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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학교장의 새로운 리더십 발현과 학교혁신을 위해 교육경력 15년 이상의 교원들을 대상으로 일반 초·중·고교에 교장공모제를 도입한다고 한다. 현재의 승진제 교장 임용 방식만으로는 학교를 변화시키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학교의 변화를 요구하는 일반 국민들이 보기에는 ‘공모’라는 말만 접해도 뭔가 학교가 확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하겠지만 무자격 교장공모제의 도입 취지부터가 허상이다. 우리나라의 초·중·고 교육 체제는 국가가 통할하고 책임지는 중앙집권적 구조로서, 학교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교육과정편성 및 운영, 인사, 복무, 학교예산 운영 등이 국가에 통제되어 있다. 이러한 제도는 묶어두고, 단순히 교원 인사제도의 변화만으로 새로운 교장의 리더십과 학교혁신을 부르짖는 것은 연목구어일 따름이다. 왜냐하면 공모교장에게 해당학교 교원 정원의 30% 이내에서 초빙 교원을 요청하는 권한만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스템에서는 공모된 교장이나 현행 승진 임용된 교장 간의 역할 상에 큰 차이를 기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설령 공모교장이 교육구성원들의 요구로 학교의 경쟁력을 향상시키려고 하면 이는 학교간의 경쟁력으로 이어져 평준화 정책의 틀을 깨야 하거나 학부모들의 학교선택권 등을 보장해야 가능한 것이다. 도입 기준이 되는 교육경력이 왜 15년인 지에 대한 납득할 만한 자료도 제시 못하는 이 정권의 아마추어적 정책 집행 태도, 이제 막 내릴 때도 되질 않았는가.
지난 4월 17일, 버지니아 공과대학에서 일어난 끔찍한 총격사건! 33명을 줄지어 총살하고 이를 저지하려든 76세의 노교수가 목숨을 잃었으며, 29명의 부상자를 내었다. 대학 캠퍼스 강의실에서 그도 23세의 젊은 한 학생이 어떻게 그처럼 잔인한 살인을 감행할 수 있었을까? 정신적 장애가 있었다고는 하지마는 그의 의도적 범죄 행위는 도저히 용서 받을 수 없다. 정든 삶의 터전을 버리고 미래의 꿈과 희망을 이루기 위해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던 한 가정이 불과 15년 만에 그 꿈은 산산이 부서져버렸다. 세상을 제대로 살아보지도 않은 짧은 인생 경험으로 모세의 기적처럼 세상을 바꾸어 보겠다는 망상이 단 하나 밖에 없는 고귀한 생명들을 순식간에 앗아가고 말았다. 꿈과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온 동료 대학생들, 그리고 그들을 힘들게 뒷바라지해온 부모와 가족들의 심정은 어떠하겠는가? 자신이 처한 환경이 마음에 좀 들지 않는다고 막연하게 가진 자에 대한 불만과 증오심으로 수많은 생명을 무자비하게 죽이다니 이가 말이나 되는가. 정제되지 못한 한 인간의 사고! 자신보다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 생각이나 해 보았을까.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어떤 일을 하겠다는 건가? 왜 그런 끔직한 사고방식이 한 젊은 청년의 마음에서 일어난 것일까? 전 세계인들이 바른 진단을 하고 그 대안을 내 놓아야 한다. 자칫 뉴스를 접하다 보면 또 다른 젊은이들이 이를 모방하지나 않을까 두렵다. 날로 발전해 가는 물질문화! 그기에 기생하는 얄팍한 상혼은 물질이 행복의 최선인 것처럼 사람들을 정신없이 몰아가고 있으며, 밀려오는 정보화 사회는 사람들을 점점 외톨이로 만들고, 터놓고 이야기할 기회를 박탈해 가고 있다. 누구나 외롭게 살면서 문명의 이기(利器)들을 소유하려 치열한 경쟁을 하며 물질의 노예로 전락되어 학벌과 지위를 높이고, 돈을 벌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여기에 무한 경쟁이라는 슬로건이 이를 더욱 부채질한다. 먹고 살기 위해, 남보다 뒤쳐지면 생존이 어렵다는 강박 관념에 사로 잡혀 더불어 살아가는 인성보다는 혼자 생존하려는 심성을 키운다. 그러다 보니 인간성은 점점 상실되어 간다. 가정과 학교, 사회에서도 사람됨의 교육은 밀리게 되고 오로지 점수, 출세, 결과 중심에 빠져 허덕이고 있다. 비인간적 언행이 사회 전반적으로 묵인되면서 이를 틈타 일탈 행위와 폭력, 범죄 행위가 난무하고 있다. 사회는 바른 중핵적 가치관을 잃어버려 사회 정화기능을 상실해 버렸다. 그래서 가치의 부재, 가치의 혼동 속에 서로 힘들게 살아간다. 자신만은 예외가 될 줄 알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어느 날 자신이 살아온 삶이 비열하고 치졸했다는 것을알지만 이미 때는 늦어 자식이 이를 모방하고 한 수 더하여 새로운 일탈을 자행하고 있음을 알고는 놀란다. 발달된 통신매체를 통하여 어른들이 만든 건전하지 못한 폭력 영화나 게임 그리고 음란물들이 정보의 바다를 통해 일탈을 부추기고 범죄를 만들고 있으며 그 기법과 수법도 대담해 졌다. 사람됨의 교육을 소홀하게 한 대가가 끔찍한 범죄로 되돌아오고 있다.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 9.11 테러, 영국의 지하철 테러, 스페인의 열차 테러, 매일 일어나고 있는 이라크의 테러, 19일 일본나가사키 시장의 총기 피습 사건, 20일 모 군부대에서 동료 총기 살인 사건. 21일 모 고등학교 학생의 엽총 사건, 역주행을 하고도 스릴을 즐긴다는 뉴스 보도 등 최근 며칠 사이 일어났던 사건들을 종합해 볼 때 우리교육 아니 세계교육이 이제는 확 달라져야 함을 절실하게 시사해 주고 있다. 작금에 세계 도처에서 발생되고 있는 총기사건들을 보면서 그 발생 원인을 바르게 진단하고 그 대안을 시급하게 모색해야 한다. 인성교육을 서두르고 강화해야 한다. 바르게 말하고, 바르게 행동하며, 바르게 생각하는 사람됨의 교육을 서두르자. 사람을 죽이고도 이를 정당화하려는 인면수심의 심성을 바로잡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희생자가 될 수 있다. 착한 심성으로 태어난 아이들! 그들의 심성을 바르게 키워주어야 한다.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 까지 가정과 학교 사회에서 사람됨의 교육을 바르게 해 나가야 한다. 바른 심성이 어찌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마는 사람다운 사람이 대접을 받고 그를 따르는 문화가 조성되고 지속되면 이루어진다. 인간답지 않은 행동을 하는 사람을 타이르고 설득하여 사람다운 사람으로 만들어가는 교육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인간답지 않은 언행을 묵인하다 보면서로 힘들게 살아야하고 나중에는 목숨마저도잃어버릴 수 있다. 어른들이 먹고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인간성을 잃어버리면 자식들의 심성은 더욱 거칠어지고 어른보다 한 수 더한 일탈과 범죄를 행하게 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어른들이 뒤집어써야 한다. “무한경쟁의 시대 이겨야만 산다.는 슬로건을 자제하고,무한협동의 사회 더불어 살아가자.는 슬로건을 내걸고 먼저 엘리트들부터 절제된 욕망으로 바른 삶의 모범을 보여주어야 한다. 승희 조 라는 한 청년이 빚어낸 비인간적인 총격 살인 사건! 과연 그만의 책임 일까? 자유를 찾아 영국에서 아메리카로 건너간 개척자 미국 시민들이 또 다른 한 인간의 무분별한 자유 때문에 온 나라가 몸살을 앓고 있다. 과연 이는 미국만의 고 고민일까? 물질이 전부가 아니라 정신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인성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옛 조상들이 강조한 인(仁)의(義)예(禮)지(智)신(信) 교육을 고전으로만 덮어둘 것인가. 