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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최소한 40대 이상의 독자들은 학창시절에 교실 한가운데에 놓여있던 조개탄난로를 기억할 것이다. 조개탄은 모양이 조개모양으로 개당 무게가 약 50g정도였다. 무연탄의 일종으로 70년대에는 대부분의 학교에서 겨울난방연료로 사용하던 것이다. 그보다 이전에는 조개탄이 아니고 장작개비나 아카시아나무, 광솔 등을 이용하여 교실의 난로를 지피기도 했었다. 그때는 등교때마다 연료를 새끼로 묶어서 들고 가는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러웠었다. 이들 연료가 많아야 하루를 따뜻하게 보낼 수 있었다. 겨울은 그럭저럭 따뜻하게 보낼 수 있었지만, 여름이 되면 찜통교실을 벗어날 수 없었다. 가정에도 선풍기라는 것을 찾아보기 어려운 시절이었으니, 학교에서 선풍기를 보기는 더욱더 어려웠었다. 그렇게 여름을 인내와 끈기로 이겨내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의 학교환경은 현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 그 자체였다. 항간에는 6-70년대 교실에서 2000년대 학생들이 공부한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꼭 그런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예전의 교실환경과 현재의 교실환경은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던 것이 시대가 변하면서 지금은 대부분의 교실에 가스를 이용한 난방장치가 구비되어 있다. 여기에 여름의 무더위를 대비해 선풍기도 대부분 구비되어 있다. 예나 지금이나 더 큰 문제는 냉방문제이다. 겨울은 그럭저럭 견디지만 여름의 무더위를 견디기는 쉽지 않다. 그렇지만 아직도 많은 교실에는 제대로된 냉방장치가 구비되어 있지 않다. 매년 실태조사결과는 여러경로를 통해 접하지만 개선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선풍기 몇대로 여름을 나고 있는 것이다. 최근발표된 교육부의 자료에 따르면, 학교시설이 현대식으로 많이 개선됐지만 16% 가량의 초ㆍ중ㆍ고 교실에서는 재래식 난방시설로 인해 추위 속 수업이 진행되고 있는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지난해 6월 말 현재 전국 초ㆍ중ㆍ고교 및 특수학교 교실 총 49만1천370개 가운데 난방시설이 설치된 곳은 전체의 84.1%인 41만3천350개인 것으로 집계됐다고 하는데, 난방시설의 기준이 추위를 이기기 위한 충분한 시설이 갖추어진 것이라고 하는데, 이 수치가 정확한 것으로 생각되지는 않는다. 이보다 더 많은 학교들이 아직 충분한 난방시설을 갖추지 못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냉방시설은 에어컨, 냉온수기, 가변형 냉난방기 등 현대식 시설을 갖춘 것을 의미한다고 하는데,전체 49만1370개 교실 가운데 냉방시설이 돼 있는 곳은 30만7268개로 62.5%였으며 나머지 18만4102개(37.5%)는 여전히 여름철은 선풍기 등으로 더위를 식혀야 하는 '찜통교실'인 것으로 파악됐다고 한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냉방시설이 더 시급한 문제로 볼 수 있다. 냉방시설의 비율 62.5%도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생각이다. 이는 주변의 학교를 살펴보아도 쉽게 알 수 있는데, 대략 4-50%대가 좀더 정확한 수치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물론 다른 지역에는 훨씬 더 많은 냉방시설이 갖추어져 있을 수도 있다. 교육부에서는 앞으로 예산을 확보하여 일선학교에 냉,난방 시설이 완벽하게 보급되도록 한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스럽다는 생각이다.앞으로는 좀더 쾌적한 교실에서 학생들이 공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학교환경의 실질적인 측면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냉,난방 시설이 갖추어지지 않은 교실이 0%가 될때까지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0%가 된다고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현재 각 교실에 냉,난방장치(특히 냉방장치)가 완비되어 있지만 가동을 하지 못하는 곳도 상당수 있다. 대부분의 학교에 이러한 냉방시설을 활용할 수 있는 운영비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여름온도 30도를 넘어도냉방시설을 가동하지 못한다면 그 냉방장치는 그림의 떡이 될 공산이 크다. 이에대한 지원책도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별도의 예산배정이나 학교전기요금을 대폭인하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교총의 노력으로 학교의 전기요금이 인하되긴 했지만 추가인하가 필요하다. 특별예산을 들여서 시설을 확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원활한 가동이 되도록 후속조치까지도 취해야 한다. 가동률을 100%로 끌어 올려야 한다. 학교의 환경은 개선할 것이 너무 많다. 그렇지만 우선순위에서 본다면 냉, 난방 시설이 단연 으뜸일 것이다. 따라서 시설 미설치 교실은 0%로, 가동률은 100%로 끌어올려야 실질적인 개선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런 모든 것을 한꺼번에 개선하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그렇더라도 최선을 다하는 교육당국의 노력을 기대해 본다.
우리 학교와 자매학교를 맺고 있는 중국 학교 방문단이 올 봄에 우리 학교를 방문합니다. 이 방문단의 세부일정을 짜기 위해 몇 분의 선생님과 경주를 둘러보았습니다. 경주는 우리가 자랑하는 옛 도시답게 깨끗하고, 아름답게 꾸미져 있어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습니다. 경주 박물관을 둘러보고 나서 불국사로 갔습니다. 우리가 자랑하는 사찰이라 외국사람들이 많이 보입니다. 아무래도 외국 손님맞이 행사 준비로 가니까 외국사람들의 느낌이 궁금합니다. 그들의 밝은 모습을 보니 그들도 불국사는 매우 인상적인 모양입니다. 그런데 옥에 티가 하나 있군요. 나무에다 큰 못을 박아 놓았군요. 학교에서 ‘숲가꾸기 행사’도 같이 하다보니 아무래도 나무에 못질한 게 눈에 그슬립니다. 지나가는 스님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나무에 못질한 게 보기가 좋지 않습니다.” 스님은 시큰둥하게 답합니다. “그건, 우리 소관 아닙니다.” “???” “당국에서 알아서 합니다.” “그럼, 한 말씀하시지 않고요.” “그들이 우리 말 듣나요.” 우리 일행은 더 이상 말 붙이기가 민망하여 우두커니 서 있었다. 다른 나무도 똑같았다. 단풍나무는 껍질도 약한데 어김없이 못질을 해놓았다. ‘깔끔하다든지’, 아님 ‘나무에는 해가 없다든지,’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그렇게 한 분들도 그들 나름대로 이유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연보호 캠페인 덕분에 ‘나무를 꺾지 맙시다.’ ‘나무가 아파요.’ 이런 문구에 제법 익숙한 우리들에겐 이 못은 그저 부자연스럽기만 합니다. 경주 반월선 내의 석빙고 옆 나무에 쇠줄로 달아 놓은 조명등에 대해서도 옆의 선생님이 한 말씀 하십니다. “선진국에서는 스프링 줄을 이용하기에 나무의 성장에 방해가 되지 않던데.” 아무튼 문화재와 자연보호를 함께 생각해 보는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말그대로 신비의 영약이 개발되었다. 꺼져가던 심장을 강제로 뛰게 만들고 죽어가는 장기 세포를 살려낼 뿐만 아니라 죽은 뇌세포까지 재생시킬 수 있는 그야말로신비의 영약이었다. 불로초가 아니고 불사초였다. 말기암 환자들이 그 불사초로 인해 병상을 털고 나오는 모습에 온 세상이 떠들썩했고 임종을 앞 둔 의식불명의 환자들이 일어나 관을 부숴버리고 생명의 환호를 질렀다. 요한복음에 나오는 죽은 나사로가 3일만에 살아난 것과 별반 다름없는 기적이 실제 현세에서 일어나 살아있는 인간들이 영생의 기쁨으로 흥분의 도가니가 되었다. 그 약을 개발한 제약회사는 말그대로 빌게이트를 저만치 밀어내고 최고의 떼돈을 벌었고 약을 개발한 학자는 사람이 아니라 전지전능한 신이 되어 교주가 되어버렸다.다른 것은 몰라도 육신의 노쇠화로 죽는 경우는 거의 없게 되었다. 하지만 그 신비의 영약이 인류의 종말을 고하는 죽음의 약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죽는 사람이 없으니 세상의 모든 프로그램은 엄망진창이 되었고 인류의 신음소리, 울부짖는소리가 도처에서 진동하였다. 식료품이 턱도 없이 모자랐다. 밥을 달라고 울부짖으며 절도와 강도가 횡행하였다. 주거시설이 모자라 노숙자가 들쥐처럼 번져갔다. 의류품이 없다보니 원시인처럼 나뭇잎이나 거적때기를 두르고 사는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에너지는 폭발적으로 늘어났지만, 지구라는 환경조건은 이에 부응하지 못하고 날로 황폐해갔다. 결국 지구와 인류멸망이라는 위기 앞에서 결국불사초를 폐기하기로 결정하고 이의 순조로운 진행을 위해 각나라 대표들이 서울에 모였다. 그러나 전혀 예기치 못 한 일이 벌어졌다. 구름떼처럼 모인 군중들이 큰소리로 부르짓고 있었다. “살인마는 물러가라, 나는 살고 싶다!” “죽고 싶으면 너네나 죽어라, 나는 죽기 싫다!” “생명은 고귀하다, 절대로 죽을 수 없다!!!” 군중들이 회의장까지 난입하여 회의장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각나라 대표들은 구둣발에 짓발히고 말았다. 이상은 생명애착에 대한 가상의 시나리오다. 진짜로 위와 같은 신비의 영약을 내가 개발했다면 쥐도새도 몰래 나혼자만 먹던가 해야지 세상에 알렸다가는 큰일이 나지 않겠는가. 일본에서 최근에 주름상어가 잡혔다고 해서 화재다. 화석으로 출토된 것도 있고 이미 멸종된 것으로 알려진 종이라는데 그렇다면 심해에서 3억5천만년이나 죽지 않고 살았다고들 하며 인터넷 일부에서 ‘맞다, 아니다’하며 말싸움을 벌이기도 하는 모양이다. 3천5백년도 아니고 3억5천년을 살아온 생명체가 지구상에 있다면 인류도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리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과학이 날로 발달하고 그러다가 진짜로 신의 영역까지 들라닥거리며 인류가 불사초를 개발한다면, 결국은 간악한 인류를 깨끗이 청소해버리고 이 지구에 새로운 생명의 주인을 입성시키기 위한 신의 궁극적인 뜻이라고 판단된다. 불사초, 얼마나 두려운 약인가.
고소득 계층과 저소득 계층 자녀들이 서울대, 연.고대 등 11개 상위권 대학에 진학하는 비율이 최대 5배 정도 차이가 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최형재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1일 서울대 호암교수회관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8회 한국노동패널 학술대회'에서 2000년∼2005년 한국노동패널 조사결과를 분석한 결과 1분위 소득계층(최상위 25%) 자녀의 상위권 대학진학률은 14.1%로 4분위 소득계층(최하위 25%)의 2.7%에 비해 5.2배 가량으로 높았다고 주장했다. 또 상위권 대학의 범위를 21개로 확대했을 경우에는 최상위 소득계층의 진학률은 21.1%로 최하위 소득계층의 2.7%에 비해 7.8배 정도로 격차가 있었다. 4년제 대학 전체로 살펴봤을때도 최상위 계층은 진학률이 66.9%에 달했지만 최하위 계층은 49.3% 수준에 그쳤다. 자녀 교육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어머니의 교육 수준은 자녀의 대학진학에 큰 변수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학력 수준이 대학 이상인 어머니가 있는 가구의 자녀가 상위 11개 대학에 진학하는 비율은 14.9%였지만 어머니의 학력수준이 고등학교 미만일때는 상위권 대학 진학률이 3.1%에 불과했다. 아울러 개인과외를 받은 학생들의 11개 상위권 대학진학률은 11.7%에 달했지만 개인과외를 받지 않은 학생들의 진학률은 7.2%에 그쳤다. 최 연구위원은 "이번 연구결과는 교육을 통한 세대간 사회이동이 쉽지 않고 소득이나 학력이 자녀에게 이전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유치원으로 전환하는 미술학원에 대한 정부의 유아교육비 지원이 1년 더 연장된다. 교육인적자원부는 미술학원 유아교육비 지원에 대한 특례규정의 유효기간을 2007년 2월28일에서 2008년 2월28일까지로 1년 연장하는 내용을 담은 유아교육법시행규칙 일부개정안을 1일 당정협의를 통해 확정, 입법예고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유치원에 준하는 시설기준이나 교사자격, 교육 프로그램 등 일정 요건을 갖추고 유치원으로 전환하려는 유아미술학원은 내년 2월28일까지 1년 더 유아교육비를 지원받게 된다. 교육부는 유아미술학원에 다니는 저소득층 유아에 대한 교육비 지원을 위해 2004년 초 유아교육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2007년 2월28일까지 한시적으로 유아미술학원에 유아교육비를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단, 2년 내 일정 요건을 갖추고 유치원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을 달았다. 그러나 교육부는 유치원으로 전환하기에 2년은 너무 짧은데다 미술학원에 다니는 저소득층 유아에 대한 지원을 갑자기 중단하기도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1년 연장 방침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방침에 대해 이해관계가 엇갈린 유아교육단체들은 '정부가 사교육을 조장한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부산시선거관리위원회가 지난달 31일 시교육감 선거 후보자 등록을 마감한 결과 설동근(58) 현 교육감 등 5명이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기호 1번을 단 설 교육감은 동아대 행정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대통령 직속 교육혁신위원장을 지냈다. 군 복무를 하지 않았으며 전과기록은 없다. 재산은 13억 2400만원을 신고했으며 6094만 3000원을 세금으로 납부했다. 설 후보는 교육감 재임 기간 역점을 두고 추진해온 방과 후 학교 교육 개선, 학교급식 직영화 등의 현안 사업을 직접 마무리하겠다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윤두수(72) 후보는 동아대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부산시 교육위원, 동주대학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병역필에 전과기록은 없으며 재산 1억 3200만원에 납세액 4153만 2000원을 신고했다. 윤 후보는 “수업을 잘하는 교사가 존경받는 풍토를 만들고 결식아동 등 형편이 어려운 학생이 상처받지 않고 공부에 전념할 수 있는 정책을 펼 것”이라며 서민 계층을 겨냥하고 있다. 기호 3번인 이병수(49) 후보는 미국 라폼드 신학대학원에서 선교신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고신대 국제문화선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고신대 입학홍보처장, 부산시민패널단 상임대표를 지냈다. 병역필에 전과기록이 없으며 재산신고액은 2억 7200만원에 납세액은 904만 3000원이다. 이 후보의 슬로건은 ‘부산교육에 희망을’로 부산 교육재정 위기 해결과 실업계고교와 부산교대 졸업생 문제 해결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유일한 여성후보인 임혜경(59) 후보는 부산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하고 부산시교육청 장학관, 내산ㆍ용호초등학교 교장을 지냈으며 현재 좋은교육실천연합 회장을 맡고 있다. 전과기록은 없고 재산은 9억 4200만원에 납세실적은 5287만 5000원이다. 임 후보는 ‘모든 학생이 성공하기까지’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이름만 요란한 교육이 아니라 내실이 있는 ‘부산교육’을 만들고 교육의 본질을 회복하는 데 정성을 쏟겠다”는 의욕을 내보이고 있다. 정용진(64) 후보는 동아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부산시 부교육감, 시교육청 교육정책국장을 역임했다. 병역필에 전과기록이 없으며 재산으로 6억 4900만원, 납세액으로 1658만 3000원을 신고했다. 정 후보는 “현장에서 쌓은 여러 가지 경험과 교육철학을 부산교육 발전에 바치기 위해 출마를 결심했다”며 “교육감에 당선되면 먼저 재정위기 타개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선관위는 5일 부재자투표용지를 발송, 8∼9일 부재자투표를 실시하며 7일 선거인명부를 확정해 선거일인 14일 오전 6시∼오후 8시 투표를 진행할 예정이다.
