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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경기도교육청이 지난해부터 지자체와 손잡고 오는 2010년 3월 개교를 목표로 적극 추진해온 도내 5개 특수목적고 추가설립 계획이 교육인적자원부의 관련 법 시행령 개정 움직임으로 주춤거리고 있다. 20일 도 교육청에 따르면 도 교육청은 학생들의 학교 선택권 확대와 교육의 다양화를 위해 현재 18개인 도내 특목고를 추가 설립하기로 하고 지난해 4월부터 각 지자체로부터 설립신청서를 접수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5월 8개 시.군이 외국어고와 예술고 등 특목고 설립의사를 밝혔으며 결국 도 교육청은 12월 초 ▲시흥 외국어고(장현택지개발지구) ▲화성 국제고(동탄택지지구내) ▲구리 외국어고(사노동) ▲이천 외국어고(백사면 송악리) ▲수원 예술고(호매실지구 또는 영통동) 등 5개교를 추가 설립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도 교육청은 같은 달 중순까지 해당 지자체와 학교 설립을 위한 협약서를 체결한 뒤 올해부터 본격적인 학교설립 절차에 들어갈 예정이었으나 지금까지 협약서조차 체결하지 못하고 있다. 교육부가 지난해 12월 초부터 준비작업을 거쳐 지난달 19일 현재 전국 시도 교육감이 지정, 고시 권한이 갖고 있는 특성화중.특목고 설립시 사전에 교육부 장관과 협의절차를 거치도록 하는 내용의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현재 도 교육청은 개정안의 차관회의, 국무회의 심의 결과를 기다리며 사실상 특목고 추가 설립 추진을 잠정 중단한 상태다. 교육부는 개정안이 차관회의, 국무회의 심의 등을 거쳐 원안대로 확정될 경우 이르면 다음달부터 시행할 예정이며 이럴 경우 경기도 교육청의 특목고 추가설립은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 도 교육청은 국무회의 등을 거치면서 특목고 설립 절차가 현행 규정을 유지할 경우 특목고 추가 설립계획을 그대로 추진하고 개정안이 교육부의 안대로 확정되더라도 교육부장관과 사전 협의한 뒤 설립계획을 계속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도 교육청 관계자는 "도 교육청은 특목고 설립시 사전에 교육부와 협의하도록 하는데 대해 반대 입장이며 이 같은 의견을 이미 교육부에도 전달했다"며 "현재 특목고 추가 설립 추진을 일시 보류한 채 국무회의 등의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안 심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이 교육부 안대로 국무회의를 통과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한 뒤 "그러나 시행령이 교육부 안대로 시행되더라도 일단 개정안을 따르면서 도내 특목고 설립은 시행령 개정안이 나오기 훨씬 전부터 도민.지자체와 약속된 사안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교육부에 예외로 인정해 줄 것을 건의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연공서열 대신 능력중심의 승진구조로 바꾸는 내용의 교원승진규정 개정안이일부 수정됐다. 교육부는 교사들의 승진 심사 때 현행 25년인 경력 반영 기간을 2년 만에 20년으로 줄이려던 당초 계획을 바꿔 2007년부터 매년 1년 단위로 점차 줄이도록 한 교육공무원승진규정 일부 개정령을 20일 입법예고했다. 교육부가 지난해 12월 27일부터 지난달 15일까지 입법예고한 교원승진규정 개정령 원안을 부분적으로 수정한 것은 갑작스런 제도 변화로 선의의 피해자가 양산될 수 있는 만큼 재개정돼야 한다는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등의 요구를 수용한 데 따른 것이다. 입법예고안에 따르면 2년 만에 5년 줄이려던 경력평정기간을 1년 단위로 5년에 걸쳐 단축하고 근무성적평정도 등급별 범위와 분포비율 및 산정방식을 일부 손질했으며 개정된 근무평점 산정방식은 2009년 2월1일부터 적용키로 했다. 교총은 근무평가를 기존의 2년에서 10년으로 늘이는 것은 교원들에게 과중한 부담이 될 수 있다며 근평 반영 기간을 5년으로 늘이되 그 중 우수한 성적을 2회 선택해 반영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했으나 이 부분은 교육부가 수용하지 않았다. 도서벽지 근무자의 가산점을 축소하면 능력있는 교사들이 도시 근무를 선호해 지역별 교육 양극화가 심화된다는 지적도 있었으나 이 부분도 고쳐지지 않았다. 교육부 관계자는 "이제는 경쟁해야 살아남는 시대가 된 만큼 교사들도 이제는 연공서열이 아닌 능력 중심의 승진구조에 적응해야 할 것이다"고 밝혔다.
시험지 정명숙 책상의 시험지를 바라보면 내 마음 뛰노라 어렸을 때도 그러하였고 선생님이 된 지금도 그러하다. 앞날 늙어서도 그럴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내가 아니리라. 벼락치기는 나의 버릇 원컨대 내 시험점수가 벼락치기라도 좋게 이어가기를... 학교 다닐 때 자주 읊조렸던 ‘윌리엄워즈워드의 무지개’를 개사해 보았다. 세계적인 명시 무지개가 시험지로 둔갑하여 우스운 꼴이 되긴 했지만 솔직한 나의 심경을 담았다. 어렸을 때나 어른이 된 지금이나 변함없는 나의 벼락치기 시험습관을 스스로 꼬집은 것이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나의 신체조건 중에서 그나마 좋다고 생각하는 머리를 믿는 나는 시험에 있어서만큼은 벼락치기를 고수해왔다. 오죽했으면 대학 다닐 때도 그 다음 날이 시험인데도 종강한 뒤에 있을 사은회 프로그램을 짜느라 공책이 강의 내용이 아닌 식순으로 뒤덮였을까? 그렇게 엉뚱한 곳에 시간을 쓰면서도 시험을 치면 늘 중상위권을 유지하는 날보고 학우들은 밤새워 엄청 공부할 것이라고 뒷공론이 무성했다. 아무리 아니라고 우겨도 나는 노는척하면서도 열공하는 사람으로 낙인찍혔다. 그 때에 처음 깨달았다. 진실이 검증되지 않은 여론에 의해 밀릴 때가 많다는 것을... 난 내 생활자체도 그렇지만 공부에서도 여전히 세세한 것까지 챙길 정도로 자상한 스타일이 못된다. 선생님의 말씀을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공책에 다 적을 정도로 근면한 스타일은 못된다는 뜻이다. 만약 그런 스타일이었다면 내 인생에 올백은 분명 존재했으리라. 그렇지 않은 까닭에 아직까지 올백이나 올A+는 받아보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어떤 분야를 공부하던지 그 날 배운 것은 꼭 이해하고 넘어간다는 것이다. 어려운 문제에 봉착하면 시간이 지체되더라도 자료를 찾아가며 내 방식으로 이해를 하고서야 책을 덮는 습관이 있다. 그러면 굳이 교과서를 매일 끼고 살지 않더라도 그것이 바탕이 되어서 시험 전날에 훑어보는 벼락치기라도 점수는 제법으로 나온다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내 머리만 믿고 평소에 다른데 한눈을 팔아서 조금은 아쉬운 점수를 받아들기 일쑤다. 그래도 즐거운 것은 내가 투자한 공부시간에 비해 예상외로 좋은 점수를 받아든다는 그 사실 때문이다. 이번 사제동행 원격연수 시험도 그랬다. 500페이지에 이르는 방만한 분량의 책을 하룻밤 새워 본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난이도가 중상인 대형책을 시험 전날에 다 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방학동안 짬짬히 배운 기억을 떠올리며 하룻밤을 꼬박 세워 책을 한 권 다 마스터했다. 대망의 시험이 있던 2월 3일 토요일 오후, 과락이 나와서 떨어지면 챙피해서 어떡하나 하는 걱정 반 설레임 반으로 시험에 임했다. 하지만 시험문제는 예상보다 쉬웠고 애매모호한 것은 그냥 대강 심증이 많이 가는 쪽으로 동그라미를 쳤다. 단답형 주관식 하나만 몰라서 못쓰고 다른 것은 다 메꾸고 나왔다. 시험을 치고난 뒤 게시판에는 난이도가 너무 높다는 둥, 시험지를 아예 전부 객관식으로 내달라, 수준을 낮춰달라는 주문이 많았다. 중상정도의 점수를 받은 나로서는 이 건의만큼은 아니올시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험공부는 결국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그럼에도 공부할 마음은 없고 그냥 연수실적만 쌓기 위해 거저 얹혀가고 싶다는 발상으로 연수를 신청했다면 때려치우라고 말하고 싶다. 기본 공부조차 안할 마음가짐이었다면 뭐하러 아깝게 귀중한 시간과 돈을 낭비하나? 그런 겉핥기식의 연수라면 아예 방학 한 달 동안 배낭 짊어지고 자연순례나 하면서 마음을 닦고 오는 게 더 나을 것이다. 논술에 대한 자료를 인터넷에서 찾아헤매다가 발견하게 되어 받게 된 사제동행 원격연수. 벼락치기는 여전했지만 보람은 있었다. 내가 몰랐던 것을 알게 된 기쁨은 아직도 내 가슴을 뿌듯하게 한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날 새는 줄 모른다고 이제는 방학이 아니라 평상시에도 내게 필요한 원격연수를 틈나는 대로 마스터할 예정이다. 그 때는 시험 하루 전날이 아닌 이틀 전에 공부를 해서 상위의 몇퍼센트 안에 들어있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이제는 인이 배겨 어쩌지도 못하는 벼락치기는 끊을 자신이 없으니까 거론할 가치도 없고... 명시감상 무지개 윌리엄워즈워드 하늘의 무지개를 바라보면 내 마음 뛰노라 어렸을 때도 그러하였고 어른 된 지금도 그러하다. 앞날 늙어서도 그럴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난 죽으리라.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원컨대 내 생애의 하루하루가 순진한 경건으로 이어가기를...
