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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학생 무서움증” 요즘 교단이 앓고 있는 새로운 중병이다. 학생이 두렵고 무서워서 교단을 떠나려는 교사가 늘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수업 중에도 교사가 학생을 통제 할 수 없는 황폐화된 교육 현장의 모습은 사흘이 멀다하고 매스컴을 통해 보도 되고 있다. 이것은 수요자 중심 교육이 초래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수요자 중심 교육이 등장 하면서, 교육현장에는 학생과 학부모의 권리와 목소리만 높아지고 존중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해졌고, 교사의 고유 권리인 학생 통제 기능을 약화시켜, 학생 무서움증과 학생이 교사를 폭행하는 안타까운 결과를 초래했다. 교육이란 “의도적으로 행동을 인간답게 변화 시키는 과정” 이며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능가 할 수 없다”고 한다. 교육 주체자인 교사의 역할이 절대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새롭게 개정되는 승진 규정에 대한 교사들의 기대치가 높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교육현장에서 학교 경영을 책임질 관리자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우선, 우리 교육 현실을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경륜과 지혜를 갖추어야 하며, 교육과정 운영과 교과 지도에 우수한 실력을 갖춘 전문가이어야 하고, 또한 문제 상황에 대한 판단과 대처 능력을 갖추어진 인간 친화적이며 인격에 흠이 없는 사람이 학교 관리자가 되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새롭게 규정되는 승진 규정이 관리자에 대한 교사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교단 황폐화를 더 가속시킬 수 있다는데 많은 문제점이 도사리고 있다. 경력평정 반영기간 및 점수 비중을 축소하여 젊은 교원을 관리직에 진출하게 하는 것은 교육의 황폐화를 초래할 것이다. 연공서열 중심의 현 승진 구조를 가시적으로 능력중심으로 바꾸어 젊고 유능한 교사가 관리자가 될 수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능력없는 원로 교사를 퇴출시키고 젊은 인재를 기용한다는 것이다. 시류의 흐름을 보면 다른 직종에서는 이미 일반화된 사실이다. 하지만 교육 현장은 다른 직종과 차별된 특수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시장 원리에 입각한 수요자 중심 교육을 처음 도입하였을 때 처음에는 매우 신선하게 느껴졌지만 그 결과는 교육 현장에서 수요자의 소리가 더 높아져, 있어서는 안 될 안타까운 일들이 속출하고, 교단에 염증을 느끼는 교사들만 자꾸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학교는 전인적 인간 육성을 위한 공공 교육기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 원리를 중요시 하여 학원처럼 변질되어 영국의 교사들처럼 기회만 되면 교사 모두가 교단을 떠날지도 모른다. 교육 현장은 젊고 능력 있는 교사 뿐 아니라 경륜과 지혜가 쌓인 교사를 필요로 하며 그들이 존중 받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 교육 현장에서 오랜 시간 학생들과 생활하는 가운데 체득된 노하우는 경험이 많은 베테랑 교사만의 경륜이며 지혜이기 때문이다. 학력이 높고 똑똑한 젊은 초보 엄마는 아이를 키울 때 항상 책에서 배운대로 아이에게 적용을 한다고 한다. 그게 가장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요리를 처음 배우는 초보자도 계량컵이나 스푼을 이용하여 수량을 계량한다. 하지만 육아 경험이 많은 엄마는 아이의 표정만 보고도 욕구가 무엇인지 알 수 있고, 요리 경험이 많은 요리사 역시 일일이 계량기를 사용하지 않아도 어림 짐작에 의한 계량이 가능하다. 하루가 다르게 커 가는 학습자들과 오래 생활한 경험이 교육 현장에서는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젊은 교사는 혈기 왕성하여 의욕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의욕만큼 생각과 지혜가 따르지 못하여 교육행정에 오류를 범하는 사례들을 현장에서 심심찮게 보게 된다. 작은 오류일지라도 커 가는 학생들에겐 인생관 자체에 부정적 변화를 줄 수도 있기 때문에 교직의 특수성이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15~20년의 교육경력으로 학교 관리자가 되기에는 경륜이 부족하다. 학교 업무의 특성상, 각 업무의 기획이나 부장교사를 최소 3년정도는 경험해야 경영에 따른 기본 자질이 갖춰진다는 것이다. 지금도 젊은 교감이 관리하는 학교는 직급간의 명령체계가 효율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음은 관리자의 자질이 구성원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앞으로는 근무 성적이 승진을 좌우할 것이다. 승진에 근무성적평정의 반영 비중을 높여 근무 성적으로 승진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관리자 입장에선 매우 바람직한 개정안이지만 근무성적 평정은 매우 주관적이다. 근무태도나 학생 지도 실적 그리고 교과 지도 능력을 객관성과 타당성이 있게 평가 할 수 있는 평가 도구가 부족하기 때문에 학연이나 지연 그리고 인맥이 능력이나 성과보다 우선시 되어 평가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능력있는 교사는 어떤 교사일까? 당연히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그들을 이해하고 뛰어난 수업기술을 가진 교사일 것이다. 그런데 수업의 기술을 평가하기가 매우 애매모호하다는 것이다. 수업 능력에 대한 성과는 엄밀히 따지자면 한 두 해 만에 평가할 수 있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그 수업을 받은 학생이 어떻게 변화되어 사회에 공헌하고 기여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능력 중심의 실적 평가는 대부분 가시적인 성과 중심으로 평가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근무성적 반영 기간의 확대는 또 다른 교단 갈등의 소지를 내포하고 있다. 근무성적 평정은 상대평가이므로 구성원 모두를 정해진 비율에 따라 나누어 평정점을 부여해야 하는 모순점이 내재해 있다. 이러할 진대 근무성적평정 반영 점수를 상향조정하고 반영기간을 10년으로 확대함으로써 근무 성적이 승진을 좌우한다는 것은 정말로 많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관리직의 권위 의식과 비합리적인 폐단이 횡행할 것이며 선의의 경쟁이 아니라 싸움의 장이 될 것이다. 지금도 승진하려고 하는 교사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견원지간의 혈투가 벌어지고 있다. 또 수업도 잘하고 생활지도도 잘하는 우수한 교사보다는 아부 잘하는 교사가 판을 칠 것이 명약관화하다. 왜냐하면 교사의 능력은 자로 재듯이 평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한편 교사의 인사이동의 폐해는 불을 보듯 뻔한 부정이 자행될 소지가 크다. 학교간 인사 이동으로 인한 인사 폐해는 점점 더 커질 것이다. 따라서 근평 점수의 비중을 현행대로 하되 그 반영 기간을 4년 정도로 해야 마땅하다. 근평을 조정하는 방법은 4년간의 근평 중에서 평균점을 하든지 아니면 같은 수이면 똑같은 수로 취급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래야만이 연구점수나 가산점과의 형평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본다. 지역마다 다르지만 공립의 경우 4, 5년 주기로 인사 이동이 있고 나아가서는 전보 유예를 몇 년 더 할 수도 있다. 특수한 경우이지만 학교장의 재량으로 이들에게는 특전이 주어질 수 있다. 이런 경우는 누가보아도 승진의 최우선 순위가 될 수 밖에 없다. 동료교사의 다면평가제가 과연 근무성적 평정결과의 객관성과 신뢰성을 제고할 수 있는가? 근무성적 평정 방식에서 다면평가제를 도입을 통해 평정결과의 객관성, 신뢰성, 투명성을 확보하고자 했는데 사실상 어려운 제도에 불과하다. 이 제도는 근평으로 인한 학교내의 편가르기와 학연, 인연, 부정 부패, 부조리 등이 횡행할 것이며, 능력은 있으나 아무 연줄이 없는 소수자는 당연히 소외될 것이다. 아직도 각 지역마다 학연과 지연이 결정적인 순간에는 판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평정대상자가 요구하는 경우 근무성적평정 결과를 본인에 한해 공개하도록 함으로써 근무성적 평정의 투명성 및 신뢰성을 제고하도록 한다고 하는데 이 점도 재검토해야 한다. 근평을 공개한다고 했을 때 어느 누구라도 자기 점수에 대해서 수긍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 그것이 화근이 되어 교무실이 마치 전투장으로 변하면 누구에게 영향을 끼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교무실이 싸움과 불신의 장이 안된다고는 볼 수 없다. 피학습자나 학부모측에서 본다면 이런 기이한 현상으로 인해 교단을 우습게 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누워서 침뱉는 꼴의 정책 입안은 과감히 없애야 한다. 근평 비중의 확대로 인한 승진의 몸부림으로 교단은 부조리와 갈등의 장으로 변할 것이다. 승진의 자리는 출산율 감소로 인해 갈수록 좁아지고 있어 누구나가 승진에 뜻을 둔다고 가정해 볼 때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사실은 포기자가 더 많이 나올 것이다. 다시 말해 개정안에서 근무성적 평정방식에 다면평가제를 도입한다는 것은 어느 특정 단체에게 힘 실어주는 꼴밖에 되지 않는 편가르기 평가제도로 전락할 위험 소지가 다분히 내재해 있다. 현 승진 규정으로도 충분히 여러 부장 교사들이 다면평가제 같은 방식으로 평가하고 최종적으로 교감, 교장 선에서 최종 평가를 한다면 합리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직무연수성적 평정방식을 등급제로 전환함으로써 교사들의 전문성 신장이 약화될 것이다. 직무 연수성적 평정방식의 개악은 교사의 전문성 신장을 막는 커다란 과오를 범할 수 있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연수성적의 지나친 점수 경쟁을 완화하기 위해서 현 연수평정 방식을 등급제로 바꾸고 실적 요소별 점수를 상향 조절한다고 했는데 이것은 정말 바보같은 정책 입안이다. 현재의 승진 규정에서는 연수성적을 따기 위해 선의의 경쟁을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실력있는 교사들은 쉽게 점수를 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아무런 문제도 없다. 다만 높은 점수를 득하지 못한 교사들은 고득점을 얻기 위해서 많은 연수를 받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관리직이 되기 위해서는 다방면에 최소한의 소양은 갖추어야 된다고 본다. 연수 실적 요소별 점수를 상향 조정하여 연수나 연구를 조금만 해도 승진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유능한 인재 배치를 한다는 교육인적자원부의 정책과는 정면으로 배치된다. 즉 젊고 능력있는 교사를 승진시킨다고 해놓고서는 점수 경쟁이 심하다고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지나친 어불성설이다. 연구실적 요소별 점수를 상향조정함으로써 앞으로는 연구점수가 필요 없다는 것인가?. 연구 실적 요소별 점수를 상향 조절한다는 것은 형평성의 원칙에도 맞지 않는 모순점이 있다. 경력있는 교사들이 10여년간의 부단히 자기 연수로 쌓아 놓은 연구 점수를 무시하고, 대학원(석사, 박사과정)이나 2, 3년의 연구를 하면 어느 누구라도 만점을 득할 수 있도록 한 연구 실적 요소별 점수의 정책도 너무나도 사리에 맞지 않는다. 능력있는 유능한 교사를 승진시키려면 부단한 연구와 연수를 게을리 하지 않은 교사가 우선시 되어야 할 것이 때문이다. 각급 교육청에서 실시하는 연수 대상자를 선정할 때에 모든 교사가 연수를 받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학교의 연수 업무 담당 교사는 매년 애를 먹고 울며 격자먹기식으로 자신이 연수에 참석하는 경우가 빈번한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까? 정말 가슴이 답답하고 숨통이 막힌다. 관리자는 자기 전공뿐만 아니라 다방면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여야 하기 때문에 부단한 각종 연수를 통하여 우수한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볼 때 이번 연수성적의 평정 방식은 합당하지 않은 개악인 것이다. 관리자로 승진한 이후의 연수만으로 교육행정을 관리하기에는 어려움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수 성적 개정의 대안으로 연수 이수학점제의 시행과 더불어 각종 현장의 연구물들을 엄격하게 심사하여 그것을 승진에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하며 학교를 대학 같은 연구 분위기를 조성해야 이 나라의 앞길이 밝아질 것이다. 교사들이 연구한다고 하여 학습자에게 피해를 끼친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물론 소수의 교사에게서 그런 현상이 발생할 수 도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연수 학점 이수 관리제의 도입과 더불어 연구하는 학교 풍토로 만들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교육인적자원부에서 몇 년전부터 그렇게 주창하여 실시해 오고 있는 연수 학점 이수 관리제는 지금 사장되고 있지 않은가? 그 당시, 교사들의 전문성 신장을 목적으로 너나 할 것 없이 연수 현장으로 내몰던 정책은 어디로 갔다 말인가? 연수 받은 시간을 학점제로 인정한다고 하여 많은 교사들이 자투리 시간을 활용, 박봉을 털어가며 연수를 받아 놓은 것은 어쩌란 말인가? 연수 학점 이수 관리제를 그냥 사장시키지 말고 적극 도입한다면 될 것이다. 승진 부가점을 재고해야 한다. 연구학교의 점수를 가산점으로 부여하는 실태는 웃긴다. 앞으로는 가산점 중에서도 연구학교에 근무한 경력이 승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는데, 연구학교 운영 실태를 보면 소가 웃을 것이다. 연구학교에 근무하는 교사는 거의 대부분의 연구학교 가산 점수를 받는다. 연구의 주무를 했던 안했던 상관없이 똑같은 부가 점수를 부여 받는 것은 연구학교의 부가 점수의 의미를 상실할 수 밖에 없다. 연구학교는 지정되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따라서 부가점수를 낮추고 개인에게 특정한 주제에 대한 프로젝트를 시행하게 하여 그 결과를 가산점으로 부여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본다. 실질적인 연구 활동과 연구 부과점이 교사들의 사기 앙양과 전문성 신장에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농어산촌의 가산점의 작은 부여는 농어산촌의 교육을 더욱 황폐화시킬 것이다. 입법 예고된 승진규정 개정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농어산촌의 가산점을 얻은 교사 보다 다인수의 큰 학교에서 근무하는 것이 더 유리하게 되어있다. 그렇다면 갈라먹기 식의 승진이 된다면 누가 열악한 농어산촌에 근무하려고 할 것인가? 각 지역청에 따라 승진 규정을 다르게 만들겠지만 자기 가정을 내 팽개치고 먼 농어산촌에서 근무하는 교사는 아주 젊은 신규교사들로 충원될 것이 뻔한데 신규교사들이 1년을 마다하고 교단을 떠나든지 아니면 인사 이동을 원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농어산촌의 학생과 학부형에게 돌아갈 것이다. 교육정책에 대한 실명제를 하고 사후 문책을 반드시 해야 한다. 이번 교원 승진 규정 개정안에 있어서 의견 수렴이 우선 되어야 하며 심오한 연구를 거듭하고 시범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했지 않은가? 더불어 교육정책에 대한 실명제를 하고 사후 문책을 반드시 해야 한다. 예를 들면 공무원연금 정책의 실패로 많은 교육자들이 몇 십년간이나 뼈를 깍아야 하는 아픔을 겪어야 되지 않는가? 아무튼 이번 교육공무원승진규정일부개정령(안)은 아직 입법 예고편에 불과하니 여러 의견을 수렴하고 우리 나라의 장래를 생각하여 교각살우의 우를 범하지 않는 쪽으로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교단을 황폐화 시켜 공교육이 발붙일 공간마져 없애지 말고 이제 하루라도 빨리 고정 관념을 버리고 대부분의 교사들이 수긍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할 것이다. 수업 우수 교사, 생활지도 우수 교사, 신지식인, 교재 개발 우수 교사, 혁신적인 공로 교사 등에게 부가점을 주는 등 , 현 제도의 모순점을 적극 개선하여 유능한 교사가 관리자가 되도록 해야하고, 승진을 못한 우수한 교사에게도 승진 대우에 해당하는 수석교사제와 같은 제도가 우선 마련되어야 동료 교사 사이에서도 갈등이 줄어들 것이다. 교육인적자원부가 마련한 승진규정 개정안은 천만부당한 개악이 되지 않도록 마땅히 개정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차제에 자격 없는 의원들을 단호히 심판해야 한다. 교사 상호간의 불신과 갈등을 증폭시키고 교사 업무를 가중시켜 학습 시간을 좀먹는, 이 나라의 교육을 황폐화 시키는 일부 의원들의 책임을 물어 우리 교육자들은 단호히 심판해야 할 것이다. 교육인적자원부장관도 교원승진규정개정(안)의 불합리한 모순점을 하루 빨리 올바른 방향으로 개정하여 이 나라의 앞날을 걱정해야 할 것이다.