서로 용서하고 배려하는 인성교육이 세계평화의 지름길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누구에게도 먹히지 않는 쓸 데 없는 질문인 줄 뻔히 알면서도 답답한 마음에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묻는다. 교육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두말할 것 없이, 사람을 사람답게 길러내는 일이며 가치 있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인간을 바람직하게 성장․변화시키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 교육의 실상, 학교 현장을 들여다볼라치면 이러한 본질은 온 데 간 데 없고 사이비 교육만이 판을 치고 있다. 백년하청, 조금도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입시중심의 교육체제 하나만 놓고 생각해 보자. 세속적 성공과 출세를 지향하는 것이야 인간의 기본적 욕망이기에 그 자체를 탓할 수는 없지만, 한 개인의 행복과 불행, 현재와 미래가 오로지 대학 들어가는 성적 하나로 좌우되고 명문대 졸업 여부 하나로 결판나고 마는, 세계에 그 유래가 없는 대한민국만의 병리적 사회풍토 속에서 학교가 단순한 입시교육기관으로 전락한 지는 이미 오래이다. 안타까운 것은 입시경쟁에서 밀리지 않으려는 교육수요자들의 맹목적 의존으로 인해 급속히 팽창하는 사교육시장의 위세에 밀린 나머지 본래적 기능의 하나였던 지식전수기능마저도 불신을 받기에 이른 학교가 이제는 단순히 학생들의 학적관리나 해주는 곳으로 비쳐지는 현실은 자연스럽게 학교교육 무용론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집에를 가나 학교에를 가나, 어른들이 하는 일이라곤 경쟁을 부추기고 극도의 이기심을 부추기기는 것뿐인 우리의 교육현실. 그 속에서 아이들이 무엇을 배우고 어떤 인간으로 자라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라. 무언가에 맹목적으로 매달려 사는 인생, 끊임없이 경쟁에 내몰리는 인간의 삶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 한창 꿈을 키우고 몸을 기르는 가운데 인간과 사회에 눈을 뜨고, 정의와 양심, 도덕적 가치를 내면화해야 할 소중한 시기에, 옳고 그름을 따질 겨를도 없이, 좋고 나쁨을 가리지도 않고, 불을 보고 뛰어드는 부나방처럼 욕망에 눈 먼 삶을 살아야 하는 우리의 아이들. 그들의 행복지수는 과연 얼마나 될까. 언젠가 한 언론에서‘전쟁 및 국가 위기 시 행동에 대한 한중일 청소년 의식 비교 조사’를 한 적 있는데‘전쟁이 나면 싸우겠다.’는 학생이 일본의 경우 41%인데 우리는 10.2%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난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흔히 있는 일이고 그냥 그럴 수도 있는 것쯤으로 넘어가도 되는 것일까? ‘내 나라가 자랑스럽다’고 느끼는 학생들이 중국의 경우 60%인데 우리는 38%에 그치고 있다면 이게 과연 제대로 된 학생들의 의식일까? 서울 강남 지역 초등학교에서 한 개에 10만원이 넘는 루이뷔통 머리방울이나 헤어밴드를 하는 아이들 수두룩하고. 중 고등학생으로 올라가면 페라가모 구두니, 카르티에 지갑 등으로 수준이 높아지는 현실은 또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먹고 아무데나 버리는 통에 학교가 온통 쓰레기로 넘쳐나고 어쩌다 선생님이 회초리라도 들라치면 잘못을 반성하기는커녕 그 현장을 핸드폰 카메라로 찍으려 덤벼드는 아이들은 또 어떻게 받아들여야 좋단 말인가. 지금 일선 학교 교육현장에서는 입시위주 교육에만 혈안이 되다보니 국․영․수 점수의 높고 낮음에만 모든 이의 관심이 집중될 뿐, 제대로 된 통합적 인성교육이나 사회교육은 찾아보기가 힘든 실정이다. 도덕이나 윤리 교과목, 혹은 사회와 역사 교과목을 배우고는 있지만 그것은 단순한 이수과정의 하나로서 존재할 뿐 실천적 가치 덕목으로서 내면화된 교육활동은 실종되고 만 것이다. 결국 교육다운 교육의 부재가 초래한, 학생들의 이 같은 무규범적 행동, 비도덕적이고 몰사회적인 인격형성이 학교와 어른들의 무관심 속에 오래 방치된다면 그것은 결국 아이들 영혼의 황폐화로 이어져 개인적 삶의 불행은 물론이려니와 사회적 불안과 혼란까지 초래할 것이 틀림없다. 잘못된 교육, 얼빠진 교육으로 아이들의 영혼이 썩고 병들어가고 있는데. 세계 최고의 교육열을 자랑하면 무엇 할 것인가. 아이들의 장래와 교육의 미래를 걱정하는 모든 이의 바람과 지혜를 모아 이제는 다시 돌아가야 한다. 혼이 있는 교육, 철학이 있는 교육으로. 가르칠 것을 마땅히 가르치고 배울 것을 제대로 배우는, 지식과 인간성을 조화롭게 발전시키는 교육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그것만이 우리 모두가 행복하게 사는 길이다. ***
전북 김제 금산사 자락에 위치한 봉남중학교. 12명의 교직원과 43명의 학생이 생활하는 이 작은 농촌학교에서 매달 15일을 전후 해 잔치가 열린다. 그 달에 생일이 속해있는 교직원과 학생을 위한 생일잔치다. 학교 구성원 모두가 모인 교실에는 커다란 ‘생일 축하’ 플래카드가 걸리고, 시루떡으로 만들어진 케이크도 준비된다. 생일을 맞은 주인공이 소개되고, 간단한 소감을 발표하면 교장 선생님의 색소폰 반주에 맞춰 생일축하 노래가 울려 퍼진다. 주인공에게는 5000원짜리 문화상품권이 선물로 주어지고, 학생들은 빵과 케이크를 나눠먹는다. 지난 16일에는 1학년 온선경, 3학년 김윤수 학생이 생일상을 받았다. 채 20분도 걸리지 않는 짧은 행사이지만 감동은 진하다. 봉남중에서 생일잔치가 열리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3월 김홍식 교장이 부임하면서부터. 김 교장은 처음에는 교직원의 생일상을 차려줬다. 집에서 준비한 간단한 음식을 교장실에 차려놓고 교직원들이 모여 인사를 건넨 것이다. 교장의 세심한 배려에 감동한 교사들은 학생들 생일상도 차려주자는데 의견을 모았다. 학생들의 부모 대부분이 농사를 짓고 있어, 아침 일찍 논밭으로 나가면 학생들은 아침 챙겨먹고 등교하기가 벅찬 것이 농촌 현실이기 때문이다. “저희 학교는 선생님과 학생들이 모두 한 가족이라는 마음으로 생활합니다. 시작은 교장이 했지만 선생님들도 자식 같은 제자들 생일상 차려주는 것을 너무 기뻐합니다. 학부모들도 학교에서 생일상 받는 것을 무척 고맙게 생각합니다. 서로서로 격려해주고 사랑하며 생활하니까 소위 말하는 ‘왕따’나 학교폭력이란 것은 아예 없습니다.” 김 교장은 “주는 것은 작은데, 행복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에 오히려 감사한다”고 말했다. 김 교장뿐 아니라 선생님들의 제자사랑도 남다르다. 이름을 밝히지 말라며 매년 100만원의 장학금을 내놓는가 하면, 수술을 앞둔 제자의 수술비용을 대준 선생님도 있다. 봉남중은 생일잔치 외에 일 년에 두 번씩 인근의 노인들까지 초대해 삼겹살 파티를 갖는다. 집에서 가족들과 오붓한 시간을 갖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은 것을 안타깝게 여긴 학교 측의 배려다. 교사와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고기를 굽고, 서로먹여주는 모습은 교사와 학생이 아닌 부모와 자식을 보는 것 같다. 봉남중에서는 이달 초 또 하나의 특별한 행사를 가졌다. 교장은 교사들의 발을 씻어주고, 교사들은 학생들의 발을 씻어주는 ‘발 씻김’을 한 것이다. “교장은 학생들을 위해 애쓰는 교사를 잘 섬기겠다는 마음을, 교사들은 제자들에게 사랑과 헌신을 실천하겠다는 다짐을 하는 자리였다”고 김 교장은 설명했다. “최고의 매는 칭찬입니다. 칭찬폭격을 받은 아이들은 행복과 자신감을 꽃 피울 것입니다.” 봉남중의 ‘스승존경·제자사랑’이 아름답다.
