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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교육현장에서 디지털 매체 등을 활용해 저작물을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저작권법과 제도의 개정이 추진된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3일 "정규수업 위주로 수업목적 저작물 이용을 허락하는 지금의 저작권 제도로는 다양한 교육 콘텐츠를 활용한 교육기회를 제공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며 관련법 개정을 추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교육계는 현행 수업목적 저작물 이용제도의 문제점으로 ▲시험목적 저작물의 면책 범위 ▲웹상에서 파일 형태 디지털 교과서의 전송 제한 ▲방과 후 학습 등에서 저작물 이용 제한 등을 지적하고 있다. 저작권법은 현재 시험목적일 때는 저작물 이용에 제한을 두지 않고 있으나 특수목적고 등의 기출문제 등을 지방학교나 방과 수업 등에서 학습자료로 활용하는 것은 막고 있다. 책이나 CD 형태의 교과서에서 저작물을 이용하는 것은 면책되지만, 웹상에서 디지털 파일 형태로 전송하는 것은 제한돼 이를 풀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교육계는 또 정규 대면수업에서만 저작물을 이용하도록 하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져 학교장이 관리감독하는 방과 후 수업 등으로 수업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화부 관계자는 "수업목적 저작물 보상금 지급 대상인 교과용 도서에 디지털 교과서를 포함해 이를 전송할 수 있도록 한다거나, 방과 후 학습에 필요한 편집 저작물 등의 활용 방안 등에 대해 각계 의견을 수렴해 관련 법과 제도의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문화부는 이와 관련해 4일 오전 10시 서울역 인근 한국저작권위원회 교육연수원에서 '공교육 활성화를 위한 저작권 제도 개선'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 예정이다. 문화부는 저작권 법·제도 개선을 위해 지난달 20일 성균관대에서 '디지털 시대, 콘텐츠 부가시장의 육성과 권리보호'란 주제로 토론회를 여는 등 다섯 차례에 걸친 릴레이 토론회를 진행 중이며, 이번 토론회는 세 번째다.
저출산·고령화의 영향으로 청소년인구가 해마다 감소하는 가운데 다문화가정의 학생 수는 큰 폭으로 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4세 인구 10명 중 4명은 '직업' 때문에 고민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중고교생의 절반은 '19세 미만 이용불가 게임'을 즐겼다. 통계청은 3일 이같은 내용을 담은 '2011 청소년통계'를 발표했다. ◆청소년 8.8% "자살 생각한 적 있어"…고민거리는 '공부와 직업' 올해 총인구(4898만명)는 전년보다 0.2% 늘었지만, 청소년인구는 1014만명으로 1.4% 감소했다. 총인구 중 9~24세 비중은 20.7%로 1978년 36.9%를 정점으로 계속 감소하고 있다. 6~21세의 학령인구도 줄고 있다. 전체 인구 대비 6~11세의 초등학교 학령인구 비중은 1970년 17.7%에서 2011년 6.4%로 감소해 중·고교와 대학에 비해 감소폭이 가장 컸다. 국제결혼가정의 학생 수도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다문화가정의 학생 수는 3만40명으로 2005년(6121명)보다 5배가량 급증했다. 이 중 초등학생이 전체 국제결혼가정 학생의 78.6%를 차지했으며 다문화가정 학생 중 89.9%는 어머니가 외국인이었다. 15~24세의 37.4%는 아침식사를 하지 않았으며 73.1%는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지 않았다. 2009년 기준 초중고생의 비만율은 13.2%였으며 고도비만 비율은 1.1%였다. 청소년의 사망원인 1순위는 자살이었다. 2009년 기준 15~24세 청소년의 사망원인은 고의적자해(자살)가 10만명당 15.3명으로 가장 많았고, 운수사고(8.4명), 암(3.8명), 심장질환(1.0명) 등의 순이었다. 인구 10만명 당 청소년 자살률은 6.2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는 낮은 편이다. 지난해 15~24세 청소년의 8.8%가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그 이유로 15~19세는 '성적·진학'(53.4%), 20~24세는 '경제적 어려움'(28.1%)을 많이 꼽았다. 15~24세 인구가 가장 고민하는 문제는 공부(38.6%)와 직업(22.9%)이었다. 2002년에는 공부(39.8%)와 외모(19.7%)였다. 20~24세 청년층이 직업 때문에 고민한 비중은 38.5%로, 2002년 8.6%에서 급증한 것으로 나타나 청년층의 취업난이 심각한 수준임을 방증했다. 15~24세 인구 중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비중은 57.5%로 2006년 61.4%에 비해 감소했고, 청소년의 절반 이상(53.3%)은 '남녀가 결혼을 하지 않더라도 함께 살 수 있다'고 생각하고 69.2%는 '외국인과의 결혼해도 상관없다'고 답했다. 부모의 노후 생계에 대한 질문에는 '가족과 정부·사회'가 함께 돌봐야 한다는 의견이 45.2%로 가장 많았고, 가족(40.8%)이 뒤를 이었다. 남자는 가족(43%)이 돌봐야 한다는 응답이 가장 높은 반면 여자는 가족과 정부·사회(48%)가 공동으로 부양해야 한다는 비중이 컸다. 2010년 전국 초중고생의 사교육 참여율은 73.6%로 학교급별로는 초등학생의 참여율이 86.8%로 중학생(72.2%), 고등학생(61.1%)보다 높게 나타났다.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24만원으로 성적 상위 10% 이내 일반계 고교생은 월평균 사교육비로 34만4000원을 지출했다. 지난해 중고교생의 학교생활 만족도 조사 결과 '만족'은 40.1%, '불만족'은 12.3%로 나타났으며, 대학생은 '만족'이 50.1%, '불만족' 8.9%로 나타났다. 가구소득이 높을수록 사교육참여율도 높아 월 소득이 100만원 미만인 경우 학생의 절반이 안 되는 36%만 사교육을 받았지만 600만~700만원은 89.6%가 사교육을 받았다. 2010년 초중고생의 방과후학교 참여율은 절반이 약간 넘는 55.6%였다. 15~25세 청소년의 경제활동참가율은 2004년 34.8% 이후 지속적으로 줄었지만, 작년에는 25.5%로 2009년(25.4%)보다는 소폭 늘었다. 15~24세 실업률은 9.8%로 2009년(9.9%)보다 소폭 감소했다. 19세 이하 청소년 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은 110만6000원이었고, 20~24세 연령층은 138만1000원으로 나타났다. 15~29세 청년층의 첫 직장 근속기간은 평균 1년7개월이며 첫 직장을 이직하는 사유로는 '근로여건 불만족'이 42.5%로 가장 많았다. ◆중학생은 블로그, 고교생은 미니홈피 선호…음란물 이용률 증가 청소년의 지난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이용률을 보면 중학생은 블로그(95.5%)를, 고등학생은 미니홈피(95.6%)를 가장 많이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미투데이 등의 이용률은 대학생이 21.6%로 가장 높았고 고교생 18.0%, 중학생 12.2% 등의 순이었으며 초등학생은 2.6%에 그쳤다. 지난해 하루 1차례 이상 인터넷을 이용한 10대의 비중은 97.3%로 전년보다 0.6%포인트 늘었고 주간 평균 이용시간도 12.4시간으로 전년보다 1.6시간 증가했다. 20대의 인터넷 쇼핑 이용률은 90.1%로 전년보다 1.5%포인트 증가했으며 월평균 쇼핑 금액도 2009년 3만9000원에서 지난해는 5만4000원으로 늘었다. 유해매체를 이용한 경험도 증가세를 보였다. 중고교생의 성인용 간행물 이용 경험은 2009년 35.9%에서 지난해 38.3%로 늘었고 온라인 음란물도 36.6%에서 38.3%로 증가했다. 중고교생 절반(49.5%)이 '19세 미만 이용불가 게임'을 즐겼고 휴대전화 성인매체 이용도 7.5%에 달했다. 이밖에 아버지와 자녀(15~24세) 간 세대의식을 보면 자녀의 51.3%는 일생동안 노력한다면 개인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 아버지 세대(37.0%)보다 계층이동 가능성을 크게 생각한 것으로 조사됐다. 아버지가 자녀를 대학 이상 교육시키려는 이유로 '좋은 직장(48.4%)'과 '인격 및 교양(29.3%)' 등을 꼽았지만, 자녀는 '좋은 직업'(50.2%) 다음으로 '자신의 능력과 소질 개발(32.7%)'을 위해서라고 답했다. 직업을 선택할 때 아버지는 수입(39.9%)을 가장 중요하게 고려한 반면 자녀는 '적성과 흥미'(26.7%)를 선택했다.
