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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이인규 /아름다운학교운동본부 사무총장 1. 들어가는 글 "2·3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가 있다. 바로 이정명이다. 친구 정명이는/ 형편이 안 좋은/ 애이다. 우리 집에 오면/ 엄마는 내 친구를/ 챙겨주고 친절하게/ 대해준다. 우리 반 친구는/ 정명이가 너무/ 가난하다고 때린다. 나는 그 광경을/ 볼 때마다/ 정명이가 불쌍하다. 또 어쩔 때는/ 학교에 오지 않는다. 지금도/ 학교에 오지 않아/ 정말 걱정이 된다." 지금 우리 경제는 나날이 발전하고 있지만 계층간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더욱이 1997년 IMF 사태가 오고 이후 사회적으로 계층 격차가 커졌다. '내친구 이정명'이라는 제목으로 한 초등학교 학생이 쓴 시는 이러한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다. 지금 학교에서의 계층 격차는 어떠한가? 부유한 지역의 학생들은 한 달에 수백만원 하는 과외를 하고 방학이면 해외어학 연수를 떠난다. 2001년 서울대의 신입생 중 부모가 고위 관리직, 전문직인 부유층 자녀가 절반을 넘는 53%를 차지할 정도로 교육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서울대에 BK21 자금의 50% 이상이 가는 등의 교육적 차별 현상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한편 가난한 계층의 학생들은 '여러 줄 세우기 선발정책'이나 창의력 평가에서 오히려 불리한 경쟁만이 주어진다. 가난한 계층의 학생들은 주5일제 수업과 같은 개혁 정책에서도 급식이 줄어들까 걱정이 앞선다. 가난한 계층에게 이러한 정책들이 불리하다 하여 이것들을 개혁 노선에서 지우라고도 할 수 없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사정을 보여준다. 지금 교육정책 당국자들이 학교와 교사들이 일부러 계층 격차를 부추기지도 않았다고 말해도 그리 무리는 없다. 실제 IMF이후 정부는 중학교 의무교육을 확대하는 조치를 취하였으며 결식아동을 위한 무료급식 지원을 실시하였고 사교육비 경감을 위한 특기적성 교육 활성화 정책도 취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격차들은 오히려 늘어만 가고 있는 실정이다. IMF 사태 이후 그 역작용으로 일어났던 신자유주의 풍조가 교육을 통한 계층 격차를 부추기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지금 우리 교육계에는 교육 격차의 문제를 해소하는 것이 교육정책 밖의 일이라 보는 경향이 강하다. 실제 교육학계에서 소외 학생들에 대한 조명도 그리 많지 않거니와 교육 관련 기사에서도 이들의 소외된 삶을 비추는 일은 많지 않다. 소외 학생의 문제는 교육계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 밖의 문제라는 시각이 우세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옳지 못하다. 학교는 학생이 부유한 부모의 아이이든 가난한 부모의 아이이든 가르쳐야 할 의무가 있다. 학교는 장애아이든 비장애아이든 이들에게 똑같은 학습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학교 자체의 문제 때문에 부적응을 겪는 아이들에게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만 한다. 이러한 신성한 의무를 제1차적으로 수행해야 할 기관은 다름 아닌 학교다. 학교가 소외 학생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기 위해서는 먼저 다음의 질문에 답을 해야 한다. '내 친구 이정명'처럼 지금 학교에서 소외 학생들은 과연 누구인가? 이들은 학교에서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가? 우리는 소외 학생들의 문제에 직면하면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과연 학교는 소외 학생들을 통해서 어떻게 스스로 변화되어야 하는가? 2. 소외 학생의 범주 소외(Alienation)를 문자 그대로 표현하면 원래의 것 혹은 정상적인 것으로부터 떨어져 존재하는 현상을 말한다. 정신의학에서 소외란 정신 이상(mental disorder)을 의미하며 사회학에서 소외란 인간들의 관계 상실을 의미한다. 철학에서 소외는 목적과 수단의 전도, 즉 인간성의 상실을 의미한다. 우리가 소외 학생이라 하였을 때의 소외는 학생으로서의 정상적 삶을 영위하기 어려운 상태를 말한다. 