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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변별력, 전문성 낮추도록 변경 의견수렴 어려운 연휴 때 시도 교총 “무자격 측근 꼼수 안돼” 인천시교육청이 교육전문직 임용후보자 전형기준에 대해 변별력은 물론 전문성까지 결여된 방향으로의 개정을 시도해 지역 교육계가 술렁이고 있다. 또 이를 의견수렴이 어려운 단기방학 기간을 이용해 무리하게 통과시키려 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시교육청은 지난달 29일 ‘교육전문직원(장학사·교육연구사) 임용후보자 전형기준 일부개정(안)’을 발표했다. 개정안을 살펴보면 기존의 응시 기준 및 객관적인 전문성 및 변별력을 요하는 정량적인 부분을 대폭 완화하거나 삭제했다. 대신 교육철학과 같은 정성평가 부분을 확대하고 배점을 두 배 이상 높여 코드에 맞는 인사를 뽑기 위한 절차가 아니냐는 의혹만 키우고 있다. 일단 추천기준에서 ‘보직교사·교육행정기관·교육연구(연수)기관 근무경력 합산 1년 이상’을 삭제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기타 필요한 사항은 선발전형 공고 시 추가할 수 있다’는 식의 명확하지 않은 기준을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전형구분의 경우 2차 전형 응시대상을 1차 전형 결과 상위자 순으로 2배수 이내 인원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것에서 4배수로 대폭 늘리기로 했다. 서류전형도 경력·연구대회입상실적·학위취득실적 등도 삭제키로 하면서 배점도 없애고 적부 기준으로 삼을 예정이다. 필기시험에서 전문직소양평가를 삭제하고 배점을 33%에서 25%로 낮추는가 하면, 면접시험과 실적 및 직무수행능력평가에서 배점을 기존 35%에서 75%로 대폭 높인다. 시교육청은 “폭넓게 장학사 문호를 개방한다는 취지”라고 하지만, 현장 교사들 생각은 다르다. ‘코드인사 등용문을 위한 꼼수’라는 목소리가 높다. 또 이를 5월 4일까지 의견수렴 한다는 공문을 관내 학교에 발송한 것에 대해 기간이 너무 짧다는 반발이 일자 11일까지 연장했다. 그러나 표면상 7일을 연장한 것처럼 보일 뿐 이 기간은 연휴에 단기방학 중인 곳이 많아 사실상 2~4일 정도 늘린 효과에 그친다. ‘너무 노골적인 강행’이란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인천 A초 B교사는 “그동안 전문직 시험을 위해 노력해온 교사들을 무시한 처사”라며 “동료들에게 인정받지 못할 정도로 근무평정이 낮은 교사들이 장학사가 된다면 누구도 납득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인천교총(회장 박등배)은 “더 이상 측근인사, 무자격자 중용 인사를 간과할 수 없다”라면서 “선출직 교육감이 공약 실천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나 각종 인사와 관련된 개정은 공약실천을 위한 준비라기보다는 선거 승리에 공헌한 조력자들을 위한 논공행상의 성격일 뿐”이라고 밝혔다. 이어 “개정 절차 및 개정 내용에서 우려되는 문제제기를 교육감은 무겁게 받아들이고 충분한 여론 수렴과 협의를 통해 교직의 전문성을 신장할 수 있도록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가산점 내년 전면 폐지, 관련 업무 과중 전망 “스카우트 지도보다 못한 취급에 실망감 커” “만족도 90% 안정된 정책 왜 망치는지 이해 불가” 서울시교육청이소외계층학생들에게 교육·복지·문화적 혜택을 주기 위해 만들어져 10여 년 간 학생·학부모에게 호평을 받고 있는 교육복지특별지원사업(교복특)을 올해 대폭 손질해 논란이다. ‘도리어 혜택을 주기 힘들게끔 변경됐다’는 불만이 나오면서 결국 해당 학생들에게 피해가 돌아갈 것이란 우려를 낳고 있다. 교복특은 10년 이상 진행되면서 제도가 잘 안착돼 학생·학부모 모두에게 만족도가 매우 높은 정책으로 인정받고 있다. 지난해 기준 학생 88.5%, 학부모 92.1%가 만족했다. 프로그램 참여도는 초·중·고 합계 81.8%로 매우 높으며 프로그램을 통한 학교폭력 및 무단결석 정도 역시 향상됐다. 교사 및 지역전문가 등의 호응 또한 높아 사업의 교육적 효과성, 학교 구성원의 참여도 등 사업운영에 대해 92.33가 만족감을 보였다. 이들은 “아이들이 변하는 걸 몸소 체험하면서 보람을 느낀다”고 입을 모았다. 이처럼 교육구성원 모두가 만족할 만큼 선순환 구조로 연착륙한 상황이다. 그런데 시교육청이 좋은 흐름을 타고 있는 이 정책에 굳이 손을 대면서 교육구성원들로 하여금 ‘개악’을 시도한다는 걱정을 사고 있다. 현재 교복특은 교내 법정저소득가정 학생 수에 따라 중점학교(40명 이상)와 일반학교(10명 이상)로 나눠지는데, 중점학교의 경우 지역사회교육전문가를 실무인력으로 둘 수 있고 교원정원 20%(학교장 추천 10% 추가 가능)에게 유공교원 가산점을 주고 있다. 반면 일반학교는 실무인력 배치와 가산점 부여가 불가하고 예산만 지원받는 형식으로 운영된다. 그런데 시교육청은 중점학교에서 교원 참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유공교원 가산점을 내년부터 전면 폐지하기로 했다. 최근 4년 간 비율을 계속 줄이더니 아예 없애기로 한 것이다. 여기에 최근 시교육청이 교원들에게 교과·생활지도 외에 업무를 맡지 않도록 지침을 내린 것과 맞물려 교복특 참여 교원은 대폭 줄어들 전망이다. 반면 스카우트·RCY와 같은 청소년단체활동 지도교사 가산점은 유지될 것으로 알려져 논란은 더 커지고 있다. 소외된 아이들을 돕는 교복특 업무가 청소년단체활동 지도에 비해 의미가 적지 않음에도 가산점을 받지 못하니 교복특 업무 기피는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올해부터 일반학교만 대폭 확대했는데 이 경우 실무인력을 둘 수 없고 교사 가산점도 주지 못해 교내의 소수 교원만 일거리를 떠안게 된다. 당연히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될 공산이 크다. 따라서 차라리 예산지원을 안 받겠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다. 지정된 일반학교 관계자들은 폭탄을 안은 것 마냥 울상을 짓고 있다. 실제 올해 교복특 일반학교로 지정돼 해당 업무를 맡은 A초 B교사는 “해당 아이 부모에게 일일이 전화하는 것부터 프로그램 운영까지 맡고 있으며, 평일보다 토요일에 프로그램 활동을 해야 하는 만큼 여러 가지로 업무가 과중하다”며 “그런데 스카우트 대장을 맡고 있는 교사들은 가산점을 받고 있고 난 그렇지 못하니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껴 더 힘들다”고 한숨을 쉬었다. 중점학교를 운영 중인 C초 D교장은 “내년부터 200명이 넘는 교내 소외계층 아이들을 어떻게 끌고 갈지 벌써부터 걱정”이라며 “이럴 바에 예산을 지역에 지원하는 것으로 전환해 학교에 짐을 지우지 않게 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이어 “아이들에게 돌아갈 혜택이 행여나 줄어들까봐 걱정된다”면서 “잘 되고 있는 정책에 왜 굳이 손을 대 망치는지 모르겠다”고 혀를 찼다. 그러면서도 시교육청은 일반학교만 확 늘려놓고 교복특 대상 학교 수를 대폭 확대했다는 식으로 자랑하듯 홍보해 빈축을 사고 있다. 실제 시교육청은 지난 2월초에 ‘교복특 지원을 지난해 353개에서 올해 828개로 두 배 이상 대폭 늘렸다’는 내용으로 보도자료를 낸 바 있다. 속속들이 들여다보면 폐해가 클 게 자명한 데 이를 감추기 위한 ‘정치적 홍보’를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낳고 있다. 조희연 교육감 역시 이런 문제점을 파악하고 지금처럼 정책이 전환되는 것을 반대했으나 담당 과에서 묵살했다는 소문도 떠돌고 있다. 또 시교육청 측은 교복특 가산점이 폐지되는 대신 학교교육력 제고 가산점 활용을 권하고 있지만, 이는 사업계획서를 잘 만들어야 가산점을 받을 수 있는 만큼 현장에서 실천하는 교원들이 되레 외면 받는 상황이 벌어진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이에 대해 시교육청 참여협력담당과 담당자는 “교복특 유공교원 가산점 폐지의 경우 가산점을 받는 교원 전체 중 차지하는 비율이 절반을 넘을 만큼 너무 많다고 지적돼 어쩔 수 없다”면서 “일반학교 예산을 지역연계로 돌리는 것 역시 아직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매년 스승의날·스승주간이 돌아오면 교원의 공로를 재조명하고 스승존중 문화를 조성하겠다는 다짐이 곳곳에서 나온다. 그러나 정작 교원 체감하는 교단 현실은 해가 갈수록 나빠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총이 지난주 발표한 2014년 교권실태와 제34회 스승의 날 기념 교원 인식 설문조사 결과에는 이런 교직사회의 분위기가 그대로 드러난다. □ 2014년 교권회복·교직상담 결과 교육구성원 갈등 속 교권 추락 상담사례 10년 새 2.5배 급증 교총 "교원이 스스로 나서자" 학생교육을 위해 교원-학부모-교직원-학생 간 신뢰회복이 급선무인 것으로 확인됐다. 13일 교총이 발표한 '2014년도 교권회복 및 교직상담 결과'에 따르면 지난 한 해 교권침해 상담사례 건수는 총 439건으로 지난 10년간 2.5배나 증가했다. 2010년 260건에 비해서는 68.8%, 2013년 394건보다는 11.4% 늘었다. 