다시 스승의 날이다. 부임 당시 80년대 후반의 시절들을 돌이켜본다. 상전벽해의 세월 앞에 격한 회포를 느낀다. 꽃을 들고 교무실 밖을 서성이던 그 소녀는 추억의 뒤안으로 사라졌으며, 진심이 담긴 학부모의 편지는 이미 희미한 옛 그림자가 되었다. 학교의 환경은 변했으며, 교사의 역할도 바뀌었다. 학부모도 달라졌으며, 오늘의 학생들은 새로 거듭났다. 2011년 5월 현재, 학교는 전자화 정보화의 큰 소용돌이에 휩쓸려 있고, 조만간 교육 개방의 큰 틀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교사의 인격적 영향력은 현저히 줄고 있으며, 전문성과 기능성이 나날이 강조되고 있다. 학부모는 교육 수요자로서 강하게 권리를 요구하고 학생들은 인격권과 같은 권리 주장에 능동적으로 변해 있다. 하지만 교육의 환경이 특수하게 변화하더라도 교육의 보편 속성은 남는다. 아니 그대로 남아야 한다. 근본은 있는 법이기 때문이다. 부모, 자식 간의 자애와 공경, 인간 간의 예의, 약자에 대한 배려, 타인과의 소통등은 시공간의 특수성을 뛰어넘는 근본적인 덕목이다. 교육 역시 반드시 그러하다. 누가 뭐래도 이 경우 교육의 주체이자 근본은 역시 교사이다. 교사는 학교 안에서 열린 관계의 동선을 지향해야 한다. 이때의 ‘열린’이라는 것은 선배 교사의 경륜에 대한 경의와 후배 교사의 개성에 대한 사랑이 살아 움직이는 시스템이다. 노장 교사의 경험과 관록, 그리고 소장 교사의 열정과 개성이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학교 관리자의 의견이 존중받고, 평교사들의 창의적 제안들이 수용될 수 있는 현장을 말한다. 교육 행위는 궁극적으로 수업 여건의 개선을 위해 집중화되어야 한다. 결국 교사들의 복지 향상, 노후화된 학교 시설의 설비 투자, 학교 교육의 경쟁력 강화 등 산적한 모든 현안들은 교실 수업을 향해 달려가야 한다. 하지만 학교 현장은 교사들이 산적한 행정적 잡무 처리에 시달리고 있다. 심지어 보직 교사로서 일을 하다 보면 가장 중시해야 할 학교 수업이 뒷전으로 밀리는 어처구니없는 경우도 생겨난다. 서류와 공문에 치이는 데다, 시답잖은 명목으로 장학사라도 내교하는 날이면 수업은 일순 딴전이 된다. 기가 막힌 본말전도이다. 교육의 기초는 교실에서 만나는 교사와 학생 간의 관계를 통해 형성된다. 이 점에서 교사는 무엇보다는 교실의 현장성에 대한 실질적인 인식을 분명히 해 두어야 한다. 아무리 열두 가지 재주가 있다 해도, 수업 능력이 부실하면 일단 교사로서는 부적격이다. 그래야만 교육 관료, 교육 행정가, 교육학자와 구별되는 현장 교사의 정체성에 대한 올바른 자리매김이 될 수 있다. 사교육이나 공교육이나 할 것 없이, 수업 내용을 통해 가르치는 사람의 정체성은 드러난다. 하지만 분명한 차별성이 있다. 사교육은 상업적 효율성을 높이려 그 교수의 방법이나 내용을 독점하는 ‘비법’을 강조한다. 하지만 공교육은 교수의 방법이나 내용을, 그리고 태도까지도 공유하는 ‘나눔’을 강조한다. 그러기에 공교육은 선후배 교사 간의 인격 관계를 통해 멘토로 삼고 배우며 닮아 가는 긍정적인 전염력이 있다. 이는 일종의 학교 학풍으로 확연하게 드러난다. 초임 시절의 목격담이다. 선배 교사들은 수업에 온 진액을 쏟고는 거의 탈진 상태로 교무실에 들어오곤 했다. 그것은 참으로 아름답고도 장엄했다. 선배들은 혼신으로 자신의 에너지를 교실에서 연소하곤 했다. 그 모습은 이후 나태함에 몰리던 시절의 필자에게 큰 자극제이자 각성제가 되어주곤 했다. 개별 학교 평판의 거개는 이러한 ‘현장성’의 힘에서 나온다. 결국 현장 교사가 쓰러져야 할 자리는 다름 아닌 교단인 것이다. 공자는 “가르치는 자는 근본에 힘써야 한다(군자무본)”며 논어 전편에 걸쳐서 ‘무본(務本)’의 필요성을 수없이 강조한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이러한 기본을 너무나 쉽사리 무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용성을 강조하는 현 정권이 교육 문제에 있어 더욱 귀 기울여야 할 필요성이 여기에서 제기된다. 모란이 눈부신 5월, 다시 스승의 날이다. ‘오늘날 스승은 없다’는 사회의 질책이 참으로 뼈저리게 다가온다. 이제 돌이켜 보니, 참으로 스승은커녕 ‘선생 노릇’조차 제대로 하질 못했다. 온통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가득 찼던 세월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흠결이 많아도 여튼 ‘나는 교사이다’ 이 말을 되뇌며 근본을 확립하기 위한 미래의 노력을 다짐해 본다.
올 해로 스승의 날이 30주년을 맞는다. 해가 거듭될수록 학교 선생님들은 우리 사회의 스승 존경 풍토가 사라져가고 있다고 한탄하고, 사회인들은 과거와 달리 학교에 교사는 있으되 스승은 찾아보기가 힘들어져 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이 이야기 속에는 스승 존경 풍토와 전통적 사제지간 부활에 대한 간절한 소망이 담겨 있다. 우리의 소망이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 우리 교육계가 나아갈 방향은 어디일까? 스승에 대해 정의해놓은 가장 오래된 글 중의 하나인 한유의 ‘사설(師說)’에 보면 스승은 도를 전하고, 도를 익히는 데 필요한 공부를 시키며, 의혹을 풀어주는(傳道授業解惑) 사람이라고 정리되어 있다. 즉, 스승은 어느 특정 분야의 지식이나 기능만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한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삶의 자세와 함께 필요한 제반 능력을 길러주고 이를 몸으로 실천하는 사람이다. 이는 오늘날 우리 마음속에 살아 있는 스승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요새 유행하는 ‘멘토’라는 말을 포함하고 있으며 더 넓고 깊은 뜻을 가진 우리말이 바로 ‘스승’임을 알 수 있다. 그 뜻에 비추어볼 때 직업을 기준으로 학교 선생님은 모두 스승이고 학원 강사는 스승이 아니라는 식으로 구분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어느 자리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든 자신이 담당한 교과나 기능만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제자에 대한 진한 사랑을 가지고 제자가 꿈을 이루어가도록 도우며, 진실한 삶을 살아가도록 이끌고 스스로도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스승일 것이다. 이러한 진한 사랑을 몸으로 실천할 때 제자 또한 마음으로부터 그를 스승으로 모시게 되리라 생각된다. 동창회에 나가면 학창시절에 문제 학생으로 낙인찍힌 자신을 붙잡고 어떻게든 바른 길로 가도록 이끌기 위해 밤늦은 시간까지 그리고 휴일까지도 시간을 할애하시던 선생님 이야기를 하는 친구들을 쉽게 만난다. 과거에 이러한 헌신이 가능했던 것은 모든 것을 선생님께 믿고 맡기던 학부모들의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다. 교사는 누구나 ‘자랑스러운 스승의 길’을 갈 것을 다짐하며 교직에 발을 들인다. 우리 사회 또한 학교 선생님은 모두 학생들의 스승이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을 돌이켜보면 여러 이유를 들어 스승이기를 스스로 접는 선생님들이 늘고 있고, 학생들 또한 선생님을 마음의 스승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제30회 스승의 날을 맞이해 각 급 학교에서 사제지간 부활운동을 전개했으면 싶다. 제도에 의해 맺어진 교사와 학생의 관계를 뛰어넘어 스스로 선택하는 스승과 제자의 연을 새롭게 맺었으면 한다. 이 운동은 학생들은 선생님을 스승님으로 부르고, 선생님은 제자의 삶을 이끌고 지식을 전수하기 충분한 인품을 갖추고 몸으로 실천하자는 것이다. 최근 스승이라는 말이 지칭으로만 사용될 뿐 호칭으로서의 역할은 거의 하고 있지 않아 어색하겠지만 자기 선생님을 스승님으로 부르면서 학생들은 제자로서의 예를 배워 갖추어 가기를 바란다. 제자들이 자신을 스승님으로 부르면 선생님 또한 스승의 의미를 새롭게 생각하며 호칭에 걸맞도록 자신을 변화시켜 가리라 기대한다. 미래 인재를 기르기 위해 실시하고 있는 창의·인성교육에서 강조하는 인성교육 또한 지식을 전수하는 교사와 학생의 사이가 아니라 전통적인 사제지간이 부활되어야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 교육계의 이러한 노력이 사회적 호응을 얻도록 하기 위해서는 교육계가 나서서 스승의 날을 선생님의 날로 축소하는 대신 현대인들이 자신의 삶 속에서 스승을 찾고, 사제의 연을 맺어가도록 이끄는 명실상부한 스승의 날로 승격시켰으면 한다. 미래사회에서는 학교의 교사뿐 아니라 사회 각 조직의 구성원들이 교육자로서의 역할을 해야 하고 나아가 미래 세대의 스승이 되어야 한다. 교직단체가 주축이 되어 힘들고 외롭게 미래를 개척해가는 사람들에게 스승의 필요성을 새롭게 인식시켜주고, 스승을 만들도록 격려하며, 나아가 스스로가 스승이 되도록 동기를 부여하기를 기대한다. 학교 현장에는 어려운 현실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제자를 위해 밤을 밝히는 스승이 많고, 스승의 은혜에 감사할 줄 아는 제자도 많다. 1990년대 초 한국을 다녀갔던 미국의 은사님께 한국 여행 소감을 한마디로 정리해보시라고 했더니 스승 존경 풍토가 참으로 부럽다고 하셨던 일이 생각난다. 한국 학생들이 선생님을 대하는 모습은 1960년대 중반까지 미국에서도 볼 수 있었다며 교육의 미래를 위해서는 이를 잘 지켜가야 할 것이라는 말씀도 하셨다. 더 늦기 전에 교사 마음 안에서 잠들어 있는 스승이 깨어나 부활하기를, 그리고 학생과 사회구성원이 자신들의 스승을 모시는 풍토를 우리 사회가 만들어가기를 소망해본다.
국립대 교원 성과연봉제에 따른 연금 운영과 관련해 교과부와 행안부가 이견을 보이는 등 제도 자체가 졸속 추진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교총은 최근 교과부에 보낸 건의서에서 “성과연봉제에 도입에 따른 연금 소요 예측 등이 극히 미흡해 행안부와 마찰을 빚는 등 제도 추진이 졸속”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성과연봉제에 따른 공무원연금 부담 증가 및 손실 보전 계획이 수립되지 않았고, 제도 도입에 따른 연금 추계 시뮬레이션조차 정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교총은 “더 큰 문제는 주무부처인 교과부의 연금산정 방안에 대해 행안부에서 타 직렬 공무원과의 형평성 때문에 수용하기 힘들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라며 “부처 간 조율도 안 된 제도를 성급히 추진하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최근 행안부는 교과부 발표대로 연금지급에 있어 성과연봉에 따른 기준소득월액을 적용할 경우, 공무원 연금부담이 증가하고 타 공무원과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된다며 반대하는 상황이다. 교총은 “국립대 교수의 보수는 평균적으로 사립대학의 85%, 유사 규모 사립대의 최대 65% 수준에 불과하다”며 “그나마 신분의 안정성 등이 유인가로 작용했는데 성과연봉제가 도입되면 직업 안정성을 해치고 생애기대소득의 저하로 우수 교원 확보마저 어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정부가 추가재원을 확보하지 않고, 현재의 성과급 예산과 호봉승급 예산을 주된 재원으로 활용할 경우, 성과가 나쁜 교수의 인센티브를 성과가 좋은 교수에게 밀어주는 식으로 운영돼 구성원 간 협불화만 야기할 우려가 높다”며 추가 재원 확보 등 개선을 촉구했다.
