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속도로 휴게소 남자용 공중 화장실 소변기 앞에 가면, 앞 벽면에 이렇게 적혀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 말고도 또 있습니다!” 소변을 볼 때 오줌 방울을 소변기 바깥으로 흘리지 말아 달라는 부탁을 코믹하게 나타낸 것이다. 의미가 적절하게 우회적으로 전달되도록 하여, 오줌 방울 다스리기에 만전을 기해 달라는 화장실 당국자의 의도를 재미있고도 간곡하게 전해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이 당부의 문장 속에는 남성중심의 인식이 기본 전제로서 들어 있다. 남자는 함부로 눈물을 흘려서는 아니 된다는 전제가 있어야 이 문장은 의미가 자연스럽게 성립되는 것이다. 의도적으로 조사해 보지는 않았지만 평균적인 한국의 남자들은 이 문구 앞에서 별다른 회의를 품지 않고 이 표현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그런 문화 속에서 자라왔기 때문이다. 남성들은 위대하고, 그렇게 때문에 (여자처럼) 눈물이나 질질 짜대는 존재가 아니라는 남성 우월의 문화적 최면에 익숙해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체면이 중시되는 우리에게는 우는 것을 흉으로 인식하려는 태도가 있었다. 특히 남자에게는 이런 인식이 강요되었다. 예전부터 들어 온 말 가운데 누구나…
2008-09-01 09:001 한번 따끔하게 지적하거나 야단치면 그걸로 끝이지, 뒤에 그걸 다시 꺼내서 계속 뒷말을 일삼지 않는 것을 두고 ‘뒤끝이 없다’고 한다. 또 그런 사람을 ‘뒤끝이 없는 사람’이라고들 한다. 상대의 과오를 심심할 때마다 두고두고 꺼내서 재탕, 삼탕 해가며 무어라 장황하게 떠벌리는 사람은 분명 주책이 없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을 지도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면 ‘뒤끝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직장에서 뒤끝이 없는 상사를 한번 코끝 찡하게 느끼고 보면 감동과 존경을 동시에 가질 수 있게 된다. 처음 야단치실 때는 너무 야속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정말 뒤끝이 없으신 분이어서 내가 오해한 것이 송구스러웠다. 이쯤 되는 고백을 부하로부터 얻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대단히 훌륭하신 분이다. 드물지만 아주 없지는 않는 일이다. 그런 존경을 얻기까지는 자신에 대한 (성질 못됐다는)오해를 오래 참을 수 있어야 한다. 이처럼 뒤끝이 없다는 것을 상대가 제대로 이해해 주기까지는 상당히 긴 시간이 걸린다. 아마도 성질 급한 사람은 자신의 뒤끝 없음을 상대가 쉽사리 이해해 주지 못하는 데서 오는 조급함으로, 다시 한 번 따끔한 직격탄을 날릴지도 모른다. 학생들…
2008-08-01 09:00
								강력한 개혁 리더십으로 중국을 이끌었던 등소평(鄧小平) 주석의 악수하는 모습은 매우 특이했다. 그가 외국의 국가 원수들과 악수하는 장면을 보면, 팔은 제자리에 두고, 손목만 조금 내밀어, 그것도 아주 조금만 내밀어 악수를 한다. 당연히 상대가 반걸음 더 다가오게 된다. 워낙 단구(短軀)의 체격이라 그렇게 보이기도 하지만, 이런 악수 자세가 하루 이틀에 형성된 것이 아니라면, 여기에는 등소평 식의 ‘악수의 철학’이 작동했을 법하다. 작은 체격이지만 조금도 꿀릴 것 없다는 의식, 모든 상황의 중심에 자신이 서 있다는 심리 등이 그의 악수 스타일 속에 있을 법하다. 또 상대로 하여금 자신을 향하여 다가오게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심리적 제압 효과 등이 무의식중에 작동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등소평이 정치적 부침(浮沈)의 과정에서 얻었던 별명이‘작은 거인’인데, 그가 악수를 하는 장면을 보노라면, 정말 ‘작은 거인’같다는 느낌이 든다. 악수는 본래 서양의 풍습이다. 그러나 이제는 세계화된, ‘인사의 양식’으로 굳어졌다. 점잖은 신사들이 그럴듯한 자리에서 악수를 주고받는 장면을 보면, 매우 고상한 행동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악수의 연원은 싸움과 복수가 일상화…
2008-07-01 09:00