교육감 선거를 2주일 앞둔 1일 부산역 앞에는 ‘부산교육을 이끌어갈 교육감, 2월 14일 시민들이 직접 뽑습니다’라고 적힌 플래카드 하나가 나부끼고 있었지만 눈길을 주는 사람을 찾기는 어려웠다. 시내 곳곳에 붙은 선거 안내 포스터에도 시민들의 관심은 없어보였다. 역 앞에서 만난 유권자 김상명 씨(48)는 “교육감 선거요? 잘 모르겠다”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택시를 타고 부산시선거관리위원회까지 가는 동안에도 “먹고 살기 바쁜데 뭔 교육감 선거까지 해서 돈쓰고 귀찮게 하냐”는 기사의 퉁명은 계속됐다. 열흘 앞으로 다가온 부산시교육감 선거. 지난해 말 교육자치법 개정이후 첫 주민직선으로 치러지는 선거에 교육계의 관심은 점차 달아오르고 있지만, 교육계를 제외한 280여만 명의 일반 유권자들은 차분하다 못해 냉담하기까지 하다. 그럴수록 후보자들의 마음은 급해질 수밖에 없다. 시선관위는 지난해 12월 23일부터 예비후보자 등록을 접수한 이후 3건의 위법행위를 적발, 경고조치했다. 예비후보자 모 씨가 자신의 인터뷰 기사가 실린 신문을 선거사무소에 비치한 후 배부한 행위와 모 예비후보자의 선거사무원이 선거사무소 개소식 참석자에게 공약이 게재된 인쇄물을 배부한 행위 등에 따른 것이다. 시선관위 유석준 공보계장은 “다른 선거에 비해 불․탈법 사례가 많다고 할 수는 없지만 아직 초반이라 단정하기 이르다”며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유 계장은 또 “선관위는 TV 및 대형전광판 광고, 전화홍보, 학부모에게 가정통신문 발송 등 가용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투표참여를 독려하고 있다”며 유권자의 관심을 촉구했다. 지역 교육계에서는 그러나 드러난 혼탁양상보다 은밀하게 이뤄지는 후보자들의 특정정당 지지설 유포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 지역 정서상 특정정당 지지여부가 당락의 결정적 요인이라고 판단한 후보들이 너도나도 내천(內薦)설을 흘리고 있다는 것. 실제 후보들의 선거용 홍보물에 특정정당이 연상되는 청색이 주로 사용되는 현상도 나타났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한나라당 부산시당도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시당 관계자는 “부산지역 국회의원 대부분은 법 취지에 따라 당 차원의 선거 개입은 곤란하다는 입장”이라며 “한나라당은 어느 후보에 대해서도 호불호를 갖고 있지 않으며, 이 같은 인식은 선거가 끝날 때까지 변함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금세 부산교총 회장은 “교육계 수장을 뽑는 선거이니만큼 후보자의 경력과 교육에 대한 애정, 부산교육 발전을 위한 비전 등이 선택의 기준이 돼야하는데 정치권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라고 밝혔다. 조 회장은 특히 “투표율이 걱정된다”며 “임시 공휴일이 안 되면 임시 휴교라도 해서 유권자들의 관심과 참여를 높여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형곤 동명대 교수는 “지금 대부분의 유권자들은 교육감이 무엇 하는 사람이고, 주민들은 왜 투표를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상황인 것 같다”며 “유권자의 무관심과 낮은 투표율로 인해 직선제에 대한 폐해만 부각됨으로써 교육감 선거 무용론이 확산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고 우려했다.
교대 교육과정 중 영어 심화과정 학점비중 30% 이하 사대 영어교육학과 영어교육 비중이 영문학보다 낮아 우수 교원을 소속 지역 단위별 연수 전문가로 활용 위탁 연수기관 선정 및 프로그램 평가기준 강화 필요 우리나라와 같이 영어를 외국어(English as a foreign language, EFL)로 배우는 환경에서 학생들이 영어에 노출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이런 EFL 환경에서 영어교사의 영어 사용은 학생의 영어 학습에 중요한 입력(input) 자료이며, 교사의 영어수업능력은 학생의 영어 학습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영어교사의 영어로 진행하는 수업능력(teaching English in English, TEE)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2006년 교육인적자원부가 전국 영어교사 32,48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영어수업 실태를 살펴보면 우리나라 영어교육의 문제점을 진단할 수 있다. 조사에 의하면, 주당 1시간 이상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교사는 전체의 23%였고, 그 중에서 6.6%만이 모든 수업을 영어로 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68.3%의 교사가 영어와 한국어를 혼용하여 수업한다고 했으며, 8.7%의 교사가 한국어로만 영어 수업을 한다고 응답했다. 2002년도에서 2005년에 거처 진행된 초·중·고등학교 교사의 영어로 진행하는 영어수업 현황 조사에서도 주당 1시간 이상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는 교사의 비율은 약 20%에 그치고 있다(전병만 외, 2006). 영어로 진행하는 수업 저해 요인으로 현행 입시제도, 학급 규모, 학습 자료 부족, 학생의 수준차 등과 함께 수업 주체인 교사의 영어구사력 부족, 자신감 결여, 경험 부족 등이 지적되고 있다. 영어교사의 영어수업능력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영어교사 양성 및 현직 영어교사 연수 제도가 개선되어야 한다. 먼저, 영어교사 양성기관인 교육대학과 사범대학 영어교육학과의 교육과정을 살펴보면, 전국 11개 교육대학의 교육과정에서 영어 심화과정의 학점은 30%이하이며, 전체 학점에 대한 영어 관련 학점 비율은 30%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사범대학 영어교육학과의 경우, 13개 국립대학교와 19개 사립대학교의 영어교육학과 전공 개설 과목을 분석한 연구(김진완, 2006)에 의하면, 영문학 과목의 비중이 전체의 26.4%로 가장 높고, 영어교육 과목의 비중이 22.9%로 낮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2006)의 조사에 따르면 영어권 대학의 영어 교사양성 과정의 개설 교과목 중 절반 이상이 영어교육 관련 과목으로 구성되어 있고 문학 관련 개설 과목 비중은 적다. 이는 우리나라 사범대학 영어교육학과의 전공 개설 과목 구성과 대조적이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2006)이 전국 교육대학과 사범대학교 영어교육학과 재학생과 교수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영어교육론’, ‘교재연구 및 교과지도’, ‘영어기능과목’이 영어수업능력을 갖춘 교사양성에 도움이 된다고 하였다. 교수의 경우도 세 전공 강좌가 도움이 된다고 응답하였다. 전공과목의 수업 방식에 대하여 강의식 수업이 발표, 관찰, 세미나, 토론과 같은 수업방식보다 다소 높은 비율로 진행되고 있다고 응답하였다. 재학생의 20.0% 미만이 영어교육론 강좌가 영어로 진행된다고 응답하였다. 재학생의 대다수와 교수의 과반수가 교생실습이 수업능력을 갖춘 영어교사 양성에 도움이 된다고 응답하였다. 양성기관에서의 수업참관 및 시연 과목에 대한 개선이 요구되었으며, 양성과정에 현장 교사의 활용에 대한 요구도 있었다. 교생실습 제도 개선에 대하여 실습 기간 확대, 실습학교 배정제도 개선, 담당교사의 교생 지도 전문화 등이 지적되었다. 영어수업능력을 갖춘 교사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양성 기관의 교육과정에 영어교육 관련 과목의 비중이 증대되어야 한다. 또한 수업참관 및 시연 과목에서 현장 교사를 활용하는 방안이 모색되어 예비교사들에게 수업 모델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교실 현장에 실제 적용될 수 있는 수업을 지도할 것으로 기대된다. 교생실습은 예비 영어교사의 수업 능력을 가장 효율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제도이므로 현재보다 강화되어야 한다. 또한 우수한 영어교사 양성을 위해서는 교사양성 전문가 연수 제도가 개선되어야 하며, 교사 양성기관의 교원 연수(training of teacher trainers)는 학교 현장과 연계되어서 이루어져야 한다. 양성 기관의 교원이 현장에 가서 교사의 수업 참관을 하거나, 직접 수업을 하거나, 현장 교사와 팀티칭을 하는 것은 현장과 연계된 교사양성 전문가 연수가 될 것이다. 영어수업능력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영어교사 양성제도 개선과 함께 현직 영어교사의 연수 제도 및 프로그램이 개선되어야 한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2006)이 수행한 영어교사 연수 개선에 관한 연구에 의하면, 영어교사들이 이수한 영어수업능력 개선을 목적으로 하는 연수를 통해 영어구사력이 향상되었으나, 수업능력개선에는 그다지 효과적이지 못하였다고 응답하였다. 가장 많이 활용되는 연수 대상자 선발 기준은 ‘지원자 우선’이었으며, 가장 선호하는 연수 대상자 선발 기준도 지원자 우선이었다. 도움이 되는 연수 강좌는 ‘원어민 회화 강좌’, ‘교수법 이론과 실제 강좌’, ‘수업 관찰’, ‘영작문 강좌’가 이었으며, ‘영어학 강좌’, ‘영문학 강좌’, ‘교육과정 관련 강좌’는 실제 수업 개선에 도움이 별로 되지 않는다고 응답하였다. 64.7%의 교사가 영어로 진행되는 연수 강좌가 수업능력 개선에 도움이 된다고 하였다. 연수 강좌의 영어 진행 정도에 대한 조사에서 교사의 72.9%가 비원어민 강사가 50%미만의 영어를 사용하여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응답하였다. 연수 과정에서 진행되는 평가에서 지필고사가 가장 많이 활용되고 있으며, 지필고사의 45.8%가 선다형 문항을 활용하여 평가가 되고 있었다. 연수를 통해 배운 내용을 현장 적용하는데 어려운 점이 있으며 현장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연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제언하였다. 영어교사의 영어수업능력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연수 과정의 교육과정을 개편하여 수업능력과 영어구사력을 분리하기 보다는 영어를 사용하면서 동시에 수업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강좌를 강화해야 한다. 또한 일방적인 지식 전달 방식이 아닌 교사로 하여금 교수법 이론에 입각하여 자신의 수업을 비판적으로 성찰 할 수 있도록 연수가 이루어져야 한다. 영어 교사 연수 평가는 선다형 문항에 의존하는 지필고사보다는 교사의 영어 수업 능력 개선을 평가하는 방법이 모색되어야 한다. 모든 교사에게 연수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연수 기간을 의무화하여 일정 기간이 지나면 재교육을 받도록 하여야 한다. 영어교사 연수 강사 질 관리를 위해서 원어민 강사의 경우 TESOL 자격증과 영어지도 경험 및 영어 교사 연수 교육을 받은 강사를 활용해야 하며, 현장 교사 중에서 우수 연수자를 연수 전문가로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예를 들어, 심화연수를 이수한 교사 중 우수 교원을 소속 지역 단위별 연수 전문가로 활용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한다. 또한 영어교사 연수의 질 재고를 위해 국·내외 위탁 연수 기관 선정 및 연수 프로그램 평가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 교육과정, 교재, 강사, 운영, 지원체제, 연수 후속 활동 등 교사연수와 관련된 요소들을 철저히 분석하여 객관적이고 종합적인 평가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영어교사의 영어수업능력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현장 교사의 영어수업능력 개선 의지와 함께 실천이 이루어져야 하며, 영어교사 양성 기관의 교육과정 개편과 함께 영어교사 양성 전문가의 변화, 연수기관의 교육과정 개편과 함께 연수를 담당하고 있는 강사의 전문성이 제고되어야 한다. 이런 방향으로 세 기관이 장기적으로 변화를 모색할 때 영어교육의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
2006년 말 개정된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에 따라 오는 2월 14일 주민 직접선거에 의해 부산광역시 교육감이 선출된다. 2006년 처음으로 제주특별자치도에서 교육의원에 대한 주민직선이 실시된 바 있으나, 교육감에 대하여 주민 직접선거가 실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부산교육감 선거에 교육계는 물론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선거일을 2주일여 남겨둔 상황에서 부산교육감 선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부산교총은 부산시 교육감 선거가 공정하게 치러질 수 있도록 정당 및 시민단체의 선거 개입 중단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으며, 언론은 ‘첫 직선 부산교육감 선거 과열’, ‘교육감 직선제, 우려가 현실로’, ‘부산 교육감 직선 투표율 비상’ 등으로 현지 상황을 보도하고 있다. 지난해 지방교육자치법 개정과정에서 쟁점은 교육위원회의 성격과 교육위원 및 교육감 선거방법이었다. 대체적으로 볼 때, 시·도교육위원회를 시·도의회 교육상임위원회로 전환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교원단체와 교육행정학계는 반대하고 정부와 일반행정학계는 찬성했으나, 교육위원 및 교육감 주민직선제에 대해서는 정부와 교원단체 및 교육행정학계는 찬성하고 일반행정학계는 반대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시·도교육위원회를 시·도의회 교육상임위원회로 전환하는 방안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으나, 교육위원 및 교육감 주민직선은 전적으로 찬성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번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교육위원과 교육감 주민직선제는 교육계가 오래 전부터 요구했던 제도였고 교육위원과 교육감의 주민대표성 부족을 문제 삼는 통합론자들의 비판을 잠재울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었다. 그러나 교육위원과 교육감에 대한 주민직선 과정에서 혼탁·과열될 경우 교육자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될 가능성이 높고, 교육전문성을 갖춘 인사보다는 대중에게 인지도가 높은 인사가 당선되고, 선거과정에 정당이 음성적으로 개입해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될 경우 교육자치 폐지론이 대두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현재까지 나타난 바로는 긍정적인 측면보다 부정적인 측면이 우세한 듯하다. 일부 후보자들이 특정 정당의 내천설(內薦說)을 흘리는가 하면 일부 시민단체가 특정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해 물의를 빚고 있으며, 부산 시민 대부분은 출마자가 누구인지 교육감이 어떤 자리인지 어떤 사람이 교육감이 돼야 하는지 알지 못하거나 무관심한 상태라는 것이다. 출마자들이 교육계 인사여서 인지도가 낮을 뿐만 아니라, 선거일이 수요일이고 명절준비로 한창 바쁜 시기며, 젊은 층이 들뜬 분위기에 젖는 밸런타인데이여서 투표율이 사상 최악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부산교육감 선거는 부산시만의 행사가 아니다. 이는 개정된 지방교육자치법에 의한 교육감 주민직선제도의 성패를 가늠할 시금석일 뿐만 아니라 주민대표성과 교육전문성을 겸비한 새로운 교육감 제도를 정착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시민단체는 선거 개입을 중단하고 교육자치에 대한 시민홍보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시민단체는 교원단체와 협력해 교육자치란 무엇이며 왜 중요한지, 교육감이란 어떤 자리며 어떤 자격과 능력을 가진 사람이 필요한 자리인지, 교육전문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인지 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부산시민을 적극 계몽할 필요가 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공식적인 선거홍보에 진력할 뿐만 아니라 명확한 선거관리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공명선거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교육감 후보자들은 특정 정당의 후광을 기대하거나 인기에 영합하는 행태를 지양하고 부산교육의 비전과 정책 제시를 통한 ‘교육적’ 선거운동을 견지해야 한다. 교육감이라는 자리는 정치적인 의미보다 교육계의 수장이라는 의미가 강한 자리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당선만 되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선거 후유증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후유증이 크면 클수록 교육자치의 기반은 그만큼 취약해진다는 점을 명심해주기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서울대 사범대는 지난해 4월부터 소외계층 학생들을 상대로 시범 실시한 '대학생 멘토링(mentoringㆍ맞춤식 교육)' 사업 결과 교육을 받은 초.중학생들의 성적이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서울대는 1일 사업 보고회에서 '멘티(menteeㆍ피교육자)' 1천여명 가운데 878명(초등학생 386명, 중학생 492명)의 성적 변화를 측정한 결과 초등학생은 수학과 국어에서, 중학생은 수학에서 성적이 눈에 띄게 상승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초등학생의 경우 전체의 63%가 중간고사에 비해 기말고사 성적이 상승했으며 이들 가운데 43%는 국어와 수학 점수가 20점 이상 올랐다. 중학생도 61%가 성적이 향상됐으며 이 가운데 39%가 수학과 영어 점수가 20점 이상 올랐다. 멘토링을 받은 중학생 A양은 "부모님이 이혼한 뒤 제대로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지만 멘토링을 통해 자신감을 얻고 폭넓고 깊은 공부를 할 수 있게 돼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사업 운영위원장으로 활동한 김계현 사범대 교수는 "'교육안전망 구축'이라는 교육부의 2006년 핵심정책 과제에 따라 실시한 '대학생 멘토링' 사업은 사교육비 절감의 효율적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울대 재학생 300명은 서울시교육청이 기획과 예산 집행을 맡고 동작교육청이 선발한 관악구ㆍ동작구 거주 기초생활수급자 및 특수교육대상자 초ㆍ중교생 1천여명을 상대로 멘토링을 실시했다. 멘토링은 학습 능력에 맞춰 기초ㆍ기본 학습지도와 독서지도 등을 주 2회 하는 '학습지도', 주 1회 진로상담 및 생활지도를 하는 '인성지도', 주 2회 음악ㆍ체육ㆍ미술을 가르치는 '특기 적성 지도', 2개월에 한 번씩 하는 '문화 체험 활동' 등으로 이뤄졌다.