충북도교육청은 20일 올해 상반기 지방공무원 명예퇴직 시행계획을 마련하고 3월 말과 6월 말일자로 퇴직을 원하는 지방공무원은 각각 3월 5-7일, 5월 28-30일 사이에 신청을 받는다고 밝혔다. 신청 대상은 20년 이상 근속한 지방공무원으로 7명 이내이며 명예퇴직 예정일 기준으로 정년퇴직일 전 1년 이상 남은 사람 가운데 자진하여 퇴직하고자 하는 공무원이다. 명퇴희망자는 이 기간 내에 소속기관장의 확인을 받아 소정의 서류를 교육감에게 제출하면 되며 도교육청은 예산을 감안, 인사위원회 심사를 거쳐 최종 결정하기로 했다. 연도별 명퇴 인원은 2003년 5명, 2004년 3명, 2005년에 5명 등으로 신청자 전원이 퇴직했으나 올해는 공무원 연금제도 개혁 움직임과 관련해 불안을 느끼는 공무원들이 많아 예년보다 신청자가 늘어날 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도교육청이 교원을 대상으로 이달 말일자 명퇴신청을 받은 결과 124명이 신청, 역대 최고를 기록했는데 지방공무원들 가운데서도 공직생활을 계속할 지, 명예퇴직을 해야 할 지 저울질 하는 공무원이 상당수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소속 교사 수가 지난해 약 4천명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19일 전교조가 전국대의원대회에 앞서 작성한 '조합원 증감현황'에 따르면 전교조 조합원 수는 2005년 12월 9만857명에서 2006년 12월 8만6천918명으로 3천939명이 감소했다. 전교조 소속 교사 총수는 1999년 합법화 당시 2만명 수준에서 꾸준히 늘어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2003년 6월 9만4천473명으로 가장 많았다가 이후에는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전교조 관계자는 "참여정부 출범 때만 해도 기대에 부풀어 조합원 수가 증가했으나 당시 지도부가 교사들의 염원인 교장선출제나 수업시수 법제화 같은 문제보다 정치투쟁에 몰두하다 보니까 외면을 당하면서 조합원 수가 감소한 것 같다"고 말했다.
퇴직수당을 민간 기업체 수준의 퇴직금으로 올리려는 공무원연금법 개정시안이 법률로 확정돼 사학연금에 준용될 경우, 재단이 부실한 대부분의 사립학교 교원들은 퇴직금 받기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또 사립대학 교수들은 지금보다 연금 부담액은 두 배 늘지만 수령액은 훨씬 줄어들 전망이다. 사학교원의 연금은 공무원연금에 준용토록 사립학교교직원연금법에 규정돼 있다. 교총의 김동석 정책교섭국장은 “연금수령액은 대폭 낮추는 대신 민간기업 퇴직금의 35%를 밑도는 공무원 퇴직수당을 민간기업 퇴직금 수준으로 현실화하려는 행자부 연금발전시안이 적용될 경우, 국가가 사용자인 국공립 교원들은 문제가 없겠지만 사학재단이 사용자인 사립교원들은 퇴직금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김동석 국장은 “지난해 사학연금관리공단이 부담한 퇴직수당은 236억 원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정부재원으로 지출했지만, 퇴직수당을 퇴직금으로 변경하고 부담주체를 사용자로 규정할 경우 그 부담은 사학재단이 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 국장은 “초중등은 말할 것도 없고 대학에서도 법정부담금(의료보험료, 연금부담금)을 재단법인에서 내는 곳이 40% 수준에 불과한 현실을 감안할 때 사학재단이 퇴직금을 지급할 여력은 없다”며 “정부가 증가하는 퇴직금을 지원하는 전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에 앞선 92년 교총과 교육부는 단체교섭을 통해 재정 여건이 열악한 사학의 퇴직수당 예산을 정부가 확보토록 합의했으며, 이듬해 관련 시행령 개정을 통해 이를 이행하고 있다. 아울러 연금 부담기준을 현재의 표준보수월액에서 과세소득으로 바꿀 경우 초중등 교원은 별 차이가 없겠지만 국공립대학보다 많은 보수를 받고 있는 사립대학 교수는 지금보다 두 배 많이 부담하고도 연금은 훨씬 덜 받게 될 것이라고 김 국장은 지적했다. 현재 부담금 기준인 표준보수월액 8.5%를 과세소득으로 환산할 경우 대학교직원의 경우 4.5~5.5%이며 이를 6.5%에서 점차 8.5%까지 인상할 경우 거의 두 배 가까이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설날도 나에게는 유익했고 남달랐다. 88세의 건강한 어머니를 만나 뵐 수 있은 데다 경기도에 사시는 누님을 제외한 5형제가 한 자리에 모여 따뜻하고 아름다운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좋았다. 특히 전문의 시험에 합격한 조카와 질부를 축하해 줄 수 있어 좋았고 딸이 서울초등임용고시에 합격해 떳떳했고 또 조카 한 명이 사범대에 합격해 기쁨이 배가 되었다. 어머니께서는 내가 어릴 때에 자녀들이 선생이 되는 것을 소원하셨고 그렇게 되도록 기도하셨기에 어머니의 6자녀손 중 딸린 식구까지 10명이나 교직을 길을 걷고 있으며 이번에 시험에 합격한 조카까지 포함하면 11명이나 된다. 명절 때마다 마산에 있는 큰집에 오게 되면 언제나 기쁨이 배가 된다. 왜냐하면 큰형님, 큰형수님께서 48평이나 되는 넓은 아파트에서 어머니를 평생 모시고 살고 계시기 때문이다. 둘 다 교직생활을 하시면서 힘들지만 최선을 다해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계시는 것 보면서 감사하는 마음이 가슴 깊은 곳에서 나오게 된다. 자녀들도 잘되어 있다. 두 자녀가 있는데 딸은 부부교사이고, 아들은 부부의사이다. 아들은 정신과 전문의이고, 며느리는 소아과 전문의이다. 동생들에게 조금도 부담을 주지 않고 한 마디도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기쁜 마음으로 부모를 섬기는 모습에 감동하게 된다. 얼굴에는 언제나 밝음이 있고 기쁨이 있고 따뜻함이 있다. 큰형님께서는 이제 1년 반을 앞두고 계시는데 이번 9월에 손녀 둘을 돌보기 위해 명퇴를 하나 어쩌나 하고 망설이고 있음을 보게 된다. 평생에 교직에 본을 보이신 형님을 존경하게 된다. 이번 설에는 또 색다른 면이 있었다. 동생이 살고 있는 충무에서 학원강사를 하고 있는 27세의 캐나다인과 그가 평소에돌보는 오갈 데 없는 두 양육원 초등학생 6학년 2명이우리집에 와서 함께 설날을 보내게 되었다. 세배를 하고 함께 식사하고 음식을 나누며 함께 자고 함께 놀고 함께 즐기다가돌아갔다. 외국인과 두 고아와 함께 설날을 보낸다는 게 너무나 큰 기쁨이 되었다. 내가 영어를 잘못해 좀 아쉬웠지만 영어가 잘되는 제수씨를 비롯해 동생, 조카와 딸이 있었기에 의사소통이 잘 되었다. 그들의 삶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고 고아에 대한 베풂이 더 있어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들에게 세뱃돈을 줄 때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5형제가오랜만에 밤 12시가 넘도록 대화를 나누었는데 오랜 추억이 될 것 같다. 여러 가지 대화 속에 99년 5월에 어렵게 살다 돌아가신 사촌누님의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그 때 나는 연수원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였다. 99년 5월 5일 어린이날은 사촌누님의 비보(悲報)를 듣던 날이었다. 사촌누님께서 뇌수술을 했다고 하셨다. 저녁 9시쯤 병원을 찾았다. 아마 수술에서 깨어났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런데 어찌된 일인가? 인사불성이었다. 누나라고 불러도 대답하지 않고 누님이라고 불러도 대답하지 않으니. 담당과장이 관계되는 식구들을 불러놓고 설명을 한다. ‘피를 너무 많이 흘러 수술은 잘 했지만 하루를 넘기기 어렵다고. 기적적으로 살아난다 해도 식물인간(植物人間)이 될 수밖에 없다고.’ 사촌누님은 47년생. 사촌누나라도 친누나와 같다. 삼촌께서 일찍 돌아가셔서 어렸을 때부터 함께 가까이서 생활했다. 명절이 되면 항상 찾아온다. 지난 1월 본 것이 마지막이다. 평소에 나를 좋아했다. 항상 웃는다. 노래도 잘한다. 그런 누이가 말 한 마디 못하고 산소호흡기를 쓰고 누워 있으니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수술하기 위해 머리를 중처럼 깎았다. 28살 난 딸은 옆에서 어찌할 줄 몰라 애통해하고 있다. 나는 그 때부터 누님 옆에서 손을 잡고 발을 잡고 꺼져가는 촛불마저 꺼지지 않도록 정성을 쏟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혈압은 떨어지고 맥박도 높아진다. 밤12시가 넘도록 지켜보다가 집을 갔다. 큰누님은 ‘절대 죽지 않는다’고. ‘고비만 넘기면 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살리고자 하는 집념은 피가 섞인 사람이 아니고는 이해할 수 없으리라. 