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정원은 어디를 가나 모두 천편일률적인 모양을 하고 있다. 네모진 벽돌처럼 잘 다듬어진 생울타리와 둥그렇게 기형적으로 전정(剪定)된 향나무들을 볼 때마다 참 의아하단 생각이 든다. 왜 사람들은 나무들이 생긴 그대로 자연스럽게 자라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걸까. 제멋대로 마음껏 가지를 펼치며 성장한 나무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사람들은 정녕 모르는 것일까.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정원사 아저씨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교정의 정원수들을 열심히 가지치기하고 있다. 나는 가끔 정원수의 신세나 학교 아이들의 신세나 서로 비슷하다는 상념에 빠질 때가 있다. 똑같은 교복, 똑같은 머리모양, 똑같은 책걸상, 모두가 똑같이 선호하는 특정 대학, 똑같은 교육 과정이 어쩌면 전정 가위를 들이대어 모두가 똑같은 아름다움을 연출하도록 강요당하는 정원수의 신세와 흡사하기 때문이다. 창조주께서는 어떠한 경우에도 이 세상에 똑같은 것이 둘이나 있도록 허용치 않는다고 했다. 심지어 하찮은 풀 한 포기, 구르는 잔돌 하나, 나무 한 그루마다 그 태어난 의미와 존재 이유 또한 다 다른 것이다. 하물며 자라나는 아이들임에랴. 아이들은 오늘이 다르고 내일이 다른 나무와도 같다. 우후죽순이란
2006-08-28 13:59이제 계절로는 처서도 지나 조금은 시원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2학기를 앞두고 인사이동 발표가 끝나고 설레임으로 새 학기를 준비하면서 어떤 분은 교장으로, 교감으로 관리자로 자리를 바꾼 분들이 많이 계실 것 같습니다. 요즈음 학교의 권위가 무너지고 그 가운데 학교장의 권위, 교사의 권위 모든 것들이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 없는 때가 있습니다. 특히 지도자의 자리는 외로우며 구습에 젖은 사고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잘 적응하기가 어렵게 됩니다. 학교도 교육 조직이다 보니 지도자로 교장이 있고 교감, 교사가 역할을 수행하며 학교 교육이 전개됩니다. 그런데 최근 학교를 흔드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어 교육 분야는 위기가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요즈음 세상이 부패하고 무능하고 흔들리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도 원칙이 없는 지도자들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원칙과 고집은 다릅니다. 지도자의 능력은 변할 수 없는 원칙에 근거하며, 원칙은 인간의 가치와 품위를 높여주고 발전시키는 보편적인 원리에 근거합니다. 위기의 상황을 새로운 역사의 기회로 삼았던 많은 지도자들의 공통점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원칙이 있었습니다. 인간 역사가 유지되고 발전하는…
2006-08-28 13:57최근 일어난 몇몇 소수의 체벌 사례는 아직도 교육현장에서 잘못된 체벌의 관행이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학생들의 인격과 의견을 무시한 무조건적인 감정 풀이식의 체벌이 문제가 되고 있다. 일부 특정 사립학교에서는 체벌 교사가 교장이나 이사장과 친인척들로 구성되어 처벌을 면하는 사례도 있어 더더욱 문제가 되었다. 정작 체벌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오랫동안 우리 교육현장은 체벌에 의존해 왔고, 현재까지도 일부에서는 체벌이 학생들의 처벌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기에, 그만큼 체벌에 대한 의견도 분분한 것이 사실이다. 교육부는 최근 일련의 체벌 사태를 두고 체벌금지법을 만들겠다고 공공연히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우리 교육현장의 의견을 무시한 채 무조건적인 체벌 금지법을 만들겠다고 하는 것은 교육현장의 교사들의 존재를 완전히 무시한 처사할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교사들을 법으로 다스리지 않으면 통제할 수 없는 그런 집단으로 오도하는 것은 자칫 우리 선생님들이 교육자로서의 권위와 자존심을 상당히 깎아 내리는 처사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결국 교사를 믿지 못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학교현장에서도 이런 교육부의…