소외 학생이라는 용어 대신에 청소년계에서는 '소외 청소년'이라는 개념을 흔히 사용한다. 청소년이라는 법적 정의는 1990년에 제정된 청소년 육성법에서는 9세에서 24세의 인구로 규정되어 있으며 일반적 관념상으로는 중·고등학교 학령대에 속하는 13세에서 18세의 인구로 규정되기 때문에 소외 청소년이라는 개념은 유·초등학교의 연령 인구가 배제된다는 한계를 갖는다. 반면에 소외 학생이라는 개념은 유·초등에서 대학에 이르는 광범위한 연령대에서의 소외를 말하기 때문에 학교가 무언가를 해야 할 대상으로서의 연령층은 모두 포괄한다. 그렇지만 이미 학교에서 내몰린(push-out) 청소년은 또다시 소외되는 한계를 갖는다. 한준상(한준상, 1999)은 이들을 '교육 소외 청소년'이라 부른다. 이러한 개념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소외 학생이라는 용어에는 모든 청소년이 교육받을 권리가 있는데 이들이 학교 중단의 위기 상태에 내몰리고 있는 절박성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학교가 이들에게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용어이다.[PAGE BREAK] 일반적으로 극빈자, 결손 가정 학생, 부적응 학생, 소년소녀 가장, 장애아, 결식 아동 등의 다양한 표현들은 소외 학생의 일반적 현상을 표현하는 용어들이다. 만약 이러한 일상 용어를 보다 개념적 범주로 표현한다면 크게 경제적 빈곤, 가정 해체, 육체적 질병 및 장애, 정신적 부적응 등의 4가지 요인으로 분류할 수 있다. 소외 학생에 대한 제도적 지원은 사호보장기본법에 따른 국가적 지원 그리고 학교 자체에서 운영하거나 각종 민간기관에서 제도적으로 운영하는 지원 등으로 구분된다. 그러면 세부적으로 이들 삶을 이해하고 어떤 지원들이 존재하는지 살펴보자. 3. 소외 학생의 지원 상황 경제적 빈곤은 생계비를 감당할 수 없는 저소득을 의미한다. 경제적 빈곤은 이것으로 멈추는 것이 아니고 사회적 소외, 정서적 위축, 가족 구조적 해체, 낮은 교육기회 등의 보다 중첩적 문제를 낳는다. 빈곤층이 가진 소외 현상은 열악한 소득에 의한 생활 불안정, 지속적인 주거 불안정, 불안정한 고용 상태, 자녀의 방치, 빈곤화에 따른 가족해체 등의 현상과 직간접으로 결부되어 있다. 절대 빈곤 학생에게 투여되는 공적 부조는 다음과 같다. 국민기초생활보장비로는 소득 및 가구규모에 따라 월 3만원에서 32만원까지 지급된다. 총 급여액은 최저생계비 전체를 지급 받는 것이 아니라 최저생계비에서 가구소득과 타법에 의한 감면액을 뺀 차액을 보충적으로 지급 받는다. 이 중에서 저소득층 학생은 10% 추가 지급된다. 그렇지만 이러한 적은 기초생활비로는 소외 학생의 복지적 욕구를 제대로 채울 수 없다. 저소득층 자녀에 대한 정부 장학금 수혜자 수는 연 40만명 정도이다. 학비지원 절차는 학교에서 모든 학부모(보호자)에게 가정형편이 어려운 경우 학비지원 신청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의 통신문 발송→학비지원을 희망하는 학부모는 '학비지원신청서'를 작성해 학급 담임교사에게 제출하거나 우편으로 신청→학급 담임교사는 신청자 중에서 지원대상 학생을 선정해 학교별로 구성되는 학생복지심사위원회에 추천→위원회의 심의·결정을 거쳐 학비 지원 등의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올해의 결식 아동에 대한 급식지원 대상은 약 20만명 이지만 일선에서는 턱없이 부족하여 아직도 굶는 학생들이 많다고 호소한다. 일부이기는 하지만 학생들에게 지급된 급식비를 어른의 술값으로 치르는 사태가 발견되기도 한다. 학교가 열리지 않는 방학과 휴일이 되면 급식이 지원되지 않아 결식 학생들은 오히려 방학이 두려워진다. 중·고등학교에서는 학생들이 급식 받는 것을 꺼려 신청을 하지 않는 경우의 문제점이 드러나기도 한다. 정부는 결식 아동 학교급식 지원 대상을 올해 19만7000명에서 내년 30만5000명으로 늘리기로 했다. 장애는 지체장애, 시작장애, 청각장애, 언어장애, 정신지체 등으로 분류된다. 1977년부터 특수교육 진흥법을 제정하여 장애아동에 대한 교육을 통합교육으로 하려는 여러 가지 노력을 하고 있지만 현재 우리의 실정은 아직도 통합교육이 적절히 시행되지 못하고 특수학교로의 분리교육이 상당 부분 시행되고 있다. 일반 학교에 60%, 특수학교에 40% 정도 수용되어 있는 것이다. 질병에 대해 학교가 수행해야 할 업무는 학교보건법에 의해 규정되어 있다. 생활보호대상자의 질병에 대해서는 의료보호법으로 사회보장을 제공한다. 의료보호란 생활유지의 능력이 없거나 일정 수준이하의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국가재정에 의하여 기본적인 의료혜택을 제공하는 공적부조 방식의 사회보장제도이다. 