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카사트(Mary Cassatt, 1844~1926)의 1891년 작품 편지(The Letter)는 책상에 앉은 여성이 편지를 부치기 위해 봉투를 봉인하고 있는 순간을 담은 판화 작품이다. 차가운 겨울 공기 속으로 가늘게 느껴지는 흙 내음이 봄의 소식을 실어 나르는 2월이다. 한 해의 시작이 얼마 전이었건만, 졸업과 종업, 즉 배움의 마감이 있는 시기이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마무리하느라 여념이 없고, 교실 안의 공기는 달라진다. 아이들은 들떠 있고, 교사는 바쁘다. 그사이 설렘과 허전함이 교차한다. 한 해의 시작을 알렸던 1월의 결연한 다짐들이 조금은 익숙해질 무렵, 학교 현장은 다시 한번 ‘이별’과 ‘정리’라는 거대한 변화의 시간을 마주한다. 졸업장 위에 찍히는 붉은 관인, 아이들의 한 해가 기록된 생활기록부의 마지막 문장들, 그리고 정들었던 제자에게 건네는 짧은 편지까지. 2월의 교실은 마침표를 찍는 동시에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설렘과 긴장이 교차하는 공간이다. 거창한 선언보다 내밀한 진심이 필요한 이 시기에 멈춰보고 싶은 작품이 있다. 미국 출신의 인상주의 화가 메리 카사트(Mary Cassatt, 1844~1926)의 작품은 우리의 의미 있는…
2026-02-04 10:00
몇 달 전 스페인 출신 롤라와 소피아 씨가 노벨 문학상 작가 한강의 소설 여수의 사랑 배경지를 여행하는 EBS 프로그램을 보았다. 두 사람은 한국문학번역원에서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롤라와 소피아 씨는 소설 속 ‘오동도의 동백나무들은 언제나 나무껍질 위로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것 같다’는 대목을 술술 외우고 있었다. 필자는 그때까지 이 소설집을 읽지도 않아 처음 들어보는 내용이었다. 명색이 소설 좀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 서둘러 소설집을 구해 읽었다. 여수의 사랑은 한강이 1995년 낸 첫 소설집이다. 표제작 ‘여수의 사랑’은 정선과 자흔이라는 두 20대 여성이 주인공이지만, 20대다운 발랄한 이야기가 아니다. 요즘 젊은 세대가 주로 고민하고 방황하는 취업이나 연애 이야기도 아니다. 딱 한 세대 전인 1990년대 두 20대 여성은 무엇 때문에 지쳐서 힘겹게 살았을까. 트라우마 가진 두 20대 여성 이야기 화자인 정선은 여수가 고향이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죽자, 아버지는 두 딸과 함께 바다로 뛰어들었다. 아버지와 동생은 죽었지만 혼자 살아남았다. 그 트라우마로 고향을 다시 찾지 않았다. 월세를 반분(半分)할 룸메이트로 들어온 자흔은…
2026-02-04 10:00
선생님, 저 신고할 거예요 (신서희·김유미 지음, 카시오페아 펴냄, 292쪽, 1만 8,000원) ‘신고’가 일상이 된 학교 현장의 현실을 교육전문가와 변호사의 시선으로 분석한다. 사소한 다툼조차 학교폭력으로 비화하고, 교육활동이 법적 분쟁으로 치닫는 상황 속에서, 법의 언어와 교육의 언어 사이 균형점을 모색한다. 특히 ‘법률 중심 해결’이 어떤 부작용을 낳는지를 조목조목 짚는다. 저자들은 처벌과 퇴출이 아닌 책임과 회복을 강조하며, 교실이 다시 배움의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는 현실적 해법을 제안한다. 질문하는 방법, 어떻게 가르칠까? (김현주 등 지음, 학교도서관저널 펴냄, 188쪽, 1만 9,000원) 정답 찾는 방법에 익숙한 학생들에게 스스로 질문하는 능력을 길러주기 위한 수업 가이드. 5명의 교사가 학생들의 호기심을 질문으로 발전시키고, 이를 탐구로 연결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소개한다. 질문 수업 과정을 ‘질문 생성(Spark)’, ‘질문 확장(Grow)’, ‘질문 정교화(Focus)’의 3단계로 설계하고, 각 단계에서 활용할 수 있는 질문 도구를 제시한다. 교실에서 바로 적용 가능한 생생한 사례를 통해 질문이 넘치는 교실을 만드는 길잡이가 되어준다.
