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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새로 위원회에 합류한 안민석(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인사말을 하고있다.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새로 위원회에 합류한 도종환(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인사말을 하고있다.
조해진(국민의힘)신임 국회 교육위원회 위원장이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회장 이우일, 이하 과총)는 13일 성명서를 내고 4차 산업혁명시대의 변화를 주도할 과학기술 중심의 2022 교육과정 개정을 촉구했다. 과총은 성명서에서 “과학기술력 제고의 핵심과목인 수학·과학은 제7차 교육과정 이후 내용의 양과 수준이 점차 감축돼 2015 개정 교육과정 기준 고교 교과 내 수학·과학 필수이수 학점 비율은 23%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최근 대학에서 중도 포기하는 이공계 학생이 느는 원인이 여기에 있다는 분석이다. 과총은 이 문제의 해소를 위해 수학·과학·정보 관련 과목의 교육 시수를 대폭 확대하고 내용의 수준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교학점제 도입에 대해서도 개선을 요구했다. 도입 취지는 환영하지만, 정해진 시수 내에서 여러 과목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과학기술 관련 과목 교육이 부실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어 고교학점제의 성공적 정착을 위해 고교 과학기술 과목의 이수 내용을 진로 선택과 긴밀히 연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이공계 학생들에게 적합한 교육과정·교과서의 개발과 교사 연수, 교육 실행, 평가 등이 전 주기적 로드맵상에서 체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대학의 입시전형 자율권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등학교에서 이수한 내용이 대입전형에 충분히 반영되려면, 대학이 전공 특성에 맞는 고교 선수과목을 지정하고 대입에 반영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획일화된 체계에서는 학생이 적성을 고려한 대학과 학과를 선택할 여지가 매우 좁을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계열 구분 없이 수능 과목을 선택하도록 한 2022 수능 체제에 대해서도 보완을 요구했다. 고교에서 과학기술 과목을 이수하지 않고도 이공계‧의약계에 진학 가능하게 한 것은 교육의 부실화를 넘어 붕괴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과총은 또 교육 정책 결정 시 과학기술계의 참여 비율을 대폭 높일 것을 요구했다. 2022년 교육과정 개정위원회 위원 중 이공계 전문가 비중이 매우 낮아 이공계 입장이 충분히 전달되기 어렵다는 이유다.
마음이 조금 일찍 자란 여자아이들을 위한 동시집이다. 김개미, 송선미, 임복순, 임수현, 정유경. 시인 다섯 명이 독자를 콕 집어내 시를 짓고, 그들의 마음을 두드린다. 먼저 어른이 된 ‘미지의 아이’들이 뒤따르고 있는 ‘미지의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다. 이들은 여자아이들이 자신도 잘 모르는 ‘나’를 알아가고 그런 ‘나’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과정에 가만히 동행한다. 비밀스러운 마음에 함께 고개를 끄덕이고, 타인을 향한 관심에도 ‘그럴 수 있다’며 빙긋 웃는다. 혼란스러운 감정을 마주할 때는 ‘괜찮아, 잘 가고 있어’라고 응원하고, 도대체 어떤 게 진짜 ‘나’인지 알 수 없어 방황할 때도 ‘내가 알고 있는 나도 있고, 내가 모르는 나도 있다’며 위로한다. 진작에 이 책을 만났다면 어땠을까. 시인들의 관심을 사로잡은 ‘미지의 아이’들이 부럽다 못해 질투가 날 지경이다. 10대의 나를 가만히 불러내 늦은 공감과 위로를 건네게 한다. 여자 어른의 마음도 두드리는 데 성공한 동시집. 김개미 외 지음, 문학동네 펴냄.
해마다 5월이면 가슴 저편에서 밀려드는 그리움 같은 것이 있다. 싱그러운 햇살과 파릇파릇한 나뭇잎 사이로 떠오르는 얼굴…….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자라고 있을지 마냥 보고 싶고 궁금하다. 1991년 3월 진주교대를 졸업한 나는 거제 오량초등학교에서 첫 교직 생활을 시작했다. 북신동이 집이었던 나는 매일 시내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했는데 항상 거제대교를 지나다녔다. 출근길에 펼쳐진 견내량은 나의 첫 교직 생활에 대한 희망을 한없이 부풀게 했다. 출근길에 거제대교를 지나면서 ‘오늘은 우리 아이들을 위해 어떤 일들을 할까?’ ‘자상하고 다정하게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어떻게 가르치면 좋을까?’ 생각하면 어느새 버스는 종점에 도착하곤 했다. 퇴근길 역시 넓고 푸른 바다를 보며 ‘오늘은 아이들 속에 내가 있었어!’ ‘오늘은 너무 화만 낸 것 같아.’ ‘내일은 또 다른 시도를 해봐야지.’ 이런 생각들을 3년 동안 견내량과 함께했다. 바쁜 가운데 1년은 그냥 그렇게 지나갔고 이듬해 3월, 5학년을 배정받아 아이들과 첫 만남의 시간을 가지게 됐다. 유난히 머리가 반짝이는 녀석이 내 신경을 건드렸다. 소매에는 콧물인지, 흙인지 모를 고장물이 적당히 묻어 있고 코 밑은 헐지 않을 정도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선생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혼자서 무엇을 하는지 자기 일에만 열중이었다. 머리는 왜 또 그렇게 빡빡 밀었는지……. 그렇게 그 녀석과 나는 처음 만났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녀석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었다. 녀석은 ‘벽담사’라는 절에서 동생과 함께 학교를 다녔다. 그러니까 동자승이었던 것이다. 부모님은 이혼했고 아버지가 키울 능력이 되지 않아 절에 맡겨진 아이다. 녀석은 수업이 끝나면 언제나 내게 와서 냄새나는 머리를 내 가슴에 묻고 숨소리를 듣고 집으로 가곤 했다. 처음 녀석이 내 가슴에 머리를 묻고 숨소리를 들으며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가슴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요. 와! 신기하고 재밌다." 그 말에 난 "다 큰 녀석이 징그럽게 이게 뭐하는 짓이고" 하며 녀석을 밀쳤다. 그러나 녀석의 그런 행동이 애정 결핍에서 오는 전형적인 행동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는 이전보다 녀석을 더 꼭 안아 주었다. 녀석도 나의 마음을 알았는지 이 일을 계기로 더욱 친해질 수 있었다. 항상 말썽꾸러기에 공부는 겨우 문자 해득, 거기에다 도벽까지 누가 봐도 문제아였지만, 나에겐 한없이 귀엽고 사랑스러운 제자였다. 내가 녀석에게 하는 만큼 녀석도 조금씩 변해 갔고, 남의 물건에 손대는 횟수도 점점 줄어들었다. 그러던 5월 어느 날,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쓰러짐으로 인해 난 일주일 동안 학교에 나오지 못하고 아버지 병간호를 해야만 했다. 다행히 아버지가 회복의 기미를 보여 그동안 보고 싶고 걱정되었던 반 아이들을 만나러 학교에 갔다. 