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경제학에서 어떤 행동을 할 때 첫인상이나 자신이 가진 이미지에 의존해 의사결정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류를 ‘앵커링 효과(anchoring effect)’로 설명한다. 앵커는 배를 정박시킬 때 고정하는 닻을 의미한다. 앵커링 효과란 배가 닻을 내리면 닻과 배를 연결한 밧줄의 범위 내에서만 움직일 수 있도록 판단의 범위를 제한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처음에 인상적이었던 숫자나 사물이 기준점이 돼 그 후의 판단에 편파적인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말한다. 인간은 신기하게도 처음 설정한 기준을 기반으로 판단과 행동을 하게 된다. 앵커링 효과에 빠진 학부모 지금의 초·중등 학부모는 앵커링 효과에 빠져든 듯한 인상이다. 다시 말해 교사를 앵커의 범위에 가두려는 경향이 짙다. 학부모들은 자신이 받았던 주입식 학교 교육에 익숙해져 있다. 달라진 교육의 현실과 무관하게 이런 과거의 이미지에 빠져 현재의 학교와 교사를 바라본다. 40~50대 초반의 학부모 세대는 교사의 권위가 우월할 때 학교에 다녔다. 다시 말해 매를 맞으며 교육받은 세대다. 선생님은 다수 학생을 통제하기 위해 부득불 매가 필요했다. 지금과는 너무 다른 학교 분위기이다. 지금은 학생을 비난하
2020-02-25 23:38
“우리 아빤 모닝글로리 사장님이야. 서울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내려오시는데 장난감과 예쁜 옷을 사다 주시지. 우리 4남매는 부모님과 행복하게 살고 있어.” 혜인이는 가족을 이렇게 소개했고 아이들은 혜인이를 부러워했다고 담임 말했다. 내가 혜인이를 처음 만난 건 2017년 7월이었다. 시청에서 복지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분으로부터 초등학생의 딱한 사정을 우연히 듣게 되었다. 베트남 엄마와 한국인 아빠는 이혼 소송 중이고, 큰아이가 3학년 여자아이인데 그 어린 것이 세대주가 되어서 어렵게 살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학교에 몸을 담고 있는 나로서는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혜인이네 4남매와 그 아이들의 엄마를 만나게 되었다. 혜인이 엄마는 베트남에서 시집온 여성으로 비교적 한국말을 잘했다. 그녀는 그간의 사정을 소상히 말해 주었다. 애들 아빠가 자기 이름으로 돈을 빌려 부도를 내고 쫒아냈다는 것, 남편을 피해 무작정 찾아온 곳이 여기고, 아는 사람도, 도와주는 사람도 없어서 살기 막막하다는 것, 시청에서 애들 앞으로 나오는 보조금으로 겨우 살고 있다 했다. 이주여성은 이혼하면 국적이 취소되어 미국적자가 되고 아이들만 놔둘 수 없어서 큰애 앞으로 세대를…
2020-02-18 16:22지난해 10월 발효된 교원지위법을 적용한 학부모에 대한 첫 고발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해10월에는 대구에서 훈육하는 여교사를 폭행한 가해 남자 중학생이 학생으로 처음 고발된 바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해 10월 서대문구 소재 중학교의 한 학부모가 당일 개최되는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장소를 사전 통보받지 못해 자신이 10여 분간 복도에서 대기했다는 이유로 현장에서 학폭위 업무 담당 교사와 자녀의 담임교사 등 두 교사에게 폭언과 욕설을 했다. 당일 학생들과 동료 교직원이 지켜보는 가운데 발생한 학부모의 모욕적인 언행으로 교사들은 이후 특별휴가를 얻어 병원치료·심리치유를 받고 비정기 전보를 신청하기에 이르렀다. 교권 침해에 대한 일대 경종 최근 해당 학교에서는 교권 침해를 한 이 학부모의 형사고발을 서울교육청에 요청했고, 교육청에서는 교권보호위원회를 거쳐 학부모의 언행이 모욕과 공무집행방해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경찰에 고발했다. 이번 고발은 앞으로 교육활동 침해자에 대해서는 엄중하게 대처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개정 교원지위법은 △교권 침해 행위에 대한 고발 의무화 △관할청의 법률지원단 구성·운영 의무화 △피해 교원 특별휴가 부여 등 치유 조치 △교권 침
2020-02-17 14:04