그러나 의약분업 이후 의료수가인상 및 약값인상 등의 여파로 생활보호 대상자들이 약국들로부터 약 지급을 거부당하고있어 경제력이 없고 질병에 노출되어있는 생활보호 대상노인, 장애인 및 소년소녀가장 등에 대한 행정당국의 특별한 대책이 요구되고 있다. 단기적 질병의 경우는 학교에서 무결석 처리되기 때문에 이로 인하여 학업 중단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장기적 요양이 필요한 경우 학업에 지장을 받게 된다. 수술 등으로 막대한 비용이 드는 질병의 경우 경제적인 어려움이 함께 오기 때문에 이 경우 학생들은 외부적 도움을 필요로 한다. 가정 해체는 부모의 이혼, 가출, 사망, 질병, 미혼부모의 출생, 본인의 가출 등으로 인하여 정상적인 가정 생활을 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고아, 미아, 기아 등 부모가 없는 아동에 대해서는 아동복지법에 의해 생활이 보장되고 있다. 아동복지법은 아동에 대한 보호조치로 대리양육, 위탁보호, 시설보호를 규정하고 있으나 주로 시설보호가 이루어지고 있다. 대리양육 및 위탁보호, 재택보호 등 다양한 방법을 규정하고 있지만 이러한 보호는 시설보호에 비해 너무나 미미하다. 거택보호의 유일한 경우로 소년가장지원사업이 있는데 이러한 소년가장 세대에 대해서도 금품지원 이외에 국가차원의 가사보조사업은 없고 다만 민간기관 등에서 소수 인원과 자원봉사자 또는 대학의 실습생 등을 통해 간단한 생활서비스가 일시적으로 행해지는 정도다. 부적응 학생이란 학교 교육에 대한 염증, 좌절 및 학생들과의 부적절한 인간관계, 범죄 및 비행 등으로 인한 학업 결손 등의 사유로 학업 중단의 위기에 있는 학생이다. 교실 붕괴, 학교폭력, 집단 따돌림 등의 현상적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이러한 소외는 청소년기가 인생에서 심리적 이유기로서 자율성을 강화하는 시기고 사회 생활에 필요한 지식과 기능을 습득하는 시기라는 점에서 삶에 나쁜 영향을 준다. 더욱이 부모로부터 전이된 소외가 다시 본인 세대의 소외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부적응 학생들에 대한 국가 지원으로 문화관광부에서 운영하는 청소년 상담소, 교육청에서 운영하는 학생 상담소, 그리고 일부 지역 교육청에서 시도되는 공립 대안학교 및 대안교육 프로그램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소외 학생에 대한 국가적, 사회적 지원은 한 마디로 말해서 죽지 않을 정도로 최소한에 머물러 있다. 그리고 해마다 매년 5만명에 해당하는 고교생과 2만명 수준의 중학생들이 학교에서 탈락한다. [PAGE BREAK]4. 학교가 스스로 해야 할 일은? 지금 우리의 교실에 '내 친구 이정명'이 생겨나면 담임 선생님은 어떤 조치를 취할까? 만약 훌륭한 선생님이라면 정명이의 가난에 대해 함께 고통스러워하면서 그의 아픔을 나누려 할 것이다. 선생님께서 자신의 권한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힘닿는 데까지 할 것이다. 우선 결실아동 중식지원을 하게 될 것이고 생활보호대상자로 선정하여 등록금 면제 혜택을 받게 할 것이다. 친구들에게 정명이를 괴롭히지 말라는 부탁도 곁들일 것이다. 만약 좀더 훌륭한 교사라면 주어진 권한을 넘어서 '내친구 이정명'을 통해 보다 적극적인 활동을 기울이게 될 것이다. 먼저 이 교사는 정명이와 그의 친구들이 겪어야 할 학습 경로를 추적하게 될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가정에서의 사랑을 체험하면서 행복감을 느끼고 자라다가 새롭게 사랑을 체험하는 것은 또래 집단 속에서이다. 비슷해서 교감을 나누는 사랑보다는 진정 이질적인 대상과의 교감이 필요한 차원 높은 사랑을 배우는 것도 이러한 또래 집단에서이다. 아이들이 학교 속에서 배움을 얻는 동안 그 배움이 필연적으로 자신이나 혹은 타인이 병들거나, 가난하거나, 외톨이거나, 공부를 못하거나, 선천적인 장애를 겪거나 하는 등의 불행한 사태를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경험은 싯다르타가 성밖에 사는 사람들의 생로병사를 보고 새로운 학습의 길을 의지하게 되는 것과 같은 성질의 것이다. 만약 이정명의 친구들이 정명이를 따돌리고 여전히 소외되지 아니한 그룹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해 사회를 학습하게 된다면 그 미래는 건강한 것일까? 만약 이정명이 도태되고 난 그 다음의 소외자 삶은 다시 도태 위기를 맞아야만 하는 것일까? 만약 그것이 내 자식의 차례라면 이를 용인할 것인가? 이정명의 친구들이 이미 사회보장 시스템이 잘 작동되어 있으므로 우리가 정명이의 일을 상관할 것 없다고 단정하고 소외에 대한 관심을 두지 않는 것으로 대책을 세웠다면 그것은 과연 적절한 상호작용일까? 