이들 사례는 대부분 교육공동체 간 갈등에서 비롯된 것으로 나타났다. 학부모에 의한 피해가 232건(52.9%)으로 절반이 넘었고, ▲처분권자에 의한 신분피해 81건(18.5%) ▲교직원에 의한 피해 69건(15.7%) ▲학생에 의한 피해 41건(9.3%)도 많았다. 제3자에 의한 피해는 16건(3.6%)에 불과했다. 교원과 학부모 간 갈등은 학교폭력 처리 과정(33.6%)에서 빚어지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 학교안전사고(25.86%)와 학생지도(20.2%) 관련 사안도 많은 것으로 분석됐다. 교총은 교권사건 증가의 원인이 교원-학부모 간 학생교육에 대한 교육철학 간극 심화, 그리고 교육행정기관의 교육실험 정책 남발과 행정업무 부담에 따른 교직사회의 자조적 분위기 확산 등에 따른 것으로 분석했다. 교원에 대한 사회적 인식 평가 절하에 따른 사기저하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개선방안으로는 ▲교원들의 주체적 노력을 통한 참여와 협치 구조로의 전환으로 예방적 교권 확립 ▲사회적 공헌활동을 통한 사회 속에 신뢰받는 새로운 교원상 구축 ▲세계 속에 긍정적인 대한민국 교원상 정립 등을 제안했다. 안양옥 교총 회장은 "현실 개선을 위해 제도적 보완도 필요하지만 교육공동체 간 신뢰회복을 위한 참여와 협치가 필요할 뿐 아니라, 교원이 주체가 되어 스스로 교권 침해를 예방하는 '새로운 교원상' 정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교원 스스로 자긍심과 교권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다할 때 자연스럽게 국가․사회가 ‘교원 자긍심과 교권보호를 해야겠다’는 방향으로 인식을 전환하게 될 것”이라며 “학생, 학부모, 지역사회 간 유대관계 확대와 봉사 등 사회적 공헌활동을 통해 스승 공경 풍토가 자연히 정착되도록 전국 교육자들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동참을 호소했다. □ 제34회 스승의 날 교원인식조사 교원들 "새로운 교원像 정립 위해 사회공헌·인성교육 실천 필요" 교원 72% "학사모일체운동 공감" 교원들은 국가·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새로운 교원상 정립을 위해 적극적 사회공헌과 인성교육 실천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교총이 제34회 스승의 날을 맞아 5월 8일~12일 전국 교원 220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온라인 설문조사에서 교원 35.3%는 새로운 교원상 정립을 위한 가장 좋은 방법으로 '사회적 공헌활동의 적극적 참여와 인성교육 실천'을 꼽았다. 이어 ▲전문직으로서 교과 연구전문성 향상 노력(29.9%) ▲제자들에 대한 사랑실천(18.8%) ▲학부모 및 지역사회와의 유대관계 형성 노력(12.9%)가 선택됐다. 학사모일체(學師母一體)운동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72%가 동의한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동의하지 않는다는 10.2%에 불과했다. 이는 현재 학교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갈등과 문제 해소를 위해 교원과 학부모 간 교육철학의 간극 해소가 절실하다는 현장 의견이 반영된 결과로 분석된다. 매년 스승의 날 전후로 부각되는 촌지문제 해소를 위한 방안을 묻는 질문에는 교직사회 스스로 물질적 촌지는 단호히 배격하고 감사 나누기 등 마음을 주고받는 문화로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이 62.3%로 가장 많았다. 쌍벌제 도입이 23.1%로 다음을 차지했고, 학부모대상 윤리 교육 및 캠페인 강화(8.9%), 교직윤리 캠페인 강화(3.6%), 교원에 대한 제도적 처벌 강화(2.2%)가 뒤를 이었다.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보장’ 여부에 대해서는 '지켜지지 않고 있다'(46.1%)는 응답이 '지켜지고 있다'(19.7%)보다 두 배 이상 높게 나와 제도적 정비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교직사회의 사기 변화를 묻는 질문에는 75%가 '떨어졌다'고 응답해 사기저하가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 명퇴증가 이유에 대해서는 55.8%가 교권하락 및 생활지도 어려움을 선택, 연금법 개정(34.7%)보다 훨씬 높게 나타났다. 경제‧사회적 환경변화 보다는 교권하락 등에 따른 정서적인 환경변화가 교직사회에 더 큰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한편 최근 강조되고 있는 인성교육이 활성화 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선언적이고 표면적인 인성교육'(30.8%)에 대한 지적이 가장 많았다. 또한 인성교육 실천을 위해 학교교육에서 강화돼야 할 것으로는 '가정과 지역사회와의 연계'(55.5%) '바른 인성 생활화를 위한 환경 조성'(16.0%) 등이 강조됐다. 교과내용의 질과 난이도에 대한 질문에는 '적정하다'는 응답이 31.3%에 불과했다. 교직생활에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경우는 '성취감을 느낄 때'(28.0%)와 '학생으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다고 느낄 때'(20.2%)로 조사됐고, 가장 바람직한 유형의 교원으로는 '교직관이 뚜렷하고 긍정적인 선생님'(39.6%)과 '적극적인 사고와 열정 있는 선생님'(34.0%)이 많이 선택됐다. 가장 바람직한 학생상으로는 '인의예지를 갖춘 예절바른 학생'(40.9%), '교우와 친화력과 협동심이 많은 학생(33.8%)'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안양옥 교총 회장은 “교원 사기는 교육의 질과 직결된다”며 “설문결과 물질적인 보상보다는 존경과 예우, 교육할 권리 보장 등에 대한 요구가 큰 만큼 현장 교원들의 자존감을 세우고 자상하게 마음을 보듬을 수 있는 정책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학교시설물에 대한 안전관리가 허점투성이라는 감사원 감사결과가 나왔다. 감사원이 12일 공개한 '학교 안전관리(시는·교육) 실태 감사결과보고서'에 따르면 복지사업 확대에 따라 교육환경개선비가 크게 축소돼 노후시설이 위험한 상태로 방치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4년 6월말 기준 전체 학교시설 3만3303동 중 40년 이상 노후시설은 4723동이나 된다. 시·도교육청에 교부되는 교육환경개선비는 2011년 1조500억 원에서 2014년 1조9200억 원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지만, 예산편성액은 되레 2011년 1조5140억 원에서 2014년 8830억 원으로 크게 줄었다. 학교시설 확충과 개선에 사용되는 교육여건개선시설 사업비 역시 2010년 5조4830억원에서 2013년 4조7076억원으로 줄었다. 반면, 누리과정, 무상급식 등 교육복지지원 사업비는 같은 기간 1조9544억원에서 5조1273억 원으로 3조1729억 원(162.3%) 증가했다. 감사원은 인건비, 학교운영비, 교육복지비 등을 우선 배정한 후 나머지를 교육환경개선비로 책정하는 교육청 예산 편성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개선을 요구했다. 안전 점검에도 문제가 많았다. 전국의 학교시설 안전점검 담당 학교직원 1만1062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전문가로부터 안전점검 교육을 받은 사람은 17.9%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부분(75.2%) 교육청이 제작한 매뉴얼이나 공문으로 지식을 습득했다고 응답했고, 지식습득 경로를 모른다는 응답자도 4.8%나 됐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점검이 제대로 점검될 리 없었다. 응답자의 80.4%가 점검에 대한 지식이 없어 외관균열 등 육안으로 보이는 것만 확인하거나, 변동이 없는 것으로 보고했다고 답했다. 점검사항을 정확히 숙지 후 점검결과를 보고했다는 응답자는 19.1%에 불과했다. 감사원이 감사기간 중 40년 이상 C등급(보통) 424동과 기타 안전진단이 필요한 것으로 판단된 240동 등 총664동에 대해 정밀점검을 실시한 결과 A등급(우수)이 23동에서 B등급(양호) 19동, C등급 3동, D등급(미흡·긴급한 보수·보강 및 사용제한 여부 판단 필요) 1동으로 변경되는 등 31.5%에 해당하는 209동의 안전등급이 다르게 나왔다. 119동(17.9%)의 안전등급이 하향됐고, 이 중 28동(4.2%)은 A·B·C등급에서 재난위험시설 등급인 D등급으로 낮아졌다. 감사원은 교육부에 중·장기유리관리계획을 세워 해당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점검반이 주기적으로 안전점검을 실시하고, 불가피한 경우 담당 교직원이나 공무원을 대상으로 안전점검 교육을 실시하는 등의 방안을 마련할 것을 통보했다.