법제화 목전까지 갔던 수석교사제법이 4월 임시국회에서 끝내 처리되지 못했다. “4월에는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약속한 여야 교과위원들이 또 食言하며 법안은 6월 임시국회로 밀렸다. 이에 일선 교원들은 “전교조의 반대도 문제지만 더 큰 요인은 위원들의 무소신”이라고 비판한다. 시범운영 4년차에 들어간 수석교사제는 여야 따로 없이 찬성입장을 밝혀 4월 국회에서 급물살을 타는 듯했다. 2월 안양옥 교총회장과의 정책간담에서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는 “우리 당의 주요 정책 과제로 채택해 추진하겠다”고 말했고, 3월에는 이회창 자유선진당 대표가 “수석교사제는 우리 당의 공약”이라며 “교과위 이상민 의원이 앞장서 법제화되도록 하겠다”고까지 했다. 배석한 이상민 의원은 “여야 간사와 협의해 적극 추진하겠다”고 답했다. 민주당도 반대하지 않았다. 이미 김진표 의원과 김영진 의원이 관련법을 발의한 상태이기도 했다. 4월 1일 민주당 소속 변재일 교과위원장은 “이번에 법제화가 꼭 되도록 하겠다”고 거듭 강조했고, 교과위 소속 민주당 김영진 의원도 4월 6일 송길화 광주교총 회장과의 만남에서 “법 통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교과위 민주당 간사인 안민석 의원을 만난 중등수석교사회에 따르면 “법안을 다루겠다, 처리하겠다고 약속했다”고 밝혔다. 여야 의원들이 모두 법안을 낸 상황도 처리전망을 밝게 했다. 민주당 김진표·김영진 의원, 한나라당 임해규·박보환 의원이 각각 법안을 제출해 교과위에 계류 중이다. 그러나 지난달 26일 열린 마지막 법안소위에서 여야는 네 의원의 수석교사 관련법을 상정만 한 채, 아무런 논의도 없이 산회했다. 이에 대해 법안소위 한 의원실 측은 “야당이 내부형 교장공모제법과 연계 처리하자고 요구해 합의가 안 됐다”며 “좀 더 논의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내부형 교장공모제법은 수석교사법보다 우선 순위로 법안소위에 상정됐다. 이와 관련 민주당 최재성 의원은 그렇다 치고 여당 임해규 의원까지 내부형 교장공모법을 발의(2008년)한 것이 연계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지적이 높다. 결국 수석교사법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여야의 약속은 무기력한 여당과 법안 간 딜을 요구한 야당에 의해 공염불로 끝난 셈이다. 이런 식이면 6월 국회 때도 거래가 시도될 판이다. 이에 대해 일선 교단은 “별개의 법안을 연계하고 발목 잡는 교과위의 행태가 언제까지 계속돼야 하느냐”며 개탄한다. 심지어 전교조 소속 수석교사들은 전교조 본부까지 항의방문 해 “연계 주장을 중단하라”고 요구하기까지 했다. 교총은 “수업을 존중하고 교단교사를 우대하자는 염원을 또 외면한 교과위에 대해 학교 현장의 심판론이 점점 비등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교원이 학생을 잘 가르쳐서 학력을 높여야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학생들을 잘 가르쳐 학력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게 하면 보상으로 성과급을 높은 등급으로 주겠다는 것도 당근책이 될 수 있다. 이를 두고 시비할 사람은 없다고 본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정책에 아무런 문제점은 없을까? 점수를 높이기 위해서는 기본에 충실하여 완전히 이해가 되도록 지도하는 교수법이 필요한데 성과급을 잘 받기위해 교사들에게 경쟁을 시키면 어떤 현상이 나타나는지 그 동안 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겪으며 부작용이 교육계를 슬프게 만들었던 전철을 다시 밟게 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욕심을 내는 교사들은 정도를 걸어가면 뒤진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지름길을 택할 것이다. 즉,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여 시험점수 높이기에 진력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발생되는 부작용은 다음과 같이 예상된다. 사고하고 토론하며 학문의 즐거움을 맛보는 과정을 무시하고 일제 식 암기위주로 수업하고 정리된 지식을 집어넣어 정답만 찾는 훈련에 돌입하게 될 것이다. 이른바 영(零)교시 수업으로부터 쉬는 시간도 없이 교육과정이 변칙적으로 운영해서라도 점수만 올리려고 고군분투(孤軍奮鬪) 할 것이다. 성적이 뒤처지는 학생들은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선생님도, 학교도 싫어지게 될 것이고 친구도 모두 적으로 보이게 될 것이다. 인성이 형성 되고 고민도 많은 사춘기에 그들은 삐뚤어지기 십상이다. 신체적으로 한창 성장하는 시기인데 건강은 돌볼 겨를도 없이 오로지 점수를 잘 받기 위해 채찍을 받고 학업에 대한 희망의 싹은 점점 시들어 갈 것이 아닌가? 이렇게 학력을 높인다는 미명아래 우리의 희망이요 장래 이 나라를 이끌어갈 세대는 나약하게 시들어 갈 수 있기 때문에 걱정이 되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배움에 즐거움을 느끼며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탐구심을 가지고 창조 하는 미래지향적인 인재로 학생들을 키워나가야 하는데 한 줄로 세우는 점수 높이는 교육으로는 발표력을 길러 토론하고 조사 탐구하며 노벨상을 꿈꾸는 학생들은 언제 어떻게 키운단 말인가?
여보와 당신은 한자로 쓴 부부간의 호칭인데 그 동안 세월이 흘러 '여보'와 '당신'이 뒤죽박죽으로 사용하고 있어 안타깝다는 생각이다. 여보는 같을 여(如)자와 보배 보(寶)자로 보배와 같이 소중하고 귀중한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진 호칭으로 남자가 여자를 부를 때 쓰는 말이다. 당신은 마땅할 당(當)자와 몸 신(身)자로 따로 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바로 내 몸과 같다는 말로 여자가 남자를 부를 때 사용하는 말이다. 우리말은 호칭이 너무 다양하고 복잡하여 바르게 사용하기가 힘들 정도이다. 시집간 딸이 우리 집에 와서 제 신랑을 부를 때 '오빠'라고 부른다. 연애시절에 부르던 호칭을 결혼을 하고나서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젊은 부부 중에는 남편을 '오빠'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잘못 사용하는 것이라고 지적을 해줘도 이미 습관이 된 듯하다. 자녀인 아이들이 들으면 엄마와 아빠가 '왜 오빠 사이'인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보고 기성세대가 사용하고 있는 '여보'와 '당신'같은 부부간의 호칭을 사용하기 싫다면 ‘젊은 감각에 어울리는 부부간의 호칭을 만들어 주었어야 하는 것인데’라고 생각하며 호칭을 지어보려 해도 마땅한 말이 없는 것 같다. 도리어 젊은 감각에 맞는 호칭을 그들이 만들어 사용했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한 때 '자기'(自己)라는 말도 썼으나 좋은 호칭은 아닌듯하다. 가장 많이 사용하는 호칭은 아이들이 있을 경우 ○○아빠, ○○엄마라고 부르는 것이 일반적인 것 같다. 부모님이 지어준 좋은 이름을 두고 자식의 이름을 빌려 간접적으로 불러주는 것이 상대방의 입장을 배려해 주는 듯한 인상을 준다. 서양에서는 'I'와 'You'로 단순하게 사용하여 별다른 문제가 없는 것 같다. '여보'의 어원을 부부간에 서로를 부루는 호칭이며 '여기 보시오'가 줄어서 된 말이라고 정의하기도 하는데 여보(女寶)가 한자말인지를 모르고 임의대로 해석하여 진실이 왜곡된 것 같다. 부부간의 호칭은 남편(南便)을 지아비라고 하였고 처(妻)를 지어미라고 하였다. 내가 대상자를 부를 때 여보와 당신 말고도 남편을 서방님, 또는 부군(夫君)이라 했고, 처(아내)는 마누라, 부인(夫人)이라고 했다. 내가 대상자를 말할 때 지아비를 남편, 주인(主人), 바깥양반이라 했고 지어미는 안사람, 내자, 임자(나이가 지긋한 부부 사이에서, 상대편을 서로 이르는 이인칭 대명사)라고 말하기도 한다. 젊은 부부들이 사용할 수 있는 순수한 우리말로 된 호칭을 만들기 위해 명칭공모라도 하여 부르기 좋고 상대방을 사랑하는 아름다운 우리글을 만들어 사용하도록 권장하는 일을 어느 단체가 추진해 보았으면 하는 마음도 들었다. 그리하여 부부의 날에 공표를 하여 사용하면 부부 관계는 물론 행복한 가정이 많이 늘어날 것 같아 지면을 통하여 제안하는 바이다. 호칭은 인간관계를 이어주는 접착제 같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아내를 부를 때 '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는데 이러한 현상은 우리나라의 부부간의 호칭이 다양하지만 썩 마음에 드는 호칭이 없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한자어인 여보, 당신이 중국에서 온 것으로 알 수도 있지만 한자는 학자들이 고증을 통해 연구한 결과 우리의 조상인 동이(東夷)족이 만들었다는 것을 중국의 학자들도 인정을 하고 있다. 여보와 당신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고 사용을 주저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은데 제대로 알고 부른다면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이 생길 것이다. 가정의 달인 오월을 맞이하여 아내를 보배와 같이 생각하고 남편을 내 몸처럼 생각하는 마음으로 가정을 꾸려나간다면 더욱 행복한 가정이 늘어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서림초(학교장 이병로)는3일 학교 제 2컴퓨터실에서 전 교원 41명이 참석한 가운데 박선영 독서담당 교사의 강의로 새로운 도서관 활용 프로그램인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 운영에 대한 연수를 2시간여 동안 진행했다. 충남교육청에서 운영하는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http://reading.edus.or.kr)은 지원시스템을 효율적으로 운영하여 독서교육 활성화 도모하며 학생·교사·학부모의 독서활동의 장 제공 및 독서의욕 고취를 위해 마련되어졌는데 2011학년부터 충남관내 전학교에서 사용되어지고 있다. 이날 연수의 주 내용은 학생 및 교직원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 이용자 등록 방법 안내 및 시스템의 전반적인 이해를 도모하는 시간과 함께 시스템의 효율적인 활용 방안 등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가 함께 진행되어졌다. 이 교장은 “학생들의 창의적인 사고 능력, 문제해결력 등 지적인 역량 강화를 위해서는 어린시절부터 체계적인 독서 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전 교원이 학생 독서지도 역량 강화를 위해 본 연수를 준비했다”고 밝혔다.