일반적으로 교사들은 가르치는 방법이나 요령 등에서 가르치는 일의 의미를 찾으려고 열심히 가르치는 행동에 치중한다. 그러나 이상하게 열심히 가르치는 행동을 반복하여도 학생들에게 학습이 일어나지 않은 경우도 빈번하다. 왜 그럴까? 진정한 ‘가르침’이 되기 위해서는 교사의 인간적 자질이 가르치는 일의 바탕이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교사와 학생과의 올바른 관계가 우선한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가르치는 방법이나 요령, 즉 교수법과 같은 기술적인 측면이 아닌, 교사의 인간적인 면모에서 학습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가르치는 행위는 한마디로 ‘창조적 행위’이다. 즉 가르치는 과정에서 필요한 자질을 통해 교사는 가르침이라는 ‘예술’을 창조해내는 존재이다. 또한, 누군가를 가르치기 위해서는 가르치는 방법과 자료에도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정성이 바탕에 있어야 자료가 보이고 시간 투입이 가능하다. 그러기에 우수한 교사는 선천적이라기 보다는 후천적으로 노력하는 형이 성공적인 교사 생활을 할 수가 있다. 교육의 행위란 어느 무엇보다도 남을 위하고 제자를 위한다기 보다는 자기 자신을 위한 행위로 연결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사에게 필요한 자질인 학습, 권위, 도덕, 질서, 상상, 연민, 인내, 인격, 즐거움을 소유하여야 한다. 교사는 새로운 지식을 쌓기 위해 늘 학습을 해야 하며, 수업 효과를 올리기 위해 권위도 세워야 한다. 또한 도덕적이고, 외적·내적 질서를 바로 잡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상상, 연민, 인내를 통해 학생의 입장에서 학생을 이해하고, 또한 자신의 한계도 인정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교사는 학생을 가르치는 데 필요한 인격을 꾸준히 다듬고, 수업을 즐거운 놀이로, 교실을 즐거운 배움의 장소로 만들어야 한다. 가르치는 과정에서는 자신이 소유한 인간적이고 정신적인 자질을 총체적으로 적용해야 한다. 이러한 가르침은 지식뿐 아니라 인간의 바람직한 자질을 학생에게 전달하며, 이를 통해 교사는 학생을 변화시키고, 학생의 삶을 바꾸게 되는 것이다.
오늘은 무거운 월요일입니다. 가장 부담이 되는월요일입니다. 월요일 아침 되면 한 짐을 안고 출근합니다. 해야 할 일도 많습니다. 문제출제도 해야 합니다. 교재연구도 해야 합니다. 수업도 해야 합니다. 학생지도도 해야 합니다. 청소지도도 해야 합니다. 어느 것 하나 만만한 것 없습니다. 거기에다 날씨까지 흐리니 더욱 무겁습니다. 그러해도 우리의 마음을 가볍게 했으면 하는 아침입니다. 그래야 한 주를 잘 견뎌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매일 출근을 하면서 학교 주변을 둘러봅니다. 학교가 깨끗한지 어떠한지, 주민들이 쓰레기 봉지를 버렸는지 아니한지, 유리창이 파손이 되었는지 그러하지 않은지를 눈여겨봅니다. 우리학교는 당직하시는 보이지 않는 손길로 인해 학교 안팎이 매우 깨끗함을 보게 되어 늘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그런데 아쉬운 점도 눈에 띕니다. 교문 밖에는 쓰레기 봉지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학교 안에 쓰레기 봉지를 모으는 창고를 만들어 놓았는데 거기에는 주민들이 버린 쓰레기 봉지가 몇 개 보였습니다. 아직도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싶어 매우 안타깝기만 합니다. 오늘 아침은 우리 모두가 학교를 보호하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학교를 파괴하는 주민들이 있다면 그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학교에 피해를 주는 주민들이 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학교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피해만 주는 분들은 하루 속히 자신을 되돌아보았으면 합니다. 자신의 양심에 손을 얹고 반성했으면 합니다. 쓰레기 규격 봉지를 돈으로 사기가 아까운지 아무 봉지에 넣어 그것도 학교 창고 앞에 놓아두면 어떻게 됩니까? 어떻게 하라고 그럽니까? 화가 나기도 하지만 인내심을 갖고 계속 참아보려 합니다. 그분들이 스스로 뉘우칠 때까지 말입니다. 우리학교 봉지로 넣어 버리도록 할 것입니다. 또 며칠 전 불량 학생인지 불량 청소년들인지 모르지만 밤에 담을 넘어강당에몰래 들어와서 강당에 있는 소화기를 바닥에 다 뿌려놓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너무 기가 찼습니다. 왜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생기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고 두 번이나 그렇게 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어찌합니까? 참고 또 참아 치우고 또 치우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우리 학생들이 그렇게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교육을 계속 시킬 수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우리 모두는 학교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주민들도 그러해야 합니다. 학생들도 그러해야 합니다. 선생님도 그러해야 합니다. 교직원들도 그러해야 합니다. 학교를 애용하는 모든 분들이 그러해야 합니다. 학교를 내 집처럼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어찌 학교 안에 집에 있는 쓰레기를 버릴 수 있습니까? 학교 안에 꽃을 심어주어 향기를 선사하지는 못할망정 쓰레기를 갖다버려 악취 나는 냄새를 풍겨서야 되겠습니까? 학교에 청소는 못해 줄망정 학교에 있는 기물을 파손해서야 되겠습니까? 불만이 있으면 말을 해야 합니다. 잘못이 있어도 말을 해야 합니다. 돌아서서 불평해서도 안 됩니다. 돌아서서 잘못된 행동을 해서도 안 됩니다. 언제든지 학교에 와서 이야기 하세요. 언제든지 우리 선생님들에게 말씀하세요. 언제든지 우리 교직원들에게 말씀하세요. 귀담아 듣겠습니다. 겸허히 받아들이겠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비굴한 행동을 해서는 안 됩니다. 나쁜 행동은 자제해야 합니다. 옳지 않은 행동은 금해야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많은 학생들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은 삼가야 합니다. 남이 보지 않는다고 마구 행동을 해서도 안 됩니다. 질서가 파괴되면 안 됩니다. 교통질서가 파괴되면 어떻게 됩니까? 사망 내지 대형사고가 늘 도사리게 되지 않습니까? 학교질서가 파괴되면 역시 학교도 망하고 학생들도 망하고 관계되는 모든 분이 망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학교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합니다. 주민들도, 학생들도, 선생님들도, 교직원들도 그러했으면 합니다. 그리하여 학생들이 꿈을 키우는 행복한 학교가 되게 했으면 합니다. 우리 학생들이 10대의 젊음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행복한 보금자리가 되게 했으면 합니다. 우리 학생들이 10대의 열정을 가지고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배움터가 되게 했으면 합니다.
4월 21일(토). 충남교수학습지원센터는 '에듀스충남'(www.edus.or.kr)의 '온라인 논술·면접 준비 OK'를 발족시켰다. 충남교수학습지원센터는 2005년 5월부터 EBS와 경북도교육청에 이어 세 번째로 충남 교육포털사이트인 '에듀스충남'(www.edus.or.kr)의 '온라인 논술·면접 준비 OK' 시스템을 활용해 초·중·고 학생들에게 무료로 논술 첨삭지도를 실시하고 있다. 충청남도교육과학연구원은 이 시스템을 통해 논술과 심층면접 관련 입시 정보가 부족한 농어촌의 수험생들에게 양질의 논술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고 각종 논술과 심층 면접에 관한 자료를 보급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이번 논술 첨삭 지도와 심층 면접에 참여할 마흔 한 분의 선생님들은 모두 현직에 계신 선생님들로 논술에 관한 한 내로라 하는 논술전문가들이다. 이곳에서 첨삭지도를 받으려는 학생은 우선 '에듀스충남(www.edus.or.kr)'에 접속해서 회원 가입을 한 다음, 게시판에 직접 글을 작성하여 온라인 또는 우편으로 제출하면 된다. 이러한 무료 논술 첨삭 및 면접 지도를 통해 도·농간의 지역별 학력격차와 사교육비를 줄이는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중고등학교 학생이 해외에서 조기유학을 할 경우에는 인종 갈등과 가정내 갈등을 겪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초등학생의 경우 외국에서 인종갈등이나 교우갈등은 상대적으로 덜하지만 부모와의 사이가 나빠지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자녀를 조기유학 보내는 가정은 의사.회계사.교수.사업가.대기업임원.고위공무원 등 상류층에 해당되는 경우가 많지만 연간 비용이 최고 5천만원에 이르는 등 부담이 큰 것으로 조사됐다. 아울러 아이를 돌보면서 현지에 체류하는 어머니의 경우 외국에서 언어소통이 안돼 우울증에 빠지게 되고 한국에 남아있는 '기러기 아빠'는 돈버는 기계로 전락한 것이 아니냐는 자괴감에도 빠지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기획예산처가 현대리서치연구소를 통해 초.중.고등학교 자녀를 조기유학 보냈던 부모, 보내놓고 있는 부모, 준비중인 부모 등 29명을 대상으로 토론방식의 심층 조사를 실시, 작년말에 홈페이지에 게시한 '조기유학 관련 조사결과 보고서'에서 23일 드러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학부모들은 중고등학생들이 외국에서 조기유학을 하면 인종갈등의 문제를 인식하고 한국출신 학생들끼리 어울리는 경향이 생긴다고 전하고 이렇게 되면 영어실력은 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또 중고생들은 영어실력의 부족으로 과학.사회 등에 대한 이해가 떨어져 학교수업을 받는데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유학초기에는 영어과외를, 유학 중반이후에는 영어.수학.과학 등에 대한 과외를 각각 받는다고 학부모들은 설명했다. 초등학생의 경우 중고등학생에 비해서는 학교 성적이나 교우관계에서의 갈등이 상대적으로 덜하지만 국내에 다시 들어올 것에 대비해 국어.영어.수학 등에 대해 집중적으로 과외를 한다고 학부모들은 밝혔다. 