일본 청소년들의 스마트폰 소지율이 70%를 넘어서면서 학습장애, 따돌림(이지매), 정서장애등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스마트폰을 이용한 교묘한 따돌림으로 언어폭력을 견디다 못한 학생이 자살하는 사건도 일어나고 있다. 이 때문에 이같은 부작용을 막기 위한 학교와 학부모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일본은 원칙적으로 초등학생이 휴대폰을 가지고 등교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학교에서 휴대폰 소지가 결코 교육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러나 스마트폰을 수업에 활용하는 상황에서 이를 금지하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교육전문가의 반대의견도 만만치 않다. 맞벌이를 하는 학부모들은 사건, 사고가 빈번한 환경 속에서 자녀들의 소재 파악이나 안전을 확인하기 위해 휴대폰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신학기가 되면 어린 자녀들에게 스마트폰을 사줘야 하는지 고민하는 학부모가 늘어나고 있다. 자기 자녀만 스마트폰이 없으면 또래 집단에서 소외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도 드는 반면 스마트폰의 부작용도 염려되기 때문이다. 일본의 소비자보호센터에는 부모의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다가 고가의 앱을 구입, 대금을 청구당해 상담을 하는 가정이 늘어나고 있다. 2009년에 2건이었던 상담이 2014년부터 지난 2월까지 6만 건이 넘을 정도라고 한다. 특히, 계약이 끝나 사용하지 않는 부모의 중고 스마트폰을 쓰는 학생들이 더 문제가 되고 있다. 중고 스마트폰은 어린이 유해사이트 차단방지가 없기 때문에 무차별적으로 어린이가 유해 환경에 노출되고 있어서다. 그러나 점차 스마트폰 보급이 시대적 대세이고 학교 현장에서도 이를 수업에 이용하므로 어린 자녀들이 스마트폰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현실적인 부모의 교육방법이라는 생각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에 따라 인터넷 사업자들을 중심으로 ‘어린이들의 인터넷 이용에 대해 생각하는 연구회’를 구성해 올바른 스마트폰 이용 방법 알리기에 나섰다. 먼저, 스마트폰 이용의 한계를 설정하도록 하는 것이다. 인터넷 사이트 열람만 가능하도록 하고 메신저 등의 사용은 가족과 얼굴을 알고 있는 친한 사람으로만 한정토록 하는 것이다. 연구회장인 사카모토 녹수여대 교수는 “인터넷 이용 시 상대방을 배려하고 예의를 반드시 지키며, 인터넷 접속 중 위험이나 불안감을 느끼면 부모에게 상담할 것을 사전에 부모와 약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은 의사소통이 어렵고, 필요 이상으로 자신을 노출시키거나 모르는 사람들을 신뢰해 버리게 되면 위험하다는 것도 주지시켜야 한다고 제언한다. 위험이 따른다고 인터넷 접속을 무조건 금지시킬 수는 없는 상황에서 올바른 이용법을 알려주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대다수 교육 전문가들은 자아와 가치관, 정서가 형성되고 함양되는 어린이와 청소년 시절에 스마트폰 부작용을 방지하지 않으면 건전한 가치관을 가진 시민을 길러내는 것이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핀란드에서는 학교 교육과정만으로 3개의 외국어를 구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핀란드는 모국어 교육을 매우 중시하는 국가로 정평이 나 있다. 무려 650여 년간 스웨덴의 지배, 108년간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음에도 꿋꿋하게 지켜낸 모국어에 대한 자부심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이해력과 판단력의 기조는 모국어라는 명확한 인식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모국어 교육을 강조하는 것은 핀란드뿐만 아니라 스웨덴, 독일 등 교육 선진국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핀란드는 유아기와 아동기에 모국어 학습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에게 전문적인 지원을 한다. 핀란드어의 어려운 자음과 모음의 발음에 장애가 있다고 판단되면 즉각적으로 전문가를 투입해 문제를 해결한다. 이렇게 시작되는 모국어 교육은 기초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이루어진다. 모국어 교육 못지않게 핀란드는 외국어 교육에도 적극적이다.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인재가 되기 위한 필수조건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핀란드에서는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기본적으로 3개 외국어를 학습할 수 있는 교육과정을 운영한다. 2개의 외국어는 공통 필수과목이고 1개 이상의 외국어는 선택 영역에 속한다. 2000년 이후에는 영어를 선택하는 학생이 압도적으로 많아졌다. 2013년 기준으로 학생들이 선택하는 외국어는 영어 90.3%, 스웨덴어 1%, 핀란드어 5.3%, 프랑스어와 독일어가 각각 1.2%를 차지하고 있다. 러시아어, 스페인어 등은 미미하다. 제1외국어에 핀란드어가 포함돼 있는 이유는 핀란드에서 스웨덴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약 5% 정도 살고 있기 때문이다. 기초학교 3학년과 7학년 교육과정에는 외국어를 필수로 하고 있다. 3학년 때는 제1외국어로 원하는 언어를 선택하고, 7학년(한국 중학교 과정)에는 핀란드어나 스웨덴어 중의 하나를 배워야 한다. 핀란드어가 모국어인 학생은 스웨덴어, 스웨덴어가 모국어인 학생은 핀란드어를 필수로 배워야 한다. 선택영역으로 이 외에 다른 언어를 선택해 제3외국어로 배울 수 있다. 보통 기초학교 5학년 때부터 학습을 시작할 수 있다. 2013년 통계에 따르면 전체 학생 중에서 이 시기에 제3외국어를 배우는 학생은 26.6%이다. 그럼에도 핀란드 교육청은 제3외국어를 학습하는 학생의 수가 2000년 35.1%에 비해 급격하게 감소했다고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최근에는 기초학교 3학년부터 필수공통과목으로 배치되어 있는 외국어 학습 연령이 낮아지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교육과정에서는 기초학교 3학년 이전에 외국어를 학습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지 않다. 2000년 이전에 1학년부터 외국어를 학습하는 학생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2010년 이후부터 기초학교 1학년에서 외국어 학습을 시작하는 학생의 비율이 7%에 육박하고 있다. 국제적인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부모와 함께 외국 생활을 경험한 학생들이 증가하면서 생겨난 현상으로 분석된다. 핀란드는 공교육만으로 외국어 능력이 우수한 학생들을 배출하고 있다. 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외국어 교육을 시키지도 않는다. 이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우리도 언제 외국어 학습을 시작해 어떠한 방법의 공교육으로 만족스러운 외국어 능력을 학생들에게 키워 줄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스승의 날이 제정된 지 한 세대나 지났다. 우리 사회가 ‘스승’을 의미 있게 인식하고, 교원의 역할 가치를 국민적 차원에서 공유하려는 기념일을 30년 이상 유지해 온 것이다. 한 세대라는 시간은 사회적 의식의 변화를 짚어내는 변곡점으로 인식된다. 교사에 대한 인식, 교원의 역할 가치 등에 대한 변화가 요청되는 시점이다. 낡은 시대의 교사상을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새로운 시대를 향하여, 교사의 역할 위상에 대해서 진화적 고민을 해야 할 때다. 지난 한 세대 동안 한국 사회의 변화는 그 어느 시기보다도 역동적이었다. 산업화 이후 진전된 고도의 정보·기술 사회는 국민들 삶과 일의 양태를 빠른 속도로 변환시켰다. 사회 각 분야에서 전문성 수요가 늘어나고, 전문성 역할 자체도 왕성한 분화를 하게 됐다. 따라서 서로가 서로에 대한 역할 정체성을 이전과는 다르게 요구하기 시작했다. 크고 작은 공동체들이 그 나름의 주장과 참여와 소통을 시도하는 그런 역동성의 사회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교원과 교직 또한 여기서 예외가 될 수 없었다. 한 세대 전의 교사상과 교권의 모습이 고정 불변의 것으로 남아 있기를 바라는 것은 가능하지 않게 됐다. 새로운 교사상과 교권의 추구는 현재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욕구와 갈등의 분출이라는 측면에서도 보다 능동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민주화 이후의 사회 각 분야에서의 가치 추구는 확산되고, 따라서 사회 구성원들의 욕구가 다양하게 분출되고 있다. 그만큼 갈등이 많아지는, 그런 사회적 역동성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교사 집단 또한 이런 욕구와 갈등의 분출 공간의 중심에서 피해자로 서 있다. 일부 학부모에 의해서 유린되는 교권의 추락은 한이 없다. 많은 교사들이 상처를 입고 교단을 떠난다. 이는 교육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나쁜 징후로 보아야 할 것이다. 교권에 대한 새로운 차원의 모색과 인식의 전환이 절실하다. 그것은 물론 교권 침해에 대한 징벌을 강화하는 기술적 대응의 수준을 넘어서는 것으로서, 교원의 역할 위상이나 수행 역량에 대한 새로운 인식 패러다임을 창출하는 것이 돼야 한다. 따라서 우리 사회의 변화를 읽어내고, 그 변화의 역동성에 걸맞게 교원의 역할 위상이 어떤 진취적 진화를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동시에 시대가 요청하는 교사상의 고양을 위하여 우리 사회 전체가 공동체적 관심과 노력을 쏟을지를 모색해야 한다. 이 문제는 일차적으로 교원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국가적 과업이라 할 수 있다. 교사상과 교사 역할 혁신은 미래 한국 교육의 진정한 역동성을 마련하는 기반 과업이기 때문이다. 먼저 교원들이 주체로서의 역할을 한 차원 더 높게 다방면으로 확충할 수 있어야 한다. 단순히 지식을 가르치던 전통적 역할에서, 교육의 다른 주체들과 소통하고 협응하여 함께 실천하는 역할 영역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학부모 갈등의 피해자에서 갈등의 예방 및 조정자 위상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사제동행(師弟同行)과 사모동행(師母同行)이 선순환하는 국가․사회적 학사모일체운동(學師母一體運動)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한민국 교원의 역할 주체성은 세계화 시대에 세계화 공간에서 더욱 역동적으로 확충될 수 있어야 한다. 이제는 교원들이 대한민국 교육과 교원의 우수성을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계기를 만드는 주체적 역할을 하여야 한다. 세계 여러 나라 교육현장에 봉사 및 교육활동을 통해 교육한류를 전파하는 새로운 교육자 역할 영역을 개척하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역할 역량은 예비교사 양성과정에서부터 준비되어야 한다. 오늘 우리가 주창하는 교원의 역할 진화는 소극적 자기 생존의 방편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시대를 향한 대한민국 교육의 발전적 진화를 목표로 하는 것이다. 교권의 고양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다. 이러한 진화의 발상과 의욕이 선언적 구호로 그치지 않도록, 교사상 혁신을 위한 국가의 제도적 지원과 재정적 육성이 일관성 있는 정책으로 구현되기를 촉구한다.