								노래방에서 더러 불러보는 흘러간 옛 가요 중에 ‘번지 없는 주막’과 ‘봄날은 간다’라는 노래가 있다. 대중가요이기는 하지만 사람들의 폭넓은 사랑을 받아서 가요로서는 가히 고전의 범주에 드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곡조에 담긴 애환의 분위기도 아련하려니와 가사의 매력이 웬만한 서정시는 저리 가라이다. 젊은 세대에게는 이런 옛날 노래들이 다소 칙칙하고 고리타분하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나도 젊을 때는 그러했으므로), 이 땅에서 살아가는 한국인이라면 중년 고개를 넘어가는 무렵 어디쯤서 아주 자연스럽게 친숙해지는 노래로 다가오게 된다. 노래 어딘가에 숨어 있는 한국적 정서의 원형이 있기 때문에 그러하리라 여겨진다. 이들 두 노래에는 우연히도 ‘맹세’의 장면이 가사로 표현되어 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맹세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맹세 이미지에 겹쳐서 슬픔과 그리움의 정조(情調)가 나붓하게 드리워진다. 아주까리 초롱 밑에 마주 앉아서 따르는 이별주는 불같은 정이었소 귀밑머리 쓰다듬어 맹세는 길어도 못 믿겠소 못 믿겠소 울던 사람아 ‘번지 없는 주막’ 2절 가사 ‘번지 없는 주막’에 나오는 맹세는 기약할 수 없는 맹세이다. 기약이 보이지 않는 맹세는 매달리는…
2008-06-01 09:00
								한때 장안의 인기를 한몸에 모았던 영화 가운데, ‘장군의 아들’이란 작품이 있었다. 청산리 전투로 유명한 독립군 사령관 김좌진 장군의 아들이었던 ‘김두한’의 풍운아적인 젊음과 의협의 이야기를 얼마간은 허구적 픽션을 가미하여 만든 작품이다. 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이 겪었던 억압과 울분을 배경으로, 종로 일대 일본 경찰의 끄나풀 패거리들을 김두한의 주먹이 통쾌하게 짓누르는 이야기는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만했다. 범상한 사람들이 감히 따를 수 없는 뛰어난 주먹의 힘과, 불의를 용서하지 못하는 의협심, 그리고 따르는 무리들을 인간적으로 감동시키는 특유의 카리스마 등을 보면서, 사람들은 장군의 아들에 매료된다. 게다가 사랑 앞에서는 한없는 순정의 화신이 되는 멜로의 요소까지 흠뻑 곁들였으니 이런 캐릭터가 대중의 우상이 아니 될 수 없다. 사람들은 과연 장군의 아들답다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실제로 김두한은 해방 이후에도 ‘장군의 아들’로서 대중적 프리미엄을 누렸고, 이러한 인기를 정치적으로 반영하여, 그는 한때 국회의원의 자리에 나아가기도 하였다. 이 세상에는 실제로 많은 장군들이 있다. 현실적으로 군인은 계급장에 별을 달면 장군으로 칭함을 받는다. 준장에서 대장에…
2008-05-01 09:00부끄러운 고백이지만, 필자는 유명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다녀와서는 좀 참담한 기분이 들 때가 많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명소의 미술관일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그것은 내가 그곳의 작품을 충실하고 진지하게 감상하여, 마침내 의미 있는 미적 즐거움을 맛보았는가 하는 회의가 들기 때문이다. 아마도 런던 대영박물관이나, 루브르 박물관을 가 본 사람은 내 경험을 얼마간은 이해해 주시리라. 몇 해 전 이탈리아에서 학술행사를 마치고, 그 유명하다는 로마의 바티칸 박물관(미술관)을 찾았다. 개장 전 이른 아침에 갔는데도 대기하는 행렬이 엄청나게 길었다. 세계적 미술의 보고(寶庫)를 직접 내 눈으로 본다는 기대감으로 아침 따가운 햇볕 속에서도 한 시간을 기다려, 미술관에 들어갔다. 세계 명작에 대한 미적 동기가 자못 컸다. 처음에는 미술관 입구의 작품들을 진지하게 느껴보려고 애를 썼다. 또 학창 시절 미술 교과서로만 보았던 눈에 익숙한 그림 앞에 서는 반가움에 한참 시선을 주어 무언가를 느껴 보려 하였다. 하지만 모든 작품들 앞에서 그러하지는 못했다. 내 눈에는 모두 비슷비슷해 보이는 수천 점의 작품들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작품들을 사열하듯 걸어가며 솔직히 좀 질리는 기분이었다
2008-04-01 09:00
								칭찬의 교육학이 위세를 얻고 있다. 인격에 대한 인식이 성숙할수록 칭찬의 교육적 가치는 확장된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그렇게 덩치 큰 고래도 칭찬 한 마디에 긍정적으로 변화하여 춤을 추는데, 하물며 사람에게 있어서야 칭찬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할지를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칭찬의 효력을 이렇게 강조하는 데에는 우리네 현실이 그만큼 칭찬에 인색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리라. 또 그만큼 칭찬의 반대편에 놓여 있는 나무람과 꾸짖음이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리라. 스스로 돌아보건대 나는 학생들에게 칭찬을 많이 해 주는 편이다. 교사를 기르는 대학에서 선생을 하려면 ‘교사되기의 원리’를 교수가 모범적으로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요컨대 나는 칭찬에 후한 사람이다. 그런데 드물기는 하지만, 아주 가끔은 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어떤 진정성을 가지고, 학생에게 의미 있는 꾸지람을 해 주고 싶을 때가 있다. 나는 꾸지람을 앞두고서는 몇 번씩 머뭇거리는 편이다. ‘아, 저 학생이 내 꾸지람을 정말 멋있게 수용해 주었으면 참 좋을 텐데. 혹시라도 내 진정한 마음은 전달되지 않고 상처로만 남게 되면, 이 꾸중은