물론 사회보장 시스템이 잘 작동될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도 문제이지만 설사 잘 작동된다 하더라도 적어도 '내친구 이정명'을 통해서 사랑의 의미를 배울 기회는 잃어버린 셈이 된다. '가난한 자들에 대한 도움을 통해서 참사랑의 기쁨을 깨닫고 삶의 행복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는 사실과 '교실 단위에서, 학교 단위에서 소외된 단 한 명의 학생을 사랑할 줄 모르면서 나라를 사랑하고 미래를 사랑한다는 말을 누구도 할 수 없다'는 진리를 자각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면 학교가 스스로 해야 할 일은 자명해진다. 지금 여기에서 누가 소외되어 있는지 항상 살피고 이를 도울 수 있도록 깨어있는 조직이 되라는 것이다. 교사뿐만 아니라 모든 교육계 사람들에 있어서도 '내친구 이정명'의 존재는 참으로 고마움 존재이다. 우리 교육계가 가진 권능의 한계를 점검하고 그 외연을 확장할 계기를 부단히 마련한다는 것이다. 곧 소외 학생 문제를 직면함으로써 교육이라는 것이 굳이 용어 한 자, 지식 하나 더 불어 넣어주는 것이 아니라 삶의 지혜를 얻고 모든 사람들이 함께 행복해지는 길을 터득할 수 있게 하는 수행장으로 거듭날 수 있는 계기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기본적 조치를 필요로 한다. 첫째, 교육계는 소외 학생에 대한 국가적 복지 수준을 높이기 위한 정책을 펴거나 복지 수준을 높이기 위한 요구를 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교육적 노력들은 결국 더불어 사는 데에 있으며 이러한 목표를 실현시키기 위한 노력을 전개함으로써 아이들로 하여금 미래 사회에 대한 확실한 표식을 보여줄 것이다. 둘째, 어른과 아이들이 당장 함께 할 수 있는 것을 실천하게 될 것이다. 학교에서부터 올바른 기부 문화를 정착하고 자원봉사를 통해 헌신이 주는 기쁨을 공유하려 할 것이다. 아무 것도 대가를 바라지 않는 베풂이 무엇인지 우리 아이들이 일찍부터 체험하게 될 것이다. 셋째, 소외의 근원을 살피고 이를 더불어 해결하려는 각종 학습 프로그램을 강구하고 이를 실천하게 될 것이다. 세상은 나 홀로 존재하지 않으며 서로를 통해 행복을 느낀다는 사실을 수업을 통해 학습할 수 있다면 '내친구 이정명'이 우리 교실에 존재하는 근원적 이유를 모두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김재일 두레생태기행 회장 바닷물이 육지로 밀려와 생긴 호수 석호란 빙하기가 끝난 후 불어난 바닷물이 육지로 밀려들어와 생긴 호수를 말한다. 석호가 상당한 소금기를 갖고 있는 것을 보면 석호가 산에서 내려온 민물로만 채워진 호수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대개의 석호는 하구에 모래언덕을 갖고 있다. 이 모래들은 상류에서 떠내려온 것으로 세찬 바닷바람과 거친 파도에 의해 더 이상 바다로 들어가지 못하고 호수와 바다 사이에 쌓인 것이다. 쌓인 모래언덕은 자연스레 석호의 제방 둑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이번 기행은 동해안의 겨울 석호를 찾아 떠난다. 강릉 경포호는 송강 정철이 '관동별곡'에서 "물결이 잔잔하여 모래를 헤아리로다"라고 예찬한 호수이다. 경포대 해수욕장에 이어져 있는 경포호는 오대산 동쪽 기슭의 실핏줄 같은 개울물과 바닷물이 한데 모여 만들어낸 호수다. 거울같이 맑고 깨끗해서 옛 사람들은 경호(鏡湖)라고 불렀지만 그 사이에 많이도 변했다. 1960년대의 호안공사와 1970년대의 유원지 개발로 크기가 절반으로 줄어들어 26만여평만 남아있다. 관광지 개발로 주위의 경관도 크게 망가졌다. 한때는 생태계 원리를 무시한 채 호수 밑바닥을 대대적으로 준설하는 바람에 엄청난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하기도 했다. 그래도 해마다 겨울이면 철새들이 잊지 않고 찾아주어서 눈물겹도록 고맙다. 경포호 바깥은 모래 해수욕장이다. 모래 해변을 지질학상으로 사빈(砂濱·sandy beach)이라고 한다. 동해안의 지질구조는 강릉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크게 다르다. 정동진-동해-삼척-울진을 잇는 남쪽 해안에는 화강·편마암으로 이루어진 해안단구(海岸段丘)의 기암절벽들이 많고 양양-속초-고성을 잇는 북쪽 해안은 화강암이 발달해서 사빈이 상대적으로 많다. 석호가 강릉 북쪽에 집중되어 있는 까닭도 바로 그러한 사빈이 해안에 넓게 형성되어 있어서 그것이 석호의 제방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경포호의 북변은 금강송 숲이 에워싸고 동쪽 바닷가는 해송 숲이 에워싸고 있다. 금강송 숲은 경관·정서적 가치가 높고 해송 숲은 생태적 가치가 높다. 생태기행이라 해도 경포에 와서 꼭 보고가야 하는 문화유산이 있다. 