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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환경으로 명품 교육 제공해요” 경기도 하남시에 위치한 서부초(교장 김성) 운동장에 들어서면 옛 초가집과 그 속에서 생활하는 선조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운동장 한 쪽에 위치한 체육 교보재 창고에 그려진 벽화의 모습이다. 건립된 지 30년이 넘어 미관상 보기 싫었던 건물의 외벽에 벽화를 그린 것은 김 교장의 아이디어. 김 교장은 학교 환경 개선을 위해 지난 여름방학 내내 아이들과 직접 벽화를 완성했다. 그렇게 완성된 벽화는 운동장 한쪽에 조성돼 있는 정원과 함께 서부초의 자랑이 됐다. 주민들이 자랑스러워 하는 학교 만들어 서부초는 행정구역상 경기도지만 서울시 강동지역과 인접해있어 학생들이 모두 서울로 진학을 하는 특수한 환경에 있다. 서울의 인접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낙후한 지역 환경 탓에 지역 주민들로부터도 외면받고 있었다. 이런 상황은 지난 2003년 김 교장이 부임하면서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김 교장은 우선 학교 환경미화에 공을 들였다. 학교 담을 없애고, 체육관을 새롭게 지어 지역 주민들에게 개방했다. 또 오래된 온실 내부에 벽화를 그리고, 마치 작은 숲속에 온 듯한 느낌이 드는 정원을 새롭게 조성했다. 수업환경 개선을 위해서도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고등학교 못지않은 다양한 기자재를 갖춘 과학실을 만들고 학생들의 건강을 위해 실내 골프장, 탁구장 등 운동시설도 보강했다. 전교생의 80%가 넘는 학생들이 프로골퍼로부터 매주 골프 수업을 받고 있다. 또 도서관에도 책을 보충해 현재 학생 1인당 35권이 넘는 도서를 보유하고 있다. 김 교장은 학교 환경미화에 힘을 쏟은 것에 대해 “처음 부임했을 때 학교에 대한 인식이 별로 좋지 않았고, 학생 수가 계속 감소하고 있었다”며 “학생들에게 애교심을 심어주고 지역 주민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학교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학부모 대상으로 강의하는 교장 선생님 서부초에서는 학부모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도 공을 들였다. 우선 교내에 학부모실을 만들어 학부모들이 편하게 찾고 동네 사랑방처럼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모든 재량활동과 체험활동을 학부모들과 의논해 결정하고 직접 자원봉사자로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2달에 한 번씩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김 교장이 직접 특강을 진행한다. 김 교장이 교육부, 여성부, 환경부 자문위원, 양성평등·성희롱·성교육·학교폭력·환경교육 강사로 활동하며 쌓은 노하우를 학부모들에게 전수하는 시간이다. 김 교장은 “우리 학교 학부모가 100여 명에 불과하지만 매 강의 때마다 6~70명씩 참여할 정도로 인기가 있다. 가정의 소중함, 양성평등에 대한 교육을 하는데 가정불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학부모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며 “강의 내용에 대한 호응뿐만 아니라 학부모들이 학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효과도 크다”고 자랑했다. 서부초에서는 학생들에게 애교심을 높여주기 위해서도 다양한 방법을 활용하고 있다. 벽화 그리기, 정원 조성 등에 학생들이 참여했다. 온실 내부 벽화 그리기에 참여한 학생들은 졸업한 이후에도 학교를 찾는다. 자신이 그린 그림이 잘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서라고 한다. 또 학생들이 직접 만들어 학교 정원에 설치한 새장에는 새들이 날아와 알을 낳기도 했다. 학교 학생들을 모델로 한 학교 엽서도 제작해 사용하고 있다. 아이들의 학교생활 모습이 담긴 엽서는 매년 1500장 이상이 사용되고 있으며 자연스럽게 학교에 대한 홍보 효과도 높이고 있다. 이 밖에도 체험학습에 참여하는 모습을 촬영해 1시간 분량으로 편집한 비디오나 CD를 제작해 나눠주고 매년 전교생이 참여하는 동시집 봄 새싹을 발간하고 있다. 김 교장은 “모교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학생은 상급학교로 진학한 이후에도 학교생활에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된다”며 “우리 학교 선생님들도 명품 환경을 통해 명품 교육을 제공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를 바탕으로 계속해서 아이들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문제1. 우리나라 초등교육의 현실을 진단하고 서울시교육청이 제시한 교실수업방법 혁신방안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이를 근거로 바람직한 한국 초등학교 수업의 청사진을 밝히시오. 제시문 현재 우리나라 교육의 지향점은 객관주의 패러다임(objective paradigm)에서 주관주의 패러다임(subjective paradigm)으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주관주의 패러다임은 보편적 진리(truth)의 존재를 부정하며, 이것은 객관적 지식(knowledge)의 존재를 부정하는 근거가 됩니다. 주관적 패러다임은 학교교육의 전문가인 교사가 갖고 있는 전문적 지식의 보편적 객관적 과학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이것이 학생 개인의 능력에 맞게 수정되고 조정되어야 한다는 입장에 서 있습니다. 학교교육도 학생중심, 발견학습, 팀 티칭, 멀티교육과정, 무학년제, 협동학습, 개별화교육 등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며 현재 우리나라 교육과정도 주관적인 패러다임이 제시하는 방향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서울시교육청은 주관주의 패러다임에 근거한 ‘교실수업방법 혁신방안’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서울시교육청이 제시한 교실수업 혁신방안에 따르면 선도·협력학교로 선정된 24개교 학생들은 교사들로부터 학습과제만 제시받을 뿐 수업방식이나 장소는 스스로 결정하게 됩니다. 