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늦은 오후. 어둠이 금세 땅으로 내려앉아 길이 가물가물한 가운데 어렵게 찾아간 낯선 아파트 주차장. 큰 우산 아래에서 반가움과 고마움이 분명한, 그러나 어색함에 어쩔 줄 모르던 한 학부형과의 짧은 조우가 있었다. 어머님 직장 동료의 코로나 확진으로 자가 격리 통보를 받아 학교에 나오지 못하는 우리 반 아이에게 교과서와 학습꾸러미 주기 위한 만남이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연신 울리는 카톡 알림음에 흘낏 휴대전화를 내려다보니 고마움과 미안한 마음을 가득 품은 이모티콘과 함께 어머님의 길고 따스한 인사 글이 핸드폰 화면을 가득 채웠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는데 과한 인사를 받고 있다는 생각에 쑥스러운 웃음이 번지면서 지난 몇 개월의 폭풍 같았던 일들이 차창 밖으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와 함께 새록새록 머리에 떠올랐다. 코로나로 아이들 등교가 미뤄지고 오후 내내 교문 앞에 서서 한 보따리씩 포장한 교과서와 학습 꾸러미를 들고 지나가는 자동차마다 고개를 빼며 낯선 미소를 연신 지었던 일. 온라인 수업을 위해 핸드폰 카메라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며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영상을 찍었던 일. 어떻게든 등교 개학 전에 아이들 얼굴을 익혀보겠…
2021-12-09 17:00“5학년 아이에게 맞았어요. 얼굴을 때리고 도망가더라고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채소연(가명) 선생님이 5학년 아이에게 맞았어요. 수학 시간에 문제를 풀라고 했는데, 학습지를 찢었대요. 그래서 다시 학습지를 줬더니 욕을 하면서 얼굴을 때리고 도망을 갔다고 해요. 맞은 것도 아픈데 ‘씨 XX, 싸이코 XXX’ 욕까지 하면서 말이지요. 이런 일을 겪어본 적이 없는 분들은 ‘설마, 선생님을 때리는 초등학생 아이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어요. 하지만, 요즘 학교를 보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은 아니에요. 요즘 학생 중에는 덩치가 큰 아이들이 많아요. 안타까운 사실이지만, 여자 선생님의 경우에는 덩치 큰 아이와 힘으로는 대적하기 어려운 일도 있지요. 그래서 제대로 판단하기 어려운 아이이거나, 마음속에 분노가 많은 아이의 경우에는 선생님에게 물리적인 힘을 쓰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그런 일 때문에 종종 교실에 가서 아이를 말리는 일도 있어요. 그럴 때는 남자 선생님이라고 해도 아이가 때리면 맞을 수밖에 없어요. 힘으로 잘못 제압하려다가 아동 학대 신고를 받는 것보다는 그냥 한 대 맞아주는 것이 편한 길일 수도 있거든요. 그리고 손을 잡고 말리다 보면 입
2021-12-09 16:49하늘이 말갛게 갠 가을날, 기다란 둑길 따라 죽 늘어서 하늘거리는 코스모스를 보며 ‘천천’에 들어섰습니다. 천천. 하늘 천에 내 천. 말 그대로 풀이하자면 ‘하늘내’입니다. ‘세상에는 참 이쁜 이름을 가진 고장이 있구나!’ 했습니다. 후에 들으니 산지가 높아 하늘을 찌르는 형국으로 물줄기가 하늘에 닿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합니다. 드높은 곳이어선지 찌는 듯 불볕더위엔 아랑곳없이 지내지만, 겨울은 남쪽 지역에선 기온이 가장 낮아 혹독한 추위와 싸우며 견뎌야 합니다. 산이 깊어 골골이 연출되는 절묘한 구름의 파노라마는 덤으로 누리는 선물이기도 합니다. 조금 먼발치 떨어져 주변과 어우러진 학교 전경을 볼라치면, 너무 평화롭고 잔잔하여 문젯거리라곤 손톱만치도 없어 보입니다. 하나 정말로 그리하다면 이 세상살이가 아닐 겁니다. 마치 고고한 자태로 수면에 떠 있는 백조의 부단한 물밑 발짓처럼, 여일한 일상 가운데 곧잘 마주치는 크고 작은 문제와 숙제들에 마음 졸이며 뒤척이기 일쑤니까요. 매일 아침 등굣길, 교문에 들어서면 아이들은 일단 운동장을 두어 바퀴 천천히 걸어 돌고서 교실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항상 맨 나중에 젖은 머리인 채, 운동장도 돌지 못하고