그날이 바로 스승의 날 앞날이었다. 일주일 만에 나를 본 아이들은 기쁜 얼굴로 맞이해 주었고 그동안 옆 반 아이들에게 당한 서러움을 하나, 둘 나에게 하소연하며 그들을 응징해 주길 은근히 바라고 있었다. 그 녀석도 친구들 틈에서 내 손을 잡으려고, 그리고 내 가슴을 찾아 몸부림을 쳤다. 눈에는 눈물도 글썽이고 있었다. ‘내일이 스승의 날인데 선생님이 오시지 않으면 어쩌나?’ 내심 아이들은 걱정을 많이 한 모양이었다. 그렇게 오랜만에 아이들과 시간을 갖고 있는데 교내 방송에서 나를 찾았고, 그것은 불길한 예감이었다. 집으로 급히 갔으나 결국 아버지의 임종도 지키지 못한 못난 자식이 되고 말았다. 그 후로 며칠을 더 결근을 하고 나서야 학교로 갈 수 있었다. 학교에서 난 옆 반 선생님으로부터 웃지 못할 이야기를 들었다. 스승의 날에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던 아이들은 선생님이 오시기 전에 교실에 풍선도 만들고 자기들이 직접 마련했는지, 아니면 어머니께서 보내줬는지 모를 선물을 교탁 위에 잔뜩 진열해 두고 선생님을 기다렸단다. 옆 반 선생님께서 그런 모습을 보고 안타까웠지만 내가 학교에 오지 못한다고 말했단다. 오늘은 일찍 집으로 돌아가라고……. 그래도 아이들은 움직이지 않더란다. 그러더니 하나둘 울음을 터뜨리더니 나중엔 온 교실이 울음바다가 되더란다. 한 시간을 그렇게 울던 아이들은 배가 고픈지 선생님을 위해 준비한 초코파이를 나누어 먹고선 힘없이 집으로 갔단다. 아이들이 모두 떠난 학교. 선생님들도 퇴근 준비를 하는데 어디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서 가 보았더니 글쎄, 나의 심장 소리를 듣던 녀석이 술에 취해 울고 있더란다. 걷지도 못하고 서지도 못하고 할 수 없이 선생님들이 업고 절로 보냈단다. 녀석도 스승의 날이라고 선생님께 무엇인가 선물을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한 달 동안 모은 돈으로 (훔친 돈 절대 아님) 선생님 드릴 선물이라고 소주를 두 병 샀단다. 다른 친구들 선물은 양말이니, 우산이니……. 자기가 보기엔 다른 친구들의 선물은 좋은 것 같은데 자기 선물은 초라해 보였던지 차마 교탁에 내어놓을 수가 없어 선생님께 직접 드리기로 마음먹고 가방에 넣어 두었는데 선생님이 오지 않자 실망한 나머지 많이도 울었단다. 다른 친구들이 집에 간 후에도 ‘선생님은 반드시 올 것이다’라는 믿음을 가지고 끝까지 기다렸단다. 한참을 그렇게 울다 기다리기를 반복한 녀석은 배가 고프고 목이 말랐던지 남아있던 초코파이와 소주를 물로 착각했는지 1병을 전부 다 비우고 두 병째 마시던 중이었단다. 술에 취한 아이를 일으켜 세워 달래 집으로 보내려고 했으나 아이는 이리 쿵, 저리 쿵 중심을 잡지 못하고 쓰러지면서도 선생님이 오기 전까지는 집으로 가지 않겠다고 떼를 쓰더란다. 결국 얼마 가지 못해 녀석은 잠이 들었고 남자 선생님이 아이를 업고 차에 태워 절에 데려다주었다고 한다. 어쨌든 그날의 우발적인 사건은 그렇게 끝이 났고 녀석의 어이없는 행동에 당황했지만, 한편으로는 마음 깊은 곳에서 뜨거운 뭔가가 느껴졌다. 이렇게 녀석과 한 해를 보내고 우리는 6학년이 되어 또 같은 반에서 만나게 되었다. 그러나 그해 9월. 녀석의 행동에 변화가 일어났다. 행동과 말이 점점 또다시 거칠어졌고 쉽게 짜증을 내는가 하면 예전의 도벽도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녀석은 더 이상 내 가슴의 숨소리도 듣지 않았다. 그리고 가을 운동회를 며칠 앞둔 어느 날 오후. 그동안 한 번도 나타나지 않던 녀석의 아버지와 새엄마가 학교에 찾아왔다. 그리곤 그날로 녀석을 데리고 마산으로 전학을 가버렸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동안 잊고 지내던 부모에 대한 증오가 되살아났던 모양이다. 엄마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새엄마가 싫었고 자기를 버렸다고 생각하는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던 모양이다. 이런 감정들이 자연스럽게 불만스럽고 거친 행동으로 나타나게 되었던 것이고, 전후 사정을 몰랐던 난 녀석의 행동에 당황해하며 꾸짖기만 했었다. 녀석에게 좀 더 잘해 주지 못했던 것이 후회스러웠다. 불쌍한 녀석. 녀석은 그렇게 친구들과 나에게 한마디 말도 없이 부모님의 손에 끌려 그렇게 가고 말았다. 전학 간 지 일주일 후 난 전학 간 학교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녀석이 그곳에서도 적응 못 하고 말썽만 부리다가 결국 가출을 했다는 소식이었다. 안타까웠다. 녀석에게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보살펴 줄 사람이 있었다면 녀석은 훌륭히 자랄 수 있었을 텐데…. 그날 이후로 난 녀석을 찾기 위해 직접 마산까지 가 보았지만 결국 찾을 수 없었다. 해마다 5월이 되면 옛날 빡빡머리 녀석의 잊지 못할 스승의 날 헤프닝과 함께 가슴 허전함을 느낀다. 또 언제 내 가슴에 묻혀 숨소리를 들으며 "선생님, 이상한 소리가 나요. 너무 신기하고 재밌어요"라고 말해줄 아이를 기다리며……. ------------------------------------------------------------------------------------------------------- 수상 소감 아이들을 기다리며…. 한국교육신문에서 교단 수기를 공모한다는 글을 보고 지난 교직 경력 30년을 되돌아보았다. 1991년부터 시작된 나의 교직 생활은 20세기와 21세기를 함께 지내 온 시간이며 변화가 다양했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우리가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코로나19로 세계의 모든 사회, 문화, 경제가 위축되고 교육에서도 학교가 아닌 원격으로 수업이 진행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지금의 나는 제자들과 함께 보냈던 많은 시간보다 훨씬 짧은 교직 생활을 남겨두고 있다. 그래서 교단 수기에 지난 30년의 교직 생활을 되돌아보며 첫 발령 때 설레이며 맞이했던 아이들과의 이야기를 주제로 참여하게 되었다. 고이고이 접어두었던 나만의 추억이며 아름다운 이야기이지만 세대를 달리하는 20~30대 선생님들이 얼마나 공감하며 이해하실지 궁금하기도 하다. 아마도 나와 같은 공감에너지를 가지고 계시는 40~50대 선생님도 많으리라 생각된다. 나의 글을 통해 그 시절의 제자들 모습을 떠올리며 미소 짓는, 잠깐의 휴식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금도 같은 하늘 아래에서 각자의 인생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을 제자들을 응원으로 마음으로 남은 교직 생활도 열심히 해야겠다. 끝으로 수상하게 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전략… 자르르 기름 도는/찰진 표면/그 안에 무엇을 감추었을지 모르는/그런 떡과는 다른/백설기를 만들기로 했어요.//겉과 속이 한결같은/무던한 당신이듯//떡 위에/고명 하나 얹어 놓지 않은/순백의 떡을’ 멥쌀가루에 물이나 설탕물만 내려 쪄낸 백설기는 티 없이 깨끗하다. 아이가 태어나고 맞는 삼칠일, 백일, 첫돌, 건강을 기원하면서 백설기를 올린다. 흔하디흔해서 그저 흔한 떡인 줄만 알았는데, 시인은 ‘순수’를 발견한다. 겉과 속이 다르지 않고, 자극적이지 않으며 한결같은 모양새를 보면서 송편의 달콤함에 현혹되지 않겠다, 다짐한다. 김광규 시인의 네 번째 시집 ‘백설기를 만들기로 했어요’가 전자책으로 나왔다. 겉과 속을 꿰뚫어 보는 시인 특유의 섬세한 시선이 오롯이 담겼다. 세상을 향한 쓴소리도 은근하다. 직설적이지 않지만, 전하는 메시지는 날카로워 여러 번 곱씹게 한다. 김광규 지음, 석벽 펴냄.