한국과 일본의 교육현장에서 공통적으로 고민하는 것 중의 하나가 영어 교육이다. 우리 나라는 초등학교 과정에서부터 정규 교과목으로 영어를 공부하지만 아직 일본은 검토중이다. 그러나 실제로 세계 무대에서 영어를 더 잘 구사하는 사람들은 어느 나라일까? 일본의 학교 현장에서 영어 교육에 대한 관심은 대단하다. 이레 일본 쿄토부 야와타시의 시립중과 히가시나카와 부립 야와타고는 휴대 게임기 「닌텐도 DS」를 사용해 영어 단어를 배우는 수업을 시작하였다. 이는 시 모두 초, 중학생의 학력 향상에 임하는 시 교육위원회의 시도로 게임기를 사용한 수업은 진귀하게 여겨 향후 수업의 효과를 실천 연구한다. 전용 펜으로 조작해, 음성이 첨부된 게임기가 학습에 도움이 될 것으로 착안한 히카루씨가 도쿄의 소프트 개발 회사에 소프트 제작을 의뢰했다. 이 소프트에는 고교생용 단어 1,900개와 중학생용 1,800 단어를 수록하였다. 펜으로 화면에 단어를 쓰면 발음이 나온다. 또한 일본어와 영어로 변환할 수도 있다. 기억하고 싶은 단어를 반복해 들을 수 있는 기능도 있다고 한다. 수업은 오토코산중학교와 야하타 고등학교와도 9월 상순부터, 3년생의 일부 학생을 대상으로 시작했다. 동중에서는 영어의 수업으로 10분 정도 사용하면 좋다는 것이다. 야마나 히로시시 교사는 「학생들은 조작에 익숙해 의욕적으로 학습에 임하고 있다. 효과는 기대할 수 있어요」라고 이야기한다. 대학에도 협력을 요청하여 죠오치대 문학부 이케다 강사가, 학생의 어휘가 얼마나 증가하고 있을까 정기적으로 조사하고 있다. 하야시씨는 「효과가 인정되면, 다른 학교에도 확대하고 싶다」라고 이야기한다. 시 교육위원회는 한자학습에도 같은 소프트를 사용한 수업 도입을 검토하고 있으며 1월에는 연구 발표를 실시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에 대한 결과가 주목을 받고 있다
선생님, 2007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오늘 하루를 편히 쉬시면서 새해 한 해를 잘 설계하고 계시리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다사다난했던 2006년이 저물었습니다. 저문 해를 아쉽다고 되돌아보지 말고 새로이 솟아오른 2007년의 해를 희망찬 눈으로 바라만 보았으면 합니다. 황금돼지의 꿈을 많이 꾸셨으면 합니다. 황금돼지의 꿈을 이루시는 한 해가 되셨으면 합니다. 저는 오늘 편히 쉬면서 새롭게 다짐도 해보았습니다. 수술 후 재활치료를 받으시는 선생님을 비롯하여 아는 분들 가운데 힘들게 살아가는 분들과 신세를 많이 졌던 분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기도 하고 받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을 다짐하는 메모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오늘 한 선생님으로부터 ‘새해 인사드립니다’라는 제목의 메일을 받았습니다. “새벽이 인적 없이 밝았습니다./ 발자국으로 길을 안내하소서./ 발자국 따라 딛겠습니다./ 황금의 돼지 새해가 밝았으니/ 뽀드득 하얀 축복 더하소서.” 저도 여러 선생님들에게 새해 인사가 너무 마음에 들어 똑같은 인사를 드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새벽이 인적 없이 밝았습니다. 우리 선생님들의 발자국으로 저의 나아갈 길을 안내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성실의 발자국, 인내의 발자국, 겸손의 발자국, 자진함의 발자국, 헌신의 발자국, 열성의 발자국 등의 아름다운 발자국 따라 딛으며 따라가겠습니다. 황금의 돼지 새해가 밝았으니 뽀드득 하얀 축복 더하시길 기원합니다. 가정마다 황금돼지꿈, 자녀마다 황금돼지꿈을 꾸어 모든 꿈이 현실의 축복으로 나타났으면 합니다.가슴속에 황금돼지의 꿈을 가슴에 품고 살아갔으면 합니다. 그 꿈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두운 밤에 찾아오는 하얀 축복의 눈송이처럼 소복소복 선생님들에게, 가정에, 자녀들에게 쌓였으면 좋을 것 같네요. 며칠 전 한 선생님께서는 ‘동면’이라는 제목으로 이런 내용의 메일을 보내주셨습니다. “오늘 방학입니다. 기나긴 동면을 준비 중입니다. 간간이 보람 있는 일들도 하겠지만 우선 많이 쉬고 책도 읽고 여유롭게 뒹굴고 그럴 계획입니다. 날씨가 많이 추워진다고 해도 방학이라고 생각하니 하나도 위협이 안 됩니다. 흐흐... 보충이 있지만 한결 여유 있을 시간을 잘 보내세요. Have a wonderful winter vacation!” 새해를 맞는 날이 방학이기에 이 선생님처럼 우리 선생님들께서도 긴 방학 동안 긴 동면에 들어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우선 많이 쉬면서 에너지를 충분히 보충하셔야죠. 책도 많이 읽으면서 내적인 풍요로움을 누리시면 좋겠습니다. 여유롭게 자녀들과 가족들과 함께 뒹구셔야죠. 그러면서 가족의 중요성도 깨닫고 가족이 주는 행복함을 느끼셔야죠. 날씨가 추워진다고 해도 위협이 되지 않을 만큼 겨울방학을 좋게 느끼시기 바랍니다. 겨울방학을 내 것으로 만드시기 바랍니다. 겨울방학을 축복의 기간으로 만드시기 바랍니다. 모든 분들이 선생님들의 방학을 정말 부러워할 만큼 알차고 값진 방학이 되셨으면 합니다. 우리 선생님 모두가 놀랍고 경탄할 만하고 경이적이며 훌륭하고 굉장하다고 느낄 만한 방학을 만들어내었으면 합니다. 새해 첫 날 저는 '교육은 겸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내가 몸담고 있는 학교라는 공동체에서 내가 먼저 솔선해서 낮아지고 겸손해지면 학교는 평화스럽고 행복한 곳으로 변화되리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교장선생님께서 먼저 낮아지고, 교감인 저가 먼저 낮아지고, 선생님이 먼저 학생들 앞에서 자세를 낮춘다면선생님들은 교장선생님을 높이게 될 것이고 연장자를 높이게 될 것이며, 학생들은 선생님을 더욱 존경하고 높이며 따르게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품습니다. 내가 뻣뻣하고, 내가 교만하고, 내가 자만하고, 내가 잘났다고 뽐내면 상대방은 더욱 뻣뻣하고, 더욱 교만하고, 더욱 자만하고, 더욱 뽐낼 것 아닙니까? 내가 나이가 많다고 거만해서도 안 됩니다. 내가 지위가 높다고 뽐내서도 안 됩니다. 내가 선생이라고 학생들에게 교만해서도 안 됩니다. 학생들은 너무나 잘 압니다. 자기를 얼마나 따뜻하게 다가오는지 자기를 높여 주는지 아니면 자기를 푸대접하는지 자기를 냉대하는지 자기를 깎아내리는지 어떤지잘 압니다. 선생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장, 교감이 진정으로 선생님에게 따뜻하게 다가가는지, 마음이 겸손한지, 자기를 낮추는지, 상대방을 높여주는지, 상대방을 대접하는지, 상대방을 진정 인격적으로 대하는지 대번에 압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는 선생님이나 학생들에게 순수한 마음으로 겸손하게 다가갔으면 합니다. 만나는 자마다 높여주고 만나는 자마다 우대해주는 그런 너그럽고 겸손한 마음을 가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새해 가져 봅니다. 교육은 겸손입니다.
방학, 어떻게 보내야하나? 자녀들이 학교에 다닐 적엔 모르고 지냈지만, 막상 방학을 하여 집안에 있게 되는 날부터 부모님들, 특히 어머니들의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다른 아이들은 방학을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우리 아이는 방학 동안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다가 다른 아이들에게 다른 아이들에게 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등의 걱정이 앞설 것이다. 그렇다. 방학 동안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방학이 끝난 다음에는 상당히 많은 차이를 보이는 경우가 가끔 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가 자녀들이 매년 맞는 방학을 어떻게 잘 보내느냐에 관심을 가지고 잘 활용을 한다면 뜻밖에 큰 효과를 보게 될 것이다. 평소 학교에 다니는 동안이어서 잘 할 수 없었던 일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벌써 30년이 훨씬 넘는 지난날의 이야기를 하나 할까 한다. 당시에 2학년을 담임하고 있던 나는 여름방학을 맞은 어린이들에게 “이번 방학에는 자기가 잘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을 해보고, 통지표에 적힌 성적을 보고 자기가 더 공부해야할 과목 하나를 정해서 방학 동안 열심히 공부를 하면, 방학이 끝난 다음에 그 과목에서는 제일 잘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에요.”하고 일러주었다. 방학이 끝나고 2학기가 시작되었는데, 정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글자를 잘 못 읽어서 날마다 나머지 공부를 하면서도 글자를 해득하지 못하던 아이가 책을 읽겠다고 손을 번쩍 드는 것이 아닌가? “그래 정종현, 정말 읽을 수 있겠니?” 너무 놀라운 일을 보고 먼저 이렇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예.” 목소리도 우렁차게 자신 있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있는가? 나는 주저하지 않고 종현이에게 책을 읽도록 지명 해주었다. 벌떡 일어선 종현이는 자신 있게 낭랑한 목소리로 책을 읽어 나가는 것이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학급의 아이들은 이런 모습을 보고진심에서 우러난 박수를 쳐주었다. 너무 신기한 일이 벌어진 것이라고 생각을 한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종현이는 국어 시간이 되기를 기다리게 되었고, 책을 읽는 것은 거의 매일 한 번씩 지명을 받게 되었다. 방학 동안에 한 과목만을 열심히 공부한 덕분에 책을 못 읽던 종현이는 완전히 라는 탈을 벗어나게 된 것이었다. 자녀들이 대학에 진학을 하기까지 12년 동안 두 번의 방학이 있으니, 24번의 방학을 맞게 된다. 만약 이 어린이처럼 한 번의 방학에 한 과목씩만 열심히 공부를 하여서 이렇게 익혀 간다면 얼마나 큰 효과가 있겠는가? 공부란 이렇게 교과 공부만 말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취미 활동, 특기 기르기 등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한 가지만이라도 열심히 해서 나름대로 무엇인가 얻는 그런 방학이 된다는 얼마나 멋진 방학이 되겠는가? 이미 방학을 맞은 어린이들에게 지금부터라도 한 가지 일을 정해서 열심히 해보게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가령 예를 들어서 몸도 약하고 줄넘기를 못하는 아이가 있다면, ‘이번 방학 동안에 줄넘기를 완전히 익혀서 100번을 그치지 않고 할 수 있도록 하자.’하고 정하고, 매일 규칙적으로 줄넘기를 실천 해보게 하여서 한 가지라도 익히게 해준다면 체육시간에 줄넘기를 못해서 친구들에게 손가락질 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 아니겠는가? 이번 방학에는 자기 자녀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아주 작은 것이라도 한 가지를 이렇게 익히게 해주고 나면 다음 방학부터는 자기 자신이 스스로 무엇을 하겠다는 계획을 세울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교닷컴 독자 여러분! 저는 지금'꿈과 희망을 담은 제야 음악회'에 참석하고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경기도미술관(안산 화랑유원지)에서 새벽 2시까지 열리는 호안 미로(JOAN MIRO. 1893-1983)의 '상징의 세계展'을 관람하였습니다. 丁亥年 새해,건강과 행복과 사랑이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한교닷컴 리포터로서 밝은 교육소식을 찾아 전하고 일그러진 교육을 바로잡는데 일조를 하려 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교육발전을 위해 더욱 열심히 뛸 것을 다짐해 봅니다. 독자 여러분들도 한교닷컴 많이 사랑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건승!
2007학년도 대입 정시모집 논술고사가 코앞으로 다가오자 논술학원이 밀집한 서울의 주요 학원가는 막바지 시험 준비에 여념이 없는 수험생들로 발디딜 틈이 없다. 3일 이화여대를 시작으로 4일 가톨릭대, 6일 연세대ㆍ한양대ㆍ경희대, 9일 성균관대, 11일 고려대ㆍ숙명여대, 12일 서강대, 13일 중앙대, 16일 서울대ㆍ한국외대, 23일에는 건국대가 논술시험을 치른다. 1일 학원가에 따르면 요즘 대치동과 목동, 중계동 등 서울의 학원 밀집 지역에는 인근 지역과 지방에서 몰려든 수험생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12월 한 달 간 정시 통합반을 운영한 학원들은 이번 달부터는 수험생의 지망대학별 시험 일정에 맞춰 1~2주짜리 '파이널반' 집중 강좌를 운영한다. 집중 강좌는 짧게는 3일에서 길게는 2주 동안 기출문제와 예상논제 등을 중심으로 집중 강의와 첨삭 지도를 해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논술1번지' 대치동의 학원들은 이달 말까지 대학별 마무리 집중 강좌를 개설해 막판 점수 올리기에 나선 수험생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대치동 C학원은 이번 주부터 8일 과정의 서울대 논ㆍ구술 집중반을 운영하는데 100만원이란 비싼 수강료에도 학생이 몰리면서 접수가 거의 끝난 상태다. 학원 관계자는 "선착순이라 빨리 등록을 해야 한다. 벌써 수강신청을 한 학생이 많아 지금 바로 접수하고 학원비를 입금하지 않으면 수업을 듣기 어렵다"고 말했다. 고3 수험생 양모(18)군은 "정시 통합반 수업을 들었는데 아직 불안해서 대학별 집중 강좌에도 일찌감치 등록했다"며 "주위에 논술학원에 다니지 않는 친구들이 없다"고 전했다. 지방에서도 수험생들이 대거 상경해 학원에 등록해 놓고 친척집이나 원룸, 고시원 등에 임시로 머물면서 마무리 공부에 열을 올리고 있다. 대치동 E학원 관계자는 "지방에서 온 학생이 상당히 많다. 평소에도 지방 학생을 위해 별도 강의를 해왔지만 겨울방학이 시작되고 시험이 다가오면서 지방학생 비율이 더 늘었다"고 말했다. 목동과 중계동 학원가도 상황이 비슷하다. 목동 M논술학원은 1일부터 논술 집중강좌 운영 체제로 전환했고 C논술학원도 매일 4시간 과정의 대학별 논술 집중반 운영에 들어갔다. C학원 관계자는 "2시간은 대학별로 기출 문제와 예상 문제를 강의하고 나머지 2시간은 직접 쓰게 한 뒤 첨삭을 해 주고 있다"며 "서울대반은 회당 12만5천원이라 8회 과정을 다 들으면 수강료만 100만원인데도 학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학원식 모범답안을 외워 쓰면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학생들이 이처럼 학원으로 몰리는 것은 평소 체계적인 글쓰기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어 불안해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한 학생들로서는 주제를 파악하고 논지를 풀어나가는 방법과 자신이 가진 문제점 등을 '맞춤형'으로 알려주는 학원 수업에 의지하기가 쉽다는 것. 서울대의 한 논술채점 교수는 "서로 약속이나 한 듯 고교생이 접하기 힘든 어려운 책 내용을 나란히 인용하는 학생들이 많은데 이럴 경우 학원의 모범답안을 그대로 외워 썼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감점의 대상이 된다"며 "자신만의 견해로 어떻게 결론에 이르렀는지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하는 게 고득점의 관건"이라고 조언했다.
2008학년도 서울지역 외국어고 입학전형부터 구술ㆍ면접시험에서 계산식 수학ㆍ과학문제가 출제되지 않는다. 외고 전체로 구성된 공동 출제위원단이 일반전형은 물론 특별전형의 구술ㆍ면접 문제까지 내고 출제 범위는 중학교 교과과정으로 제한된다. 내신성적의 실질반영비율을 높이고 일부 전형에서 내신만으로 신입생을 뽑는 방안도 검토된다. 서울시교육청의 '외고전형 개선을 위한 태스크포스팀' 관계자는 1일 "그동안 구술ㆍ면접 문제를 분석한 결과 상당수 문항이 수학과 과학과목의 계산식 지필고사 문제였다"며 "올해 입시부터는 외고들이 중학교 교과 과정내에서 문제를 내되 정답이 딱 떨어지는 계산식 문제를 출제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 구술ㆍ면접시험 어떻게 바뀌나 = 서울지역의 대원외고, 명덕외고, 한영외고, 대일외고, 서울외고, 이화외고 등 6개 외고들은 2007학년도에 특별전형을 통해 성적우수자와 외국어 우수자, 지역우수자 등 836명을, 일반전형을 통해 내신성적과 구술ㆍ면접시험으로 1천336명을 선발했다. 특별전형과 일반전형 구술ㆍ면접 시험 문항은 10∼12개로 수학ㆍ과학의 경우 계산식 문제가 주로 출제됐다. 그러나 앞으로는 수학과 과학 과목에서 계산식 문제 출제는 사실상 '금지'된다. 추론 능력이나 사고력을 평가하는 문제 위주로 바뀐다. 이를 위해 서울시교육청은 현직 중학교 수학, 과학 교사가를 외고 전형 출제검토위원으로 참여시킬 방침이다. 시교육청이 국회 교육위원회 유기홍(열린우리당) 의원에게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서울지역 외고 6곳이 2006학년도 입학 특별 및 일반 전형을 실시하면서 출제한 132개 문항 가운데 36%인 47개 문항이 수학 교과에서 나온 것으로 파악됐다. 이와 함께 특별전형 구술ㆍ면접시험 문제도 일반전형처럼 외고 공동으로 구성된 입시문제출제관리본부에서 출제한다. 외고들은 그동안 일반전형은 출제관리본부를 함께 만든 후 상당수 문제를 공동 내왔지만 특별전형의 경우 학교별로 독자적으로 문제를 출제해왔다. 태스크포스팀 관계자는 "그동안 외고의 특별전형 구술ㆍ면접시험 문제는 상당히 까다로웠다"며 "하지만 앞으로 특별전형 구술ㆍ면접문제를 일반전형처럼 공동 출제하면 난도를 낮추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구술ㆍ면접 문항수와 시험시간을 줄이고 구술ㆍ면접 문제를 공개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되고 있다. ◇ 내신 실질 반영비율 확대…내신 100% 선발 신설 = 내신 실질 반영률이 높아지고 내신으로만 뽑는 전형도 생긴다. 2006학년도의 경우 서울지역 6개 외고 입시전형의 내신 실질 반영률이 평균 9%인 것으로 집계됐다. 학교 별로 보면 명덕외고가 4%로 가장 낮았고 대원외고 6%, 대일외고 7%, 한영외고 8%, 이화외고 14%, 서울외고 15% 등이었다. 내신 실질반영률은 교과성적 최고점에서 내신 기본점수를 뺀뒤 이를 입학전형 총점으로 나누고 100을 곱해 산출한다. 그러나 2008학년도 입시부터는 내신 실질반영률을 높이고 특별전형 성적우수자전형에서는 구술ㆍ면접을 아예 실시하지 않고 내신성적으로만 학생을 뽑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 '입시 과열' 해소 취지…수험생 오히려 어려울 수도 = 시교육청은 특목고나 국제중에 입학하기 위해 중학생뿐 아니라 초등학생들까지 학원에 다니는 등의 '과열 입시 경쟁'을 줄이기 위해 외고 전형 개선을 위한 태스크포스팀을 가동해왔다. 초등생을 대상으로한 특목고, 특목중 대비반 운영은 규정상 금지돼 있지만 학원들은 이를 어기고 초등 5~6학년을 대상으로 외고, 민사고, 과학고, 청심국제중 대비반을 운영해오고 있다. 특히 지난해 교육부와 서울시교육청의 국정감사에서는 외고의 전형 방법과 입시기관화 현상이 주요 이슈로 부각되기도 했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이런 대책을 내놓은 것은 초등학생들마저 사교육시장에 몰리면서 특목고 입시지옥에 시달리는 현상을 없애기 위한 것"이라며 "외고는 명문대 진학을 위한 디딤돌 역할이 아닌 당초 설립 취지대로 외국어 인재를 양성하는 학교로 운영되도록 적극 장학 지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입시전형 개선방안이 시행되더라도 과잉 입시 경쟁을 완화시키기는 힘들 것이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특목고 전문 입시학원인 양천구 목동의 씨그마학원 정주창 원장은 "추론능력이나 사고력을 측정하는 구술ㆍ면접문항의 경우 수험생들 입장에서는 처음 보는 유형이기 때문에 문제를 풀기 상당히 어려울 수도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 용인시는 올해부터 오는 2010년까지 관내 12개 학교를 선정, '학교운동장 공원화 사업'을 전개하기로 했다고 1일 밝혔다. 시는 이를 위해 1학교당 10억원씩 모두 120억원을 투자할 예정이다. 공원화 사업대상으로 선정된 학교 운동장에는 조깅코스와 인조잔디구장, 휴게시설, 운동시설, 숲 등이 조성된다. 시는 주민 의견을 수렴해 사업 대상학교를 선정한 뒤 해당 학교와 협약서를 체결하고 매년 순차적으로 공원화 사업을 진행해 나갈 방침이다. 시는 학교운동장 공원화 사업이 추진될 경우 공원부족으로 인한 도시지역내 시민들의 휴식공간 확보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대입 논술고사 채점을 담당한 교수 중 상당수가 채점의 공정성과 일관성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1일 경희대학교 사회조사랩 황승연 교수에 따르면 지난달 전국 4년제 대학 교수 29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44%인 129명이 '논술 채점시 공정성과 일관성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그렇다'는 응답자는 27%(78명)에 불과했고 '중립' 29%(83명), 무응답자가 1명이었다. 설문에 응한 교수의 75%(219명)가 논술고사 채점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교수들은 '현행 논술고사가 고등학교의 정상적인 교육에 적합한 방법인가'라는 질문에 48%가 '그렇지 않다', 30%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또한 '논술시험이 우수학생 선발에 적합한 방법인가'라는 질문에 찬성 40%, 반대 39%로 찬반이 팽팽히 맞섰다. 