2026-02-04 10:00
물건을 보지도 않고 돈부터 내는 특이한 시스템, 선분양 청약은 새로 공급되는 아파트를 분양받기 위해 일정한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 신청하는 제도이다. 아직 완공되지 않은 주택에 대해 계약을 먼저 맺고, 이후 일정 기간이 지나 입주하는, 설계도·입지·분양조건을 보고 미래의 주택을 선택하는 구조를 말한다. 이를 ‘선분양’이라고 하는데, 물건의 완성본을 보지 않고 설계도와 모형만 보고 돈을 내게 되는 방식이다. 언뜻 보면 물건도 안 보고 구매를 하는 독특한 시스템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주택시장의 특수한 환경 속에서 이러한 선분양 제도는 일반적인 분양 방식으로 정착되었다. 선분양 방식이 자리 잡은 결정적 계기는 1962년 「주택건설촉진법」 제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국가 주도의 대규모 택지 개발이 시작되면서 막대한 건설 자금이 필요했는데, 은행 대출이나 공공자금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민간 수요자의 ‘미리 돈을 모으고 계약하는 예약금’을 끌어모으는 선분양 방식을 활용한 것이다. 이후 1970~80년대 고도 경제성장기, 서울 및 수도권으로 주택 수요가 폭발하자 선분양은 더욱 공고해졌다. 건설사는 분양 대금을 미리 확보해 사업을 신속히 추진할…
2026-02-04 10:00
천만 감독 류승완이 돌아왔다 … 조인성·박정민 격돌하는 휴민트 설 연휴를 여는 한국 영화 최고 기대작은 류승완 감독의 휴민트다. ‘휴민트’는 사람을 뜻하는 영어 ‘human’과 정보를 뜻하는 ‘intelligence’의 합성어로 스파이와 같은 정보요원 또는 내부 협조자를 통해 얻은 인적정보를 의미한다. 팬데믹을 통과하는 한국 영화 침체기에도 베테랑2(2024, 752만 명), 밀수(2023, 514만 명), 모가디슈(2021. 361만 명)로 연타석 홈런을 기록 중인 류승완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1,341만 관객을 동원한 베테랑(2015) 이후 10년 만에 홈런을 칠 수 있을지 영화계가 주목하고 있다. 휴민트는 비밀도, 진실도 차가운 얼음 바다에 수장되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이들이 격돌하는 이야기를 다뤘다.국정원 블랙요원 조 과장(조인성)이 국제 범죄의 정황을 추적하기 위해 블라디보스토크로 파견되고, 현지에서 북한 식당 종업원 채선화(신세경)와 접선한다. 여기에 지난해 청룡영화상 수상식에서 화사의 축하공연에 여유 있는 눈빛을 선보여 순식간에 ‘국민 전남친’으로 등극한 박정민 배우가 북한 국가보위성 조장 박건 역을 맡아 조인성과 충돌…
2026-02-04 10:00
프롤로그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구입한 차종 중 하나로 ‘산타페’가 있다. 그래서 ‘산타페’가 주도인 미국 뉴멕시코주로 떠나는 여행은 출발 전부터 왠지 모르게 친근하게 느껴졌다. 뉴멕시코주는 면적 31만 5천㎢로 남한의 세 배가 넘는 광대한 땅으로, 고원과 사막이 끝없이 펼쳐진 지역이다. 주 대부분에 건조기후가 분포하여, 기후가 만들어낸 지형은 황량함과 쓸쓸함, 그리고 적막함을 동시에 품고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점이 이 땅을 더욱 새롭고 매력적으로 만든다. 뉴멕시코주는 드넓은 면적만큼이나 깊은 역사의 무대이기도 하다. ‘거룩한 믿음(Holy Faith)’이라는 뜻을 지닌 산타페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주도이자,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가 남아있는 도시다. 나바호족을 비롯한 원주민 자치지역이 지금도 살아 숨 쉬는 이곳은, 동시에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사랑했던 땅이자, 맨해튼 계획의 핵심 거점이었던 로스앨러모스가 자리한 장소이기도 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열기구 축제가 열리는 앨버커키와 UFO·외계인 이야기로 잘 알려진 로스웰 역시 뉴멕시코의 다층적인 역사를 이루는 중요한 공간이다. 라틴아메리카와 앵글로아메리카의 경계가 되는 리오그란데강이 흐르는 이…
2026-02-04 10:00