교총은 창립 60돌과 대통령 선거가 겹친 올해를 재도약의 원년으로 삼기 위해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교총 회장단은 지난해 11월 22일 제85회 정기대의원회서 승인받은 2007년도 기본사업계획안을 근간으로 올해 추진할 8대 역점사업을 최근 선정했다. 85회 대의원회는 창립 60돌 사업을 감안해 회비 700원 인상(시도교총 지원금 200원 포함)을 결정한 바 있다. 8대 역점 사업 중 일부는 3월 이사회와 4월 대의원회의를 거쳐야하며,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창립 60주년 행사=11월 23일 창립60주년 기념식에서 개정된 교총강령이 선포될 전망이다. 1959년 5월 8일 제정된 대한교련강령은 1989년 11월 29일 한국교총강령으로 명칭과 내용이 개정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교총은 지금의 강령이 복수교원단체 시대, 교사-학생-학부모 등 교육주체간의 변화된 역학 관계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고 보고 강령 개정을 추진키로 했다. 아울러 ‘한국교총 60년사’ 및 ‘60주년 기념 동영상’, 기념로고 및 캐릭터가 개발된다. ◆대통령 선거 적극 대응=교총은 교육을 바로 세울 수 있는 대통령이 뽑힐 수 있도록 후보들의 정책을 검증하고, 교총의 정책을 적극적으로 대선공약에 반영 할 계획이다. 한국교육신문 및 학회, 외부기관 등과 연계해 수차례에 걸친 대선 후보 초청 포럼, 설문조사 등을 통해 후보자의 교육공약을 검증해 유권자들에게 판단의 준거를 제공한다. 11월 열릴 전국 교육자대회서는 각 당의 대선후보를 초청해 직접 교육공약을 밝히게 하고, 교육자들이 판단할 수 있는 준거가 마련된다. ◆교총 회장 선거=7월 둘째 주쯤이면 전회원이 제33대 교총회장을 뽑는 선거가 실시된다. 구체적인 선거일정은 3월 이사회, 선거방법 및 세부 추진일정은 4월 대의원회 선거분과위원회가 결정한다. 전 회원이 직접 참여해 교육계 대표를 뽑는 이번 선거를 교육계 최대의 축제로 승화하고, 교총의 조직력을 강화할 수 있는 계기로 삼을 전망이다. ◆전국 교육자 대회=10월에는 참여정부의 교육정책을 평가하고 대선후보자들을 초청해 교육공약을 듣는 대규모의 전국교육자대회가 열린다. 전국교육자대회를 통해 국내 파워그룹 12위로 평가된(2005,6년 중앙일보 조사) 교총의 회세를 과시하고 한층 조직력을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평가된다. ◆투쟁 역량 강화=공무원연금, 교원승진규정, 교원평가, 성과급제 등 다양한 현안에 적극 대응할 수 있는 정책 및 투쟁역량이 강화된다. 각종 집회를 통해 현장의 여론과 요구를 응집시켜 정부 및 정치권에 전달할 계획이다. 사안에 따라 권역별 토론 및 집회를 개최해 지역단위의 정책역량 및 투쟁역량을 제고하고 사이버 활동도 강화된다. ◆교권보호 및 전문성 신장=교원을 보호하고 학생들의 수업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도록 교권보호법을 제정하거나 교원지위향상을위한특별법 개정이 추진된다. 상반기 중에 관련 법안을 마련하고 하반기에는 대국회 활동 및 대선공약 반영이 전개된다. 교총원격연수원을 통해 전문성 향상에 필요한 다양한 연수프로그램을 운영하고, 현장교육연구동호회를 조직해 연구교원간의 교수-학습방법 공유 및 활성화 방안이 마련된다. ◆교직사회 신뢰 증진=지난해에 이어 학생 및 교원, 학부모의 건강 실천 풍토를 조성하기 위한 교육공동체건강캠페인이 지속된다. 국가청소년위원회와 함께 ‘1388교사지원단’을 구성해 위기의 청소년을 조기에 발견해 사회복귀를 지원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3월까지 시도별 교사지원단을 구성할 계획이다. ◆회원서비스 강화=교총 각종 홈페이지를 통해 현장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렴하고 회원들이 편리하게 활용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한다. 아울러 회원복지종합네트워크를 구축해 입직부터 퇴직까지 회원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토털서비스 가 제공된다.
박현정 |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지난 2005년도는 해방 이후 우리나라의 공교육이 60년째를 맞이하는 해였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 한국전쟁, 4.19 혁명, 군사정권 주도하의 고도성장기, 87년 민주화 운동 이후의 급속한 민주주의의 진척, 88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 그리고 92년 문민정부, 97년 외환위기 이후 국민의 정부, 현재 참여정부에 이르기까지 온갖 시련을 딛고 발전성과를 이루며 급속히 성장해왔다. 이제 우리나라는 GDP 규모가 6790억 달러로서 세계 11위에 이르고 있다(World Bank, 2005년 7월). 과거 해방 직후, 즉 지금으로부터 60여 년 전에는 세계에서 가장 후진국이었던 한국이 2005년도에는 거의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선 것이다. 이러한 경제의 양적, 질적인 성장 못지않게 해방 이후 60년 동안 교육 역시 비약적으로 성장해왔다. 우리나라는 2004년도에 중학교까지 전국적으로 무상의무교육을 실시하게 되었으며, 사실상 거의 모든 학생들이 고등학교까지 교육을 이수할 뿐만 아니라 대학 진학률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가 되었다(OECD 2006 교육지표). 그리고 지난 2003년도에 실시된 만 15세 학생을 대상으로 실시된 OECD 학업성취도국제비교연구(Programme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 PISA)에서도 우리나라 학생들은 OECD 국가 중에서 문제해결능력 평가항목에서 1위, 수학과 읽기능력 평가에서 2위, 과학능력 평가에서 3위를 차지하면서 다른 OECD 국가들로부터 교육성과에 대한 높은 평가를 받은 바 있다. 이 글에서는 학생 수의 변화 추이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지난 60년 동안의 우리나라 교육의 양적, 질적 성장을 살펴봄으로써, 우리나라 교육의 현 위치를 파악하고 향후 나아갈 방향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는데 일조하고자 한다. 유아교육, 공교육의 틀 안으로 먼저 유·초등교육에서 유치원 교육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유치원 교육은 대부분의 주요 선진 국가에서는 무상 의무교육과정으로서 정규 교육과정의 일환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은 정규 교육과정으로 편제된 상황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유아교육에 대한 점차적인 관심 증가와 노력이 이어져서 유치원 수의 전반적인 증가와 더불어 국공립 유치원의 증가가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정부는 2004년도에 유아교육법을 제정하였으며 동법시행령과 시행규칙을 2005년 1월에 제정하여 공교육의 틀 속에서 유아교육을 정착시키려는 노력을 진행 중이다. 그 밖에도 만 5세아 무상교육 지원을 확대하여 저소득층 자녀들이 유아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에 따라 2003년도에는 231억 원, 2004년도에는 243억 원, 그리고 2005년도에는 642억 원이 저소득층 자녀들의 유치원 무상교육을 위해서 투자되고 있다. 에서 유치원 원아 수의 변화 추이를 살펴보면, 유치원 원아 수는 과거 1965년도에 비해서 25배나 증가한 55만여 명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유치원 원아 수의 증가가 크게 늘어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보육시설의 등장으로 인한 유아교육의 이원화 체제의 도입과 낮은 출산율로 인한 유아인구의 감소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유치원에 재학하고 있는 유아들만을 대상으로 우리나라 유아교육의 실태를 파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유치원, 보육시설을 통틀어 우리나라의 유아교육 취학률을 살펴보면 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2006년 현재 만 3~5세 아동의 41%가 보육시설에서, 34%가 유치원에서 유아교육을 받고 있어서 전체 유아교육 취학률은 74%인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유아교육의 보편화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유치원 의무교육을 시급히 시행하여 전국의 모든 유아들이 현재의 OECD 국가수준으로 유치원 교육의 혜택을 받아 계층 간, 지역 간 교육의 격차가 없는 교육복지국가를 조기에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정책을 기획할 필요가 있다. 특히 현재 진행 중인 저소득층에 대한 유아교육비 지원과 더불어 유치원, 특히 국공립 유치원을 신설하기 위한 적극적인 시설 투자가 필요하다. 이제 에 제시된 초등학교 학생 수의 변화과정을 살펴보면, 한국전쟁 이후 베이비붐 세대가 초등학교에 취학하는 시기인 50년대 말 60년대에는 학생 수가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에 있어서 1970년까지 학생 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학생 수는 증감을 반복해고 있으나, 장기적인 시계열적 상황에서 보면 70년대 이후 학생들이 점차로 감소되는 경향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전반적인 학령인구의 감소에 인한 것으로 만 6~11세 인구에 대한 초등학교 학생 수로 초등교육 취학률을 계산한다면, 초등학교 취학률은 100%로 거의 완전 취학상태인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초등학교 학생 수를 설립별로 구분하여 살펴보면, 2006년 현재 약 1.2%의 초등학생들만이 사립 초등학교에 재학 중인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정부의 초등교육 의무교육화에 대한 부단한 노력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중등교육의 성장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 약간의 조정을 거쳐서 6334 체제의 교육체제가 곧장 자리 잡은 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1994년도 교육개발원에서 발간된 한국의 교육지표를 살펴보면, 한국의 학제는 부분적으로 다양한 특성화 중·고등학교가 포함된 것 이외에는 초등학교 6년중학교 3년고등학교 3년대학교 4년 제도가 그대로 지속되고 있다. 중등교육의 보편화를 위해서 우리나라는 중·고등학교의 설립 여건을 완화하여, 즉 사학의 설립을 유인함으로써 정부의 적은 재정 부담으로 중등교육의 보편화를 급속히 실현시켜왔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우리나라 중학교 학생 수의 시계열 변화 추이를 살펴보면, 1945년도 해방 직후에는 채 1만 명이 안 되었던 중학교 학생 수가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출산율의 증가로 인한 학령인구의 증가로 급격히 증가했으며, 특히 정부의 중학교 의무교육화 추진이 지방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1985년 이후에도 학생 수의 증가가 지속적으로 이뤄져 왔다. 이러한 증가 추세는 1985년도에 278만 명으로 정점에 이른 후 점차적으로 감소해왔으나 최근에 다시 증가추세로 접어들고 있다. 이를 설립별로 살펴보면, 1970년도에 사립학교 중학생 수가 과반수에 이르렀으나, 그 이후에는 사립학교 중학생 비율이 지속적으로 감소하여, 2006년에는 18%로 줄어들었다. 이러한 중학교의 국공립 학생 비율 증가는 1985년도 도서 벽지 지역부터 단계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중학교 무상 의무교육의 전국적 확대와도 그 맥락이 맞닿아 있다. 중학교 무상의무교육은 2002년도부터 2004년도까지 대도시를 포함한 전 지역으로 확대 실시하여 2006년도 현재 중학교 무상의무교육이 완료된 상황이다. 고등학교 전체 학생 수의 성장 추이를 보면 과 같다. 1945년도에 약 26만 명이었던 고등학생 수가 지속적으로 인구성장 추세와 맞물려 증가하면서 1990년도에 228만여 명으로까지 증가하였다. 그 후 증감 추세가 반복되어서 현재 전국 고등학생 수는 177만여 명으로 나타났다. 만 15~17세 인구에 대한 고등학교 학생 수로 고등학교 교육의 취학률을 계산한다면, 고등학교 교육 취학률은 2006년 기준 93%인 것으로 나타나 해당 학령인구의 10명 중 9명이 고등학교에 재학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의 중등교육에서 고등학교 교육은 대학 진학을 위한 학문적 성격이 강한 일반계 고등학교와 졸업 후 직업전문대학으로 진학하거나 직접적으로 직장으로 진출하기 위한 직업교육적 성격이 강한 실업계 고등학교로 나누어져 왔다. 근대화 시기에는 직업적 교육을 위한 실업계 고등학교의 역할이 중요했었으며 그에 따라 실업계 학교 재학생 비율도 높았다고 볼 수 있다. 실업계 고등학교의 학생 수 비율은 1970년에 50%에 육박하기도 했으나 이후 점차 감소하면서 최근에는 30% 미만으로 크게 줄어들고 있다. 또한 실업계 고등학교 졸업생 중 고등교육 진학자 비율이 증가하면서 실업계 교육의 정체성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학생 수 27배 증가, 급성장한 대학 교육 과거 60년간 우리나라의 고등교육 역시 크게 성장하였다. 먼저 일반대학교의 현황을 살펴보면, 에서 볼 수 있듯이 1955년도에 일반대학교 재적학생 수는 7만 명 정도였으나 그 후 50년이 지난 2006년도의 경우 약 188만 명으로서 200만 명에 육박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학 재학생 중에서 여학생 비율의 변화 과정을 살펴보면 1965년도 22.5%에서 서서히 증가하여 2006년도에는 37%로 나타나고 있다. 한편 대학생 수를 설립별로 살펴보면, 국공립 일반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 비율이 절대적으로 낮음을 알 수 있다. 국공립 일반대학에 재적하고 있는 학생 비율은 과거 30%를 넘은 적이 없으며 점점 그 비율이 줄어들어 2006년도에는 21%에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고등교육에 있어 사립의 비중이 큰 것을 알 수 있다. 과거 1951년도에도 2년제 고교와 연계되는 교육과정으로 운영되는 초급대학이 존재했었다. 이 초급대학들을 1970년대에 제도화된 전문학교와 통합하여 1979년에 중견 직업인 양성을 위한 단기 고등교육기관으로서 전문대학이 출범하였다. 전문대학의 수업연한은 2~3년으로서 사회 각 분야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과 이론을 교육하여 중견 직업인을 양성하기 위한 목적에서 비롯되었다(교육부, 1998). 를 살펴보면 전체 전문대학의 재적 학생 수는 1965년도에 2만 명 정도였으나 그 후 50년이 지난 2006년도의 경우 약 81만 명으로서 40배 정도 증가한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전문대학 재적학생 중에서 여학생의 비율은 1980년대 초반까지 30% 미만에 머물렀으나 그 후 약간 증가하여 30% 후반 대에 머물고 있다. 설립유형별로 전문대학의 재적학생 수를 살펴보면, 국공립학교 학생 비율이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1985년도 이후에 계속 10% 미만의 학생들만이 국공립 전문대학에 등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2006년도에는 4%의 학생들만이 국공립 전문대학에 속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어서 전문대학에 재적하고 있는 학생들도 사립학교의 비율이 역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교육대학교는 교원을 전문적으로 양성하기 위해서 설립된 특수목적형 대학으로서 부족한 교원을 양성하기 위해서 설립되었다. 2년제 교육대학의 법제화는 1961년도에 이루어졌으며 이에 따라 1962년도에 10개의 교육대학이 발족되었으며, 1977년까지 16개로 학교 수가 증가하였다. 그러나 1974년도부터 초등교원 양성의 과잉공급으로 인하여 부분적인 조정이 이루어졌다. 그에 따라 1977년에 5개교가 폐지되어 1978년도에 학교 수가 11개교로 줄어들어서 2005년도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한편 2년제 대학이었던 교육대학은 1981년도의 교육법 개정에 의하여 1984년도까지 연차별로 모든 교육대학이 4년제로 재편되어서 교육대학의 질이 지속적으로 향상되어왔다(교육부, 1998). 에서 볼 수 있듯이, 교육대학의 학생 수는 1974년의 초등교원 과잉공급현상으로 인한 학생정원 감축 이후 서서히 증가해오고 있으며 2006년도 현재에는 총 학생 수가 2만 5천여 명으로 파악되고 있다. 우리나라 교육의 질적 성장 지금까지는 지난 60년 동안의 학생 수 증가 추이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우리나라 교육의 양적 성장을 살펴보았다. 이제 양적인 성장과 더불어 우리나라 교육의 질적 성장에 대하여 간략히 살펴봄으로써 이 글을 맺고자 한다. 먼저, 통계청에 의하면 1955년에는 만 12세 이상 인구 1428만 명 중 문맹자가 319만 명으로 문맹률이 22.3%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중학교까지의 교육이 의무교육화 되어 65세 이상의 고령층을 제외하고는 문맹자가 거의 없는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따라서 최근에는 한글을 읽고 쓸 줄 아는가에 대한 문맹의 개념보다는 실제 생활 속에서 맥락에 따라 필요한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문해의 개념으로 논의가 전개되고 있다. 또한 지난 2003년도에 실시된 만 15세 학생을 대상으로 실시된 OECD 학업성취도국제비교연구에서도 우리나라 학생들은 OECD 국가 중에서 문제해결능력 평가항목에서 1위, 수학과 읽기능력 평가에서 2위, 과학능력 평가에서 3위를 차지하면서 다른 OECD 국가들로부터 교육성과에 대한 높은 평가를 받은 바 있다. 이러한 내용들은 우리나라 교육이 지난 60여 년간 양적인 성장만 이루어온 게 아니라 질적으로도 엄청난 성장을 이루어왔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질적 성장을 어떻게 계속 이어갈 수 있을지에 초점을 두고 고민해야 할 것이다.