며칠 전 졸업식이 끝난 아이들은 분주하게 인사를 나누고는 썰물처럼 학교를 빠져나갔다. 그렇게 교실을 들락거리며 수업을 열심히 하고 면접 준비를 시켜도, 졸업할 때 찾아와 인사하는 것은 고작 3학년 담임교사에 국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1, 2학년 때 담임까지 찾아와 인사하는 아이는 별로 없다. 교과 수업만 하던 교사까지 찾아오면 ‘희귀종’이다. 하긴 고3 담임 반 아이들조차도 교실에서 손 흔들곤 끝. 교무실까지 찾아와 인사하는 아이는 전교생 중에 다섯 손가락을 꼽을 정도다. 고3 담임 선생님(만) 땡큐! 그렇게 한 해 동안 정들였던 아이들과 이별했다. 새 학년의 배정된 반을 다 불러 주고 빈 교실을 뒷정리하며 혼자 콧날이 시큰했다. 그런데 뒷정리가 끝나도록 기다리며 교실 앞 복도에 혼자 기웃거리던 아이가 있었다. “선생님, 이거... 학기 중에 드리면 선생님께서 절대 안 받으실 것 같아서요.” 낯익은 글자로 쓴 손편지 한 통과 레몬청 한 병. 쑥스러운 듯 건네며 감사했다고 전한다. 이게 뭐냐고 묻자, “선생님, 커피 많이 드시던데 비타민도 보충하셔요.” 하면서 건네고는 서둘러 나갔다. 손에 들려준 편지를 읽다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가정폭력으로 힘든
2020-02-17 14:02
연수나 협의회 등에 참석하면 늘 듣는 이야기가 있다. “바쁘신데 참석해주셔서 감사합니다.”어디서나 비슷한 인사말을 하지만, 으레 하는 말로 듣기에는 선생님들의 표정이 다소 너그럽지 못하다. 선생님들은 정말 바쁘다. 타 직군과 비교를 하는 것이 아니라, 본래의 업무를 수행해내기가 무척이나 어렵고, 바쁘다. 학생을 위한 교사 본연의 업무와 그를 잘하기 위한 준비, 뒤따르는 부수적인 행정, 여기에 더해 각종 행사 등의 주객이 결국 전도되는 모순적인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유행 따르다 보면 본질 잃어 교사의 기본 업무는 학습지도와 학생과의 교감이다. 이 두 영역이 무엇보다 가장 먼저 이뤄야 할 교사의 소명이다. 그러나 이를 위한 고민의 시간 틈으로 최근 경향에 맞는 수업을 잘하기 위한 각종 모임, 매년 성향이 변하는 학생과 공감하기 위한 기법 연수, 여기에 더해 교육적인 수명이 길지 않아 보이는 행사성 업무까지 비집고 들어 온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학생들에게 자기 주도적 학습을 강조하는 교사 본인은 막상, 자기 주도적 고민의 시간을 확보하지 못한다. 결국, 학생의 성장이라는 알맹이 없이 시류에 걸맞은 결과물만 양산해내고 본질을 잃어버린 기계적인 시간만
2020-02-17 14:00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으로 전 세계가 비상사태다. 발병국인 중국에서는 이미 확진자 7만 명, 사망자 1700명을 넘어섰다. 날이 갈수록 확진자와 사망자 수는 증가하는 추세다. 인접국인 우리나라와 일본에는 아직 사망자는 없지만, 확진자가 늘고 있다. 바이러스는 아시아, 유럽, 북미 등으로까지 확산되고 있어 우려가 된다. 단위학교 방역물품 확보 못해 정부에서는 중국 발 입국 제한, 입국자의 격리 수용, 국민 교육·홍보 등의 방역대책을 수립·실행 중이다. 이에 따라 전국의 유·초·중·고·대학교 등 각급 학교도 비상 상태에 돌입했다. 학교별로 줄줄이 개학·졸업·입학식 등을 연기하거나 취소했고, 일부 학교에서는 개학 후 휴교·휴업 중이다. 그런데 전국의 학교가 전염병 확산 방지와 방역 등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가운데, 정부와 교육당국이 보다 적극적으로 종합적이고 총체적인 지원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일선 학교는 개학 연기·휴교·휴업, 의심 환자 출결처리 기준, 관련 의약·방역물품 구입과 행정에 정부와 교육당국의 혼선과 무책임으로 애로가 많은 실정이기 때문이다. 교육기관인 학교의 감염 예방과 방역 활동이 실효를 거두기 위해 국가적
2020-02-17 13:58
“기본에 충실하자.” 새로운 해를 시작할 때마다 항상 되새기고 다짐하는 말이다. 9년째 교무부장을 하다 보니 주변에서 어떤 이들은 ‘이제는 편하겠다’, ‘학년도만 바꾸면 되잖아’라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결코 그렇지 못한 나의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 작은 일에도 최선 다해야 많은 선생님들이 공감하겠지만 자신이 올린 결재 문서가 결재권자에 의해 수정이 되면 유쾌하지만은 않다. 결재 경로를 떠나 자신의 글을 누군가 수정하는 것은 불편함으로 다가온다. 치명적인 오류의 경우는 직접 확인하지만 단순한 표기, 서식 구성의 오류인 경우는 수정 후 결재를 올린다. 결재 이력에서 수정 내용을 확인한 선생님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침묵이나 ‘고맙다’는 인사가 대부분이지만 굳이 그런 것까지 고쳐야 되냐는 불편한 반응도 종종 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나 역시 경력이 짧았을 때는 문서를 작성할 때 불합리하다고 느꼈었다. ‘내용이 중요하지, 점의 위치가 왜 중요하지?’ 힘들게 준비한 결재 문서를 지적하는 관리자 분들이 야속했다. 그런데 기본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왜일까? 나 역시 형식에만 얽매이게 된 걸까? 영