한 학부모는 "유학 초등학생의 80%가 과외를 하는데, 한국과 똑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면서 "외국에 와서도 한국 아이들끼리 경쟁하는 문제가 있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보고서는 조기유학 학생들의 학부모들은 연간 6천만원이상의 소득을 갖고 있는 등 경제적으로 풍족하며 1억원이상의 고액 소득자도 많다고 밝혔다. 직업은 의사.회계사.교수.고위공무원.대기업임원.사업가 등이며 주로 서울과 경기도의 압구정동.잠원동.양재동.삼성동.분당 등에 거주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또 조사대상 학부모 전체가 대졸이상 학력을 갖고 있으며 석박사 학위 소지자는 전체의 30%에 이르렀다고 전했다. 아울러 학부모가 외국에 근무한 경험을 갖고 있거나 외국관련 업무에 종사했던 사례가 많고 해외에 거주하는 친척이나 친구를 둔 경우도 많아 해마다 가족여행.출장 등으로 외국과의 접촉이 빈번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자녀를 조기유학 보낸 학부모들은 거의 저축을 못하고 재산 증식이 불가능해지는 등 비용부담이 만만치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경우 학비가 사립학교 2천600만∼3천500만원, 공립학교 1천500만∼2천만원, 생활비 1천500만원이상(1인기준) 등 3천500만∼5천만원이라고 학부모들은 전했다. 영국은 학비 2천만원, 생활비 2천500만원이상 등 모두 4천500만∼5천만원이 필요하고 캐나다는 4천만원, 호주는 2천500만원 가량이다. 자녀의 조기유학은 가정에도 많은 문제를 일으키는 것으로 파악됐다. 기러기 아빠는 의식주에 문제가 생길 뿐아니라 자신이 돈버는 기계라는 생각이 들면서 적지 않은 자괴감을 느끼게 된다고 학부모들은 전했다. 아울러 해외에서 생활하면서 상대적으로 영어실력이 떨어지는 어머니는 자녀들에게 더욱 의존하게 되고 자식들과 갈등이 생기는 경우가 있으며 심각한 우울증에 빠지는 사례도 있다고 학부모들은 말했다.
충북도교육청은 작년에 이어 두번째로 6월 중에 90여명의 영양교사 선발을 위한 제한경쟁 시험을 실시한다고 23일 밝혔다. 도교육청은 이를 위해 5월 30일부터 6월 1일까지 3일 동안 원서를 교부.접수하고 6월 24일 1차 필기시험을 거쳐 최종합격자는 7월 20일에 발표한다. 응시 자격은 도내 각급 학교와 교육행정기관의 식품위생직으로 3년 이상 근무 중인 자로 교육인적자원부장관이 검정.수여한 영양교사 자격증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다. 선발 인원은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으나 90여명선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도교육청은 선발에 따른 구체적인 사항은 다음달에 공고한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양성평등교육 활성화 계획'을 산하 교육청에 시달하면서 각급 학교별로 이행 방침을 독자적으로 세워 운영하도록 주문했다. 전혀 새로울 것은 없다. 이미 수년전부터 각급학교에서는 양성평등교육과 관련한 계획을 세워서 이를 시행해 왔다. 담당자도 지정되어 있다. 남,여공학교의 경우 특별히 양성평등에 어긋나는 교육을 실시한 경험이 거의 없다. 도리어 서울시내의 거의 모든 중학교들이 남,여공학으로 개편되면서 남학생들이 손해를 보는 경우가 종종 나타나고 있다. 일단 학급회장만 보더라도 남학생의 독주시대는 이미 끝난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학교급에서는 어떤지 알수 없지만 중학교의 경우는 남,여학생이 고르게 분포되어 있다. 도리어 여학생이 더 많은 경우를 흔히 찾아볼 수있다. 그런데 이번의 양성평등교육 활성화계획을 보면 모든 촛점이 여학생에게 맞추어진 느낌이다. "`남성은 의사 여성은 간호사'라는 등의 고정관념을 심어주는 교육 관행과 여학생은 치마만 입어야 한다는 등의 규정이 일선 교육 현장에서 점차 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는 보도내용이 있었다.언론에서 그렇게 표현을 한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만일 서울시교육청의 보도자료에 이런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면 그 부분은 시정되어야 할 부분이다.이것이야말로 양성평등을 해치는 인식이기 때문이다. 남성이 의사, 여성이 간호사라는 고정관념은 교육을 통해서 해소가 가능하고 또한 현실적으로 비율이 엇비슷해진다면 자연스럽게 사라질 부분이다. 그런데 여학생은 치마만 입어야 한다는 등의 규정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이미 오래전에 그런 규정을 폐지하도록했었다. 상당수 학교가 여학생에게 치마만 입도록 강요하지 않고 있다. 자율에 맡기고 있다.그런데도 학부모들의 인식이나 사회적 통념에서 여학생들이 치마를 입는 것이다. 바지를 입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전임교는 물론 현 근무교도 여학생에게 치마를 입도록 하는 규정은 사라진지 오래다. 서울시내중학교들이짧은시간에 남,여공학으로 개편되면서 성비 불균형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 이유는 사립학교들은 대부분 그대로 남학교나 여학교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위적으로 남,여공학을 추진한 결과 남학생대 여학생의 비율이 엇비슷한 경우보다는 어느 한쪽이 많은 경우가 많다. 우리학교가 속한 관내에는 여학생의 숫자가 많은 학교들이 더 많다. 우리학교의 경우도 각 학년의 여학생대 남학생의 비율이 2:1에 육박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양성평등교육활성화 계획을 여학생에게 촛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은 유감스런일이 아닐 수 없다. 도리어 남학생들이 소외감을 나타내고 있다. 학급당 인원이 39명인데, 이중 남학생은 대략 12-15명선이다. 수많은 여학생들 사이에서 남학생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의사는 남자, 간호사는 여자의 차원이 아니다.수행평가등에서도상위에 오르는 남학생은 10위권에 1-2명 정도이다. 정규고사 성적도 마찬가지이다. 수행평가의 영향이 크기도 하겠지만 남학생들의 숫자가 적다보니 그들만이 뭉치는 이상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인위적인 남,여공학 개편이 가져온 문제점이다. 양성평등교육을 제대로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어느 한쪽만을 위한 양성평등교육으로 흘러가서는 곤란하다. 양쪽모두 공평하게 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번의 서울시교육청계획도 양쪽을 공평하게 교육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 앞으로 어떻게 정상적인 교육이 이루어질지 관심이 간다. 확실한 것은 이로인해 도리어 소외되는 성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모두에게 공감될 수 있는 양성평등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한교닷컴의 e-리포터로 활동하면서 그동안 여러가지 기사를 올렸다. 때로는 관심있는 내용도 있었지만 어떤 때는 관심밖의 기사로 끝난 경우도 있었다. 글을 올리면서 좀더 신중하게 검토하고 올려야 한다는 생각을 여러번 했다. 이로인해 단순히 내 생각인지, 아니면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것인지 깊은 검토후에 글을 올리는 습관이 생겼다. 신중해 졌다는 표현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한국교총과 관련된 글을 가끔은 올렸지만 최근에는 언제 올렸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면 그만큼 한국교총에서 하는 일들이 문제없이 잘 진행되었다고 보겠다. 아니면 교총에 관심이 부족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든 서론이 좀 길었는데 오늘은 우리 교총의 이야기를 좀 하고자 한다. 금년 7월에 교총회장선거가 있다는 것을 교총회원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난번 회장선거때 막대한 비용을 들여서 전자투표를 실시했던 것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좀더 관심이 있는 회원이면 지난번 선거때 전산망의 오류로 인해 재투표를 실시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순식간에 당선자가 결정되는 전자투표방식이 당시에는 대단한 평가를 받았었다. 그러나 이면에는 많은 예산이 투입되어 예산낭비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래서 이번에 도입한 것이 우편투표이다. 이미 우편투표는 각 시,도교총에서 주로 이용하는 회장선거방법이다. 분회장투표로 교총회장을 선출하던 때에 이용되었던 방법이다. 우편투표를 하면 예산도 전자투표에 비해 절반정도만 필요하다고 한다. 여러가지로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우편투표는 딱 한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대리투표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각급학교에 배달되는 우편투표용지에 기표하여 다시 반송하도록 되어있는데, 그 과정이 과연 투명하게 진행될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때문이다. 대리투표를 예방하기 위해 투표자의 신분증을 복사해서 넣도록 한다고는 하지만 그 방식역시 대리투표를 막을 수 있는 근본적인 방법은 아니다. 지난번의 전자투표에서도 대리투표가 많았다는 후문이 있었다. 지난번의 전자투표방식은 일단 투표신청을 인터넷을 통해하고 인증번호를 SMS문자메시지로 받아서 입력해야 투표가 되도록 했었다. 이 과정에서 인터넷에 익숙하지 않은 회원들은 투표를 포기하거나 젊은 회원들에게 대리투표를 의로했다는 것이다. 어떤 방법을 써도 대리투표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전 회원이 모두 한군데에 모여서 동시에 투표를 하기전에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이다. 그렇다고 대리투표를 무조건 방치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현실적으로 방법이 없지만 딱 한가지 방법은 있다. 바로 회원들의 인식이다. 철저하게 대리투표를 의뢰하지도 말고 의뢰받지도 않으면 된다. 그렇게 되면 투표율은 다소 떨어질 수 있을지 몰라도 투명한 투표는 가능할 것이다. 결국 공정한 투표의 키는 회원들이 쥐고 있는 것이다. 올해가 한국교총창립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60주년되는해에 교총회장선거가 실시된다는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다. 어떤 방식을 택해도 투명한 투표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올해의 교총회장 선거를 통해 한단계성장하는 한국교총이 되도록 회원모두 노력했으면 한다.
