 포함됩니다. 언어습득을 위해서는 신체적·인지적·정서적 차원이 필요합니다. 


언어학적 관점에서 보는 언어는 음운론·형태소·구문·문법 및 의미론 그리고  그것들을 이해하는 인지과정이 있습니다. 아래의 <표>는 여러 언어의 문법 및 음 변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회언어학적 관점에서의 언어는 규칙이 있고 특정 그룹이 의사소통을 위해 사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교사는 다양한 학습자를 위한 콘텐츠 커리큘럼을 준비할 때 인종적으로 또 문화적으로 관련된 교육을 적용하려는 좋은 의도를 가질 수 있지만, 인종 또는 문화적으로 관련된 교육이 언어적으로 다양한 학생들의 요구를 항상 수용하는 것은 아닙니다(Kubota, 2002).

 

교사는 언어를 고정된 시스템이 아닌 유동적인 시스템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미국 내에서의 영어는 뉴욕 영어·남부 영어·중서부 영어 등이 있고, 미국 밖에서는 인도영어·영국영어·호주영어 등 세계 각국의 영어가 있습니다. 어느 영어가 더 나은지, 어떤 것이 ‘표준화된’ 영어인지 고민하면서, 고정된 기준에 따라 그 언어를 판단하기보다는, 다양성을 포용하고 언어 차이에 대한 포용적인 태도를 발전시키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사회의 많은 기관이 인종적·언어적으로 편향된 언어 이데올로기에 기반을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어만 쓰는(Monolingual) 백인교사는 종종 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백인 상급 및 중산층 영어를 표준화하여 사용하고, 다중언어가정의 자녀들에게 쓰기를 강요하고 있습니다(Cho, 2017). 그러나 인종과 언어 전문가에 따르면 미국에는 법적으로 정해진 표준 영어는 없습니다(Baker-Bell, 2020). 인종 언어학적(raciolinguistic) 관점(Flores & Rosa, 2015)은 이상화된 표준 언어를 사용하는 중상류층 백인에서 비백인 특정 인종집단의 구성원에게도 관심과 초점을 이동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비표준화된 언어를 쓰는 자녀들에게, 그들이 속한 인종집단에 대한 고정된 부정적인 이념을 인종 언어적 이데올로기(raciolinguistic ideologies)라고 합니다(Rosa, 2016).

 

언어 정체성
인종적·문화적 정체성과 마찬가지로 언어적 정체성은 사회적으로 구성되며, 정체성은 단일하고 고정된 것이 아니라 특정한 사회적 맥락에서 협상되고 공동 구성됩니다. 따라서 언어적 정체성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언어적 정체성이 어우러져서 구성되어 있는 인종적·사회적·문화적·정치적 맥락을 조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Faez, 2012, p.128). 인종에 대한 논의 없이는, 또한 문화적·사회적 맥락 없이는 언어적 정체성을 논의할 수 없습니다(Kubota & Lin, 2006). 

 

린데만(Lindemann, 2002)은 말하는 사람의 억양이나 인종과 같은 요인이 영어실력과는 관계없이 학습자가 교사를 이해하고 평가할 때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지만 원어민과 유사한 영어능력을 가진 두 교사 중, 학습자가 선호하는 교사는 백인 비원어민입니다(Auerbach, 2016).

 

파에즈(Faez, 2012)는 독일계 백인과 중국인 1.5세대 교사, 즉 모국어를 습득한 후 미국으로 건너온 원어민과 같은 영어실력을 가진 교사의 연구에서 백인 유럽 1.5세대 교사와 달리 중국 1.5세대 교사(비백인)는 인종적 배경으로 인해 학교 커뮤니티에서 그의 영어가 원어민 수준이 아닐 것이라고 믿었으며, 학생들도 중국인교사의 언어 정체성에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반대로 백인 1.5세대 교육자(독일 이민)에 대해서는 학교 커뮤니티와 학생들이 교사로서의 특권과 수용을 드러냈습니다. 이 연구는 미국 내에서 비백인 1.5세대 교육자들의 인종적 언어 차별(raciolinguistic ideologies)을 보여준 연구입니다. 

 

언어 정체성의 이해를 위해 아프리칸어메리칸 영어(African American Vernacular English, AAVE)의 고유한 구문 및 음소 규칙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AAVE의 일부 측면은 서아프리카 언어에서 유래했습니다. 예를 들어 <표>에 인용된 것 같이 많은 서아프리카 언어에는 /th/ 소리가 없으며(Smitherman, 2004), /f/는 종종 /th/ 소리로 사용됩니다(예: /th/ank you 대신 /f/ank you). 구문 규칙에 따라 AAVE에서는 been 및 done과 같은 보조동사가 나타납니다. 

He been done work: 그는 일을 오래전(과거)에 끝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He had the work done).

 

He done been working: 그는 최근까지 일을 해왔고 오랜 기간 동안 일했다는 의미입니다(He has been doing that work for a long time). 후자의 예는 AAVE의 가장 독특한 특징 중 하나를 보여줍니다. 즉 be 동사와 -ing 동명사를 사용하여 오랫동안 해왔던 습관적인 성격을 띤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백인의 영어를 배운 한국인들은 위의 AAVE를 듣거나 보면 바로 ‘현재완료(have+과거분사, pp)’를 생각하게 되고, 위의 두 영어문장은 문법적으로 틀렸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미국 내에서도 교육받은 흑인들은 AAVE를 안 쓰는 경우가 많고, 흑인교사들 또한 그들이 가르치는 흑인학생들에게도 AAVE를 쓰지 못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AAVE를 사용하는 사람들(흑인들)은 ‘멍청하고 게으른’ 사람들로 인식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조상이 쓰던 아프리카언어에서 유래된 AAVE의 위상, 원격 과거 및 원격 위상을 포함하여 쓰는 표현에 부정적 언어 정체성을 부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I like your new dress”에 대한 응답으로 누군가는 “Oh, I been had this dress”라는 말을 듣게 될 것입니다. 이는 화자가 그 드레스를 오랫동안 입고 있었고, 그것은 새것이 아니라는 의미로 이해하면 되는 것이지 그 언어를 부정적으로 평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언어의 정체성은 인종의 정체성과 연결되어 있으며, 그 말을 쓰는 사람들의 사회적·역사적·정치적 권력(Power)과 연결되어 있음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대한민국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교육자들은 교육현장에서 다문화가정의 학생들이 한국어를 배울 때까지라도, 그들이 가정에서 쓰던 언어의 정체성을 수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 발짝 더 나아가 교육자들은 미국의 AAVE, 다문화가족들의 모국어들을 수용하고 배우면서 다중언어(multilingual) 국가로서 세계화에 한 발짝 가까이 가는 길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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