한상철 | 대구한의대 청소년교육상담학과 교수 학생만 있고 청소년은 없는 사회 오늘날의 청소년들은 단지 한 세대 이전의 청소년들이 겪었던 것보다 더 많은 모험과 위기 그리고 요구 및 기대에 직면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청소년들은 아동기에서 성인기로 이동하는 경로를 성공적으로 통과하고 있다. 몇 가지 준거에 비추어 볼 때, 오늘날의 청소년들은 10년이나 20년 전의 청소년들보다 더 훌륭한 것 같다. 청소년의 대부분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있으며, 심지어 대학에 진학하고 있다. 지난 몇 년간에 걸쳐 청소년 문제와 살인사건은 약물남용이나 청소년 비행 그리고 청소년 임신과 함께 다소 줄어들었다. 오늘날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긍정적인 자아개념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사람과의 긍정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청소년들은 우리 사회의 많은 성인들과 대중매체가 묘사하는 것보다 더 긍정적인 경험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일부 청소년들은 그들이 유능한 성인이 되는데 필요한 적절한 기회와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10년 또는 20년 전의 청소년들보다 덜 안정적인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다. 높은 이혼율, 청소년층의 높은 임신율, 그리고 가족의 잦은 이사는 청소년들의 삶의 안정을 위협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여자 청소년 가운데 20% 이상이 출산을 하고 있고, 약물남용이 청소년들 사이에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으며, AIDS의 유령이 청소년의 육체적, 정신적 황폐화를 가속화시켜 국가적 차원의 관심과 지원 대책을 마련 중이다. 특히 M. Wright Edelman은 다음 세대인 어린이와 청소년을 양육하고 보호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라고 말하고, 과거 어떤 시대보다 더 중요한 정책적 이슈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는 미국에 비해 청소년 문제행동이 적다고 안심하고 있을 단계가 아니다. 오히려 실종된 듯한 청소년문화에 대해 염려하고 대책을 수립해야 할 때이다. 문제행동이 소수 청소년들에게 존재하는 일탈적 행위가 아니라 비교적 건강하다고 하는 다수의 청소년들에게 잠재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을 인식해야 한다. 잠재적 비행의 배경에는 학생만 있고 청소년은 존재하지 않은 우리 사회의 특이한 문화 환경이 자리 잡고 있다. 사회변화에 따른 청소년의 지위변화 한국의 ‘청소년’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대학생 운동일 것이다. 한국의 대학생들은 반독재 정치 운동의 선봉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운동은 사춘기적 방황과 갈등, 이상사회에 대한 열망과 실험정신, 대안 문화 등과 같은 청소년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서구의 청소년들이 근대화 이후 부모나 기성세대로부터 독립하고, 구별화됨으로써 그들 나름의 확고한 사회적 세력으로 자리 잡게 된 것과 차이가 있는 것이다. 서구의 경우 1970년대 히피운동이나 반 문화운동을 통하여 평등과 자유라는 근대적 이상을 실현하려는 청소년들의 움직임이 그들의 주류 문화를 형성하였고, 21세기 사회에서 그들은 대량실업과 세기말적 혼란 속에서 사회의 불안 세력이자 가능성의 세대로 인정받게 되었다. 한국의 청소년은 1980년대 대학생 운동의 절정기를 맞으면서, 조직력과 이데올로기가 극도로 강조되는 분위기에서 청소년의 실험성과 자유로움은 상실되어 버렸던 것이다. 청소년에 의한 문화 변혁적 운동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30년대 ‘신여성’과 ‘모던 보이’들이 불러 일으켰던 신문화 조류나 1960년대 말부터 일었던 ‘청년문화운동’이 그러한 성격을 띠고 있다. 그러나 통기타와 히피풍조 패션으로 대변되는 청년문화운동은 서구 풍조의 모방이자 퇴폐풍조로 간주되어 장발과 미니스커트 단속 정책에 의해 억제되었고, 새로운 문화를 주도했던 그 시대의 청년들은 군대를 갔다 오면서 곧바로 기성세대 체제에 편입되어 버렸던 것이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반독재 투쟁은 어느 정도의 결실을 이루게 되지만, 청소년들의 행보는 곧바로 소비에만 열중하는 ‘신세대’로 규정됨으로써 하나의 독자적인 세력으로 형성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연세대 사회학과 조혜정 교수의 글에 따르면, 근대 한국사에서 청소년의 위상은 크게 세 단계를 통해 발전하였다. 여기서는 조혜정 교수의 단계구분에 근거하여 필자 나름의 견해를 덧붙여 설명하고자 한다. ‘학생’이 선망의 대상이었던 근로 청소년 첫 번째 단계는 대가족의 ‘소인’일 뿐이었던 청소년들이 가족을 빠져나와 ‘학생’이라는 독자적인 위상을 갖게 되는 단계이다. 근대 국가기구는 모든 아이들을 ‘근대적 국민’으로 만들기 위해 학교를 지었고,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가정에서 벗어나 개인의 공간을 갖기 시작하였다. 학생이라는 새로운 지위를 획득했고, 이 시대에는 청소년 자신들이 이 지위를 선호했다. 그러나 이 범주에 들지 않는 이들은 주변적 범주로 인식되었다. ‘학교에 가지 못하는 소외 계층’, ‘학교 공부보다 생계유지가 더 시급한 사람’이라는 식의 범주화가 근대 전반부에 청소년들의 삶을 지배했던 것이다. 이 시대에 행운아는 자기를 상급 학교에 보내 줄 경제력을 가진 아버지나 잡다한 집안일을 시키지 않고 숙제를 하도록 배려하는 어머니를 가진 아이였다. 소수의 선택된 아이만이 학교에 갈 수 있었던 시대에 ‘학생’이 되는 것은 축복이었던 것이다. 반면에 이 시대에 ‘학생’에 속하지 않는 청소년은 주변적인 범주인 ‘근로 청소년’에 속한다. 교복을 입은 같은 또래의 학생을 선망의 눈길로 바라보는 계층인 이들을 위해 1970년대 국가는 ‘산업역군’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고, 근로 청소년회관을 지어서 검정고시 반을 운영하거나 취미교실을 운영하여 이들을 위로하기도 하였다. 1980년대 후반에는 화장법을 가르쳐서 이들을 숙녀로 만들어내려고 노력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서면 더 이상 학생과 근로 청소년의 이분법은 성립되지 않는다.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대다수의 청소년들이 고등학교에 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학생은 ‘좋은 청소년’, 비학생은 ‘불량 청소년’ 두 번째 단계는 다수의 청소년들이 학생인 시점에서, 학교에 다니지 않는 것이 더 이상 불우한 청소년이 아니라 부적응자이거나 일탈자로 범주화되는 단계이다. 이 시점에서 10대는 ‘학생’과 ‘비학생’으로 이분화되었으며, 학생은 ‘좋은 청소년’인 반면 비학생은 ‘불량 청소년’으로 취급되었다. 1980년대까지 지속된 대량생산 체제에서 학교는 그 체제가 필요로 하는 인력을 대량으로 생산해 내는 기능을 수행했으며, 기성 사회는 그 체제에서 이탈하는 청소년을 ‘불량 청소년’으로 낙인찍었던 것이다. 또한 한국의 청소년은 대학생과 중·고등학생으로 구분되고, 청소년이란 용어는 중·고등학생을 지칭하는 것으로 변하였다. 대학생들이 고등학생들을 의식화시킬 것을 두려워해서 선배들이 모교에 와서 동아리 활동을 하던 것이 금지되었고, 그래서 많은 선후배가 함께 하는 청소년 동아리의 맥이 끊겼다. 따라서 1980년대를 통해 중·고등학교는 가장 폐쇄적인 공간이 되었으며, 중등학교 학생들은 ‘학생’ 이외의 정체성을 버려야 했다. 강압적이고 통제 일변도의 학교 분위기가 형성된 것도 이런 특수한 역사적 시점을 거치면서이다. 이 시대의 학생은 더 이상 특권 계층이 아니었으며 단지 ‘공부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공부하는 학교에서 공부를 잘하는 사람만이 훌륭한 사람, 모범생 등으로 인식되었을 뿐, 공부하는 곳에서 공부를 게을리 하거나 공부를 포기한 사람들은 열등생, 부적응자, 비행자로 분류될 수밖에 없었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만이 인정받았으며, 그들의 사소한 허물이나 실수는 묻힐 수 있을망정 공부 못하는 사람의 허물은 인생의 실패나 부도덕으로 낙인 되었던 것이다. 대량 생산시대에 필요한 인력은 뛰어난 엘리트가 아니라 대중화되고 평준화된 사람이었다.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지만, 학교교육은 점차 평준화를 지향함으로써 모든 학생들을 백화점의 상품과 같이 개성 없는 생산품 또는 진열품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소비 주체로서의 청소년 세 번째 단계는 1990년대 전후 본격적인 소비 자본주의 체제가 진행되면서 ‘학생’의 위상이 ‘청소년’이란 위상으로 또는 ‘소비자’란 이름으로 전환되기 시작한 단계이다. 이제 학교라는 울타리와 학생이라는 신분을 적극적으로 이탈하는 아이들이 생겨났으며, 이에 따라 정부에서도 학교의 규범에 얽매인 학생들을 보다 자유로운 인격체로 인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게 되었다. 구체적인 예로써, 1987년 당시 체육부는 ‘청소년육성법’을 제정하였고, 1988년에 체육부 내에 ‘체육청소년국’이 설치되었으며, 1990년에는 청소년헌장이 선포되고 ‘체육부’가 ‘체육청소년부’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노력은 당시 정부 차원의 청소년 정책이 비교적 활발하게 전개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학생’의 신분을 ‘청소년’이라는 신분으로 이미지 변신을 도모한 것은 성공적으로 평가되지만, 학교 내 각종 규제에 얽매여 있는 10대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크게 바꾸어 놓지는 못하였다. 1991년 청소년기본법이 제정되면서 학생들은 잠시 학교를 떠나 자연 속에서 수련활동을 할 수 있도록 되었다. 청소년의 범위를 9세부터로 정한 것도 학생들의 수련원 활동을 권장하기 위한 차원에서이다. 1997년 이래로 다시 청소년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청소년헌장을 개정하는 등 ‘학생’이 아닌 ‘전인적 청소년’을 강조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지만, ‘국가발전을 위해 청소년을 육성하겠다’는 식의 국가주의적 패러다임이 잔존해 있는 한, 그리고 교육부와 교육청의 학생 지배에 대한 욕심이 계속되는 한 청소년 활동의 활성화는 사실상 쉽지 않은 형편이다. 그러나 국가적 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본시장의 급격한 변동에 의해 청소년의 세계가 새롭게 탈바꿈하고 있다. 자본은 청소년을 위한 길거리 농구장을 마련하였고, 유명 상표를 부착한 신발과 의류를 팔았으며, 10대를 위한 각종 잡지와 패션 책을 통해 10대들만의 무수한 이야기를 제공하였다. 청소년들은 정부에서 벌인 행사에서와는 달리 시장의 자본이 만든 공간에는 자발적으로 찾아다녔으며, 노래방, 피시방, 오락실, 호프집, 콜라텍을 선택하였다. 1980년대 이후 자본에 의해 청소년들의 학교 밖 놀이공간들이 광범위하게 만들어졌으며, 청소년들은 그 공간에서 자기들만의 개별공간을 만들어가기 시작하였다. 다시 말하면, 10대들은 한편으로 자본이 만든 새롭고 광활한 소비 공간의 유혹을 받고, 다른 한편으로는 낙후된 학교가 밀쳐내는 힘의 작용에 의해 독자적인 생활터전을 마련한 것이다. 인터넷으로 온갖 정보를 접할 수 있게 된 아이들에게 학교는 더 이상 재미없는 공간에 불과하며, 오래 머물다가는 낙후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심어줄 뿐이다. 실제 학교를 떠나는 아이들의 수는 적지만, 다수의 아이들이 몸만 학교에 있는 식의 태업에 들어갔고, 상당수는 학교생활을 삶의 일부로만 간주하는 사고방식을 갖게 되었다. 가끔 우리는 한국의 청소년이 서양의 청소년들보다 학교에 더 잘 다니지만, 또한 더 폭력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학교에 대한 문제제기를 학교 망신시키는 행동이라고 하면서 여전히 고답적인 자세를 버리지 못하는 학교 운영책임자도 있다. 청소년 문제가 너무나 심각하고 해결책이 없으니까 그냥 덮어두자고 말하는 전문가도 있다. 청소년들의 행동에 포함되어 있는 권리와 자유를 인정해 주지 않는다면, 그래서 그들의 반항적인 행동만을 문제 삼는다면 앞으로도 영원히 청소년의 세계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학교 내 청소년문화의 형태 교육이란 본래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작용이며, 개인의 전인적 성장을 조력하고 지원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학교는 교육의 일차적인 장(場)으로서의 기능을 포기하고, 입시경쟁으로 학생들을 구속하는 스트레스의 원천이 되고 말았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학교 내 청소년들은 크게 4가지 유형으로 구분될 수 있다. 첫 번째 부류는 학교에서는 모범생이지만 그들 나름대로 사이버공간이나 B-boy 댄스 활동, 밴드 활동 등에 몰두하면서 학교 밖의 공간을 확보해 놓은 청소년들이다. 이들은 자기들만의 활동공간을 마련하고 있기 때문에 학교에 대해 큰 기대도 불만도 없는 편이며, 학교에서는 그들 나름의 시간 때우기 방법을 터득하고 있는 듯하다. 학교에서 무턱대고 잠자기, 그들만의 정보교류, 쉼터, 그리고 부모님께 최소한의 효도를 제공하기 위한 곳쯤으로 인식하고 있다. 두 번째 부류는 아예 학교를 떠난 아이들이다. 이들은 학교 밖에서 학원에도 다니고 여러 종류의 비공식적 모임에 참여하거나 독학을 하면서 자신의 삶을 계획해 나간다. 문화센터를 통해 영화 만드는 것을 배운다거나 아르바이트를 통해서 사회경험을 하는 등 새로운 학습의 공간을 개척하고 있는 것이다. 