“사람은 정직해야 한다.” “거짓말해서는 안 된다.” 아침조회 시간에 훈화로 자주 하는 말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이 말을 너무나 쉽게 잊어버린다. 고3 담임을 할 때 일이다. 입시철이 되어 대학 수시모집에 학생들을 지원시키기 위해 담임추천서를 하루에도 여러 편을 작성한다. 대학입학 서류 마감하는 날이 가까이 다가올수록 그 편수가 늘어난다. 학교생활이 성실한 학생은 학교생활을 있는 그대로 작성하면 문제될 것이 없다. 문제는 학교생활이 근면성실하지 못한 학생의 추천서를 작성할 때는 잠깐 망설인다. 추천서 파일을 클릭한 다음 추천사유를 작성할 때는 사실대로 기록할까? 아니면 학생의 장래를 생각해서 그 학생의 생활태도는 문제가 있더라도 좀 과장해서 기록할까 잠시 망설인다. 그러나 그 망설임은 오래가지 않는다. 이런 학생에게도 근면 성실한 학생이라는 내용으로 작성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성실하지 않은 학생은 이런 나의 모습을 보고 어떻게 생각할까? 얼굴이 뜨거워진다. 그 학생은 대학 입학이라는 절박한 순간이기에 추천서 한 구절에도 아주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이런 학생은 자신의 추천서는 자신의 생활태도는 생각하지 않고 의당 긍정적으로 작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데 있다. 추천서를 작성하는 이 순간에 이 학생은 정직하지 못한 행동을 해도 된다는 것을 잠재적으로 보고 배운다는 사실이다. 물론 추천서는 학생이 그 내용을 알 수 없게 작성한 후 서류봉투에 봉인된 상태에서 대학 관계자에게 제출해야 한다. 그러나 나는 제자들이 대입 면접에서 불이익이라도 당할까봐 그 면접에 임하는 요령은 물론이고 교수님 앞에서 면접에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읽어보게 한다. 늘 성실하게 학교생활을 한 학생은 학교생활을 모범적으로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식이 자기도 모르게 싹 텃을 것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교사로서 부끄러움을 금할 길이 없다. 어떤 상황에서도 학생을 올바른 길로 인도해야 하는 교사가 앞뒤 사리분간을 못하고 왜 이런 비교육적인 방식으로 추천서를 작성했는가? 구차스런 변명을 하자면, 입시를 앞둔 학부모가 이런 고3 담임을 원한다는 사실이다. 입시를 목전에 두고 있는 학부모님들은 이런 교사의 행동을 당연하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만약 담임교사로서 학생들을 1년 관찰하고 학생의 장단점을 있는 그대로 작성한 사실을 학부모님들이 모른다면 그냥 넘어가겠지만 안다면 결코 그냥 지나갈 학부모님은 한 분도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 학부모님은 은연 중에 편법을 조장하고 있고, 담임교사는 어떤 방법을 동원하든지 간에 자기 반 학생들을 명문대학에 많이 진학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심지어는 교육 경력이 30년 이상 된 학교 관리자들도 거의 비슷한 반응 보인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가 편법을 조장하는 사회라고 생각한다. 교육이라는 명목 하에 비교육적인 방법이 동원되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늘 고민했었다. 물론 이것은 아주 작은 문제라고 그냥 넘길 수 있다. 그러나 아주 작은 문제가 우리 사회 전반에서 불신을 조장하는 의식으로 넘쳐나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단계로 넘어가게 되어 있다. 고등학교 입시 담당교사가 대학 입시담당자를 속이는 행위를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하는 사회, 그 추천서를 믿어달라는 소리를 공공연히 하는 얼굴 두꺼운 사람들이 바로 나 자신이었다. 그러다보니 대학 당국자들은 고등학교 추천서를 믿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그로 인해 언론에 알려진 것처럼 모 대학에서는 특정부류의 고교에 유리한 기준을 동원하여 학생들을 선발하다가 시민들로부터 항의를 받은 사태가 일어나지 않았던가. 학생들에게 교육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편법을 먼저 가르쳤던 나 자신을 바라볼 때 한없이 부끄러움을 금할 길이 없다. 이것은 어떤 변명으로도 호도될 수 없다. 나도 모르게 학생들 앞에서 교육을 말하면서 뒤에서는 비교육적인 행동을 할까? 이런 사회에서 성장한 학생들이 대학에 입학한 후에 무엇을 배울까? 청소년기부터 편법을 먼저 배운 학생들이 대학생이 되었다고 해서 민주적인 자세로 거듭 태어날까? 나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학생들이 보고 배운 것이 편법과 힘의 논리를 배웠는데, 어떻게 민주적인 방식이 몸에서 우러나겠는가? 우리 사회가 그것을 요구한다면 그것은 오만이고 욕심이 과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학생들의 머리는 민주적인 방식을 너무나도 잘 안다. 학생들이 평상시 행동과는 별개로 도덕 시험에 100점을 맞는 것과 같다고 본다. 몸과 행동은 별개다. 우리 사회가 편법을 부추기고 지름길을 가르치고 있는데, 머리 좋은 대학생이 지름길을 마다하고 험한 길을 갈 리 없을 것이다. 늘 새로운 안목으로 지성을 더 예리한 칼로 만드는 대학생이 일탈을 일삼는 일이 가끔 언론에 노출되기도 한다. 즉, 대학생들이 지성이라는 칼로 무장한 채 길거리로 뛰어나온다. 이런 행동은 민주주적인 절차를 무시하고 가장 쉽고 가장 빠른 길을 가려고 하는 시도의 일종이다. 그 대학생들은 올바른 길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물론 대학생들은 신선한 지성의 칼을 휘두르면서 사회를 향해 돌을 던진다. 그러면 그 대학생들은 정상적인 길을 가지 않으려할까? 그것은 요즈음 정치인들의 행태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지금의 정치인들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고 싶어 하는 대학을 나오신 분들이다. 정말 머리는 똑똑하신 분들이다. 그러나 그 분들의 행동을 보면 어떠한가? 도저히 대학을 나온 지성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의 행태를 보여주지 않았던가?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정치인들이 해외언론의 조롱거리가 되어도 그 행위를 반복한다는 사실이다. 그 분들은 머리로는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몸이 따라주지 않은 것이다. 몸 따로, 마음 따로 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분들을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우리 교사들이 잘못 가르쳤기 때문이다. 교사들이 수업시간에 말하기의 방식을 제대로 가르쳤던들 그 분들이 자기주장만 늘어놓다가 발생하는 불미스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서로 타협하는 민주주의의 방식을 머리가 아닌 몸으로 이해시켰던들 오늘의 이런 일이 일어났겠는가? 우리 교사들이 대오각성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다시 말해 교사들이 민주적인 절차를 머리로만 가르쳤지 몸으로 가르치지 않은 탓이다. 나처럼 학생들 앞에서 공공연하게 편법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아주 치명적인 머리로만 가르쳤기 때문에 문제가 되었다. 학생들은 머리로 가르친 것은 쉽게 잊어먹지만 몸으로 가르친 것은 절대로 잊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학교 현장에서 아주 미미한 부분이라고 간과한 사실이 아주 큰 사회문제로 국제적 조롱거리가 되어 우리에게 되돌아온 것이다. 얼마 전 있었던 국회 인사청문회를 보면 희극적인 장면이 연출되었다. 때 묻은 사람들이 때 묻었다고 나무라는 장면을 보면 웃음이 나온다. 나는 이 역시 교사의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교사들이 선다형 문제 푸는 요령만을 가르치지 않았는지 묻고 싶다. 사교육을 탓하기 이전에 고3 담임이 명문대에 많이 보내는 것이 최선이라는 의식이 이런 문제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명문대로 많이 보내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창의적인 인간을 만들어서 명문대에 보내 더 훌륭한 인재로 성장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 현장에서 대학입시라는 명목 하에 교육을 한 것이 아니라 대학 입학을 위한 요령을 가르쳐왔다. 오늘 사교육 문제도 경제적인 문제에 접근할 것이 아니라 교육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오늘날 사교육은 학생들이 스스로 공부하는 방법을 잘라버린다는데 더 문제가 된다. 작년에 중학교로 학교를 옮긴 후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 급우를 구타한 일을 지적했는데, 그 학생의 대답은 나를 놀라게 했다.“ 다음에 일등할께요?” 학생의 문제점을 지도하는 현장에서 이 아이는 성적을 올릴 테니 친구간의 문제는 넘어가 달라는 것이다. 그것도 중학생 1학년 학생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 우리 사회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심히 우려되는 대목이다. 그 아이의 생각은 성적만 높이면 모든 것이 문제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참으로 놀라움을 멈출 수 없다. 우리는 공동체 교육을 간과하고 1등만 살아남는 교육을 하고 있다. 교실에서 꼴찌에 대한 배려가 아쉽다. 어쩌면 꼴찌가 우리 사회를 더 건강하게 만들 수 있는데 말이다. 기차가 움직이기 위해서는 철로에 두 가닥 레일 밑에는 수많은 자갈이 레일을 받쳐줄 때 비로소 기차는 균형을 잡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우리 사회는 경쟁도 중요하지만 인성에 바탕을 둔 공동체 교육에 대해 간과해서는 안 된다. 모두 함께 살아가는 아름다운 세상은 만들어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국민 개개인의 의식부터 개혁해야 우리 사회는 건강한 사회로 만들 수 있다. 우리 사회 문제는 남을 탓할 것이 아니라 내 탓이라는 의식이 더욱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최근 일선 학교에 간접 체벌을 허용하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이 발효되면서 전국 시도교육청의 체벌기준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교과부안과 학교인권조례와의 명확한 교통정리가 되어있지 않기때문에몇몇 시도의 일선학교는 더욱 고민에 빠져있다. 