특히 이공계 교수들은 51%가 '논술채점시 공정성과 일관성이 없다', 49.7%가 '논술시험은 우수학생 선발에 적합치 않다'고 답해 인문ㆍ사회계열 교수보다 논술시험에 더 부정적이었다. 바람직한 대학입시 방법에 대해서는 66%(191명)가 '대학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답했으며 '논술+수능+내신' 13%, '수능+내신' 12%, '수능만' 6%, '내신만' 1% 순으로 꼽았다. 조사를 실시한 황 교수는 "교수들은 논술시험에 대해 부정적이면서도 다른 변별력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정신적 혼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고 말했다. 황 교수는 "논술문제를 놓고 교수들조차 '우리가 풀 수 있을까'라는 의문과 2∼3시간 만에 논술채점을 끝내는 동료 교수를 보고 '제대로 읽기는 했을까'라는 의문을 갖는다"며 "논술시험으로 점수를 매기지 말고 합격, 불합격만 판단하거나 각 대학의 자율성을 높여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광현 | 한국교육개발원 부연구위원 교사의 특성을 여러 측면에서 볼 수 있겠지만 현재 통계적으로 유용한 자료는 교사의 성별현황, 연령수준, 교사의 학력수준(학위) 현황 등이 있다. 그리고 교사의 교수환경과 연관된 가장 중요한 통계지표는 학급당 학생 수와 교원 1인당 학생 수 지표이다. 따라서 교사의 성별비율, 평균연령, 학력수준 등의 통계를 살펴보고 학급당 학생 수와 교원 1인당 학생 수 통계를 살펴봄으로서 교사의 특성과 교수환경에 대해서 살펴본다. 초등학교 여교원 비율 가장 높아 먼저 통계로 살펴본 이들 교사의 특성 중 가장 두드러진 점은 초·중등 교사에서 여성 교사의 비율의 가파른 상승이다. 먼저 교사의 성별 현황을 시계열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을 보면 초·중등 교육에서 여성 교사의 비율이 급격히 상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초등학교의 경우 1965년도에 1/4에 불과했던 여성교사의 비율이 2006년 거의 72%에 육박하고 있다. 한편 중학교의 경우도 여성교원이 2006년 67.3%로서 1965년도의 16.1%와 비교하면 40여년 만에 51.2% 포인트나 증가한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의 여성 교사 비율의 증대는 교원의 여성화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특히 여교원이 80% 이상 되는 학교의 비율을 보면 초등학교는 23.8%에 이르고 있으며 심지어 초등학교 중에서 교장부터 수업교사까지 100%가 여성 교사인 경우도 존재한다. 이러한 여성 교사의 과도한 비율이 학생들에게 교육적인 측면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줄지 혹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지 등에 대한 연구는 드문 편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충원 교사 적어 평균연령 상승 두 번째로 교사 평균연령의 연도별 추이와 시·도별 2006년 현황에 대해서 살펴보자. 에서는 교사 평균연령의 연도별 추이를 학교 급별로 제시해주고 있는데 전반적으로 교원의 평균연령이 모든 학교 급에서 증가추세에 있다. 이러한 평균연령의 증가추세는 임용고시 합격자들의 평균연령이 높아졌기 때문으로 추측될 수 있다. 이러한 교원 평균연령 현황이 시·도별로 차이가 있는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초등학교에서는 전남의 평균 연령이 46세로 가장 높게 나타나고 있으며 가장 평균연령이 낮은 시도는 대구로서 36.9세로 나타나고 있다. 중학교의 경우 제주가 44.1세로 가장 높게 나타나고 있으며 그 다음으로 전북이 43.7세로 높게 나타나고 있다. 한편 일반계 고등학교에서도 제주가 43.7세로 가장 높게 나타나고 있으며 전남과 전북이 모두 43.3세로서 두 번째로 높게 나타나고 있다. 실업계 고등학교에서도 전남이 44.8세로서 가장 높게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각 학교 급의 전반적인 경향을 보면 현재 전남지역과 전북지역 교사의 평균연령이 다른 시·도보다 높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중등학교에서는 전남·전북지역과 더불어 제주도도 평균연령이 높게 나타나고 있다. 이는 전체 인구분포에서 제주도라던가 전남·전북지역의 인구가 줄어들고 학령아동 수도 적어 새로 충원되는 젊은 교사들이 다른 지역보다 적기 때문으로 풀이되어진다. 교사의 학력수준 갈수록 높아져 다음으로 교사의 학력수준 통계 연도별 추이를 살펴보자. 2000년도에 초등학교 교원 중 석사학위 소지자는 8.3%인 1만 1657명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2006년도에는 3만 971명으로서 전체 초등교사 중 18.9%가 석사학위를 소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초등학교 교사 중 박사학위 소지자도 2000년도에 120명이었으나 2006년도에는 489명으로서 4배 가까이 증가하였다. 중학교의 경우도 석사학위 소지자의 비율이 2006년도에 28.7%에 이르고 있으며 박사학위 소지자도 574명으로 나타나고 있다. 일반계 고등학교와 실업계 고등학교는 석사학위 소지자가 모두 30%를 넘어섰으며 특히 일반계 고등학교의 박사학위 소지자는 2006년도에 1182명으로 2000년도의 2배 가까이 증가하였다. 이처럼 교사의 학력수준은 점차적으로 계속 신장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교원 1인당 학생 수 더 줄여야 마지막으로 교사를 둘러싼 환경 중 교수환경과 연관된 학급당 학생 수와 교원 1인당 학생 수를 시계열 자료를 통해서 살펴보도록 한다. 는 각 학교 급별로 학급당 학생 수와 교원 1인당 학생 수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먼저 학급당 학생 수를 보면 초·중등학교 모두 1965년도에는 50명 이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초등학교는 1975년도에 56.7명으로 줄어들고 그 이후로도 점차 감소하여 2006년 현재 30.9명으로 나타나고 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모두 1965년 이후 크게 감소하여 학급당 학생수가 2006년도에는 35.3명(중학교), 33.7명(일반계 고등학교), 29.9명(실업계 고등학교)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중학교의 경우 최근 2년간, 즉 2005년 이후에는 약간 그 감소 추세가 꺾인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교원 1인당 학생 수를 보면 감소추세가 학급당 학생 수보다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초등학교의 경우 1965년도에 교원 1인당 학생수가 62.4명으로 학급당 학생 수 65.4명과 큰 차이가 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매년 그 감소추세가 더 높아서 2006년도에는 교원 1인당 학생 수가 24명으로서 학급당 학생 수에 비해 6.9명이 더 작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경우도 교원 1인당 학생 수는 학급당 학생 수보다 모두 낮고 2000년도 이후에는 10명대로 모두 진입하고 있다. 이러한 교원 1인당 학생 수의 감소는 정부가 지속적으로 교원을 확충해온 노력과 1980년대 중반 이후 학생 수가 점진적으로 감소하면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중등학교에서의 교원 1인당 학생 수가 초등학교 교원 1인당 학생 수보다 작은 이유는 교과전담교사 체제로 중등교육이 운영되기 때문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교직의 여성화에 대한 연구 필요 지금까지 통계자료로 살펴본 교사의 여성비율추세, 교원의 평균연령, 학력수준 등을 보면 다음과 같은 시사점을 구할 수 있다. 먼저 여성비율 추세의 급격한 상승은 향후 고등학교까지 여성 교사의 비율이 모두 높아지리라 예측될 수 있다. 이러한 교직의 여성화로 학생들에 대한 교육적 효과가 어떤 변화를 보일지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교사의 평균연령을 보면 점차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추세로 나타나고 있는데 과연 이러한 추세가 얼마나 지속될지 더 살펴볼 필요가 있으며 시·도별로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지역의 교사 충원의 미비로 교사의 노령화 역시 지속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사회적인 문제가 교육에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교사의 학력수준의 상승은 긍정적인 경향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석·박사 고급인력을 양성하는 과정이 얼마나 내실이 있으며 학교현장에 도움을 주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는지에 대한 연구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교사의 근무여건, 교수 환경을 보여주는 학급당 학생 수, 교원 1인당 학생 수는 지속적으로 개선되어져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OECD 선진국 평균을 보면 학급당 학생 수 평균은 각각 초등학교 21.4명, 중학교 24.1명이다. 또 교수 1인당 학생 수 평균은 각각 초등학교 15.2명, 중학교 13.7명, 고등학교 12.7명이다. 근무여건과 교육환경의 개선을 위해서는 학급당 학생 수, 교원 1인당 학생 수를 더욱 감소시키기 위해서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본고에서 설명하고 있는 표는 새교육 1월호 및 교육통계연보, 한국교육개발원 교육통계정보 센터 DB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정영수 | 충북대 교육학과 교수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까닭은 역사가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고 바라볼 수 있게 하는 다양한 시각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어제의 스승에서 오늘의 교사에 이르기까지' 교사의 사회적 위상을 역사적으로 조명해 보는 것도 오늘날 교사의 실상을 이해하고자 하는 데 그 이유가 있다. 말하자면 역사 가운데 존재하는 교사에 대한 다양한 관점들은 교사의 실상을 보여주는 다양한 관점이라 할 수 있다. 교육적 권위와 책임 다하는 스승 이러한 점에서 '교사가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가?'라는 질문은 결국 '교사, 그는 누구인가?'라는 교사의 실체를 묻는 질문과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교사, 그는 누구인가?' 이 같은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우선, 역사적으로 교사에 대한 인식이 어떠한 변화를 겪어왔는지를 살피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가르치는 사람'이 걸어가야 할 올바르고 진실하며 존엄한 길 그리고 아름답고 깨끗하게 정성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길을 사도(師道)라 부른다. 〈예기(禮記)〉에서는 '사도란 스승의 길이며 스승이 닦고 행하여야 할 진리의 도(道)'라고 풀이하고 있다. 이러한 길을 걷는 사람을 일컬어 '스승'이라 하였다.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걸어야 할 스승의 길을 밝힌 것이 사도헌장이다. 이러한 스승의 길은 인간을 진실하고 착하고 아름다운 인격을 가진 인간을 형성하는 도로서, 이 길을 간다는 것은 매우 어렵고 고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전통사회의 경우 이러한 길을 걷는 스승은 어떠한 삶의 자세를 갖추고 있었는가? 첫째, 만인에 대한 사표(師表)로서 삶의 자세를 갖추기 위해 노력하였다. 스승이라 하면 '솔선수범' 하는 모범을 보여주는 분으로 존경의 대상이었고 드높은 교육목표 아래, 배워야 할 지식과 살아가는 도리로서 예를 갖추어야 할 것을 당연시하였다. 예컨대 율곡 선생의 〈격몽요결(擊蒙要訣)〉 입지 편에서 '성인이 되고자 하는 목표'를 강조하고, '사람이 살아갈 때에 학문을 하지 않으면, 마음이 막히고 소견이 어두워져서 올바른 삶을 살 수 없다. 무릇 학문을 하고자 하는 자는 성인이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부지런하여 꾸준히 쉬지 않고 정진할 것'을 강조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둘째, 항상 새로운 진리를 탐구하고, 배우는 자세를 실천함으로써 교사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예기〉에서는 '교학상장(敎學相長)', 즉 남을 가르치는 것과 아울러 항상 배우는 자세를 견지하는 진리탐구의 자세를 가르쳐주고 있다. 셋째, 정성을 다해 가르치는 헌신적인 교사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교회불권(敎誨不倦)', 즉 가르치는 일을 싫어하지도 않고, 게으르지도 않으며, 정성을 다하여 후진을 가르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학불염 교불권(學不厭 敎不倦)', 즉 '배우는 일에 싫증을 느끼지 않고 가르치는 일에 게으르지 않는' 모범을 보여주고 있었다. 넷째, 경사(經師)로서 뿐 아니라, 인사(人師)로서의 모범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였다. 〈자치통감(資治通鑑)〉에서는 '경사는 만나기 쉬워도 인사는 만나기 어렵다'고 했다. 학생들의 사표가 될 스승상으로서 경사로서 뿐만 아니라, 인사로서의 역할을 다하기 위하여 노력해온 것을 볼 수 있다. 이렇듯 전통사회에서 스승으로서의 교사는 교육적 권위를 지키고, 교육적 책임을 다하는 귀감을 보여줌으로써 어느 누구도 함부로 가벼이 대할 수 없는 존경의 대상이었다. 이 같은 교사를 사표(師表)라 하였고, 심지어 '군사부일체(君士父一體)'라는 이름으로 선생을 존경하였으며, 스승의 그림자는 밟지도 않고 걸어 갈 때에도 3척의 거리를 두고 행보를 하였다. 근대사회에서는 경찰이나 순경이 교사를 함부로 다루지 못한 시절도 있었으며, 군수와도 맞먹는 대접을 받던 적도 있었다. 실로 스승으로서의 교사의 위상은 오늘날처럼 개혁과 비판의 대상이 아닌, 존경 그 자체이었음을 볼 수 있다. 역사의 세속화 속에 훼손된 본질 스승으로서의 교사는 역사의 세속화를 걷는 과정에서 상당한 변화를 겪게 되었다. 여기에서 세속화란 역사의 변화를 수식하는 하나의 용어로서 과학과 기술의 힘에 의해 이루어진 사회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역사의 세속화는 동양에서는 유교적 가치의 몰락, 서구에서는 종교적 제도의 굴레로부터 해방됨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된다. 이러한 역사의 세속화는 교직세계에 새로운 교직문화로서 새로운 삶의 양식과 인지양식을 갖게 하였고, 직업세계에서의 극적인 변화, 즉 '전문화'의 바람을 불게 하였다. 이러한 전문화의 영향으로 교사는 특수한 전문적 기능에 자신을 적응시키도록 강요당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제 인간의 문제 내지 인간성 자체에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발휘할 수 있는 전문적 기능만이 사회적으로 객관적 인정을 받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교직의 경우 오랜 동안 전문직화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에 교사가 지식사회의 산파와도 같은 역할을 수행해 왔다. 역사의 세속화 과정에서 우리는 얻은 것과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 실상 산업혁명을 거쳐 지식정보 혁명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사회변화 속에서 기술정보 지식의 유용성의 가치를 강조함에 따라 교육 본질적 가치 중요성이 과소평가되거나 외면되기 시작하였고, 교직의 직업평가 기준이 크게 변화되었다. 이제 교직이 다른 범속직으로서 전문직업과 동등한 취급을 받게 되었으며, 지난날의 스승상과 오늘의 교사상 간에는 현격한 괴리가 파생되기 시작하였다. 더욱이 그토록 소중히 여겨져 왔던 교육적 권위와 교사에 대한 존중의 사회적 보호막이 약화되기 시작하였다. 교직사회가 촌지수수 엄금과 체벌 금지의 차원에서 평가되고, 학교는 스승의 날 조차 임시공휴일화해야 하는 황당한 모습을 보이는 현실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교사는 치열한 입시경쟁 하에서 이기주의와 경쟁주의를 부추기는 학교교육의 도구화가 되어왔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이에 따라 교사는 무력감을 갖게 되고, 인간성 교육으로부터의 소외를 맛보게 되었다. 또한 사회적으로 전문가의 행태가 비전문가의 가벼운 비판과 외형적인 평가에 의해 간섭을 받는 일이 잦아지게 되었고, 교육의 본질적 가치가 과소평가되고 보다 중요한 가치가 훼손되는 경우가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 이 같은 역사적 변화는 새로운 시대에 적합한 교직관, 교사관을 요구하고 있는 반면에, 과거 스승으로서의 교사의 가치에 대한 존엄성과 교사가 하는 일의 소중함, 그리고 교육의 본질적 가치에 대한 중요성을 재인식해야 할 과제를 우리에게 시사해주고 있다. 가르침의 의미를 정확히 알아야 오늘의 교사는 가르치는 일을 전문적으로 맡아 일하는 전문직업인을 일컫는 말이다. 교사는 교육행위를 하는 개인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르치는 일을 하는 직업을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다. 가르치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직업에서 '전문성'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겨진다. 이 같은 전문성을 갖추기 위하여 먼저 교사는 가르친다는 의미에 대해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가르친다는 의미가 함축하는 내용은 그리 단순한 것이 아님을 알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가르친다는 의미를 알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가르치는 일의 가능성과 한계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갖고 있어야 한다. 나아가서 가르침의 의미를 밝히기 위해서는 '지식과 교과의 본질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학습의 본질을 바라보는 철학적 관점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아울러 바람직한 행동의 변화라고 할 때에도 '무엇이 바람직한 수준인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같은 물음은 '교육의 본질적 가치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요구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의 관계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요구하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교사는 이와 같은 복잡한 물음에 대해 답하기 위해 고민해 온 사람이다. 교사는 국어, 수학, 과학 등 인지적 교과목을 가르침으로써 학습자로 하여금 우주 삼라만상 속에 존재하는 질서의 세계와 진선미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제대로' 보게 하는 사람이다. 눈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세상을 보는 여러 방식 가운데 한 방식에 불과하다. 겉으로 드러난 자연현상은 눈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없지만 존재하는 것이 있으며, 우리가 알아야 하고, 이해해야 하는 것 가운데 우리가 모르고 이해 못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교사는 가르침을 통해서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하고 알지 못하는 것을 알게 하며, 행하지 못하는 것을 깨달아 행할 수 있음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무지로부터 벗어나서 앎의 세계로 입문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인지적 교과목을 통해서 보지 못하던 세상을 볼 수 있게 된다. 또 세상에 존재하는 사회적 사실과 현상을 인지적 교과목에 나타난 지식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다. 달리 말하자면 교육을 받음으로써 학습자는 인지적 눈을 갖게 되는 것이다. 예컨대 교사란 학습자로 하여금 눈을 뜨게 하여 보지 못하던 것을 제대로 보게 하며, 귀를 열어서 듣지 못하던 것을 올바로 듣게 하고, 절름발이와도 같은 자신의 무릎을 스스로 일으켜 세워 힘차게 걸어갈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이상과 현실 간 존재하는 격차 교직은 스승으로서의 교사(과거)와 전문직으로서의 교사(현재) 간의 괴리에서 빚어지는 위기를 맞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위기는 사회적, 역사적 상황변인에 따른 것이다. 