그 다음날 또 왔다. 혈압이 60-40으로 떨어졌다. 정상인이 80-120이고 보면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그것도 혈압 상승약을 투여하고 있는 데도 말이다. 의사는 오늘 넘기기가 어렵다고 하지만 내가 판단하기에는 오늘은 돌아가실 것 같지 않아 집에 저녁을 먹기 위해 아내와 함께 왔다. 저녁을 들자마자 벨소리가 울렸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형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돌아가셨다고. 조금만 더 기다렸더라면 임종을 지켜보았을 터인데 안타까웠다. 다시 병원에 왔다. 601호 병실에 있던 누이가 영안실에 옮겨져 있었다. 인생무상(人生無常)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입관할 때 싸늘한 시체로 변한 누이를 보면서 아찔했다. 이렇게 생(生)과 사(死)가 이렇게 다를 수야. 아들과 남편이 마지막을 지켜보는 가운데 나는 솜으로 얼굴을 닦아주었다. 5월 8일은 어버이날. 어버이날이 누이의 출상일이 될 줄이야 그 누가 알았으랴? 마지막 헌토(獻土)시간. 나도 삽으로 흙을 두 번 떠서 관(棺)위에 놓았다. 편안히 주무시라고. 자형(姊兄)은 헌토(獻土)에 울음을 참지 못하고 관(棺)위에 덥석 주저앉았다. 아무리 슬퍼하고 애통해 한들 돌아간 사람이야 무어라고 대답하랴? 남편이든 아내든 살아생전 잘해야 되겠다. 죽고 나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알 수 없는데 싸우면서, 욕심 부리면서, 미워하면서 살 필요가 있겠는가? 사는 날 동안 후회함이 없도록 서로 사랑하자! 큰형님께서는 이번 설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 지금 병원에서 말을 제대로 못하고 계시는 고모님을 뵙고 와서는 평소에 살아계실 때 자주 찾아야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나도 울산에 살면서 한두 시간만 하면 올 수 있는 거리인데도 어머니를 자주 찾아뵙지 못해 죄송한 마음이 들면서 자주 찾아뵈어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서울시교육청에서는 지난 16일 예년과는 달리 이례적으로 초, 중등학교 교장, 교감, 교육전문직의 인사를 단행했다. 예년의 2월 하순과 비교할때 약 열흘정도 앞당겨진 일정이다. 그동안 타 시도에 비해 인사가 늦다는 지적이 있었고 리포터 역시 그러한 지적을 한적이 있다. 어쨌든 인사시기가 당겨지면서 해당자는 물론 일선학교에서도 혼란이 줄어들것으로 기대된다. 앞으로도 올해처럼 되도록이면 빠른 인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인사를 보면 초등학교 교사에서 교감으로의 승진이 72명, 초등 교육전문직에서 교감으로의 전직이 9명이다. 전체적으로 교감승진 또는 전직이 81명인데, 교육전문직에서 교감전직이 11.1%, 교사에서 교감으로의 승진이 88.9%로 교사에서 교감으로 승진한 경우가 월등히 높았다. 이런 비율은 전체적으로 볼때는 교육전문직의 전직비율이 다소 높긴 해도 일선교원들이 볼때 큰 불만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중등의 경우는 교사에서 교감으로의 승진이 30명, 교육전문직에서 교감으로의 전직이 16명이다. 즉 교감승진 또는 전직이 모두 46명인데, 교육전문직에서 교감으로의 전직이 전체 46명중에 16명인 34.8%를 차지하여 교사에서 교감으로 승진한 65.2%에 비해 상대적인 비율이 월등히 높았다. 초등학교의 경우처럼 10% 내,외가 전직한다고 한다면, 5-6명선이 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초등에 비해 중등의 경우가 교육전문직의 전직비율이 세배정도 높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일선학교에서 교사로만 재직하여 교감승진을 하기위한 경력은 현재 25년이다. 그러나 교육전문직은 그보다 훨씬 이전에 교사에서 전직이 가능하다. 교육전문직으로의 재직기간이 5-6년(서울의 경우)이면 교감으로 전직이 가능하다. 예를들어 경력 10년의 교사가 교육전문직으로 전직했다면 그로부터 5년정도 지난 15년이면 교감으로 전직이 되게되어 현장교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승진불균형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교육전문직의 업무가 교사에 비해 어느정도 강도가 높은지 알수 없지만 교사들보다 수십에서 수백배의 강도라고 보지는 않는다. 특별히 우대해야 한다고 하더라도 교사수 대비 교감승진인원과 교육전문직대비 교감전직의 비율을 어느정도는 균형있게 해야 한다고 본다. 교육전문직이 30%이상을 차지한다는 것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교육전문직 출신이 학교경영을 더 잘한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교사출신의 교감이나 교장들이 학교경영을 훨씬 더 잘하고 있는예는 주변에 많이 있다. 교육전문직에서 교감전직을 막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는 승진불균형 문제가 지속돌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선학교에는 교감연수를 받았지만 교감으로 승진하지 못하고 있는 교사들이 상당수 있다. 연수를 받고 교감자격을 가지고 있지만 승진하지 못하여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경우도 많다. 이런 상황을 어느정도는 헤아려야 하는 것이 교육청에서 해야 할 일이다. 이런 사정때문에 교장으로 승진하는 경우는 대부분이 교육전문직 출신이다. 그들만의 잔치가 되고 있는 것이다. 교감으로 승진하는 것은 분명히 교사출신이 더 많은데, 교장으로 승진하는 경우는 교육전문직 출신이 훨씬 더 많은 것이다. 이 역시 심각한 승진불균형이 아닐 수 없다. 당장에 개선이 어렵다면 장기적인 과제로라도 검토가 되어야 할 문제이다. 교사로 오랫동안 열정을 다한 교사들이 승진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루빨리 승진불균형이 해소되어야 할 것이다.
2008년도부터교원평가제 전면 시행을 천명한교육부가 이에앞서 교원평가 시범운영 선도학교 506곳을 확정해 발표했다.지난 1월부터 전국 시도 교육청별로 실시한 선도학교 공모에 모두 702개 학교가 응모했고 이 가운데 지역과 학교규모 등을 고려해 506개 학교를 최종 확정했다고 밝혔다. 선도학교로 지정된 곳은 초등학교 237개, 중학교 189개, 고등학교 80개로 다음달 새학기부터 교육부에서 마련한 안으로 교원평가를 실시하게 된다. 이로인해 그동안 문제점이 다양하게 지적된 교원평가의 시행이 초읽기에 들어간 느낌이다. 교원평가제 도입의 문제점이나 부당성에 대해서는 그동안 수차례 지적을 했기에 여기서는 문제점을 다시 지적하고 반박하지는 않겠다. 다만 누가 뭐라고 해도 '안되면 되게한다'는 식의 추진에 실망감을 금할 수 없다는 것과 교원평가 선도학교를 통해 얻어질 결과에 대한 우려되는 점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 특히 교원평가선도학교를 신청하여 선정된 학교에 꼭 하고싶은 이야기를 하겠다. 시범운영을 한다는 것은 꼭 그렇지는 않지만 좋은점과 나쁜점을 함께 찾아내는 것이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그 결과를 토대로 좋은점은 더욱 발전시켜야 하고, 문제점은 철저히 보완을 해나가야 한다. 특히 문제점의 경우는 전면적인 시행이 되기전에 확실히 개선해야 한다. 만일 그 문제점의 해결이 어렵다면 해당정책은 폐기되거나 더 많은 시간을 두고 검토한후 시행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시범학교로 선정된 506개 학교에서는 교육부에서 통과의례식으로 운영하는 시범학교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보통 교육부 시범학교는 2년을 기 기간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의 경우는 단 1년이이다. 따라서 교육부의 의도대로 끌려가서는 안된다. 철저히 문제점을 밝혀내고 그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내도록 해야 한다. 기존의 시범학교결과처럼 현실과 다른 방향으로 결과가 나오면 안된다. 반드시 좋은점과 문제점을 함께 추출해 내도록 해야 한다. 심각한 문제가 발생된다면 그 문제를 부각시켜야 한다. 누구도 몰랐던 심각한 문제가 드러날 가능성은 충분히 있기 대문이다. 단순히 가산점만을 획득하기 위한 시범운영을 하지 않기를 당부하고 싶다. 시범학교운영의 결과는 전체 교원들과 직결되어 있다. 따라서 단위학교에서의 단순함을 떠나 대한민국전체 교원들의 관심이 높다는 것을 반드시 인식하길 간곡히 당부한다.