한국사립초중고법인협의회(회장 윤남훈)은 사립학교법 개정안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촉구했다. "절차적 정당성을 훼손하며 통과시킨 사립학교법 개정안에 대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함으로써 헌법정신과 자유민주주의 기본 가치를 정립하고, 포퓰리즘에 의한 국회 다수의 횡포에 가까운 입법 남용을 막아달라"는 주장이다. 협의회는 이 같은 내용의 건의서를 청와대에 전달하고 13일부터 청와대 분수대 앞과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 사거리에서 1인 시위를 시작했다. 협의회 관계자는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거나 법안이 공포될 때까지 1인 시위를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윤남훈 회장은 “사학의 자율성을 훼손해 사학의 존립 근거를 무너뜨리는 입법에 대해 모든 사학인들이 깊은 절망감을 느끼고 있다”며 “사학의 정체성을 외면하는 입법 독주를 지금이라도 멈추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13일 오후 서울시교육청에서 온라인으로 진행된 '제80회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한국교육신문 한병규 기자] 해직교사 불법 특별채용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비리수사처(공수처)에게 검찰 공소제기 요구를 받은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변호인이 “이는 위법·부당한 결정이며 검찰은 모두 무혐의 결정을 내려야한다”고 주장했다. 조 교육감 변호인 법무법인 ‘진성’ 이재화 대표변호사는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형사1부 박윤희 검사에게 공수처 공소제기 요구 결정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의견서를 13일 제출했다”고 밝혔다. 의견서에는 공수처가 2018년 조 교육감이 당시 비서실장 한모 씨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를 실행하기로 공모했다고 판단, 부교육감 등의 특채에 관한 중간결재권 행사 방해 등에 대해 부당한 수사 결과라는 내용들이 담겼다. 조 교육감이 비서실장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를 실행하기로 공모했다는 공수처의 판단에 대해 이 변호사는 “공수처는 공모를 인정할 만한 아무런 근거를 제시하지 아니하고 막연히 공모했다고 판단했다”며 “당시 특채를 할 것인지 여부에 관한 검토를 막 시작할 단계였을 뿐 특채가 아직 결정되지 않은 시점이었으므로 범행 계획이 있을 수 없다”고 호소했다. 조 교육감이 부교육감 등의 특별채용에 관한 중간 결재권 행사를 방해했다는 공수처 수사 결과에 대해서도 “해당 사무는 교육감의 결재사항이고, 과장·국장·부교육감은 해당 사무의 의사를 결정할 결재권이 없다”고 반박했다. 또한 조 교육감이 전 비서실장을 통해 특채를 위한 심사위원을 편파적으로 선정했다는 판단에 대해서도 전면 부인하고 나섰다. 이 변호사는 “비서실장과 ‘누구를 심사위원으로 위촉할 것인지’에 관해 논의한 적이 없고, 비서실장으로부터 심사위원 위촉에 관해 보고받은 적도 전혀 없다”며 “비서실장의 행위를 교육감의 행위로 귀속시킬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압수된 피의자 및 비서실장의 컴퓨터나 휴대폰에 보관 중이던 문자메시지 등에 이에 관한 내용이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인사위원회 출석을 거부한 인사위원에게 연락해 ‘인사위에 참석해달라’고 지시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이 변호사는 “교육감은 인사위원에게 인사위에 참가하게 할 일반적 직무권한이 없어 직권남용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조 교육감 측은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도 “아무런 증거가 없다”면서 “공수처의 주장은 주관적이고 자의적인 것이고, 이를 인정할 만한 합리적 근거가 없다”고 부인했다. 앞서 지난 3일 공수처는 조 교육감이 2018년 해직교사 특채에 부당하게 관여한 혐의가 있다고 판단해 검찰에 공소제기를 요구한 바 있다.
[한국교육신문 김예람 기자]교육부와 17개 시도교육청이 2학기에 1742억 원의 예산을 들여 1155개 학교의 과밀학급을 해소하기로 한 가운데 추진 대상에서 사립학교는 제외돼 반발을 사고 있다. 이에 교총은 입장을 내고 “사립학교와 학생은 대한민국의 학교, 대한민국의 학생이 아니냐”며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은 차별행정을 즉각 중단하고 사립학교를 포함시키라”고 촉구했다. 교육부는 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제1차 교육회복지원위원회’를 개최하고 올해 하반기 동안 신속한 교육회복 및 미래교육 학습환경 지원을 위해 총 5조3619억 원을 투입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학습보충, 심리·정서, 과밀학급 해소, 방역 인력과 물품, 초등돌봄 등 시급한 과제에 2조6602억 원을, 미래교육 학습환경 구축에 약 2조7017억 원을 투입한다. 이 중 학급당 28명 이상이 있는 1155개교에는 교실 전환, 임대형 이동식 학교 건물(모듈러 교사), 증축 등을 통해 과밀학급을 해소하고 관련한 교부금 교부기준 상향 및 재정투자사업 심사규칙·지침 개정 등을 통해 제도개선 등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문제는 추진 대상에서 사립학교가 제외되고 국·공립학교만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불거졌다. 이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기준에 사립학교가 빠져있다”며 “학교를 신설하거나 증축하면 사학의 재산이 돼 버려 심한 경우 팔 수도 있고 폐교됐을 경우 재산이 온전하게 국가로 귀속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시도별 재정지원조례에 근거해서 교육감이 사립학교에 재정결함 보조금을 주는 형태가 돼야 할 것 같다”며 “지원이나 투자에 대한 우선순위를 놓고 봤을 때 국·공립이 우선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사학 관계자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학생들의 학습, 정서 결손이 심각해져 등교 확대가 이뤄지고 있고 이 과정에서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과밀학급 해소를 추진하는 것인데, 사립이라는 이유로 제외한다면 사립학교 학생들이 감염병의 위협과 학습권으로부터 차별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지난해 교육통계 기준 사립학교 비율은 중학교가 19.6%, 고등학교가 40%이고 학생 수도 비슷한 규모다. 정호영 대한사립교장회 회장은 “평준화 정책에서 학생들이 학교를 선택해서 간 것도 아닌데 사립이라는 이유만으로 시설적, 복지적 측면에서 동일한 혜택을 얻을 수 없다면 학생·학부모 입장에서 불합리하다고 생각할 것”이라며 “학교는 공적 개념이지 증·개축을 한다고 해서 학교가 이사장 소유가 된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생각”이라고 비판했다. 사립학교법상 사립학교 건물 및 토지 등은 설립자의 사유재산이었다 하더라도 학교법인이 된 이상 이를 관할청의 허가 없이 팔거나 전용할 수 없다. 폐교 시에도 잔여재산은 전액 국가로 환수된다. 교총은 “교육의 공공성을 부르짖으며 사학의 재정권, 인사권, 자율 운영권을 침해하더니 사립학교 학생의 교육환경 개선은 교육의 공공성과 무관하다는 것인지, 공립 학생만 대한민국 학생이라는 것인지, 교육당국의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국회에 제출된 내년 교육예산은 88조 원이고 이 중 지방교육재정교부금만도 64조 원에 달한다. 교총은 “갈수록 무상교육 시리즈와 현금 살포 정책 등 포퓰리즘이 만연하고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며 “과연 과밀학급 해소 사업에서 사립을 제외해야 할 만큼 교육재정이 궁핍한 것인지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은 입장을 밝히라”고 촉구했다.