세상은 지금 버지니아 공과 대학 조승희씨의 총기 사건으로 온통 시끄럽다. 일선 학교에서는 학교폭력예방지도에 열과 성을 다하고 있는 시점에서서 일어난 사건이라 각 학교 및 교육청에서는 초미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학생 지도가 학교 자체의 규정으로 통제되지 못하고 교내 경찰을 주둔하게 하는 위탁된 학생 지도가 병행되고 있는 시점이요, 통합 교육이 더불어 시행되고 있는 지라 학내에서 정신지체아에 대한 각별한 배려와 결손 가정에 대한 배려가 상담 교사 뿐만아니라 담임 중심 생활지도, 나아가서는 교과 담임 교사들의 학생 지도에 관계 부서는 더욱 무게를 두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학생 지도는, “참고, 생각하고, 그런 후 행하는 것”이어야 교육학자 짤즈맨은 참아라, 생각하라 그런 후 행하라고 하였다. 통통 튀는 학생을 지도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 요즘 학생이라고 하는 말을 자주 쓰곤 한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통통 튀기에 이들의 내면을 잘 읽어내면 수업을 아주 신나게 할 수 있는 이점도 있다. 남아도는 대학에, 넘치는 교사에, 개성적으로 공부하기를 바라는 학생에. 참으로 삼박자를 맞추어 가기에는 너무나 많은 교사를, 너무나 많은 교실이 필요하다. 그것이 지금의 교육계가 안고 있는 문제점이다. 수요자 중심의 교육을 부르짖고 있으면서 수요자에게 만족스럽게 베풀어 주지 못하는 것이 한국 교육의 현실적인 문제가 학생과 교사, 학부모와 학교 간에 충돌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 중의 하나이다. 교사는 학생 개개인의 전문 상담자가 될 수 있는 마인드를 구축하는 데 온갖 성을 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기성세대가 이들의 마음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그들의 내면에 나타나는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켜 주지 못하는 것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을 읽어 낼 시간을 그들에게서 얻어 오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교사로서의 권위를 지켜가기에 급급하여 학생 이 다가와 질문을 하는 것에 래포를 형성하여 그들을 이해하려고 할 때 그들은 마음의 문을 열기 마련이다. 통합교육으로 정신지체아가 정상아와 같은 반에서 공부를 할 때면 때로는 정신 지체아 때문에 수업이 안 될 때도 있다. 그렇다고 이들을 말로 꾸짖어 지도시킬 수 있는 상황도 못 된다. 그러기에 교사로서 그들을 같은 반에서 공부시키면 안 된다고 불평으로 일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교사는 정신지체아에 대한 담임교사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각오를 가져야 한다. 특수반 담임이 따로 있기에 그 선생님께 이야기하면 되겠지 하는 사이에 어느 새 위험은 미국 버지니아 공과 대학 조승희씨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는가? 정신 지체아에 대한 따뜻한 배려와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공존 사회의 일원이라고 생각하는 마음으로 교사 자신은 그들을 품안으로 끌어들이는 수업 기술과 생활 지도를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것도 교사로서 지켜가야 하는 마음 자세가 아닌가 싶다. 조승희씨의 총기 난사 사건이 단순이 어느 민족에 대한 보복으로 일어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가정사의 불행으로 일어난 분풀이도 아닌 것이라면, 그것은 사회가 주는 냉대에서 또는 자신에 대한 비하에서 나타나는 열등의식으로 해석해 낼 수도 있는 것이다. 우수아와 열등아에 대한 관심은 비례되어야 교사로서 학생을 대하는 일반적인 편견이라면 공부 잘하면 행동도 바르게 보이고 또 그렇게 나타난다고 생각하기 싶고, 열등아에 대해서는 공부도 못하면서 자잘한 사건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싶다. 그러나 이것은 참으로 크나큰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 우수학생이기에 가정사나 주변의 자잘한 것을 겉으로 잘 표현하지 않기에 교사는 이 학생에 대해서 크게 관심을 갖지 않게 된다. 이럴 때 이 학생에게 가정사나 친구관계의 고민이 있는 데도 담임이 자신에게 말 한마디 없다면 자신에게 관심도 갖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싶고 이것으로 인해 사건은 생각보다 강하게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다. 반면에 열등아는 지나치게 자신에게 관심을 갖는 교사는 자신을 미워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기 싶다. 그러나 수평을 이루는 상담과 지도를 하는 데는 여간 어려움이 있는 것이 아니다. 노하우를 터득해 가는 교사라면 이런 상황에 슬기롭게 대처할 것이다.
세계화가 가속화 되면서 지식, 정보, 사람의 흐름이 놀라울 정도로 빨라지고 있다. 미국을 필두로 선진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지식정보사회를 구축하기 위해 지식노동력의 확보를 체계적으로 추진하였다. 그 하나로 노동력의 질적 분포와 지식의 수요를 계산하여 선별적 이민 정책을 추진하여 왔다. 한 마디로 ‘근육의 유입’은 억제하는 대신 ‘두뇌의 유입’은 활발하게 추진한 것이다. 이제 선진국들이 요구하는 것은 값싼 노동력이 아니라 잘 훈련된 아이디어가 있는 두뇌를 원하고 있다. 이처럼‘두뇌’라고 함은 필요한 부문에서 필요한 수준의 지적 능력을 의미할 정도로 선진국들은 지식 노동시장의 요구에 유연하고도 체계적으로 대처해 온 것이다. 인재의 유치와 유지전략에서 가장 앞선 나라는 미국이다. 미국은 세계의 인재를 흡수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인재의 흡수에 가장 앞선 부문은 기업이며, 교육기관과 연구기관이 이에 대한 충분한 기반을 제공하고 있다. 미국의 이민제도는 미국의 지식력을 높이는 데 기여할 만한 인력의 유입에 대하여 매우 개방적이고 우호적이다. 유럽을 포함한 여러 나라가 인재의 유치와 유지전략을 채택하게 된 것도 미국의 압도적 선점효과로 생긴 공백 때문일 것이다. 유럽은 오랫동안 누려왔던 지식강국으로서의 자존심을 버리고, 본격적인 인재유치 전쟁에 뛰어들었다. 먼저 세계의 인재들이 유럽의 교육기관과 연구기관에 관심을 갖도록 하는 것이 중요했다. 따라서 브뤼셀에는 유럽공동연구소를 세워 유럽의 연구개발센터를 만들겠다는 계획이 추진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떠오르는 경제권에 공동 교육 및 연구단지를 조성하는 구상도 현실화되고 있다. 이러한 세계적인 흐름에 뒤떨어지지 않기 위하여 도쿄대학을 비롯한 일본 대학들도 새로운 아이디어로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해외 사무소를 설치하여 외국의 인재들을 모으기에 노력하고 있으며, 각종 장학금을 지급하여 학생들을 유인하고 있다. 최근에는 기업 쪽에 인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하여 대학에서 3년간에 학부 과정을 수료하고 1년 동안에 석사과정을 수료하게 한 다음 박사과정까지 입학시켜 인재를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례들을 보면서 한국의 우수한 대학들이 현재 어떤 노력들을 하여야 할 것인가를 돌아 볼 시점이다.