학생이 규정에 따라 소정의 교과 과정을 마치는 게 졸업(卒業)이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졸업식을 소중하게 여기고 행사도 성대하게 계획한다. 더구나 초등학교는 6년의 교육과정을 마쳐야 하기에 남다른 의미를 부여받는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문의초등학교는 올해 개교 백주년을 맞이할 만큼 역사가 깊은 학교지만 아직 강당이 없어 인근에 있는 면사무소의 복지관에서 졸업식을 했다. 당연히 교내에서 이뤄져야 할 행사를 복지관에서 하려니 사용상의 불편과 손님접대 등 어려운 일이 여러 가지였다. 그래도 시간이 되니 졸업을 축하하는 화분이 속속 도착했고 학부모와 내빈들이 행사장을 가득 메웠다. 졸업생대표가 교장선생님에게 졸업장을 받는 것을 시작으로 학교장상과 각종 대외상 시상이 이어졌다. 주는 사람의 정성과 의미가 반감되는 것을 알면서도 장학금을 일괄수여하며 시간을 줄였지만 졸업식은 70분이나 걸렸다. 예전과 같이 상장을 받으러 나오는 아이들의 걸음걸이나 인사하는 태도에 신경을 쓰는 시대도 아니다. 상장이나 장학금을 주는 어른에게 최소한의 예의만 지키면 된다. 그런데 몇몇의 아이들은 그것을 그렇게도 어려워 한다. 학교에서는 인성교육이 먼저여야 하고, 노인회장님 상장까지 있으니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 오죽하면 졸업생들에게 ‘유종의 미’까지 얘기하며 졸업식 당일의 바른 행동을 강조했을까? 시골의 순진한 아이들이라 생각했던 것보다 예의를 잘 지키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교장선생님이 졸업생들에게 주는 식사가 끝나자 내빈들의 축사가 길게 이어진다. 좋은 말 할줄 몰라서 안하는 게 아니다. 축사를 할 정도 되는 어른이면 이런 날 좋은 말 아무리 많이 해줘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은 알아야 한다. 5학년 어린이의 송시와 6학년 졸업생의 답시가 끝나고 졸업식 노래를 부르는 차례다.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로 시작해 ‘잘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 선생님 저희들은 물러갑니다’를 부를 때쯤 한 아이가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훌쩍인다. 생각이 깊고 감정이 풍부해 글을 잘 쓰던 아이였다. 중학교에 진학하는 아이들이 극소수였던 예전 같으면 졸업식에 단골로 등장하는 풍경이었다. 하지만 유치원부터 대학원까지 졸업식 행사를 6번이나 해야 하고, 요즘은 마지막보다 새로 시작하는 것에 의미를 두기에 보기 드문 풍경이 되었다.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며...’ 졸업식 노래가 끝부분을 향하는데도 대부분의 아이들이 ‘싱글벙글’이다. 아예 노래도 부르지 않은 채 누가 눈물을 흘리는지를 확인하느라 고개까지 돌린 아이들이 많다. 졸업식이 끝나고 있은 환송식에서도 아이들의 표정은 밝다. 항상 저렇게 밝은 모습으로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도 같을 것이다.
졸업생 여러분. 지금 여러분은 기분이 퍽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지긋지긋한 시험으로부터 해방되었을 뿐 아니라 부모님이나 선생님으로부터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듣지 않게 되었다고 생각할테니까요. 그렇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그동안 애환을 함께 했던 각자의 학교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소정의 3학년 과정을 마치고 새로운 세상으로 한발 더 내딛게된 것입니다. 하지만 헤어져도 아주 떠남이 아니요, 떠나도 정말 떠나는 것은 아닙니다. 만나면 헤어지고 헤어지면 다시 만나는 것처럼 새로운 출발을 위한 떠남이요, 또 다른 만남을 위한 헤어짐입니다. 여러분은 ‘배움’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배움의 현장으로 옮겨갈 뿐입니다. 아마도 더 힘들고 고된 ‘배움’이 시작될지 모르는 곳으로 말이예요. 프랑스의 사상가이자 교육자인 루소는 말했습니다. 인간은 두 번 태어난다고. 한번은 생존을 위해서. 또 한번은 생활을 위해서 태어나는 것이라고. 그렇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생활을 위한 태어남 즉 ‘제2의 탄생’의 길을 가게 됩니다. 여러분 인생이 결정되는 곳. 여러분 생애의 커다란 전기가 마련되는 곳으로 자리를 옮겨가는 것입니다. 졸업생 여러분. 처음 단추를 잘못 끼우면 전체가 비뚤어지고 틀리게 됨을 잘 알지요? 이제 그런 일은 없어야겠습니다. 비록 지금까지는 첫단추를 잘못 끼운 생활이었을지라도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저 유명한 중국의 대학자 공자도 15세때 학문에 뜻을 세웠다더군요. 여러분의 출발이 결코 늦지 않은 것은 앞으로 살아야 할 세월이 많기 때문입니다. 세월이 많다는 것은 희망이요 꿈입니다. 여러분은 시퍼런 꿈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은 우리의 훌륭한 고전인 ‘춘향전’을 잘 알 것입니다. 춘향의 일부종사하는 정절이 꿈때문이라고 해석한 학자가 있어 화제를 모은 적이 있습니다만 온갖 고통을 겪다가 이도령과 백년해로하는 춘향의 꿈은, 물론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아도 좋습니다. 꿈은 현재를 충실하게 해주는 원동력이니까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와 가치가 있으니까요. 여러분은 아직 젊기 때문 꿈이 있어야 합니다. 또 그만큼 적극적으로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꿈을 가지세요, 꿈을! 꿈이 없는 청춘은 힘이 없습니다. 힘이 없다함은 젊음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입니다. 젊음이기를 포기하는 것은 자신에 대한 상처일 뿐 아니라 나아가 국가적 손실이기도 합니다. 졸업생 여러분. 20세기 최고 지성의 한 사람인 사르트르는 말했습니다. 인생의 목적이 없는 사람은 부조리한 인간이라고. 여러분은 ‘부조리한 인간’이 되겠습니까? 우리가 공부를 하는 것은 시험 때문이 아닙니다. 좋은 대학과 훌륭한 직장에 가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물론 그런 세속적인 목적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만 우리가 공부를 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인간다움’을 배우기 위해섭니다. 인간답게 살 권리를 갖듯 우리가 얼마나 ‘인간적’이 되느냐에 따라서 인격이 생기고 남들로부터 존경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인류의 빛과 소금이 된 여러 위인들의 생애가 그렇습니다. 그들은 많은 좌절과 고통을 딛고 일어섰습니다. 비난을 받으면서도 신념이 뚜렷했고, 배가 고프지만 의지는 강했습니다. 그들은 청춘을 가장 값지게 산 사람들입니다. 졸업생 여러분. 여러분이 가야할 길은 아직 ‘가지 않은 길’입니다. 가지 않은 길이기에 새로움이 있습니다. 그리고 두려움도 있습니다. 새로움이란 새롭지 않음에서 생겨난 인생의 훌륭한 과정입니다. 두려움이란 용기를 필요로 하는 개척정신의 열쇠입니다. 개척해야 합니다. 이제 여러분은 부모님의 품 안에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이제 혼자가 아닙니다. 여러분의 양어깨에는 나라의 희망과 발전이 훈장처럼 달려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청소년 문제가 심각하다지만 따뜻한 햇볕아래 건강한 여러분이 훨씬 많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이야말로 이 새로운 우리 시대의 주인공임을 굳게 믿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우연한 기회에 이런 편지를 쓴 이유입니다.