그 상황변인을 어떻게 맞이하느냐에 따라 교직 전문성은 신장될 수도 있고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교사는 일반적으로 특수한 지식과 능력을 갖추고, 장기간 교육훈련과정을 거쳐 자격증을 취득하며, 자율성을 갖고, 수업 전문성을 발휘하고, 교원단체 결성과 교원윤리강령 제정을 통해 스스로 권익과 책임을 통제한다. 이에 비추어 보면, 교직이 전문직이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교사는 전문적 활동, 즉 가르치는 일을 준비하고 좋은 수업을 위한 활동에 전념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시대에 적합한 전문적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시간, 재정, 기술지원 인력의 한계가 적지 않고, 좋은 수업을 위한 교사의 자율성이 충분히 주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상과 현실의 커다란 격차는 오늘의 교직사회가 안고 헤쳐 나가야 할 숙제이다. 이제 전 사회구성원은 이 시대에 요구되는 교직 전문성과 스승으로서의 교사양성의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스승으로서의 교사상을 목표로 설정하고 현대적인 교직전문성을 확립해 나갈 때, 교육의 본질 회복을 기대할 수 있고, 기강이 살아날 것이며 나아가서 교육적 권위가 확립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스승으로서의 교사상을 목표로 하는 교직전문성을 신장시키기 위해서 교사의 권능부여(empowerment)가 강조돼야 한다. 교사의 권능부여란 '교사의 전문적 지위를 고양시키고자 하는 활동 내지는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가르치는 직무와 무관한 일 속에 파묻히게 될 경우, 전문적 활동으로부터 소외되는 것이며, 나아가서 교사로서 보람을 느낄 수 없게 된다. 실상 교사가 전문가로서 교육적 권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신뢰 받지 못한다면, 교사의 자율적인 전문적 능력 발휘는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교사가 스스로 전문가로서 인식하고 행동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교육현장을 변화시킬 수 있다. 변화하는 현실에도 기본은 지켜야 스승에서 교사에 이르기까지 교사의 위상에 대한 인식이 변화되어 왔으며, 교사 스스로도 역할에 대한 지각이 바뀌었다. 뿐만 아니라 시대에 따라 교사의 자질 자격을 규정하는 제도의 틀이 새롭게 구성되어 왔다. 새로운 사회변화는 교사에게 새로운 역할을 요구한다. 역사의 세속화가 진전됨에 따라 교사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을 뿐 아니라, 교사에 대한 새로운 요구가 부과되어 왔다. 이를테면 스승으로서의 교사상은 전문직으로서의 교사상으로 탈바꿈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간과해서 안 될 점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 두어야 한다. 아무리 시대가 변화되어 왔다고 해도 교사의 본질이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교사관이 변천되었고 교사를 인식하는 다양한 패러다임이 등장했지만 교사의 실체가 바뀌는 것이 아니다. 마치 철따라 옷이 바뀌지만 사람의 실체가 변함없듯이 말이다. 또한 우리는 역사의 세속화 과정에서 얻은 것이 무엇이며,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 수 있어야 한다. 시대의 변천 속에서 새롭게 요구되는 가치가 부상하는 가운데에서도 잃어버린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 주목해야 한다. 교직전문화 과정에서 간과되어 온 차원에 대해 유의할 수 있어야 한다. 예컨대 교육의 본질적 가치의 중요성을 망각하지는 않았는지, 입시 위주의 공리주의적 공교육과정에 몰두한 나머지 교사의 길이 스승으로서의 길에서 얼마나 멀어져 왔는지를 심각히 반성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이제 교사 양성제도가 스승으로서의 교사를 양성하는데 얼마나 결함이 많은 지를 제대로 깨닫고, 교육현실에 대한 책임을 통감할 수 있어야 한다. 과거 한국교육의 전통에서 볼 수 있는 스승으로서의 자세에 비추어 볼 때, 학교에서의 주지교육이 인간교육을 실천하는 데 큰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이러한 한계를 극복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우리의 제자들이 참된 정신과 맑고 순수한 영혼을 지니고, 참된 지식과 진리를 전파하는 참된 스승과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한다. 교사와 학생이 모두 인간 교육의 꿈을 안고 올바른 삶을 누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양명희 | 경희대 교수 교육의 질적 개선을 위한 다양한 노력들이 전개되고 있다. 교실 수업 개선, 교원평가제 도입, 우수교사 확보, 수업 전문성 개발 등이 그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제도적인 장치만으로 교육혁신을 보장하기는 어렵다. 진정한 변화는 교사의 의지와 참여를 수반할 때 가능하다. 교사동기에 대한 관심 높아져야 교육혁신의 주체로서 교사의 중요성은 교사가 교수·학습 과정을 주도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우선 찾아볼 수 있다. 교사는 학생들의 학업 성취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존재이며, 교사의 행동과 사고는 학생들의 사고, 태도, 가치관 및 행동 변화로 연결된다. 따라서 교사가 수업과 학생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과 지각을 이해하는 것은 교육의 질적 개선을 위해 중요하다고 보인다. 그러나 그 동안 우리나라는 교사에 대해 주로 정책적이고 거시적인 접근을 취함으로써, 교사들이 수업, 학생과 관련하여 어떤 생각을 갖고 있으며, 교직에 대해 가지고 있는 동기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무관심하였던 것이 사실이다. 우리가 아이들의 학습 동기를 유발시키기 위해 아이들이 경험하는 어려움이나 사회 심리적 욕구를 이해하고자 노력한다면, 동일한 논리로 교사가 교직에서 지각하는 어려움이나 경험하는 문제에 대해서 귀 기울이고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3단계로 나눠지는 교사관심사 교사들이 학교현장에서 경험하고 있는 것이나 그들이 지각하는 문제점은 교사관심사라는 틀 속에서 연구되어 왔다. 교사관심사는 교사교육 분야의 한 주제이며, 미국의 Fuller가 1960년대부터 이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본격적으로 탐구한 영역이다. Fuller는 교사양성 프로그램이 의도한 교육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것은 교육을 받는 대상인 교사의 관심사와 흥미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면서, 교사 교육의 효율성 제고를 위해 교사들이 경험하는 문제점과 관심사를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하였다. 그의 이러한 생각들은 그가 예비교사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하다가 발견하게 된 것이다. 11주간 그룹면담 연구를 하던 중 예비교사들의 관심이 시간이 경과하면서 점차적으로 변화한다는 사실을 주목한 것이다. 학기 초에 예비교사들의 관심은 어떻게 새로운 교직환경에서 적응, 생존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에 대해 관심이 많았으나 후반에는 수업이나 학생과의 상호작용을 통하여 학생들의 학습 향상을 위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로 관심을 전환하였다. Fuller는 이 결과를 일반화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다른 집단에 반복 연구를 실시하였으며, 1차 결과와 동일한 결과를 얻는데 성공하게 된다. 이후 Fuller의 개념은 다른 수많은 연구들을 통해 경험적으로 확인되고 정교화되고 확장되었다. 현재 세 종류의 관심사(자기관심, 직무관심, 효과관심)가 논의되고 있다. 이에 따르면, 교직 생활 초기에는 교직에 성공적으로 적응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대부분 교사들은 교사로서의 '자기(자기관심)'에 초점을 맞춘다. 자기관심은 주로 학생 및 수업 통제 능력, 교직 생활에 대한 적응, 교사로서의 이미지 관리, 생존 및 위기 상황 극복, 교사 자질의 적합성, 학부모와 교장·교감의 기대 부응, 학생 및 동료교사로부터의 평가 등에 관심이 높다. 교사불안에 대한 연구에서도 초임교사들이 학생 통제, 교사로서의 능력 부족, 학생들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안 수준이 높다는 점이 확인되었다. 초임교사가 교직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하고 생존과 관련된 당면 문제들을 해결하고 나면, 수업을 비롯한 '직무과제'를 만족스럽게 수행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관심사가 이동하게 된다. 이제 관심은 직무 과제로 향하는데 수업이나 직무 수행에 있어서 숙달성과 효율성에 많은 관심을 나타낸다. 따라서 직무관심도가 높은 교사들은 전문성 성장을 위한 기회 부족, 학급당 과밀한 학생 수, 교사에 대한 많은 규칙과 규제, 불충분한 행정 지원, 수업내용을 결정할 수 있는 자율성 부족 등과 같이 효율적 직무수행에 방해가 되는 문제들에 주목하고 관심을 기울인다. 점차 수업에 필요한 기술이 향상되고 직무 수행에 있어 숙달 수준이 높아지면, 만족감을 지각하면서 교사의 관심사는 이제 학생에게로 향하게 된다. 이는 '효과관심'이라고 불리는데, 교사관심사의 마지막 단계이며 가장 성숙된 형태이다. 이 단계에 있는 교사들은 학생들의 학습향상 및 학업성취, 학생들의 사회적·정서적 욕구에 대한 이해, 학습 동기 유발, 학생의 잠재력 극대화, 학생들의 지적, 정의적 성장 유도, 배움의 가치를 깨닫도록 도와주는 것 등에 높은 관심을 보인다. 요컨대 교사관심사는 교사로서의 자기 적응과 생존의 문제해결에서 수업과 직무 수행의 효율성 추구로, 다시 학생에 대한 자신의 교수 효과성 추구로 발달하게 되는 것이다. 자기관심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 이러한 결과는 주로 서구의 나라들을 중심으로 확인된 결과이다. 이에 우리나라 중·고교 교사들에게도 교사관심사가 뚜렷하게 구별되어 존재하는지, 그리고 그것은 어떠한 모습으로 존재하는지를 확인하는 연구가 진행되었다. 신규교사 연수(초임교사)와 1급 정교사 자격 연수(경력교사)에 참여하였던 중·고교에 재직 중인 교사 106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 교사들에게도 자기관심, 직무관심, 효과관심이 분명하게 구분되는 관심사임이 확인되었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외국의 교사들은 '교사로서 받는 외부로부터의 평가'와 '교실 통제'를 모두 자기관심으로 인식하는데 비해, 우리나라 교사들은 외부로부터의 평가와 교실 통제가 분리되어 오히려 직무관심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평가'와 '직무 수행'이 섞여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 중·고교 교사들이 외부 평가를 자신의 과제 수행과 밀접하게 관련지어 지각하는 경향이 있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외부 평가를 자신의 직무 수행과 같은 것으로 인식하는 것은 우리나라 교육의 독특한 구조, 환경, 풍토를 반영하는 결과이다. 또 다른 흥미로운 결과는 우리나라에서는 초임교사가 교사관심사의 세 영역 모두에서 경력교사보다 더 높은 관심을 나타내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Fuller는 초임교사가 자기관심에 높은 관심을 보이는 반면 경력교사는 직무수행이나 교수효과와 관련된 영역에 높은 관심도를 보인다고 하였는데, 한 단계의 관심이 다른 관심으로 변화하는 것은 지각된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었음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초임교사가 자기관심이 높은 것은 외국의 연구 결과와 일치하는 바이다. 그러나 경력교사가 초임교사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높은 자기관심을 보인다는 점은 눈여겨볼만한 대목이다. 이는 우리나라의 교육현실에서 경력교사가 자기와 관련하여 지각되는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교사관심사는 교사들이 교직을 수행하면서 지각하는 동기적 특성과 어떠한 관련성을 가지고 있을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 교사들의 자기결정성과 교직에 대한 내재적 동기와의 관련성을 심층적으로 분석한 결과, 세 영역의 교사관심사가 자기결정성이나 내재적 동기와 같은 교사의 동기를 차별적으로 설명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자기관심이나 직무관심은 자기결정성이나 내재적 동기를 감소시키는 것으로, 반대로 효과관심은 교직수행에 있어 유능감, 자율성, 즐거움, 내재적 가치 지각의 향상을 가져온다는 매우 재미있는 결과가 나타났다. 내재적 동기 높이는 해법 찾아야 나아가 교사관심사와 교사동기 간에는 일정한 관계 패턴이 형성되어 존재하였는데, 이를 통해 우리나라 교사의 유형을 크게 3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었다. 그 첫 번째 유형은 자기관심과 직무관심이 낮으면서 효과관심이 높은 교사들이다. 이들은 자기결정성이 높고, 교직에 대한 내재적 동기도 높으며, 압력 및 긴장감을 지각하는 수준이 매우 낮았다. 따라서 이러한 유형의 교사들은 생존이나 직무와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고 교육자로서의 지녀야할 가장 중요한 관심사인 효과관심으로 관심이 이동된 상태에 있는 교사들로 추측해볼 수 있다. 두 번째 유형은 효과관심과 더불어 자기관심 또한 높은 유형이다. 이들은 교직에 대한 가치를 높게 지각하고, 교사로서 다양한 노력을 투자하며 동료 교사와의 관계 또한 친밀하고 소속감을 강하게 인식하면서 동시에 교직 수행에 대한 압력 및 긴장감도 더불어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자신이 행동의 주체가 되어 의사결정권을 갖고 활동이나 직무에 대하여 가치를 인식할 때 느끼게 되는 자율성이라는지, 개인의 능력을 행사하여 주어진 직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를 원하는 내적 욕구에 해당하는 유능감이 높지 않았다. 마지막 유형은 자기관심이 높지만, 직무관심과 효과관심이 낮은 교사 유형이다. 그런데 이들은 교직수행에 있어 즐거움, 노력 투자, 유능감 지각과 마이너스의 상관을 나타내었으며, 교직에서 지각하는 압력 및 긴장감이 높았다. 이 경우 첫째 유형과 비교한다면, 교직에 대한 동기는 매우 부적응적이라 할 수 있다. 자기결정성이라는 심리적 특성은 삶의 만족감과 심리적 안정감 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핵심적인 특성이다. 또한 교직에 대한 내재적 동기를 가진 교사들은 개인적으로 가르치는 활동과 관련하여 즐거움과 내재적 재미, 성취감, 자아실현을 경험하고 만끽하게 된다. 이러한 개인적 경험 이외에도 교사의 내재적 동기는 학생들의 학업성취, 노력, 지속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교수 상황에서 교수전략과 같은 교사 행동에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한다. 특히 교직에 대한 내재적 동기가 높은 교사의 학생들이 학습에 대해 더 높은 흥미를 보여준다는 연구결과를 고려한다면 교사동기를 교사들이 보이는 여러 개인차 중 하나로만 인식하기에 앞서, 그 중요성을 새삼 검토하고 확인할 필요가 여실한 것이다. 결국 교사관심사는 교사들의 교육에 대한 요구를 나타내는 것이며, 유능한 교사가 되고자 하는 하나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교사가 변화의 핵심이며 그들에 대한 이해가 교육혁신을 위해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부분이라면, 교사들이 수업과 관련하여 지각하는 어려움과 문제 등이 파악되어야 하고, 해결되도록 이를 지원하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교사가 자기관심이나 직무관심에 머무르지 않고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효과관심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이들의 어려움과 문제를 충분히 공유하고, 함께 해결해 나갈 수 있는 교육적인 풍토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이 또한 교사의 의지와 참여를 수반할 때 가능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진동섭 |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지난 반년 동안 가장 중요하게 한 일 중의 하나는 모 교육청에서 실시하는 학교평가에 참여한 것이다. 그 동안 필자의 주된 관심 분야가 학교조직인데 일선 학교와 가깝게 지내지 못하는 상황이 항상 죄스러웠다. 그러던 차에 학교평가위원으로 일해 달라는 부탁이 있었다. 시간적 부담은 있었으나 그동안의 죄스러움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고, 스스로에게도 좋은 배움의 경험이 될 것이라 생각되어 기꺼이 참여하게 되었다. 민감한 감각을 가진 우리 아이들 현장방문 평가에서는 각종 문서를 확인하고 관련 교사와 교장 및 교감을 면담했다. 필자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한 활동은 학교시설을 돌아보고, 수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교실을 살펴보는 일이었다. 첫 번째 학교에서부터 눈에 들어온 것은 책상에 엎드려 자는 학생들이었다. 그냥 조는 것이 아니라, 책상에 엎드려서 곤히 자는 학생들이 대여섯 명은 족히 되어 보였다. 처음에는 학생들이 밤늦게까지 공부하느라 힘들어서 잠깐 자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냥 지나쳤다. 그런데 그렇게 자는 학생들을 한 학급에서 뿐만 아니라 다른 학급들에서도 볼 수 있었다. 지역사회 여건이 그렇게 좋지 못한 총 17개의 학교를 방문하였는데, 이러한 모습을 소수 학교를 제외한 대부분의 학교에서 볼 수 있었다. 30여명의 학생 중에는 자는 학생이 대여섯 명 포함되어 있었고, 음악을 듣는 학생, 멍하게 앉아 있거나 다른 책을 보는 학생들도 있었다. 심지어는 만화책을 보는 학생들도 있었다. 교사는 절반 정도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업하고 있었다. 학교평가를 하는 중이었던 지난 9월, 모 일간지에 소개된 마틴 린드스트롬의 〈세계 최고 브랜드에게 배우는 오감 브랜딩〉이란 책을 접하게 되었다. 오감(五感) 브랜딩(branding)이란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등의 신체 감각을 통해 감성적으로 브랜드를 경험하게 하는 마케팅 전략이다. 이는 인간 의사소통의 95%는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고, 80%는 감각을 통해 전해진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내일신문 2006. 8. 10). 오감 브랜딩의 내용을 읽는 순간, 방문했던 '잠을 자는 학교'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 내용은 새로운 깨달음과 함께 고민거리를 안겨주었다. 새삼 새롭게 깨달은 내용은 기업이 브랜드를 만들고, 이를 고객의 머릿속에 각인시켜 판매하기 위해 들이는 노력의 깊이이다. 자동차 회사는 자동차 엔진의 가속음에서 고급스러움을 느끼게 하기 위해 부드러운 저음으로 할지, 아니면 젊은 느낌을 주기 위해 경쾌한 소리로 할지를 연구하고 실험한다. 심지어 트렁크 여닫는 소리, 깜빡이와 에어컨 소리도 고객의 취향을 고려해서 만든다. 운행 시 타이어 타는 냄새가 역겨운 것에 착안해서 일정 속도 이상으로 달리면 라벤더 향이 나도록 하는 '아로마 타이어'를 개발한 사례도 있다. 이러한 깨달음에 이어진 고민거리는 변화를 예측하기 어려운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교육시켜야 할 것인가이다. 미국에서는 성인 한 명이 하루에 1500~2000개의 브랜드를 접한다고 한다(동아일보 2006. 9. 11). 이렇게 많은 브랜드 자극에 의해 민감해진 감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이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요즘 아이들은 MP3로 노래를 들으면서 군것질을 하고, 텔레비전을 보면서 수학 문제를 풀고 영어 단어도 외운다. 핸드폰 문자를 찍는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이들은 성인들에 비해 감각적으로 대단히 발달해 있다. 어떻게 이들을 가르칠 것인가? 이는 학교평가가 끝난 지금도 머릿속에 남아 있는 고민거리이다. 그런데 우리 교직 사회의 요즘 걱정거리는 무엇인가? 혼란한 교직사회 속에서 잠들어 지난 해 우리의 교직사회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이 혼란의 중심에는 교원평가제가 있었으며, 교사들은 교원 성과급 지급에 반대하는 운동도 하였다. 