'저 까치집을 옮기면 까치도 이사할까?' '까치도 집 옮기는 것을 좋아할까?' '플라타너스도 까치집 옮기는 것을 좋아할까?' 운동 삼아 아파트 인근의 일월(日月)저수지 공원을 자주 찾는다. 공원 근처 플라타너스 다섯 그루에 까치집이 5개가 있다. 한 그루에 까치집 하나씩 있으면 보기에도 좋으련만 그렇지 못하다. 한 그루에만 무려 4개, 또 한 그루에 1개, 나머지 세 그루에는 까치집이 없다. 까치는 왜 한 쪽 나무에만 치우쳐 집을 지었을까? 그 나무가 집짓기, 살림살이, 새끼치기 등 여러 조건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시킨 것도 아니다. 생존과 생육 조건이 맞는 나무를 찾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그게 그들의 본성이다. 나무 입장이 되어본다. 까치집이 많은 나무는 버거울까? 까치집이 없는 나무는 억울하거나 소외감이 들지 않을까? 버겁지도 않고 억울하지도 않다. 운명 또는 숙명으로 받아들이며 그대로 순응하지 않을까? 4개의 까치집이 있는 나무는 까치의 집짓기와 생육 조건에 맞으니까 그렇게 된 것이다. 플라타너스라고 다 똑같은 것은 아니다. 수령을 비롯해 나무 모양, 크기, 굵기, 높이, 전망, 옆 나무와의 간격, 나뭇가지 상태, 영양 상태, 병충해 상태, 뿌리를 박고 있는 토양, 뿌리의 활동력, 광합성 작용, 성장 속도 등 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런데 인간은 이 플라타너스가 다 똑같은 줄 안다. 착각에 빠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다섯 그루의 나무에 까치집을 하나씩 옮겨 놓으려 한다. 4개의 까치집이 있는 나무는 너무 많다고 하여 3개를 빼앗아 없는 나무에 주려 한다. 그게 ‘균형’이라고 한다. ‘국가균형발전’과 ‘복지’라는 미명 아래 버젓이 이루어진다. 까치가 좋아하는지, 나무에게 진정 도움이 되는지 생각하지 않는다.나무 하나에 하나의 까치집을 올려놓는 것을‘복지’라고 생각하고 있다. 오로지 인간 중심이다. 까치와 나무 입장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 인간이 보기에 다섯 나무에 까치집이 각각 하나씩인 것이 그럴 듯하다. 평등, 불균형 해소, 골고루 잘 살기, 복지라는 용어를 들이대니 얼핏 맞는 것 같다. 그러나 그게 아니다. 분명 잘못된 것이다. 참여정부의 ‘국가균형발전’ ‘복지’라는 개념과 잘못된 출발을 지적하는 것이다. 각 지역마다 여건이 다르다. 그 여건에 맞게 발전하는 것이 순리다. 한 쪽의 자연적인발전을 인위적으로 막고 다른 한 쪽을 억지로 끌어올리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잘 사는 사람을 미워하고 가진 자의 것을 빼앗아못 사는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것은 ‘다함께 못살기’에 다름 아니다. 못 사는 사람에게 국가에서 돈 몇 푼 보태어 준다고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다. 당장 입에 풀칠하는데는 요긴하지만 근로 의욕을 꺾고 자립을 더욱 어렵게 하는 나쁜 정책인것이다. 임시땜방 정책이지 그들을 진정으로 위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는 자활능력이 중요한 것이다. 낙후 지역과 못 사는 사람을 외면하라는 것이 아니다. 낙후지역은 그 지역 나름대로 여건을 살리면 되는 것이다. 더욱 발전해야 할 지역을 ‘균형 발전’이라는 억지 논리로 성장을 가로막아서는 아니되는 것이다. 발전할 곳은 더욱 발전시키고, 잘 사는 사람은 더욱 잘 살게 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공부 못 하는 학생은 못 하는대로, 잘 하는 학생은 잘 하는대로더욱 잘 할 수 있게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골고루모두 공부 잘하게 하기, 이론적으로 그것보다 좋은 것은 없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달리기 잘 하는 학생에게, 못 하는 학생이 쫒아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잠시 멈추라고 해서는 아니되는 것이다. 수월성 교육을 강조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글로벌 지도자의 마인드인 것이다.
오늘은넷째 일요일입니다. 오늘은 선생님들께서 편안하게 쉴 수 있어 좋은 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선생님들에게 오늘과 같이 쉬는 날이 없다면 교육의 능률은 엄청나게 떨어지고 교육의 질도 떨어지리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한 주간 학생들을 위해 진액을 다 쏟아 부었는데 회복과 충전을 위해 쉼이 꼭 필요한 것 아닙니까? 하지만 이런 쉴 수 있는 날이 오히려 짐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가정의 일로, 직장의 일로, 기타 다른 일로 쉬지 못하고 계속 시간을 빼앗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이런 짐은 오히려 가벼울 수 있으리라 봅니다. 남에게 유익을 주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남에게 기쁨을 주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남을 축하하며 축복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학교 한 여선생님께서 결혼을 하게 되니 가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축하를 해줘야 할 것 아닙니까? 축복을 해줘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러니 시간을 쪼개서라도 갈 것입니다. 우리학교에는 젊은 처녀 선생님들이 너무 많은데 이분들이 하루 속히 좋은 사람 만나 좋은 가정을 이뤄 행복한 삶을 꾸려나갔으면 합니다. 오늘 결혼하시는 선생님께서도 좋은 사람 만나 새 출발을 하는데 좋은 출발이 되었으면 합니다. 힘찬 발걸음이 되었으면 합니다. 좋은 선생님이기에 좋은 아내, 좋은 며느리가 될 것입니다. 부모님이 원하는 가정을 이루어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부모님들에게 보여주었으면 합니다. 우리 김 선생님의 가정이 돋는 햇볕처럼 점점 빛나서 원만한 광명에 이르렀으면 합니다. 교총이 올해 창립 60년을 맞게 되는데 그 동안 ‘좋은 교육’ ‘좋은 선생님’ 험로(險路)를 잘 개척해 왔지 않습니까? 계속해서 '좋은 교육' '좋은 선생님' 되게 하는 일을 잘 감당하리라 봅니다.‘좋은 교육’ ‘좋은 선생님’이 되고자 하는 것은 모든 선생님들의 희망이라 생각됩니다. ‘좋은 선생님’이 ‘좋은 교육’을 시키면 ‘좋은 학생’이 되고 ‘좋은 학교’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해 봅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은 어떻게 하면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좋은 선생님'이 갖추어야 할 요건이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여섯 가지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첫째, 좋은 선생님이란 무엇보다 자신의 시간을 학생들에게 사용하는 것을 가장 귀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품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 중에 내 개인의 일에, 내 가정의 일에, 내 자녀의 일에 최우선을 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학교에 와서 학생들에게 쏟을 시간마저 빼앗기게 될 것 아닙니까? 언제나 시간이 없다고 할 것 아닙니까? 다른 선생님을 도울 시간은 더욱 없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다음은 ‘좋은 선생님’이란 언제나 다른 선생님의 필요를 돌아보는 선생님입니다. 선생님 중에는 다른 선생님의 도움이 꼭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컴퓨터가 잘 되지 않는 선생님은 컴퓨터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미적 감각이 떨어져 환경미화가 잘 되지 않는 선생님은 환경미화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일거리가 갑자기 많이 쏟아져 혼자서 하기가 버거우면 조금 시간적 여유가 있는 선생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학생지도 하기가 버거우면 학생지도에 능력이 탁월한 선생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언제나 선생님의 필요를 채워주는 선생님이 좋은 선생님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젖습니다. 좋은 선생님이란 자신의 가지고 있는 것으로 최선을 다하는 선생님입니다. 선생님들 중에는 늘 자신을 과소평가합니다. 학교를 세워나가는데 자신은 늘 예외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은 늘 제외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학교를 위해 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능력 있고 관심 있고 열성 있는 몇 분만 열심히 하면 학교는 저절로 잘 돌아가는 것 아닌가 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선생님은 좋은 선생님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학교는 몇 사람에 의해서 움직여지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 모두의 힘으로 움직여지는 것입니다. 모든 교직원들의 힘으로 움직여지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합니다. 그래야 학교가 제대로 돌아갑니다. 그래야 학교다운 학교가 됩니다. 그래야 좋은 학교가 됩니다. 또 한 가지는 ‘좋은 선생님’이란 모든 일에 똑같이 힘을 쓰는 선생님입니다. 어떤 선생님은 다른 일에는 관심이 없고 수업만 하는데 힘을 쏟습니다. 또 어떤 선생님은 수업은 소홀히 하면서 업무에만 관심을 쏟습니다. 또 어떤 선생님은 수업을 하는 일과 업무에는 관심을 갖는데 학생들의 사람됨 교육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이러하면 안 됩니다. 모든 분야에 함께 힘을 써야 할 것입니다. 균형 잃은 교육을 하는 선생님은 좋은 선생님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수업, 업무, 사람됨교육, 청소 등등 모든 일에 고루고루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하찮은 일은 하지 않고 귀찮은 하지 않고 힘든 일은 하지 않고 해서는 좋은 선생님이 될 수가 없습니다. 하찮은 일이든 귀찮은 일이든 힘든 일이든 궂은일이든 무슨 일이든 모든 일에 힘을 써야 될 것입니다. 그 다음은 ‘좋은 선생님’은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끝까지 잘 감당하는 선생님입니다. 이러기 위해서는 성실이 필요합니다. 처음과 끝이 같아야 합니다.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처음에는 열심히 하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손을 놓아버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내가 맡은 구역 청소가 많고 힘들어도 끝까지 책임을 완수해야 합니다. 내가 맡은 청소구역이 바로 나의 얼굴이라는 생각으로 늘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끝으로 ‘좋은 선생님’이란 늘 낮은 자세를 갖는 선생님입니다. 자신이 어떠한 위치에 있든지 남에게 낮추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자신을 자꾸만 높이려고 하면 더 벽에 부딪힙니다. 자신이 자꾸만 잘난 체하면 더 많이 밀립니다. 자신이 최고인양 뽐내면 최하가 됩니다. 서로서로 상대방을 높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다른 선생님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마음을 늘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할 때 ‘좋은 선생님’이란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 자신부터 ‘좋은 선생’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여섯 가지 다 부족함을 느낍니다. 한 걸음씩 진보가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여러 선생님들이 바라고 여러 교직원들이 바라고 여러 학생들이 바라고 여러 학부모님들이 바라는 좋은 선생 되기를 다짐하면서 이 글을 마무리하려 합니다.