2008학년도 교원평가제 전면 시행에 대비해 교원평가제 시범운영 학교가 지난해 67개교에서 올해 전국 506개교로 대폭 늘어난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지난달부터 전국 시ㆍ도 교육청을 통해 '교원능력개발 평가' 선도학교 지정 공모를 실시해 공모에 응한 총 702개교 가운데 506곳을 선정했다고 19일 밝혔다. 선정된 학교는 초등학교 237개교, 중학교 189개교, 고등학교 80개교이고 설립형태별로는 국립 7개교, 공립 464개교, 사립 35개교이다. 지역별로는 경기가 94개교로 가장 많고 경북 56개교, 경남 49개교, 강원 45개교, 서울 39개교, 충남 37개교, 전남 32개교, 부산 29개교 등이다. 선도학교는 교육부가 마련한 교원능력개발 평가 일반화 모델을 적용해 2007학년도 교원평가를 실시하게 된다. 기존의 교원 근무평정제와는 별개로 운영되는 교원평가제는 초ㆍ중ㆍ고 교장 및 교감, 교사가 평가 대상이며 평가에는 교원들 뿐 아니라 학생, 학부모도 참여한다. 교사의 수업지도 및 학생지도, 교장ㆍ교감의 학교 운영 전반에 대해 동료 교원들 간 상호평가와 학생ㆍ학부모 만족도 설문조사를 통해 평가를 하는 방식으로 돼 있다. 교육부는 선도학교 운영 결과를 토대로 내년 3월부터 교원평가제를 전면 실시한다는 방침이며 현재 시행 근거를 담은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태다.
요즘 연예인들의 잇따른 자살로 청소년들이 술렁이고 있다. 이는 연예인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청소년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 세태 때문일 것이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만에 하나 연예인과 자신을 동일시하여 이 같은 극단적 행동을 따라하는 청소년들이 있다면 이는 정말 큰일이다. 친구도 없고 부모와도 진지하게 상담할 처지가 못되는 고립무원의 청소년들이 우리 주변에는 의외로 많지만, 정작 이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심리적으로 지지해줄 'Mentor'는 찾아보기 어렵다. 따라서 리포터는 이번 기회에 우리 교사들이 문명의 이기인 인터넷을 통해 방황하는 청소년들에게 정신적 위안과 조언자 역할을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정보통신의 눈부신 발달은 우리 사회에 인터넷이란 문화를 가져다 주었다. 산간벽지에서부터 대도시에 이르기까지 인터넷은 이미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된지 오래다. 이러한 편리한 도구를 상담활동에 적극 활용한다면 청소년 선도에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렇다면 좀더 구체적으로 인터넷 상담의 여러 장점에 대해 알아보자. 첫째, 인터넷 상담은 시간적 공간적 제약을 극복할 수 있는 편리성이 있다. 인터넷이 연결되어 있는 곳이라면 내담자와 상담자는 언제 어디서나 상담을 할 수 있다. 내담자와 상담자는 상담 내용이나 답변을 구성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조절할 수도 있고, 또 사전에 서로 시간 약속만 한다면 실시간 상담도 가능하다. 둘째, 상담이 문자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내담자는 자신의 심리 상태를 솔직하면서도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는 면대 면 대회에서 오는 부담감을 덜 수 있기 때문이다. 상담자로서도 내담자의 외형이나 외모에 대한 선입견이나 편견 없이 내담자가 쓴 글에 대해서만 충실한 답변을 제공할 수 있어 좋다. 셋째, 자신의 신분을 감출 수 있고 자신과 반대되는 성을 선택하거나 특정 유형의 사람처럼 행동할 수도 있는 익명성이 있다. 이는 마치 역할극처럼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에 상대방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계기가 된다. 넷째, 탈 억제의 경향이 있다. 인터넷 상담에서는 익명성이 보장되기 때문에 감정의 조절이나 표현이 쉽다. 따라서 자신의 심리나 정서를 솔직하게 드러냄으로써 보다 효과적이고 깊이 있는 상담이 가능하게 된다. 다섯째, 민주적이고 수평적인 인간관계가 유지된다. 즉 남녀노소, 신분의 고하, 학력의 높고 낮음에 무관할 수 있다. 이러한 수평적 상담에서는 처벌에 대한 두려움이 없기 때문에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으며, 상담자로서도 문제 중심으로 편견 없이 상담을 진행할 수 있다. 여섯째, 친밀성과 공감대 형성이 쉽다. 인터넷 공간에서의 만남은 오프라인에서의 만남보다 훨씬 더 친근감을 느끼기가 쉽다. 이러한 친밀감은 곧바로 공감대 형성으로도 연결된다. 일곱째, 인간 관계의 형성 및 단절에 융통성이 있다는 점이다. 인터넷 공간에서는 낯선 사람과의 관계가 쉽게 형성될 수 있는 반면에, 한쪽이 원한다면 언제든지 관계를 끊어버릴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물론 인터넷 상담에도 단점은 있다. 즉 인터넷은 인간 관계의 형성 및 단절에 융통성이 많기 때문에 내담자든 상담자든 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관계를 끊어버리면 상담이 즉시 종료되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런 경우 지속적인 상담이 불가능하므로 이는 앞으로 연구를 통해 보완해야할 사항이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청소년들은 사이버 공간을 더 많이 이용하게 될 것이며, 이에 대한 부작용도 점차 커져갈 것이다. 따라서 학교에서는 하루 빨리 학교 홈페이지 등에 상담 시스템을 구축하여 학생, 교사, 학부모가 언제든지 생활 전반에 관해 상담을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 주어야한다. 교사들 또한 개개인 모두가 상담요원이 되어 이에 대한 답변에 정성을 다해야할 것이다. 국가나 사회 단체에서도 이러한 인터넷 상담이 활성화가 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행 재정적인 지원이 뒤따라야함은 물론이다.
역사란 무엇일까, 아니 역사란 어떤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해볼 때가 종종 있다. 요즘 고구려를 소재로 만들어진 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부쩍 그런 생각을 자주 한다. 과거 속의 지나간 역사를 가만히 살펴보고 있으면 현재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보게 된다. 한 나라가 처한 역사적 상황 속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을 보면 생각과 하는 행동들이 너무나 닮아 있다. 그래서 역사란 반복된다고 했던가? 특히 망국의 한을 이야기한 역사물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러나 역사는 물과 같다고 했다. 막혔다가도 때가 되면 다시 흐르기 마련이다. 이미 흔적마저 희미한 역사일지라도 시원을 따져가 보면 실핏줄처럼 연결되는 게 있다. 강숙인의 소설 처럼. 은 , , 등 우리 신화와 역사, 고전을 소재로 한 작품을 꾸준히 펴낸 작가 강숙인의 신작 역사소설이다. 작가는 이 소설을 마의태자의 꿈을 그린 그 뒤의 이야기를 상상하며 썼다고 한다. 그러기에 작가 스스로도 역사적 자료나 기록이 없는 상태를 인정하고 그 전제하에 소설을 썼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은 어떤 내용의 소설일까?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전체적인 내용이 만들어졌지만 몇 가지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다. 신라가 망하고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 강원도의 인제에 들어가 고려에 저항운동을 했다는 전제하에 소설을 시작하고 있다. 그런 근거로 강원도 인제군 김부리에 대왕마을, 맹개골 같은 지명과 한계산성의 유물, 대왕마을에서 일년에 두 차례씩 제사를 지냈다는 사실에서 마의태자가 마지막까지 저항 운동을 했을 것이라는 판단이 소설의 시발점이다. 또 고려 초에 마의태자처럼 고려에 저항했던 신라의 왕족이 여진 땅에 가서 금나라의 시조가 되었다는 자료이다. 금나라의 역사서에 금나라의 시조는 신라의 왕족인 금준, 김극수라고 한다. 그가 예순이 넘어 여진 부락에 와서 쉰이 넘은 노처녀와 결혼을 하고, 부락의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여 추장이 되었고 그의 후손들이 금나라를 세웠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소설은 김준은 마의태자의 아들로, 김극수는 마의태자와 함께 신라의 부흥을 꾀하다 인제를 떠나 새부를 보살피는 양아버지로 그려진다. 새부는 양아버지를 친아버지로 안다. 아버지는 새부가 장성할 때에야 친부에 대한 비밀을 알려준다. 고려 북쪽 변방에서 자신들의 신분을 숨긴 채 지내던 이들은 역모의 모함에 빠져 고려를 떠나 여진 부락으로 향한다. 여진족이 흩어져 살던 곳은 옛 발해의 지역. 