호수 옆 강문마을의 솟대가 바로 그것이다. 진또배기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이 솟대는 자연을 신앙으로 섬긴 우리 조상들의 삶의 한 흔적이다. 봄이면 연곡천으로 황어 떼 몰려와 강릉을 지나 주문진을 저만큼 앞두면 오대산 송천계곡에서 발원한 연곡천을 만난다. 연곡천 민물에는 버들개, 꾹저구, 붕어, 메기, 민물새우, 다슬기 등이 살고 있다. 연곡천과 바다를 오르내리는 강오름 물고기들로는 황어, 칠성장어, 은어, 가시고기, 참게, 송어 등이 있다. 특히 연곡천은 황어들의 고향이다. 봄이면 황어들이 바다로부터 시커멓게 떼지어 올라와 알을 낳고는 바다로 돌아간다. 황어는 어른들 팔뚝보다 조금 작지만 민물고기로서는 대형에 속한다. 황어는 보릿고개가 힘겨웠던 이곳 사람들의 허기진 배를 채워준 은혜로운 고기였다. 옛 사람들이 그 은혜를 기억하기 위해 지어놓은 '황어말' '황어대'라는 지명이 지금도 남아있다. 주문진을 지나면 곧바로 향호를 만난다. 해발 1012미터의 철갑산 기슭에서 내려온 골짝물이 바닷물과 합방하는 석호이다. 향호는 50만 평방미터로 경포호의 2배나 된다. 지금은 중장비 소리가 멈추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질 좋은 규사를 긁느라고 호수 바닥을 뒤집어놓았다. 그 바람에 호수의 수질이 크게 오염되어 폐호(廢湖) 직전까지 갔다. 그래서 지금 향호에는 2급수 어종인 빙어가 3급수 어종인 잉어, 붕어, 가물치에게 자리를 내주고 있다. 청둥오리를 비롯한 잡식성 오리들이 물위에 한가로이 떠 있고 갈대밭 쪽에는 중백로 몇 마리가 죽은 듯이 서서 논병아리의 잠수질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향호를 지나면 강원도 양양 땅이다. 매호는 양양에서 처음 만나는 석호이다. 동해안 석호의 평균 염도는 19 PPT 안팎이다. 35 PPT인 바닷물 염도에는 비할 바 못되지만 일반 담수호에 비하면 소금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석호를 일명 '소금호수'라고 부른다. 그러나 매호는 염도가 낮아서 습지식물대가 비교적 넓게 퍼져 있다. 숭어, 은어, 가시고기와 같은 회유성 물고기들이 봄이면 바다에서 올라온다. 그밖에 붕어, 빙어, 검정망둥어를 비롯한 민물어종과 재첩, 빗조개, 중새우, 갯지렁이도 이곳의 가족들이다. 철새들은 농경지로 활용되고 있는 상류쪽 습지에도 철새들이 많이 내려앉는다. 한때 호수 위를 하얗게 덮었던 고니는 사라지고 지금은 주로 오리류들이 터주대감 자리를 지키고 있다.[PAGE BREAK]오염으로 호수 생태계 크게 망가져 속초시내로 들어가면 청초호와 영랑호를 만난다. 청초호는 항만으로 활용되고 있는 유일한 석호로 500톤급 선박이 외해를 드나드는 속초항의 내항이다. 청초호는 바닷물 유입량이 많아 염분농도도 동해안 석호 가운데 가장 높다. 항만 주위의 각종 산업시설과 상가로 해서 수질이 오염되어 호수로서의 생태적 기능이 일찍이 포기된 호수이다. 36만평이나 되는 영랑호는 아파트, 빌딩, 콘도 등으로 목이 죄여 있다. 영랑호는 수질 오염으로 낚시꾼들의 발걸음마저 끊긴지 오래다. 영랑호를 지나면 고성땅에서 봉포호를 만난다. 석호는 바닷물이 들락거리는 기수호이기 때문에 담수호에 비해 수생식물은 적지만 플랑크톤이 많아서 조류와 어류상이 다양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석호의 미래는 그리 밝지 않다. 하천의 퇴적물이 쌓이면서 깊이도 얕아지고 넓이도 점차 좁아지고 있다. 게다가 이곳 봉포호는 위쪽에 자리한 축사에서 흘러드는 폐수로 수질이 떨어지고 최근 호숫가에 대학 캠퍼스가 들어서면서 환경이 크게 변화하여 호수 생태계가 말이 아니다. 아마 동해안 석호 가운데 생태계가 가장 크게 망가진 호수일 것이다. 7번 국도와 줄곧 함께 달려온 바닷가의 모래밭은 청간정을 지나서도 이어진다. 동해안의 사빈은 거의가 해수욕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속초에서 송지호에 이르는 구간에는 일반인들의 출입이 금지된 군사보호지역이 바닷가에 함께 자리하고 있다. 철조망으로 둘러쳐진 군사보호지역은 한국전쟁 이후 지금까지 인적이 끊어져 있는 곳이다. 그래서 수달이 해안습지에서 목격되고 올해는 독수리 떼까지 내려앉았다. 독수리는 우리 나라에서도 임진강과 낙동강 하구에서나 어쩌다 눈에 희귀종이다. 초겨울이면 해안선을 따라 독수리가 남하한다는 조사보고서가 있긴 하지만 흔한 일은 분명 아니다. 송지호는 간성읍을 10여 킬로미터 앞둔 바닷가에 자리한 석호다. 둘레 4킬로미터에 면적이 20만평이라면 다른 석호에 비해 그리 넓은 편은 아니지만 생태계는 비교적 튼실하다. 주변에 인구가 밀집된 도시가 없고 울창한 송림과 습지식물이 양호한 수질을 유지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바닥의 모래는 재첩이 서식할 정도로 깨끗하고 수심도 비교적 일정해서 순담과 같은 희귀한 수초도 관찰되고 있다. 