“학생들에게 교과지식을 가르치는 데만 급급하기보다는 폭넓은 시각을 갖고 미래에 어떤 가치관을 갖고 살아야할지를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현직 선생님들이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등의 낙후된 지역에서 교육봉사를 실천하며 한국의 교육을 널리 알리고 있다. 한지연 천안 용소초 교사는 지난 2013년 3월부터 2년간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중등학교에서 생물교과를 가르치며 교육봉사활동을 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해외봉사활동에 관심이 많았던 한 교사는 2011년 아프리카 수단의 작은 마을 톤즈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보고 언젠가 아프리카에 가서 교육봉사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대학원도 해외교육봉사에서 비교적 수요가 많은 과학 교육을 전공으로 선택해 공부했다. 교직에 들어선 지 5년, 한 교사는 교직생활에서 얻은 행복을 어려운 이웃에게 나눠주고 싶다는 생각에 한국국제협력단 코이카에 지원, 연수휴직을 내고 해외봉사를 떠나게 됐다. 한 교사는 “주변에서 왜 오지에 가서 고생하려고 하느냐며 만류하는 분들도 있었지만 어린 시절부터 품어왔던 꿈이었기에 망설임 없이 출국하게 됐다”고 말했다. 탄자니아에 가보니 봉사를 온 현직 교사들이 세 명이나 더 있었다. 학교에 가기 위해 왕복 2시간을 걷고, 교과서를 살 돈이 없어 교과 내용을 모두 칠판에 적어줘야 하고, 전기가 잘 들어오지 않아 기자재를 제대로 활용할 수도 없는 환경. 교사에 대한 처우도 좋지 않다보니 교사가 학교에서 물건을 팔거나 투잡을 하며 수업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학생들도 배움의 즐거움을 알지 못한 채 학교를 빠지기도 일쑤였다. 이런 학생들에게 미래의 꿈에 대해 생각하고 학교에 와야 하는 이유에 대해 토의하게 하면서, 학업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는 일부터 신경을 썼다. 물론 언어가 다른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영어를 배운지 6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은 중학교 1학년생에게 전문용어가 있는 생물을 영어로 가르치니 이해를 못하는 학생들이 많아 다양한 수업 방식을 동원해야만 했다. 한 교사는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으로 갔지만 소박한 삶에서 행복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며 오히려 제가 더 얻은 것이 많고 행복한 삶이 어떤 건지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전했다. 안경인 전주공고 교사는 해외 교육 봉사의 매력에 빠져 2008년과 2013년 두 차례에 걸쳐 태국과 페루의 대학교에서 교육 봉사를 했다. 선생님을 양성하는 사범대학에서 봉사를 하면 교육 개선에 더 파급효과가 클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안 교사는 “오래 전부터 외국에 나가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우연히 코이카를 알게 되면서 50대에 들어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보다는 지금까지 알고 있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더 보람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고 내 삶의 히스토리를 다양하게 만들고 싶어 봉사를 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교육부에서 코이카를 통한 해외교육봉사를 연수휴직으로 인정해 현직 선생님들이 봉사를 갈 수 있는 토대는 마련됐지만 2년 이상 봉급이 나오지 않으니 국내에 있는 가족들의 생계 문제로 결정이 쉽지만은 않은 것이 현실”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안 교사도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 바로 언어 문제. 국내와 현지에서 4개월 정도 언어교육을 받긴 했지만, 대학생들을 현지어로 가르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1학년을 가르치면 그 전에 4학년 학생들을 모아 세미나를 하면서 수업 때 쓸 용어를 선택하고 영어교재를 사서 동료 교사나 영어를 잘하는 학생과 수업 전에 태국말로 번역해 두는 등 수업 준비에 많은 시간을 들여야 했다. 안 교사는 “태국에서는 대학만 나오면 취업이 돼서인지 교수나 학생들이 수업에 대한 열정이 없는 편이었다”며 “제가 책을 선정해 일주일마다 교수들과 세미나를 열고, 수업에도 열정을 보였더니 나중에는 학생들이 대학에 와서 저한테 배운 게 전부인거 같다고 말할 정도여서 보람을 느꼈다”고 소감을 전했다. 페루는 지금 교육을 통해 단기간에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한국의 교육 배우기에 관심이 높다. 이곳에서는 우리나라의 교육과정, 교육제도 등에 대해 20여 가지의 발표 자료를 스페인어로 만들어 학생과 교수, 지역사회에 알리는 데 앞장섰다. 페루 북부지역에서 중·고생을 대상으로 수학 올림피아드를 개최하는 데도 힘썼다. 그는 “동료교사와의 코티칭이나 학생 협력 수업이 자연스러운 외국의 교육방식을 경험하면서 오히려 국내에서 수업을 할 때 접목해야 할 것도 배우게 됐고, 그 나라 사람들에게서 받았던 정을 국내의 다문화 가정을 위한 봉사로 되돌려 줘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소회를 밝혔다.
교총은 스승주간을 맞아 교육에 헌신하고 있는 가족을 대상으로 ‘교육가족상’과 ‘교육명가상’을 수여했다. 교육가족상은 한국교총 회원 중 직계가족 및 형제자매가 5인 이상 교육계에 근무하는 가족, 교육명가상은 3대 이상 교육계에 근무하거나 퇴직한 가문에 시상하고 있다. “나라를 세우는 제1의 사업이 교육이라고 강조하신 조부님, 외조부님이 우리가족을 교육자로 이끌어주셨습니다.” 부친인 김용국 전 인천석정초 교장부터 두 딸인 신지은 인천부광초 교사, 신가은 인천성리초 교사까지 3대째 교직을 이어오고 있는 김혜숙 인천진산초 교장 가족. 김 교장은 “조부께서는 마을에 학교를 짓는데 토지를 기부하시고 독립운동가셨던 외조부께서는 민족혼을 일깨우는 제1의 사업이 교육이라고 항상 강조하셨다”며 “아버지는 이러한 가르침 속에서 교직을 택하시게 됐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김 교장의 조부인 고(故) 김훈수 옹은 1935년 경기도 이천에 호법초를 짓는데 토지를 기부하는 등 학교 발전을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아 학교에 기념비까지 세워졌다고 한다. 그리고 외조부는 대한독립의군부 조직에 참여해 국내외에서 독립운동을 하고 상해임시정부 의정원 의원으로 활동했던 지산 정원택 선생이다. 올해 아흔이 된 김 교장의 부친은 35년간 이천과 인천 등에서 교직생활을 하다 1991년에 정년퇴임을 했다. 인천교총 이사를 지내며 교육발전과 선생님들의 권익 향상을 위해서도 힘썼다. 김혜숙 교장은 “이런 집안 분위기 속에서 저 또한 자연스럽게 교육자의 길을 꿈꾸게 됐다”며 “두 딸 모두 교사가 되기를 바라면서도 점점 힘들어지는 교단의 현실 때문에 마냥 추천하지는 못했는데 뜻을 이어받아 모두 교직을 선택해 대견스럽다”고 말했다. 특히 작은 딸은 부친이 초대교장으로 열정을 쏟고 퇴직했던 인천석정초에 초임발령을 받게 돼 의미가 남달랐다고 한다. 이들 3대의 교육경력을 합치면 현재 91년 5개월. 김 교장은 “앞으로도 교직생활이 지속돼 후세 양성을 천직으로 아는 100년 이상의 교육경력 가족이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편, 올해 딸 남가영씨가 광주 경신여고 교사로 임용되면서 부친인 고(故) 남채룡 전남교육청 장학사를 시작으로 3대가 교직을 이어오게 된 남신 광주 명진고 교사 가족. 남 교사는 청빈함과 교육적 열정, 봉사 정신이 투철하셨던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교직생활뿐만 아니라 사회봉사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남 교사는 “저희에게 아버지는 종교와 같은 존재로 삶의 모범이 되셨다. 가정 내에서 소외되고 있는 요즘 아버지들에게 교직생활을 바탕으로 자녀 교육에 대한 강의 봉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천주교 광주대교구 성요셉 아버지학교 부회장으로 활동하며 청소년 문제의 해결점을 가정에서 찾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초등학교 교사인 아내, 딸과 함께 소록도 나병원 등 복지시설에서 봉사활동도 하고 있다. 또한 아버지가 남기신 유산으로 불우청소년을 돕는 장학기금을 마련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교총은 이밖에도 △이호광 부산 중현초 교장 △조해옥 대전교육과학연구원 연구사 △고정희 경기 풍덕초 교사 △조경희 경기 용인대덕중 교감 △조용미 경기 지행초 교사 △박병주 한국교통대학교 교수 △정혜정 충남 금산하이텍고 교사 △이영남 전남 화원중 교사 △류성희 전남 여천고 교사 △강경숙 경북 안계초 교사 △김종철 경남 하동화개중 교장 △박은미 대구동천초 교사 가족에 교육명가상을 시상했다.
조희연 교육감에 대한 유죄판결로 우리의 교육계가 평소의 혼란스러움에 더하여 허탈감에 빠진 듯하다. 그러한 사태의 원인은 물론 교육감선거 제도 자체에 있다. 위헌성을 포함한 그 제도 자체의 여러 문제에 대해서는 필자도 다른 글에서(조선일보 2014년 10월15일 및 12월 25일자 칼럼 참조) 논의한 바 있으므로, 이 글에서는 그 제도 탄생의 배경이자 그 운영에 수반된 부작용들의 배경이기도 한 우리 교육계에 고질적인 보수와 진보의 대립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보수와 진보의 대립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한다. 그러나 그러한 대립이 사회적 혹은 더 나아가 역사적 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는 경우는 기본적으로 다음을 전제로 한다. 보수하거나 혹은 변화시키고자 하는 이유나 목표 및 그 바탕에 있는 가치관이나 세계관이 명확하고 체계적인 이념을 통해 제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할 경우에만 상호 입장의 수정을 통한 타협 또는 새로운 대승적 융합을 위한 진지한 대화나 토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못할 경우 그러한 대립은 오직 사회적 기득권을 지키거나 빼앗으려는 통속적인 이해 다툼에 머무르게 된다. 우리의 정치판도 그러하지만, 우리 교육계의 보수나 진보 세력이 스스로 표방하는 이념을 체계적으로 제시한 적이 과연 있는지 의문이다. 더욱 근본적인 의문은 교육에 과연 보수와 진보의 대립 자체가 필요한지 여부이다. 권력쟁취라는 제로섬 게임의 속성 때문에 이념적 독단이나 사고의 고착성이 지배하기 쉬운 정치판에서는 보수와 진보가 진지한 이념적 대립이 아니라 권력욕을 분식하기 위한 허구의 언어로 나타남이 적어도 정서적으로는 이해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자유로운 정신활동이 보장되어 있고, 사회 내의 원색적인 이해 갈등을 지성적으로 중재하고 중립적 입장에서 해소하는 역할이 사회적 소명으로 주어진 교육계가 수치스러움을 모르는 듯 정치판과 다름없는 갈등 양상을 보이는 것은 결코 불가피하지도 않고 도덕적으로 면죄 받을 수도 없다. 교육계의 현안들인 자사고 문제나 단체급식의 문제들이란 실로 교육 자체에는 부수적이고 지엽적인 문제들이자 정책적 판단에 기초한 합리적인 행정 처리의 대상일 뿐이다. 학생인권과 관련되어 제기되는 개인적 욕구 발산의 자유문제는 그 자체가 허용이냐 방지냐 하는 이분법적 재단의 대상이 결코 아니며, 청소년의 성장과정에서 필수불가결한 강제적 절제의 한계가 무엇인가의 차원에서 진지하게 검토하고 논의할 대상이다. 현대사 교육과 관련하여 단편적인 역사적 정보나 특정한 사실(史實)의 전달 문제가 대립의 근원으로 나타남은 그 자체가 학문적으로나 교육적으로 희화적이다. 역사교육의 목적은 학생들로 하여금 바로 역사란 무엇인가를 점진적으로 깨닫게 하는데 있는 것이지, 파편화되고 단편적인 역사 지식을 암기시키는 데 있는 것은 아니다. 만일 현대사의 특정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해석과 관련하여 역사학계 내부에서 논쟁점이 있다면, 그것은 역사학계 내부의 진지한 학문적 토론과 검토의 대상으로 남겨두어야 한다. 어린 학생들에게 특정한 해석을 강요하는 행위 자체가 비교육적이고 비학문적인 것이다. 역사적 사건이란 대체로 30년 정도가 지나야 그 역사적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역사학적 연구 및 평가의 대상이 된다. 그럼에도 현재진행형이라고 할 수 있는 최근의 정치적 사건이나 정책에 대한 특정 정파의 견해마저도 현대사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에게 주입시키려는 행위에 따른 파쟁은 이념적 차이의 문제가 아니라 지적 소양의 문제인 것이다. 결국 우리 교육계의 보수와 진보의 대립은 그 이념적 실체 자체가 불분명하다. 이념적 대립의 이유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대립이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은 다음 두 가지 가운데 하나이거나 둘 다를 의미할 것이다. 교육이나 교육행정이 그 자체의 목적보다 그것에 부수적인 세속적 이해관계에 연연하거나, 교육의 본질이나 시민교육의 본령이 무엇인가의 근본 문제에 대해 교육철학적 합의가 부재하다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라면 도덕적 질책이나 사법적 단죄의 대상이다. 후자의 경우라면 이제부터라도 그러한 합의를 위해 교육계 전체가 공동의 지적 성찰과 탐색의 노력을 경주할 때이다. 물론 그것은 인류의 지성사의 교육철학적 업적 전체에 대한 검토 및 이해와도 연관된 방대한 과제이기도 하다. 다만 그러한 노력이 없을 경우 우리 교육계의 심각한 병리현상들이 근본적으로 치유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제 우리의 교육계는 과연 무엇을 위해 그리고 누구를 위해 혼란 속에서 분열과 대립을 거듭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반문할 때이다. 자기 성찰은 자기 발전의 요체이자 교육의 처음이자 끝이다. 교육자 또한 언제나 교육받아야 하는 것이다.