그곳에서 새부와 김극수는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새부는 여진족의 아린이라는 처녀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아린은 그에게 ‘초원의 별’이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그는 추장의 아들을 구해주고 추장자리에 추천을 받으나 그 자리를 아버지에게 양보한다. 추장 자리에 오르게 된 김극수는 발해 사람으로 쉰이 다 될 때까지 노처녀로 지내온 소소라는 여인과 혼인을 한다. 그리고 그의 자손 혹은 김준의 자손들이 후에 여진족의 나라인 금나라를 세운다. 그럼 작가는 세부의 행로를 통해서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한 것일까.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역사소설이면서 성장소설인 청소년 소설을 쓰고 있었다. 또한 우리 조상들이 금나라 역사를 우리 역사로 인식했다는 글을 읽고, 우리가 잘 모르고 있는 금나라의 시조에 대한 이야기도 해보고 싶었다. 허구의 이야기를 통해 금나라 시조가 신라 사람이었다는 분명한 역사적 사실 하나만은 꼭 알려주고 싶었다.” 금나라의 시조가 신라 사람이었다는 게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 하는 반문을 할 수도 있다. 민족과 민족, 나라와 나라라는 게 오랜 세월 동안 얽히고설키면서 현재까지 온 게 아닌가. 하지만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그 뿌리를 생각하곤 한다. 그 이유는 무얼까. 어떤 심리적 위안이나 만족을 위한 것이 아닌가 싶다. . 이 소설은 역사 소설이면서 그리 광대하지 않다. 어쩌면 아주 단순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새부와 김극수라는 인물이 망국의 한을 달래면서 고려를 떠나 여진 부락에 들어가 후에 금나라의 시조가 되었다는 단순한 구조로 되어있다. 여기에 아기자기한 남녀간의 사랑과 권력을 쥔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갈등이 그리 크지 않게 그려져 있다. 그리고 이야기 자체도 무겁지 않다. 산보를 하는 기분으로 읽을 수 있다. 그러면서도 독자는 역사소설의 특징인 과거로의 여행을 떠날 수 있다. 초원의 밤하늘에 무수하게 펼쳐진 푸른 별을 바라보며 무너진 옛 왕국을 그리워하면서도 자신의 운명에 순응하는 한 젊은이, 새부를 만날 수 있다. 소설 속의 새부를 만나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그리고 그의 맑고 곧은 마음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선 자신도 버릴 줄 아는 진정한 용기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아름다운 노래도 들을 수 있다. 작가가 소설 속에 노래나 시를 지어 놓았는데 독자는 그 노래를 들으며 또 다른 상상을 할 수 있다. 독자들은 이 소설을 읽어가며 망국의 한과 그리움보다는 한 인물의 무엇이 이민족의 부족에 가서 한 나라를 세우게 되었는지에 초점을 맞추어 읽다보면 그 즐거움과 의미가 훨씬 배가 될 것이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교육도 중심지인 교육 현장에 관한 올바른 이해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현장에 대한 감각이 둔한 상태에서 정책을 펴게 될 때 많은 손실과 시행착오가 있기 마련이다. 이러한 점을 극복하고 학교 현장의 상황을 알도록 하기 위하여 일본 문부 과학성은 교원 자격을 가지고 있는 본부 직원을 교원으로서 지방도시의 공립 중학교 등에 파견해, 연수시킬 방침을 정했다. 신진 직원을 대상으로 인선을 시작하고 있어 4월부터 1년간의 예정으로 2, 3명을 보낸다고 한다. 지금까지 문부과학성은 교육 행정의 체험을 시키기 위해서, 들어온지8-9 년째인 직원들을 중심으로 현 교육위원회의 과장직 등에 2, 3년간 보내어 연수시켜 왔다. 그 후, 일부 현이나 지정시의 교육위원회의 교육장으로 출향시키는 예도 있었다. 또, 들어온 지 2년째의 직원은 캐리어 채용자를 중심으로 1개월 정도, 시 교육위원회에서 연수를 시켜 왔다. 교육위원회의 직원은 교원 자격을 갖고, 학교에서 가르쳐 온 경험자가 대부분으로, 문부 과학성 측은 「교육위원회 근무 경험으로 학교 현장의 지식을 얻어 왔다」 라고 자기 평가를 해 왔다. 하지만, 「교육 행정을 담당하고 있는데 학교를 직접 모르는 것은 이상하다」라는 비판도 뿌리 깊었다. 문부 과학성에는 매년, 교원 면허를 가지는 직원이 몇 사람 정도 들어오고 있다. 당분간은, 이러한 직원을 대상으로 하지만, 장래는, 대학에서 교원 면허를 취득하고 있지 않아도, 도도부현 교육위원회의 판단으로 일시적으로 교부할 수 있는 「특별 자격증」 제도의 활용 등도 생각하 있다는 것이다. 파견처는 검토중이지만 받아 들이는 측의 사정도 고려하고, 담임은 하지 않으며, 부담임 등의 입장에서 지도에 임하게 할생각이다.
출산율 저하와 인구 감소로 인한 취학 연령 학생의 감소로 올해 경남지역에서 신입생이 없는 초등학교가 9개에 이를 전망이다. 19일 경남도교육청의 2007학년도 신입생 배정 추정치(1월25일 기준)에 따르면 올해 경남에서는 진주 내동초등학교 신광분교를 비롯한 9개 학교가 1학년 입학생을 받지 못한다. 또 입학생이 1명인 학교가 6개교, 2명인 학교도 11개교에 이를 것으로 조사돼 초등학생 수의 감소 추세가 뚜렷한 것으로 나타났다. 1월25일을 기준으로 잡은 올해 전체 초등학교 총 학생 예상 수치는 26만5천101명이며, 이는 지난해의 27만353명에 비해 5천명 가량 줄어든 수치다. 이 수치는 진학을 1년 늦추는 1.2월생 학생들을 포함한 수치로, 2월 중으로 1.2월생 학생들의 진학 포기가 이어질 것을 감안하면 실제로 3월에 입학하는 학생 수와 신입생이 없는 초등학교 수는 이보다 더 줄어들 전망이다. 경남교육청 관계자는 "전반적인 출산율 저하와 경남도 인구의 외부 유출로 인해 점점 취학 학생 수가 줄어드는 것으로 보인다"며 "소규모 학교 통폐합 등을 통해 이에 맞는 교육 정책을 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한 실업계 고등학교에 근무하고 있다. 휴전선 근방에 위치한 학교로 주변 교육 환경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실업계 학교 탓인지 학생들은 학습에 대한 열의와 의욕이 다소 부족한 편이다. 중학교 때의 학업부진으로 인해 실업계에 진학했다는 좌절감, 어려운 가정환경 탓에 자괴감에 빠져있는 경우도 있고, 가정불화로 인한 결손 가정도 의외로 많다. 따뜻한 관심과 사랑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학생들이다. 하지만 학생들은 참으로 심성이 착하다. 감성이 따뜻하고 다정다감한 학생들이 많다. 등교를 하다가 만나기라도 하면 으레 달려와서 환하게 인사하곤 한다. 이곳에 부임한지 어느덧 18년, 많은 제자들을 만나고 헤어졌다. 그 만남 하나하나를 다 기억할 순 없지만 행복과 보람을 느낀 아름다운 추억들이 있다. 그 중에 잊을 수 없는 한제자를 꼽으라고 한다면 김광복(金光復)이란 학생이 떠오른다. 8월 15일에 태어났다고 해서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라고 했다. 나는 3년 전에 그 아이를 처음 만났다. 실업계 학생들은 가정 형편이 어려워 진학보다는 취업을 준비한다. 광복이도 처음엔 이에 속한 학생이었다. 입학할 때의 성적은 중간이었고 다른 아이와 마찬가지로 가정형편이 어려워 의욕을 상실한 소극적인 학생이었다. 학급에서 임시반장을 뽑게 되었을 때였다. "우리 반을 위해 열심히 봉사할 학생 있습니까?" " -------" 학교생활에 대한 낯설음 탓인지 나서는 학생이 한 명도 없었다. 어쩔 수 없어 임시반장을 내가 지명해야 했다. 나는 몸집이 제일 크고 믿음직하게 보이는 한 학생을 지명했다. "정말 믿음직하고 성실한 학생인 것 같습니다. 임시 반장을 하면 어떨까요?" 모든 학생들은 박수로 환영했다. 그 학생이 바로 광복이다. 그런데 뒤에 안 일이지만, 당시 임시반장이란 직책이 그에겐 정말 감당하기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다. 덩치는 큰 광복이건만 생긴 모습과는 달리 순진하고 착한, 여린 학생이었다. 말썽쟁이로 가득한 우리 반을 이끌어 나가기엔 광복이로서는 역부족이었다. 영향력이 있는 아이들이 몇 명 있었기에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으리라. 아무튼 학생들 앞에서, 혹은 선생님 앞에서, 눈물을 펑펑 쏟는 모습을 여러 번 목격하기도 했다. 그는 '눈물반장'이라 불릴 만큼 힘겹게 학급을 이끌어 나갔다. 그때마다 나는 "고생의 절반은 보람인거야, 행복은 봉사에서 시작하는 거란다. 희망을 가지렴."하고 격려하곤 했다. 그리곤 어느 날부터인가 광복이는 학급의 궂은일을 도맡아 했다. 청소 당번이 도망가면 혼자 남아 청소를 하곤 했다. 인터넷에 학급 카페도 개설하여 학급의 원활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했다. 학교생활에 어려운 친구가 있으면 달려가서 도와주었다. 등하교시간에는 어김없이 학교 정문에 나와 호루라기를 불며 교통지도 활동도 전개했다. 광복이는 예전의 소극적인 학생이 더 이상 아니었다. 매사에 적극적인 학생으로 변한 것이다. 광복이 주위에서 주변인처럼 맴돌던 일한이는 물론 기선이도 마음을 함께했다. 내가 참다운 교사의 글을 걷게 된 계기는 어쩌면 광복이를 만나면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처음 RCY(청소년 적십자)지도교사를 맡을 때의 일이다. 30년 전통의 우리 학교 RCY를 처음 담당했을 때에 전체 단원은 고작 11명이었다. 