[박광일 여행작가·㈜여행이야기] 얼마 전 끝난 도쿄올림픽. 자신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는 선수를 응원하며 많은 시민이 일상의 어려움을 잊고 새로운 힘을 얻었다. 최근 우리나라는 각종 대회에서 메달 획득과 별개로 스포츠 강국으로 손꼽힌다. 그런데 국제대회가 열리는 스포츠 종목은 대부분 전통적인 것이 아니라 외국에서 들어온 것들이다. 양궁과 활쏘기 전통을 연결해서 볼 수 있겠지만 스포츠 종목으로서 양궁은 그 이름처럼 서양에서 들어왔다. 그런 점에서 근대 역사 속에서 언제, 어떻게 서양의 스포츠가 들어왔으며 당시 모습이 어떠했는지 궁금해진다. 근대 역사에서 많은 기록을 가지고 있는 테니스, 그리고 많은 사람이 관심갖는 축구에 대해 살펴보려고 한다. ■ 테니스 외교관 위주로 도입되기 시작 답사를 다니다 보면 옛날에 테니스코트가 있던 장소를 종종 확인하게 된다. 우리나라 최초의 공원이기도 한 인천 각국 공원 근처, 외국인들이 머물던 사교 공간인 제물포구락부(구락부는 클럽의 일본식 표현) 앞에 테니스코트가 있었던 곳이나, 서울에서 외교관 건물이 들어선 정동 일대에도 테니스코트가 있던 공간에 대한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내력을 참고할 때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테니스가 한국에 처음 도입된 것은 1883년, 첫 서양 외교관인 미국의 푸트 공사가 부임하면서다. 이때는 서양에서도 테니스와 관련된 규정이 막 끝난 시기였다는 점에서 도입 시기는 무척 이른 편이었다. 당시 테니스는 유럽과 미국에 널리 퍼지긴 했지만 실내 스포츠로서 왕실과 귀족들이 즐기던 스포츠였다. 그러던 것을 영국의 윙필드가 실외 테니스로 바꾸어 처음 시작한 것이 1873년이었으니 오늘날과 같은 테니스 경기로 모습을 정비한 지 10년 만에 우리나라에 도입된 것이다. 참고로 실외 테니스의 첫 공식 대회인 ‘제1회 윔블던 대회’가 열린 것은 1877년이다. 이처럼 우리나라에 일찌감치 들어온 테니스는 아무래도 소수의 사람만 즐겼던 것 같다. 정동에 테니스코트가 있었지만 미국 공사관, 그리고 영국 공사관 앞에 있었다는 점에서 외국인이 즐긴 스포츠였을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으로서 처음 테니스를 친 인물은 누구일까. 기록상으로는 ‘갑신정변’의 주역인 김옥균으로 나온다. 김옥균은 자신의 정치적 영향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외국 공사들과도 접촉을 자주 했는데 이때 테니스를 이용했다. 이를 위해 자신의 화동 집에 아예 테니스코트를 만들어 놓고 외국 공사 부부를 초청한 것이다. 이후 김옥균을 통해 다른 개화파 인사들에게도 테니스가 전해졌을 것으로 보인다. ‘개화파’의 상징 가운데 하나가 ‘테니스’였으니 당시 사람들에게는 불온하게 보였을 것 같기도 하다. 실제로 테니스 모임이 정치적 모임으로 알려지며 “테니스장에서 김옥균이 나라를 판다”는 소문이 퍼지기도 했다. 참고로 당시 테니스를 한자로 ‘척구(擲球)’로 불렀으니 공을 던진다는 의미다. 근대학교에서 클럽 만들며 가르쳐 초기에 쉽게 자리를 잡을 것처럼 보인 테니스는 갑신정변과 함께 다시 외국인의 스포츠로 돌아간 것 같다. 정동 외교관들의 모임인 ‘외교관 구락부’에서 테니스를 즐겼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외국 외교관과 접촉면을 넓히고자 했던 고종과 순종 역시 자연스럽게 테니스 경기 장면을 보았던 것 같다. 그런데 순종의 반응이 조금 뜻밖이다. “저렇게 힘든 일을 손수 하다니 참으로 딱하오. 하인에게나 시킬 일이지”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공식 기록에 남아있지 않는 전해지는 말이지만 공감이 가는 부분이 있다. 당시 외국인들이 테니스 경기를 할 때 남자는 흰색 긴바지, 여자는 흰색 긴치마를 입었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러한 테니스 구경을 즐겨할 뿐이었으니 직접 치기 시작한 것은 조금 뒤의 일이다. 외국인 선교사가 중심이 돼 설립한 근대학교에서는 체육을 강조했고 또 과외활동으로 스포츠클럽을 만들었다. 이때 야구, 축구 등과 함께 테니스도 클럽도 생겨난 것이다. 배재학당의 경우 1900년에 테니스클럽이 생겼다. 이때 테니스코트 네트는 새끼줄로 대신하고 라켓은 널판으로 대체했으며 공도 제대로 된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테니스가 조금씩 퍼져나가며 여학교에서도 스포츠 활동으로 테니스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테니스 장비를 구하기 어렵게 되자 테니스공 대신 고무공으로 경기를 하는 연식정구가 널리 퍼지며 테니스를 대체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그렇지만 연식정구가 원래 테니스 모습이 아니란 것을 확인한 경성제대 재학생 강성태는 정구 대신 테니스를 해야 국제 경기에 나갈 수 있다고 주장하며 경성제국대학에 정구부를 테니스부로 바꾸기도 했다. ■ 축구 인천항서 영국 군인들로부터 시작 테니스가 개인 중심이며 또 조금은 귀족적인 스포츠라면 여기에 대비되는 종목이 바로 축구가 아닐까. 별다른 장비가 필요하지도 않고 몇 개의 규칙만 알아도 되니, 공과 운동장만 있으면 된다. 무엇보다 여럿이 함께 할 수 있는 스포츠라는 점에서 공통의 투쟁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으니 참여하는 선수들은 물론 응원하는 이들도 열광하게 만드는 특징이 있다. 그런 점에서 테니스의 도입 전파 과정과 축구의 그것은 사뭇 달랐다. 우리나라에 처음 축구가 들어온 것은 1882년, 인천항에 정박한 영국 해군의 군함, 플랑잉피시 호의 ‘군인들’이 부두에서 공을 차기 시작하면서다. 그들의 첫 경기는 아마도 다른 배의 선원이었을 것이니 테니스와 달리 자연스럽게 퍼져나갔을 것이다. 축구 역시 국내에 보급하는 데에는 학교가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테니스가 학교 중심으로 퍼져나갔다면 축구는 사회의 여러 단체에서 도입하며 그 영향력의 범위가 훨씬 컸다. 무엇보다 대중에게 있어 규칙이 단순한 축구는 응원에 참여하는 것도 쉬웠으니 대중 스포츠로 발전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첫 공식 축구 경기는 1905년 6월, 황성기독청년회와 대한체육구락부의 대결이었다. 양 팀 응원단과 구경꾼이 모이며 열띤 경기가 펼쳐졌다고 하는데, 결과는 무승부였다. 이처럼 축구가 널리 퍼지며 여러 동네에서 청장년이 축구를 즐겼는데, 유니폼이 없는 것은 물론 규칙도 명확하지 않았다. 축구공도 돼지 오줌보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축구라는 것이 선수만 해도 그 수가 적지 않고 구경꾼까지 모이면 규모가 만만치 않았던 탓에 통감부 시절부터 일제는 축구 경기 개최 자체를 못하게 했다. 축구 경기가 소요사태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 것이다. 3.1운동 기점 대규모 대회 열려 이러한 상황을 푼 것은 3.1운동이었다. 3.1운동 이후 이른바 ‘문화통치’를 선전하던 일제는 체육활동을 막기 어려웠다. 나아가 조선체육협회가 일본체육협회의 지부격으로 만들어지며 스포츠 활동에 숨통이 트인 것이다. 상황이 변하자 기다렸다는 듯 대규모 축구대회가 열렸다. 1921년, 열린 대회는 무려 18개 팀이 참여하며 2월11일부터 13일까지 3일에 걸쳐 진행됐다. 입장료도 있었으니 어른 20전, 학생 10전이었다. 다만 규칙 문제로 대회 운영이 원활하지는 않았다. 예를 들어 첫날 세 경기 모두 심판 판정에 불복이 있었으며, 결승전으로 열린 배재구락부와 숭실구락부의 경기에서는 심판이 숭실에 대해 오프사이드를 선언했는데 이에 배재가 불복하며 우승팀도 가려내지 못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축구에 대한 인기는 점점 높아졌고 그 중심에는 경평전이 있었다. 스포츠 시합에 라이벌이 있으면 흥미가 높아지는데, 당시 서울과 큰 발전을 보인 평양을 염두에 두고 조선일보사가 1929년, 경평전을 연 것이다. 서울팀은 경신학교, 보성전문, 연희전문 학교 출신 선수들이, 평양팀은 숭실학교 출신 선수들이 주축이 됐다. 첫 대회는 평양이 2승 1무로 승리, 2회 대회는 경성이 2승 1패로 승리를 했다. 1935년부터는 다른 도시팀이 대회에 참여하며 경평전이라는 이름은 사라지게 된다. 이런 가운데 ‘국가대표팀’이라고 부를만한 팀이 생겨났으니 바로 ‘조선축구단’이다. 원래 불교청년회가 운영하던 축구단으로 여러 축구 경기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조선 최고의 축구단으로 인정받았다. 더 나아가 외국에서 활약하던 교포를 선수로 영입하며 전력을 보강하기도 했다. 조선축구단이 일본 원정을 가기도 했는데 5승 3무의 전적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1935년, 재정문제로 조선축구단이 해체됐는데 이 과정에서 축구를 잘하는 조선 사람, 선수에 대한 이미지가 명확하게 생겼다. 결국 일제강점기, 올림픽에 출전하는 축구 선수도 생겨났다. 베를린올림픽서 뛴 김용식 선수 1935년, 일본에서 ‘전일본축구선수권대회’가 열렸다. 다음 해에 있을 베를린올림픽 선수 선발전을 겸한 대회였다, 여기에서 앞에 나온 조선축구단이 우승을 한 것이다. 