2011년 발표된 '매킨지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교사 수준은 세계 최고다. 이 보고서는 “한국은 5% 인재가 교단에 서는 OECD 국가 중 가장 우수한 교사 집단을 보유하였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모순되게도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의 중학교 교사들은 교사가 된 후 3년 이내에 ‘교사가 된 걸 후회한다’고 답한 비율이 20%로 OECD 회원국 34개 국 중 1위이다”라고 발표해 충격을 주고 있다. 이 비극을 누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우선 시급한 것이 교사 상호간의 ‘허들링(huddling)’임을 제안한다. 황제펭귄의 허들링 말이다. 영하 45도에 이르는 혹한과 초속 50m의 강풍이 몰아치는 얼음판 위에서 펭귄들은 서로의 몸을 기댄 채 돌면서 체온을 유지한다. 학교는 펭귄의 허들링에서 선후배간, 혹은 동료간의 ‘상호 협조 체제’와 ‘함께 성장하기’를 배워야한다. 한국 교직사회의 이 시급한 문제를 초보 교사들의 자발적 역량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 교육부는 수석교사제도와 같은 ‘최적의 선후배 교사 간 멘토링 시스템’을 만들어 놓고 있지만, 제대로 작동하게 하는 후속조치는 매우 미흡하다. 법제화된 지 4년째로 접어들었건만 전국적으로 통일된 매뉴얼조차 없어 운영의 질과 성패가 학교장의 손에 달려있다. 제대로 된 수석교사의 위상 정립, 아직도 여전히 ‘0원’인 직무수당 문제를 왜 해결하지 않는가. 현상의 문제가 있으면 제도를 만든 기관이 주체적으로 이를 개선하고 정립해야할 책임도 있다. 제대로 정비되기만 한다면, 알 안에서 쪼아대는 병아리에 대한 어미닭의 응답처럼, 선후배교사 간의 아름다움 교학상장(敎學相長)이 될 수도 있는 제도를 더 이상 방치하지 말아야 한다. 좋은 시스템을 만들었다면 제대로 작동시켜서 작금의 ‘경기도수석교사 사태’의 불씨를 이 기회에 일소(一掃)해야 한다. 그것이 황제펭귄의 허들링에서 교훈을 얻어 교직문화에 새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지름길이다.
2016년부터 모든 중학교에서 자유학기제가 전면 도입된다. 그동안 우리 교육의 맥을 이어온 중학교 교육제도가 짧은3년 동안의 시범 교육을 실시한 후 자유학기제를 의무화하는 교육당국을 바라보는 현장 교사의 입장에서 착잡하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정부가 도입하는 자유학기제는 40년 전통을 가진 아일랜드의 전환학년제 제도를 도입하여 실시하겠다는 것이다. 자유학기제에 대하여 현장의 대다수 교사들은 환영하고 있는 제도임에도 성급하게 실시하겠다는 정부의 정책의지에 대하여 우려하는 부분은 정부의 충분한 예산 확보, 교사와 학생이 만드는 학교에서의 교육프로그램의 부족, 지역사회가 돕는 교육 인프라 등 아직은 부족하다는 것이 솔직한 고민의 이유이다. 아일랜드도 전환학년제가 처음부터 성공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우리 교육당국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아일랜드는 정부지원없이 실행되었지만 우리나라는 2013년에 시범학교에만 3000만원을 투입하는 등 예산지원책을 통하여 자유학기제를 정착하기 위하여 노력했다는 점이다. 당장 내년부터 도입하는 자유학기제에 대하여 예산 지원없이 자육학기제를 실행한다면 자칫하면 노는 시간으로 전락하여 우리 교육의 질을 떨어뜨리지 않을까하는 학부모의 고민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문제점을 해결하는 것이 선행과제가 아닐까? 예산 지원 없이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하는 교사의 입장에서 보면 또다른 문제점으로 등장하고 있다. 시대가 변하고 있는 시점에서인성, 진로교육으로교육의 패러다임이 바뀔 때가 되었다는 사실은 의미있는 교육정책의 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자유학기제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 도입한지 불과 3년만에 전면 의무화 하겠다는 교육당국에 대하여 현장 교사들은 불만과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는 사실은 교육당국자들은 유념할 필요가 있다. 자유학기제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학교밖에 있다는 점이다. 예산이 부족하면 학교내에서만 교육 밖에 진행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학생들이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예산과 지역사회, 지역의 기관들의 협조 등 학교 밖 제반 여건이 풍성하게 뒷받침 될 때 자유학기제는 성공할 수 있다고 본다. 교육당국이 그토록 좋은 제도라고 외치던 집중이수제가 시행 몇년도 되지 않아서 폐기된 정책의 전철을 밟는 것은 아닌지? 교육당국의 고민할 때라고 본다.
최근 유엔 산하 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가 발표한 ‘세계 행복보고서’에서 한국은 158개국 이미 보도된 것처럼 한국은 47위였다. 중동을 제외하고 아시아 지역에선 싱가포르(24위), 태국(34위), 대만(38위), 일본(46위)에 이어 5위에 해당한다. 경제적으로는 순위가 높은데 정신적인 분야에는 왜 이렇게 순위가 떨어져 있는가 점검이 필요한 시점이다. 10점 만점 척도인 행복지수는 사회보장 정도(30%)와 1인당 국민소득(26%)이 가장 큰 비중으로 반영된다. 다음으로는 건강기대수명(19%), 선택의 자유(13%), 관용 의식(7%), 부패 인식 정도(4%) 등이 계량화돼 합산된다. 한국은 상대적으로 1인당 국민소득과 건강기대수명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다. 특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평균치를 뛰어넘는 평균수명(81세)은 현 수준의 행복지수를 유지하는 데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사회보장 정도와 부패인식 정도는 2013년 보고서와 마찬가지로 30∼40위권의 다른 나라들에 비해 뒤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그중에서도 총점에 반영되는 비율은 불과 4%에 그치지만 부패인식 정도의 성적표는 중하위권 수준이다. 이는 세월호 참사의 이면에 공무원과 업자의 결탁 같은 ‘부패’ 문제가 놓여 있었던 것과 무관치 않다고 판단된다. 전 정권과 야당 쪽을 겨냥한 사정 수사 또는 기업과 공무원 사회를 겨냥한 기강 잡기라는 정치적 노림수가 담겨 있었다고 하더라도 박근혜 정부의 집권 2기 이완구 내각이 ‘부패와의 전쟁’을 내걸고 나선 것은 이런 전체 맥락에서 볼 때는 크게 잘못된 선택은 아니었다고 본다. 하지만 이제 겨우 세월호 참사의 악몽을 벗어나는가 싶었더니,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의 자살로 ‘메모 리스트’가 불거지면서 ‘부패 충격’은 다시 우리 사회를 밑바닥까지 빠뜨리고 있다. 이제 자리에서 물러난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진실을 이기는 것은 없다”며 검찰에 출두한 날, 김종필 전 총리는 기자들에게 “정치를 하려면 때로는 편의상 말도 바꿀 수 있지만 절대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말 바꾸기와 거짓말은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그렇지만 ‘무엇이 정의인가’라는 관점에서 보면 우리 정치권의 부패 사슬이 그 일단이나마 드러난 것은 오히려 잘된 일이다. 청와대든 여당이든 야당이든 내 썩은 살은 놔두고 남의 뼈만 발라내자는 식의 정치적 득실에 따른 왜곡된 프레임만 들이대서는 해법이 없다. 돈을 뿌렸다는 분이 망자가 돼 있으니 검찰도 결코 쉬운 수사는 아닐 것이다. 정치의식면에서 국민대중이란 정계 은퇴 같은 큰 거짓말은 봐줄지라도 받은 돈 안 받았다든가, 혼외자식 모른다고 하는 거짓말은 용서하지 않을 정도로 성숙해 있다. 지금처럼 모든 거짓이 드러나는 시대는 없다. 부정부패 척결은 대한민국이 사는 길이다. 이제 옆으로 돌아갈 수도, 뒤로 물러설 수도 없는 사건이다. 맑은 마음으로 정면만 바라보고 넘어서야만 하는 사건이다. 그 길만이 한국 국민에게 행복을 안겨주는 길임을 정치인들이 되새겨 볼 시점이다.