그것도 열심히 활동하는 광복이를 제외하곤 유달리 눈에 띄는 녀석이 거의 없었다. 하계 캠프 때였다. 학교별 장기자랑 대회가 열리던 날, 학교 대표로 출전할만한 적임자가 없었기에 곤혹스러운 상황이었다. 여러 번 수소문 했지만 뾰족한 방도가 없어 포기해야만 했다. 그런데 믿기지 않은 사건이 눈앞에 펼쳐졌다. 세상에! 가수 이정현으로 분장한 광복이가 무대위에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육중한 몸매에 넓은 등판을 다 드러내놓은 엽기적인 몸매. 그것도 태극기를 두른 분장이 예사롭지 않았다. 나는 처음에 눈 뜨고 볼 수 없었기에 그만 '악'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그러나 공연이 시작되면서부터 사뭇 분위기는 처음과 달랐다. 그의 춤과 노래 솜씨는 모든 청중을 사로잡았다. 비 오듯 땀을 흘리면서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그 열정적인 '와와 춤', 보는 이에게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학생들은 어느새 환호성으로 그에게 화답했다. 열광의 도가니였다고 표현해야 맞을 것 같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눈물이 날만큼 그저 광복이가 고마웠다. 더욱이 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최우수상까지 입상하게 되었다. 그 이야기는 학생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화제였다. 그를 아는 학생들과 동료 교사들은 예상 밖의 행동이 의외라는 표정들이었다. 아무튼 그 일은 내가 두고두고 추억하게 될 ‘행복한 희망’을 가르쳐 준 사건이었다. 인근 학교에 입소문으로 퍼지면서 학교 홍보에도 커다란 구심점이 되었다. 그때 깨달은 사실은 누구나 ‘겉모습으로 혹은 선입견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는 것이다. 실업계 학생이라고 혹은 학업 성적이 떨어진다고 학생들을 편견으로 대하거나 선입견으로 대하는 우리들의 모습들을, 아니 내 안에 있는 잘못된 생각을 질타하듯이 광복이는 내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 물론 그것이 광복이의 전부는 아니었다. 광복이가 자격증 시험에 도전하여 합격한 것은 물론이고 대학진학을 위해 밤늦게까지 공부하며 자신의 꿈을 키웠다. 하지만 광복이가 제일 힘들어했던 것은 실업계 학교에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주변에서 '0돌이'로 부르는 편견이었다. 그는 이러한 현실에 당당히 도전장을 던지곤 했다. 광복이는 대학 수시 1학기 모집에서 기술교사를 양성하는 한국기술교육대학교에 지원하여 당당히 합격한 것이다. 그때의 그 감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 소식을 접한 우리 모두가 기쁨으로 혹은 사무친 가슴으로 펑펑 울었으니까. 광복이는 그 기쁨을 하나의 약속으로 말했었다. RCY 단원들이 그 모든 추억을 담을 수 있는 '디지털 카메라'를 기증하겠다고…. 후배들과 함께했던 소중한 추억을 자신 스스로 카메라에 담을 수 없었던 안타까움이 있었나보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밤늦게까지 아르바이트 한다는 것을…. 하지만 그는 약속을 언젠가 꼭 지키겠단다. 얼마 전 대학에 입학한 광복이로부터 반가운 메일이 한통 날아왔다. "선생님! 우리 학과에 인문계에서 온 친구가 한 명이 있어요. 제가 실업계에서 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요. 교양수학 첫 강의 시간에 교수님이 자신은 F학점을 잘 준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그런데 그 때 이 말을 들은 인문계 친구가 한다는 소리가..‘너 실업계 나왔지? F학점을 잘 준다고 하네. 너 많이 힘들겠다.’ 이런 말을 들을 때, 전 너무너무 속상했고 많이 울어요. ^^:; 하지만 저 이를 악물고 열심히 공부했어요. 제가 영어 쪽지 시험을 보아서 그 인문계 학생보다 더 좋은 점수를 받았어요. ^^첫 대학생활은 순탄한 것 같아요. 정말 행복하고.. 재미있고, 친구들도 많이 사귀고, 다 선생님 덕분인 것 같아 감사해요. 학급반장과 RCY 단장을 권유해주셔서 저한테 리더십을 심어 주셨고요…, RCY 단장을 하지 않았던들 제가 과대표도 할 수 있었을지…, 그 생각을 많이 하고 있어요. (요새 경영학 시간에 매일 리더십에 대해서 수업 받아요. ^^;;) 제가 선생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게 많아서 죄송해요. 지금은 힘들지만, 꼭 약속 지키는 날이 오도록 열심히 노력할게요." 광복(光復)이는 내게 분명 희망을 가르쳐준 아이이다. 내게 '희망‘을 것을 가르쳐 준 것처럼 그 모든 것을 극복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으리라. 올해도 우리 학교에는 200여 명의 학생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대학에 당당히 합격했고 159여 명의 학생이 기업체에 취업했다. 오늘도 또 다른 광복이를 만나는 설렘으로 새로운 희망을 찾아 다시 교단 앞에 선다. "하나님! 항상 겸손함으로, 학생들을 사랑으로가르치는 좋은교사가 되게하시고,그들을 가슴으로 칭찬하며, 따뜻한 눈길로 이해하고, 사랑으로 희망을 가르치는 참 교사가 되게 하옵소서."
설날 아침. 고국에 있는 부모님과 친척들에게 새해 인사를 하기 위해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다. 아내는 한국에서 가지고 온 밀가루로 빚은 만두와 여기에서 산 떡으로 떡국을 끓이며 제사상을 차리기 위해 부산을 떨었다. 그리고 아이들을 입을 한복을 꺼내놓고 아이들이 일어나기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아이들은 어느새 이곳 생활에 익숙해 졌는지 설날에 대해 큰 의미를 두지 않는 것 같았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한국에서의 설날은 친척집을 방문한다든지 세배를 하고난 뒤, 세뱃돈을 받는다는 기분이라도 있을 텐데 여기에서는 우리 식구만이 설날 기분을 내야한다는 사실을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는 듯 했다. 먼저 자고 있는 아이들을 깨우며 새해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일어나 세배를 할 것을 주문하였다. 그런데 막내 녀석은 오늘이 무슨 날인지 전혀 모르고 있는 듯 했다. 그리고 하품을 하며 내게 물었다. “아빠, 오늘 무슨 날이에요? 갑자기 세배를?” 막내 녀석의 질문에 옆에 있던 누나가 비아냥거리며 대답했다. “바보야, 설날이잖아. 그러니 빨리 일어나 세배를 해야지.” 그제야 막내 녀석은 오늘이 무슨 날인지를 알았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곳에 온 지 몇 달이 지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막내 녀석은 고국에서의 생활을 잊고 있는 듯 했다. 우선 제사를 지내기 전에 아내와 나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아이들로부터 세배를 받았다. 그리고 절값으로 필리핀 페소가 아닌 최근 한국에서 새로 발행된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을 넣은 지갑을 아이들에게 주었다. 세뱃돈으로 한국 지폐를 받은 아이들은 다소 의아해 하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서로의 얼굴만 계속해서 쳐다보았다. 이곳 필리핀에서는 한국 지폐를 사용할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표정을 지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은 그랬다. 아내는 아이들이 한국 지폐를 지갑에 넣고 다니면서 한국인으로 자긍심을 느끼게 해주고자 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돈의 소중함을 아이들에게 일깨워 주고 싶어 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필리핀 1페소의 가치가 한화 20원에 해당하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아이들은 돈을 헤프게 쓸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설날 며칠 전에 아이들에게 세뱃돈을 주기위해 한국에서 온 사람으로부터 간신히 천 원짜리 지폐를 구했다고 하였다. 아내의 이야기를 듣고 난 뒤, 아이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지갑에서 꺼낸 천 원짜리 지폐를 손에 들고 여기저기를 살폈다. 그리고 필리핀 1,000페소(한화 20,000원에 해당)짜리를 꺼내들고 우리나라 천 원짜리와 비교해 가면서 우리나라 화폐의 우수성을 눈으로 확인하였다. 아무튼 이곳 필리핀 ‘바기오’에서 처음으로 맞이한 설날이 다소 아쉬움은 있었으나 아내가 끓인 맛있는 떡국을 먹으며 가족끼리 덕담을 나누는 시간도 가져 의미 있는 명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무엇보다 아이들은 평생 잊지 못할 세뱃돈을 엄마로부터 받은 것에 행복해 보였다.