이 혼란 속에서 교장 공모제, 선출 보직제와 같은 교장 임용 제도와 수석 교사제 등이 단위 학교의 교육과 경영의 질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제기되어 논의되고 있다. 자립형 사립학교 확대 실시 논란, 개방형 자율학교 시범 운영, 방과 후 학교 제도 시행 등도 2006년 교직사회를 흔들어 놓았다. 교육위원회를 시·도의회로 통합하고, 교육감과 교육위원을 직접 선출하는 것이 국회 교육위원회를 통과한 일도 있었다. 이는 시·도 단위에서 교육제도 수립과 운영의 효율성을 기하고 주민들의 참여도를 높이기 위한 구상이었다. 이 문제에 관해서도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집단들 사이에서 뜨거운 찬반 공방이 벌어졌다. 이렇게 복잡하고 다양한 사안들에 대해 이해당사자들이 하는 주장들은 모두 명분이 있고, 논리적 설득력도 있으며, 실제적으로 필요한 측면도 있다. 여기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그들 주장의 타당성이나 합리성이 아니다. 교사들, 교육 행정가들, 학부모들, 정치가들이 이런 논의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갑론을박하는 동안 학교에 온 많은 학생들이 교실에서 잠자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려는 것이다. 다시 잠자는 학급으로 돌아가자.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자거나 딴 짓을 하는 것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대표적인 예로 철야 아르바이트, 컴퓨터 게임, 과외 수업, 혹은 건강 문제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학생들의 입장에서 볼 때 특정 과목은 대학입학에 도움이 안 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으며, 몇몇 학생들은 대학입학에 관심조차 없을 수도 있다. 혹은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누적된 학습 결손으로 인해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데 교사들은 이러한 학생들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교장, 교감도 마찬가지이다. 직업반을 만들어 운영도 해 보지만, 학생도 학부모도 좋아하지 않는다. 성적이 낮은 학생들을 따로 모아 가르치면 좋겠는데 소위 우열반 편성은 금지되어 있다. 운동 등 공부 이외의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의 경우 각자 하고 싶은 것을 찾아서 하도록 하고 싶으나 그것도 규정, 재정 형편, 혹은 담당교사 문제 때문에 불가능하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학부모와 지역사회가 소위 'SKY 대학' 입학생 수만 세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는가? 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중 하나일 것이다. 하나는 자는 학생, 딴 짓하는 학생은 지금처럼 그대로 놓아두고 공부할 학생만 데리고 수업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한 교실에서 학생 각자의 요구와 특성에 맞게 직업교육, 특기적성교육 그리고 입시준비교육을 모두 하는 것이다. 학교 공동체에서의 교사의 위상 교사는 '학교'라는 조직의 한 구성원이다. 학교는 학부모들과 지역사회 주민까지 구성원으로 참여하는 공동체이다. 때문에 교사는 학부모와 지역사회 주민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일하게 된다. 교사의 역할은 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교사가 가지고 있는 위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진동섭, 근간). 교사직은 전문직이다. 동시에 교사직은 고도의 정신노동을 하는 근로자이기도 하다. 교사직의 근로자성은 교사의 노동조합 활동을 법률로 보장하는 것을 통해서 잘 알 수 있다(표시열, 2002: 215). 전문직이자 정신노동자인 교사는 구성원들과의 관계에서 다음과 같은 다양한 지위를 가지고 있다. 교사와 학생 간의 관계는 서로가 선택해서 이루어지는 관계가 아니다. 이들은 우연적이고 일시적으로 만나서 가르치고 배우는 공적인 관계이다. 그러나 이들 간의 관계는 교육애와 애정, 신뢰와 존경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교사와 학부모의 관계는 학생을 매개로 해서 이루어지는 비선택적·일시적 관계이다. 교사는 교육공급자이고 학부모는 교사가 제공하는 교육의 수혜자 혹은 소비자이다. 교육에 있어서 비전문가인 학부모는 전문가인 교사에게 자녀들의 교육을 위탁했다. 교사는 교육전문가임과 동시에 학부모에 의해 자녀교육을 위탁 받은 사람이다. 교사와 교사의 관계를 살펴보면, 교사들은 서로를 가장 편안한 상대로 생각하지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 이들 사이에서는 전문적 협력이 이루어지지만 이는 개인적인 친분에 의한 것인 경우가 많다. 교사와 교장은 학교에 의해 고용된 피고용자의 신분이라는 점에서는 같다. 이들은 같은 배를 타고 있는 동업자임과 동시에 학교조직의 상급자와 하급자 위치에 있다. 중요한 것은 어느 입장에서 보든지 교사는 자율성과 책임감을 가진 전문직이라는 점이다. 학교는 개방적 공동체다. 학교와 환경은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면서 서로 도움과 영향을 주고받는다. 학교 내 구성원들 간 관계에서도 개방적인 교류가 이루어진다. 이 안에서 교사가 처한 상황은 매우 복잡하고 어렵다. 대표적인 예로 교사들은 학교라는 담장 안에서 제한된 시간 동안 학생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교사가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은 줄어들고 교사에 대한 기대와 책임은 높아져만 간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자명한 사실은 교사의 존재를 확인하는 곳은 '교실'이고, 교사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교육의 질'이고, 교사의 존재를 지켜 주는 것은 '전문성'이라는 점이다. 학생에 대한 선택권이 없는 교사로서 교사에 대한 선택권이 없는 학생을 상대할 때는 물론이고 하급자인 교사로서 상급자인 교장을 상대할 때, 피위탁자인 교사로서 위탁자인 학부모를 상대할 때, 전문가인 교사로서 똑같은 전문가인 동료 교사를 상대할 때, 교사는 당당하고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당당함과 자신감은 교사의 전문성에서 나온다. 교사전문성의 핵심은 교육에 대한 전문적 지식 및 기술 체계와 교직윤리 의식이 핵심을 이룬다. 교사들은 이러한 전문성을 기반으로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교육전문가'가 되어야 한다(진동섭, 2002). 전문가로써 해야 할 세 가지 역할 변화하는 학교사회에서 교사가 전문직으로서의 위상을 강화화기 위해 수행해야 할 역할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이 중 세 가지만 강조하고자 한다. 우선 현장연구자로서의 역할이다. 로티는 교사직을 '특수하지만 그늘에 있는 직업'이라고 했다. 교사들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나 교육행정가, 교육대학이나 사범대학 교수의 그늘 속에 있다는 것이다. 교실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공간으로서의 의미뿐만 아니라 교육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을 연구하고 개발하고 학습하는 현장으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현장에 근거한 지식과 기술을 개발함에 있어서 이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교사보다 더 유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있겠는가? 다음은 교육 디자이너로서의 역할이다. 교사는 45분 혹은 50분의 교수·학습 활동을 디자인하는 디자이너가 되어야 한다. 여기에서 교육 디자이너는 정해진 교육내용을 기계적으로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학생의 특성과 요구에 맞게 학습내용, 학습방법 등을 디자인해주는 사람을 뜻한다. 세 번째는 학교 컨설턴트로서의 역할이다(진동섭, 2003). 학교 컨설팅은 교원들이 직무 수행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이나 새로운 과제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을 가지고 그 해결을 도와주는 일이다. 40만 교원들은 모두 나름대로 교육에 관한 비법들을 한 보따리씩 가지고 있다. 문제는 이것이 교사들 간에 공유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장연구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면 보다 체계적이고 객관적인 지식과 기술이 만들어진다. 이것을 다른 교원들의 전문성 개발을 위해 활용하고, 본인도 다른 교원의 도움을 받아서 서로의 전문성을 공유하자는 것이 학교 컨설팅의 취지이다. 이상과 같은 세 가지 역할은 교사들이 혼자서 고민하고 수행해야 하는 역할이 아니라, 학교 공동체 내에서 함께 이루어지는 역할이다. 현장연구는 개인 혹은 다수가 수행할 수 있다. 교육 디자이너의 역할도 마찬가지다. 학교 컨설턴트로서의 역할 역시 상대방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이 글에서 말한 인문계 고등학교 교실 상황은 전국 모든 학교의 상황이 결코 아니다. 오감 브랜딩은 학교가 아닌 기업의 이야기다. 이는 학교가 기업을 쫓아가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기업이 고객을 만족시키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노력하는지 알 필요는 있다. 그리고 이러한 기업들이 만들어가는 사회변화가 학생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파악해야만 한다. 학교는 학생들을 위해 꼭 필요한 공간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일선 학교는 자력으로 그러한 조직으로 만드는데 어려움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현실에 안주할 수는 없다. 행정가와 정치가들이 여건을 마련해 줄 때까지 기다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교사들은 교직의 현실을 자조(自嘲)가 아니라 자조(自助)해야 한다. 현장연구자, 교육 디자이너 그리고 학교 컨설턴트로서 교사의 역할을 돌아보고, 현재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함께 찾아서 함께 시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심영옥 | 경희대 겸임교수·미술사 경남 진주의 촉석루 입구에는 '실크박물관(1층)'과 '향토박물관(2층)'으로 구성된 진주향토민속관이 있다. 이 향토민속관은 '태정박물관'이라 불리기도 한다. 태정은 김창문의 호다. 김창문은 원래 진주에서 양화점을 경영하던 사람이었다. 그는 6.25 한국전쟁 후 어느 날 자신의 가게 앞에서 엿을 팔던 엿장수 지게 위에 내팽개쳐져 있던 경첩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함부로 버려진 것을 매우 안타까워하였다. 그 후 40여 년 동안 서양가구의 보급으로 하찮게 버려진 수많은 장석과 가구, 생활민속품을 수집했고, 수집품은 향토박물관의 토대가 되었다. 평범한 시민의 정성어린 집념이 자칫 사라질 수 있었던 우리의 아름다움을 되살린 것이다. 학문적인 내용이나 사상을 제쳐놓고서라도 의기 논개가 몸을 던져 나라를 도운 것처럼 태정도 자신의 사업을 멀리하며 한국미의 뿌리를 만들어 놓은 것은 어쩌면 우리 민족에게 흐르는 예술혼 덕분이 아닌가 싶다. 이처럼 한 사람의 집념으로 수집된 장석은 우리 전통 가구의 아름다움은 물론 장석들의 다양한 문양을 통하여 옛 선조들의 미의식을 느낄 수 있게 해주어 더욱 의미가 크다. 장석(裝錫)이란 자연미와 인공미를 최대한 조화시킨 소박한 전통 목가구에 우리 민족의 생활정서와 멋을 더하여 장식용 치레로 사용되어진 모든 금속으로 우리 조상들의 지혜와 멋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한국의 아름다움이다. 품격 있는 조화 이끄는 생활의 지혜 장석의 역사는 정확히 언제부터 제작되어 사용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고대 삼국시대부터 사용되었다고 짐작되고 있다. 장석이 서민들에게까지 보급된 시기는 서민들이 목가구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대략 17~18세기로 볼 수 있다. 초기에는 생활에 필수적인 기능 위주로 대부분 검소하고 단순한 모양이었다. 그러다 차츰 시간이 지날수록 문양도 다양해지고 모양은 복잡해지면서 아름다움도 추구하였다. 그러나 상징적인 내용을 중시하여 문양들은 다소 도식적인 경향을 보인다. 장석은 건축물의 기둥이나 목가구 등이 뒤틀리거나 상하는 것을 미리 방지하기 위해 이음새를 보완하는 기능을 하거나, 문짝 등의 여닫이 기능과 아름답게 치장하는 꾸밈새로도 쓰인다. 장석의 재료로는 거멍쇠, 청동, 황동, 백동 등이 있다. 이 중 장석의 재료로 가장 먼저 사용된 것은 거멍쇠로 이는 색깔이 검기 때문에 붙여진 순우리말로 흔히 무쇠라고 말하는 것이다. 한국 전통 목가구는 대체로 '결구식 목공기법'을 사용하여 외형의 소박한 아름다움과 함께 건실하게 만든 것이 특징이다. 이는 판과 기둥의 다양한 짜임과 이음을 못을 사용하지 않고 제작해 더욱 빛을 발한다. 장인들은 이러한 목가구의 짜임과 이음의 보완 말고도 더욱 완벽한 기능의 강화와 아름다움을 위하여 금속제 장석을 사용하였다. 목공예품에서 목재의 연약한 재질을 보강하고 묵직한 분위기를 화사하게 만드는 장식적 효과를 얻기 위해 다양하고 아름다운 무늬를 부착한 것이다. 장석을 만드는 장인을 예전에는 '두석장(豆錫匠)'이라 불렀는데, 장인들은 목가구의 기능적인 면과 장식적인 면을 겸비할 수 있도록 슬기와 지혜를 녹여 장석을 만들어 붙였다. 금속장석 중 경첩이나 앞바탕, 고리, 들쇠 등은 필수적인 부분에만 사용되었고, 감잡이, 귀잡이 장석 등은 구조의 결함을 보강하기 위해 부착하였다. 전통 목가구는 쓰임새에 따라 목재의 색감이나 무늬결이 각기 다른데, 꾸밈 장석도 목가구와 어울리는 모양을 만들어 붙여 전체의 아름다움을 더했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색감과 문양을 자연스럽게 조화시킬 수 있었던 것은 선천적으로 배어 있는 우리 선조들의 미의식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한국적 미감을 지닌 장인들에 의해 고안된 금속제 장석들이 가구의 형태와 용도에 따라 모양과 문양이 적절히 표현되어 전체 의장을 더욱 품격 있는 조화로 이끌었던 것이다. 실용성과 조형성 더해진 미의식 일상생활에 유용하면서 미적인 감각으로 표현된 기능적인 장석에는 앞바탕, 경첩, 들쇠, 자물쇠 등이 있고, 면과 귀를 서로 짜 맞추기 위해 만든 감잡이 장석과 귀잡이 장석이 있다. 이러한 장석은 실용적인 면을 우선으로 하였지만 삶을 풍요롭게 하는 염원과 함께 우리 선조의 정서와 생활상을 담은 한국적 미의식을 담고 있다. 실용적이면서 조형성이 돋보이는 장석의 기능은 한국적 아름다움을 배가시키는 데 부족함이 없다. 앞바탕은 가구의 자물통을 채우는 부분에 사용되어진 얇고 판판한 쇠붙이를 말한다. 배목이나 자물쇠 등을 가구에 견고하게 붙일 수 있도록 하고 자물통으로부터 가구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종류로는 자물쇠용과 들쇠용, 배목과 고리용 등이 있으며, 가구의 구조와 기능에 관계없는 장식용 앞바탕도 있다. 형태는 기하학적인 모양의 단순한 것에서 각종 동식물 형태가 정교하게 투각된 것까지 다양하며 가구 앞면과 중앙부에 위치하기 때문에 가구 장식의 인상을 많이 좌우한다. 초기에는 기능만을 생각하여 무늬 없이 단순하게 만든 데 비해, 후기로 갈수록 많은 무늬를 투각하거나 새긴 것이 나타났다. 형태에 따라 둥근형, 약과형, 약과형투각, 팔각형투각, 나비형, 실패형이 있다. 경첩은 문을 열고 닫기 위해 만든 장석이다. 대칭이 되는 두 개의 쇠조각(날개판)을 맞물리어 기둥쇠에 말아 고정시키고, 기둥쇠가 회전함에 따라 문을 여닫게 하는 것이 경첩의 원리이다. 경첩은 좌우, 상하로 열리는 것과 기둥쇠만 보이는 숨은 경첩, 날개판이 보이는 노출형 경첩으로 크게 나누어지며, 대칭이 되는 두 개의 쇠조각(날개판)이 겹쳐지며 열린다고 해서 '겹첩'이라고도 불린다. 장이나 농, 문갑, 반닫이 등 문이 달린 가구의 몸체와 문판을 연결하여 문을 여닫을 수 있게 한다. 건축물의 문에도 같은 구실을 한다. 조선시대 가구에서는 노출 경첩이 대부분인 반면, 숨은 경첩은 조선말기 이후에 제작된 의걸이장이나 문갑 등에서 간혹 눈에 띄는 정도이다. 생긴 모양에 따라 둥근형, 약과형, 화형, 실패형, 나비형, 저고리형, 인동초형, 허리띠형, 제비초리형, 문자형 등이 있다. 들쇠는 '들어 올리는 쇠'라는 순수한 우리말로, 가구전체를 들어 올리거나 혹은 서랍이나 문짝을 열 때 잡아당길 수 있도록 부착된 손잡이를 말한다. 가구를 들어올리기 위한 들쇠는 양쪽 옆널에 붙이는 것이 일반적이나 박천반닫이 등에서는 앞판과 뒷널에 쓰인 예도 있다. 열거나 드는 데 힘이 적게 드는 서랍이나 문에는 배목 한 개의 들쇠를 쓰고, 가구 전체를 들어 올리는 데는 배목 두 개의 들쇠를 사용했다. 가구 자체를 들어올리기 위한 뜻에서 들쇠라는 이름이 사용되었으나, 점차로 장식성을 띤 손잡이와 작은 서랍을 여는 손잡이, 고리 등을 총칭하는 의미로 발전하였다. 들쇠는 그 기능상 유동성이 있어야 하므로 일반 못으로는 가구에 부착시킬 수 없기 때문에 머리 부분에 공간이 있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배목을 사용하였다. 들쇠는 크게 배목 1개인 고리형태의 들쇠와 배목 2개 들쇠로 나누어진다. 형태에 따라 활형, 새형, 물고기형, 약과형, ㄷ자형, 꽃무늬형 등이 있다. 감잡이는 ‘감다’와 ‘감아준다’의 합성어로 기둥과 기둥, 판과 판이 만나는 접합부분이나 모서리 부분에 부착되어 나무의 결속력을 강화시켜 주고, 외부와 접촉할 때 가구자체의 모서리를 보호해 주는 역할도 한다. 기둥과 판널들을 서로 잇대러 짠 부분이나 모서리를 구조적으로 보강해주는 장석이다. 또는 가구의 뒤틀릴 현상을 어느 정도 보완해준다. 형태에 따라 둥근감잡이, 상두감잡이, 약과형감잡이, 기하형감잡이, 당포감잡이, 둥근고깔귀잡이, 투각고깔귀잡이 등이 있다. 귀잡이 또는 귀장식은 그 역할이 감잡이와 동일하나 감잡이가 입체적으로 양면으로 잡아주는데 비하여 귀장식은 한 면(귀부분)만을 잡아준다. 세면이 만나는 꼭지점에는 귀싸개(통귀쌈)을 사용하였다. 세 면이 만나는 귀 부분에 사용되어 외부와의 접촉을 방지해주는 역할을 하여 가구를 보호해준다. 형태에 따라 둥근형귀잡이, 약과형귀잡이, 새발귀잡이, 연밥귀잡이 등이 있다. 광두정은 머리가 넓은 못으로 기능은 가구를 제작한 후에 생기는 여유 공간을 잘 구성하는 것으로 허전한 공간에 적절하게 배치하여 전체의 조화와 균형을 유지하여 가구의 미를 더욱 아름답게 하는 데 있다. 또 가구 제작 당시 실수로 생긴 표면의 흠집을 감추어주고, 가구 재료로 쓰일 나무가 꼭 필요한 부분에 흠이나 벌레가 파먹을 경우, 그 곳을 막기 위해 사용되었다. 대체로 반구형의 작은 크기인 광두정은 장석 가운데도 도드라진 입체감을 주는 것이 특징이다. 적절한 공간에 박힌 광두정은 가구에 중량감과 함께 견고한 느낌을 주는 효과도 아울러 지닌다. 그리고 미적으로 허전한 공간을 일정한 방향과 크기로 연속성 있게 좌우, 상하로 대칭 시켜 균형미 있는 장식의 조화를 이루는데 사용되었다. 또한 가구에 부착되는 장식 중 입체감을 주는 유일한 금속장식이다. 다른 장석에 비해 크기와 모양이 다양한 것도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자물쇠는 여닫게 되는 기물에 채워서 열쇠가 없으면 열지 못하도록 잠그는 장석의 일종으로 자물통, 잠금쇠, 열쇠의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열쇠는 '자물쇠를 여는 쇠'로 개금(開金) 또는 건(鍵)이라고도 한다. 유물자료를 살펴보면 이미 삼국시대에 ㄷ자형 자물쇠가 사용되었고, 가구의 기능과 구조가 발전하면서 새로운 형태로 발전되어 갔다. 자물쇠의 종류로는 대롱자물쇠, 함박자물쇠, 물상형자물쇠, 은혈자물쇠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민간신앙적 사상 배경으로 한 문양 장석은 금속제품은 물론 목제품, 죽제품, 지승제품, 석제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쓰였다. 그 중 특히 목공품의 구조 보강에 필요 불가결한 본래의 목적 외에 외형에서 느껴지는 장식성이 큰 몫을 차지하였다. 장식용의 역할을 하는 장석을 꾸밈장석이라고 하는데, 이는 가구의 빈 공간 등에 붙여서 가구를 더욱 아름답게 보이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문양은 크게 동·식물 모양의 십장생이나 문자를 고안하였다. 문자는 주로 수복강녕(壽福康寧), 부귀다남(富貴多男), 백복자래(百福自來), 오군만년(吾君萬年)의 길상(吉祥)적 의미를 지닌 글자를 사용하여 가내평안을 염원하였다. 그리고 동·식물 문양으로는 학, 사슴, 거북이, 모란 등 무병장수의 의미를 지닌 십장생을 많이 사용하였다. 십장생 이외에도 다산의 의미가 있는 물고기문양, 태극문양, 당초문양, 남대문문양 등도 사용되었다. 물고기를 기능적인 자물쇠 장석으로 사용되었을 때에는 항상 눈을 뜨고 있다는 습성을 비유하여 집이나 복을 지켜달라는 의미이며, 장식용으로 사용되었을 때에는 알을 많이 낳는데 비유하여 다산을 상징하였다. 특히 잉어는 출세, 성공을 상징하는데 이것은 잉어와 연관된 등용문(登龍門)이라는 한자어에서 유래한 것이다. 장식용 장석에서 사용된 문양들은 대체로 조선후기 민화의 소재로도 많이 사용되어진 것이다. 그림이든 생활용품이든 간에 이는 일반 서민들의 생활에서 가족의 평안을 염원하는 민간신앙적인 사상을 배경으로 하여 한국미의 특징을 표현한 것이다. 수 백 번의 망치질로 펴고 다듬어서 멋진 장식물을 만들던 도석장인의 인내심도 대단한 것이며, 한국인의 정서를 담아 미적으로 표현한 장석은 진정한 한국의 아름다움이라 할 수 있다.