재첩과 순담은 이웃한 왕곡마을 사람들의 삶을 기름지게 해주고 있다. 바닷물을 타고 숭어, 황어, 뱅어, 은어, 살감생이, 망둥어, 학공치와 같은 다양한 기수어종들이 들어와서 붕어, 메기, 가물치와 같은 민물어종들과 궁합을 잘 맞추고 있다. 염도가 높은 화진호는 '백조의 호수' 고성 산불 이후 송지호도 위기에 놓였다. 다행히 바다와 호수를 이어주는 물길을 인공적으로 파서 송지호를 간신히 살려냈다. 생태계의 숨통과도 같은 물길은 시들어가던 호안의 갈대밭을 살리고 사막으로 변해가던 해안습지대를 촉촉하게 적셔주고 다양한 바닷고기들을 호수 안으로 불러들였다. 어디 그 뿐인가, 난데없는 독수리가 날아드는가 하면 물길의 물고기들을 쫓아 수달이 바닷가로 내려와 설치고 다닌다. 특히 내륙의 깊고 맑은 하천에서만 볼 수 있는 수달이 해안습지와 모래밭에까지 나돌아다니는 것은 이만저만 반갑고 놀라운 일이 아니다. 화진호는 거진읍에서 북쪽으로 불과 4킬로미터 거리에 있다. 둘레 16킬로미터에 72만평에 이르는 화진호는 동해안 석호 가운데 가장 넓다. 드넓은 호수 주위로 울창한 해송과 육송 숲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어서 생태와 풍광이 그만이다. 물억새와 갈대가 숲을 이루는 여름날 호안 주변에는 부들, 좀보리사초, 털질경이, 눈양지꽃, 갯완두 등이 습지식물대를 이루고 있다. 이들은 화진호의 수질을 정화시켜주는 필터 역할뿐만 아니라 여름철새들에게 번식지를, 겨울철새들에게 거센 바람을 피할 수 있는 은신처를 제공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보기 드문 참게도 그 갈대 숲 주위에 서식하고 있다. 화진호는 다른 석호에서는 흔하지 않은 전어와 돔 종류까지 들어와 머물 정도로 염도가 높다. 높은 염도로 해서 웬만한 추위에도 호수가 잘 얼지 않아서 고니를 선두로 다양한 겨울철새들이 내려앉는다. 게중에는 천연기념물인 황새, 장다리물떼새, 저어새, 제비갈매기 등이 함께 하고 있다. 특히 화진호는 동해안에서 가장 많은 고니가 도래하는 곳이다. 때로는 200여 마리까지 내려앉아 그대로 '백조의 호수'가 된다. 개체수로는 큰고니가 가장 많지만 고니와 혹고니도 가끔 눈에 띈다. 천연기념물 제201호인 고니는 몸이 희다고 해서 일찍이 '백조'라고 불린 새이다. 화진호 바깥은 사빈으로 이루어진 해수욕장이다. 사빈은 휴전선을 넘어 고성의 감호, 통천 동포호와 천아호와 같은 아름다운 석호들을 연이어 만들어 놓았다. ▣ 참고 강릉까지는 고속버스를 이용하고, 강릉에서 10분마다 뜨는 주문진-양양-속초-간성-거진행 버스노선을 이용하면 굳이 승용차를 끌고 가지 않아도 된다. 숙소와 식당은 강릉-속초를 잇는 관광벨트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다. 연말연시 며칠을 제외하면 겨울은 온통 비수기이다.
김대성 /서울 광남초 교장·교육학박사 어느덧 12월, 한해가 저물고 있다. 돌이켜보면 우리 교육계는 올해도 여러 가지 문제와 갈등은 안고 지내왔다. 위기를 넘어 붕괴라는 험한 말까지 듣는 것이 오늘날 우리 공교육의 현실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우리의 교육에 희망이 있음을 알고 있다. 또 우리 교육의 희망이 나라의 희망임을 알고 있다. 묵묵히 제자들과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는 선생님들이 그 희망의 주체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교육위기에 대한 무수한 진단과 처방이 있지만 그 중심에 교원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 이유이다. 교육의 모든 주체가 공교육 살리기에 노력하고 있는 시점에 몇 가지 제언을 하고 싶다. 우선 교육정책의 수립과 집행에 교원의 의견이 충분히 그리고 제대로 반영돼야 한다는 점이다. 늦은 감이 있지만 교육 관리들이 현장의 소리에 많은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다행한 일이다. 우리 나라 교육정책 입안자 대부분이 현장 경험을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외국 생활을 오래하고 그곳에서 학위를 받은 관료들은 우리 현장을 좀더 세밀하게 관찰한 뒤에 정책을 세워야 하고 현장경험이 없는 관료들은 현장에 대해 좀 더 배우는 자세를 견지하라고 권하고 싶다. 언제까지 자신들이 공부한 외국의 사례들을 중심으로 한 이론만 제시할 것인가? 교원 양성기관의 관계자들도 학교 현장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지식의 전달자로서가 아니고 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확고한 철학을 가진 전인교육 담당자로서 올곧은 교육관과 실천의지를 가진 교사를 기르는 것이 교원 양성기관의 책무이다. 