2021-12-06 17:05코로나 감염 일일 확진자가 5000명을 넘어선 가운데, 학생의 감염도 크게 늘고 있다. 집단감염 양상마저 나타나 전면등교가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났다. 설상가상으로 새 변종인 오미크론의 출현으로 한 치 앞을 내다보기도 어려운 상황이 됐다. 최근 2주간 확진된 12∼17세의 소아·청소년은 2990명에 이른다. 11월 이후의 하루 평균 학생 확진자는 350명 이상으로 10만 명당 확진자가 성인보다 많다. 특히, 12∼17세의 백신 접종 완료율은 24.9%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이들에 대한 백신 접종을 높이는 게 최대의 과제가 됐다. 학교의 집단감염 진앙 가능성 경고 학교는 밀집 생활을 하는 공간 특성상 한번 감염이 이뤄지면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초등학생 대부분은 접종 대상도 아니다. 실제, 12세 미만 초등학생이 학교와 학원에서 감염되는 빈도가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다. 학교가 새로운 감염의 진앙이 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는 이유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초등학생은 마스크 착용과 위생 관리 등 자기 방역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 나오는 초등학교의 전면등교를 재고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괜한 게 아니다. 최근 정부는 ‘코로나1
2021-12-06 09:00수능 성적 발표를 앞두고 있다. 매년 수능이 끝나면 예상 등급 커트라인과 함께 수능에 대한 총평이 각종 매체를 통해 나온다. ‘이번 수능은 어려웠다’ 혹은 ‘등급 예측이 대단히 어려운 상황이다’ 등은 거의 해마다 듣는 고정 멘트다.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제자들을 통해 수능을 간접 체험하고, 학부모로서도 수능을 겪으며 아이들에게 수능이 얼마나 어렵고 부담스러운 시험인지를 실감했다. 과목별로 차이는 있겠지만 교사들이 봐도 모호하거나 지문이 너무 길어서 정해진 시간 안에 처리하기가 힘든 문제들이 있다. 수험생 체감 부담 커져 수능이 고교에서 배운 내용을 기반으로 출제된다고는 하지만, 국어나 영어의 경우 학생들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지문에서 출제되는 문항이 많다. EBS 수능 연계율이 기존 70%에서 50%로 낮아진데다 직접 연계가 아닌 간접 연계된 경우도 많아서 수험생들이 체감하는 난도는 더욱 높아지고 긴장 속에서 낯선 문제를 풀어야 하는 부담감이 더 커졌다. 해마다 수능을 본 아이들에게 수능 어땠냐고 물어보면 열에 아홉은 "이번에 수능 망했어요"라고 대답한다. 이러한 반응은 좀 더 잘 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의 표현일 수 있
2021-12-05 09:07우리나라 청소년의 스마트폰 소지율은 거의 90%에 달한다. 특히 요즘 청소년 세대는 유튜브 세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유튜브로 많은 시간을 보낸다. 게임 또한 청소년들에게 여전히 인기다. 스마트폰 두고 늘어나는 갈등 이처럼 청소년들이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가 늘면서 자녀의 스마트폰 과다사용으로 인한 가정 내 갈등을 호소하는 부모들이 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로 학교 가는 시간이 줄면서 이런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이와 관련한 연구를 하면서 필자는 자녀의 미디어 이용을 관리하는 데 부모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가장 먼저 부모가 자녀 앞에서 핸드폰 이용을 삼갈 필요가 있다. 부모가 지나치게 스마트폰 사용에 집착하면 자녀를 돌보고 자녀의 생활에 신경 쓰는 것이 그만큼 어려워진다. 더구나 자녀의 미디어 이용을 통제할 명분을 잃는다. 일부 연구에서 부모의 미디어 이용은 자녀의 미디어 이용과 관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자녀 앞에서 핸드폰 사용을 가급적 절제해야 한다. 부모들은 대부분 규칙을 정해 자녀의 미디어 이용을 통제하려고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충분한 대화와 상호합의다. 부모가 일방적으로 규칙을 정해서는 안 된
2021-12-04 09:04교사의 중요한 정체성은 학생 성장의 디딤돌 역할과 연결고리가 되는 징검다리 역할에 있다고 본다. 성장기에 잠재력을 톡 터뜨려 학생들이 지닌 가능성의 문을 활짝 열어주는 일, 자신과 만나고 세상과 소통할 수 있도록 물꼬를 터주는 일이야말로 교직 생활의 보람이다. 2016년 11월. 결혼 30주년 리마인드 웨딩을 졸업생 부부들과 함께했다. 학업은 느리지만, 자신의 꿈을 나누고 미래를 얘기하곤 했던 40대 후반 제자가 있었다. 그는 꿈꾸던 펜션형 문화공간을 강원도 홍천에 만들고서 선생님의 리마인드 웨딩을 열어주고 싶다고 제안했다. 망설였지만 멋지고 귀한 시간을 만들 수 있는 기회다 싶었다. 장소는 제자가 꿈꾸었던 공간에서, 식사 및 제반 비용은 내가 제공하는 조건으로 준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품을 거쳐 간 많은 졸업생 중에서 소수를 선별하는 것은 신중을 기해야 하는 일이어서 나름 엄격한 기준을 정했다. 우리 집에 부부가 방문했거나 외부에서라도 우리 부부와 함께 만난 적이 있는 20대에서 40대까지 졸업생 명단을 적어보니 33쌍이었다. 그들 중에 상황이 허락된 20쌍과 함께했다. 그중 3명의 졸업생에 대한 이야기다. 주인공 3명은 중학 시절 담임 반이었던 현…