교육인적자원부에서는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진로정보센터에 진로 및 직업에 관한 연구를 의뢰하여 오고 있다. 진로정보센터는 1999년부터 현재까지 커리어넷(http://www.careernet.re.kr)을 통하여 약 5만 3천여건의 진로상담을 사이버로 실시하여 오고 있다. 지난 8여년간의 5만 3천여건의 커리어넷 사이버 진로상담은 진로와 관련된 웬만한 고민내용을 포함하고 있어 일선 학교 교사들에게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 판단된다. 이번에 그 동안 상담한 사례를 사이버 진로상담 가이드를 발간하였다. 커리어넷의 사이버 진로상담을 통해 드러나는 여러 가지 진로문제를 크게 정보문의와 조언요청의 2개 영역으로 분류하고, 각 영역을 다시 13개, 17개의 문제유형으로 분류하고 각 유형별로 3-5개의 세부유형별로 구체적인 문제를 제시하여 총 140여개의 문제와 모범답안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정보문의에 관한 것으로 직업에 관한 정보, 교육훈련정보, 자격정보 등이 있다. 먼저 직업정보로는 직업그 자체. 직업에 필요한 능력 및 기술, 준비경로 및 방법, 수입, 직업전망, 채용정보, 기타로 다시 구분할 수 있다. 직업 그 자체는직업명 자체는 알고 있으나 각 직업이 어떤 일을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모르는 경우(예 [ ]는 무슨 일을 하나요?), 가족 및 친구 등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알게 되거나 TV, 인터넷 등 매체를 통해 알게 된 직업이지만 업무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경우(예 드라마에 나오는 [ ]에 대해서 알고 싶어요), 업무에 대한 평가를 요구하는 경우(예[ ]는 위험한 일을 하는 직업인가요?)등 진로문제 유형별 질문을 예시하고 답변을 예시하면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다음으로 교육훈련정보는 입시 및 진학, 학교, 학과 및 계열, 직업교육으로 구분할 수 있다. 자격정보로는 자격증 안내, 자격시험, 국가고시가 포함되어 있다. 둘째, 조언요청 분야이다. 이에도 진로탐색, 진로선택을 위한 갈등, 진로결정에 대한 장애요인 등이 있다. 먼저 진로탐색에는 내적요인에 따른 탐색, 외적요인에 따른 탐색, 검사결과에 따른 탐색, 기타가 포함되어 있다. 진로선택을 위한 갈등에는 진학/취업, 직업선택, 학교, 학과, 계열선택, 진로변경이 포함되어 있다. 진로결정에 대한 장애요인으로 내적장애요인(성적 및 과목흥미, 적성, 능력, 성격, 나이, 신체조건, 자아존중감, 자아 효능감), 외적장애요인(주위의 반대, 의견차이, 경제적인 문제, 경쟁률, 사회인지, 성역할, 전망, 계열불일치)이 포함되어 있다. 사이버 진로상담 가이드라인의 구체적인 활용방안은 다음과 같다. 첫째, 진로문제 유형별로 구체적인 질문과 답변예시 및 가이드라인을 제시함으로써 상담의 숙련도에 따른 답변의 편차를 감소시키고 진로지도 및 진로상담의 접근방식을 체계화하기 위함이다. 둘째, 신규 상담자의 교육자료 및 경험을 갖춘 전문 상담자의 상담 틀을 검토하기 위한 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 셋째, 기존 상담내용을 체계적으로 분석․정리함으로써 진로정보센터의 사이버 진로상담 내용의 질을 향상시키고, 진로지도 및 진로교육의 기초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 이 책자는 교육인적자원부에서 전국의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1부씩 발송하였다. 학교에서 이 책자를 전체 교사들이 활용할 수 있었으면 한다. 초등학교에는 이 책자를 발송하지 못하였는데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진로정보센터로 공문을 보내면 선착순으로 보낼 수 있는 여분이 약간 있다. 167쪽이 되는 이 책자가 학교현장의 진로상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같이 퇴근하는 길이었다. 며칠 째 몸살감기로 고생하고 있는 아내가 뜬금없이 던진 말이 "가까운 곳으로 드라이브나 나가지요" 였다. 좋은 구경거리가 있고 목적지가 정해지면 거리를 불문하고 여행길에 나서는 사람에게는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해도 많이 길어졌고, 지루한 일상을 벗어나는 것이 아내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청주 시민들의 쉼터인 사적 제21호 청주 상당산성은 기온이 낮아 시내보다 열흘쯤 늦게 꽃을 피운다. 시내의 벚나무들이 활짝 꽃을 피웠던 며칠 전에 직원들과 산성에 갔다가 꽃망울만 보고 돌아와 아쉬웠었다. 지금쯤은 산성 입구에 줄지어 서있는 벚나무들이 활짝 꽃을 피웠을 것이라 생각하며 상당산성으로 차를 몰았다. 우암어린이회관이나 한참 공사가 진행 중인 목련공원에서 가까운 상당산성은 초입부터 봄꽃들이 꽃 대궐을 이뤘다. 주차장 입구는 벚꽃이 터널을 이뤄 장관이다. 저녁 시간이지만 산성의 곳곳에는 봄꽃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키가 큰 나무의 까치집에서는 까치 한 마리가 활짝 핀 개나리를 바라보며 ‘까악~ 까악~’ 힘차게 울고, 연인들은 벚꽃을 배경으로 추억남기기에 바쁘다. 공남문 앞 잔디광장에서는 방송국에서 나온 여자 아나운서가 꽃을 배경삼아 열심히 했던 말을 되풀이 한다. 겨울에는 썰렁했던 매월당 김시습 시비 주변도 꽃나무 때문에 아름답다. 상당산성 안에 위치한 한옥마을로 가는 길도 온통 벚꽃이다. 마을 앞에 있는 저수지 둑에서 바라보니 한옥마을과 진동문, 동장대와 산성이 봄꽃들과 어울려 오늘따라 더 아름답다. 상당산성의 석양은 우리에게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까? 청주시내를 바라보며 맞이하는 석양의 아름다움과 황홀함은 상당산성에 올라와본 사람만 안다.