교육의 목적이 학생행동의 바람직한 변화에 있다고 볼 때, 교사는 분명히 학생들의 행동을 올바르게 지도해야 한다. 학생의 올바른 행동은 교육이 추구하는 목표이기 때문에 올바르지 못한 행동을 교육적인 지도로 바르게 교정해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잘못된 학생의 행동에 대해서 바로 잡아주는 훈육은 교사의 중요한 역할이다. 한국교총이 최근 수도권의 교사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문제 학생에 대한 지도에 대하여 교사들이 과거의 적극성보다 회피하거나 무시하고 있다. 즉, 학생인권조례의 발표로 교사의 역할이 무기력해지고 사실상 손발을 놓은 상태이다. 학생인권은 학생신분의 최소한의 자유와 권리 보장이다. 이러한 학생인권은 무엇보다 학생들 주생활의 장인 학교가 보장해 주는 것이 필요하나 학생들의 잘못된 행동을 바르게 잡아주지 못하는 교육은 교사의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지 못하는 일인 것이다. 이와는 달리 영국의 정부는 이번에 학교에서 질서를 유지하지 못하면 교사는 효과적으로 가르칠 수 없고, 학생들은 제대로 배울 수 없다면서, 교사들은 교실붕괴를 야기하는 학생들을 퇴실, 퇴학시키고 필요에 따라 학생들의 소지품 검사를 할 수 있는 교육정책을 발표했다. 이번 교과부의 간접체벌 허용은 단위학교의 학칙으로 실시가 가능한 것이다. 학생의 지도는 학생, 학부모, 교사 등 학교구성원의 합의로 학칙이 개정되어 학교별 생활지도가 가능하지만 일부 시·도교육청의 학생인권조례 발표로 일선학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혼란은 초등학교보다는 중·고등학교에서 더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학생들의 관심사인 복장, 두발, 자율학습 등에 대한 규제가 한 순간에 와해됨으로써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학생지도에 새로운 장애들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교육의 크고 작은 걸림돌은 이미 예상되었던 문제들임에도 불구하고 교육차원의 뚜렷한 정책대안을 마련하지 않음이 일선학교의 어려움을 더욱 키운 것이다. 아무리 좋은 정책도 그 시행에 있어서는 불만과 반대가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새로운 정책 시행은 사전에 충분한 여론이나 대안을 다각도로 검토한 다음 신중히 그리고 점진적으로 시행해야 그 충격을 줄일 수 있다.이번에 실시한 학생인권은 이미 학교현장에서도 서서히 변화되어 가는 트랜드이므로 굳이 새로운 교육정책으로 부각시킬 필요는 없었다. 교육수장이 바뀌고 그에 따른 성급한선심성 교육정책 난발은 교육의 새로운 부작용을 낳았다. 더구나 일선학교 교사에 대한 충분한 의견수렴도 없이 시행한 정책이기에 당사자인 학생들을 제외하곤 모두가 걱정하고 염려한 일이었다. 그 결과 학교에 나타난 각가지 혼란은 교육에 또 다른 문제로 대두되었고 이젠 교사가 학생지도에 손을 놓을 정도라면 다시 한 번 함께 생각해야할 일이다.그런데 학교 현장과는 달리 아직도 학원에서는 여전히 체벌이이루어지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모든 교육정책은 공교육이든 사교육이든 구분 없이 적용될 때 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학원 숙제를 학교 수업시간에 하고, 학원공부에 피곤을 학교에서 잠자는 교육을 그대로 놓아두고 공교육 살리자는 것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 교육은 학교교육이 있고 학교교육을 보완하기 위해서 다양한 학원교육이 있는 것이다. 분명히 우리 교육은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그런데도 학생이나 학부모들은 이에 대한 불평이나 불만을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우리교육이 학원교육만큼 그 중요성이나 신뢰성이 없다는 반증이기도한 것이다. 교육은 교사의 권위를 통해서 이루어지며, 학생 훈육은 교사의 권위에서 나온다. 그래서 우리 옛 스승의 훈육방식에서 회초리가 등장된 것이다. 스승은 제자의 잘못된 행동을따끔한 벌로 올바름을 깨우쳐 주어야한다. 학생들의 문제행동을 보고 회피해야 하는 교사는 진정한 교사의 행위가 아니다. 그러므로 교사는 어떤 이유에서든 제자의 바람직한 교육을 방관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서, 학생들의 잘못된 행동은 훈육을 통해 옳고 그름을 반드시 지도해야한다. 요즘처럼교육환경이 어려워지면서 교사의 교육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점점 식어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사의 적극적인 지도 없이 의무감에서 문제 학생을 바라보기만 한다면 우리교육에 희망은 기대하기 어렵다. 진정한 교육은 적절한 훈육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훈육도 과거와는 달리 문제행동을 치유하는 지도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문제 학생을 보듬어 주고 감싸주는 따뜻한 교육애를 발휘하는 교육인 것이다. 이러한 훈육은 체벌이 아니라 자율적인 자성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고 스스로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따뜻한 교육인것이다. 그러므로 바람직한 교사의 훈육은 교육적 사랑이 담겨 있어야 한다. 우리는 교사의 따끔한 말 한마디가 회초리보다 더 아픔을 기억한다. 그래서 학생들의 잘못된 버릇을 고치고, 교사의 칭찬 한마디에 동기를 얻어 성공한 삶을 사는 사람을 많이 보아왔다. 이처럼 교사의 훈육은 학생들과의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하여 서로 얼어붙은 마음을 녹일 수 있는 따뜻한 사제의 정을 돈독히 할수 있고, 또한 새로운 인생의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교사의 훈육은 학생들의 올바른 행동 변화에 가장 중요한 지도요소라고 생각된다. 교육은 성적향상보다 학생의 바람직한 인간형성에 있다.학력제일주의와성적이 교육의 전부인양 생각하는 학부모들의 인식이 사라지지 않은 한 우리 교육은 본질을 외면한 교육에 에너지를 낭비하게 될 것이고, 그결과는 창의와 인성을 지향하는 우리 교육의 목표와도점점 멀어지게 될 것이다. 교사의 학생 훈육이 학생인권에 밀려 그 교육적인 빛을 잃어서는 안 된다.학생들의 바른 행동에는 칭찬과 용기를 주고, 잘못된행동은 바르게 고치도록 지도하는 교사의 훈육이야말로 흔들리는 우리교육을 살리고 바르게 세우는 교사의 역할인 것이다.
내부형 교장공모를 추진했다가 절차상 문제로 교과부로부터 교장임용이 거부됐던 서울 영림중이 교장공모를 재추진하기로 해 논란이 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달 25일 “내부형 교장공모 실시여부에 대해 학부모 및 교직원 의견수렴부터 공모절차를 다시 밟기로 했다”고 밝혔다. 교육청에 따르면 6일까지 학부모 및 교직원 의견수렴을 거쳐 공모에 대한 찬성이 확정되면 23일부터 공고 및 지원자 접수를 시작해 다음달 1일 교장공모심사위원회가 주관하는 1차 심사를 진행 한 뒤 23일 경 최종 임용후보자를 선정해 교과부에 임용 제청할 계획이라는 것. 지원 자격은 종전과 같은 교육경력 20년인 교육공무원이거나 교육경력 15년 이상의 교감또는 교장자격증 소지자다. 강연흥 중등인사담당장학관은 “능력과 품성을 갖춘 학교장이 임용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지속적으로 보완해 나가겠다”며 “학교 심사위원, 외부 운영위원 등에 대한 연수를 철저히 시행해 절차상의 문제를 완벽하게 해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교육청은 이번 재추진하는 영림중 교장공모에 대해 낙관하는 분위기다. 지난번 학부모 및 교직원 설문에서 이미 67%의 찬성을 받은 바 있기 때문에 제도 도입은 어렵지 않을 것이고, 교장임용을 거부했던 교과부에서도 이제까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은 것은 공모교장 추진에 이미 암묵적 동의를 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실제로 교육청 한 관계자는 “이미 교과부와는 비공식적으로 교감은 나눈 상태”라며 “교육청에서 어떤 결정을 하던 교과부가 따라 올 것으로 본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하지만 이번 재공모에 대해 우려와 걱정의 시선도 많다. 이미 지난번 공모에서 임용후보자가 됐다가 교과부에서 거부됐던 박 모 교사가 소송을 진행 중이어서 다른 사람이 이번 공모에서 교장이 되고 박 교사가 소송에서 이길 경우 ‘1학교 2교장’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 때문에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서부교육지원청 관내 한 초등 교장은 “교육청은 우선 박 교사의 법적인 결정이 나올 때까지 재공모여부를 기다렸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교육관련 단체의 반대도 만만치 않다. 서울교총은 당일 바로 성명을 내고 “서울시교육청이 법과 상식을 무시한 오기의 극치로 재공모를 추진하고 있다”며 “교장공모 시행의 법적근거인 ‘초등교원업무처리요령’에 따라 즉시 교장공모제 지정을 철회하고 학교장을 임명하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서울교총 관계자는 “지난 번처럼 불공정 시비가 일어나지 않도록 교총차원에서 감시단을 운영해 절차성 민주성을 확보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영림중과 함께 교장임용이 거부됐던 강원 호반초는 지난달 2일 재공모 절차에 돌입했으나 학교운영위원회가 교장공모제 시행에 반대하며 심사위원회 구성을 거부해 공모일정일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교총은 청소년상담지원센터가 위기 청소년을 조기에 발견하고, 위험에 노출된 청소년을 지원하기 위해 운영하고 있는 ‘1388청소년지원단’의 교사지원단을 모집한다. 현재 2000여명의 교사들이 활동하고 있는 ‘1388교사지원단’은 ▲학교 내외의 위기청소년 발견 시 청소년상담지원센터(전국 전화 1388)로 의뢰 ▲청소년 유해환경 감시 및 고발 등의 청소년 보호활동 ▲청소년 인권보호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및 책임의식 제고활동 ▲학교 내 청소년상담 지원 등을 담당하게 된다. 또한 참여 교사에게는 ▲청소년상담지원센터에서 제공하는 교육(청소년의 문제 행동별 이해 및 대처방안, 심리검사 실시 및 채점 등) 참여 ▲우수교사지원단 표창 ▲1388청소년지원단 홈페이지(club1388.kyci.or.kr)와 메신저를 통한 상담관련 정보/자료 공유 등의 혜택이 주어진다. 매년 1,2학기 2차례씩 모집하고 있는 지원단에 참가하려면 한국교총 홈페이지(www.kfta.or.kr)에서 가입신청서를 다운 받아 작성 후 지역 청소년상담지원센터로 신청서를 보내면 된다. 문의 : 02-570-5573(교총 대외협력국)