누구나 선생님의 사랑으로 컸겠지만, 나도 선생님의 지도로 삶의 물줄기를 넓혀갔다. 선생님들께서 끊임없이 사랑으로 적셔주워 올곧게 길을 걸었다. 특히 어줍지 않은 글을 써도 칭찬을 해 주신 덕에 문단의 말석에 앉아 있다. 내가 문학의 길에 발을 들인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 그때 담임선생님은 원용문 선생님(후에 한국교원대 국어교육과 교수로 정년퇴임)이다. 선생님은 시인이다. 고등학교에 올라와서 나는 제법 어른이 되었다는 생각이었다. 사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스스로 묻곤 했다. 그런데 그것은 제대로 표현된 것이 아니라 학교생활의 일탈로 나타났다. 중학교까지는 그럭저럭 부모님 말씀에 순종하며 공부를 잘했다. 공부 잘하는 것으로 부모님은 한없이 기뻐하셨다. 그런데 공부에 재미를 잃었다. 학교 가는 것이 싫었고, 방황의 길목을 기웃거렸다. 성적이 하락한 것에 놀란 부모님은 담임선생님의 도움을 청했다. 이런 저런 이유로 담임선생님 앞에 갔다. 그때 선생님께 일방적으로 꾸중을 들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의 벌이 내렸다. 소설 외우기였다. 황순원의 ‘소나기’를 외우라는 것이었다. 선생님은 소설의 감성을 통해 나를 위로 하려고 하셨던 것이다. 소설 외우기가 황당하기도 했지만, 쉽게 적응했고 정서적 안정을 찾았다. 그리고 수업 시간이 더 좋아졌다. 선생님께서는 수업 시간에 현대문학 등에 발표한 당신의 시를 읽어 주셨다. 그 시를 받아 써 가면서 읽어보곤 했다. 학교생활이 즐거웠다. 공부하는 것은 멀리 하고 시를 읽고, 소설을 읽었다. 문학을 공부하면서 학교생활은 안정을 찾았지만, 어른이 되어 먹고 살기 위해서는 대학에 가야 한다는 현실이 답답했다. 문학 공부도 하고, 생업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일까. 담임선생님처럼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주저하지 않고 사범대학 국어교육과에 진학했다. 대학에 와서는 하고 싶은 공부만 한다는 즐거움이 있었다. 남광우 선생님 수업 시간은 늘 감동이었다.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선생님의 글을 배웠다. 학문적으로 최고의 경지에 있는 분이었지만, 어린 학생들을 자상하게 가르쳐 주셨다.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일석 이희승 선생님을 뵙는 기회도 만들어 주셨다. 그때 선생님들의 옆에 있는 것만으로 행복하고 자랑스러웠다. 선생님을 뵈면서 나도 국어교과서에 글이 실리면 좋을 것이라는 기대도 가졌다. 하지만 그것은 감히 넘볼 수 없는 높은 경지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 글이 국어교과서에 실렸다. 그 꿈이 실현되었으니 세상은 허황된 기대를 가져 볼만하다는 생각이다. 2학년 때 오세영 선생님의 시론 강의는 본격적으로 문학을 공부하는 계기가 됐다. 기억하기에 그때 선생님은 40대 후반이었지만 청년 같았다. 세 시간 강의 동안 쉬지 않으셨다. 감히 선생님을 평하는 것은 불경스러운 일이지만, 선생님은 천재에 가까웠다. 선생님은 시인이면서 문학에 대한 학문적 이론도 완벽했다. 우리 문학과 프랑스 문학, 영국 문학을 넘나들면서 현학적인 강의를 하셨다. 3학년 때 당시 현대문학 편집장이었던 시인 감태준 선생님의 ‘시창작론’ 수업을 좋아했다. 문학은 삶의 이야기를 치열하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자기 혼을 불어 넣으며 글을 써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선생님이 읽어 주는 시도 한국 사회의 산업화 과정에서 빚어지는 인간 소외 등에 관한 것이었다. 그때 5공화국 출범으로 대학 캠퍼스는 여전히 최루탄 냄새가 많이 났는데, 선생님의 시는 위안이 되었다. 김재홍 선생님 수업은 작품론과 작가론을 연속으로 이어서 수강했다. 글쓰기에 대한 열망은 있지만, 재능이 없다고 생각해서 마음속에 담고 있었다. 그런데 선생님의 수업을 듣고 안에서 밀어 올리는 강한 기운이 생겼다. 윤동주의 현실 인식의 문제, 조병화 시인의 고독하고 치열한 작가 정신에 관한 논문을 썼는데 칭찬을 많이 해 주셨다. 종강 때는 만해 한용운 심우장(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에 있는 한용운이 만년을 보낸 한옥.)에 데려가 주시고, 종로 피맛골에서 빈대떡을 사 주셨다. 김열규 선생님은 이야기꾼이었다. 옛날 할머니가 들려주시던 이야기를 해 주셨는데, 우리를 신화의 세계로 이끌었다. 문학 공부를 하면서 민속학을 연구해 민요나 민담 등을 풀어놓으셨는데 재미로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선생님은 왕성한 연구와 그 저작물을 통해 우리들에게 선비로서의 모습을 보이셨다. 그러면서도 늘 선생님은 오직 책 읽기 밖에 할 줄 모른다고 겸손하게 말씀하셨다. 조병화 선생님의 문학 정신은 꿈, 사랑, 멋이다. 당신의 현실적 생활도 늘 그랬다. 베레모에 파이프를 들고 다니시며 크게 웃으셨다. 연구실에서도 그림을 그리는 낭만을 즐기셨다. 이런 이유로 사실 선생님의 시는 유행가풍이라고 건방지게 평을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부총장이라는 보직을 맡고 계시면서도 연구실에 불러 직접 커피(당시 선생님은 텔레비전에 커피 광고를 하고 계셨다.)를 내놓으시며 나에게 시간을 마련해 주셨다. 그때 일제강점기 때 럭비를 하셨던 말씀을 해 주시며 내면에 움트는 지성의 분출을 노래하는 법을 말씀하셨다. 그리고 연구실에 가면 아무리 바쁘셔도 홀대 하지 않으시고 반겨주시고 당신의 시집을 많이 주셨다. 나는 좋은 선생님 아래에서 문학의 향기를 키웠다. 그리고 문학을 가르치는 선생으로 살아가고 있다. 문학이 평생 운명처럼 붙어 다닌다. 선생님들께 배운 것은 문학보다 사랑이었다. 삶을 어루만져 주는 사랑이 문학보다 더 뜨거웠다. 문학이란 인간의 삶을 노래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랑이야 말로 문학을 하는데 밑거름이 된다. 문학을 가르치는 선생으로 그 옛날 선생님이 주신 사랑을 실천하려 노력하고 있다. 그 일을 해내기에는 내 역량이 부끄러운 줄 알면서도 오직 선생님들이 주신 사랑의 힘으로 버티고 있다.
스승의 날에 대해 선생님들의 심기가 불편하다. 스승의 날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선생님들이 많다. 정부나 사회에서 선생님을 촌지 받는 집단으로 매도하니 차라리 폐지하자는 것이다. 어떤 교사는 근로자의 날처럼 법정 휴일로 정하자고 한다.또 일부는 스승의 날을 학년말인 2월로 옮기자고 한다. 과연 이러한 주장이 옳을까? 필자는 한 마디로 틀렸다고 주장하고 싶다.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은 스승의 날에 여러 가지 문제가 있으니 아예 근원적으로 없애자는 것이다. 휴일로 하자는 것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임시 방편책에 불과하다. 2월로 옮기자는 것도 옳지 않다. 시기만 바꾸었지 문제점은 그대로 상존한다. 오늘 제34회 스승의 날, 박근혜 대통령도 기념식에 참석해 중2 담임과 고1 담임을 50년과 48년만에 만나 스승의 은혜에 대해 감사하고 그 은혜를 기렸다. 이날 박 대통령은 두 은사에게 꽃다발을 전달한 뒤 '옛 선생님'들과 두 손을 마주 잡고 함께 학창시절 추억을 회상했다. 그렇다. 이렇게 하면 되는 것이다. 스승의 날, 무엇이 문제인가? 학생이나 학부모나 현재 가르치고 있는 선생님들에게 감사표시를 하려 한다. 여기에서 촌지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것은 자칫 작은 선물도 뇌물로 비추어질 수 있다. 학생들은 선생님을 만난 지 겨우 두 달 조금 넘었는데 무슨 인격적 감화를 받고 인생의 멘토를 발견했단 말인가? 학부모가 선생님께 표시한 정성이 ‘앞으로 잘 봐 달라’는 오해를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한 것이다. 1960년대 스승의 날이 시작된 초창기 마음을 생각해 보자. 선생님 중 병환 중에 있거나 퇴직한 은사님을 찾자 뵌 것이 스승의 날 시초였다. 이 날은 현재 교과를 가르치고 있는 선생님께 감사 표시를 하고 선물을 드리는 날이 아니다. 이미 몇 년 전에 가르침을 주신 은사님 중 인격적 감화를 준 분께 존경을 표하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오늘 스승의 날, 올해 전근해 온 선생님들을 찾아 온 학생들이 있다. 바로 인근 중학교 학생들이다. 바로 작년 담임교사를 찾아 온 것. 그 선생님은 미리 방문 연락을 받고 학생들에게 줄 먹을거리와 이야깃거리를 준비한다. 그들과 작년 추억을 나누며 이야기 속으로 빠져든다. 제자가 스승을 대접하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을 찾아 온 학생들을 대접하는 요즘 풍경이다. 필자의 경우에는 얼마 전 스승의 날을 앞두고 커다란 호접란 화분 하나를 받았다. 1984년 수원 00초교 6학년 6반 제자들이 보낸 거였다. 그 당시 제자들은 이제 불혹의 나이 45세가 되었다. 무려 31년 만에 소식이 닿은 것이다. 그 동안 소식이 끊겼던 것이다. 이것을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없다. 선물로 받은 호접란을 뇌물로 생각하지 않는다. 선생님은 가르침의 보람을 먹고 산다. 교육의 보람은 세월이 흐른 후나타날 때 진가를 발휘한다.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고 최소한 몇 년이 경과한 후에 그 고마움의 감동이 잔잔히 남아 있을 경우에 은사님을 찾아 뵈라는 것이다. 이것은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다. 부모가 시키는 것이 아니다. 자발성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스승의 날, 선생님 입장에서는 스승이 되고자 다짐하는 날이다. 교사 스스로 학생지도에 소홀히 하지 않았나 반성해 보는 날이다. 교사 자신도 오늘의 자신을 있게 한 은사님을 찾아 보는 날이다. 스승의 날은 국가기념일로서 존속해야 한다. 우리의 삶은 정신적 지주인 인생 멘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스승의 날, 당연히 있어야 하는 날이다. 다만 국민들 의식이 변해야 한다. 현재 자식의 학교 선생님을 찾아 뵙고 감사 표시로 선물을 전달하는 날이 아니다.스승에게 존경을 표해야 한다. 선물이나 촌지 전달은지금 선생님의 인격을 무시하는 것이다. 이것은 선생님을 오히려 불편하게 하고 궁지로 모는 것이다. 제자로부터 선물을 받고자 하는 스승은 없다. 진정한 스승은 제자들이 잘 되기를 바라며 교육의 보람을 먹고 산다.