그러자 일본은 계획을 변경해 ‘제8회 메이지신궁대회’를 다시 열었는데 이 대회에서는 경성축구단이 우승 했다. 결국 한국 축구 선수의 우수함을 인정한 일본은 김용식, 김용근 두 선수를 자신들의 대표팀에 선발했다. 그렇지만 김용근 선수는 평양축구단이 텐진으로 원정을 가는 바람에 빠지면서 김용식 선수 혼자 베를린올림픽에 축구 선수로 참여하게 됐다. 김용식 선수는 한국 축구의 대부라고 할 수 있는 인물로 이때 손기정, 남승룡 선수를 비롯해 농구의 이성구, 염은현, 장이진, 복싱의 이규환 선수와 함께 베를린올림픽에 참여했다. 일장기를 앞세운 것은 가혹한 일이었지만 척박한 환경 속에서 한국 스포츠의 실력을 보여줬으며 당시 일본 축구가 8강에 오르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김용식은 베를린으로 가는 길에 영국의 축구 관련 서적을 읽고 이를 바탕으로 축구 기술 서적을 번역해 국내에 알리기도 했다. 그러나 태평양전쟁으로 1942년 이후 모든 경기가 금지된다. 스포츠가 가진 특성상 참여와 응원을 통해 우리 민족이 하나가 되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리라. 우리 국적으로 처음 출전한 축구 대표팀은 1948년 런던올림픽이다. 정부 수립 전이기도 한데, 첫 상대인 멕시코에게 5:3으로 이겼으나 다음 상대인 스웨덴에게는 0:12로 졌다. 참고로 스웨덴은 런던올림픽 축구에서 금메달을 땄다. 이처럼 근대 스포츠는 세계와 만나는 통로로서, 한편으로 우리 민족이 하나로 모이는 중심으로서 역할을 했다. 보통, 역사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 스포츠지만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시간이 흐르며 우리의 일부가 됐으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학교에 젊은 교사들이 유입되고 있다. 강원도 A시는 한 때 신규 교사를 포함한 20대 젊은 교사 비율이 전체 교사의 50%를 넘을 때도 있었다. 3년간 그들과 함께 근무하면서 꽤 속앓이를 많이 했던 경험이 있다. Z세대를 이해하지 못한 결과였다. X세대에 대한 시각도 곱지 않았다 나는 X세대다. 당시에는 기성세대가 X세대를 바라보는 시각도 곱지 않았다. 개성이 강한 세대라고 여겨졌으니 말이다. 그런 X세대가 이제 교감이다. Z세대 신규 교사들을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을 것 같은데 막상 직접 접해보니 부딪히는 게 꽤 많았다. 코로나19 이후 학교 근무 문화는 전과 비교할 수 없게 달라지고 있다. 수업 형태도 원격 수업이 이젠 자연스러울 정도다. 언택트 시대에 X세대들이 우왕좌왕할 때 Z세대들은 물 만난 고기처럼 자기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이제 Z세대에게 배워야 할 정도다. X세대인 나의 사고방식과 행동도 변화가 불가피할 것 같다. Z세대는 느슨한 연대와 인간적 거리두기를 노멀로 여기는 세대다. 직장 안에서 촘촘한 인간관계를 거부한다. 자신의 취향과 비슷한 사람들과 어울리되 가급적 거리두기를 원한다. 사생활 언급은 특히 주의해야 할 사항이다. 과도한 친절을 베풀거나 친밀한 관계를 맺으려 다가서면 넘지 말아야 할 경계를 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당연하게 여기는 모임도 왜 모여야 하는지 이해시키지 않고 참여시키면 강요라고 생각할 수 있다. 또한 수평적 상호 존중의 문화, 성과와 결과로 말하는 문화, 가치 있는 헌신의 문화를 요구하는 세대다. 조직에 대한 무조건적 헌신이나 관계와 서열을 강조하는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다. 수평적 조직 문화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한 기업은 창업자를 포함한 임직원 모두 똑같이 영어 이름을 부르며 평등한 직장 구조를 실천한다고 한다. 임직원이라고 해서 별도의 근무실을 두지도 않는다고 한다. Z세대가 원하는 직장 조직 문화라고 한다. 그렇다면 학교는 어떠해야 할까? 예전보다 민주화되었다고 하지만 공무원 조직의 특수성 때문에 수직적 구조를 깨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럼에도 실천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는 조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예를 들어 나이나 위계를 필요 이상으로 강조하는 분위기를 만들지 않기, 강제로 회식하지 않기, 꼰대로 표현되는 기성세대의 논리를 주입하지 않기 등은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본다. 다를 뿐 틀린 것은 아니야 Z세대는 자신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 사람을 따른다고 한다. 교감의 위치가 ‘듣는 위치’여야 함은 분명하다. Z세대뿐만 아니라 다른 교직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어떤 일에 시정을 요구할 때 교감은 수정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분명하게 설명해 주어야 한다. 의견을 무시하는 모습을 보일 때 Z세대는 참지 못한다. 이제 학교는 Z세대와 함께 일하는 법을 논의해야 한다. 그들의 행동을 이해하고 그들이 마음껏 자신의 특기를 살려낼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 X세대인 교감이 바라보았을 때 Z세대는 다를 뿐이지 틀린 것은 아니다.
지금이 투자의 시대라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것 같다. 지인들을 만나면 이전과 다르게 부동산, 주식 등 투자와 관련된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특히 작년 이후 코스피 지수가 3000을 넘기면서 남녀노소 불문하고 모두가 주식 투자의 대열에 동참해 부자가 되겠다는 꿈을 키우고 있다. 주식 투자는 주식을 한번 사고팔아서 차익을 남기는 행위의 반복이 아니다. 기업 경영자와 함께하는 동업이다. 주식 투자를 할 때 동업자 마음을 갖게 되면 꾸준히 오래 할 수 있다. 그렇게 한 투자는 괴로운 일이 아니라 뿌듯한 성취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이 동업자가 회사를 잘 운영하는지 재무제표나 차트 분석 등 다양한 전략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어떤 전략이든 중요한 것은 일관성 있는 기준과 원칙이다. 나만의 기준과 원칙을 정해 좋은 동업자를 골라 동업을 꾸준히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그러나 교사들에게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동업보다 중요한 것은 본업 주식 투자는 경영을 위임하는 동업이다. 동업과 본업을 잘 구분해야 한다. 우리 본업은 학생을 가르치는 일이다. 본업에 피해를 줄 만큼 투자라는 동업을 할 필요는 없다. 동업 비중은 경제 상황에 따라 늘리기도 줄이기도 해야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교사라는 직업 즉, 본업이다. 주식이라는 동업이 본업을 훼손한다면 당장 멈춰야 한다. 특히, 본업이 중요한 국면을 맞이했을 때 동업에 빠져 있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이다. 새로운 학교에 적응할 때, 승진을 준비할 때, 학생 지도나 업무에 집중해야 할 때 등 본업에 집중할 시기에는 투자라는 동업을 줄이거나 내려놔야 한다. 그게 너무 어렵다면 적어도 튼실한 동업자나 안전한 사업 모델로 옮겨 놓아야 한다. 매일 아침, 매시간 주가를 확인하며 정신을 뺏기는 일은 피해야 한다. 돈을 담을 그릇부터 키우자 사마천 사기에는 부자들의 부에 대해 기록한 화식열전이 있다. 여기에서 화(貨)는 돈을 의미하고 식(殖)은 돈을 불리는 방식을 의미한다. 사마천은 여기서 "사람들은 돈의 정체를 몰라서 그릇을 키우지 않은 채 담으려고만 한다. 그래서 한두 번 성공하다가 결정적 순간에 모두 잃어버린다"고 말했다. 부를 담을 그릇이 작으면 아무리 모아도 흘러넘쳐서 없어진다는 뜻이다 많은 사람이 주식에 뛰어든다는 뉴스 기사, 주변에 지인들이 돈을 많이 벌었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이런 소식이 들릴 때마다 나만 뒤처지고 손해 보는 것 같은 조급함이 생긴다. 그러나 소식에 휘둘리지 말고 투자를 공부하고 훈련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견고하고 규모 있는 투자금을 만들어야 한다. 세계적인 투자자 워렌 버핏은 "남들이 욕심을 낼 때 두려워하고, 남들이 두려워할 때 욕심내야 한다"고 말했다. 돈을 담을 그릇이 크지 않으면 돈을 일시적으로 소유할 수 있어도 언젠가는 사라져 버린다. 선생님들이 욕심을 버리고 투자에 너무 서두르지 않길 바란다.