“교사 교육 자율성 축소됐다” 56% 교육과정 혼재…종합대책 마련해야 올해부터 2007교육과정 교과서가 전 학년에 배정되고 2009교육과정이 적용되면서 교육과정에 대해 교사·학생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교총이 지난달 19~25일간 전국 초등교사 580명을 대상으로 이메일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전체 교과서 난이도가 이전교과서에 비해 어려워졌다”는 의견이 67.8%로 나타났다. 또 학생들의 교과부담이 어떻게 변했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64.5%가 ‘가중됐다’고 대답했다. 2009교육과정이 ‘학습부담을 줄이고 창의성을 기른다’는 목표와는 달리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학생들이 어려워하는 과목에 대해서는 사회·도덕(38.8%), 수학(26.6%), 과학·실과(11.9%), 국어(10.3%), 영어(5.7%) 순이었다. 창의적 체험활동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답변이 많았다. 교과부는 2009교육과정을 적용하면서 정보통신교육, 보건, 한자 등 3개 과목을 창의적 체험학습과정에 포함시켰다. 이에 대해 재량학습이나 특별활동 수준에 대한 질문에 대해 응답자 중 57.9%가 ‘변화없다’고 답했으며, 특히 ‘퇴보했다’는 의견이 24.8%나 됐다. 반면 ‘개선됐다’는 응답은 17.2%에 불과했다. 2년 단위로 학년군제를 묶는 것에 대해서도 ‘불합리하다’는 의견이 81.7%였다. 현실적으로 2년 단위로 담임을 연임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응답자 중 일부는 “담임교사가 2개 학년치 교과를 자율적으로 가르친다면 학습결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그러나 교과부는 당장 올해 1,2학년부터 2개 학년씩 묶고 수업시간을 20% 범위 내에서 학교 자율적으로 늘리거나 줄일 수 있도록 했다. 교사들의 교육 자율성도 ‘변화없거나 축소됐다’는 의견이 91%나 됐다. 무리한 제도 도입으로 인해 교사들의 수업 자율성이 퇴보됐다는 것이다. 특히 ‘2007교육과정 교과서로 2009교육과정을 가르쳐야 한다’는 푸념이 나오고 있다. 이런 혼란 속에서 개정된 교육과정에 대한 정보 전달도 부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들은 개정교육과정 정보 접근성에 대해 ‘그저 그렇다’는 35.5%, ‘부족하다’는 51.8%로 대답했다. 정보를 얻는 통로는 상급교육기관이 53.8%로 가장 많았다. 그러나 교과부 홈페이지에서 ‘2009 개정교육과정’을 검색하면 가장 최근 자료가 올 1월 27일에 올라온 중학교진로교육매뉴얼이다. 시·도교육청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과목별 보충자료도 부실하거나 다운받아 일일이 출력해서 사용해야 하는 형편이다. 집중이수제 도입도 부담이 되고 있다. 현재 초등의 경우 집중이수제가 학교 자율로 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 학교에서 실시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전학생 문제 등 집중이수제 도입 후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한 대책이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26.6%가 ‘있다’고 답해 집중이수제를 실시하거나 실시할 예정인 것으로 나타났다. 집중이수제 대책 마련은 곧 학교업무부담 가중으로 이어질 수 있다. 서혜정 교총 정책개발국 부장은 “2007교육과정과 2009교육과정이 뒤섞이면서 학교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 확인됐다”며 “개정 교육과정 운영을 위한 교원수급 대책, 교육과정해설서 및 교과서 조속 보급, 창의적 체험활동의 실질적 효과 제고 방안 등 정부가 종합지원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누군가가 유명 연예인의 죽음을 알려준다. 대낮에 웬 헛소리냐며 면박을 주었더니 당장에 확인해보라며 불만 섞인 표정이다.찾아든 인터넷은 만인의 연인이다시피 했던 망자의 사진으로 첫화면부터 도배되어 있다. 경제적인 압박감을 못 이기고 죽음을 택했다는 이야기부터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추측도 모자라 상상에 가까운 말들까지 활개를 친다. 있을 수 있는 일이기는 하나 기구처럼 날아다니는 대중의 입이 거짓이기를 바랐다. 죽음에 대한 무조건적인 모방 심리를 이야기하던 중 갑자기 괴테의 작품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생각났다. 한 사람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과 주인공의 순애보적인 자살로 끝을 맺는 소설 속의 이야기가동쪽의 작은 나라인 우리나라에까지 나비효과처럼 번지어 나갈까 염려가 되어서다. 가까운 친구들과 모인 자리에서도 이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다들 좋아라하는 연예인이 남긴 이야기들로 상다리가 휠 지경이다. 그중에는 그들의 화려한 모습과 남은 가족들을 염려하기도 했다. 대충 이야기가 끝나기를 기다렸던 나는 내놓고 죽은 자를 강한 어조로 대했다. 죽은 자를 다루는 방송가의 상식도 문제 삼았다. 사람의 가치에 높낮이가 있을 수 없지만 자연사도 아닌 자살을 앵무새처럼 방송하는 것은 무언지. 특히나 연예인들의 주검 주변에는 경사스러운 날로 오해할 정도로 걸음하는 촬영인파도 탓했다. 고인을 기리는 뜻에서의 번잡함이라면 말할 필요가 없을 일이지만 그들의 손에 들린 카메라는 오가는 이들을 대상으로 동영상을 찍기에 바쁘니 민망할 따름이다. 이는 망자를 기리는 것이라기보다 우리들의 부끄러운 자화상으로까지 보인다. 생명을 가진 것은 어느 것 없이 죄다동시에 죽음을 선고 받는다. 제한된 삶을 살거라는 예고를 받는 경우가 있는가하면 갈무리 하기에 따라서 길어지기도 한다. 우리들이 하잘 것없다고 짓밟는 잡초만 해도 그렇다. 언제 보았나 싶던 자리에 수북히 무리를 짓던 그들도 또 다른 계절을 두고는 제 모습을 거둔다. 엄밀히 따지면 이는 내일을 기약하려는 자연의 이치요 환경의 변화에 따른 것이다. 꽁꽁 언 겨울날을 맞아 자식 같은 이파리들을 죄다 떨어뜨리며 제 식솔들을 외면하는 나무의 잔혹사도 그런 이유요 과정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찾아오는 또 다른 계절에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지난날의 모습을 되찾게 된다.두 번 다시 고개를 디밀수 없도록 최악의 환경을 만들어 주지만 않는다면 제 삶을 억지로 마감하지는 않는다. 이와 달리 만물의 영장인 인간들 중에는 본인의 죽음에 자식들의 생명줄까지도 근저당 잡히듯 하는 경우가 있다. 이 부분에서는 식물들에서와 같이 고개를 끄덕여 줄 수가 없다. 사람의 마음은 변화가 잦다. 하루에도 수백 번 갰다 흐렸다를 반복한다. 물론 사람의 의지에 따라서 다르기는 하나 모든 이들이 잘못되거나 살기가 힘든다고 자살을 시도하는 것은 아니다. 삶은 화창할 때 보다는 우울할 때가 더 많다. 여지것 살아온 것처럼 살지 못한다고 죽고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삶을 거둔다면 세상은 그 뒷치닥거리에 바쁠것이다. 높은 곳, 전망 좋은 곳으로 올라가 다시 한 번 세상을 바라보면 해도 뜨고 달도 뜬다는 것을 안다. 그것뿐만 아니다. 음지가 있으면 양지가 있다. 미운사람이 있으면 이쁜 사람이 있다.높디 높은 산 위에서 세상의 바다를 내려다보듯한다면 타인이 조금은 이해되고 인생이 그렇게 암흑이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니 힘들더라도 남보다 더 낮은 곳에 자신을 세워둬 볼 일이다. 그것도 아니면 세상과 나를 향하여 상상력의 색안경을 끼거나 자기 최면을 걸어 보면 어떨지. 물론 착각이라는 병명의 상태에까지 다다르는 것은 멀리해야할 일이지만 미세한 먼지 한톨까지도 잡아들이는 현미경으로 내 삶을 관조할 것이 아니고 긍정의 망원경으로 세상의 지평선과 수평선을 바라보면 안될까. 모든 일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부정의 뜻을 안고 있는 'no'도 앞 뒤 순서를 바꾸면 'on'이라는 긍정의 의미를 가져오고 ‘자살’도 바꾸면 ‘살자’가 된다는 이야기는 고전이 된지 오래다.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문자에 있어서도 받침과 점 하나가 엄청난 차이를 갖고 온다. 나와 너, 남과 님, 돈과 독 등의 단어를 한번 떠올려 보았으면 싶다. 단어들의 한 획을 어디에 붙이느냐에 따라서 그 단어가 갖고 있는 뜻은 절묘하게 달라진다. 그렇다. 이렇게 생각의 방향을 어느 쪽으로 하느냐에 따라서 크게는 삶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제 목숨을 어떻게 할 수 있는 나침반이 될 수 있다. 갈등이 없을 수 없지만 쌓지 않아도 될 담을 쌓거나 필요하지 않은 구덩이를 더 이상 파지 말자. 그 담이 거대한 장막이 되고 그 구덩이가 범위를 넓혀 길을 바꾸거나 우리를 덮치는 자연재해로까지 번져 우리들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또 있다. 열 달 동안 배속에 넣어두고 살았을 내 부모의 삶은 어떻게 될까. 물론 죽어가는 많은 이들은 남은 사람들 앞으로 미안한 마음을 기록으로 남기기도 한다. 하지만 산 자의 가슴 한 구석이 송두리째 날아가 버린다는 것을 가볍게 보지 말아야 한다. 희미한 기억 하나가 생각난다. 방송에서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OECD나라들 중에서 전혀 빠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영방송에서의 이야기고 보면 허투로 들리지 않았다. 산 목숨을 함부로 진흙탕에 내어던질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물론 생목숨을 팽개치기까지 고통의 가시밭길을 걷는 기분이었줄 안다. 그래도 자살이 미화되거나 용서되지는 않는다. 꺼져가는 생명줄을 붙들고 나날이 전쟁을 치루는 환우와 그 가족들을 생각해 보라고 한다면 사치요 억지일까. 단지 어떠한 상황에 서 있더라도 삶을 함부로 대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깊다보니 이런 말도 하게 되고 옷에 붙은 찐득이처럼 죽을 각오로 세상 속으로 나를 내몰도록 권하게 된다. 내 생명을 던질 정도로 중요한 일이었다면 지금까지 참고 참았던 바를 마지막 한 번 더 참은들 무에 문제가 있단 말일는지. 나를 버려 얻는 것이 있다할지라도 그로 인해 받는 충격 등을 생각해본다면 구석진 곳에 나를 밀어붙이기 전에 눈높이를 한 단계 더 낮추면 된다. 또한 생명은 나라는 대명사와 같은 뜻으로 이해들하지만 좁게는 가족으로부터 시작해서 넓게는 지구촌으로까지 연결이 되어 있다. 현대인들이 감기처럼 안고 있다는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도 예외일 수 없다. 이 또한 시설물과 같은 물리적인 대책보다도 주변인들이 관심이라는 보약과 치료제로 나서면 충분히 막을 수 있다.자살 전염효과가 더 이상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주변 챙기기에 나서는 우리가 많아져양질의 베르테르 효과가 넘쳐나길바랄뿐이다.