학교라는 폐쇄된 공간에 더 머물다가는 변화되는 역동적인 사회 환경에서 도태되고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으로 인해 스스로 학교를 탈퇴하고 자기만의 공간 및 생활터전을 창조해 나가는 적극적인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세 번째 부류는 딱히 자기만의 창조적 공간을 마련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열심히 노는 아이들이다. 인기 대중가수의 열성적인 팬 클럽회원이기도 하고, 때로는 나이트나 콜라텍 등에 가서 열심히 춤도 추고, 노래방에 가서도 적극적으로 노는 아이들이다. 이들은 발랄하고 당돌한 신세대의 전형적인 모습을 연출한다. 이들에게 어른들의 걱정스러운 간섭은 잔소리로밖에 인식되지 않는다. 당돌하리만큼 정열적이고 반항적이지만, 노는 데 빠져있을 뿐 비행이나 일탈에 개입하는 것은 아니다. 네 번째 부류는 아마 현재 대다수를 차지할 것으로 생각되는 수동적인 청소년들이다. 부모님을 실망시킬 수 없으니까 학교에 가라면 가고, 텔레비전도 조금 보고, 친구를 따라 콜라텍에도 가끔 가고 노래방에도 간다. 이들은 대체로 “별 생각 없이 살아요”, “사는 게 재미없어요”라고 반응한다. 일 중독증에 걸려 놀 줄 모르는 부모세대의 보호를 받으면서 적당히 공부하고, 적당히 놀고, 편안하고 안정된 생활을 유지하고자 하는 모습이다. 아마 이들 중 다수는 10년 후에도 이런 생활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앞의 세 부류는 오늘날 그 숫자가 점차 증가되고 있지만, 아직도 소수일 뿐 지배적인 청소년 세력이라고 볼 수는 없다. 아마도 90% 이상의 청소년은 네 번째 부류에 속할 것이다. 어른들은 앞의 세 부류에 대해 염려하고 심지어 문제청소년으로 오인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들의 경우 나름대로 문화공간을 가지고 있거나 새로운 삶을 개척해 나가고 그리고 열심히 놀고 있을 뿐, 비행이나 문제행동에 개입하고 있다는 구체적인 증거는 없다. 오히려 이들이 새롭고 역동적인 청소년문화를 창조하는 주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네 번째 부류의 청소년들은 따분하고 재미없는 삶을 엮어가고 있으며, 잠재적 비행요인을 어느 누구보다 많이 내포하고 있다.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스트레스와 욕구불만 등으로 신체적·정신적 위기를 자초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변화에 따라 청소년들의 의식과 가치관에 커다란 변화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현대 사회의 청소년들은 성인 사회의 문화를 단순하게 수용하고 흡수하는 스폰지 세대가 아니라 그들 나름의 독창적인 문화를 생성하는 문화 주체적 세대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다수가 아닌 소수에 의해 생성되고 확산되는 청소년문화이기에 하위문화 또는 대항문화라는 좋지 못한 평판을 듣고 있는 듯하다. 청소년들이 우리 사회의 당당한 동반자로서 가치를 높여나가기 위해서는 더 많은 청소년들이 학교와 가정의 울타리에만 안주하지 말고 사회의 더 큰 터전으로 뛰쳐나와서 자신의 역량과 잠재력을 시험하고 개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조혜영 | 한국청소년개발원 부연구위원 학생만 있고 청소년은 없는 사회 오늘날의 청소년들은 단지 한 세대 이전의 청소년들이 겪었던 것보다 더 많은 모험과 위기 그리고 요구 및 기대에 직면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청소년들은 아동기에서 성인기로 이동하는 경로를 성공적으로 통과하고 있다. 몇 가지 준거에 비추어 볼 때, 오늘날의 청소년들은 10년이나 20년 전의 청소년들보다 더 훌륭한 것 같다. 청소년의 대부분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있으며, 심지어 대학에 진학하고 있다. 지난 몇 년간에 걸쳐 청소년 문제와 살인사건은 약물남용이나 청소년 비행 그리고 청소년 임신과 함께 다소 줄어들었다. 오늘날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긍정적인 자아개념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사람과의 긍정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청소년들은 우리 사회의 많은 성인들과 대중매체가 묘사하는 것보다 더 긍정적인 경험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일부 청소년들은 그들이 유능한 성인이 되는데 필요한 적절한 기회와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10년 또는 20년 전의 청소년들보다 덜 안정적인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다. 높은 이혼율, 청소년층의 높은 임신율, 그리고 가족의 잦은 이사는 청소년들의 삶의 안정을 위협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여자 청소년 가운데 20% 이상이 출산을 하고 있고, 약물남용이 청소년들 사이에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으며, AIDS의 유령이 청소년의 육체적, 정신적 황폐화를 가속화시켜 국가적 차원의 관심과 지원 대책을 마련 중이다. 특히 M. Wright Edelman은 다음 세대인 어린이와 청소년을 양육하고 보호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라고 말하고, 과거 어떤 시대보다 더 중요한 정책적 이슈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는 미국에 비해 청소년 문제행동이 적다고 안심하고 있을 단계가 아니다. 오히려 실종된 듯한 청소년문화에 대해 염려하고 대책을 수립해야 할 때이다. 문제행동이 소수 청소년들에게 존재하는 일탈적 행위가 아니라 비교적 건강하다고 하는 다수의 청소년들에게 잠재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을 인식해야 한다. 잠재적 비행의 배경에는 학생만 있고 청소년은 존재하지 않은 우리 사회의 특이한 문화 환경이 자리 잡고 있다. 사회변화에 따른 청소년의 지위변화 한국의 ‘청소년’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대학생 운동일 것이다. 한국의 대학생들은 반독재 정치 운동의 선봉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운동은 사춘기적 방황과 갈등, 이상사회에 대한 열망과 실험정신, 대안 문화 등과 같은 청소년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서구의 청소년들이 근대화 이후 부모나 기성세대로부터 독립하고, 구별화됨으로써 그들 나름의 확고한 사회적 세력으로 자리 잡게 된 것과 차이가 있는 것이다. 서구의 경우 1970년대 히피운동이나 반 문화운동을 통하여 평등과 자유라는 근대적 이상을 실현하려는 청소년들의 움직임이 그들의 주류 문화를 형성하였고, 21세기 사회에서 그들은 대량실업과 세기말적 혼란 속에서 사회의 불안 세력이자 가능성의 세대로 인정받게 되었다. 한국의 청소년은 1980년대 대학생 운동의 절정기를 맞으면서, 조직력과 이데올로기가 극도로 강조되는 분위기에서 청소년의 실험성과 자유로움은 상실되어 버렸던 것이다. 청소년에 의한 문화 변혁적 운동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30년대 ‘신여성’과 ‘모던 보이’들이 불러 일으켰던 신문화 조류나 1960년대 말부터 일었던 ‘청년문화운동’이 그러한 성격을 띠고 있다. 그러나 통기타와 히피풍조 패션으로 대변되는 청년문화운동은 서구 풍조의 모방이자 퇴폐풍조로 간주되어 장발과 미니스커트 단속 정책에 의해 억제되었고, 새로운 문화를 주도했던 그 시대의 청년들은 군대를 갔다 오면서 곧바로 기성세대 체제에 편입되어 버렸던 것이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반독재 투쟁은 어느 정도의 결실을 이루게 되지만, 청소년들의 행보는 곧바로 소비에만 열중하는 ‘신세대’로 규정됨으로써 하나의 독자적인 세력으로 형성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연세대 사회학과 조혜정 교수의 글에 따르면, 근대 한국사에서 청소년의 위상은 크게 세 단계를 통해 발전하였다. 여기서는 조혜정 교수의 단계구분에 근거하여 필자 나름의 견해를 덧붙여 설명하고자 한다. ‘학생’이 선망의 대상이었던 근로 청소년 첫 번째 단계는 대가족의 ‘소인’일 뿐이었던 청소년들이 가족을 빠져나와 ‘학생’이라는 독자적인 위상을 갖게 되는 단계이다. 근대 국가기구는 모든 아이들을 ‘근대적 국민’으로 만들기 위해 학교를 지었고,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가정에서 벗어나 개인의 공간을 갖기 시작하였다. 학생이라는 새로운 지위를 획득했고, 이 시대에는 청소년 자신들이 이 지위를 선호했다. 그러나 이 범주에 들지 않는 이들은 주변적 범주로 인식되었다. ‘학교에 가지 못하는 소외 계층’, ‘학교 공부보다 생계유지가 더 시급한 사람’이라는 식의 범주화가 근대 전반부에 청소년들의 삶을 지배했던 것이다. 이 시대에 행운아는 자기를 상급 학교에 보내 줄 경제력을 가진 아버지나 잡다한 집안일을 시키지 않고 숙제를 하도록 배려하는 어머니를 가진 아이였다. 소수의 선택된 아이만이 학교에 갈 수 있었던 시대에 ‘학생’이 되는 것은 축복이었던 것이다. 반면에 이 시대에 ‘학생’에 속하지 않는 청소년은 주변적인 범주인 ‘근로 청소년’에 속한다. 교복을 입은 같은 또래의 학생을 선망의 눈길로 바라보는 계층인 이들을 위해 1970년대 국가는 ‘산업역군’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고, 근로 청소년회관을 지어서 검정고시 반을 운영하거나 취미교실을 운영하여 이들을 위로하기도 하였다. 1980년대 후반에는 화장법을 가르쳐서 이들을 숙녀로 만들어내려고 노력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서면 더 이상 학생과 근로 청소년의 이분법은 성립되지 않는다.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대다수의 청소년들이 고등학교에 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학생은 ‘좋은 청소년’, 비학생은 ‘불량 청소년’ 두 번째 단계는 다수의 청소년들이 학생인 시점에서, 학교에 다니지 않는 것이 더 이상 불우한 청소년이 아니라 부적응자이거나 일탈자로 범주화되는 단계이다. 이 시점에서 10대는 ‘학생’과 ‘비학생’으로 이분화되었으며, 학생은 ‘좋은 청소년’인 반면 비학생은 ‘불량 청소년’으로 취급되었다. 1980년대까지 지속된 대량생산 체제에서 학교는 그 체제가 필요로 하는 인력을 대량으로 생산해 내는 기능을 수행했으며, 기성 사회는 그 체제에서 이탈하는 청소년을 ‘불량 청소년’으로 낙인찍었던 것이다. 또한 한국의 청소년은 대학생과 중·고등학생으로 구분되고, 청소년이란 용어는 중·고등학생을 지칭하는 것으로 변하였다. 대학생들이 고등학생들을 의식화시킬 것을 두려워해서 선배들이 모교에 와서 동아리 활동을 하던 것이 금지되었고, 그래서 많은 선후배가 함께 하는 청소년 동아리의 맥이 끊겼다. 따라서 1980년대를 통해 중·고등학교는 가장 폐쇄적인 공간이 되었으며, 중등학교 학생들은 ‘학생’ 이외의 정체성을 버려야 했다. 강압적이고 통제 일변도의 학교 분위기가 형성된 것도 이런 특수한 역사적 시점을 거치면서이다. 이 시대의 학생은 더 이상 특권 계층이 아니었으며 단지 ‘공부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공부하는 학교에서 공부를 잘하는 사람만이 훌륭한 사람, 모범생 등으로 인식되었을 뿐, 공부하는 곳에서 공부를 게을리 하거나 공부를 포기한 사람들은 열등생, 부적응자, 비행자로 분류될 수밖에 없었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만이 인정받았으며, 그들의 사소한 허물이나 실수는 묻힐 수 있을망정 공부 못하는 사람의 허물은 인생의 실패나 부도덕으로 낙인 되었던 것이다. 대량 생산시대에 필요한 인력은 뛰어난 엘리트가 아니라 대중화되고 평준화된 사람이었다.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지만, 학교교육은 점차 평준화를 지향함으로써 모든 학생들을 백화점의 상품과 같이 개성 없는 생산품 또는 진열품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소비 주체로서의 청소년 세 번째 단계는 1990년대 전후 본격적인 소비 자본주의 체제가 진행되면서 ‘학생’의 위상이 ‘청소년’이란 위상으로 또는 ‘소비자’란 이름으로 전환되기 시작한 단계이다. 이제 학교라는 울타리와 학생이라는 신분을 적극적으로 이탈하는 아이들이 생겨났으며, 이에 따라 정부에서도 학교의 규범에 얽매인 학생들을 보다 자유로운 인격체로 인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게 되었다. 구체적인 예로써, 1987년 당시 체육부는 ‘청소년육성법’을 제정하였고, 1988년에 체육부 내에 ‘체육청소년국’이 설치되었으며, 1990년에는 청소년헌장이 선포되고 ‘체육부’가 ‘체육청소년부’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노력은 당시 정부 차원의 청소년 정책이 비교적 활발하게 전개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학생’의 신분을 ‘청소년’이라는 신분으로 이미지 변신을 도모한 것은 성공적으로 평가되지만, 학교 내 각종 규제에 얽매여 있는 10대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크게 바꾸어 놓지는 못하였다. 1991년 청소년기본법이 제정되면서 학생들은 잠시 학교를 떠나 자연 속에서 수련활동을 할 수 있도록 되었다. 청소년의 범위를 9세부터로 정한 것도 학생들의 수련원 활동을 권장하기 위한 차원에서이다. 1997년 이래로 다시 청소년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청소년헌장을 개정하는 등 ‘학생’이 아닌 ‘전인적 청소년’을 강조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지만, ‘국가발전을 위해 청소년을 육성하겠다’는 식의 국가주의적 패러다임이 잔존해 있는 한, 그리고 교육부와 교육청의 학생 지배에 대한 욕심이 계속되는 한 청소년 활동의 활성화는 사실상 쉽지 않은 형편이다. 