지난 1일,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정기국회가 열렸다. 내년 3월 대통령선거와 6월 지방선거를 앞둔 정기국회라는 점에서 민생보다는 정치적 정쟁의 각축장이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21대 국회 개원 13개월 만에 의장단 구성을 완료하는 등 외형적으로는 국회 정상화에 나선 듯하다. 그러나 여야 모두 대선 후보 경선 등 첨예한 정치 이슈에 직면해 있어 교육법안이 정치적 이해득실에 따라 처리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더욱이, 여당은 6월 임시국회에서 정권 편향의 국가교육위원회 설치법을 일방 강행한 데 이어, 8월에는 사립학교 교원의 교육청 위탁 채용과 학교운영위원회를 심의기구로 강제하는 등의 내용을 담아 사학의 자율성을 근본적으로 침해한다는 비판을 받는 입법을 연이어 강행 처리했다. 또, 현장 교원의 72%가 반대하는 고교학점제의 도입 근거 마련 등 최근의 입법 독주로 인한 후유증과 여진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집토기’ 잡기 입법 독주 불러 여당이 교육위원회를 비롯한 여러 상임위의 쟁점 법안을 밀린 숙제하듯 밀어붙인 속내에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집토끼’라도 우선 잡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컸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지지 세력이 원하는 법안을 차일피일 처리하지 못하며 집토끼의 표심 이탈 조짐이 보이자 압도적인 숫자로 눌러 버렸다는 비판이 많았다. 그럼에도 여당은 오직 야당이 계속 법안을 보이콧해 어쩔 수 없었다는 논리로 일관했다. 당연히, 다양한 민의를 대변해 숙의와 합의 과정을 거쳐 절충안을 만들어내는 국회 본연의 법안 처리 프로세스는 실종됐다. 입법 독주는 교육 현안에 대한 본질적인 대안 마련을 어렵게 한다. 내심 야당과의 힘겨루기와 절충을 예상해 내놓은 듯한 법안도 그 절충과정 자체가 없다 보니 특정 집단의 주장과 이익에 치우친 채로 처리될 수밖에 없다. 앞선 임시국회에서 여당이 독자 처리한 교육법안이 모두 반쪽짜리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엄중한 시기, 상생 법안 만들라 국회에는 여전히 고교학점에 도입을 위해 무자격 기간제 교사 무리하게 도입하려 한다는 비판을 받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 내년 교육감 선거를 겨냥해 교육지원청에 일반행정직 부교육장을 두는 위인설관(爲人設官) 아니냐는 의혹을 사는 동법 개정안, 선거연령을 만 16세로 낮추는 공직선거법 개정안 등 교육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킬 법안이 잠복해 있다. 이 같은 개정안이 정기국회에서 거대 여당의 독주로 강행된다면 우리 교육은 되돌릴 수 없는 혼란에 빠져들 것이 자명하다. 이번 정기국회는 그 어느 때보다 엄중한 국면에 열린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잡히지 않는 상황에서 학교 등교일은 계속 확대되고 있다. 와중에 학생과 교원의 집단 감염 확산과 백신 접종 부작용 의심 증상에 이은 교원의 사망, 후유증 호소 등 정상적인 교육활동마저 어려운 긴박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이렇듯 교육 현장을 지원하고 교육력 회복을 위해 정치권이 챙겨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현장의 절박함과 호소를 무시하며 오로지 당리당략에 따라 일방독주하거나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일삼는 일이 재연돼선 결코 안 된다. 여야는 교육 현장의 절박함을 담아 교육 상생의 법안을 창출해야 할 마땅한 책무가 있다. 실로 중차대한 시기에 교육적 기대에 부응하도록 솔선해야 한다.
음력 팔월 초이레, 여름은 저만치 비켜서고 가을이 익어가는 아침, 햇살의 사선이 눈까풀에 투과된다. 어젯밤 쓸쓸한 긴 여운으로 남은 풀벌레 울음소리도 사선과 함께 황금빛 들녘으로 쓸려나간다. 추석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고르지 못한 가을장마가 얼마간 계속되었다. 간간이 드러나는 파란 하늘 아래 올리브그린 들녘이 해풍을 맞으며 황금 물결로 번져 간다. 그 출렁임에 추석의 그리움은 진하게 유년으로 달리며 몇 번의 머뭇거림을 한다. 하지만 일상을 더듬으며 스마트폰 뉴스 앱을 여는 순간 코로나19 확진자 수와 여기저기 솟아나는 정치와 경제 이야기, 세인의 관심에서 멀어진 삶의 모서리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에 지축은 흔들리고 카오스 상태가 되어 멀미가 날 지경이다. 그리움의 서정을 두른 자신의 감성이 겁이 난다. 그래도 추석을 앞둔 기다림의 시간은 누구도 멈추질 못한다. 추석을 앞둔 읍내 시장 주변 풍경이 분주하다. 허리 굽은 어르신은 참기름 집, 고추 방앗간에 이고 지며 드나든다. 한여름 태양 아래 말린 태양초는 고춧가루로, 푸르스름한 깨나무를 마름질하여 깻단으로 만들어 조석으로 세우고 떨고 키질하여 말린 참깨는 깨끗한 물에 헹궈 말려 불김을 입은 후, 압착기에서 고소한 기름으로 방울방울 떨어진다. 떨어지는 참기름 방울과 고추잠자리보다 더 빨간 고춧가루는 어쩌면 우리 부모님의 땀방울 그 이상을 생각해야 할 일이 아닐까? 이런 힘든 걸음도 추석이라고 찾아올 자식들에게 한 병식 들려 보낼 거라는 바람에 눈빛은 기다림으로 넘친다. 추석은 음력 보름날인 1월 15일(정월대보름), 6월 15일(유두), 7월 15일(백종), 8월 15일(한가위) 명절을 ‘달의 명절’이라고도 한다. 정월대보름은 정초에 그해에 닥칠 삿된 기운을 물리치기를 기원하는 벽사의 명절이고, 한가위는 풍요를 기리며 조상께 제례를 올리는 명절이다. 우리는 추석이면 으레 고향 집으로 향하고 ‘고향역’ 노래를 떠 올리며 노스텔지어에 사로잡힌다. 왜 파란 하늘 아래 황금 들녘과 한들거리는 코스모스 핀 고향을 떠올리는 것일까? 그 이유는 알게 모르게 우리의 혈관을 흐르는 가족이라는 같이한다는 정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님과 추석을 같이 보내고, 성묘해야 한다는 의식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었던 것도 이유가 될 것이다. 그러나 힘든 타향생활을 벗어나 고향의 품에서 위안을 받고자 하는 바람이 더 큰마음의 파도를 휘저었을 것이다. 좋은 친구들, 다정한 친척들, 어려서부터 알고 지내 익숙한 이웃 등 편한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세상사에 피곤해진 심신을 달래보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추석의 서정을 내리는 비에는 옷이 젖지만 쏟아지는 그리움에는 마음이 젖는다고 하였다. 연세가 드신 분들은 기억할 것이다. ‘추석이 가까워졌습니다. 벼가 익어 갑니다. 밤도 익었습니다. 감도 익었습니다. 즐거운 추석이 옵니다.’ 어릴 적 초등학교 1학년 국어책에 나온 추석의 한 소절이지만 그 시절 그 추억은 점차 고향의 시속에 묻혀만 간다. 또 다른 추석이 주는 의미는 산 자와 죽은 자 간의 만남이라 할 수 있다. 조상에 대한 예절이며 자연의 결실을 매개로 이승과 저승의 각별한 소통이다. 그래서 그 길고도 먼 고속도로가 정체되는 민족대이동의 풍경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고향이 있으나 못가는 사람들도 많지만, 고향에 가면 그리운 추억을 만나고 새로운 이야기도 쏟아낸다. 고향을 찾을 날을 앞둔 이의 마음은 누구나 꽃사슴처럼 설렌다. 나의 어릴 적 추석 풍경은 수많은 추억이 있지만, 이맘때쯤이면 웬일인지 어린 마음도 푸근했던 것 같다. 막내라서 명절빔으로 새 옷, 새 신 하나를 제대로 얻지는 못했지만, 먹는 것에 대한 풍족함이 잠시나마 있었던 시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풍족한 시대여서 부족함을 찾기란 어렵다. 그래서 추억과 그리움의 깊이도 얕아진다. 언제부터인지 추석은 옛날처럼 행복하지가 않은 것 같다. 대게 그냥 책임과 의무의 마음으로 명절을 맞는 것이다. 그 시절 어렵고 배고픈 때였지만 그래도 나눔과 낭만이 숨 쉬고 있어서 좋았다. 우리 삶에서 그리움의 대상이 없다면 너무나 무미건조하고 삭막해질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좋은 추억이 많이 남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언제부턴가 그렇지 못한 현실이 안타깝다. 사람답게 사는 것, 없고 가난했지만 그리 부끄럽지도 힘들지도 않았던 지난날이 그립다. 추억 속의 고향은 그립기만 한데 흐르는 세월과 함께 스피디한 현대화의 속도에 밀려 토담집과 함께 동구 밖 신작로의 흙길도, 고향 집 뒤뜰의 감나무도 다 베어져 사라지고 이제는 추억 속에서만 아스라이 존재하는 고향이 되었다. 그래도 추석날 고향에 모이면 그리움은 나를 사랑하고 토닥이며 따뜻하게 안아줄 것이다. 피곤한 마음도 상처 난 몸도 쉬게 하고 하프지 않게 할 것이다. 먼저 돌아가신 이와의 끊어질 수 없는 관계를 생각하며 그분이 계셨기에 오늘의 내가 살아 있음을 알게 되는 순간 감사의 정이 절로 넘쳐날 것이다. 마치 넘쳐나는 들판의 황금 물결처럼.