나비효과란 뉴욕에서 나비 한 마리가 날갯짓을 하면 다음 달쯤 서울에서는 태풍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기상학적인 연구에서 비롯된 말로 모든 결과는 처음엔 감지조차 되지 않은 작은 변화에서 비롯된다는 뜻이다. 이처럼 우리 교육계도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 나중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을 목격하곤 한다. 방과후학교의 경우도 그렇다. 학생들의 자율적인 선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방과후학교는 어느 새 대입시에 필요한 과목 중심 수업으로 탈바꿈되어 버렸다. 좋은 취지로 출발하려고 해도 사회적 상황에 적용되지 못하는 것이기에 그 수명을 오래 유지할 수 없는 것이다. 방과후학교 위탁은 학생의 자율권 보장 지금 일선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시행되고 있는 방과후학교는 그 취지가 이미 대학입시를 위한 준비로 영․수․국 교과 중심 학습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어느 학교라고 지칭할 필요도 없다. 현실에 맞게 학교도 그 흐름을 무시할 수 없다. 단위학교 중심의 학교운영이라고 하여도 방과후학교는 교육부의 의도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는 것은 자명한 사실인 것 같다. 단위학교 중심으로 각 학교의 실정에 맞게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방과후학교가 왜 정도를 벗어나고 있는 가에는 여러 각도로 생각의 여지가 있다. 교육청과 학교에서는 사교육비를 줄이기 위한다는 명목이 있지만, 아무리 사교육비만 줄인다고 그것으로 학생들을 억지 춘향 꼴로 교실에서 수업을 진행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방과후학교에 대한 위탁이 서서히 고개를 들게 되는 것도 학교가 학생들의 욕구를 채워주고 있지 못하는 데에 있다.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교사들이 행정 업무 수행에 아직도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데 있다. 진정 한 시간의 수업을 하기 위해서 교사가 교재 연구하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그것은 각 교사에 따라 다를 수 있으나 교재 연구는 얼마나 많이 다양성 있게 하느냐에 따라 교사마다 시간의 투자 분은 달라지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방과후학교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도 억지 춘향 꼴이 다수를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 교사들 또한 찬성하는 쪽보다는 반대하는 쪽에서 말이 많다는 것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지금 각 학교가 처한 방과후학교에 대한 위탁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은 각 학생들의 개별화 교육이 현재 학교의 환경에서 이루어지기에는 각 학교가 처한 현실적인 어려움이 너무 크다는 데 있다. 학생들의 수준도 수준이거니와 교사 자신들의 노하우도 문제가 된다. 시대는 빠르게 변화를 거듭하는 데, 학교는 그 욕구를 충족시켜 주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방과후학교는 현장 교원으로 하기 어려운 과목은 위탁으로 돌려 위탁받은 교사들이 할 수 있는 방안이 고려되었으면 한다. 오히려 이것이 현장 교사와 위탁 교사와의 경쟁이 될 수도 있다고는 하나, 현장 교원의 전문성을 향상시키는 경우의 수도 생겨날 수 있다. 한 번 학생들에게 위탁된 교사가 현장 교사보다 좋다든지 또는 잘 가르친다든지 하는 것은 당연히 나올 것이다. 그렇게 될 경우 교사에 대한 평가절하 또는 평가절상의 부담도 안을 수 있다. 그렇다고 이것이 두려워 교사들의 입장만 두둔할 처지가 지금으로서는 아닌 것 같다. 교육부는 교사의 전문성 향상에 연수 강화를 지금의 방과후학교는 수업의 연장선에서 행하는 일제학습에 지나지 않다. 진정한 개별화교육과 탐구학습은 일선 고등학교에서는 대입체제를 두고서 논의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그러기에 현실에서 만족 방안을 찾아내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고 여기서 수수방관하는 자세로 언제까지 이 체제를 유지해 나갈 수도 없다. 수요자 중심의 학교를 만들고 능력 중심의 개별화 교육이 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위탁으로 인해 나타나는 노하우를 학교 현장 교사들은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가 돼 있어야 한다. 언제까지 나비효과처럼 부풀어 올라야만 바꾸어가는 시늉을 하기보다는 지금부터라도 위탁 교육에 대한 방안을 생각해 보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다. 빈약한 교육부의 재정으로 수요자 교육에 만족도를 채워주지 못하는 현실이라면 위탁으로 나타나는 문제점을 하나하나 보완해 가면서, 교육부는 정책학교를 선정해 교육의 새 정책을 펼쳐 가는 것도 고려할 단계가 아닌가 한다. 그렇지 않고서 후에 나타날 학생들의 목소리와 학부모의 아우성은 또 한번 학교를 도마 위에 올려놓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퀴즈 한 가지. 학교에서 손님이 줄어들어 좋은 곳은? 아마도 보건실과 학생부 아닐까? 찾아오는 학생이 적을수록 그 학교는 안정된 학교이기 때문이다. 학교가 정상궤도에서 제대로 돌아가고 학생들이 건강한 생활을 하면 보건실을 찾는 학생수가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다. 오늘, 보건실을 들르니 담당 선생님의 얼굴 표정이 작년보다 밝아졌다. 학생들의 보건실 이용에 관해 대화를 나누다보니 공감이 가는 이야기를 한다. 우리 학교 학생들의 생활이 작년보다 눈에 띄게 좋아졌다는 것이다. 학생들의 생활태도가 좋아지면 보건실 이용하는 학생이 줄어드는 것이 사실이다. 교감으로서 원인을 분석해 본다.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모든 교직원이 일치단결하여 학생들 열심히 가르치고 학생 생활지도 강화하고 또 낙후된 시설을 개선하는 등 학생 복지에 신경쓰고…. 또 교장 선생님은 조경 등 학교 가꾸기에 앞장서 정서적인 분위기 조성하고. 교직원이 좋은 학교 만들기에 전력투구하는 모습이 학생들에게 투영된 것은 아닐까? 완전한 남녀공학 학교로 출발하면서 '우리 학교의 좋은 전통을 새롭게 창조'하려는 의지가 학생들의 마음에 닿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황인주(50) 보건교사는 이렇게 보고 있다. 첫째 지구 온난화로, 이상 기후로 환절기가 없어지다 보니 감기 환자가 대폭 줄어들었다. 둘째, 고경력 교사, 남교사의 대거 전입으로 생활지도에 무게가 실리니 학생들이 덜 나대고 아무래도 안정적이다. 학교 분위기가 심리적으로 안정을 찾았다. 보건실 이용 학생 통계 숫자가 이를 증명해 준다. 4월 10일 기준으로 작년엔 1070명(23학급 전교생 930명 기준)이 보건실을 다녀갔는데 올핸 817명이다. 실제 등교일수 30일 동안 무려 250명이 감소된 것이다. 줄어든 환자들의 내용을 보면 외상 140명, 감기 50명, 기타 60명이다. 외상이 줄었다는 것은 그만치 생활지도가 잘 되었다는 것이다. 정확한 분석이다. 올 2월 졸업한 여학생들이 얼마나 거칠었는지 교직원 모두 혀를 내둘렀다. 학교폭력자치위원회와 학생선도위원회를 수 십회 열었다고 하면 누가 믿을까? 올해는 제발 그런 일이 없었으면 한다. 징계를 다루는 마음이 영 편치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올해는 이런 바람을 가져본다. 보건실은 이용 학생이 적어 보건교사가 보건교육에 더 시간을 할애할 수 있게 하고 도서관은 이용 학생이 많아 사서교사가 즐거운 비명을 지르게 하고 학생부에 불려오는 학생이 뜸해 학생부장은 3D 업종의 예외를 만들고. 마침 남학생 두 명이 들어온다. 더 이상 대화를 나눌 수 없다. 황 선생님이 끝인사 대신 말한다. "보건실 출입 인원수와 학생 생활지도는 반비례합니다." 책임감과 교육 열의가 높은 우리 학교 황 선생님이다.
토론토 교육위원회는 공립학교 학생들이 교실이나 복도 등에서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하기로 결정했다. 20일 토론토 스타 보도에 따르면 교육위는 학생들의 휴대전화 등 개인통신 장비의 사용문제를 놓고 토론한 뒤 투표한 결과 압도적인 다수로 전면금지 결정을 내렸다. 이 조치는 위원회의 결정이 각 학교에 공식 통보되는 이달 말부터 바로 시행에 들어간다. 지금까지는 교내 휴대전화 허용 여부를 각 학교장의 재량에 맡겨 일부 학교가 금지 결정을 내린 적은 있다. 일부 학부모들은 자녀와의 지속적인 연결수단이 학교에 있는 동안 차단되는 것에 반대했으나 휴대전화 논쟁은 결국 전면금지로 귀결됐다. 교육위는 산하 560개 공립학교에 휴대전화 전면금지 조치를 시행하는 문제를 수개월에 걸쳐 토론해왔다. 이는 학생들이 휴대전화 카메라로 학생 폭력장면을 찍어 인터넷에 올리거나 시험 부정행위, 수업중 게임, 전화를 받기 위해 수업중 교실을 빠져나가는 행위 등이 각 학교에서 잇따라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 제안을 한 조쉬 매트로 교육위원은 "휴대전화가 수업을 방해하고 학생들의 주의를 분산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