올해부터 교원성과상여금에서 학교별 성과에 따른 집단성과상여금제가 도입되었다. 총 지급액의 10%를 집단성과상여금으로 지급하겠다는 것이 교과부의 방침이다. 학교별로 교원들의 노력에 따라 성과상여금을 다른 학교와 차등지급하는 것이 골자다. 겉으로 보기에는 집단성과상여금제가 상당히 이상적인 제도로 보인다. 실질적으로 집단성과상여금제의 평가방식이 객관적이라면 타당성있는 방안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이번 집단성과상여금제도는 객관성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단위학교에 권한이 많이 이양되고 있는 현실에서 집단성과상여금제도의 도입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아직은 아니라는 생각이 앞선다. 일단 교원개인 성과상여금도 평가기준에서 객관성이 떨어지는 문제를 안고 있는데 여기에 집단성과상여금제를 실시한다는 것은 타오르는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다. 집단성과상여금제도의 기본취지를 이해한다고 해도 현재의 상황은 제도 자체를 받아들이기 어렵다. 학교평가결과와 학교정보공시결과를 활용한다고 하는데, 학교평가결과를 인정하는 경우는 평가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극히 일부학교일 뿐이다. 나머지 학교는 학교평가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동안 수없이 제기되었던 학연, 지연 등에 의해 결과가 달라질 뿐 아니라 단 하룻만에 평가가 이루어지는 것에 대한 불신이 크기 때문이다. 결과를 받아보면 우수한 교육활동으로 표창을 받은 부분이 최하위로 나온다거나, 자타가 인정할 정도로 이웃학교보다 훌륭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음에도 지적을 받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평가가 많다. 학교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다. 또한 정보공시결과에서 평가를 할 수 있는 항목이 학업성취도결과다. 지난해와 비교하여 어느 정도 미도달 학생들의 비율을 낮췄는가가 기준이 될 것인데, 누가 봐도 이 부분은 객관성이 떨어진다. 미도달 학생들이 많은 학교는미도달 학생들을 충분히 줄일 수 있지만, 미도달 학생들이 많지 않은 학교에서는 더이상 줄이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나타난 수치로만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인 것이다. 이렇게 평가가 진행된다면 교사들이 정기인사에서 학교를 골라서 이동하려 할 것이다.특정학교를 선호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학업성취도평가는 같은 학생들이 치르는 것이 아니고, 시험을 치는 중3학생들이 졸업한 후에 또다른 중3학생들이 시험을 보게 된다. 같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지않고 다른 학생들이 대상이 되어 이 결과를 서로 비교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대상이 달라졌는데 결과활용은 그대로 한다는 것에 이해하고 따라줄 수 있는 교사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궁금하다. 결과적으로 집단성과상여금제도는 현 상황에서 적용하기에 상당한 무리가 있다. 기본취지에 공감할 수 있지만 앞으로 풀어야할 난제가 많기 때문이다. 앞으로 적극적으로 학교자율화를 실현해야 할 것이고, 여기에 학생들의 학업성취도에만 매달리는 평가 역시 제고되어야 할 문제이다. 어렵겠지만 모든 학교에 해당되는객관적인 평가지표를 개발해야 한다. 그 지표를 개발하기 이전에는 학교성과상여금제도를 도입해서는 안 된다. 교과부에서는 내년부터 집단성과금의 비율을 높여 나가겠다고 한다. 문제를 자꾸 키우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성과상여금제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각계의 의견을 청취해야 한다. 특히 일선학교 교원들의 의견을 충분히 들어야 한다. 이미 교과부에서 예시안으로 제시된 평가지표를 학교별로 수합하여 분석을 할 필요가 있다. 그 분석을 통해 객관성이 높은 것끼리 묶어서 새로운 지표를 개발해야 한다. 성과상여금을 학교에 던져놓고 알아서 하라는 것은 너무나 무책임한 발상이다. 제대로 된 성과상여금제도를 도입하기 위한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황우여 국회의원이 교권침해 실태파악에 나섰다. 최근 일선학교에는 황우여 의원으로부터 2006년부터 2010년까지의 교권침해 실태 조사에 관한 공문이 내려왔다. 최근 한국교총과 전교조가 실시한 교권침해와 관련된 설문조사에서 서로 다른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대한 논란이 있었던 상황에서 황우여 의원의 교권침해 실태조사는 의미가 있어 보인다. 좀더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서 조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조사공문에 다소 문제가 있어 정확한 실태 파악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첫번째 문제는 최근의 교권침해 실태만 조사대상이 아니고, 2006년부터의 교권침해 실태를 조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립학교의 경우 5년 주기로 교사들이 이동하는 현실을 감안할때 수년전의 자료를 요구하고 있어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기 어려운 부분이 존재하고 있다. 최근 1~2년의 실태는 비교적 정확한 조사가 가능하겠지만 그 이전의 실태파악은 정확성을 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두번째 문제는 교권침해를 당한 당사자를 밝히도록 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교권침해를 당한 교사의 성(김OO, 이OO)을 표기하도록 하고 있다. 일선학교서 정확한 실태를 제공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이다. 교권침해의 횟수만 기재하도록 했다면 어느 정도 신빙성 있는 자료가 될 수 있지만 성을 표기하도록 했기에 해당교사에게는 또다른 교권침해의 소지가 있는 것이다. 성만 기재하는데 무슨 문제가 있겠느냐고 할 수 있지만 해당학교의 교원이나 함께 근무했던 교원들이 보면 당사자가 누구인지 금새 알아볼 수 있어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교권침해 실태를 좀더 정확히 파악해 보고자 하는 황 의원의 의지는 높이 사고 싶다. 그러나 조금만 더 신중하게 생각하고 공문을 내려 보냈다면 자료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교원단체간의 결과에 차이가 나고, 교과부나 시 도교육청에서 의견조사할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에 국회의원이 직접 나섰을 가능성이 높다. 사정이야 어찌 됐던 조사를 한다는 것 자체는 옳았다고 본다. 조사내용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조금더 신중한 검토가 있었다면 신뢰도를 높일 수 있었다는 생각이다. 또한 한꺼번에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지 말고 가장 최근에 있었던 사건을 대상으로 했었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이 든다. 오래된 것을 기억하지 못할 뿐 아니라 기억한다 해도 정확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국회의원들이 학교에 요구하는 자료를 접하다보면 학교현실을 잘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조사 전에 단 몇 명이라도 교사들에게 물었다면 효율적인 조사가 되었을 것이고 조사결과 역시 상당한 타당성을 갖추었을 것이다. 학교의 입장을 이해하면서 조사를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조사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 역시 중요하다.