외국의 교원양성 담당자들 대부분이 일년의 절반 이상을 현장에서 생활한다고 한다. 그들의 자세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하겠다. 학교도 사회 못지 않게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학교의 실정을 모르고서 어떻게 학교에 필요한, 학교가 요구하는 교사를 양성할 수 있겠는가. 다음으로 교원이 신명나게 일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숫자가 많다고 하여 처우개선에 대한 우선 순위가 바뀐다던가 교원들의 요구사항을 집단이기주의로 매도하는 일 등은 사라져야 한다. 교사들도 하루 빨리 개혁피로감과 무기력증에서 벗어나 모든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학습지도는 물론 아이들이 학교에서 보다 즐겁고 보람찬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학부모들 또한 자기 자녀만을 생각하는 이기주의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모든 아이들이 자기자녀라는 방향으로 인식의 전환이 절실하다. 학교의 교육방침에 전폭적인 신뢰를 보내야 한다. 지나친 학원과외는 아이들을 의타적인 학습에만 익숙하게 할뿐이다. 오죽하면 서울대학교 총장이 학생들에게 '기초학력 부족'을 이유로 글쓰기 교육을 시킨다고 하겠는가. 이제 대학입시도 학교생활을 충실히 하는 학생들이 유리한 상황이 될 것이다. 그 동안 실시해 온 대학입시 방안들이 서서히 정착된다면 학교교육을 외면하는 일은 점차 완화되리라고 여겨진다. 일부 학원에서 실시하는 입시 설명회에 학부모들이 현혹돼서는 안 된다. 그것보다는 우리 아이들이 미래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성찰해 보아야 한다. 언론에도 호소한다. 독자의 입맛에 편승한 일부 언론의 편향된 보도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전체의 흐름을 도외시한 채 지엽적인 문제를 침소봉대(針小棒大)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언론에 대한 기대치가 큰 만큼 교육과 관련한 보도는 철저히 교육의 본질을 생각해야 한다. 최근 그러한 흐름들이 일선 기자들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일부 지역과 집단의 경향을 마치 전국적인 것인 양 보도하는 것은 교육문제 해결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교육은 야단치는 것 보다 칭찬을 통해 발전한다는 사실을 우리 언론이 알아주기 바란다. 우리의 교육이 우리의 오늘을 있게 한 것은 모두가 시인하는 일이다. 또 우리 나라의 높은 교육열을 많은 나라에서 부러워하고 있다. 이제 왜곡되고 자기만을 생각하는 비뚤어진 교육욕(敎育慾)을 바로잡아야 할 때이다. 누군가 하라고 해서 될 일은 아니다. 모든 국민이 나서서 공교육을 살리는 일에 매진해야 한다. 학교는 사명감을 갖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학부모들은 지나친 과외의 환영에서 벗어나야 한다. 언제까지 타율에 의한 학습으로 아이들을 내 몬단 말인가? 잘 정리된 내용을 암기하고 문제 풀이에 매달리는 과외에서 과감히 탈피하자. 적절한 진로지도를 통하여 아이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의무가 학교에 있다. 아이들의 소질과 적성을 제대로 찾아 길러주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기울여야 한다. 21세기는 분명 학원과외에 매달리고 일류대학을 선호하는 학생보다 스스로 노력하여 자기학습력을 갖춘 학생, 자신의 적성에 맞는 대학을 선택한 학생이 앞서 갈 것이다. 이 모든 것은 공교육 정상화에 달려있다. 공교육을 살리는 일은 학교·가정·사회의 각 주체들이 서로 믿고 꾸준히 노력함으로써 얻어질 수 있을 것이다. 공교육 살리기에 함께 나서자.