서울시교육청 손웅 장학사는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팀을 짜 도서관도 찾아가고 교실 밖에서 토론도 하며 학습 계획과 과제물 형태까지 스스로 정하는 식이 될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서울시교육청의 ‘교실수업방법 혁신방안’은 우리나라 초등교육의 현실여건에 비추어 볼 때 그 실현가능성에서 많은 논란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답안 작성 시 유의사항 1. 띄어쓰기를 포함하여 1200자 이내로 작성할 것 2. 자신의 신원이 드러날 수 있는 표현이나 표식을 하지 말 것 예시답안 시대가 변하면 수업내용과 방법도 변화하기 마련이다. 21세기 지식기반사회에서는 교양을 위한 관조적, 이론적 지식관이 아닌 실생활과 연결되는 문제해결을 위한 총체적 지식관을 바탕으로 자기주도적 학습력 신장에 주력해야 한다(학교는 학생들의 풍요한 미래의 삶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교육은 학생들에게 미래의 삶과 괴리된 많은 양의 지식을 피상적으로 주입·암기시키고 있다. 현실과 괴리된 학교교육은 아동들의 흥미, 능력, 요구 등이 쉽게 무시되고, 수동적인 학습 태도를 형성하며, 일제식·주입식과 같은 설명 위주의 수업, 분절된 단편적인 지식 주입 교육은 사회·문화적인 특수성의 고려가 이루어질 수 없으며, 수동적인 학습자를 양산한다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이에 서울시에서는 객관적 패러다임이 아닌 주관적 패러다임을 바탕으로 지식을 생산하는 학습자관을 바탕으로 ‘교실수업방법 혁신방안’을 마련했다고 본다. 이는 정보화, 세계화, 지식기반사회의 시대적 배경과 구성주의 철학의 입장에서 우리가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우선 학교와 지역사회의 학습의 여건이 성숙되지 못했다. 학교에서는 다양한 학습 프로그램과 평가체제 등이 마련돼야 하고, 교사들의 의욕과 전문성이 구비되지 못했다. 지역사회에서는 주관적 패러다임에 따라 학습할 수 있는 학습의 장을 제공해 줄 여건이 성숙되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교실 수업에 익숙한 학생들이 자기 주도적 학습이나 협동학습을 할 만큼 자율성과 학습 방법 및 능력이 구비되지 못했다. 결국 현재의 여건에서는 많은 문제점이 예상된다. 따라서 점진적이고 단계적으로 실시해야 한다고 본다. 우선적으로 주관적 패러다임에 의한 교실수업방안에 대한 다양한 프로그램과 연수를 실시한 후 지원하는 학교를 중심으로 단계적으로 실시하면서 지역사회가 학습의 장이 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할 것이다. 또 학교는 그와 관련된 연구를 지속적으로 실시하고, 교사들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평가체제를 마련해야 하며, 학생들도 자율적 학습력을 길러야 할 것이다. 즉, 가정·학교·사회가 상호 연계하여 학생들의 자율적 학습을 도울 수 있는 여건과 풍토를 제공해야 교실개혁방안이 정착될 수 있을 것이다. 시대가 변하면 교육도 변하기 마련이다. 객관적 지식을 습득하기보다 지식과 정보를 나름대로의 해석을 통해 이해하고, 재구성하는 지식의 창조자로 보는 구성주의적 학습방안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가정, 학교, 사회의 여건이 요구되는 만큼 학생과 학부모들은 시대적 지식관을 인식하고, 지역사회는 학습의 장으로서 조건을 구비해야 하며, 학교와 교사들은 새로운 패러다임에 적합한 교육내용과 방법 및 평가체제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참고자료* 우리나라 초등교육의 현실을 진단하기는 매우 광범위하고 어렵다. 초등교육의 현실을 지문에서 제기된 교실수업방법을 중심으로 제시하면, 현재 교육현장은 객관적 패러다임의 관점에서 주관적 패러다임, 즉 아동중심교육으로 옮아가는 과정에 있다. 서울시교육청에서 제시한 ‘교실수업방법 혁신방안’에서 제시하고 있는 수업 형태는 극단적이고 배타적 형태의 아동중심교육을 의미한다. 그러나 한국의 초등학교 교육현장은 급당 크기가 40여 명에 이르며, 교사들은 아동 중심 교육에 대한 전문적 지식이 부족하다. 교육개혁에의 요구는 학교현장의 실천적 문제에 기인하여 하의상달(bottom-up)된 것이 아니라 상명하달(top-down)식의 형태를 띤다. 그리고 학생들은 학교환경에서 전문가 중심 교육에 노출되어 있다. 더구나 서구에서의 교육개혁 기본 전체가 기계적 관료체제와 전문적 관료체제로 된 현재의 공교육체제를 아동중심, 프로젝트 중심의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같은 특별위원회 성격으로 변화시킴을 기본 전제로 하는데 반해, 현재 한국의 교육체제에서는 여기에서의 본질적인 변화를 전제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팀 티칭, 멀티교육과정의 운용, 무학년제 실시, 개별화 교육 등과 같은 주관주의 교육의 한국적 전개는 현 상황이나 가까운 미래에 성공적으로 접목되기는 어렵다고 보며, 지문에서 제시된 ‘교실수업방법 혁신방안’은 한국의 교육현실을 고려하면 실현가능성의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고 본다. 이를 토대로 바람직한 한국 초등학교 수업의 청사진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전문가 중심 교육과 아동 중심 교육이 배타적 관점에서가 아닌 상보적 관점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반복학습 등의 전문가 중심 수업은 발견학습 등의 학생 중심 수업과 공존할 수 있다. 그리고 발견학습 등의 아동주도 학습은 이상적이기는 하나 시간의 부족이나 시행착오 등 비현실적인 측면이 많다. 둘째, 교실수업 혁신방안은 한국의 교육적 자원을 고려하여 점진적으로 진행하여야 한다. 40여 명에 이르는 급당 크기에서 개별화 교육에 의한 수업이나 멀티교육과정을 적용하며 수업을 진행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학급당 크기의 감소나 보조교사 확보 등의 교육적 자원의 확보가 변화의 기본 전제가 돼야 한다. 셋째, 학교 체제가 특별위원회 성격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현재와 같은 학교 체제에서는 행정전문가가 교육전문가를 통제하는 구조로 되어 있으며, 이것은 교육전문가가 아동의 요구에 적절하게 대응하는 데 문제가 된다. 