김철수 | 경남 거제중앙고 교사, 사진작가 금빛 물결 출렁이는 넓은 갈대밭 넓은 갈대밭과 끈적끈적한 머드팩의 모태, 순천만 갯벌! 육지의 물과 바다의 물이 만나 하모니를 이루며 만든 순천만 갯벌은 자연늪이라기 보다는 자연습지이다. 오늘도 8백만 평의 광활한 순천만 갯벌은 사람을 포함한 많은 생물들에게 생존의 의미가 되고 있다. 순천만은 여수반도와 고흥반도를 다리 삼아 깊숙이 들어와 형성된 만으로 길이가 동서 22㎞, 남북 30㎞다. 만의 입구에 적금도, 낭도, 둔병도 등이 있어 빠른 물살을 줄이는 역할을 하나, 워낙 수심이 얕아 조석 간만의 차이가 심하게 나타난다. 미네랄이 들어있는 영양수를 제공하는 동천, 이사천, 해룡천이 남해바다에서 밀려온 파도와 만나는 기수역에서 토사의 퇴적이 일어났다. 이렇게 만들어진 더 넓은 갯벌에 사람들은 염전을 만들었고, 천일염이 사양길에 접어들면서 염전은 가을이면 노란물을 들이는 농토로 변신했다. 농토와 갯벌 사이에 둑을 쌓아 둘을 단절시켰지만 기수역의 퇴적작용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밀려온 토사들은 더욱더 바다 멀리 나아가 쌓여 갯벌의 면적을 넓혀 왔고, 앞으로도 더 넓어질 것이다. 순천만은 바다뿐만 아니라 갯벌, 염생식물이 섞여 자라는 갈대밭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갯벌에 일차적인 영양분을 공급하는 식물에는 44종류의 관속식물이 나타났는데, 이 중 벼과와 국화과 식물이 반을 차지하고 있다. 어떤 지역에서 많이 나타나는 생물을 우점종이라고 하는데, 이곳의 우점종은 갈대이고, 그 외에도 갯잔디, 메귀리, 가는갯능쟁이, 부들, 모새달, 칠면초, 나문재, 갯질경 등이 넓게 분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게 분포한다는 갈대밭은 5.4㎢로 이는 바닷물의 빠짐에 의해 들어난 갯벌의 속살 27㎢ 중 20%를 차지하고 있다. 가을이면 금빛 물결을 일으키는 갈대밭은 동천과 이사천이 만나는 곳에서 대대포구까지의 수로, 대대포구에서 장산마을로 이어지는 제방의 안쪽, 대대포구에서 와온마을의 순천만 해수랜드까지의 해변에 주로 분포한다. 갈대 다음으로 넓은 면적을 가진 칠면초는 일 년에 일곱 번 색깔이 바뀌어서 붙어진 이름이다. 순천만 사람들은 '기진개'라고 부르고, 한때 사람들의 먹을거리가 되기도 한 칠면초는 철새들의 주요 먹이가 되고 있다. 칠면초의 화려한 색깔은 매일 맞이하는 일몰과 갈대꽃이 만발할 때 더욱 돋보인다. 철새 유혹하는 넉넉한 안식처 제공 여러 식물들이 자라면서 어패류와 게들이 서식처와 먹이를 무한히 제공받아 번성을 누리고 있다. 먹이가 풍부하고 숨기에 알맞은 갈대숲을 지녔기에 여러 종류의 새들이 어미의 품을 찾아가듯 순천만을 찾아오고 있는데, 겨울에만 200여종의 철새들이 찾아들고 있다. 일 년 내내 많은 새들이 이곳을 찾고 있는데, 특히 멸종위기종인 흑두루미, 재두루미, 노랑부리백로, 저어새, 검은머리갈매기도 찾고 있다. 희귀철새 도래지인 이곳에 흑두루미는 세계 생존 개체 수의 1%(100 마리), 검은머리갈매기는 10%(1000 마리)이상, 혹부리오리는 이동개체수의 18%(1만 1000 마리), 민물도요는 7%(9300 마리)가 서식하고 있다. 특히 혹부리오리의 경우에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서식지이다. 특히 이곳은 도요와 물떼새들이 호주와 시베리아를 오갈 때 중요한 이동 통로로 이용하고, 겨울철에는 흑두루미의 이동 통로이자 월동 지역으로 이용되고 있다. 우리는 학(鶴)을 두루미라고 한다. 두루미는 울음소리에서 유래된 순수한 우리말이다. 두루미의 종류에는 흑두루미, 두루미, 재두루미, 검은목두루미, 시베리아흰두루미 등이 있다. 두루미는 시베리아 우수리 지방, 중국 북동부, 일본 훗카이도에서 번식하는데, 겨울에는 남으로 이동하여 중국 남동부와 우리나라 비무장지대에서 월동한다. 우리나라에는 1940년대까지 수천마리의 두루미가 찾아왔으나 지금은 철원과 강화지역에 약 500 마리가 찾아와 월동하고 있다. 흑두루미는 전 세계에 1만 마리가 살고 있는데, 이 중 8000 마리는 일본 규슈의 이즈미에 텃새로 살고 있고, 우리나라에는 1백 마리 정도가 찾아온다. 우리나라에는 11월에 찾아와 이듬해 3월에 날아가는데, 주요 월동지가 바로 순천만이다. 철새의 이동은 번식지와 월동지(월하지) 사이를 일 년에 2번씩 있는데, 대체로 남북으로 이동한다. 우리나라를 중심으로 여름에 남쪽에서 건너오는 제비와 두견이를 여름새, 겨울에 북쪽에서 날아오는 기러기, 물오리, 백조 등을 겨울새라고 한다. 이들을 통틀어 철새라고 하는데, 이동 경로가 정해져 있으며 한번 번식이나 월동을 하면 매년 같은 지방이나 같은 장소로 돌아온다. 우리나라의 주요 철새도래지에는 철원평야, 강화도 갯벌, 천수만, 금강하구, 순천만, 우포늪, 주남저수지, 을숙도, 성산포 등이 있다. 이들의 특징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광활한 물과 주변의 넓은 농경지가 분포하여 먹을 것이 많다는 것이다. 겨울철새는 추위를 따라 이동하는데, 초겨울엔 중부지방에, 한겨울과 늦겨울에는 남부지방에 많이 분포한다. 1㏊ 당 2천만 원 넘는 가치 지녀 순천(順天)만, 하늘의 도리를 따르는 땅, 아니 하늘의 뜻처럼 좋은 일만 생기는 땅으로 순천만의 갯벌은 순기능이 더 많다. 갯벌로 몸을 만들고, 몸을 살찌우다가 갯벌에 몸을 눕히는 생물이 어디 한 둘이랴. 해양생물의 66%가 갯벌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고, 생산성도 높아 육지의 9배나 된다고 한다. 순천 시내를 거쳐 내려온 생활하수를 걸러 주어 깨끗한 정화수를 만드는 곳도 이곳이다. 또 홍수에 따른 급격한 강물의 흐름을 완화하고 저장하며, 태풍 시 밀려오는 바닷물의 흐름을 감소시키는 곳도 순천만이 하는 일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넓은 가슴에 아름다운 경치를 담아 두어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마음의 편안함과 심미안을 준다. 고흥반도를 감싸는 순천만과 보성만은 심성이 고운 많은 문학가를 잉태하여 이들의 아름다운 글과 말은 여러 사람들을 지금도 행복하게 하고 있다. 이런 갯벌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면 1헥타르 당 약 1만 달러가 된다고 네이처지가 발표했다. 우리나라의 환경부에서는 갯벌의 가치를 외국보다 높은 2만4천 달러로 평가하였는데, 이는 우리가 갯벌을 이용하여 삶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순천만 경치 볼 수 있는 매혹의 장소 순천만을 둘러보는 방법은 크게 두 갈래 길이 있다. 팔마체육관 앞의 고가도로를 이용하여 17번 국도(여수방향)를 따라가다 순천농수산물시장 앞에서 우회전하면 해룡면소재지를 만나고, 용산전망대와 낙조로 유명한 와온마을에서 순천만을 볼 수 있다. 해룡면소재지에서 863번 지방도로를 따라 월전, 도롱, 중흥, 해창, 선학마을을 지나면 농주마을이 나타난다. 농주마을에 들어서면 갯벌의 동쪽에 위치한 구동마을로 가는 꼬불꼬불한 마을길이 나타난다. 구동마을의 해변에는 전어와 왕새우양식장이 있고 이곳에서 대대포구 쪽으로 난 비포장길을 300m 운전하면 예전에 양식장 건물로 사용한 곳에 간이주차장이 나타난다. 간이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10분 정도 낮은 야산을 오르면 이곳이 용산전망대이다. 용산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갯벌의 아름다움은 갈대밭과 어울려진 S자 수로, 대대포구로 귀환하는 어선과 유람선의 모습에 있다. 특히 이곳에서 맞이하는 일몰이 장관으로 갯벌에 쏟아지는 햇살에 부딪친 칠면초의 색깔과 하늘에 영롱하게 어린 석양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곳을 나와 다시 도로를 따라가면 해룡초등학교 농주분교가 나온다. 바다 쪽으로 우회전하면 와온마을에 도착할 수 있다. 이곳의 일몰도 장관이고, 특히 순천만 해수랜드에서 몸의 피로를 삭이는 것도 좋은 일이다. 다른 하나는 순천청암대학교차로나 인안교차로에서 순천만자연생태공원(대대포구)과 일출을 볼 수 있는 별량면 화포마을로 가는 것이다. 순천시 대대동과 별량면 학산리의 들판은 갯벌을 개간하여 만들었는데, 대대포구에서 장산마을까지 갯벌과 농경지를 가로지르는 둑 옆에 비포장도로가 개설되어 있다. 대대포구에는 순천만생태자연공원이 조성되어 갯벌 생물에 대한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또 대대포구에는 순천만을 살펴볼 수 있는 유람선이 운항되고 있고, 갈대밭까지 보행교가 설치되어 나무 통로를 따라 갈대밭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갈대밭 사이로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기에 좋은 장소는 보행교 위이다. 대대포구에서 장산마을까지 내려오는 길은 어디에서나 갯벌생물들을 만날 수 있고 특별히 갈대밭과 어울려진 수로를 만날 수 있는 곳이 인안교 부근이다. 특히 인안방조제 부근에서는 겨울동안 흑두루미를 관찰할 수 있다고 한다. 부근에 태양광발전소가 설치되어 환경과 조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갯벌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체험장을 둔 곳도 이곳이다. 장산마을을 지나 화포마을에 도착하면 순천만의 몸통을 볼 수 있는데, 이곳은 순천만에서 유일하게 일출과 일몰을 모두 볼 수 있는 곳이다. 사람 모여드는 다양한 문화 공간 예전부터 넉넉한 남도의 인심은 많은 사람들을 이곳에 모여들게 하였다. 바다의 물산이 풍부하고 농토가 비옥하여 사람들이 터 잡고 마을을 이룬 곳이 낙안읍성이다. 사적 302호로 지정된 낙안읍성은 1367년(태조 6년)에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만든 것으로 현존하는 조선시대 읍성들 가운데 가장 보존이 완벽한 곳이다. 예부터 남해 바다에서 불어온 갯바람은 차나무를 잘 자라게 하였기에 야생 차밭이 분포하고, 다도의 맥이 정립되고 흘려 나온 곳도 이곳이다. 그 뜻을 이어받아 보성에는 우리나라 최대의 차밭이 조성되어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순천만에는 해마다 그 넓은 농토에 허수아비문화제가 열리고, 황금 들판에서 허수아비가 사라질 즈음 갈대가 꽃을 피워 갈대제가 열린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영감과 희망을 얻어가는 순천만은 이용하고 가꾸는 만큼 즐거움과 이익을 주는 땅이다. 이 모든 것이 자연이 주는 고마움이 아닐까?