선생님, 스승의 날을 축하합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스승의 날이 돌아왔지만 우리들의 상처받은 자존심에 새로운 의미를 담기 보다는 조용하게 지내시는 것이 더 편할지 모르겠습니다. 늘 이맘 때면 연래 행사처럼 교사를 매도하는 일도 이젠 짜증밖에 남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우리 사회를 더 이상 원망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섭섭한 마음은 지울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요즘 선생님이란 호칭도 너무 흔히 쓰는 말이라 차라리 우리는 교사님이나 스승님이라 부르면 어떨지요? 축하해야 할 스승의 날에 너무 무거운 얘기부터 시작해 미안합니다만 왜 ‘군사부일채’가 이지경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진정한 교육의 의미를 배웠습니다. 한 마디로 교육은 아는만큼 어렵습니다. 학습지도도 그렇고, 아이들의 생활지도는 더더욱 말입니다. 지금 우리 교육은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사실 교실붕괴도 교원경시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젠 교직이 ‘감정노동직’이라고까지 부를 정도로 교권추락의 교사수난 시대를 겪고 있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선생님, 정말 힘드시지요. 때론 아이들에게 시달려 파죽음이 될 때도 많지요. 물론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기쁨과 보람된 일도 있지만, 문제는 그렇지 못할 때가 더 힘들고 어렵지요. 그러나 선생님은 아이들의 지식만이 아니라 삶의 지혜까지 가르치기에 중요합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모든 언행이 그들의 삶에 본보기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이들의 행복한 미래를 교육하기에 스스로 자기변화와 혁신을 해야 존경받는 스승이 될 수 있습니다. 제가 본교에 부임한지도 3개월 가까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모든 선생님들이 자신의 맡은 직무를 잘 실천하고 계시기에 더 자랑스럽고 믿음직했습니다. 이런 선생님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제 교직생활에 가장 큰 행운이었습니다. 선생님들의 높은 교육열정에서 더 깊은 교육애를 느끼며 소중한 가치를 배워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이 바로 진정한 교육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오늘은 제34회 스승의 날입니다. 우리 학교 모든 선생님들은 이 시대의 참 스승이십니다. 그래서 전 오늘은 꼭 스승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아무리 교권이 흔들린다해도 당당한 교육주체로서 새교육을 향해 동행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작은 힘이 되겠습니다. 스승님, 사랑합니다. 그리고 힘내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스승의 날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기념식에서는 참된 스승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도록 사제 간의 미담을 듣는 순서도 마련됐다. ‘나를 뒤돌아보게 하는 모스탈로찌’를 주제로 발표한 송호엽 광주 대촌중앙초 교사는 동료인 모경원 교사를 소개했다. “우리학교에는 ‘모스탈로찌’라 불리는 선생님이 계십니다. 학생들이 가장 많이 찾는 선생님이기도 하죠. 모경원 선생님은 항상 가장 먼저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하면서 모두를 도와주십니다. 선생님은 학원에 다니지 않는 시골 아이들도 노력하면 다양한 대회에서 상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서 매일 학교에 남아 학생들을 지도하십니다. 이런 선생님의 마음을 알고 아이들도 최선을 다해 노력했습니다. 덕분에 학생들은 각종 글짓기 공모전, 미술대회, 발명대회 등에서 수많은 상을 받았죠.” 송 교사는 모 교사에 대해 “학생, 학부모, 동료교사 모두에게 밝고 힘찬 에너지를 나눠주는 모경원 선생님을 보면서 부끄러움을 느꼈다”며 “늘 학생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더 많은 것을 체험하고 더 많은 꿈을 꾸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모습을 본받고 싶다”고 말했다. 김용세 경북 상산전자고 교사는 첫 임용지, 첫 수업에서 생긴 사연을 이야기했다. 그는 51세에 임용에 합격하고 교단에 선 늦깎이 교사다. “2008년 첫 수업시간, 짧게 자기소개를 한 후 수업에 임했습니다. 설레는 마음과는 달리 엎드려 자는 학생이 보이더군요. 가까이 다가가 일어나라고 하자 ‘아이 씨발!’하며 욕을 했습니다. 억지로 깨우자 팔짱을 끼고 눈을 감기에 ‘왜 눈을 감고 있느냐’ 묻자 학생은 ‘적응이 안돼서’라고 했습니다. 저는 ‘51살에 첫 수업을 하는 나보다 3학년인 자네가 더 나을 것 같다’며 ‘눈이 매력적이니 경찰이나 직업군인을 하면 성공할 것 같다’고 대답했습니다.” 김 교사의 따뜻한 관심이 통한 것일까, 일주일 후 만난 학생은 더 이상 수업시간에 잠을 자지 않았다. 문제아로 낙인찍혔던 아이가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선도부에 들어가고 싶다고 해 안내도 해줬다. 그는 매일 아침 함께 등교하며 선도 역할을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왔다. 아이는 더 이상 오토바이도 타지 않았다. 어머니가 학교에 오셔서 몇 번이고 고맙다는 말씀을 하시기도 했다. 점점 태도가 좋아지더니 중간고사 평균도 24점에서 89점으로 올랐다. 어느새 모범학생으로 변해 있었던 것이다. 김 교사는 “그 학생은 예술대학에 진학해 지금은 작곡가로 성장했다”며 “교사가 바뀌면 학교와 학생이 바뀐다는 교육관 그대로 남은 5년도 최선을 다해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다”고 밝혔다.
내일은 스승의 날이다. 옛날에는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도 않았다. 스승을 부모님이나 임금님만큼이나 높여드렸다. 이번 스승의 날에는 학생들에게 선생님의 최고의 자리에 앉혀드리고 가장 높은 예우를 드릴 수 있도록 지도하는 선생님은 좋은 선생님이다. 엎드려 절받기라도 좋다. 이렇게 하는 것이 바른 교육이다. 선생님을 선생님으로 대우할 줄 모르는 학생은 아무리 입신출세를 해서 이름을 날린다 해도 그 학생은 잘 배우지 못한 자이다. 부모님은 자녀들에게 하나하나 가르친다. 인사하는 법도 가르치고 이웃들을 대하는 법도 가르친다. 자녀가 어른이 되어 명절이나 생일이 되면 어떻게 하라고 가르친다. 알아서 하겠지 하고 마음대로 하게 하면 버릇없이 행동하는 자녀가 나올 수 있다. 그래서 잘 가르치는 부모가 좋은 부모님이 되는 것이다. 선생님을 왜 최고의 자리에 앉혀드려야 할까? 선생님의 은혜는 부모님의 은혜 못지않다. 부모님은 가정에서 자녀를 가르치지만 시간적으로 한계가 있다. 부모님의 능력에도 한계가 있다. 자식을 어떻게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선생님에게 신신당부를 한다. 그러면 선생님은 그 자식을 내 자식처럼, 내 가족처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지도한다. 사람되게 만든다. 높은 인격의 소유자가 되게 한다. 공부에 관심이 없는 학생에게는 공부에 관심을 가지게 한다. 컴퓨터의 중독에 빠져있는 학생에게는 설득하고 또 설득을 해서 중독에서 빠져나오게 한다. 나쁜 길로 가는 학생에게는 그 길로 가면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하고 알아듣게 잘 설득을 시킨다. 바른 길로 가게 만든다. 옳은 길로 가게 만든다. 말이 거친 학생들에게는 고운 말을 쓰도록 지도한다. 온갖 욕설로 자기의 입을 더럽히고 친구들을 오염시키는 학생도 차분하게 고운말을 쓰도록 지도한다. 이렇게 하는 것은 선생님만이 할 수가 있다. 아무리 문제가 많은 학생도 선생님의 말이라도 일단 고개를 숙인다. 말을 듣는다. 행동으로 옮긴다. 새로운 생활을 한다. 변화되는 모습을 보인다. 이게 선생님의 힘이다. 선생님의 영향 때문이다. 선생님의 지도 때문이다. 부모님도 선생님을 인정한다. 그 선생님 때문에 바른 사람 되었다고 인정하며 감사한다. 그 선생님 때문에 공부에 관심을 가지고 자기의 진로를 찾았다고 인사를 한다. 선생님을 왜 최고의 자리에 앉혀드려야 할까? 왕과 같은 은혜가 있기 때문이다. 왕은 한 나라의 최고의 권력자다. 왕은 백성들만 생각한다. 백성들이 편안하게 잘 살기를 고대한다. 백성들이 행복하게 살도록 정책을 펼쳐나간다. 백성들은 왕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왕에게 최고의 예우를 다한다. 왕이 지나가면 모두가 땅에 엎드려 절을 할 정도다. 선생님에게도 그러해야 함을 가르치는 선생님은 좋은 선생님이다. 선생님은 학생들만 생각한다. 자기 가족보다 더 많이 생각한다. 학생들이 즐겁게 학교생활을 하도록 한다. 한 학생도 일탈행위를 하지 않도록 지도한다. 학생들이 잘못되면 걱정을 한다. 잠을 자지 않는다. 모든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숨을 놓는다. 이런 선생님에게 학생들은 땅에 엎드려 절을 할 정도로 최고의 예우를 다하도록 지도해야 할 것이다. 선생님은 부모님과 같은 예우를 해드리도록 지도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학부모님 못지않은 열정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을 학생들이 알도록 지도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부모님에게 예우를 어떻게 했는지를 생각하면서 선생님에게 예우를 다하게 하자. 선생님은 학생들의 순수함, 깨끗함,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고 선생님에게 다가와 따뜻한 말 한 마디라도 하면 감동을 느낀다. 이런 것을 학생들에게 가르치자. 이번 기회에 선생님에게 편지로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는 학생이 되도록 지도하면 좋은 선생님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달력을 보니 4일 어린이 날, 8일 어버이 날, 15일 스승의 날, 18일 성년의 날, 21일 부부의 날이 있다. 나라에서 정한 기념일의 의의를 살려 뜻 있게 보내면 좋으련만 요즘은 모두가 경제가 뒷받침 되어야 한다. 세상이 그렇게 변했다. 마음만으로 통하는 사회가 아닌 것이 문제다. 우리 집에 가정의 달을 대입해 본다. 딸과 아들은 대학생이니 어린이 날과 성년의 날은 해당 사항이 없다. 어버이 날은 아내 쪽에만 해당된다. 필자의 부모님은 이미 돌아가셨지만 장인 장모님은 병석에 계신다. 자식은 효도하려 하나 부모는 기다려 주지 않는 것이다. 