그러나 국가적 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본시장의 급격한 변동에 의해 청소년의 세계가 새롭게 탈바꿈하고 있다. 자본은 청소년을 위한 길거리 농구장을 마련하였고, 유명 상표를 부착한 신발과 의류를 팔았으며, 10대를 위한 각종 잡지와 패션 책을 통해 10대들만의 무수한 이야기를 제공하였다. 청소년들은 정부에서 벌인 행사에서와는 달리 시장의 자본이 만든 공간에는 자발적으로 찾아다녔으며, 노래방, 피시방, 오락실, 호프집, 콜라텍을 선택하였다. 1980년대 이후 자본에 의해 청소년들의 학교 밖 놀이공간들이 광범위하게 만들어졌으며, 청소년들은 그 공간에서 자기들만의 개별공간을 만들어가기 시작하였다. 다시 말하면, 10대들은 한편으로 자본이 만든 새롭고 광활한 소비 공간의 유혹을 받고, 다른 한편으로는 낙후된 학교가 밀쳐내는 힘의 작용에 의해 독자적인 생활터전을 마련한 것이다. 인터넷으로 온갖 정보를 접할 수 있게 된 아이들에게 학교는 더 이상 재미없는 공간에 불과하며, 오래 머물다가는 낙후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심어줄 뿐이다. 실제 학교를 떠나는 아이들의 수는 적지만, 다수의 아이들이 몸만 학교에 있는 식의 태업에 들어갔고, 상당수는 학교생활을 삶의 일부로만 간주하는 사고방식을 갖게 되었다. 가끔 우리는 한국의 청소년이 서양의 청소년들보다 학교에 더 잘 다니지만, 또한 더 폭력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학교에 대한 문제제기를 학교 망신시키는 행동이라고 하면서 여전히 고답적인 자세를 버리지 못하는 학교 운영책임자도 있다. 청소년 문제가 너무나 심각하고 해결책이 없으니까 그냥 덮어두자고 말하는 전문가도 있다. 청소년들의 행동에 포함되어 있는 권리와 자유를 인정해 주지 않는다면, 그래서 그들의 반항적인 행동만을 문제 삼는다면 앞으로도 영원히 청소년의 세계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학교 내 청소년문화의 형태 교육이란 본래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작용이며, 개인의 전인적 성장을 조력하고 지원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학교는 교육의 일차적인 장(場)으로서의 기능을 포기하고, 입시경쟁으로 학생들을 구속하는 스트레스의 원천이 되고 말았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학교 내 청소년들은 크게 4가지 유형으로 구분될 수 있다. 첫 번째 부류는 학교에서는 모범생이지만 그들 나름대로 사이버공간이나 B-boy 댄스 활동, 밴드 활동 등에 몰두하면서 학교 밖의 공간을 확보해 놓은 청소년들이다. 이들은 자기들만의 활동공간을 마련하고 있기 때문에 학교에 대해 큰 기대도 불만도 없는 편이며, 학교에서는 그들 나름의 시간 때우기 방법을 터득하고 있는 듯하다. 학교에서 무턱대고 잠자기, 그들만의 정보교류, 쉼터, 그리고 부모님께 최소한의 효도를 제공하기 위한 곳쯤으로 인식하고 있다. 두 번째 부류는 아예 학교를 떠난 아이들이다. 이들은 학교 밖에서 학원에도 다니고 여러 종류의 비공식적 모임에 참여하거나 독학을 하면서 자신의 삶을 계획해 나간다. 문화센터를 통해 영화 만드는 것을 배운다거나 아르바이트를 통해서 사회경험을 하는 등 새로운 학습의 공간을 개척하고 있는 것이다. 학교라는 폐쇄된 공간에 더 머물다가는 변화되는 역동적인 사회 환경에서 도태되고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으로 인해 스스로 학교를 탈퇴하고 자기만의 공간 및 생활터전을 창조해 나가는 적극적인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세 번째 부류는 딱히 자기만의 창조적 공간을 마련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열심히 노는 아이들이다. 인기 대중가수의 열성적인 팬 클럽회원이기도 하고, 때로는 나이트나 콜라텍 등에 가서 열심히 춤도 추고, 노래방에 가서도 적극적으로 노는 아이들이다. 이들은 발랄하고 당돌한 신세대의 전형적인 모습을 연출한다. 이들에게 어른들의 걱정스러운 간섭은 잔소리로밖에 인식되지 않는다. 당돌하리만큼 정열적이고 반항적이지만, 노는 데 빠져있을 뿐 비행이나 일탈에 개입하는 것은 아니다. 네 번째 부류는 아마 현재 대다수를 차지할 것으로 생각되는 수동적인 청소년들이다. 부모님을 실망시킬 수 없으니까 학교에 가라면 가고, 텔레비전도 조금 보고, 친구를 따라 콜라텍에도 가끔 가고 노래방에도 간다. 이들은 대체로 “별 생각 없이 살아요”, “사는 게 재미없어요”라고 반응한다. 일 중독증에 걸려 놀 줄 모르는 부모세대의 보호를 받으면서 적당히 공부하고, 적당히 놀고, 편안하고 안정된 생활을 유지하고자 하는 모습이다. 아마 이들 중 다수는 10년 후에도 이런 생활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앞의 세 부류는 오늘날 그 숫자가 점차 증가되고 있지만, 아직도 소수일 뿐 지배적인 청소년 세력이라고 볼 수는 없다. 아마도 90% 이상의 청소년은 네 번째 부류에 속할 것이다. 어른들은 앞의 세 부류에 대해 염려하고 심지어 문제청소년으로 오인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들의 경우 나름대로 문화공간을 가지고 있거나 새로운 삶을 개척해 나가고 그리고 열심히 놀고 있을 뿐, 비행이나 문제행동에 개입하고 있다는 구체적인 증거는 없다. 오히려 이들이 새롭고 역동적인 청소년문화를 창조하는 주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네 번째 부류의 청소년들은 따분하고 재미없는 삶을 엮어가고 있으며, 잠재적 비행요인을 어느 누구보다 많이 내포하고 있다.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스트레스와 욕구불만 등으로 신체적·정신적 위기를 자초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변화에 따라 청소년들의 의식과 가치관에 커다란 변화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현대 사회의 청소년들은 성인 사회의 문화를 단순하게 수용하고 흡수하는 스폰지 세대가 아니라 그들 나름의 독창적인 문화를 생성하는 문화 주체적 세대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다수가 아닌 소수에 의해 생성되고 확산되는 청소년문화이기에 하위문화 또는 대항문화라는 좋지 못한 평판을 듣고 있는 듯하다. 청소년들이 우리 사회의 당당한 동반자로서 가치를 높여나가기 위해서는 더 많은 청소년들이 학교와 가정의 울타리에만 안주하지 말고 사회의 더 큰 터전으로 뛰쳐나와서 자신의 역량과 잠재력을 시험하고 개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심영옥 | 경희대 겸임교수·미술사 기교 없는 무작위의 질서 창출 예로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집을 지을 때 돌이나 흙으로 소박하고 질박한 담장을 만들어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고 즐겁게 해 주었다. 담장을 쌓는 사람은 돌 크기나 흙 양을 미리 계산하지 않고,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쌓는 동안 질서를 찾아가며 담장을 표현하였다. 이처럼 우리 조상들은 기교를 부리지 않으면서 무작위의 질서를 창출하는 지혜와 멋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담장은 한국인의 정서와 잘 어울려 소박하면서도 분방한 듯한 추상적인 아름다움을 잘 보여준다. 쌓은 돌 사이사이에는 사람들의 추억도 묻어주면서 욕심 없이 쌓은 돌들은 은근한 멋을 느끼게 해 준다. 그러면서 자신이 원하는 문양을 만들어 낸 것이 바로 꽃담이다. 대체로 담장치레만 보더라도 그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다. 흙담은 흙담대로 돌담은 돌담대로 꽃담은 꽃담대로 궁궐과 민가의 얼굴 역할을 했다. 옛 궁궐의 꽃담은 화려한 것 같지만 야하지 않아 선비 같은 은근한 멋을 풍긴다. 이에 반해 일반가옥의 꽃담은 질박하면서도 분방한 멋을 느끼게 해 준다. 깨진 기왓장을 이용하여 투박한 솜씨로 토담에 꾹꾹 박아 놓은 기와담장이나 흙담장, 돌담장은 모두 구수한 한국인의 심성이 그대로 배어 있다. 이와 같이 뽐내지 않고 순수한 한국적 아름다움을 간직한 우리의 담장은 사계절 마다 그 변화와 잘 어울려 한국의 정취를 물씬 풍겨주는 역할을 똑똑히 한다. 시대 상황 반영하는 조화로움 꽃담은 집의 벽이나 담에 여러 가지 무늬를 놓아 장식한 벽면을 통틀어 부르는 말이다. 꽃담의 치장은 돌로 벽면을 쌓거나, 흙담에 기왓장으로 무늬를 만들어 넣거나, 흙을 구워 전돌을 만들어 꾸몄다. 꽃담은 넓은 의미로는 벽체와 담장을 말하나 주로 담장을 지칭한다. 그림과 무늬로 모양을 냈다고 해서 그림담 또는 무늬담이라 부르기도 한다. 즉, 꽃담은 담장을 치레한 것을 말하므로 굳이 꽃담과 담장의 의미를 구분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꽃담의 역사는 삼국시대부터 이미 시작됐다고 본다. 〈삼국사기〉권33, 옥사(屋舍)에 보면, '진골 계급 주택의 담장은 석회를 발라 꾸미지 못한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는 다시 말해 왕족인 성골은 석회를 발라 집을 치장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전통이 발전하여 고려시대에는 민가의 꽃담이 궁궐의 꽃담보다 오히려 화려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와서는 유교 사상의 영향으로 검소한 것을 숭상하는 풍조가 생기면서 수수하고 은은한 꽃담이 많아졌다. 특히 임진왜란 이후는 경제 사정이 매우 나빠져 주변에서 얻을 수 있는 소박한 재료만으로 꽃담을 꾸미기도 했다. 당시 사람들은 하찮은 재료로 담을 쌓더라도 자신들만의 미의식을 발휘하여 그냥 쌓지 않고 주어진 재료로 가능한 예쁜 무늬를 놓으려고 했다. 시골 집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흙이나 돌, 기와나 그 파편들로 무늬를 만들어 그것을 보며 즐길 줄 아는 높은 미의식이 있었던 것이다. 이런 꽃담에는 그 지역의 특성이 잘 나타나 있어 돌이 많은 제주도에는 돌담이 많고, 돌을 구하기 힘든 곳에서는 토담이나 토석담, 그리고 중부지방에는 토석과 전돌로 담을 쌓았다. 흙이 많은 지역에서는 흙담을 쌓되 흙이 주저앉지 않도록 중간 중간에 돌을 박거나 때로는 깨진 기와도 섞어 무늬를 넣어 담을 만들었다. 거기에다 길상적인 의미를 지닌 글자나 꽃, 동물 등의 무늬를 넣어 주변의 건축이나 자연과 조화가 이루어지도록 하였다. 토담은 토담대로, 돌각담은 돌각담대로 표정이 있는데 이는 그 집 주인의 마음과 개성이 담겨 있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꽃담들도 옛 주인의 멋을 잘 읽을 수 있다. 한옥의 담장은 쌓을 당시 그 집안의 사정도 알 수 있다. 자식이 부족한 집에는 다산(多産)을 기원하는 포도 무늬를 넣기도 하였고, 즐거움을 바라는 집에는 '희(囍)'자를 넣어 축복의 마음을 담았다. 친숙하고 정감어린 자연의 일부 꽃담은 울타리를 치는 것에서 비롯되어 발전하였다. 원래 울타리의 '울'은 우주를 의미하며 '한울'하면 '큰 울', 즉 끝없는 무한대의 우주를 가리켰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울타리는 하늘의 마음을 나타낸다고 생각하며 만들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차츰 그 역할이 바뀌게 되고, 대신 그 담에 우주를 상징하는 해와 달과 별을 무늬 놓아 꾸미기도 했다. 담장의 기능은 공간을 나누거나 안과 밖을 구분 짓는 것이다. 그러나 예전에는 사나운 짐승을 막기 위해서나, 계급사회에서 권위의 상징으로 만들기도 했다. 세월이 흘러가면서 차츰 울타리는 집을 보호하는 구실을 주로 하였다. 보호를 위해서 담장은 더욱 강하면서 튼튼하게 변하였다. 이런 담이 생기면서 점점 복잡하고 많은 사연들이 생겨나게 되고, 그 사연의 내용을 무늬로 표현하거나 다른 의미의 무늬로 부드럽고 아름답게 꾸미려는 노력도 함께 하였다. 한국의 담은 위험으로부터 자신이나 가족을 보호하는 목적도 있었으나 선천적인 미의식의 발로로 조형적인 목적이 더 컸기 때문에 위협적으로 높게 쌓기보다는 대개 아담하고 아름답게 장식하였다. 우리나라 꽃담은 경계나 단절이 아니라 자연 재료를 이용하여 친숙하고 정감어린 자연의 일부와 같이 만들었다. 이를테면 인간세계와 자연을 담으로 단절시키지 않고 담을 넘나들며 끊임없이 교감할 수 있도록 아름다운 질서를 찾으려는 의도로 표현한 것이다. 이런 의미는 서민들의 담장치레에서 더 진하게 느낄 수 있다. 흙으로 쌓아올린 담장에 깨진 사기그릇 파편과 조각난 기왓장을 꾹꾹 눌러 박은 소탈한 치장은 자유로운 추상미까지 느끼게 한다. 뿐만 아니라 화려한 듯하면서 튀지 않고 수수하면서도 정교하여 세련된 아름다움이 있는 궁궐의 꽃담도 현란하지 않게 주변 경관과 어울리도록 은은한 멋을 풍기게 하였다. 돌이든 흙이든 전돌이든 또 다른 어떤 재료든 간에 자유로운 마음으로 장식한 무늬들에 의미를 담고, 담장의 모양에도 의미를 담아 질서를 만들었던 것이다. 우아하고 단아한 궁궐의 꽃담 우리나라 궁궐의 꽃담은 그 건축의 모양새와 멋들어지게 어울려 인공과 자연을 적절히 구분하여 아늑함을 더해주고 인공미를 살려준다. 화려한 무늬로 장식된 궁궐의 꽃담은 직선과 곡선을 치밀하게 구성하고 질서 있게 무늬를 배열하여 미감을 높이는가 하면 왕실을 상징하는 용과 봉황으로 위엄을 갖추기도 했다. 임금의 무병장수를 비는 만수무강(萬壽無彊), 수복강녕(壽福康寧) 등의 문자를 직접 나타내어 단순한 장식이나 미적 표현보다 그 뜻에 더 의미를 두기도 했다. 우리나라 꽃담의 진미라 불리는 경복궁의 자경전 서쪽 꽃담을 보면 윗부분은 기와로 마무리하고 담장에는 만(萬), 수(壽), 복(福), 강(康), 녕(寧) 등의 의미를 가진 길상문자와 함께 귀신을 쫓는다는 의미로 가운데 액자 그림처럼 틀어박힌 꽃무늬를 담아냈다. 그 외벽에는 사군자, 모란, 연꽃, 태극무늬, 석쇠(귀갑)무늬, 문자무늬 등 각종 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로 잘 알려진 한국미 발견자 혜곡 최순우는 경복궁의 담장을 보고, "동산이 담을 넘어와 후원이 되고 후원이 담을 넘어 번져 나가면 산이 되고 만다. 담장은 자연 생긴 대로 쉬엄쉬엄 언덕을 넘어가고 담장 안의 나무들은 담 너머로 먼 산을 바라본다.