우리나라는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했다. 노인 인구 비율이세계 최고를 향해 가고 있다. 반면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해마다 감소하고 있다. 아이 한 명 한 명이 귀하다는 얘기다. 아이 한 명을 키우기 위해 마을의 이웃들이 함께 돌보며 마을에 있는 물적자원들을 적극 지원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학교만이 아이를 책임지는 분위기에서 마을이 함께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학교 교육과정 안에 마을 교육과정이 들어와 있다. 학교 교사만교육을 짊어지는 게 아니라 마을 주민들 중 자원하는 이들이 프로그램들을 지원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져 가고 있다. 교육에 대한 책임 주체도확대되고 있다. 학교를 넘어 지역사회가 아이들을 보호하고 키우는데 함께 책임을 져야 한다. 곳곳에 마을교육공동체가 확산되고 있지만 보완해야 할 점 등이 많다고 본다. 마을선생님이라는 제도가 정착하고 있지만 예산에 종속되는 감이 없지 않다. 지자체에서 교육경비 명목으로 학교로 교부하는 예산은 강사비로 쓰게 되어 있다. 그렇다보니 외부강사로 다양한 분들을 학교 안으로 모신다. 양적인 면으로는 프로그램 숫자가 많아져 활성화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질적인 면은 평가하기아직 모호하다. 예산 지원이 중단되면 프로그램 운영도 멈춰야 한다. 학교 교사들의 역량 강화를 위해 연수가 부단히 이루어지는 것처럼 마을 선생님 역량 강화를 위해 다양한 연수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마을교육공동체의 취지는 학생을 중심으로 마을에 있는 각 기관들이 유기적으로 협력하여 마을교육을 제대로 해 보자는 의도라고 본다.학생이 살고 있는 마을과 마을 사람들이 교육의 재료가 되며 학생들은 성장하면서 마을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마을을 위해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게끔 지원하는 마을교육이어야 한다. 누군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마을을 중심으로 공동체가 하나되어 협력해야 한다.내가 근무하고 있는 삼척만 해도 구도심의도시재생센터가 마을교육공동체의 좋은 인프라가 되고 있다.마을에 사는 청년 창업가들이 가게를 열고 자신들의 재능으로 구도심에 활기를 불어 넣어주고 있다. 청년 창업가들을 마을교육의 인적 자원으로 활용하여 학생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일이 무척 중요하다고 본다. '나도 마을에 정착해야겠다', '나도 청년들처럼 재능을 키워 내 사업을 할 수 있겠다', '내가 하는 일이 마을을 살릴 수 있는 일이 될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연계할 필요가 있다. 이 모든 일에 필요한 예산이 있다면 지자체에서도 충분히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마을 안에서 소비되는 예산들은 결국 마을을 살리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한 아이는 우리 모두의 아이다' 라는 구호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온다. 그런데 말로만 하는 것 같아 아쉬운 점이 많다.마을마다 과연 오로지 아이들만을 위한 시설이 몇 개나 될까?그나마 존재하던 청소년수련관, 청소년복지회관 등도 가끔 둘러다보면 아이들보다 어른들을 위한 복지 기관으로 주로 활용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아이들이 맘 놓고 떠들고 뛰어다니고 놀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런 아이들을 불편하게 보는 시선들이 있다.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하면서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정책들을 펼치지만 피부에 와 닿는 작은 것부터 시작돼야 한다. 어른들의 취미생활과 복지를 위해 다양한 공간들이 생기는 것만큼아이들을 위한 놀이터, 아이들을 위한 쉼터가 경제적 효율성을 따지지 말고 지자체 차원에서 과감하게 지원해야 한다.마을교육공동체의 중요한 교육 대상인 아이들을 위해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 이런 시설들이 만들어지면 당연히 마을선생님수요가 늘것이다. 놀이전담사, 놀이전문가, 놀이터관리사 등 마을선생님들이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설해 아이 한 명 한 명을 키워낼 수 있을 것이다. 학교라는 시설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고 본다. 물론 학교는 지역공공재여야 한다. 지역사회 주민, 학부모들도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다만, 학습권 보장을 위해 최적의 환경을 유지해야 하는 특수성이 있으므로 지역의 어른들이 이런 점들을 감안하고 아이들 중심으로 최대한 학교 시설이 활용될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부분도 필요하다. 예전에는 교육은 오로지 학교만이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적이 있다. 교사자격증을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현재 사회적 분위기는 교육의 장소 뿐만 아니라 교사도 다양화될 수 있음을 말한다. 마을교육공동체가 움직이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이 각자의 욕심을 내려놓고 오직 아이만 바라보고 서로 협력할 수 있어야 한다. 학교도 늘 열려있어야 한다. 마을교육공동체의 일원으로 적극 협력하고 필요하다면 책임도 마다하지 말아야 한다.
하윤수(전 부산교대 총장, 왼쪽) 한국교총 회장이 10일 서울 서초구 한국교총 다산홀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에게 '교육정책현안 10대 과제'를 전달하고 있다. 하윤수 한국교총 회장을 비롯한 한국교총대표단이 10일 한국교총 다산홀에서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자와의 교육현안에 대한 대화가 끝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하윤수(오른쪽 첫번째)한국교총 회장이 10일 오후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자와의 대화가 끝난 후 1층에 마련된 '한국교총 70년 사료실'를 안내하고 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자가 10일 오후 간담 후 한국교총 70년 사료실을 둘러보고 방명록에 '자율과 창의를 기반으로 교육 입국을 이룩하겠습니다'라고 적고 있다.
대선주자로 공개 행보에 나선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가 이번에는 교육계로 눈을 돌렸다. 지난 10일 윤 예비후보는 한국교총을 내방해 하윤수 한국교총 회장(전 부산교대 총장)을 비롯한 회장단, 시·도교총 회장 등과 만나 교육 현안을 청취하고 구상 중인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하 회장은 "교육은 현재 도전과 위기에 직면해 있다"며 공공성과 교육의 다양성, 자율성, 정치적 중립성이 무너지고 있는 교육 현장의 현실을 전했다. 이어 "교육이 국가의 미래라는 신념으로 국민께 청사진을 제시하고 강력한 실천 의지를 보여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교육 구성원들의 공감과 합의 없이 교육 정책이 추진되고, 정권을 초월해 장기적으로 국가 교육 정책을 결정해야 할 국가교육위원회가 제 역할을 못 하는 상황도 비판했다. 하 회장은 "고교체제가 시행령 수준에서 폐지되고 준비도 안 된 고교학점제는 일방적으로 추진되고 있으며, 백년대계를 세울 국가교육위원회는 정권교육위원회로 전락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하 회장은 "올바른 교육 비전을 제시하고 교육을 국정 운영의 핵심 가치로 추진할 후보가 대통령이 돼야 한다는 교육자들의 열망을 잘 실천해주길 바란다"고 요청하며 ‘교육 정책 현안 10대 과제’를 윤 예비후보에게 전달했다. 윤 예비후보는 현장의 목소리에 공감하면서 ‘다양성 보장’과 ‘학교의 자율성 존중’ 등을 교육 정책의 방향으로 제시했다. 윤 예비후보는 "교육도 수요자의 선호에 따라 다양한 교육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면서 "국가가 나서서 식사 메뉴를 정해주듯 결정해서는 안 된다"고 소신을 밝혔다. 이어 "교육 당국은 학교를 지원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가면 갈수록 국가가 교육에 개입하고 통제하고 있다"며 "학교의 자율성을 높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논란인 사학법 개정과 관련해서도 의견을 밝혔다. 윤 예비후보는 "사람을 키워내는 교육은 공공성과 책임을강조하는 것과 함께 다양성과 자율성, 창의성이 함께 기반이 돼야 한다"며 "문제 사학은 법적 제재를 하더라도 여타 사학에 대해서는 헌법이 보장한 자율성을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혁신교육도 언급했다. 윤 예비후보는 "혁신교육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다만 "혁신교육의 실체가 정치교육이고 혁신이라는 이름 아래 정작 가르칠 공부를 제대로 안 가르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교직은 전문직"이라고 말했다. 윤 예비후보는"교사가 오랜 경험을 거쳐 교감, 교장이 돼야 한다"면서 "교육은 기본적으로 전문가에게 맡기겠다"고 밝혔다. 간담 후 윤 예비후보는 한국교총회관 1층에 마련된 교총 사료실을 둘러보고 방명록에 ‘자율과 창의를 기반으로 교육 입국을 이룩하겠다’고 적었다.