선돌이 여근을 만났을 때 선돌은 대체적으로 청동기시대 산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선돌이 청동기 유물로 대표적인 고인돌과 결합한다면 어떨까요? 경북 영주로 떠나 봅시다. 시내 휴천동에서 고인돌 2기와 선돌 1기가 나란히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만날 수 있습니다. 선돌의 높이는 약 1.5m로 그리 크지는 않으며 고인돌에 사용된 덮개돌 두 점이 제 자리를 잃은 채 바닥에 엎어져 있습니다. 덮개돌엔 성혈(性穴)이 몇 점 보입니다. 성혈은 여근을 상징하며 선돌은 남근을 상징하니 음양의 조화가 완벽합니다. 이렇듯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문화재인 지석묘가 선돌과 나란히 서 있는 것은 이례적인 경우라 하겠는데, 순흥 땅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영주시 순흥면 청구리 선돌은 5m 간격을 두고 2기가 나란히 서 있습니다. 마을 입구 소나무 숲에 위치해 있는데 오른쪽에 서 있는 선돌 앞에도 덮개돌이 보이고 그 표면에 역시 성혈이 보입니다. 마침 인근에 여근동(女根洞)이라는 마을이 있어 그 여근에 대해 남근을 상징하는 선돌을 세운 것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여근과 관련해서 선돌이 세워진 것으로 해석하는 이러한 사례로 부산 기장군 철마면 선돌을 들 수 있습니다. 선돌 관리를 맡고 있는 이중희씨에 따르면 맞은편에 내다뵈는 계곡의 형태가 여자의 음부를 닮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옛날에 이 마을 사내들이 그 기운에 억눌려 제 명에 살지 못했다고 합니다. 어느 날 스님 한 분이 이곳을 지나다 그 사연을 듣고는 음기를 차단할 수 있도록 선돌을 세우게 하였고 그 이후로 화가 물러 갔다네요. 이 선돌이 선사시대에 세워졌건 후대에 세워졌건 분명하진 않습니다. 선돌이 이러한 풍수지리개념으로 들어섰다면 그 선돌은 역사시대의 산물일 테고, 가만히 서 있던 선돌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갖다 붙였다면 청동시시대의 산물일 테지요. 여기서 ‘청동기시대 = 선돌’이란 등식이 성립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접근이 가능하겠습니다. 이 철마 선돌 바로 앞에는 동래 정씨 문중의 산소가 위치하고 있는데 그 망주석을 앞에 내세우고 뾰족한 철마산을 배경으로 4m 가까운 거대한 선돌이 땅을 우뚝 밟고 있어 그 날카로움에 이내 기세가 꺾이고 맙니다. 성기숭배신앙의 흔적을 찾아 이러한 남근숭배신앙은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경기지역을 중심으로 널리 유포되었던 부근당(府根堂) 당집에는 남자 성기를 상징하는 목각물을 곳곳에 걸어두었었고 삼척 해신당에도 역시 남근을 바치는 풍속이 이어지고 있지요. 경주 안압지에서 남근을 조각한 목제품이 출토되었고,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지철로왕의 거시기 이야기와 선덕여왕 지기삼사 중 여근곡과 관련한 이야기도 재미있습니다. 특히, 유교문화가 절대적으로 지배했던 조선시대의 경우는 아들을 낳아야 하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부여받은 여인네들에 의해 이 남근숭배신앙이 확산되기에 이르렀지요. 인도의 경우, 시바신을 모신 사당에서 생명의 원천이요, 풍요의 상징인 링가와 여근을 상징하는 요니가 결합되어진 것을 볼 수 있지요. 우리나라 곳곳에서 자연적으로 혹은 인공적으로 다듬은 성기숭배신앙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제 이러한 남근과 여근신앙은 쉬쉬하는 차원을 벗어나 당당히 문화재로서 대접받고 있습니다. 저와 함께 몇 군데를 둘러볼까요? 전북 정읍시 칠보면 백암리 원백암마을 입구에는 300여 년 전 선비 박잉걸이 세웠다는 남근석이 있습니다. 그는 마을 뒷산에 있는 여근곡과 여근암의 기운을 누르기 위해 장승과 함께 남근석을 세웠다고 합니다. 자손이 귀한 사람이나 불임증이 있는 여자가 네 번 절하고 이 돌을 안아주면 아이를 갖는다는 속설이 있습니다. 선무도 도량으로 유명한 경주 골굴사에도 남근바위가 있습니다. 이 남근바위를 마주보는 곳에 산신당이 조성되어 있는데 산신당 앞 평상 한 곳에 네모난 구역을 표시해 두었습니다. 그것을 들면 둥그스름한 천연바위에 물이 가득 고여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여근바위 위에 앉아 남근바위에 절하고 산신령님께 절하고 정상의 부처님께 절하니 그 정성이 더하여 좋은 소식이 있을 법합니다. 전북 순창 팔덕면 산동리와 창덕리에 각각 지방민속자료로 지정된 남근석이 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약 500여 년 전에 한 여장부가 2기의 남근석을 조각하여 치마에 싸 가지고 오다가 무거워서 1기는 창덕리에 버리고 1기는 산동리에 세웠다고 합니다. 화강석으로 정교하게 조각하였고, 하단부에 연꽃무늬가 새겨진 것이 눈에 띕니다. 임실 사곡리 남근석은 옛날 이 마을에 돌림병이 돌아 민심이 흉흉해지자 마을 어른들은 마을 형상이 여자의 옥문을 닮았기 때문이라고 여기고 마을 입구에 이 남근석을 세워 그 기운을 누르고자 하여 세운 것이라 합니다. 이처럼 남근석은 기자신앙의 대상으로뿐만 아니라 마을전체의 안녕과 번영을 소원하던 공동신앙물이기도 했습니다. 안양 삼막사에도 남근석과 여근석이 함께 있는데 특히 여근석의 적나라함이 눈에 띕니다. 전북 김제 귀신사에는 사자를 닮은 짐승이 웅크려 있고 그 위에 남근을 닮은 마디진 돌기둥을 세웠으며, 그 위에 또 하나의 작은 돌기둥을 얹어 두었습니다. 충북 제천 무도리 용암은 여인네들이 건너편에서 돌을 던져 바위에 들어가면 득남한다는 속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역시 제천 동산(東山)에 있는 천연 남근석은 그 적나라함이 삼막사의 그것과 쌍을 이룰 수 있을 듯합니다. 소위 공알바위라 해서 바위를 돌로 갈아 구멍을 내는 행위는 울산 어물리 마애불이나 경주 굴불사지 사면석불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이 모두 자식을 바라던 민초들의 소리 없는 반항이자 항변이었습니다. 다랭이 마을에서 암수바위를 만나다 남해 바다에 있는 남해군은 볼거리가 참 많습니다. 개인적으로 볼 때 남해군이 가진 매력은 창선대교에서 내려다보는 죽방렴, 파도와 해풍을 막기 위한 방풍림, ‘어서 오시다’ 혹은 ‘안녕히 가시다’와 같은 남해 섬 특유의 사투리, ‘물건’이니 ‘도마’니 해서 생각만 해도 잔웃음을 자아내는 재미있는 지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다가 김만중이 유배를 와서 그의 생을 마무리했던 노도, 이순신이 운명한 이락포, 이성계가 명명한 금산 등 역사적인 이야기까지 덧붙이고 산과 바다에서 나는 풍부한 자원까지 고려한다면 그야말로 ‘보물섬’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남해에서 찾아낸 보물 중 보물은 뭐니 뭐니 해도 바다로 곧 떨어질 듯한 논배미라 하겠습니다. 섬을 일주하다 바다에 바로 접하기까지 논배미가 첩첩히 조성되어진 것을 흔히 볼 수 있지요. 특히, 남면 가천마을에 이르면 다랭이논이라 해서 지난 2005년 1월 명승 제15호로 지정된 아름다운 풍경을 만날 수 있습니다. 다랭이는 ‘다랑이’, ‘다락’, ‘달갱이’의 사투리로 좁고 작은 논배미를 일컫는데 코딱지만한 크기부터 보통 20-30평 남짓한 크기의 다양한 계단식논을 만날 수 있습니다. 지금쯤이면 마늘과 같은 밭작물이 제 푸르름을 더해가고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다랭이마을 아래에 암수바위가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숫바위를 숫미륵, 암바위를 암미륵이라 일컫습니다. 남근석처럼 우뚝 솟은 숫바위 바로 뒤에는 둥그스럼한 바위가 반으로 갈라진 채 여근의 형상으로 자리하고 있고 그 뒤에는 만삭이 된 여성이 비스듬히 누워있는 듯한 암미륵이 보입니다. 1751년 10월 23일에 남해 현령 조광진이 꿈을 꾸고 난 후 이 바위를 땅에서 꺼내 미륵불로 봉안하고 논 다섯 마지기를 바쳤다고 합니다. 크고 생김새가 독특한 선돌이 대개 미륵신앙의 대상이 되었듯이 이 바위 또한 남근석을 닮은 선돌이 미륵불로까지 승격된 사례라 하겠습니다. 암수바위를 보고 마을로 몇 걸음 올라오다보면 이번에는 돌탑으로 쌓은 밥무덤을 만날 수 있습니다. 현지인들이 ‘밥구디기’라고 부르는데요, 이곳에서 매년 음력 10월 보름 저녁 8시경에 동제(洞祭)를 지내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이 밥무덤 옆에 당산나무가 있었다는데 지금은 없어졌습니다. 이 마을에서는 동제를 두 번 모시는데 10월 15일에는 밥무덤에서, 암수바위가 발견된 10월 23일에는 암수바위에서 제의를 갖는 것이죠. 밥무덤은 제삿밥을 얻어먹지 못한 혼령에게 밥을 주어 풍작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마을내 세 군데 밥무덤이 있는데 마을 가운데 자리한 돌탑형식의 밥무덤에서만 동제를 지내고 나머지 두 군데에는 밥만 모시고 있답니다. 마을 뒷산 깨끗한 곳에서 채취한 황토를 기존 밥무덤의 황토와 바꾸어 넣고 햇곡식과 과일, 생선 등으로 상을 차려 풍농과 마을 안녕을 비는 제를 올린 뒤 황토를 파서 그곳에 밥을 모시고 덮개돌로 덮어둡니다. 초등교원 신규임용시험을 치르는 날, 대폭 줄어든 채용인원으로 인해 시험장 분위기가 여간 어색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같은 공간에서 4년을 공부했던 어제의 동기가 오늘엔 서로가 서로를 떨어뜨리고 경계해야하는 경쟁자여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채용인원이 줄어든 데는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출산율이 떨어지고 있는 현실 또한 무시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이제 저출산 문제는 우려할만한 수준을 훌쩍 넘어 심각한 사회문제로 나타나기에 이르렀습니다. 저 멀리 선사시대 암각화에서부터 선돌과 남근석, 성혈, 장승, 풍수지리사상에서 남아선호사상까지 긴 흐름을 겪으면서 민초들이 바랬던 것은 결국 ‘다산(多産)과 풍요(豊饒)’였던 것 같습니다. 그 염원에는 가정사의 문제만이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마을 전체의 번영을 위한 염원도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그 바램은 한 가정의 문제, 한 마을의 문제를 벗어나 국가적 과제로까지 다뤄져야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은 이래저래 낮아지는 출산율을 보며 한동안 왁자지껄했던 그 시절에 대한 미련을 가슴속에만 묻어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 울산 옥현초 교사
1 여덟 번 째 막내딸의 결혼식 전날 일흔 둘의 어머니는 내일이면 신부가 될 막내와 나란히 누워 천정을 쳐다본다. 이 딸을 낳던 그 이른 봄 쌀쌀했던 산부인과 병실에 누워있던 자신의 모습이 어제처럼 다가온다. 어머니는 성장한 딸의 어깨를 가볍게 껴안는다. “엄마, 얼마만이예요. 저를 껴안고 자던 것이?” “세 살 때까지 엄마의 젖을 먹었으니까, 이십삼 년 만이다.” “제가 세 살 때까지 엄마 젖을 먹었어요? 그 때까지 엄마가 젖이….” 막내는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세 살 때까지 젖을 먹었다니, 처음 듣는 말이다. “세 살 때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너도 천재는 아니구나.” 옆 침대에서 아버지가 장난스럽게 말한다. “제가 세 살 때까지 엄마 품에 잤다면 아빠가 저를 얼마나 싫어했을까? 제가 엄마의 젖을 다 차지해 버렸으니?” 막내가 아버지를 향해 돌아누우면서 실눈으로 웃었다. “아, 생각이 나요? 자다가 한밤중에 잠이 깨어보면 제가 엄마 등 뒤에 혼자 있었어요. 아빠가 절 뒤로 밀려버렸지요?” “프로이드할아버지가 들으면 웃겠구나. 엄마를 사이에 두고 딸이 아빠와 다투었으니….” 셋은 소리 내어 웃는다. “그런데 왜 저를 세 살 때까지 젖을 먹이셨어요? 우유가 없었어요?” “왜 우유가 없었겠니? 네 언니들과 오빠들 중에는 엄마가 젖이 모자라 우유만 먹고 자란 애도 있었어.” 아버지가 대신 대답한다. 그렇다면 왜 나는 세 살 때까지 젖을 먹였을까? “어머니는 너를 누구보다도 사랑했으니까, 그랬지.” “제가 몸이 허약했었나요?” 막내는 이해할 수 없다. “그런 것도 아니다. 세 살 때까지 엄마 젖을 먹었으니 얼마나 건강했다고….” 아버지가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막내는 그 음색이 유다르게 들렸다. 처음 듣는 말이다. 그 때 막내는 엄마의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엄마가 너를 가졌다는 것을 안 때에 네 맏 언니 결혼 날짜가 잡혔던 때였지. 그래서 너는 규중이와 겨우 여덟 달 밖에 차이가 안 나지 않니?” 규중이는 큰 딸의 맏아들이다. 막내를 가졌다는 것을 안 것은 큰 딸이 약혼을 할 무렵이었다. 아무래도 몸이 이상해서 몰래 혼자서 산부인과를 찾았다. 엄마의 아기 일곱을 다 받아낸 늙은 여의사는 손으로 입을 가리면서 소리 없이 웃었다. 엄마는 덜컥 겁이 났다. “엄만 저를 가졌다는 것을 알고서 즐겁지 않으셨군요?” 막내의 말에 어머니는 말문이 막혔다. “그래서 일평생 네게 죄지은 심정으로 살아오셨다.” 아버지가 아내의 마음을 딸에게 전한다. “그럼 혹시 중절수술을 생각하셨어요?” “엄마는 겁쟁이라 그런 마음은 생각지도 못했다.” 아버지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태연히 말한다. 어머니는 남편을 향해 돌아누운 막내딸의 등을 뒤로 감싸 안고 그 등에 볼을 댄다. 스물일곱의 처녀가 돌도 채 안된 아기가 된다. 늘 딸에게서 풍겨오던 젊음의 향기가 비릿한 젖 냄새로 변한다. 딸을 껴안을 팔에 힘을 준다. 토실토실 살 오른 아기가 품안으로 들어온다. 2 일곱을 낳았어도 이렇게 진통이 심하지는 않았다. 온 몸의 뼈들이 소리를 지르면서 부서지고 있었다. 아픔이 더해질 때부터 산모는 모두 제 죄 값으로 알았다. 버리려 했다가 어쩌지 못해서 배속에 안고 살아왔으니, 아기가 어머니 자궁 속에서 당한 배신을 모를 리 없을 것이다. 이제 그 앙갚음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느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진통이 더해질수록, 잘못했습니다. 부디 이 아기를 낳게 해 주신다면 제가 어느 자식보다 잘 키우겠습니다. 그렇게 발광하듯이 기도했다. 모진 아픔 중에서도 순간순간 그 아픔이 쉴 때가 있었는데, 그 때마다 산모는 알지도 못하는 신에게 간절히 기도했다. 그러다가 아픔에 못 이겨 잠시 의식을 잃었던가, 힘을 더 내라는 의사의 재촉에 내가 마흔여섯 해 동안 쌓아두었던 힘을 다 쏟았다. 순간, 아픔이 가시더니, 어디선가 닭울음소리처럼 가느다란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다시 두런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딸이구나. 참 귀엽게 생겼구나. 참 너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으니….” 친정어머니 목소리가 들리더니 차츰 눈앞으로 부연 공간이 트여갔다. “정신이 드느냐? 딸이다. 넷씩 잘 되었다. 막내딸은 보배다. 이 서방이 좋아하겠구나.” 친정어머니는 목소리가 낭랑했다. “우리 아기! 다, 다 있어요?” 산모는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건강한 아기예요.”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옆에 남편이 서있었다. “어디 봐요?” 산모는 상체를 일으키려 했다. “가만히 누워 있으라.” 친정어머니가 아기를 싼 보자기를 풀어서 산모 앞으로 내밀었다. 산모는 아기를 받았다. 눈을 감고 발그스름하게 홍조 띈 볼이 실룩거렸다. 물속에서 튀어나온 듯이 젖은 머리가 얼굴 위에 몇 오라기 드리워졌고, 그 아래로 발그스름한 뺨 근육이 조금씩 움직였다. 이것이 생명이로구나. 산모는 아기의 얼굴에 눈물 한 방울을 떨어뜨렸다. 아기는 잠에 빠져있었다. 산모는 감겨있는 아기의 눈이 불안했다. 저 눈이 뜰까. “어머님, 아기 발 좀 봐요.” 산모는 아기보자기를 친정어머니에게 맡기고는 아기 다리를 만져보았다. 연하디 연한 발에 손이 닿자 즉각 반응이 왔다. 어른 엄지손가락만 발이 옴지락거렸다. 발가락을 세여 보았다. 양쪽 두 다리에 각각 다섯 개씩이다. 아기의 손을 잡았다. 꼭 누르면 없어질 것 같은 연하디 연한 손이 산모의 손바닥 안으로 들어왔다. “손가락은 다 있냐?” 친정어머니가 웃으면서 한마디 했다. 아기는 세상모르고 자고 있다. 눈을 감고 있는 아기의 얼굴색이 차츰 펴지는 것 같았다. 두 팔과 두 다리가 꼼작거렸다. 그 때마다 산모의 심장도 같이 뛰었다. 딸 셋 아들 넷을 낳았으나 이렇게 갓난아기를 눈여겨 들여다보기는 처음이다. 입술 언저리가 실룩이고, 발가락과 손가락도 이따금 미세하게 꼼틀거리는 것 같았다. 살아있는 생명의 울림이었다. “모자란 것 없이 다 달렸다. 다리와 팔과 모가지와 눈이 멀쩡하고, 입과 코와 예쁘다.” 아기를 안은 외할머니가 산모에게 확인시키듯이 말했다.[PAGE BREAK]4 너는 한 달이 지나면서 젖살이 붙기 시작했다. 얼굴과 손과 다리에 포동포동 살이 오르더니 하루 다르게 얼굴 윤곽이 번듯해지더라. 한 번은 네 침대로 다가갔더니, 천정을 행해 바로 누워있던 네가 고개를 나에게로 돌리더구나. 사람 기척을 알고 목 가누기를 하는 것이었다. 엄마를 알아본다. 엄마는 가슴이 벅차더구나. 이제는 네가 미련한 엄마를 거부하지 않는구나. 그날부터 너는 바로 눕혀놓으면 되돌아 바로 눕기도 하고, 오른편으로 누웠다가 왼편으로 고개를 돌리기도 하고, 인기척이 나는 곳으로 눈동자를 굴리기도 했다. 손가락을 입에 넣어 빨기도 하고, 손을 허우적거리고 발을 바동거리기도 했다. 엄마는 안심했다. 고개를 돌릴 수도 눈동자도 자유롭게 굴리는구나. 나와 의사가 소통되는구나. 몸의 각 부위를 자유롭게 움직이는구나. 너는 젖을 빨면서도 주변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고, 천정에 매달린 종이비행기를 바라보면서 눈동자를 굴렸다. 내가 나지막하게 네 이름을 부르면 너는 소리 나는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안아주면 좋아라고 벙긋 웃었다. 그런 네 모습을 대하니 안심되고 감격스러우면서 누구엔지 모르지만 감사했어. 우선 네가 고마웠다. 엄마의 그 모진 마음을 알아주고 풀어주는 네 웃음과 손놀림이 고마웠다. 그 때 내가 지금 내가 믿는 주님을 알았다면 그 분에게 감사했을 것이다. 그러나 너에 대한 내 마음을 네가 그 분에가 돌려드렸다고 생각되었다. 두 달이 지나면서 너는 하루 다르게 변했다. 침대에 눕혀두면 깨어 있을 때에는 한 순간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허공을 향해 손을 허우적거리고 발짓을 하면서 울기도 했다. 그런데 그날은 특별했다. “미연아!” 내가 네 이름을 불렀다. 그 때 너는 벙긋 웃더니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우리 아가 착한 아가” 이번에는 다른 말을 하면서 일부러 눈을 크게 떴다. 그 때 너는 엄마를 향해 벙긋 웃으면서 눈동자를 굴렸다. 순간 나는 네가 무슨 소리를 듣고 반응한다는 것을 알았다. 단순한 기척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엄마의 소리를 듣고 대답한다는 알았다. 순간 나는 가슴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네 조개껍질 같은 귀가 엄마의 말을 듣는구나. “미연아아아!” 엄마는 크게 소리질러 네 이름을 부르면서 고개를 몇 번이나 끄덕였다. 너는 한참 내 입놀림을 바라보더니 벙긋 웃었다. 내 말에 응답하는 네가 신기했다. 