사회 전반에 혐오가 넘쳐난다. 인터넷에서는 ‘젊은 척하는 영포티’, ‘라도인임? 긁혔나 보네?’, ‘이러니까 맘충소리 듣는 거임’, ‘딸피· 틀발진쉴 새 없이 사고 치는 노인’, ‘딸배거지극혐, 나만 그럼?’, ‘너네 아빠 200충? 300충?’등 특정 집단을 향한 조롱과 혐오가 담긴 영상이 수백만 조회수를 기록하고, 익명 게시판에는 하루에도 수천 개씩 댓글이 달린다. ‘여자 혹은 남자라서’, ‘어리거나 젊거나, 나이가 많아서’, ‘아이를 키우고 있어서’, ‘기득권 세대여서’, ‘키가 작아서’. ‘내가 싫어하는 성격이라서’, ‘국적이 달라서’, ‘특정 직업·지역이라서’, ‘정치 성향이 달라서’…. 이유가 무엇이든 상관없다. ‘내가 속하지 않은 누군가(혹은 집단)’를 향해 불편함·분노·적대감을 서슴없이 표현하며, 서로 헐뜯고 조롱하고 비난한다. 우리는 ‘혐오가 일상화된 사회’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 우리는 언제부터 이토록 서로를 죽도록 미워하게 되었을까? 왜 혐오 표현을 즐기는 걸까? 혐오는 어디에서 자라고, 어떻게 전염되며, 무엇을 먹고 커지는 걸까? 이번 호와 다음 호에서는 밈과 신조어 속에 숨겨진 혐오의 심리학을 통해 혐오 표현의 기원, 확산 메커…
2026-01-06 10:00
위험한 과학책(10주년 기념판) (랜들 먼로 지음, 이지연·장연재 옮김, 시공사 펴냄, 420쪽, 2만 5,000원) 세계적 밀리언셀러 ‘위험한 과학책’이 더욱 풍성한 유머와 최신 정보로 10년 만에 돌아왔다. 이 책은 NASA 출신 웹툰 작가가 독자들에게 받은 기상천외한 질문들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검증한 결과물이다. 저자는 컴퓨터 시뮬레이션, 미분 방정식, 기밀 해제된 군사 문건까지 동원해 독자의 지적 호기심을 해결한다. 이번 10주년 기념판에는 기존 내용의 수정·보강은 물론, 한국 독자를 위한 특별 서문과 사인, 보너스 페이지가 수록됐다. 공짜로는 알 수 없는 아들 설계 비법 0~12세 (김준수 지음, 여의도책방 펴냄, 204쪽, 1만 7,500원) 10년 동안 축구 클럽과 학교에서 2,000여 명의 아이들을 밀착 지도한 ‘아들 특화’ 스포츠 심리 코치가 소개하는 아들 양육법. 스마트폰 중독을 막는 도파민 관리법, 평생 건강을 좌우하는 식습관과 운동 루틴, 그리고 자존감을 높이는 칭찬의 기술까지 바로 실천 가능한 매뉴얼을 담았다. 특히 AI 시대의 핵심 경쟁력으로 ‘자기조절력’과 ‘관계력’을 꼽으며, 이를 길러주기 위한 부모의 역할을 강조한다. 모두
2026-01-06 10:00
우리나라에서 ‘부촌’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은 어디일까? 사람마다 떠올리는 지역은 다를 수 있지만, 대체로 용산의 동부이촌동, 서초의 반포·잠원지구, 강남구 압구정동을 말하곤 한다. 그러나 이 지역들이 처음부터 부촌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동부이촌동은 군사시설과 철도 창고가 자리하던 변두리였고, 반포·잠원 일대는 한강의 모래톱과 습지가 넓게 펼쳐진 황량한 지역이었다. 압구정동 역시 배밭과 농경지가 이어지던 서울 외곽의 조용한 마을에 불과했다. 지금의 부촌은 결코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도시 확장과 경제성장 과정에서 형성된 결과이다. 그렇다면 이런 변두리였던 지역들은 어떻게 한국을 대표하는 최상급 주거지로 도약하게 되었을까? 그 과정에는 단순한 도시 확장 이상의 이야기가 숨어 있다. 국가의 개발 전략, 대규모 공유수면1 매립사업, 건설사들의 이해관계, 그리고 한강이라는 자연적 자원이 지닌 잠재적 가치가 서로 맞물리며 새로운 주거 축을 만들어냈다. 이 과정에서 일부 대기업 건설사에는 사업권과 용지 제공 등 다양한 형태의 특혜가 돌아갔고, 이는 곧 해당 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되기도 했다. 다시 말해, 부촌의 탄생은 자연적으로 형성…
2026-01-06 10:00
20년 만에 복귀하는 김민종 그리고 최지우의 3년 만의 신작 영화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잖아요(1989)에서 단역으로 시작해 드라마 신사의 품격(2012)의 순정남 최윤 역할로 사랑받았고, 가수로 하늘 아래서와 손지창과 2인조 그룹 ‘더 블루’의 너만을 느끼며를 히트시키며 일약 청춘스타로 등극했던 김민종이 피렌체(감독 이창열)로 스크린에 복귀한다. 노 개런티로 참여했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화제가 됐는데, 2005년 관객 1만 4천여 명을 동원한 종려나무 숲(감독 유상욱) 이후 꼭 20년 만이다. 피렌체는 권고사직과 무기력에 시달리며 삶의 방향을 잃은 중년의 ‘석인’(김민종)이 상실의 끝자락에서, 젊은 시절 자신의 열정이 숨 쉬었던 이탈리아 피렌체로 떠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로드무비다. 시간이 멈춘 듯 여전히 아름다운 피렌체 곳곳을 걸으며 석인은 그 시절 단짝 친구의 연인 ‘유정’(예지원)과 재회해 과거 자신이 버리고 떠난 기억과 감정을 마주한다. 범죄도시 4와 공조의 이성제 촬영감독이 피렌체 특유의 빨간 지붕들이 한눈에 보이는 전경과 광장 명소에 인물의 내러티브를 대입해 한 편의 무성영화 같은 웰메이드 로드무비로 완성했다. 인간의 삶과 죽음을 한국적 감성
2026-01-06 1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