2006-08-28 13:52매년 4-5월과 8-9월이 되면 학교에 비상이 걸리기 일쑤다. 아폴로눈병 등 유행성 눈병이 번지기 때문이다. 이 시기가 대체로 새학기가 시작되는 때다. 그동안 교직생활을 해 오면서 눈병때문에 비상이 걸리지 않았던 해가 거의 없을 정도이다. 그만큼 학교는 유행성 눈병의 사각지대이다. 비단 학생들 만의 문제는 아니다. 학생들 사이에 유행성 눈병이 번지면서 이의 영향을 받아 교사들 역시 눈병에 감염되는 경우가 생긴다. 수업을 진행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다른 동료교원들에게 전염의 위험성이 매우 높다. 다음주가 되면 전국의 거의 모든 학교가 개학을 할 것이다. 개학후에는 반갑지 않은 유행성 눈병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올봄에도 한참 눈병으로 애를 먹었다. 학생들 중에 눈병이 발병하면 기하급수적으로 그 숫자가 늘어난다. 전교생의 1/3정도가 눈병에 걸리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눈병이 번지는 이유는 당연하다. 학교가 여러학생들이 집단으로 생활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서로의 접촉이 빈번하고 같은 교실에서 함께 생활하기 때문이다. 먼저 감염된 학생이 완치될 만하면 다른 학생이 시작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기 때문에 그 기간이 1-2개월동안 지속되는 것이다. 눈병뿐 아니라 학교는…
2006-08-28 13:52드디어 말 많고 탈 많았던 교육위원 선거가 끝났다. 비록 대전의 경우 교육감 재선거가 과반수 득표자가 없어서 내일 결선투표의 일전을 벼르고 있지만 어쨌든 시끄러운 교육위원 선거가 끝이 나서 그런지 홀가분하다. 필자가 살고 있는 대전광역시에서도 교육위원 선거를 둘러싼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몇 가지를 추려본다. 있을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 2006년 대전광역시 교육위원선거의 특징중 첫 번째는 현직 교육위원의 몰락이다. 비록 현직자중 2명이 교육감에 출마하고, 1명은 등록무효(정당가입한 사실확인으로 무효처리)가 되어 여성교육위원 한 명만 재선에 성공하고 모두 줄줄이 고배를 마셨지만 말이다. 이것은 무조건 조직선거에 기대어 현직 프리미엄만을 가지고 선거를 한다는것에 대한 경종이 아닌가 싶다. 유행가 노래가사 처럼 있을때 잘해야 한다. 현재 대부분의 교육청이 처해있는 수많은 난제들을 조정하고 풀어주는 역할을 교육위원회가 했어야 했는데 그것을 제대로 받들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닌가 싶다. 새로 당선된 분들이 이러한 문제점을 집중제기하여 대폭 물갈이가 되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하지만 여성교육위원이 2명 당선되었다는 사실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었다. 새로운
2006-08-28 13:49눈이 떠지지 않는다. 어머니 성화에 일어나긴 했지만 눈꺼풀이 무겁다. 한동안 눈을 감은 채 앉아 있다. 밤새 더위와 모기에 시달려 뒤척거리면서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했으니 눈이 쉽게 떠지지 않는다. 이른 아침인데도 열대야의 후끈한 더위와 끈적거리는 습기가 온 몸을 감싼다. 방문의 문종이를 떼어내고 붙인 모기장(방충망)이 어설프고, 사람냄새를 맡은 문밖에 붙어있던 모기들이 문을 여닫는 사이에 들어오곤 한다. 입으로 불어 살포하는 살충제를 뿌리기도 하지만 틈새 어디론가 들어오고 만다. 잠결에 쫓아 보지만 어쩔 수 없다. 아침이면 배가 터질 만큼 몸이 무거워진 모기들이 잘 날지도 못하고 벽에 붙어있다. 모기에 물린 가려운 상처를 긁적거리면서 눈을 비비면서 밖으로 나온다. 들녘 마을에 먼동이 트면서 아침놀이 발갛고 붉은 해가 꽤 빠른 속도로 지평선을 뚫고 머리를 내민다. 나뭇가지에서는 참새들이 짹짹거린다. 푸른 벼 잎자락에 맺힌 이슬방울들이 햇살을 받아 반짝인다. 벼 잎 끝과 끝을 이은 거미줄에도 이슬방울들이 뚜렷하게 보인다. 이른 새벽부터 벼논을 둘러본 이웃집 아저씨의 바짓가랑이가 이슬에 젖어 축 늘어졌다. 참새 한 무리가 앞길을 막아설 듯 길바닥에 내려앉는다.