2021-11-29 16:57“학교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교원이 교육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학생의 학습권을 보장하는 첫걸음입니다.” 지난 16일, 유은혜 교육부 장관은 제20차 사회관계 장관회의에서 이같이 밝혔다. 매우 공감되는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의 이면에는 교권 추락과 교실 붕괴의 어둠이 존재한다. 한 학기만에 지난해 넘어선 교권침해 교권침해 발생 건수는 2018년 2454건, 2019년 2662건, 2020년 1197건이다. 수치상 줄었다고 좋아할 수는 없다. 우선 지난해는 코로나로 인한 등교일수 감소라는 변수가 있었다. 올해 등교 확대가 되자 1학기에만 교권 침해 건수가 지난 한 해보다 더 많은 1215건으로 나타났다. 특히 성희롱·성폭력 비율이 10%를 넘었다. 무엇보다 교권 침해 건수는 학교교권보호위원회에 심의 건을 기준으로 한다. 피해 교사가 참거나 화해·권고 등으로 넘어가는 숨겨진 사건이 훨씬 많다는 게 현장의 한결같은 전언이다. 왜곡된 학생 인권 강조로 권리와 책임의 균형이 무너진 지 오래다. 문제는 이러한 교실 붕괴 현상이 굳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문제행동을 지적하거나 교권보호위원회에 심의를 요청하면 오히려 인권침해나 정서 학대, 성
2021-11-29 09:002025년부터 전면 실시한다는 고교학점제를 두고 말들이 많다. 교육 주체 중 고교학점제에 대한 문제의식을 교사들이 제일 먼저 피부로 느끼고 있다. 어떤 학교는 고교학점제 연구학교나 선도학교로 지정돼 고교학점제를 다른 학교보다 먼저 시행 중이다. 이에 대해 혹자는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며 어차피 고교학점제로 갈 건데 미리 준비하는 게 낫지 않냐고 말하기도 한다. 교육부 주장에 동의 어려워 정말 그러한가? 만약 고교학점제가 학생들과 교사들에게 불리한 제도라면 굳이 먼저 시행해 불이익을 줄 필요는 없다. 오히려 가능한 한 늦게 시행해 그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이는 노력을 해야 한다. 고교학점제는 말 그대로 일정한 학점(192학점)을 이수하면 졸업하는 제도다. 쉽게 이해하려면 대학의 학점제를 생각하면 된다. 현재의 교육제도에서는 학생들은 출석만 하면 성적과 무관하게 졸업할 수 있다. 그러나 학점제에서는 수업 2분의 3 출석과 학업성취율 40% 이상을 충족해야 졸업이 가능하다. 교육부는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운 시대 변화로 우리 교육도 변화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다며, 삶에 대한 적극성과 주도성 및 책임감을 지닌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 고교학점제가 필요하다고 주장
2021-11-28 09:00학력 격차 문제는 심각한 상황이다. 우리 교육의 불안 요소이며, 장기적으로 국가 경쟁력의 약화와 불평등을 불러올 수 있는 문제다. 교육당국도 심각성을 인식하고 막대한 규모의 예산을 ‘교육회복’이라는 이름으로 투입하고 있다. 기초학력보장법에 대한 큰 기대 이런 흐름 속에서 지난 9월 24일 공포된 기초학력 보장법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내년 3월 25일 시행 예정인 이 법률의 시행령 제정을 위한 의견 수렴이 한창이다. 기초학력의 중요성을 전제로 마련된 법률에 대한 기대가 크지만, 시행령 제정 과정을 보면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 기초학력보장법 제8조(학습지원대상학생의 선정 및 학습지원교육)와 제9조(학습지원 담당교원) 관련 시행령 마련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안이 제시됐다. ‘1. 기초학력 보장 업무 경험이 있거나 당당할 능력이 있는 교원 1명 또는 다수를 학습지원 담당교사로 지정할 수 있도록 하되, 2, 학교장이 해당 교원의 수업 시수 및 근무 조건을 학교의 여건에 따라 조정할 수 있도록 하되, △ 본인의 희망과 학교장의 동의에 따라 전보를 유예할 수 있으며, △ 담당 교원 지정 후 1년 이내에 직무교육(연수)을 이수하여야 한다.’ 기초학력 업무를 중요
2021-11-27 0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