현대는 경쟁의 시대다. 아이디어는 물론, 기업이나 관공서 등도 경쟁체제이다. 경쟁에서 이기는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경쟁이 없다면 국가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살아남을 수 없다. 세계 각국 역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보이지 않는 전쟁을 하고 있다. 분야를 막론하고 경쟁에서 이기지 못하면 존재가치가 떨어지게 마련이다. 교육도 마찬가지로 경쟁에서 이겨야 살아남을 수 있다. 최근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독서이력도 따지고 보면 경쟁을 유발시키는 것이다. 독서를 많이 해서 그 이력을 쌓아 놓으면 그 학생이 정서적으로 안정된다거나 다양한 지식을 쌓을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인위적으로 경쟁을 유발하여 해결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즉, 대학입시에서 그 이력을 활용해야 하기 때문에 독서이력을 많이 쌓아야 한다는 것이 교육당국의 논리이다. 학생들이 독서보다는 성적경쟁에만 매달리기 때문에 독서이력을 도입했을 것이다. 도입취지에는 공감을 한다. 그러나 상급학교 진학에서 유리해지기 위해서 독서를 해야 하고 그 이력을 쌓아야 한다는 것은 당초부터 잘못된 방향이다. 학생들이 스스로 독서를 하도록 유도했어야 함에도 인위적인 경쟁으로 독서를 하도록 하고, 그 이력을 기록으로 남기도록 함으로써 또다른 경쟁으로 내몰게 된 것이다. 학교별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독서활동을 유도해야 하는 것이 맞는 방향이다. 학원가에서 독서이력을 챙겨주기 위해 독서관련 강좌를 개설하고 있다고 한다. 본인이 직접 책을 읽지 않아도 강의를 통해 책의 내용을 알 수 있도록 한 후 독후감 등을 작성하면서 독서이력에 추가하고 있다고 한다. 정작 학생은 책을 읽지 않고 강의를 들은 후 그 이력을 기록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기록되었다 하더라도 검증을 하기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 생활기록부에 독서이력을 기재하도록 되어 있지만 그 증빙서류는 학생이 보관하도록 하고 있다. 상급학교 진학시에 생활기록부에 기재된 내용의 검증을 위해 자료를 요구하면 해당이력을 제출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증빙자료라야 독후감 작성 등의 포트폴리오가 대부분이겠지만 그 학생이 직접 책을 읽고 작성한 것인지는 영원히 검증하기 어렵게 되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독서이력을 쌓기 위해 사교육을 받는 부분이다. 요즈음의 학생들처럼 하루 하루를 바쁘게 지내는 상황에서 별도의 시간을 내서 독서를 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중학교때부터 대학입시 준비를 하는 것이 요즈음의 현실이다. 따라서 결국은 간편하게 독서이력을 쌓을 수 있는 방법을 찾게되고 그 방법이 바로 사교육을 찾는 것이다. 직접 책을 읽지 않고 강의를 들으면 해결되니, 쉽게 독서이력을 쌓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독서를 하도록 상급학교입시에서 독서이력을 반영하도록 하여 학생들에게 인위적으로 독서를 시키겠다는 생각은 긍정적 측면보다는 부정적 측면이 훨씨 더 많아 보인다. 교과학습에 매달리는 경쟁이 대단한 상황에서 독서에 매달리는 경쟁이 추가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교과목의 학습보다 훨씬더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만 독서이력을 쌓을 수 있는 것이다. 독서를 많이 하는 것이 학생들을 정서적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에는 문제가 없다. 그러나 독서이력을 쌓기 위해 사교육을 찾는 것은 확실히 잘못된 방향이다.앞서 언급했듯이 독서교육을 활성화 시키기 위한 방향으로 정책이 추진돼야 한다. 상급학교 입시와 인위적으로 연계시키는 것은 득보다 실이 더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는 독서와 논술을 교육과정에 편입시키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필요가 있다.인위적인 경쟁유발보다는 교육과정을 통해 체계적인 독서교육을 실시하는 것이 본래의 독서취지를 살릴 수 있는 방안이 아닐까 싶다.
“야, 내가 먼저 왔어.” “아냐, 내가 먼저 왔단 말야.” “얘들아, 또 누가 새치기 하지? 차례대로 줄을 서야지.” “선생님, 오늘은 제 자리에 앉아서 드세요.” “응, 그래. 오늘은 어디에 앉아야지.” “여기요, 여기” 서로들 먼저 왔다고 줄서기부터 실랑이가 벌어지고 자기 자리에 앉으라고 아우성이다. 이것은 우리 반 급식 시간의 진풍경이다. 급식 시간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고기, 튀김, 소시지 같은 반찬을 자기네들에게 나눠주니까 그것을 조금이라도 더 얻어먹으려고 나를 자기들 자리에 앉히려고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학교 급식사고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더구나 6.2 지방 선거에서 진보 교육감이나 보수 교육감은 물론 일부 정치인들도 선거 공약으로 무상급식을 거론하는 등 연일 사회면의 최대 이슈가 학교 급식 문제였다. 그만큼 학교 급식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자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학부모 단체들은 식중독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학교 급식을 최대의 사회 및 교육 문제로 거론하고 이에 여론이 가세하여 여지없이 신문의 사설 내용으로는 학교 급식 문제에 대한 논평이 실린다. 초등학교 교사로서 급식 시간만 되면 다른 때와는 달리 ‘우리 아이들 중에 혹시 식중독은 걸리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지난 여름 방학 때 농업 박물관에서 유초중고 교사를 대상으로 연천 전곡리 구석기 시대 유적지와 김치공장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공장장님께서 김치를 담그기까지의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을 해주셨는데 정말 집에서 담가서 먹는 김치보다 훨씬 더 청결하고 갖은 양념도 많이 들어가서 우리 김치에 대한 믿음이 갔고 기분이 좋았었다. 그런데 김치 공장을 나오면서 씁쓸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학교 급식 시간에 매일 먹는 김치의 가격이 궁금해서 물어봤더니 일반 소비자에게 공급되는 가격에 비해 단가를 맞추다보니 양념이나 다른 재료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담당자 분의 말도 일리는 있지만 아이들이 매일 먹는 급식이 일반인들이 먹는 것에 비해 그 질이 현저하게 떨어진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동안 위탁 급식을 하는 학교에서 많은 문제가 있어왔다. 일부 급식업체는 자신들이 학교에 투자한 시설비와 이윤 등을 고려하여 불법, 편법적인 방법으로 급식을 운영해왔다. 수입농산물을 싼 가격에 대량 구입하여 장기 보관을 위해 다양한 화학물질이 첨가되어 식자재 자체가 건강에 치명적인 위협을 줄 수 있었다. 더구나 한 업체가 여러 학교와 계약을 하여 동일한 식단과 식재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식중독 사고가 대형화될 수밖에 없었다. 또한 한 학교만을 위탁운영해서는 손익이 맞지 않기 때문에 여러 학교와 무리하게 계약을 유지하려고 학교장을 상대로 로비를 벌이는 경우도 있었다. 따라서 이러한 위탁급식의 폐단을 없애고 식중독 사고를 없애기 위해서는 단위학교별로 직영급식을 해야 할 것이다. 또한 급식의 위생 및 안전 점검을 강화해야 한다. 단위 학교의 경우 급식에 필요한 식재료와 우유 등을 납품하는 업체 선정을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시행하고 있다. 우리 학교에도 학교운영위원회 내에 급식소위원회라는 기구가 설치되어 있어 운영위원과 관심 있는 학부모께서 자주 식자재의 위생 및 안전을 점검하고 있다. 그 후로 학교 급식에 대한 믿음도 더 가고 급식을 먹을 때도 안전하고 깨끗하다는 선입견이 들어 참 기분이 좋았다. 현재 급식 전담인력이 부족하여 사전, 사후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급식을 시행하는 학교나 각 기관별로 이러한 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급식의 질을 높이고 안전을 위해서 보다 더 적극적인 생각을 해보면 위생관리인을 의무적으로 고용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예산상의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시행하기 어려운 점도 있을 것이다. 또한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양질의 급식을 제공하기 위해 시설비와 운영비에 대한 별도의 재원을 마련하여 대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급식비를 좀 더 상향 조정하더라도 양질의 재료를 사용하여 학교의 실정에 맞게 학교급식 운영계획을 수립하여 학생들에게 질 좋은 급식을 제공해야 한다. 재정적인 지원뿐만 아니라 행정적인 측면에서도 급식업체에 대한 관리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 현재 일반 식품이 각 시·도의 위생과에서 감독을 하고 있지만 학교급식소의 지도점검은 지역교육청이 맡고 있어 위생 감시 상태가 허술한 실정이다. 더구나 도시락을 납품하는 도시락 제조업체의 경우 대부분 그 시설이나 규모가 매우 영세하여 위생상태가 불량하여 식중독 사고에 많이 노출되어 있다. 그러므로 급식업체에 대한 지도, 감독을 강화하고 업체선정은 투명하고 공정하게 해야 한다. 이러한 전반적인 시스템이 잘 구축되고 학교 급식에 대한 깊은 애정과 관심을 가진다면 학생들에게 보다 양질의 급식이 제공되어 국민건강 증진에 일조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안심하고 급식을 먹을 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 왔으면 좋겠다.
드디어 기대하지도 원하지도 않았던 고3생활에 4월이 지나간다. 과거에 공부를 왜 더 하지 않았는가하는 생각에 후회되고, 무엇인가가 완벽하게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생각에 눈앞이 캄캄하다는 생각이 드는 인생에서 유일한 학년이 고3이라고 본다. 과거에 촐랑대고, 멋모르고 살아왔던 주변의 친구들이 고3이 됨으로써 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고3의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얼마나 중요한 위치에 서 있는가도 알 것 같다. 고3의 현실을 보면 참으로 갑갑하다고 느낀다. 말로만 듣고 선배들에게 간접적으로 경험한 입시전쟁에 직접 참여를 하는 시기기 때문이다. 누구는 논술로, 누구는 적성으로, 누구는 입학사정관제로, 또는 그냥 정시를 치르고 대학 간다는 수많은 주변 친구들을 볼 수 있다. 시간표를 보아도 가관이다. 월~금요일에 외국어와 언어가 들지 않은 날이 없다. 심지어는 필자의 반에는 금요일에 3시간의 영어시간이 들어 있다. 뿐만 아니다. 7교시의 빽빽한 시간표도 모자라서 보충수업까지 시킨다. 그러면 5시 10분이 된다. 6시 까지 밥을 먹고 10시 30분까지 야간자율학습을 한다. 뿐만 아니다. 주말, 공휴일을 불문하고 학교에 나와서 주간자율학습, 야간자율학습을 실시한다. 이것이 대다수 고등학생의 보편적 일상생활이다. 이렇게 공부를 많이 시키는 학교인데 '대다수가 명문대를 보내지 않을까'하는 궁금증도 든다. 물론 학교들을 비판 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한 가지 문제점이 있다고 본다. 공부하기에 앞선 건강한 체력이 필수인데, 체육시간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이다. 필자의 학교에는 체육시간이 1주일에 1시간이다. 그래서 대다수 학생들이 불만이 많다. 언·수·외·탐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필요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체육은 평생을 살아가면서 필요하다. 공부의 효율성을 위해서라도 체력이 우선이 아닌지 싶다. 자율학습시간에 체력이 좋지 않아서 잘 조는 학생들도 체육을 하여서 공부시간 만큼은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 더 효율적인 것은 아닌지, 교육적으로 체육시간의 축소는 오히려 목적전치는 아닌지 갑갑할 나름이다. 따라서 체육시간을늘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