2006-08-28 13:46“말도 많다” “언론의 빅뉴스도 많다” 등등이 우리 시대의 교육의 언저리가 아닌 지 되새겨 본다. 어디를 쳐다보아도 교육의 길은 보이지 않고, 어느 곳을 찾아보아도 한국 교사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 것이 오늘인지. 한국 교사의 진정한 얼굴은 어디에 있는 지 그것이 의심스럽다. 50대는 한국 교사의 얼굴인가 대학을 졸업하고 교단에 발을 내디디면 그 때의 나이는 남성은 30대에 접어들고, 여성은 20대 후반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다. 이때부터 교사의 길을 걸으면서 5년 간은 학생 지도과 교재 연구에 몰두하는 시간이 되고, 그 후 5년은 가르침에 요령을 터득해 가는 시기이기도 하고, 교사로서의 길을 조금씩 생각해 보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남성은 40대에 가까워지고, 여성은 30대 후반으로 접근하게 된다. 이렇듯 교직에 발을 뻗고 나면 세월은 어느 새 40대의 길로 접어들어 자신의 뒷걸음을 회상하게 된다. 이때부터 진급에 대한 자신의 위상을 찾기 시작하고 학생을 가르치는 것도 중히 여기면서 동시에 자신의 실리도 추구해 가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불혹이라는 나이는 자신을 주변에 조화시켜 나가면서도 자신만을 위한 길을 가야 하는 시기다. 그렇
2006-08-28 13:38
2006년 8월 9일 저녁 9시 35분. 좀 늦은 시간인데 전화가 울리고 아내가 받아들더니, 얼른 송화기를 막고서 "여보 광주 선생님이신 것 같은데요."하면서 전화를 바꾸어 주었다. "자주 전화 드리지도 못한 제자에게 이렇게 친히 전화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건강은 어떠신지요?"하는 인사와 수인사가 끝나기도 전에 은사님은 "치우려던 월간 문학에서 자네 작품을 발견하고 다시 읽어보았네. 7월호를 치우려고 하다가 우연히 펴진 쪽에 바로 자네의 작품이었네. 난 시조 부분과 시 부분만 읽고 치우곤 하였는데, 덕분에 자네 작품을 읽게 되어서 전화했네."하시면서 "요즘 동화 작품에서는 전래 동화 같은 짜릿한 감동 감화를 주는 작품이 별로 없어, 자넨 동화를 쓰면서 무엇에다 기준을 두고 쓰는가? 다시 말해서 자네 동화의 문학정신 말일세."하시는 것이었다. 너무 갑작스런 질문이시고, 또 은사님의 말씀이라 함부로 답 할 수도 없는 그런 질문이었지만, 내가 평소에 가진 나름대로의 기본 정신이 있기에 서슴없이 "선생님, 제가 교직에 몸담았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역시 동화란 [교육]을 떠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재미있는 문장이어야 하지만 바탕에 흐르는 정신은 가르침을 준다는…
2006-08-28 13:37조금은 과장된 표현일지 몰라도, 학교에서 교장이 '왕'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한 나라의 우두머리였던 왕이 누리는 절대 권력에 일개 학교 교장 자리를 견줄 수야 없지만, 학교라는 특수 집단 속에서 교장 자리는 가히 절대적이라 할 만큼 힘을 가진 자리였고 그에 따라 교장 개인이 누리는 위세 또한 막강했던 것이다. 그래 그 시절, 교장이 갖고 있는 막강한 힘 앞에서 쩔쩔매는 교사들의 움츠러든 모습을 떠 올리노라면, 생사여탈권을 손에 쥔 왕 앞에서 잘 보이거나 살아남으려 머리 조아리는 신하의 모습과 크게 다를 바 없었던 것이다. 교장 자리가 그렇게 대단하다 보니, 뜻 가진 사람이라면 너도나도 교장 한번 해 볼 욕심에 아이들 가르치는 본업보다는 승진에 필요한 점수 따기에 혈안 되기 일쑤였다. 상전벽해라 했던가. 세상이 좋아지고 또 좋아져서 한 나라의 대통령도 자신이 가진 권력에 상응한 힘의 사용에서 한계를 느낄 정도로 백성들의 힘이 커진 나머지 옛날처럼 고분고분 따라주지 않으니까, "못해먹겠다"고 투정하는 판이 되다보니 학교인들 별 수 있겠는가. 교장 노릇도 예전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권위의 추락을 맛볼 수밖에. 일례로, 도덕적 권위나 전문적 지식 없이 구시
2006-08-28 13:35
어제 편지 한 통을 받았다. 얼마 전 교육위원으로 당선된 J 교육장의 친필 편지다. 그의 글씨 처음으로 보았다. 며칠 전, 하계 교감연수회에서 있었던 그의 말이 떠 오른다. 본인 스스로 자신의 글씨체를 악필이라고 말한다. 지금보니 악필은 아니고 개성이 있다. 자세히 보니 정감이 가는 글씨체다. 그는 특강에서 본인의 경험을 털어 놓는다. 초등학교 때 하도 글씨를 못 써 담임 선생님께서 겨울 방학 숙제로 글씨 쓰기를 내어 주셨다고 한다. 자기 나름대로 악필을 고쳐 정성껏 과제를 해 갔는데 어떻게 되었을까? 담임 선생님의 한 마디 말에 그는 악필 교정을 포기하고 말았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것, 네가 쓴 것 아니지? 네가 이렇게 잘 쓸 수 없어! 누가 대신 써 주었니? 솔직하게 말해 봐!” 만약, 담임 선생님이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말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너, 정말 잘 썼구나! 그래 너도 잘 할 수 있구나! 이렇게 네가 글씨를 잘 쓰는 줄 선생님은 미처 몰랐단다. 앞으로 계속 잘 할 거지?” 담임 선생님의 한마디 말이 그에게 있어 악필과 명필의 분수령이 되었던 것이다. 전자가 그에게 좌절과 포기, “맞아, 역시 나는 안 돼!”라는 실망감을 준 데 반하여 후자
2006-08-28 13: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