미국 항공우주국과 같은 특별위원회 성격의 학교에서는 기계적 관료체제가 전문적 지배체제를 간섭하지 못하며 전문가들은 아동의 요구 중심으로 쉽게 이합집산할 수 있다. 넷째, 초등학교 수업은 서구에서 도입된 특정 지배 패러다임에 의해 진행하기보다 우리나라의 독특한 교육적 토대 하에서 초등교육학의 지식기초를 끊임없이 산출할 수 있어야 한다. 집단적이고 전문가 중심의 수업보다 개인의 독특한 요구에 부합하는 주관주의 교육철학이나 당위성에 대해서는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패러다임이나 이론 등의 상위지식은 수업실제 등 교육현실을 고려하여 실천으로 연계되어야 한다. 따라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한국교육에서의 주관주의 패러다임의 교실수업 전개 또한 한국의 독특한 교육적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문제2. 제시문 (가), (나) 두 인간상은 형식적 교육과 비형식적 교육이 낳은 결과이다. (가), (나) 두 인간상을 지식 중심 교육과 인간 중심 교육의 관점에서 비교 서술하고 (다), (라) 내용을 참고하여 우리나라 교육의 지향점에 대해 논하시오. 제시문 (가) 전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의 비리사건 기사 내용 : 비도덕적 기업 운영과 불법 대출, 재산은닉, 해외도피 등 (나) 이희승의 딸깍바리라는 소설의 한 내용 : 쪼들리는 생활 속에서도 샌님이 가정 경제는 생각하지 않고, 사서오경 등과 같은 자신의 도덕과 지식의 수양에만 몰두함. (다) 대구교대 조용기 교수의 논문 일부 : 학교교육은 지식습득이 아니라 삶의 형식을 확립하는 일이 그 주된 목적이 됩니다. 학습이 ‘살아야’한다는 것입니다. 듀이 식으로 말하자면, 학습은 학습이기 이전에 우선 삶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브루너(1963) 식으로 말하자면 교실은 ‘문화살기(culture-in-practice)’를 하는 곳, 즉 삶을 준비하는 곳이라기보다 ‘연습’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다시 한 번 더 말씀드리면, 지식을 가르치지 말고 삶을 가르치자는 것이며, 지식을 살게 하자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지식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 삶의 형식에 손상을 줄 가능성이 높을 뿐 아니라, 의미 있는 지식습득의 가능성도 그만큼 낮아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구성주의의 ‘맥락’이라는 용어는, 학습과정은 지식습득 과정이라기보다 삶의 연습과정으로, 학생들이 학습을 ‘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라) 인본주의적 관점에서 삶의 진보란 개인의 진보보다 ‘공동체의 진보’를 더 중요시해야 하고, 인류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내용이어야 할 것임. 길잡이 본 문제는 최근의 지식중심교육의 문제와 비실용적 지식(실생활과 괴리된)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서 구성주의 교육과 도덕성 및 공동체 의식 함양교육에 대한 문제로 볼 수 있다. 이를 위한 배경지식은 지식교육의 한계점과 구성주의 학습이론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할 것이다. 예시답안 바람직하지 못한 교육풍토 속에서 올바른 지식인이 성장할 수 없다. 얼마 전 ‘물고기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초등학생의 사건은 우리 교육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참된 교육은 인간의 다양성을 전제로 개개인의 잠재적 능력이 발현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촉진하는 활동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교육은 지식위주의 획일적 교육과 삶과 괴리된 교육으로 인해 교육병리현상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제시문 (가)는 지식중심교육으로 지·덕·체의 조화로운 발달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도구화됨으로써 인간성과 도덕성 부재로 사회문제를 유발하게 된 것이다. 즉, 가슴은 없고 머리만 성장한 인간이 만들어진 것이다. 제시문 (나)의 ‘샌님’은 인간중심 교육으로 인(仁)과 예(禮)를 갖춘 도덕적인 군자로 성장했지만, 삶과 괴리된 교육으로 실생활에서의 문제해결능력이 떨어진 인간을 양성하게 된 것이다. 이는 전체적인 사회구조 속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의 본질에 대한 통찰적 이해가 부족한데 기인한다. 그런데 21세기 지식정보화사회에서 요구되는 인간은 자기주도적인 학습력을 신장하여 끊임없이 변화하는 지식을 재구성하고 실생활 속에서의 문제해결을 잘하며 공동체 발전에 기여하는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인간을 양성하기 위해서는 우선 학습자 중심의 교육을 해야 한다. 지식은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맥락적 요청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며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것으로서 학습자의 삶에 의미가 있으면 진리이고 지식인 것이다. 이에 교사는 학습자의 다양성과 개별성을 인정하여 교실의 경험들이 실제 생활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과 안목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음으로 공동체 의식 함양교육을 해야 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므로 사회를 떠난 개인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교육은 민주주의를 생활양식으로 민주시민의 자질을 함양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체험학습, 협동학습, 토론 등을 통해 공동체 의식을 기르고 실천해 나갈 수 있도록 함으로써 학교의 지식이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 환원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교육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데 있고, 학교는 지식전달의 장임과 동시에 삶의 터전이다. 