정병한 /전 성남서고 교장·문학박사 연말이 되면 크리스마스 카드나 연하장을 많이 받게 된다. 그 중에는 정말 반가운 것도 있지만 더러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몇 가지 생각해 볼 것이 있다. 우선 형식적인 것은 반가움을 주지 못한다. 새해 인사하는 날을 '새해 아침' 또는 '신년 원단(新年元日)'이라고 하는데 연하장이나 각종 카드는 1월 1일 이전에, 빠른 것은 12월 20일경에 도착하니 형식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더구나 '새해 아침 ○○○재배'라고 쓴 것을 볼 때면 너무 한다는 생각까지 든다. 그러므로 연하장은 1월 1일 이후에 발송해야 맞는다. 시간을 어기고 연하장을 보내는 것은 비례(非禮)에 속한다. 비례(非禮)는 천(天)의 시(時)를 어기는 것(제사를 제 날짜에 지내지 않는 것)으로서 지(地)의 장소(場所)를 어기는(제사를 집에서 지내지 않고 설악산 호텔에서 지내는 것) 무례(無禮)·효도의 대상(人)을 어기는(남의 부모는 공경하나 자신의 부모한테는 불효하는 것) 패례(悖禮)·마음(心)이 빈(제사를 지나치게 호화롭게 지내는 것) 허례(虛禮)·물질(物質)에 인색한(제사를 허술하게 지내는 것) 실례(失禮)보다 더 큰 결례(缺禮)를 범하는 것이다. 올해 같은 경우 음력 1월 1일이 되기 전에 이미 '임오년(壬午年) 새해를 맞이하여 새해 아침 ○○○올림'이라고 쓴 연하장을 받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양력 2002년 1월 1일은 임오년이 아니라 신사년(辛巳年)이다. 임오년은 2002년 2월 12일 설날(음력 1월 1일)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신년 하례식이나 각종 행사에서도 유명 인사들 대부분이 '임오년 새해를 맞이하여…'라는 인사말을 사용한다. 2002년 1월 1일 모 일간지에 게재된 신년시 끝 부분에 다음과 같이 쓴 것도 보았다. "…새해 아침은 언제나 꿈의 산야이다 /천리마 /만리마 /발굽치며 달리는 /이 우렁찬 역사의 오케스트라이고 싶다" 이 때는 임오년이 아니라 신사년이었다. 누구든 책상 서랍 속에 들어있는 지난 연하장을 꺼내 보면 이해할 수 있는 말이다. 우리말에 '철부지'라는 말은 철을 모른다는 뜻이다. 지금이 봄철인지, 여름철인지, 가을철인지, 겨울철인지 때를 모른다는 뜻이다. 이런 사람들은 때를 모르니 철부지임에 틀림없고 무식하다고는 할 수 없으니 '유식(有識)한 철부지'라고 하는 것이 가장 적합한 표현이 아닌가 싶다. 필자가 하루는 유식한 철부지에게 "지금이 임오년이지 신사년이냐?"하고 물었더니, 대답이 "알기는 아는데 다른 사람이 임오년이라고 하니까 그냥 그렇게 했다"고 하는 것이었다. 이런 착각의 말은 선진국에서는 용납되지 않는다. 영어에는 12시제(時制)가 있지만 국어에는 시제가 없다. 그래서 영국사람은 시간을 잘 지키고 우리 나라 사람은 시간 개념이 희박한 것이다. 또 우리말에 '철 났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24절기를 외운다는 뜻이다. 입춘(立春)부터 대한(大寒)까지의 24절기는 반드시 알아야 한다. 그래야 철 났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24절기는 입춘 우수(雨水) 경칩(驚蟄) 춘분(春分) 청명(淸明) 곡우(穀雨) 입하(立夏) 소만(小滿) 망종(芒種) 하지(夏至) 소서(小暑) 대서(大暑) 입추(立秋) 처서(處暑) 백로(白露) 추분(秋分) 한로(寒露) 상강(霜降) 입동(立冬) 소설(小雪) 대설(大雪) 동지(冬至) 소한(小寒) 대한이다. 24절기를 외웠으면 육갑(六甲)을 알아야 한다. 즉 갑자(甲子)로부터 시작해서 계해(癸亥)까지 육십갑자(六十甲子)를 외워야 한다. 육십갑자를 알아야 '병신 육갑한다'는 소리를 듣지 않고 혼인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농경시대에는 24절기를 몰라서 철이 안 난 철부지는 때를 모르기 때문에 농사를 지을 수 없고 육갑을 모르면 나이를 모르기 때문에 혼인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육십갑자는 이렇다. 갑자 을축(乙丑) 병인(丙寅) 정묘(丁卯) 무진(戊辰) 기사(己巳) 경오(庚午) 신미(辛未) 임신(壬申) 계유(癸酉) 갑술(甲戌) 을해(乙亥) 병자(丙子) 정축(丁丑) 무인(戊寅) 기묘(己卯) 경진(庚辰) 신사(辛巳) 임오(壬午) 계미(癸未) 갑신(甲申) 을유(乙酉) 병술(丙戌) 정해(丁亥) 무자(戊子) 기축(己丑) 경인(庚寅) 신묘(辛卯) 임진(壬辰) 계사(癸巳) 갑오(甲午) 을미(乙未) 병신(丙申) 정유(丁酉) 무술(戊戌) 기해(己亥) 경자(庚子) 신축(辛丑) 임인(壬寅) 계묘(癸卯) 갑진(甲辰) 을사(乙巳) 병오(丙午) 정미(丁未) 무신(戊申) 기유(己酉) 경술(庚戌) 신해(辛亥) 임자(壬子) 계축(癸丑) 갑인(甲寅) 을묘(乙卯) 병진(丙辰) 정사(丁巳) 무오(戊午) 기미(己未) 경신(庚申) 신유(申酉) 임술(壬戌) 계해. 그런데 요즘 유식하다고 하는 사람 가운데 철도 모르고 육갑도 모르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깝다. 2003년 1월 1일 0시에 틀림없이 서울 종로의 보신각 종이 울릴텐데 "계미년(癸未年) 새해가 밝았습니다"라고 외치는 지도자 특히 유식한 철부지 아나운서의 우렁찬 목소리를 들을까 걱정되는 것도 그런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