2008-03-01 09:00
								길거리 인터뷰란 것이 있다. 길가나 골목 입구에 카메라를 대기해 놓고 지나가는 행인을 카메라 앞으로 데리고 와서 짧고 간략한 반응을 말해 보게 하는 식의 인터뷰이다. 제야의 종이 울리는 종각 앞에 몰린 군중들을 배경으로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시민의 소망을 인터뷰한다든지, 정부 당국에서 중요한 정치적 결단 같은 것이 내려졌을 때, 각계각층 시민들의 반응을 알아본다든지 할 때, 등장하는 인터뷰 방식이다. 일반 시청자들이야 이런 인터뷰 장면을 보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것이다. 그저 아무나 나와서 자기 생각들을 잘들 말하고 가는구나 하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인터뷰를 직접 진행해 보면 어려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필자는 30대 초반 잠시 방송국 프로듀서로 근무한 적이 있다. 기생충 박멸 운동과 관련한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일을 맡았는데, 시민들의 길거리 인터뷰 장면을 찍어야 했다. 길가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기생충 박멸에 대한 생각을 물어보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길을 막고 물어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카메라 앞으로 자진하여 나와서 인터뷰에 응하겠다는 사람이 없다. 인터뷰할 사람 구하기가…
2008-02-01 09:00덕담(德談)의 계절이 되었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으면서 사람들은 덕담을 나눈다. 올 한 해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덕담’에 담아서 서로 전하기 때문이다. 원래 덕담은 설날 세배 풍속으로, 세배 자리에서 어른이 아랫사람에게 새해의 기원(祈願)으로 주시던 좋은 말씀을 일컫는다. 그러고 보면 세뱃돈이라는 것도 세배 덕담이 변해서 그리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선의(善意)의 기원이 담긴 말들을 그냥 ‘덕담’의 범주에 넣는다. 심지어는 ‘악담(惡談)’의 반대 개념 정도로도 쓰이는 말이 되기도 했다. 얼핏 들으면 악담인데 듣고 보면 덕담의 효과를 내는 말 중에 “그 놈, 제 애비보다 낫다”라는 것이 있다. 겉으로 들으면 ‘나 못 났다’는 지적인데, 돌려서 생각하면 ‘내 자식 잘 났다’는 칭찬으로 들리기 때문이란다. 부모 된 자의 자식 사랑 본능을 잘 반영하는 경우라 하겠다. 또 어떤 사람은 덕담 내용이 확고히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는 뜻에서, 덕담의 시제를 미래형으로 하지 않고 과거형으로 말하기도 한다. “너 공부 열심히 했으니 네가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다”라고 말하는 방식이 바로 그렇다. 말하는 이의 확신감이 느껴져 좋고, 상대로 하여금 ‘나를 이렇게…
2008-01-01 09:00
								기억날지 모르겠지만 모 방송사의 인기 프로그램 중에 전파견문록이란 프로그램이 있었다. 유치원 어린이들이 등장하는 프로그램인데, 막상 이 프로그램은 유치원 어린이 프로그램이 아니라, 일반 어른들이 즐겨 보는 프로그램이었다. 이를테면 유치원 어린이들을 끌어들인 일종의 오락 프로그램인 셈이다. 두 팀의 연예인들이 유치원 어린이들을 상대로 그들의 숨어 있는 마음과 언어를 누가 더 잘 알아맞히는지를 경쟁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유치원 어린이를 두고 양 팀의 대결이 게임하듯이 전개되기 때문에, 오락적 흥미가 높았다. 동시에 유치원 어린이의 순수하고 꾸밈없는 마음과 언어를 감동적으로 발견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었던 프로그램이다. 꼬마들의 말과 생각을 통해서 어른들의 때 묻은 속기(俗氣)를 매우 산뜻하게 반성해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교양성’이 강한 프로그램이기도 했다. 이 방송 프로그램이 크게 인기를 얻게 된 데에는, 제작진이 전문성을 가지고 유치원 어린이들을 상대로 다양하고도 현실감 있는 조사를 계속하고, 그것을 프로그램 제작에 유효적절하게 반영시켰던 데에 있었다. 그 조사 중에 두고두고 흥미와 관심을 끌게 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유치원 어린이 여러분! 선생님 말
2007-12-01 0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