지·덕·체의 조화로운 인간과 창의적이고 도덕적인 인간을 길러내기 위해서는 앎으로서의 지식이 학습자에게 내면화되고 삶 속에서 생활화되어야 한다. 이렇게 될 때 교육이 바로 서고 사회와 국가가 바로 설 수 있을 것이다. 참고자료 - PCK 1. PCK의 의미 PCK는 PK(Pedagogical Knowledge)와 CK(Content Knowledge)의 합성어로 교수법적인 지식과 기능(PK) 그리고 교과 내용에 대한 지식(CK)을 함께 의미한다. 즉, 내용 교수법이란 ‘특정 내용을 특정 학생들의 이해를 촉진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방법에 대한 교사의 지식’을 말한다. PCK는 본질적으로 교과 내용에 따라 달라지므로, 교과 내용에 고유한 교수법이라고도 불린다. 2. 내용 교수법 지식(PCK)과 일반 교수법 지식의 차이점 가. 내용 교수법에서는 특수성이 일반화의 토대가 된다. 교과 내용의 특수성, 학생 수준과 요구의 특수성, 교실 상황의 특수성이 내용 교수법을 이루는 중요한 구성 요소들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특수성들을 기초로 표출되는 고유의 내용 교수법이 주어진 주제에 대한 하나의 내용 교수법의 전형을 이루게 된다. 그러나 일반 교수법은 일반화가 특수성의 토대가 된다. 일반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절차와 모형을 특수한 교실 상황에 적용하면서 특정 사례들을 축적해나간다. 나. 내용 교수법은 지속적인 발전 과정에 있는 것으로 완성형을 지향하지 않는다. 특정 내용에 적합한 교수법은 하나일 수 없으며, 적게는 내용 교수법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의 수만큼, 많게는 그 주제를 가르치는 교과 교실의 수만큼이나 다양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일반 교수법은 교과 특수성이나 교실 특수성을 초월한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진술문으로서, 구체적인 상황과 맞지 않을 때는 교사 스스로 그 세부 사항들을 결정하고 해결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3. PCK와 수업 컨설팅 가. 교과별 PCK는 교사 전문성의 중요한 구성요소이므로 교사의 전문성을 신장시킬 수 있는 방법은 교과별 수업 컨설팅, 즉 교사 전문성의 구성 요소별 문제점 진단 및 학습 프로그램 처방을 통해 전문성을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다. 나. 수업 컨설팅이 학교현장에서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수업 컨설팅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의 토대 위에 전문적인 수업상담 능력을 갖춘 컨설턴트가 반드시 요구된다. 일반 상담에서 상담가를 양성해 내는 것과 같이 수업 컨설턴트 또한 직접 수업을 해 본 경험이 있어야 하며, 자신의 수업을 공개하고 상담을 받아보고 그 과정을 통해 수업을 개선하려는 교사의 입장과 상담 과정에서 받게 되는 다양한 자극들을 직접 경험해 봐야 하고, 수업상담의 과정을 수련하는 과정 또한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 잘 체계화된다면 자격을 갖춘 전문 수업상담가가 양성될 수 있을 것이며, 수업의 질을 제고하는 데 큰 기여를 할 것이다.
제도는 합리성을 가정하고 만들어진다. 제도의 합리성은 제도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근거가 될 뿐만 아니라, 결정된 제도를 관련자들이 받아들일 것인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제도의 모습이 결정되면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에 비추어 반대도 하게 되는데, 제각기 자기의 이익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합리성이 필요하게 된다. 일찍이 디싱(Dissing, 1962)은 합리성의 내용을 중심으로 사회적 조건에 따라 어떠한 내용의 합리성을 추구할 것인가 하는 관점에서 합리성을 구분하였다. 즉, 합리성을 기술적·사회적·법적·정치적 합리성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교장공모제의 합리성을 살펴보기 위해 디싱의 분류방식을 분석의 틀로 삼고자 한다. 목표 달성하기 어려운 해결방안 기술적 합리성(technical rationality)이란 목표에 대한 수단의 정확성을 의미한다. 목표와 수단의 이분적 관계를 전제하고 목표성취에 가장 적합한 수단을 찾는 것이 기술적 합리성이다. 교장공모제의 목표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공모제를 통해 과열승진 풍토를 해결하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공모제를 통해 젊고 유능한 교원에게 교장응모 기회를 부여하자는 것이다. 먼저 전자의 주장을 살펴보면, 과연 교장공모제가 도입된다고 해서 교원들이 승진으로 인한 교육력 낭비를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오히려 예전의 승진임용제보다 경쟁자가 많아져서 더 치열해질 가능성이 있으며, 이 경우 교장 임용을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할 것이다. 교장 승진제도가 없다고 해서 교장이 되려고 경쟁하는 대신에 교사 본연의 역할에만 매진할 것이라는 기대는 지나치게 순진한 생각이다. 인간은 대부분 상위 지위에 오르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는데, 상위 지위에 오를 수 있는 기회가 박탈되거나 제한된다고 해서 그 욕구가 없어지거나 해소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예를 든다면 일선 학교에서는 교원들 가운데 일명 ‘교포교사(교장·교감 포기자)’가 있다. 교장공모제의 주장대로라면 교포교사는 학생들의 교육활동에 전념하는 교사였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교포교사 중에는 승진의 욕구를 학생교육활동에 전념함으로써 해소하는 경우보다는 각자의 취미, 여가생활을 통해 조직사회의 욕구불만을 해소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으로 보인다. 