뒤늦게 후회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살아 계실 때 자주 찾아 뵙고 정을 주고받아야 하는 것이다. 어버이 날을 몇 일 앞두고 아들의 인터뷰 요청이 있었다. 어떤 모임에 나가는데 부모님 인터뷰 한 것을 발표하라는 과제를 받았다는 것이다. 아들의 과제도 해결해 주고 자식과 대화를 나눌 좋은 기회라고 보았다. 언제 아들이 부모에게 접근하여 자발적으로 말을 걸까? 그 기회가 많지 않다. 사실 우리집 자식들, 부모와 대화를 많이 나누고 친한 것 같지만 그게 아니다. 아마도 중학생 때까지는 어느 정도 대화가 있었다. 그러나 고교 때부터는 일찍 등교하여 늦게 귀가하니 대화하려 해도 시간이 없다. 그 때부터 말이 가족이니 따로따로 생활하는 것이다. 식사 시간이 다르니 대화할 기회가 많지 않다. 대학생인 딸과 아들. 딸은 서울에서 자취하고 아들은 함께 생활하지만 대화시간이 별로 없다. 기껏해야 딸의 소식은 페이스북을 통해 듣는 정도다. 아들과는 하루 5분도 채 안 된다. 그냥 건성으로 주고 받는 말이 대부분이다. 자는 아들에게 “아빠, 출근한다” 귀가하는 아들에게 “저녁 먹었니?”가 대화의 전부다. 그런 아들이 인터뷰를 요청한 것이다. 아들과 가까워질 수 있는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어버이 날 밤 9시 30분, 스마트 폰과 노트북을 갖고 거실로 나온다. 무려 질문이 20가지가 넘는다.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무려 1시간 30분이 걸렸다. 아들과 이렇게 길게 인터뷰 해 보기는 처음이다. 기억나는 질문으로 인생철학, 가치관을 묻는 것이다. 어렸을 때 학업 성적도 묻고 인생살이의 어려움도 묻는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홀어머니 아래서 어려운 가정생활 이야기를 할 때는 목이 메인다. 요즘 자식들 경제적 궁핍을 모른다. 자식이 부모에게 돈 달라고 하면 쉽게 내어주기 때문이다. 그게 진정한 자식교육은 아닌 것이다. 요즘 가정의 문제는 가족간에 서로가 잘 모른다는 것이다. 다만 서로가 잘 알고 있다고 착각 속에 살아가는 것이다. 아들은 아버지가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 어느 대학원을 나왔고 전공은 무엇인지 이번에 알게 되었다. 이것이 다 대화 부족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아버지의 어렸을 적 꿈도 이제야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올해 가정의 달, 딸과 아들은 친할머니와 친할아버지 수목장을 찾았다. 한 치 건너 두 치라는 말이 있다. 자식들은 부모까지만 알지 조부모까지는 모른다. 아마도 조부모 성함까지 아는 손자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말이 핏줄이요 가족이지 알려고 하지 않는다. 대화 부족에서 나온 현상이다. 가정의 달 5월, 가족이 가까워지는 방법 하나. 일부러라도 가족 모임을 만들어 동참하게 하는 것이다. 어버이 은혜에 감사하라고 하지 말고 부모님과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부모는 자신의 입장만 강요하지 말고 자식의 입장이 되어 보는 것이 중요하다. 기념일이라고 모여서 식사만 해서는 안 된다. 서로 마음이 통하는 대화가 필요하다.
2010년 서울에서 열린 G20 폐막 기자 회견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곳에 국내 기자와 외신기자들이 자리하고 있다. 여러 기자의 질문을 받던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마지막 질문은 주최국인 한국 기자들에게 주고 싶다는 친절을 베푼다. 순간 한국 기자들이 손을 들고 기회를 얻으려고 했을까. 넓은 기자 회견장은 오히려 조용해진다. 재차 대통령이 같은 이야기를 해도 어색한 침묵만이 흐른다. 급기야 오바마는 영어를 잘 하지 못하면 통역을 이용해도 된다는 농담 아닌 농담까지 던진다. 질문자가 없냐고 몇 번을 물었지만 여전히 조용하다. 이때 중국 기자가 어색한 분위기를 모면하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욕심이 있어서인지 자기가 대신 해도 되겠냐며 오바마 대통령에게 부탁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다시 질문을 원하는 한국 기자들을 찾지만 역시나 아무런 반응이 없다. 결국 중국 기자가 질문을 한다. 오래 전 일이지만 이 영상은 최근에 자주 본다. 특히 교실에서 질문을 하지 않는 아이들의 모습을 이야기할 때 관련 영상으로 거론된다. 교실에서 질문을 하지 않는 교육을 성찰하기 위한 자료가 되고 있다. 그러나 나는 먼저 이 영상을 삐딱한 심사로 보고 싶다. 우리 기자들은 질문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은 아닐까. 이미 상황이 끝났기 때문에 더 이상 물을 것이 없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는 미국 대통령이 질문 시간을 준 것이 잘못이다. 따라서 취재를 다 맞춘 시점에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힘을 가진 미국 대통령이니 무조건 질문을 했어야 한다는 시각도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안타까운 면이 있다. 오바마는 기자의 역할을 염두에 두고 제안을 했다. 즉 오바마는 기자들은 질문을 통해 종종 심층 보도 자료를 얻는다고 믿고 있었다. 그리고 그 역할을 개최국인 한국의 기자들이 했으면 좋겠다는 배려의 마음을 보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기자들이 질문을 했어야 옳다. 기자들이 직업의 본분을 잊은 측면이 있다. 우리가 질문에 익숙하지 않은 이유는 어른을 공경해야 하는 문화와 연결되어 있다. 그 공경심의 발로는 침묵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질문을 하다보면 어른에게 부적절한 말을 할 수 있으니 차라리 조용히 있으라는 강요를 받았다. 질문이 좋은 성과를 낼 수도 있지만, 반대로 어른에게 누가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차라리 스스로 자기의 발언을 통제하여 안전하게 가려는 심리가 깔려 있다. 이런 문화는 교실에서 싹튼 측면이 있다. 산업 사회에서 집단화된 교육 형태는 짧은 시간에 많은 정보를 전수받는다. 선생님은 개인의 궁금증보다는 학급 전체에 필요한 지식을 쏟아 부어야 한다. 그것도 모자라는데 개인에게 질문 시간을 줄 수도 없다. 오히려 질문을 하면 많은 학생들의 시간을 빼앗는 경우만 된다. 결국 질문을 하면 선생님께 아이들에게 비난을 받는다. 우리 아이들을 질문의 문맹자로 만들어버린 이유이다. 마지막으로 질문에 대한 오해가 있다. 배움이란 본질적으로 남에게 물어야만 가능한데, 그것을 창피하게 생각한다. 질문을 하면 나의 무지함으로 드러내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질문을 하고 싶은데도 마음속에 숨기고 있는 것이다. 질문하는 학습 형태로 하브루타 교육이 화제다. 유태인의 교육 방식으로 상대방과 상호 질문 대답하며 토론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결론을 도출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전통은 이스라엘의 가정교육에서부터 시작하는 후츠파 정신에서 비롯한다. 후츠파 정신은 어릴 때부터 형식과 권위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질문하고, 도전하며 때로는 뻔뻔하면서도 자신의 주장을 당당히 밝히는 것이다. 이것이 뿌리가 되어 세계 인구의 0.2%밖에 되지 않는 유태인이 지금까지 노벨상의 22%의 주인이 되었다. 조벽 교수의 저서에서 최상의 수업 조건을 제시했는데 이것도 질문과 연관되어 있다. 여기에서 교사가 묻고 교사가 답하면 최하급의 수업이라고 한다. 이보다 조금 발전된 수업이 교사가 발문하고 학생이 답하는 것이다. 그리고 학생이 질문하고 교사가 답하면 바람직한 수업이다. 그리고 학생이 질문하고 학생이 답하면 최상의 수업이라고 한다.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학생과 학생 간에 협력학습, 협동학습을 시도하는 것도 최상의 수업 조건과 관련이 있다. 이런 학습 형태가 수준이 다른 학생들이 서로 도움을 주는 방식으로 배움을 촉진할 수 있다는 것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대학 입학시험에서 학생부종합전형이라는 전형 방식이 대세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과거 입학사정관이 시험 형태가 바뀐 것이다. 이 평가 방식에서는 면접이 중요한 영역이다. 이는 미국의 명문대학에서 벤치마킹한 것이다. 교수가 학생들에게 질문을 하고 그 답을 평가한다. 하지만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우리와 달리 미국은 교수의 마지막 질문이 핵심이다. 뭐냐 하면 ‘질문 있습니까?’이다. 학생의 질문을 통해서 관심사가 무엇인지 알고, 그 관심이 미래 어느 시점까지 미치는 지, 어느 정도로 깊게 생각하는지 판단한다. 학생의 질문으로 열정과 비전을 판단하고, 질문을 통해서 진짜 인재인지 가짜 인재인지 판단한다. 수업 시간에 학생이 질문하고 학생이 답하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했지만, 현실적으로 수업 시간은 일차적으로 교사의 질문으로 시작된다. 교사의 좋은 질문 사용 방식은 학생들의 질문을 이끌어내는데 효과적이다. 동서양을 대표하는 인류의 스승 공자와 소크라테스도 제자들에게 일방적으로 가르치기보다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 답을 찾도록 했다. 문제는 질문은 정답을 묻는 행위가 아니라 학생에게 이유를 던져 호기심을 유발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때도 교사의 질문은 제한적이어야 한다. 교사가 질문을 독점하면 교사 중심으로 수업이 진행될 수 있다. 수업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수업은 교사의 가르치는 능력을 발휘하는 시간이 아니라, 학생들이 무엇인가 배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시간이다. 교사가 학생들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행위는 학생들의 생각을 파괴하는 일이다. 학생은 수업의 대상이 아니라 지식을 만들어가는 주체이고, 교사도 학생과의 소통과 협력을 통해 배움을 형성한다. 수업 시간에 자기 생각을 만들고 나누는 과정을 통해 진정한 배움과 가치를 내면화하는 수업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사는 학생들이 끊임없이 의문을 갖도록 도와야 한다. 이 방법은 당장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면의 변화를 통해 성장할 수 있도록 자극한다. 그래서 그들이 스스로 질문을 찾도록 유도해야 한다. ‘왜냐고’ 질문하는 순간 학생들은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고 해답을 찾아가면서 비로소 완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