그런데 엄마는 더한 욕심을 갖게 되었다. 소리를 듣기는 하는데 정말 말할 수 있을까. 엄마는 하루에 몇 번씩 너를 안을 때마다 ‘착한 미연아!’하고 큰소리로 말했다. 네가 듣기는 하는 것 같은데, 정말 듣고 말할까. 그 날도 나는 낮잠에서 깨어난 네게 젖을 먹이면서, “오호, 착한 미연아!” 고함처럼 소리를 질렀다. 그랬더니, “응, 응” 네가 벙긋 웃으면서 옹알거리는 것이었다. 틀림없이 내 말에 대한 의사 표시였다. 그 순간 가슴을 누르던 큰 바위가 스르르 풀려나갔다. 엄마는 목이 매였다. 말을 하는구나. 네가 이 세상에서 처음 말했던 그것이 ‘응응’이었다. 그날부터 엄마는 너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너는 항상 ‘응응’ 대답하더니, 어느 날부터 인가 ‘응아, 응아,’ 두 음절로 바꾸어졌다. 그 뒤부터 너는 몸놀림이 아주 자유로워지면서 적극적이었다. 고개를 뻣뻣하게 세워 좀더 멀리 보려고 했고, 젖을 다 먹고는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기도 했다. 5 네 몸이 하루 다르게 커져갔다. 갓났을 때보다 거의 두 배는 되었을 것이다. 그 즈음 너는 이따금 울기도 했고, 혼자서 놀다가 사람이 다가가면 좋아서인지 ‘까르륵 까르륵’ 소리 내어 웃기도 했다. 젖을 먹다가는 젖에서 입을 떼고는 한 손으로 젖꼭지를 만지작거리는 것이었다. 너무나 신기했다. 다른 애들이 자랄 때도 그랬는지 기억이 없지만, 너는 엄마의 젖꼭지에서 젖이 나와서 먹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엄마가 네가 만지는 젖꼭지에서 젖을 짜내면 그것을 혀로 핥아보고는 방긋이 웃었다. 그리고는 곧 젖을 다시 빨기 시작했다. 하루가 다르게 몸과 그 놀림이 달라졌다. 장난감을 주면 좋아라하면서 손에 쥔 채 흔들었다. 엄마가 장남감을 빼앗으면 손을 허우적거리면서 그것을 도로 달라고 울기도 했다. 텔레비전을 켜놓으면 그 쪽으로 고개를 돌려 유심히 바라보기도 했다. 어느 날 시골에서 외할머니가 올라오셨다. “오오. 내 새끼 이렇게 컸구나!” 노인은 눈물을 글썽이면서 너를 안아 뺨에 입을 맞추는데, 네가 그만 ‘으앙’ 하고 울어버렸다. 외할머니는 멀쑥했다. “이놈이 벌써 낯을 가리는구나!” 외할머니가 너를 방바닥에 내려놓았는데, 아니, 이게 어쩐 일이야? 네가 엎드린 채 두 다리와 두 팔로 방바닥을 쓸면서 내게로 기어오는 것이 아닌가. “아니, 이 애가 기는구나! 기어?” 외할머니가 눈을 둥그렇게 뜨고 놀라면서 방안에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기어 다니는 것이 그렇게 쉽지는 않았다. 온 몸을 움직이다가 뒤로 나자빠지더니 ‘만세 자세’를 하더니 뭣이 마음대로 안 되는지 ‘아앙’하고 울어버렸다. 그러다가 다시 허우적거리더니 엎드린 자세가 되었다. 그런 자세로 손발을 마구 흔들기 시작했다. “자, 어서 와라. 어서 와 와 와!” 엄마는 우는 아이를 달래지 않고 엎어져 허우적거리는데도 다가오기를 재촉하였다. 아기는 내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다시 기를 쓰고 기어보려고 했다. “이젠 그만 해라. 됐어. 내일이나 모래쯤이면 온 방안을 기어다닐 것이다.” 외할머니는 아기의 기는 것이 기특했던지 얼른 아기를 안아서 내게 넘겼다. 나는 아기를 안고서 눈물과 콧물과 땀으로 뒤범벅이 된 아기 얼굴을 내려다보다가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사람의 얼굴을 알아봐서 낯가림을 하더니, 네가 기는구나. 팔과 다리가 온전하구나. 내가 그렇게 벽장에서 뛰어내리면서 너를 지우려 했는데도, 너는 끄떡 않고 이렇게 한 생명으로 태어나서 내 앞에서 시위를 하는구나. 엄마는 부끄럽고 감격하여 네 당찬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아기는 사람이 나타나면 좋아라고 소리를 질렀고, 낯선 사람이면 낯가림을 했다. 젖을 먹다가도 장난감을 보면 얼른 젖을 버리고 기어가서 그것을 갖고 왔다. 온 방안에 아기 장난감으로 가득찼다. 우리 부부는 아기를 위해서 침대를 치웠다. 방에서 마음대로 놀도록 했다. 언니나 오빠가 쓰던 장난감들이 많은 데도 모두 새것으로 채워주었다. 아기는 잠을 자면서도 몸을 자주 뒤척였다. 반듯하게 눕혀놓았는데, 조금 있으면 엎드리기도 하고 마음 내키는 대로 몸을 움직였다. 그날 저녁 식사를 마친 다음에 식구들은 다시 이 막내의 재롱을 보려고 둘러앉았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까지 우리 집으로 오셨을 때였다. 엄마 품에서 할머니에게로 기어가던 아기가 갑자기 멈추더니, 뒤돌아서 엄마의 눈치를 살폈다. 식구들이 아기를 중심으로 빙하니 둘러앉아 있었다. 아기가 뒤돌아 기려고 하다가 잠시 멈칫 하더니 오똑 일어나 앉았다. 몸이 기웃뚱거릴 때마다 아기는 손으로 방바닥을 짚으면서 중심을 잡았다. “아니, 아기가 앉는구나? ” 아들 집에서 막내 손녀의 재롱을 받으려던 두 노인의 눈이 커졌다. “제가 몇 달째냐?” 노인이 모르고 묻는 것이 아니었다. 손녀의 출생년월일시까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어른이었다. “아직 여섯 달인데 홀로 앉아?” 아기는 앉은 채로 바로 위 오빠가 던져주는 인형을 들더니 그것을 안고서 상체를 뒤틀면서 제 엄마를 찾았다. 그런데 나는 할아버지를 향하고 앉아있는 미연의 바로 뒤에 앉아 있었다. 아기는 엄마를 찾지 못했는지, 앉은 채로 움직이더라. 식구들이 박수를 쳤다. 엄마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등뼈에도 이상이 없구나. 그 때 아기는 뭣이 좋은지 두 손을 마주부딪치면서 손뼉을 쳤다. 아! 손가락들도 이상이 없구나. 엄마에게는 감격이었다. 아기가 홀로 앉기를 시작해서 두 주일쯤 지나서였다. 아기가 입을 열고 ‘압’ ‘엄’하고 그 뒷 음절을 말하려고 애를 썼다. ‘응응’ ‘으앙, 응앙’에서 다른 음절을 배우고 있었다. 어느 날 엄마는 아침 식사 후에 아기 젖을 먹이다가, “맘마 찌찌.” 그렇게 말하고서 오른손을 가로 흔들었다. 그만 먹으라는 신호였다. 그 동안 이 신호가 엄마와 아기 사이에 이루어졌던 약속이었다. “맘마? 엄마!” 아기가 입에서 젖을 떼더니, 엄마 목소리대로 말하는 것이었다. “뭐야? 엄마라고!” 나는 ‘맘마’라는 불명확한 음절이 ‘엄마’로 들렸던 것이다. 그래서 버럭 고함을 지르면서 아기를 꼭 껴안았다. “엄마라고 했니! 내가 네 엄마야!” 나는 복받치는 울음을 어금니 사이로 씹으면서 같이 울었다. 그 날부터 아기의 입에서는 집안 식구들 호칭이 계속되었다. 엄마, 아빠, 언니, 오빠, 할버지. 할니…. 그러나 그 음절들은 나의 귀에만 들리는 특별한 단어였다. [PAGE BREAK]6 며칠 머무시다가 노인네 두 분이 집으로 돌아가신 뒷날 저녁에 아기의 온 몸이 열로 끓기 시작했다. 재어보니 39도가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 아빠와 밤새도록 아기를 간호했다. 찬 물수건으로 열을 잡았다. 열이 38도로 내렸고, 칭얼대던 아기는 힘이 진하여선지 신음소리만 내다가 눈을 붙였다. 뒷날 병원을 찾아서 소아병동에서 이틀을 살고 나왔다. 집으로 돌아와서 아기를 방바닥 한가운데 앉혀 놓았더니 어느 새에 자기 침대로 기어갔다. 아기는 침대 모서리를 붙잡고 일어서는 것이었다. 옷을 갈아입던 남편이 소리를 질렀다. “미연아!” 아기는 소리를 들은 척도 않고 두 팔로 자기 침대로 올라가려 끙끙거렸다. 이틀간의 외출에서 돌아온 아기는 제 침대를 찾고서 반가웠던 것일까. 엄마는 얼른 아기 침대의 한쪽 문을 열어주었다. 이런 때를 예상했던지 아기 침대의 한편을 문으로 여닫을 수 있게 만들어놓았다. 아기는 엄마가 하고 있는 것을 눈치 채었는지, 침대를 놓고 방바닥에 앉았다가 다시 일어나 열려진 문으로 가 침대를 부여잡고 일어났다. “미연아!” 엄마가 소리를 질렀다. 며칠 고열에 신음했던 아기에게 이런 힘이 어디서 솟아났던가. 아기는 방 구석구석을 기어 다니면서 손에 잡히는 것을 의지해서 혼자서 일어나려 했다. 누구도 만류하지 않았다. 엄마는 그 애 손을 붙들고 같이 세워 걸려보고 싶었으나 참았다. 혼자 그러다가 자기 침대를 붙잡고 쉽게 일어났다. 항상 침대 문을 열어놓았기 때문에 거기를 통해서 침대 위로 올라가려고 애를 썼다. 아기는 그 침대 안에 있는 장난감을 집어내기도 했다. 이따금 젖을 먹이다가 우유병을 침대 안에 놔뒀더니 그것을 들고 젖꼭지를 빨았다. 그러다가 엄마를 쳐다보았다. 엄마의 젖 맛을 그 우유병에서 맛보았다. 젖을 먹이는데 아기의 잇몸 감촉이 예전과 달랐다. 젖꼭지에 이상한 이물질이 끼어있는 듯했다. 혹시 아기가 다른 것을 입안에 넣고 젖을 빨고 있는가 해서 물렸던 젖을 빼었다. 아기가 울었다. 그 순간 아기의 연분홍 잇몸을 비비고 하얀 젖니가 눈을 트듯이 솟아나고 있었다. “여보!” 엄나는 아빠를 불렀다. 퇴근해서 세수하던 아빠가 놀라서 나와서는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미연이가 이가…이가…?” 물렸던 젖을 다시 빼고서 아기의 두 잇몸 사이에 앞 젖니를 보였다. “아니, 이 애가 빠르긴 빠르구나!” 아빠 엄마는 서로 쳐다보면서 웃었다. 잇몸에서 하얀 이가 돋아나면서 아기는 젖을 먹는 태도도 달라졌다. 젖을 빨다가 이따금 젖꼭지를 슬며시 물어뜯기도 했다. “아얏” 엄마가 소리를 지르면 아기는 입술을 젖에서 떼고서 엄마를 올려다보았다. “엄마 젖을 깨물면 어떻게 해?” 엄마는 아기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나 아기가 깨문 젖이 아파도 엄마는 즐거웠다. 7 미연이가 세상에 태어나서 11개월이 되는 날이었다. 달마다 태어난 날에는 생일을 차려주기로 작정했다. 그것으로 미연에게 대한 엄마의 마음이었다. 토요일이었다. 학교 갔던 미연의 누나와 오빠들이 돌아왔다. 아버지도 일찍 퇴근했다. 오늘은 미연이가 태어난 3월 23일이었다. 모두들 함께 저녁을 먹고서 이 늦둥이를 가운데 놓고 집안 식구들이 즐기고 있었다. 미연이는 식구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인지 얼른 침대 모서리를 붙잡고 일어섰다. 그리고서 침대를 붙잡고 중간에 있는 침대 출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짚고서는 걷는구나.” 누군가가 신기한 듯이 중얼거렸다. 아기는 침대 문에서 잠시 머뭇거렸다. 침대 위로 올라갈 것인가, 말 것인가, 계산하고 있었다. 그 때였다. “미연아! 이리 아빠에게.” 아빠가 퇴근길에 사온 나팔 장난감을 흔들어 보이면서 아기를 불렀다. 침대로 오르려던 아기가 고개를 젖히고서 소리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미연아! 여기 와라.” 아빠는 장난감을 흔들어보였다. 나팔 장난감 끝에는 종이 달려있었다. 침대에 오르려던 아기가 소리 나는 쪽으로 몸을 돌렸다. “미연아! 이리 와라!” 아빠가 파랗고 노란 색이 칠해진 장난감 나팔을 흔들었다. 거기에서 종소리가 났다. 아기는 잠시 사람들 시선을 살피더니, 휘청거리면서 아빠에게도 두어 걸음을 내딛었다. “아기가 걷는다!” 누가 고함을 질렀다. 틀림없이 미연이는 걷고 있었다. 엄마는 두 뺨으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않고 걷다가 주저앉은 아기를 보면서 울었다. 쓰러진 아기가 다시 일어나서는 계속 나팔 종을 흔들고 있는 아빠 쪽을 향해 걸음을 옮겨놓았다. 겨우 한 걸음을 걷고는 쓰러졌다. 그리고 다시 일어났다. 두 발자국 옮겨놓더니 주저앉았다. 그러나 누구도 아기를 거들어주지 않았다.
-선생님과 어른들을 존경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교육이 제대로 될 수 없음을 명심하고 우리가 실추시킨 교권을 우리가 일으켜 세우는데 앞장선다. -우리는 우리 자식들을 가르치시는 선생님을 진심으로 존경하며 아이들 앞에서 선생님과 어른들을 낮추는 어떠한 언행도 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 자식들을 가르치기 위해 애쓰시는 선생님의 어떠한 교육적 지도도 적극 지지하며 불미스러운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우리는 인성지도와 생활지도에 헌신적으로 노력하시는 선생님께 감사드리며 학교와 일관된 가정교육을 통해 참된 인간성 함양에 동참한다. 2001년 11월 대전 월평동에 위치한 서대전고등학교에서 열린 ‘스승존경 결의대회’에서 학부모와 동문, 지역주민이 채택한 결의문이다. 학부모들은 때려서라도 사람을 만들어 달라며 회초리도 전달했다. ‘학교붕괴’라는 유행어가 탄생할 즈음 열린 이 결의대회는 인근 학교는 물론 전국으로 확산돼 나갔다. ‘사랑의 매’ 전달이 이어지고, 선생님 구두 닦아 드리기와 선생님께 편지쓰기 운동도 일어났다. 스승의 은혜에 금연으로 보답한다며 담배 화형식을 갖는 학교도 나왔다. 교권회복 운동의 메카가 된 서대전고가 스승존경 운동을 시작한 것은 선생님들이 기(氣)를 펼 수 있게 해줘야 학교붕괴도 막고 공교육도 살릴 수 있다는 오원균 교장의 신념에서 비롯됐다. 오 교장은 학부모 대표들에게 “교사들이 뒤탈을 우려해 수업 중에 아이들이 엎드려 자거나 말거나 내버려둬서야 교육이 되겠느냐”며 선생님 존경의 필요성을 역설해 나갔다. 이 말에 공감한 학부모들이 주축이 돼 스승존경 결의대회를 연 것이다. 결의대회 이후 선생님들의 사기는 오르고, 학생들은 선생님의 말을 ‘말씀’으로 받아들였다. 툭 하면 걸려오던 학부모들의 시비전화도 사라졌다. 신바람이 난 선생님들은 수업에 더 적극적으로 임하고, 아이들의 눈동자는 빛났다. 학교가 제대로 돌아간 결과는 시험성적이 말해줬다. 2003학년도 대입수능시험의 평균 점수가 8점이나 올랐다. 전국 평균 점수가 전년대비 3.2점 떨어진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성과였다. ‘선생님 존경하니 성적은 저절로 올라’라는 제목의 보도가 줄을 이었다. 서대전고는 스승존경 운동을 펼치면서 지역 명문고로 입지를 굳혔다. 그러나 이 운동을 주도하고 스승존경운동중앙협의회장을 맡고 있는 오 교장은 지금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다. 여러 시․도에 스승존경운동협의회가 만들어지면서 전국적인 교육시민사회운동으로 승화될 것 같았던 스승존경운동이 침체에 빠졌기 때문이다. 선생님들의 사기진작에 1차적인 책임이 있는 교육부나 교육청은 언론의 관심이 멀어지자 덩달아 이 운동을 외면하고 있다. 오 교장은 “스승의 자존심을 지켜주고, 사기를 높여주면 교실붕괴는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너무나 당연한 이 사실이 올해도 우리의 숙제다. / 이낙진 leenj@kfta.or.kr
필자는 2006년 새해 벽두에 본란을 통해 2006년 한 해는 무너진 교육의 기강과 규율이 바로 서고, 추락한 교원의 사기와 권위가 회복되는 해로 만들어야 하며, 법과 원칙을 지켜야 손해 보지 않는다는 행위준칙이 지켜져야 우리 교육에 미래와 희망이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새해가 열릴 때마다 금년에는 좀 더 나아지겠지 하는 기대와 발전에의 희망과 정성과 열성을 다하려는 다짐으로 출발하지만, 기대와 희망과 다짐이 충족되기란 어려운 모양이다. 여전히 교육에서의 기강과 규율은 비틀거리고, 교원들의 사기와 권위는 뒷걸음질치고 있다. 교육은 국가발전 전략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으며, 여건의 개선 없는 신자유주의적 사고가 교육계를 휘감고 있다. 이제 다시 2007년을 열면서 과거를 되돌아보고, 교육의 주체들이 서로 네 탓만 할 것이 아니라 내 탓이 무엇인가를 성찰하면서 새해에 관한 설계를 실행에 옮겨야 할 때다. 지난 2006년은 어느 해보다 다양하고 복잡한 우리 교육계의 절실한 과제들의 논의와 논쟁이 이루어졌다. 교원능력개발평가제 시행에 대한 논란, 교육인적자원부장관 임명 파행, 학교급식 파문, 사립학교법 개정을 둘러싼 논쟁, 공무원연금법 개악 시정 촉구, 학급총량제 도입에 따른 열악한 교육환경 논쟁, 지방교육자치제의 정체성 혼란 문제, 열악한 교육재정 극복의 시급성, 수석교사제 도입, 학제 개편 등 교육제도와 정책에 관한 논의 및 논쟁, 교사 폭행, 학교폭력, 집단 따돌림 등의 교원과 학생의 인권침해 논쟁, 통합논술 도입에 따른 대학입시의 타당성 제고 논쟁, 공교육 정상화 등 숱한 과제로 교직사회의 불안정과 교육의 이해 혹은 관련 집단 간 의견의 상충이 심화된 해였다. 이러한 논쟁과 이견들은 그 자체로 생산적일 수 있다. 논쟁과 논의와 타협 및 설득을 통하여 보다 나은 방안이 도출되고 제3의 길을 찾을 수 있는 길을 열어 주기 때문이다. 문제는 논쟁과 논의만 무성했지 어느 것 하나 교육이해 집단 간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다시 2007년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과연 금년 한 해는 어떤 주제로 고민하는 해가 되어야 하는가? 이 질문에 필자는 ‘공교육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해’로 삼을 것을 제안한다. 교육의 역사를 통하여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우리 국민의 교육에 대한 신뢰는 매우 높았다. 교육은 개인의 행복을 가져다주는 도깨비 방망이 같은 것으로 여겼으며, 교육이 국가와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었다는 점을 의심하지 않았다. 이러한 교육에 대한 신뢰는 지난 IMF 시점을 정점으로 최근 10여년 사이에 불신의 곡선이 거의 직선을 그리는 양상으로 진행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사정이 이렇게 된 이유는 다양하지만, 핵심적인 요인은 우리 교원들과 정부라고 생각한다. 인정하기 어렵겠지만 우리 교육자들에게 그 1차적인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과 학생들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는데, 그 변화를 생산적으로 이끌기 위한 교육자들의 노력과 분발이 미흡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개선․혁신․개혁과 같은 이야기만 나오면 거부감을 보이고 회피하려는 행태를 교육자들이 지니고 있다는 사회인과 학부모들의 비판을 겸허하게 수용하면서 교육자가 서 있어야 할 자리를 다시 한 번 점검할 일이다. 정부 또한 교육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이다. 교육예산 GDP 6% 확보 약속을 지키지 않음으로써 국가발전을 위한 교육의 중요성과 신뢰감을 떨어뜨리고 있다. 교육은 투자 없는 결실을 기대하기 어려운 공적 기업이다. 과대 과밀학급을 해소하고 학급당 학생 수를 1명이라도 줄이기 위한 투자, 교사 대 학생 비를 줄이기 위한 투자, 교사의 수업시수를 OECD 수준으로 접근시키는 등의 교육여건을 개선하기 위한 투자, 유능한 교원 양성을 위한 투자, 교원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한 투자, 사교육이 아니더라도 상급학교 진학과 학생 개개인의 적성 및 잠재능력 개발이 가능한 공교육에의 투자, 학교경영과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투자 없이 교원들의 희생과 교육애를 호소하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는 처사다. 교원들로 하여금 신명나게 일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어 주면서 열성을 다 해 학생 교육과 지도에 힘쓰자고 호소하는 것이 순리에 맞는다. 지난 2006년과 마찬가지로 2007년에도 교육계에 풀기 어려운 과제들에 대한 논쟁이 무성할 것이다. 교원능력개발평가제, 수석교사제, 교육자치제, 입시제도 등의 제도에 관한 논쟁은 말할 것도 없고, 국가 수준 교육과정의 부분 개편과 더불어 어떤 인간을 어떤 내용으로 어떻게 길러낼 것인가 등 교육의 본질 추구 논쟁도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다. 교육에 관한 이 모든 논의와 논쟁들이 교육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회복한다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