교장공모제의 두 번째 목표는 공모제를 통해 젊고 유능한 교원에게 교장응모 기회를 부여하자는 것이고, 그래서 공모교장의 응모자격을 초·중·고 교육경력 15년 이상의 현직교원 및 교육공무원으로 제시하고 있다. 초·중·고 교원의 교육경력 15년이면 1급 정교사에다가 보직 경험이 있을 정도의 경력이다. 보직은 해마다 업무분장이 바뀌게 되어 있어, 일관성 있고 체계성 있는 경험이 어렵다. 그리고 보직교사 중에서도 학교경영과 관련된 경험을 하기 위해서는 교무업무를 총괄하는 교무부장 경험이 필요한데, 교직경력 15년 정도에 교무부장을 경험하기는 우리나라의 교직풍토에서는 어렵다. 따라서 학교경영 소양을 가지기 위해서는 적어도 교감 직급의 경험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교감은 법적으로 그 지위와 권한이 보장되고 있고, 그에 따라 교장의 학교경영을 보좌하고 때로는 그 직을 대행하기도 한다. 학교경영은 학교조직을 제대로 이해할 때 가능하다. 교직경력 15년 정도이면 가르치는 교수 전문성과 더불어 업무분장에 따른 담당 사무의 전문성을 가질 수는 있다. 그러나 학교를 경영자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데에는 경험상, 직급상 한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학교구성원 통합 저해할 수 있어 사회적 합리성(social rationality)이란 사회체제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 간의 조화로운 통합을 의미한다. 사회체제의 구성요소들이 서로 갈등하지 않고 질서정연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을 때에 나타나는 상호의존적인 질서체계를 사회적 합리성으로 간주한다. 교장공모제의 사회적 합리성은 이 제도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여 통합을 이루는지 그리고 교직문화에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는지의 여부와 관련된다. 먼저 교장공모제의 사회적 책임 측면을 살펴보면, 학교교육은 공공재이므로 교육당국은 국민에게 운영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현재의 교육체제로 보면 교육당국(교육부, 교육청)이 학교의 지도·감독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교장에게 일정 부분의 책임과 권한을 위임·이양하고 있다. 따라서 교육당국은 국민을 상대로 교장의 전문성을 보증하는 최소한의 기제가 필요한데 이것이 바로 자격증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자격 없는 교장의 임용은 교육당국의 국민에 대한 책무성에 문제를 야기한다. 그리고 가르치는(teaching) 전문성과 경영(management) 전문성은 다르다. 교사로서 교수행위, 학급경영, 학생이해 등에 대한 능력이 교장으로서 학교경영의 전문성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물론 교사로서의 경험이 학교를 경영하는 데 폭넓은 식견을 발휘하는 토대가 될 수는 있지만, 교장의 역할 수행에 직접적인 자질은 아니다. 이는 마치 기업에서 생산직 근로자 경력 15년이면 누구나 좋은 CEO가 될 수 있다는 논리와 같다. 최근에 미국, 영국 등 선진국에서는 교장의 자격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다양화되었던 교장자격 프로그램의 문제점을 개선하고자 전국적인 표준화를 진행시키고 있으며, 영국에서는 국립 교장자격 연수원을 설치하고 모든 교장에게 반드시 이곳의 자격증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교장의 사회적 책임이 강화되고 있다는 시대적 흐름을 보여준다. 둘째로 교장공모제의 문화적 측면을 살펴보면, 공모로 선발된 교장이 교직사회 안에서 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있다. 교직사회는 일반직 공무원이나 군인, 경찰 조직에 비해 상하 간의 관계가 느슨히 결합(loosed coupling)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직급에 따른 명령체계보다는 교직을 지배하는 문화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 교직사회는 직급으로 보면 교장, 교감, 교사로 구분되지만, 그 안에 비공식적으로 교육경력에 의한 위계질서가 상당히 크게 작용하는 조직이다. 비록 교사들은 직급 상으로는 같은 교사이지만 교육경력이 높은 교사가 낮은 교사에게 작용하는 권위는 무시할 수 없다. 그런데 공모과정을 거처 임용된 교장은 이러한 연공서열에 익숙한 교직사회에서 적절한 권한을 발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공모교장과 교사 사이의 갈등과 더불어 교장 사이에서도 갈등의 소지가 많다. 교장들 사이에서 교사출신 공모교장과 교장자격증을 갖고 승진 임용된 교장 사이에도 갈등이 예견된다. 중앙집권적 학교관리 체제 하에서 단위학교의 교장은 인근 학교 교장과의 관계를 무시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공모교장이 교장사회에서 주류로 진입하지 못한다면 교장직 수행에도 영향이 미치게 된다. 나아가 공모교장과 교육청(인사)과의 관계에서도 갈등의 소지가 있다. 중앙집권적 교육행정체제 내에서 교육청 인사는 그들의 영향력이 미칠 수 있는 승진 임용된 교장에 더 호의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학습권 보장 위한 법적 타당성 부족 법적 합리성(legal rationality)이란 사람들 사이에 권리와 의무의 관계가 성립하고 이를 준수할 때 나타난다. 법적 합리성은 공식적인 질서와 규범을 제시해 주고 여기에 근거하여 인간행동을 예측가능하게 한다. 교장공모제는 학교의 책무성, 나아가 교장의 책무성에서 모순이 내재되어 있다. 공모교장은 정부에서 일방적으로 선발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당사자들이 교장 선발의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들 참여자들은 권한과 권리만 있고 책임이 불확실하다. 현재의 학교는 학생들이 선택한 곳이 아니라, 교육청에서 지정한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학생들은 학교가 좋으나 싫으나 다녀야 한다. 학교의 학부모들은 이들 자녀의 부모들로 구성되는데, 이들 중 학부모 대표가 공모교장의 심사과정에 참여하게 된다. 