(중략) 담장은 자연과 후원을 천연스럽게 경계 짓는 것이며 이러한 담장의 표정에는 한국의 독특한 아름다움이 스며 있다"라며 경복궁 꽃담의 자연미를 극찬하였다. 매화 꽃 봉오리를 머금고 있는 늙은 매화나무와 매화나무 가지에 걸린 달, 거기에 놀러온 새가 세심하게 표현되어 있고, 난초, 국화, 대나무, 석류, 연 등의 형상 무늬를 집어넣은 자경전 꽃담은 바로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룬 한국미의 극치이다. 그리고 왕비의 침소였던 교태전 뒤편 아미산 동산을 연결시킨 꽃담은 우아하면서 단아한 국모의 성품을 느끼게 하고, 운현궁 꽃담은 묵란도를 즐겨 그리던 흥선대원군의 미의식을 눈치 챌 정도로 단아하면서 우아하게 장식되어 있다. 이 외에도 많은 꽃담이 있지만 궁궐의 꽃담은 왕과 왕족을 위한 의미를 포함한 무늬들이 많이 표현되어 똑같은 재료로도 궁궐 주인을 위한 충성스런 백성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앞으로는 우리 민족의 정서와 한국적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자유스럽고 분방한 마음으로 꽃담을 새겨 넣을 사람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건축 양식이 서구화, 현대화되면서 계산된 크기와 계획된 무늬와 재료로 담장이 만들어지거나, 담장 없는 빌딩이 하늘을 솟아오르고 있다. 우리에겐 문화를 창조하는 능력도 있지만 전통문화를 계승해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 결코 꽃담은 감상품이 아니다. 울타리가 필요 없는 아파트 생활에 익숙할지라도 우리나라 꽃담의 정신과 아름다움을 다시 만들어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김철수 | 경남 거제중앙고 교사, 사진작가 바다와 만난 수 만년의 세월 사람이 살면서 발길이 생기고 발길이 많이 묻힌 곳에 큰 길이 생겼다. 문화와 생활을 아우르는 길은 동해안을 따라 부산에서 함경북도 온성군까지 이어져 7번 국도가 되었다. 바다와 어우러져 길게 뻗친 7번 국도는 풍광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유일하게 있는 석호를 가득 안고 있다. 석호는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진 자연유산으로 다음과 같은 과정에 의해 만들어졌다. 빙하기에 바닷물이 크게 줄어들어 해수면이 크게 낮아진 곳에 하천의 침식작용으로 동해안에는 큰 골짜기들이 생겨났다. 그 후 후빙기가 시작되면서 다시 빙하가 녹고 바닷물의 높이도 높아져 이전에 만들어 놓았던 골짜기에 물이 차게 되면서 움푹 들어간 지형인 만(灣)을 만들었다. 먼 바다에서 해안으로 밀려오는 파도는 올라왔다 다시 내려갈 때 한 쪽으로 휘어져 내려간다. 이런 파도의 힘으로 바닷가의 모래들이 계속 한쪽으로 밀려나 만의 입구에 모래로 이루어진 둑(사주, 사취)이 만들어지게 된다. 계속 모래가 쌓이면 둑은 커지게 되고, 결국은 만의 입구를 막아 버린다. 그래서 석호의 물은 담수의 물도 아니고 바닷물도 아닌 그 중간을 택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강릉의 경포호와 풍호, 주문진의 향호, 양양군의 포매호와 순포, 속초의 청초호와 영랑호, 고성군의 광포호, 봉포호, 송지호, 화진포호, 북녘 산하의 감호, 삼일포, 시중호 등이 있다. 문학과 어울려진 석호의 백미는 경포호지만, 자연과 어울려진 풍광의 아름다움은 속초 북방에 분포하는 석호들에 있다. 금강산과 설악산이 품었던 지하수들이 뿜어 나와 흐르다가 바다와 만나 만들어진 여러 호수들. 이 호수들에 전해오는 이야기도 많다. 예로부터 절경의 금수강산은 우리 선조들에게 있어 하늘의 뜻을 이어받고 기개를 높이는 매개체로 이용되었다. 신라의 화랑들은 높은 산과 깊은 골에서 심신수련을 통하여 나라 사랑과 삶의 의미를 공부하였다. 그들이 즐겨 찾던 곳 중 하나가 관동과 관서를 나누는 백두대간의 대줄기인 태백준령이다. 신선이 머무는 아름다운 풍경 1만 2000개의 봉우리와 여러 계곡으로 이루어진 금강산에 아름다운 호수가 위치하니 그곳이 삼일포이다. 북녘의 산하에 놓여 있는 삼일포는 조선시대 정철이 노래한 관동팔경의 하나이다. 신라시대에 금강산에서 무술을 연마하던 영랑, 술랑, 남석랑, 안상랑 등의 네 화랑이 서라벌에서 열리는 무술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길을 떠나게 된다. 그들이 처음 머문 곳이 삼일포인데, 이곳의 아름다운 경치에 취해 3일 동안 놀다갔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들이 이곳에 머문 흔적은 호수 가운데 위치한 정자의 이름인 사선정과 가까이에 위치한 해금강 총석정에 위치한 육각으로 된 네 기둥의 이름인 사선봉에 남아 있다. 아름다운 삼일포는 천연기념물 제218호로 백두산의 삼지연, 통천의 시중호와 함께 북측의 3대 호수에 속한다. 삼일포를 뒤로 하고 남으로 내려오면 구선봉 아래에 '나뭇꾼과 선녀 이야기'의 무대가 된 감호가 나타난다. 멀리 거진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보면 구선봉이 보이고, 그 아래에 보이는 작은 호수가 감호이다. 남측에서는 떠나버린 선녀를 기다리는 나무꾼의 심정으로 남방한계선과 휴전선 사이의 버려진 경작지에 자연습지를 복원하고 있다. 남측의 가장 북방에 위치한 석호는 화진포인데, 둘레 16㎞의 대부분에 해당화가 자라고 있어 말 그대로 꽃의 호수이다. 남측의 석호 중 가장 규모가 큰 화진포는 중평천과 월안천이 호수로 흘러들어 담수호를 이루고 있는데, 호수 주변에는 백사장과 소나무숲이 넓게 펼쳐져 아름다운 경관을 만들기에 많은 별장들이 자리 잡고 있다. 화진포를 거쳐 해안을 따라 내려오면 죽왕면에 송지호가 위치하고 있다.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어 개발되고 있는 송지호는 맑은 물과 소나무숲 및 산봉우리가 조화되어 아름다운 풍경이 있는 호수로 재첩이 잡히고 있어 여름철에 재첩잡이 체험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특히 이곳은 호수 중간까지 만들어진 목도를 통해 송지호의 아름다움을 접하게 하고 있다. 그 외에도 고성군에는 봉포호와 광포호가 위치하고 있는데, 봉포호는 대학을 설립하면서 대부분이 사라지고 일부가 대학의 진입로 주변에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나 담수화되었다. 속초 시내에는 청초호와 영랑호가 위치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터전을 제공하고 있다. 청초호는 항구로서의 기능을 하는 유일한 석호로 작은 배들이 드나드는 내항으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다. 90년대 이후 전국의 항만 중 오염도 1위를 차지하였던 청초호는 강원관광엑스포를 열면서 호수의 1/3이 매립되어 사라져 고니들의 보금자리인 갈대숲이 사라졌지만 하수 처리 시설이 설치되면서 수질은 좋아진 상태이다. 영랑호는 속초시 장천동, 금호동, 영랑동 일대에 있는 호수로 둘레가 8㎞에 달한다. 삼일포에 머물던 네 국선이 이곳을 지나는 중 영랑이 이 호수의 아름다움에 취해 무술대회에 나가는 것도 잊고 이곳에 머물면서 고기를 잡고, 뱃놀이를 하면서 풍류에 취해 오랫동안 머물렀기에 영랑호가 되었다고 한다. 영랑호 주변에는 차량이 다닐 수 있는 호안도로가 개설되어 있어 드라이브, 도보여행, 자전거하이킹을 할 수 있으며 도심지 속의 작은 공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넓게 펼쳐진 습지대는 없지만 그런대로 자연의 운치를 느낄 수 있고, 그 운치를 더하는 속초팔경의 하나인 범바위가 있다. 주변에 콘도미니엄과 유원지가 조성되어 경관이 많이 파괴되었지만, 범바위에서 바라보는 영랑호의 전경은 가슴을 탁 트이게 한다. 범바위는 바위의 모양이 범 형상을 닮아 붙여진 이름인데, 속초사람들에게는 성스러운 바위로 알려져 있다. 해질 무렵 하구 쪽에서 영랑호를 바라보면 설악산의 울산바위와 어울려진 낙조는 이곳이 선경(仙境)임을 알게 해 준다. 바닷가 식물들의 수줍은 유혹 시냇물과 바닷물 및 육상이 만나 만들어진 석호에는 다양한 환경이 나타나 여러 종류의 생물이 살고 있다. 담수와 해수가 만나기에 담수에 사는 잉어, 향어, 메기, 붕어, 가물치와 바닷물에 사는 연어, 황어, 은어, 학공치, 숭어, 도미가 함께 살고 있다. 또 이들을 먹이로 하여 살아가는 철새들이 찾아 겨울에는 특별히 백조의 호수가 된다. 몸이 희어 백조로 일컬어지는 천연기념물 제201호인 고니, 흑고니, 큰고니가 다수 찾고 있다. 석호에 나타나는 식물의 종류도 다양한데, 육상식물, 물에서 살아가는 식물, 바닷가식물들이 어울려져 살아가고 있다. 육상식물로는 소나무가 가장 많이 자라고, 물에서 살아가는 식물에는 갈대, 물억새, 달뿌리풀, 부들, 질경이택사, 솔방울고랭이, 순채, 매자기, 송이고랭이, 세모고랭이, 창포, 큰고랭이, 부채붓꽃, 노랑꽃창포, 부처꽃, 마름, 이삭물수세미, 말즘, 민나자스말, 개발나물, 눈양지꽃 등이 있다. 이 중에서 부채붓꽃은 붓꽃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로 우리나라 강원도 동해안을 따라가면서 일부 분포지가 나타나는 희귀한 붓꽃으로 5~7월에 꽃이 청자색으로 피며 꽃잎이 다른 붓꽃류에 비해 넓다. 우리나라에서 특정야생식물로 지정된 희귀종이며, 북측에서도 부채붓꽃 분포지인 함경남도 부전군 백암리에 있는 부채붓꽃밭을 천연기념물 제300호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눈양지꽃은 우리나라 동해 바닷가에만 나는 여러해살이풀로 5~8월에 노란색의 꽃이 잎겨드랑이에 매달린다. 이곳에 나타나는 바닷가 식물에는 갈대, 청비녀골풀, 수송나물, 해당화, 갯완두, 갯메꽃, 갯방풍, 순비기나무, 좀보리사초, 쇠보리, 해란초, 지채, 갯씀바귀 등이 있다. 해당화는 장미과에 속하는 낙엽이 지는 작은 나무로 바닷가 모래땅이나 산기슭에서 높이 1.5m까지 자라며, 뿌리에서 많은 줄기가 나와 큰 무리를 이루며 자란다. 꽃은 홍색으로 5개의 꽃잎이 지름 6~7㎝ 정도로 줄기 끝에서 피며, 열매는 새들의 좋은 먹이가 된다. 순비기나무는 중부 이남의 바닷가에 자라는 상록 관목으로 줄기는 눕거나 비스듬히 자라면서 전체에 회색빛이 나는 흰색의 잔털이 퍼져 있다. 꽃은 진한 자주색이고 이삭 모양으로 모여 나며, 열매는 약용으로 잎과 가지는 목욕용 향료로 이용된다. 특히 순비기나무는 해변을 망토 모양으로 덮는 역할을 하여 해변을 이루는 모래를 잡아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갯방풍은 산형과의 여러해살이풀로 굵은 황색의 뿌리가 모래 속에 깊게 들어가며 높이는 20㎝ 내외로 자라고 꽃은 6~8월에 줄기 끝에 펼쳐진 우산 모양으로 뭉쳐난다. 전체에 흰털이 가득 나고, 뿌리는 약용으로 사용한다. 해란초는 여러해살이풀로 7~8월에 꽃이 피며 꽃대에 연한 황색 꽃이 달리며, 열매는 둥글고 씨에는 두꺼운 날개가 달려 있다. 주로 바닷가 모래땅에 자라고 꽃이 난초와 같이 아름답다고 하여 해란초라고 한다. 해당화 피는 꽃의 호수, 화진포 '황금물결 찰랑대는 정다운 바닷가, 아름다운 화진포에 맺은 사랑아~' 한때 유행하였던 이씨스터즈의 '화진포에서 맺은 사랑'이라는 노래 가사의 일부처럼 화진포는 희망과 아름다움이 흘려 넘치는 낙원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석호인 화진포를 둘러보는 것은 석호에 살고 있는 생물과 석호의 역할에 대해 알아보는 귀중한 시간이 될 것이다. 화진포는 소금의 농도가 낮아 수면이 잘 얼지 않고, 오염되지 않는 깨끗한 물과 넓은 갈대밭 및 주변에 농경지가 분포하고 있다. 쉴 수 있는 넓은 공간과 먹이가 풍부하여 철새들에게 좋은 휴식처를 제공하고 있다. 그렇지만 화진포의 대부분은 도로와 소나무숲으로 둘러싸여 자연성을 많이 잃었지만, 도로변마다 해당화를 심어 꽃의 호수라는 이름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습지대가 형성되어 다양한 석호 생물을 관찰하기에 좋은 곳은 화포리 장평 부락과 잣골 사이에 개설된 일주도로이다. 이곳의 습지대에서 갈대, 해당화, 쉽사리, 부채붓꽃, 흰여뀌, 눈양지꽃, 벌노랑이, 개발나물 등을 살펴볼 수 있다. 특히 이 일주도로에는 조용한 곳을 찾는 철새들도 많이 날아오고, 사람의 왕래도 적은 곳이다. 다시 이 길을 돌아 나와 송림 사이에 위치한 이기붕과 김일성 별장을 찾아가 보자. 김일성 별장에서 바라보는 광활한 화진포해수욕장의 모습은 더욱더 우리 가슴을 풀어헤치게 한다. 해수욕장에는 많은 바닷가식물들이 살고 있는데, 갯방풍, 좀보리사초, 쇠보리, 수송나물, 해란초, 갯메꽃, 갯씀바귀 등이 있다. 다시 차량을 이동하여 화진포교 위에서 이곳에 살고 있는 물고기들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고, 그 주변에 있는 이승만대통령의 별장도 가보자. 화진포와 해수욕장을 굽어보는 위치에 해양박물관이 위치하는데, 이곳에는 바다에 사는 어류, 조개류, 갑각류의 표본들이 전시되어 있다. 모두가 지켜야 할 민족의 보물 보름달이 휘영청 쏟아지는 밤이면 하늘에서 선녀들이 두레박을 타고 내려오는 석호. 가끔씩 화를 내는 바다와 높은 산이 만나 날씨의 변덕이 심한 이곳에 예전부터 사람들이 살아 왔다. 석호에 기대어 먹을 것을 얻고, 동해의 구름과 안개를 보면서 많은 이야기를 만들며 살아온 사람들. 그들에게 석호는 삶의 터전이자 신과 인간이 공존하는 선경의 세계였다. 사람의 힘으로 쉽게 만들 수 없기에 그 값어치가 뛰어난 이곳은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다. 첫째, 많은 생물들이 석호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다. 석호에 살고 있는 생물은 석호가 사라지면 같이 사라질 수밖에 없기에 석호는 보호되어야 한다. 둘째, 우리나라 최대의 휴양지인 동해안은 산과 바다가 어울러져 파라다이스를 만들고 있다. 이 낙원에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 만든 석호는 더 아름다운 운치를 더하여 준다. 셋째, 새들이 날고 있는 석호를 보면서 아름다운 심성을 싹 틔울 수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 따뜻한 마음을 글로서 전달하는 석호의 값어치는 돈으로 환산될 수 없다. 동해안에 있는 남과 북의 석호들이 만나는 날, 민족의 혼과 웅지가 다시 한 번 떨쳐지는 날이 되리라. 이처럼, 바다에 의해 만들어진 자연늪인 석호는 낙원이면서 희망의 땅인 것이다. 그런데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일부 사람들에 의해 이처럼 귀중한 땅인 석호가 사라지고 있다. 선조들이 지켜 물려준 석호, 우리도 우리 후손들에게 반드시 물려주어야 한다.