감사는 감동과 사랑의 합성어 미국 켄터키 대학 병원의 데이비드 스노던 박사는 감사와 건강의 상관 관계'를 오랫동인 연구했습니다. 그는 미국 내 일곱 군데 수녀원에 있는 수녀들을 대상으로 수십 년 동안 생활습관을 관찰했습니다. 그 결과는 놀라웠습니다.감사하는 마음과 긍정적인 자세를 지닌 수녀들과 불평이 많고 부정적이었던 수녀들을 비교한 결과, 긍정적인 수녀들의 수명이 평균 7년 정도 더 길었을 뿐 아니라 뇌세포의 파괴 정도도 덜했다는 것입니다. 예전부터 낙천적인 사람이 더건강하고장수한다는 이야기는 있었습니다. 느린 듯, 게으른 듯살며 욕심을 덜 부리는 사람에게 질병도 관대한 모양입니다. 이는 몸과 마음이 하나임을 나타냅니다. 몸이 힘든데 마음이 편할 리 없고 마음이 절망적인데 몸이 건강할 리 없습니다. 그러니 할 수만 있다면 속도를 늦추고 느린 걸음으로 세상을 관조하먀 사는 지혜를 너머 감사하는 태도가 답이 분명합니다. 반면 성미가 급하여 욱하여 화를 잘 내는버릇을 가졌거나 욕심이 과도하여 매사에 일희일비 하는 사람의 건강이 좋을 리 없습니다. 화를 내면 피가 머리로 쏠려 순식간에 혈압이 상승하니 몸에 불이 난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퇴임 몇년 전부터는 1학년을 내리 맡았습니다. 젊은 선생님들이 1학년 담임을 꺼리기도 했고 경험이 많은 선배 선생님이 맡아주면 차분히 이것저것 챙겨주며 기본생활 습관을 자리잡게 해준다고 생각했습니다. 1학년 아이들은 무척 귀엽기도 하지만 한순간도 눈을 떼지 못하게 하지요. 아무것도 아닌 일로 금방 친구를 때리거나 우는 아이. 화를 버럭 내는 아이가 꼭 있지요. 외동이로 자라 어울리는 방법을 몰라 양보를 할 줄 모르는 아이는 뭐든 자기중심적이라 얼굴이 빨개지도록 화를 내곤 했습니다. 좋은 말로 타일러도 안 되면 꼭 해주던 말은, "00야, 그렇게 갑자기 화를 내면 네 뇌에 불이 난 거란다. 화를 내는 네 머리를 식히기 위해 비상이 걸려서 몸에 있던 혈액(피)들이 119대원이 되어 몰려들어서 머리가 많이 아파진단다. 온몸에서 갑자기 몰려든 피들이 길이 좁아서 (혈관이 좁아서) 터지는 게 고혈압이라는 병이야. 그러니 제발 화를 내더라도 천천히, 생각하면서 조심해야 돼요.네 몸의 주인은 바로 너잖아. 소중하니까 조심해야겠지? 자꾸 버럭 화를 내면 몸이 나빠진단다." 1학년 아이는버럭 화를 내면 자기 뇌에 불이 나는 거라고 말해주면 놀랍게도 금방 수그러들곤 했습니다. 무조건 화를 내면 안 된다고 말해주는 것보다 그럴 듯한 근거를 들어 말해주면 어린 아이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들입니다. 때론 장난끼가 발동해서 농담을 주고받던 급식실 풍경이 생각나서 웃음이 나옵니다. 1학년 아이들이 학교에서 나오는 점심밥을 맛있게 먹는 아이도 있지만 대부분은 음식을 남기거나 거절하는아이가 꼭있습니다.어떤 아이는 멸치를 싫어하기도 하고 미역국이 미끄럽다며 먹지않습니다. 선생님이 포기할 때까지 기싸움을 시작하지요. 아무리 건강에 좋다고 말해봤자 수저를 들고 고집을 피우는 아이도 논리적으로 접근하면 어떤 아이건 설득당합니다.제가 늘 썼던 방법을 소개합니다. 약간 위험할 수도 있으니 따라 하시면 큰 일 납니다. "00야, 멸치랑 미역이 맛이 없는 모양이구나. 그런데 어쩌지? 얘들은 지금 너를 위해서먼바다에서 여기까지 왔는데!예쁘게 자라서 어부의 손에 잡혔고, 나라에서는 너를 위해서 많은 돈을 들여 요리해 주었지. 조리사 선생님은 또 정성스럽게 요리를 해주시고 말이야. 그렇게 먹기 싫으면 안 먹어도돼. 그 대신바다에 가서 멸치와 미역을 잡아오거나 이 멸치와 미역값을 내면 봐줄게. 어때? 선택은 네가 하렴. 우리를 위해 목숨을 내준 과일과 물고기에게 우린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까지 말하면순진한 아이들이 반드시 먹습니다. 곁에서 지켜보다 웃음을 참으며 함께 먹던 급식실 풍경이 참 그립습니다. 그렇게 첫 시작을 잘하면 아이들은 언제나 잘 먹었지요. 직접 바다에 가서 잡아 와야 한다는 엄포에 놀라서요. 아! 귀여운 아이들! 참 많이 보고 싶습니다. 더 심한 아이는 식판 앞에서 자꾸 토하는 시늉을 하던 아이였습니다. 좀 심한 경우이지만 이때 선생님이 포기하면 그 아이 식습관은 영영 고칠 수 없습니다. 저는 극단의 방법을 딱 한 번만 씁니다. 다소 위험하고 과격한 말이었지만 효과는 만점이었으니까요. "00야, 그렇게 먹기 싫어요? 어쩌나. 그렇게 자꾸 토하면 네 목에 상처가 나서 병원에 가야 해요.정말 토하고 싶으면 토해도 돼요. 그대신 네가 토한 거니까 네가 먹으면 돼요. 새로운 음식이라 싫은 모양인데 자꾸 먹어보면 괜찮아져요. 선생님은 잘 생긴 00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꼭 보고 싶은데. 네가 잘 먹어야 선생님도 밥을 먹을 거야." 토한 걸 다시 먹으라니!학생이 강아지도 아닌데 토한 걸먹으라니. 정말 위험하고 위태로운 발언이지요.누가 들으면 언어폭력으로 고발을 당할지도 모를 말이지만 어떤 말도 통하지 않던 아이는딱 한 번의 충격으로 단 한 번도 토하지 않고 식판을 비우기 시작했지요. 물론 선생님과 친해야 가능합니다. 저를 진심으로 아낀다는 걸 알고 있어야 가능합니다. 지금은 5학년이 되었을 그 아이의 둥그런 얼굴이 아른거립니다. 어쩌면 선생님에게 밥투정을하며 어리광을 부리고 싶은 마음의 소리였는지도 모릅니다.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달라는, 아껴달라는 호소였을 것입니다. 그런 아이에게 먹기 싫으면 먹지 말라고 했다면 자신에게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토한 뒤에 그 책임은 자신의 몫이란 걸 깨달으며 선생님이 결코 포기하지 않고 언제나 밥 먹는 모습을 봐 줄 거라는 믿음이 생겨 먹게 됩니다. 힘들게 먹는 아이에게 폭풍 칭찬을 후식으로 제공하면 금상첨화이지요. 다문화가정에 엄마마저 안계셔서 집에서는 먹어보지 못한 음식 앞에서 힘들어하던 모습이 많이 가여웠던 아이야.부디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라렴! 선생님이 심한 말을 한 것은 정말 미안헀어. 너를 위한 말이었지만 그래도 미안해. 결과가 좋아도 과정에 문제가 있으면 안 되는데 내가 좀 더 현명하지 못해서 그런 것 같아. 아직도 부끄러운 마음이 드는구나. 몇 년이 지났지만 그말만은 잊지 못한 걸 보니 내 양심이 찔려서 상처가 난 모양이야. 언젠가 너를 보는 날이 오면 반드시 말해주고 싶다. 참 많이 미안하다고. 그 아인 그 후로도 토하려는 모습을 종종 보였지만 단 한 번도 토하지않고 식판을 비우곤 했습니다. 늘 곁에서 잘 먹어서 예쁘다고 칭찬을 듣고 싶어서 그랬는지도 모릅니다. 똘똘하고 착한 그 아인 작은 선물에도 감사할 줄 알고 말로 표현하는 학생이었습니다. 당당한 모습으로 자라서 아버지의 자랑이 되기를 빌어봅니다. 아름다운 풍경에 감동하고 가족과 아웃을 사랑하는 마음은 감사하는 자세로 나타납니다. 사람은 같은 사건, 사고에 처해지더라도 마음 먹기에 따라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사람이 불행하다고 하거나 환경이 매우 나쁜데도 밝고 긍정적인 사람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인생은 결국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니 허무한 것이라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삶과 기적처럼 태어난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며 날마다 긍정적인 에너지로 재무장 하며 사는 삶은 전혀 다른 모습일 것입니다.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으며 존재 자체를 '의미 있음'으로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의 삶을 역사라는 이름으로 기록하고 존경합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바로 감사하는 삶이었음이 분명합니다. 감사라는단어를 감동과 사랑의 합성어로 표현하고 싶습니다. 코로나19로 너도나도 힘든 시간의 강을 건너고 있습니다. 그래도 감사할 일을 찾아서, 만들어서라도 이 고난을 이겨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