한편, 교사들은 그들이 영원토록 근무하는 학교가 아닌 잠시 근무하는 학교의 구성원이며, 교육청 인사 또한 잠시 담당하는 학교에 참여하게 될 뿐이다. 이와 같이 공모교장은 선택이 제한된 학생과 그들의 학부모, 책무성이 보장되지 못하는 교사와 교육청 인사들이 구성돼 선발하게 된다. 이때 공모교장이 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여 학교 교육력을 높이면 문제는 드러나지 않겠지만, 문제는 만약 공모교장이 교장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였을 때 그 결과를 누가 책임질 수 있는가이다. 그 책임은 교사, 교육청 인사도 아닌 학생들의 피해로 끝이 나버린다. 정부에서 임명한 교장이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할 경우에는 법적으로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데 민주적 절차에 의해 임용된 공모교장의 역할 수행에 대한 책임을 정부가 전적으로 질 수 있는지, 아니면 공모 심사과정에 참여한 이해당사자들이 책임을 질 수 있는지, 그것도 아니면 공모교장 개인이 책임을 질 수 있는지 등과 관련하여 법적 합리성이 미흡한 상태다. 즉, 교장공모제가 우리나라의 교육체제에서 학생들의 학습권을 보장할 수 있는 법적 타당성이 부족하다고 하겠다. 선진국의 교장공모제는 우리나라와의 상황과는 다르다. 거기에는 학교자치가 자리를 잡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에 따라 학생 및 학부모의 학교 선택권이 보장되어 있다. 따라서 학교 선택, 학교 자치와 같은 교육구조가 공모교장의 책무성을 통제할 수 있는 기제로써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즉, 공모교장의 경영실적이 부족하면 바로 해고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교장직에서 물러나면 다시 교원직으로 돌아갈 수 있다. 교장하는 것이 밑져야 본전이다. 외국의 경우 공모교장이 운영하는 학교에 대해서는 학생들에게 선택권이 있기 때문에 교장의 학교경영에 대해 직접적으로 반응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일반학교는 학생들의 학교선택권이 제한되어 있으며, 만약 공모교장의 학교경영에 대해 불만이 있어도 학생들은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교육연한을 마쳐야 한다. 이와 같이 교장공모제는 우리나라의 교육체제에서 학생들의 학습권을 보장하는 법적 적합성이 상당히 미흡해 보인다. 학교의 정치장화 막을 길 막막 정치적 합리성(political rationality)이란 사회의 가치를 수렴하여 이익이나 목표들 간의 갈등을 조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정치적인 절충이나 협상 및 흥정의 과정을 통한 합의 형성의 정도가 정치적 합리성의 평가기준이 된다. 여기에서는 참여자들 사이의 의견일치가 그 핵심이 된다. 교장공모제는 학교의 상급기관에서 교장을 일방적으로 임명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와 관련된 다양한 인사들이 공모교장 심사과정에 참여한다는 것을 전제하기 때문에 민주적인 교장 임용제도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민주주의가 정치적 개념이라는 점에서 교장공모제가 학교에서 교장 임용과 관련하여 정치장화 되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이때 교장 공모 과정에서 교육청 인사, 단위학교 교사, 학부모, 지역인사 간의 알력 다툼, 나아가 교직단체 간의 대립과 갈등이 예상된다. 예를 들어 새로운 교장을 공모할 경우 교직단체 사이에 영향력을 미치기 위한 정치적 과정이 수반되게 되고 그 가운데 교사들 간의 갈등의 골이 깊어질 수 있다. 그리고 특정 교직단체의 배경을 얻고 임용된 교장은 반대편 교직단체 소속 교사들과의 대립관계가 교장 임기 동안 계속될 수 있다. 그 단적인 예로 이미 일부 학교에서는 학교운영위원회의 구성과 운영과정에서 교직단체 간의 세력화 나아가 대립, 운영위원 간의 갈등이 심화되어 학교운영위원회의 기능뿐만 아니라 학교 구성원의 편 가르기로 이어지고, 결국 학교가 혼란에 빠지는 경우를 찾아볼 수 있다. 이와 같이 학교의 정치장화는 교육력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파괴력을 가진다. 정치가로서 국회의원은 국정운영에서 제 할 일을 다하지 못하면 선거를 통해 평가를 받게 된다. 따라서 국회의원은 무작정 알력 다툼이나 할 수는 없다. 그런데 일반 공립학교의 교원은 순환전보체제로 되어 있어서 구성원들 간에 정치적 다툼이 있다고 해도 몇 년 뒤에는 그 학교에 없다. 교원들은 일정 기간이 지나고 나면 다른 학교로 옮겨가기 때문에 학교의 정치장화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없다. 그리고 학부모나 지역사회 대표 학교운영위원회 위원도 권리만 있지, 그 책임을 묻거나 직무수행을 조정할 수 있는 기능이 전무하다. 결국 학교의 정치장화의 폐해는 오직 학생들에게만 돌아가는 것이다. 잘못된 제도의 희생양은 학생들 교장공모제의 탄생 배경은 그동안에 교장의 직무수행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들과 교장이 되기 위한 승진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그렇다면 문제점을 개선하도록 방향을 잡아야 한다. 이것이 안 좋으니까 저렇게 해보자는 식의 방향 설정은 곤란하다. 만약에 그 방향이 틀리면 그동안의 학생들은 어쩌란 말인가. 국가는 교육사업에 대한 책무가 있다. 그리고 교육의 질을 보장할 책임도 있다. 그 어떤 개선방향이라 하더라도 국가가 보장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서면 곤란하다.