2020-02-17 13:54
지난달 기준으로 올해 명예퇴직을 신청한 교사가 전국적으로 6666명이다. 지난해 1월 6049명에 비해 10.2% 늘어났다. 부산광역시 같은 경우 신청 명예퇴직자의 수가 확보된 퇴직금 예산을 초과해 신청자 687명 중 93명을 반려해야 하는 상황까지 생겼다. 명퇴에 엇갈리는 선후배 마음 매년 꾸준히 명예퇴직을 원하는 교사가 많아진다는 것은 교육계에 결코 긍정적 신호라 할 수 없다. 그 수많은 교사들도 분명 처음에는 교단에서 우수한 인재들을 길러내고 싶었을 텐데, 이제는 조건만 충족되면 떠나고 싶은 공간이 돼버렸다는 얘기니까. 10년 전까지만 해도 교사의 체벌이 현재보다 자유롭고, 더 이전에는 소수의 교사가 체벌을 무작위로 사용했던 때가 있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학생인권이 논의 대상으로 떠오르며 학생들이 보다 나은 환경에서 학교생활을 할 수 있게끔 교육현장은 바뀌어 왔다. 하지만 이의 부작용으로 일어나는 교권의 추락을 충분히 논의하지 않았다. 이제 교육현장에서는 폭주하는 학생을 그 어느 교사도 막을 방법이 없다. 생활지도를 하는데 바로 앞에서 학생이 거울을 꺼내 화장을 고친다거나, 그런 학생의 화장품을 압수하지 못해 보고만 있어야 한다는 얘기는 20
2020-02-17 13:52
2월. 인사 발령과 업무분장으로 마음이 싱숭생숭해져요. 새 학기에는 어떤 학년을 맡을지, 어떤 업무를 하게 될지, 어떤 아이와 어떤 학부모를 만나게 될지. 세상은 온통 알 수 없는 ‘어떤’으로 가득채워지니까요. 설레고 기대된다면 좋겠지만 우리들은 알 수 없는 무언가와 누군가에게 두려움의 색깔을 덧씌우기도 해요. 그래서 설레는 마음보다는 걱정되고 두려운 마음이 더 크게 자리잡기도 해요. 얼마 전, 새 학교로 발령을 받으시는 선생님과 답답한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아~ 이번에 옮기는 학교에서 3학년 담임을 하라고 해요. 자리가 그것 밖에 없대요.” “3학년 괜찮지 않아요? 그래도 완전 저학년도 아니고 괜찮을 것 같기도 한데…….” “3학년은 괜찮은데, 그 학년에 아주 막무가내인 학부모가 있대요. 작년에 민원이 엄청 많아서 동학년 선생님들이 두 손 두 발 다 들었대요.” “아~ 그래서 3학년이 비어있었나보네요. 참 답답한 일이네요.” 새 학교로 옮길 때, 가장 큰 단점은 안 좋은 학년, 안 좋은 업무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이에요. 기득권이 없으니까요. 학교를 옮기시는 선생님들도 막막하지만 기존에 근무하던 선생님들도 다크호스(?)를 만나게 될 가능성이 있어요. 그
2020-02-17 09:38
‘카톡-’ 나른한 주말, 가을 햇살을 받으며 거실 쇼파에 누워있는데, 메시지가 왔다. 작년에 졸업한 제자, 마이크다. 「필승-! 해병 김마익! 쌤- 저 뉴스에 나왔어요 한번 보세요」 첨부한 뉴스 링크를 확인한다. ‘해병대에 자원입대한 외국인 화제’란 기사 그 속에 피부가 유달리 까만 그 아이는 ‘김마익’이란 자신의 이름을 한국식으로 바뀐 이름표를 달고 군복을 입은 채 환히 웃는다. 이제 교정기도 뺏나 보구나. 네 그 모습을 보니 문득 삼 년 전 그날이 떠오른다. 군대를 갓 제대해서 복직했던 내가 너와 처음 교실에서 마주했을 때, 떨리는 마음으로 첫 출석으로 부르려 하는데 유달리 낯선 이름이 있었다. ‘Mike Maurice Gabin’ 그게 너의 이름이었다. 프랑스 선교자인 아버지와 필리핀 어머니 사이의 다문화 가정에서 태어난 너는 유달리 모계의 혈통을 받아서인지 피부는 까맣고 쌍꺼풀은 매우 짙은 전형적인 필리피노였다. 이름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순간 아득했다. 그때 넌 손을 맞잡듯 내 눈을 붙잡으며 서글픈 표정으로 말했다. “저. 저의 이름은 마익크 몰리쓰 가뱅이무니다.” “뭐라구...?” 당황에 빠진 초보 교사를 두고 넌 더욱 어리둥절해 하며 “써,썬생님
2020-02-12 15: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