나무, 새 2008년 4월! 한국인 최초 우주인이 러시아 우주선을 타고 지구를 떠납니다. 경쟁률만 18,000:1. 요즘엔 이벤트 상품으로 우주여행권도 등장하였으니 바야흐로 우주탐험이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닌 실제 상황임을 실감하게 됩니다. 옛사람들이 우주라고 여겼을 하늘을 바라봅니다. 저 멀고 높은 하늘세계에 우리 사람들이 근접할 수는 없을까? 옛사람들의 이러한 염원에 답하기라도 하듯 신수(神樹)가 등장했습니다. 시베리아의 세계수(World Tree)나 우주나무(Cosmic Tree), 단군신화의 신단수(神檀樹)가 그것입니다. 그 시대 사람들에게 나무는 초자연적인 존재가 지상으로 내려오는 교통로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지금껏 산신제를 지내고, 당수나무에 제를 지내고, 무당들이 신대라는 대나무를 통해 신내림을 받는 것으로 면면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신성한 나무를 길게 잘라 만든 것이 바로 장대입니다. 나무나 장대가 신과 교감하는 통로였다면 나무 위에 앉아 있는 새는 신과 인간을 연결해주는 전령입니다. 그래서인지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새에 대한 믿음과 기대가 컸던 것 같습니다. 고구려의 상징인 삼족오(三足烏)는 태양 속에 사는 세 발 달린 까마귀입니다. 기러기는 소식을 전해 주는 새이자 부부 간 백년해로의 상징이었습니다. 때와 시를 알리는 닭은 희망찬 출발이나 상서로움의 상징이며, 원앙은 부부 간 금슬의 상징으로, 까치는 견우와 직녀를 만나게 해주고 꿩은 은혜를 갚을 줄 아는 새로 알려져 있지요. 이웃한 나라에서도 새를 신성한 존재로 보았습니다. 일본 신사의 상징이랄 수 있는 도리이[鳥居]는 신이 사는 세계 ‘천(天)’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하늘의 신에게 사람의 뜻을 전달해 주는 새가 그 위에서 쉬어가라는 의미이지요. 인도 신화에 등장하는 상상의 새인 가루다는 불교에 수용되어 팔부신중으로 당당하게 자리 잡았습니다. 이 가루다는 사람의 몸에 새의 머리를 하거나 전신이 새의 형상을 띠기도 하지요. 전남 구례 연곡사 서부도는 상륜부가 거의 온전하게 남아 있는데 그 상륜부에 봉황 네 마리가 조각되어 있습니다. 동부도와 북부도에서도 상륜부에 머리 부분이 훼손된 봉황을 볼 수 있는데, 이 봉황 네 마리가 혹시 4천하(天下)를 상징하는 가루다가 아닐까 하고 조심스럽게 접근해봅니다. 한편 연곡사 부도의 상대석에는 가릉빈가가 선명하게 조각되어 있는데, 가릉빈가는 극락조라고도 불리며 사람의 머리에 새의 형상을 하고서 극락정토에서 그윽한 목소리로 노래하고 있다고 합니다. 중국 심양 고궁 청녕궁의 정문 앞에는 7m 높이의 신간(神竿)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황제가 거주하던 공간에 어울리지 않게 나무장대가 있는 까닭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윗부분에 있는 자그마한 용기에 쌀과 잘게 썬 돼지내장을 담아 까마귀에게 먹이를 주던 만주족의 전통에 의합니다. 만주족의 이러한 풍속은 누르하치가 위험에 처했을 때 까마귀떼가 날아와 전신을 감싸주는 바람에 살아날 수 있었다는 데서 연유합니다. 티벳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그 몸을 독수리의 먹이로 주는 ‘천장(天葬, 鳥葬)’이라는 독특한 풍습이 있지요. 그들은 사람의 영혼이 독수리를 타고 하늘로 올라간다고 믿고 있습니다. 솟대=장대+새 솟대란 나무나 돌로 만든 새를 나무장대나 돌기둥 위에 얹은 신앙대상물입니다. 그러니까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매개자로서의 새, 신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를 연결하는 교통로로서 나무를 상징하는 장대나 기둥이 결합된 것이죠. 지역에 따라서 짐대, 수살대, 진또배기, 거릿대, 솔대, 당산 등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단독으로 세워지기도 하고 장승이나 선돌, 돌탑 등과 함께 세워지기도 하죠. 이 솟대의 기원을 내부적으로 찾는 시각은 삼한시대 신에게 제사를 지냈던 신성한 공간 소도(蘇塗)에서 비롯됩니다. 소도라는 공간에서 장대에 새를 올린 솟대의 형식이 나왔다는 거죠. 솟대를 세운 이 곳은 신성한 곳으로 여겨 죄인이 들어와도 잡아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러한 시각은 현존하는 솟대가 남부지방에 치중하여 분포하기에 북방유입설에 맞설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합니다만, 분명한 것은 솟대문화는 만주, 몽고, 시베리아, 일본 등 북아시아에서 고루 보이는 보편화된 샤머니즘 문화라는 점입니다. 솟대의 새는 대부분 오리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하늘을 나는 오리는 천계(天界)의 신과 왕래하는 사신이요, 물새이기에 농사에 절대적인 물을 관장하여 홍수와 화재를 막아주기도 합니다. 알도 많이 낳으니 풍농, 풍어, 다산까지 기대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철새로 남북을 오가는, 즉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새로 받아들여져 옛 가야 땅에서는 사자(死者)를 저승까지 동반하는 의미에서 오리 모양 토기를 부장하곤 했지요. 솟대의 기능은 기본적으로 액막이 즉, 제액초복(除厄招福)을 기원하기 위함입니다. 이 경우에는 단독으로 보다는 당수나무, 장승, 돌탑 등 다른 마을 지킴이와 같이 서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산신 중심의 상당신(上堂神)과 함께 마을 하당신(下堂神)으로서의 역할을 맡게 되는 것이죠. 강릉 진또배기는 경기도나 충청도 등지의 솟대가 주로 장승의 하위개념으로 들어선 것과 달리 당당하게 단독으로 강문(江門)을 지켜내고 있습니다. 장대 위 물오리가 육해공(陸海空)에 두루 능한지라 바람, 물, 불의 삼재(三災)를 막아주기를 토속신에게 기원하며 풍년과 풍어를 빌었던 것이죠. 솟대만 있으면 외롭고 약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장승이나 돌탑 등에 묻혀 제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것보다 본연의 임무에 더 충실할 수 있죠. 따라서 독립형 솟대는 혼자라기에 더 막강하고 자생력이 강합니다. 하늘을 향해 쭉 올라간 장대는 마치 수묵화에서 한 획에 선을 그은 듯 생동감이 느껴집니다. 한편, 과거시험에서 급제자를 내면 솟대를 건립하기도 하였는데 이 경우 솟대의 새에 붉은 색을 칠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이 때 문과 출신자의 경우는 솟대 위의 새를 학으로 부르고, 무과 출신자의 경우는 봉황이라고 불렀다네요. 이러한 풍속은 오리[鴨]가 ‘甲’과 ‘鳥’가 결합된 말로 새 중에서 으뜸가는 새이자, 과거시험에서의 으뜸인 장원급제를 의미하는데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습니다.[PAGE BREAK]안녕과 복을 가져다주는 돛대 액막이로서, 과거급제 기념으로서 솟대를 세웠다지만 한편으로 풍수지리적인 측면에서도 솟대가 등장하였습니다. 우리나라 곳곳에 행주형(行舟形) 지세의 마을이 있습니다. 주로 두 물줄기가 합류하는 곳이나 물돌이 마을이 대부분인데 이런 지형에는 돛대를 세워야 배가 안정적으로 운항을 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돛대로 솟대를 세웠던 것입니다. 큰 마을에는 돛대가 여러 개 있으면 좋다고 하는데 울산 언양 어음리에는 무려 다섯 개의 솟대가 들어섰다고 합니다. 이 행주형 솟대를 찾아 마을 어르신들을 상대로 솟대의 행방을 수소문해보았으나 결국은 실패였습니다.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고’ 하던 새마을운동 시절에 일부 사라지고 또 경지정리를 한다며 흔적 없이 밀어버렸다고 하네요. 그래서 그럴까요? ‘언양 불고기’로 유명한 이 일대는 고속도로 인터체인지가 이동하면서 상권이 위축되었고 또 고속철 건설로 엄청난 높이의 교각이 들어서 있어 곧 배가 침몰할 듯 정신없습니다. 어디 이곳만 그러하겠습니까. 흔적 없이 사라진 수많은 솟대가 어디 여기뿐이겠습니까. 여기서 우리는 나무로 솟대의 문화재지정 문제입니다. 나무의 특성상 현존하는 것들도 언젠가는 썩어 없어질 것입니다. 더군다나 동제가 계승되고 있는 지역일지라도 향후 그 전통이 단절될 수도 있는 위기에 처해있다면 문화재지정을 서두르거나 적어도 그 솟대를 이어갈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이 강구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경북 군위군 부악면 한밤마을은 부림 홍씨 집성마을로 팔공산 줄기로 둘러싸인 분지형 마을로 이곳도 선형(船形)마을입니다. 마을 입구 솔숲에는 진동단(鎭洞壇)이라 해서 약 4m의 돌기둥에 돌로 만든 오리를 올려 두었습니다. 이곳 역시 마을의 지세가 바다에 떠있는 배 모양이어서 오리처럼 물에 잠기지 말라는 의미로 돛대형 돌기둥을 세워두고 오리를 올려둔 것입니다. 이렇게 배와 관련한 지형에서는 우물이 많으면 배 바닥에 구멍이 나서 침몰하는 격이라 우물이 적고 대개 무거운 돌담보다는 비교적 가벼운 흙담이 많이 보입니다. 전북 부안읍 내요리에서는 ‘당산할머니’ 혹은 ‘짐대할머니’로 불리는 돌기둥이 이 마을의 수호신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이 당산이 풍수적으로 배의 형국인 내요리에 안녕과 복을 가져다준다고 믿고 있고 있습니다. 그것은 배가 거친 풍랑에 안전하기 위해서는 큰 기둥을 꽂아 안정감을 주어야 한다는 것과 같은 생각에서죠. 매년 정월 보름에 주민들이 이 당산에서 마을의 복을 기원하는 당산제를 지내고 줄다리기 후 동아줄을 당산에 감는 ‘짐대할머니 옷 입히기’를 행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옷을 입혀주면 그 해의 농사가 잘 된다고 합니다. 절로 간 솟대 부안 동문 안 당산과 서문 안 당산은 숙종 15년(1689)에 마을의 안녕과 번영을 위하여 세웠다고 합니다. 동문 안 당산에서 ‘당산하나씨’, ‘짐대하나씨’ 라고도 부르는 솟대당산에는 머리를 바다 쪽으로 향하고 있는 오리가 앉아 있는데, 이는 마을의 화재를 예방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이곳에서도 정월보름이면 줄다리기를 하고난 후 당산에 줄을 감는 옷을 입히고 당산제를 지내고 있습니다. 서문 안 당산의 ‘할아버지당산’ 받침돌에는 성혈과 같은 ‘알받이구멍’이 있는데 당산제를 지낼 때 쌀을 담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라고 합니다. 쌀을 오리알로 동일시하여 풍요와 다산을 바라는 염원입니다. 안타깝게도 ‘할머니당산’은 반쯤 부러져서 윗부분을 볼 수 없습니다. 강원도 고성군 건봉사에서는 특이한 형태의 돌기둥을 만날 수 있습니다. 1928년에 건립된 돌솟대로 민간의 솟대문화가 사찰에까지 영향을 미쳤음을 주목할 수 있지요. 왜 솟대가 절로 들어왔을까요? 그 까닭을 이야기하기 전에 당간지주가 어떤 것인지를 언급해 봅시다. 장대를 높이 올려 꼭대기에다 새 대신 당(幢)이나 번(幡)을 달 수 있는 장치를 두고 장대가 쓰러지지 않도록 고정시킨 것이 당간지주입니다. 이 당간지주는 다른 나라를 통해 들어왔지만 지금은 우리나라만큼 당간지주 문화가 발달한 곳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한국판 불교의 특징 중 하나로 당당히 자리매김하고 있지요. 사찰이란 이름도 찰간지주 즉, 당간지주에서 유래한 명칭입니다. 당간지주는 주로 절의 경계에 위치하여 특정 종파나 사찰임을 나타냄과 동시에 이곳이 성소(聖所)임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신성한 공간이었던 소도에서 비롯된 솟대 또한 우리 마을이 액을 피하는 성소임을 의미하지요. 그렇다면 우리 솟대신앙이 불교와 결합하여 당간지주로 발전하였음을 추리할 수 있습니다. 다음 호에서는 이런 관점에서 전국의 당간지주를 찾아가고자 합니다. 요즘 TV에서 마빡이 개그가 유행합니다. 이 마빡이 개그가 옛날 민요에서 유래하였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옛날 아버지들이 시집간 딸을 처음 찾아갈 때는 다듬잇돌을 메고 갔답니다. 딸은 아버지가 선물한 다듬잇돌에 다듬이질을 해가며 다음 노래를 불렀다고 합니다. “씨에미 마빡 뚝딱, 씨누이 마빡 뚝딱, 씨할미 마빡 뚝딱, 씨고모 마빡 뚝딱…” 역사는 돌고 도는 것입니다. 우주선을 타고 지구 밖으로 떠나는 시대이지만 그 이전에 도 소박한 마음으로 나무를 통해, 솟대를 통해 우주와 교통하려했던 민초들의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방학 마무리 잘 하시기 바랍니다. | 울산 옥현초 교사
뭔가를 배우는 활동은 즐거운 ‘놀이’에 해당하는가 아니면 힘겨운 ‘노동’에 해당하는가? 아마도 사람에 따라 그 답이 달라질 것이다. 배우기를 즐기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그에게는 배우는 활동이 놀이일 것이다. 배우기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배우는 활동은 힘겨운 노동으로 느껴질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이 배우기를 좋아하는 것은 불가능할까? 교육을 연구하며, 교육활동에 종사하는 한 사람으로서 모두가 배우는 일을 즐긴다면 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워지며 풍요로워질까 생각하곤 한다. 미국에서 이루어진 한 조사에서, 지금하고 있는 일이 ‘일’처럼 생각되느냐 ‘놀이’처럼 생각되느냐 물어보았더니, 6학년 아이들이 학교 공부는 일 같고 운동 시합은 놀이 같다고 약속이나 한 듯이 대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아이들의 경우도 이러한 질문에 대해 크게 다르지 않게 대답할 것으로 생각된다. 오호 통재라. 왜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이 놀이가 아니라 일처럼 느껴진다는 말인가? 인간은 한편으로 누가 뭐래도 ‘배우는 존재’이다. 그리고 다른 한편 인간은 ‘놀이하는 존재’이다. 인간이 배우는 활동을 놀이처럼 즐기는 것은 불가능한가? 인간은 본성적으로 배우는 것을 놀이처럼 즐기는 존재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것이 사실이건 아니건 간에 필자의 직업의식 때문에라도 인간은 배우는 것을 놀이처럼 즐기는 존재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 가기 전까지만 해도 세상의 모든 것에 호기심을 가지고 온갖 질문을 하지 않았던가? 자신의 원하는 것을 배우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겠는가? 적어도 배우는 활동을 가리키는 ‘교육’은 인간에게 놀이와 같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배우는 일 자체가 좋아서 희열을 느끼며 배우는 활동에 몰입하는 것을 한 번쯤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이 있겠는가? ‘학교교육’은 교육의 특수한 형태이다. 특정한 내용만이 특정한 방법으로 가르쳐지고, 특정한 방식으로 가르친 내용을 평가하며, 평가 결과는 여러 사회적 목적을 위해 사용된다. 교육이 이처럼 특정한 방식의 학교교육의 형태로 포장되어 제공될 때, 교육은 학생들에게 더 이상 놀이일 기능성은 줄여든다. ‘놀이로서의 교육’은 ‘노동으로서의 학교교육’의 형태로 바뀐다. 그 자체로 좋아서 참여하는 ‘놀이’라기보다는 뭔가를 대가로 얻기 위하여 수고해야 하는 '노동'으로 변질된다. 우리 아이들한테 학교에서 노동을 즐기라고 권하기는 쉽지 않다. 노동을 즐기라고 권한다 하더라도 학생들이 이 말에 얼마나 관심을 기울일 지도 알 수 없다. 교육은 원래 놀이가 아니라 노동이라고 학생들에게 강변해야 하는가? 교육이라는 노동은 일류대학의 입학, 좋은 직장, 사회적 명예와 경제적 혜택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설득해야 하는가? 학생들에게 교육이라는 ‘노동’의 휘황찬란한 수많은 혜택을 지속적으로 상기시키면서 힘든 노동을 감내하라고 훈화해야 하는가? 교육은 힘겨운 노동이며, 교육이라는 노동이 가져다 줄 미래의 혜택을 상기하면서 ‘노동으로서의 학교교육’에 최선을 다하라는 것이 보다 현실적인 방안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적인 방안은 지나치게 암울해 보인다. 왜냐하면 교육이라는 노동이 가져다 줄 미래의 혜택은 소수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모두가 미래 지향적인 사고 속에서 최선을 다해서 노동에 참여한다고 가정하더라도 말이다. 교육은 원래 놀이였는데, 학교교육으로 포장되면서 노동으로 변질되었다고 볼 수는 없는가? 모두가 자신의 관심과 흥미에 따라 뭔가를 배우는 배움의 향연을 펼치는 것은 불가능한가? 학교교육이 ‘노동’이라기보다는 ‘놀이’로 작동하도록 하는 것은 불가능한가? 소수만이 성공하고 대다수가 실패할 수밖에 없는 학교교육의 성격을 모두가 성공할 수 있는 학교교육의 모습으로 혁신하는 것은 불가능한가? 새 학기부터는 좀 더 많은 학생들이 학교에서 노동보다는 놀이에 참여한다는 느낌을 가졌으면 좋겠다. 이를 위해 교사를 포함한 모든 교육계 인사들이 ‘노동으로서의 학교교육’을 ‘놀이로서의 교육’으로 되돌리려는 노력을 시도했으면 좋겠다. 교사와 학생 모두 가르치고 배우는 교육적 가치를 향유하면서 한바탕 신명나게 교육적 놀이를 잘 놀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