이 글은 참여정부의 교육정책을 다각도에서 평가하고자 하는데 ‘교원평가제’와 ‘승진규정 개정’에 대하여 평가하는 것이다. 우선 ‘참여정부’란 용어 자체가 별로 탐탁하지 않다. 아마 노무현행정부를 의미하는 모양인데 이 행정부는 ‘참여’라는 용어와는 반대로 편 가르기와 패거리를 많이 하고 편향된 정책과 행정을 많이 하였다고 보기 때문이다. 교원평가제와 교원승진규정 개정의 뿌리를 찾기 위하여 먼저 노무현 대통령의 교육공약을 회상해보고, 참여정부의 교원평가제와 승진규정 개정 과정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정책평가에 대하여 간단히 언급해 정책의 목적과 방법의 주 측면에서 나름대로 평가를 해보고자 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교육공약 현 정부는 ‘우수교원확보법 제정과 초정권적 교육혁신 기구 설치’를 공약하고 출발하였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교육공약 특징은 교원정년 현행 유지 공약에서 드러나듯이 국민의 정부 정책을 계승하고 또 보직제 등 교장임용제 개선, 학교운영위원회 기능 강화, 사립학교법 전향적 개정 등을 들고 나와 자칫 학교를 정치장화 할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출발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머물고 싶은 학교, 학벌사회를 실력사회로, 획일교육을 다양성교육으로, 타율적 학교를 자율적 학교로’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노무현 대통령의 주요 교육공약은 다음과 같았다. ▲우수교원확보법 제정 ▲담임수당 현실화 ▲교원자녀 대학학비 보조 ▲무주택 교원 주택마련 지원 확대 ▲학교안전사고 예방 및 보상에 관한 법률 제정 ▲점수제에 의한 승진제도를 합리적으로 개편 ▲외부초빙제·보직제 포함 학교장 임용제도 다양화 ▲기간제 교원 신분 보장·처우 개선 ▲초과수업수당 근거 마련 ▲교과전담교사 확충 ▲교원자율연수 휴직제 수혜자 대폭 확대 ▲교원 연구비 지원 대폭 확대 ▲학교운영위원회 기능 강화 ▲교사회, 학생회, 학부모회를 법제화하고 그 대표자 학교운영위원회 참여 ▲교사의 수업자율성 확대 ▲사립학교법 전향적 개정 ▲고교평준화 정책 기조 유지 ▲국가수준 교육과정을 단위학교 수준으로 대폭 자율화·특성화 ▲수능시험 복수 응시 가능 ▲특기·적성교육에 과감한 예산 지원 ▲대안교육과 실험학교 적극 확대 ▲도시개발 시 교육환경 영향평가제 도입 ▲학생체험활동 최소이수시간제 도입 ▲재택학습 가능토록 정보화 연계망 구축 ▲대학의 다양화·특성화 추진 ▲고등교육 재정을 OECD 평균 수준으로 확대 ▲지방대 육성 지원법 제정 ▲초·중등 과학교육의 내실화, 과학영재교육 체제 구축 ▲대학 시간강사 법적 지위 마련 ▲농어촌교육진흥특별법 제정 ▲만 5세아 무상교육 전면 실시 ▲학교보건지원센터 설립 ▲실고 교육 무상화 실현 ▲국가 인력수급 중장기 계획 수립 ▲교육재정 GDP 6% 확보 ▲지방자치단체 전입금 단계적 확대 ▲초정권적 초당적 교육혁신 기구 설치 ▲교육부 개혁 적극 추진 ▲교육정책 실명제 실효화 이 중에서 ‘점수제에 의한 승진제도 합리적으로 개편’이 교원평가제와 승진규정 개정의 불씨가 됐다. 좋은 공약은 하나도 실천할 생각을 못하고 나쁜 것만 끝까지 끌고 오는 셈이다. 대통령직인수위의 중점추진과제 중 교원 전문성 강화 방안의 하나로 역시 ‘승진제도를 점수제에서 능력위주로 개편한다(2003. 2. 28)’는 것이 들어있었지만 참여정부 5년 로드맵(2003. 6. 7)에는 이 내용이 빠졌다. 그러나 교원승진제도개선위를 구성(2003. 7. 5)하여 경력, 교육성적, 가산점으로 되어 있는 평정방식을 개선한다고 교원정책현안에 대한 국민여론조사를 한다고 했다. 같은 해 8월에는 교육혁신위가 마련한 ‘교원양성 및 연수·승진·임용제도 개선안’을 보고하려다 교원평가제(전교조)와 교장공모제(교총) 반대에 부딪혀 무산되기도 하였다. 이어서 교원안정화대책위를 만들어 3개영역 16개 과제를 마련하였는데 제2영역(교원인사제도 혁신을 통한 전문성·책무성 강화)에 ‘교원평가·승진제도 개선’이 들어 있었고 전국을 6개 권역으로 나누어 대토론회를 한다고 발표하였다. 교원평가제의 추진과정과 주요내용 교원평가제와 승진규정은 아주 밀접한 관계에 있다. 승진규정 안에 교원의 근무평정과 경력평정, 연수성적 등 교원평가에 관한 내용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승진규정 개선에 관한 논의가 나오고 이를 추진하다가 교원평가제가 별도로 떨어져 나와교원평가제가 더 부각되는 결과가 되었다. 현재의 교원평가제는 1998년 국민의 정부 대통령교육인적자원정책위원회, 1999년 교육발전5개년계획시안, 2001년 교육부 교직발전종합방안, 2003년 한국교육개발원의 교원인사정책혁신방안에서 논의 되다가 2004년 2월 17일 당시 안병영 교육부장관이 “사교육비 경감대책의 일환으로 교원평가시스템을 도입하고 교원의 능력개발과 전문성 신장 지원을 위한 평가제도를 마련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교육계 안팎에서 논의되기 시작하였다(김동석, 2006)고 한다. 당시 교육부는 다면평가제란 이름으로 동료교사와 학부모가 교원평가에 참여하고 교원의 자기계발과 교수·학습지도력 향상에 활용하고, 우수교원에게는 인센티브를 주며, 교수·학습지도력 부족 교원에 대하여는 특별연수 등의 조치를 취하고 학교경영결과를 교장인사에 반영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를 2004년 3월 2일 청와대에 보고하였다. 공청회를 하는 동안 반대에 부딪치자 교육부는 이에 대한 연구를 한국교육학회, 한국교육행정학회, 한국교육평가학회에 의뢰하여 새로운 교원평가시안을 마련하여 교육부에 제출하면서 힘을 받게 되었다. 결국 3개 학회가 교육부에 날개를 달아준 셈이다. 이어서 2004년 12월에 광주, 대구, 서울 토론회와 공청회의 형식을 거치게 되는데 교원, 학부모는 모두 이를 거부하게 된다. 그 사이 교육부장관이 김진표 장관으로 바뀌면서 교육부는 청와대 주요업무보고에서 교원평가에 교장까지 포함하고 48개 학교를 시범운영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교육부가 완화된 교원평가제 개선방안을 내놓았지만 교원평가제는 계속적인 반대에 부딪친다. 그리고 전교조에 의하여 공청회 자체가 무산되기도 하고(2005. 5. 3), 공동대책위원회가 구성되는 등 각종 반대운동이 전개되는 중에 교육부는 2005년 9월 시범운영을 고집하면서 협의체를 구성하였다. 교육부는 2005년 11월 교원평가 시범학교 운영계획을 마련하고 48개교 공모에 들어갔다가 67개로 확대하였다(2006. 1. 18). 그리고 ‘교원능력개발평가정책추진방향(시안)’에서 3년 주기로 교사의 수업계획·실행·평가에 관한 사항을 평가, 개별 교사에게 통보하여 교원의 능력 신장에 활용하는데 평가에는 교장, 교감, 동료교사, 학생, 학부모가 참여하게 한다고 발표하였다. 그리고 교원평가에 관한 법을 연내에 입법예고하고 500개 학교에 적용한다고 하였다. 2007년 현재 전국 500여개 학교에서 교원평가제가 시범 운용되고 있는 셈이다. 교원평가 시범학교 운영결과가 일부 보고되었는데 서울시교육청에 의하면 교사의 93%가 동료교사에게 ‘탁월’ 또는 ‘우수’ 평가를 하고 수업계획, 수업목표, 수업설계, 수업평가에 ‘미흡’ 또는 ‘매우 미흡’으로 평가한 것은 1%도 안 되어 변별력이 없고, 교사들은 ‘친분에 따라 평가 결과가 다르게 나올 수 있다’고 하였다. 학생들의 만족도 조사에서는 고학년으로 갈수록 만족도가 떨어져 초등학교에서는 74%가 만족 이상인 반면 중등학교에서는 57%에 그쳤다. 