"봉희야~! 어떤 일이 있든 무조건 아이들을 감싸 안아야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악하게 대하지 말거라." 18년전, 처음 교직에 들어설 즈음, 아버지께서 나를 조용히 불러 놓으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실 그때는 '사람을 감싸 안는다'는 의미를 잘 몰랐다. 다른 사람들에게 악하게 대하지 말라는 의미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학생들을 가르칠 때, 열정과 사랑으로 가르치고 직장 안에서 인간관계를 잘해야 한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받아들였을 뿐이었다. 이제 교직에 들어선지 꼭 17년이 된 지금, 아버지의 당부의 말씀이 불현듯 떠오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얼마 전, 한 초등학교 교사가 어린 학생을 체벌한 사건이 문제가 되더니 며칠 전에는 학생의 뺨을 때린 교사가 교단을 떠나는 불상사가 있었다. 안타깝기 그지 없다. 아마도 아버지께서 오늘을 생각해서 선경지명처럼 내게 하신 귀한 말씀이리라. 옛날에 열 살을 갓 넘을까 말까한 꼬마 신랑이 있었다. 나이가 열 살이나 많은 신부에게 장가를 간 것이다. 오늘날에도 누나 같은 연상의 여인이 배필이 좋다며 유행처럼 회자되곤 했다. 하지만 예전에는 연상의 여자와 결혼하는 것은 예삿일이었다. 일제 치하에 정신대로 끌려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생겨난 시대의 아픔이자 산물이기도 했다. 어쨌든, 나이든 신부가 철없는 신랑의 투정과 우격다짐을 다 들어주어야 하는 것이 문제였다. 그러다보니 신부에게는 철부지 꼬마 신랑이 늘 힘겨운 상대였으리라. 시도 때도 없이 뭔가 먹고 싶다면 곧바로 대령해야 했고, 이 것, 저 것 갖고 싶고 원하는 것이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곧바로 가져가야 했다. 철없는 신랑의 비위를 맞추는 것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시부모 눈치 보랴, 시누이 눈치 보랴, 살림하랴. 이만저만 고충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꼬마신랑의 투정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여러 날 반복되다보면 신부도 사람인지라 감정이 앞서고 서러움이 폭발하기 마련이다. 어느 여름날, 시아버지 시어머니가 잠시 집안 일로 출타 중이었다. 꼬마신랑은 오늘도 어김없이 감 내놓아라, 배 내놓으라고 억지가 이만저만 한 것이 아니다. 가지각색의 투정을 부리면서 신부를 못살게 구는 것이 아닌가. 더욱이 치마의 속곳을 들추는가 싶더니 잘 차려 입은 고운 옷에 흙을 퍼 붓는 것이 아닌가. 나중에는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달라고 막무가내로 투정을 부리더니, 급기야 시궁창의 물을 퍼 부으면서 자신과 놀아달라고 투정을 부리곤 하는 것이다. 시아버지 시어머니를 모시면서 지아비 섬기는 며느리의 몸은 언제나 바쁜 법이다. 시집살이에 얼마나 힘들었을까? 때를 맞추어 끼니를 준비해야 하고, 집안의 온갖 빨래도 도맡아서 해야 한다. 장독대 장이 잘 익도록 관리도 해야 하는 처지다. 어린 꼬마 신랑과 놀아주는 것도 한 두 시간이지 계속해서 투정부리는 철없는 꼬마신랑을 맞상대할 여력이 없었나 보다. 화가 난 신부는 호박이 탐스럽게 열린 초가지붕 위에 신랑을 내 던져 버렸다. 버릇없는 어린 꼬마 신랑에게 겁을 주기 위한 심사였다. 꼬마신랑은 겁을 먹었는지 엉엉 울면서 내려줄 것을 간청한다. 하지만 신부는 꼬마신랑의 다짐을 받기 전까지는 내려주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런데 그때 마침, 출타했던 시아버지 시어머니가 집안으로 들어서는 것이 아닌가. 아뿔싸~! 며느리는 안절부절 못할 뿐, 이 사실을 명명백백하게 신랑이 고하면 끝이 날 형국이었다. 오로지 신랑의 말에 달린 상황이었다. 그저 소박을 맞을 거란 생각에 하늘이 노랗게 보일 뿐이었다. 이젠 소박을 맞으면 친정에도 가지도 못하는 불쌍한 처지가 아니던가. 그저 모든 것을 체념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꼬마신랑은 갑자기 울음을 뚝 멈추는가 싶더니 "색시야~! 호박을 작은 걸로 딸까? 큰 걸로 딸까? 색시야~! 작은 게 맛있을 것 같은 데 칼국수해서 먹음 정말 맛있겠다."하며 좀 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생글생글 웃으면서 신부에게 다정스레 말을 건네는 것이 아닌가. 그 말을 듣는 순간 신부는 어떠했을까? 그만 왈칵 눈물을 쏟고야 말았다. 가슴이 찡한 감동의 속울음을 운 것이었다. "예~! 그래요. 저~! 작은 호박을 따주세요. 시원한 칼국수 맛있게 해드릴게요." 지금껏 자신을 힘겹게 한 철없는 어린 꼬마 신랑이었을망정, 진정 자신을 사랑하고 아껴주는 신랑의 따스한 말이 아니던가. 철부지 신랑일지라도 하나밖에 없는 진정 자신만의 신랑이었던 것이다. 자신을 아껴주고 배려해주는 그 마음에 그만 감동하고만 것이다. 그렇다. 그것이 사랑이 아니던가. 아껴주고 감싸안아주는 그런 사랑 말이다. 요즘, 가정이든 학교든, 서로 감싸 안아주기보다는, 야박하고 냉정한 모습을 자주 접하곤 한다. 그러다보니 서로 감정의 골이 깊어지게 되게 마련이고 자신만이 억울하다며 서로의 가슴에 금을 긋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악을 악으로 대하면 악으로 망한다고 하지 않던가. 서로의 잘못을 감싸주고 품어주는 아름다운 배려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제 곧 봄이다. 처녀 총각이 만나서 신랑 신부로한 가정을 이루는 계절이기도 하다. 나도역시 새학년 새학기가 되면 어김없이35명의 어린 신부를 맞이하게되리라.어린신부들을 맞이할 생각만 하면마음이 설렌다.이제는 꼬마신랑처럼 어린 영혼을 배려와 사랑으로 감싸안아주는 그런 지혜로운 신랑이 되고 싶다. 교단에 섰던 18년 전의 그 첫날처럼.
대학 등록금은 매년 큰 폭으로 오르고 있지만 학생 1인당 장학금은 소폭 증가하거나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19일 한국교육개발원이 분석한 '연도별 고등교육기관 장학금 수혜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4년제 대학의 학생 1인당 장학금 지급액은 161만7천원으로 전년도(163만6천원)보다 1만9천원 줄었다. 이는 학생 1인당 등록금 액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지난해 국ㆍ공립 대학 등록금은 평균 200만~400만원, 사립대학의 경우 400~600만원 가량이었으며 많게는 600만원 이상에서 1천만원 가까이 되는 곳도 있다. 장학금 및 학비 감면 수혜자 수는 지난해 총 86만432명으로 전년도(81만8천59명)보다 증가해 그만큼 1인당 장학금 지급액이 줄어드는 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 장학금 및 학비 감면 수혜자는 2000년 69만5천637명에서 2001년 64만948명으로 감소했다가 2002년 다시 65만1천295명, 2003년 68만4천111명, 2004년 75만120명으로 증가했다. 1인당 장학금 지급액은 2000년 112만원, 2001년 115만8천원, 2002년 133만5천원, 2003년 147만7천원 등 소폭 증가세를 보이다 2004년엔 138만2천원으로 줄었다. 전문대학도 1인당 장학금 지급액이 2002년 101만2천원, 2003년 116만9천원, 2004년 108만1천원, 2005년 117만5천원, 2006년 121만3천원 등 소폭 증가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