학부모도 초등학교는 61%가 만족 이상인 반면 중학교는 48%에 그쳐 학생과 마찬가지로 상급학교로 갈수록 만족도가 떨어지고 또 학부모가 학생에 비하여 만족도가 떨어지는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한교닷컴 2007.08.02, 문화일보 2007.08.02). 국회는 교육부가 제출한 학생, 학부모가 참여하는 교원능력개발평가 시행 법안(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심의하려다 논란이 일자 이를 2007년 9월 정기국회에서 처리하기로 미룬 상태에 있고 그 사이 교육공무원승진규정만 개정되었다. 현재 교육부는 초·중등교육법 제9조 제2항(교원능력개발평가)에 ‘①교육인적자원부장관 및 교육감은 제2조의 초등학교, 중학교 및 고등학교 소속의 교원에 대하여 상급자 및 동료, 학생 또는 학부모의 참여에 의해 실시되는 교원의 능력개발을 지원하기 위한 평가를 실시한다 ②교육감 또는 학교장은 제1항에 의한 교원능력개발평가와 능력개발 지원을 위하여 필요한 계획을 수립하고 실시하여야 한다 ③제1항에 의한 교원능력개발평가의 시행에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는 조항을 신설하여 국회 통과로 개정해놓고 시행령은 국무회의에서 대통령령으로 쉽게 신설하려는 속셈인 것으로 보인다. 승진제도 변경 과정과 주요내용 2003년 8월 전국을 6개 권역으로 나누어 실시한 대토론회 이후 승진제도에 관한 논란은 잠시 뜸했지만 2005년 12월 교육부는 ‘교원연수성적 산출방식 개선방향’을 발표하고 점수별 분포비율을 바꿔 90점대를 줄어들게 하였다. 그러다가 교원승진제·교장임용제에 관한 교육부 시안이 나왔는데(2006. 2. 20) 경력평정기간을 25년에서 5~10년 줄이고, 점수비중도 90점에서 70~80점으로 줄이고, 근무평정에 동료의 다면평가를 도입하며 근평기간도 2년에서 10년으로 늘린다는 것이다. 개정된 승진규정의 골격은 이미 이때 마련된 셈이다. 2007년 5월에 통과된 승진규정개정안의 주요내용을 보면 경력 반영은 25년에서 20년으로 연차적으로 5년 단축하고 90점에서 70점으로 줄이며 근평기간을 2009년까지는 2년으로 하지만 2010년부터는 매년 1년씩 늘려 2017년까지 10년치가 반영되게 한다. 근평점수 비중도 80점에서 100점으로 높이게 되어 있다. 그리고 교장 40%, 교감 30%, 동료교사 30% 비율로 반영되고 근무평정 총점이 공개된다. 선택 가산점은 교육부 연구·실험·시범학교, 재외국민교육기관 파견, 직무연수 등과 관련한 공통가산점 만점을 3.5점에서 3점으로 변경했다. 그리고 직무연수 성적을 점수제에서 등급제로 바꿨다. 박사 3점, 석사 1.5, 전국연구대회 1등급 1.5, 시도대회 1등급 1점으로 상향 조정됐다. 교감·전문직 근무평정제도 교사와 비슷한데 근무평정기간은 3년으로 한다. 정치적 의도로 진행된 교원정책 정책평가란 정책의 내용과 집행 및 그 영향 등을 추정하거나 평정하는 것을 말한다. 정책집행 과정에서 등장하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해결하여 보다 나은 집행 전략과 방법을 모색하기 위하여 실시되는 ‘형성적 평가(formative evaluation)’와 정책 집행 후 당초 의도했던 효과를 성취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총괄적 평가(summative evaluation)’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형성적 평가는 과정평가·도중평가·진행평가 등으로도 불린다. 이외에도 정책평가에는 착수직전평가, 평가성 사정, 프로그램 모니터링, 정책영향평가, 능률성 평가, 적합성 평가, 평가 종합, 메타 평가 등이 있을 수 있는데(노화준, 2006) 교원평가제와 승진규정 개정에 관한 정책은 어느 것도 정확하게 적용하기 어렵다. 참여정부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또 이 교육정책이 완전히 집행되거나 결과나 영향이 나온 것도 아니므로 이 글에서 정책평가는 형성평가적 성격이어야 하나 집행과정에서의 ‘문제점을 해결하여 보다 나은 집행 전략과 방법을 모색하기 위한’ 것도 아니므로 정확히 형성평가도 아니고 총괄평가라고 하기도 어렵다. 다만 참여정부가 끝나가므로 한번 이 교육정책을 검토해보고 진단해보는 정도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정책은 사실 평가의 가치조차 없다고 할 수 있다. 여러 가지 평가의 기준과 평가질문이 있을 수 있으나 여기서는 정책목적과 정책방법의 두 측면에서만 생각해보기로 한다. 첫째, 교원평가제와 승진규정 개정의 목적이 무엇인가? 교원평가제의 출발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사교육비 경감대책의 일환으로 교원평가시스템을 도입하고 교원의 능력개발과 전문성 신장 지원을 위한 평가제도를 마련하겠다’는 안병영 전 교육부장관의 발언에서 비롯되었다. 교원평가제가 ‘사교육비 경감대책’과 ‘교원의 능력개발과 전문성 신장’과 얼마나 관련이 있고 교원평가제를 통하여 이 목적을 얼마나 달성할 수 있다고 믿을 수 있는가? 사교육 경감대책은 지금까지 수많은 정책을 동원해도 해결 못한 문제이고, 교원의 능력개발과 전문성 신장은 연수 등 적극적 정책을 동원했어야 한다. 교원평가를 통해서 교원의 능력을 개발한다는 것은 효과를 거두기 어려운 부적방법이 된다. 교원평가제는 이 정책목적과는 상관없이 정치적 목적과 의도에서 출발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교원평가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국민들에게 교육부가 뭔가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막연히 교원을 평가하면 평가가 무서워서 교원들은 아이들을 잘 가르칠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을 국민들에게 심어주려는 인기주의의 목적과 의도에서 나왔다고 보는 것이다. 여기에 매스컴과 언론플레이를 동원하여 인기몰이로 지금까지 끌어오고 있는 것이다. 마치 교원들은 평가를 안 받는 것처럼 언론에 호도하여 국민과 교원을 이간하여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에 급급한 것이다. 교원에게도 근무평정이라는 평가가 있는데 이를 숨기고 마치 처음으로 교원을 평가하는 제도를 도입하는 것처럼 국민을 호도하고 국민의 몇 퍼센트가 교원평가제 도입을 찬성한다는 식으로 여론몰이를 하였다. 근무평정제가 잘못되었으면 이를 고치는 작업을 하면 된다. 근무평정 이외에 평가가 더 필요했다면 일반 공무원에게도 똑같이 새로운 평가제를 도입했어야 논리에 맞을 것이다. 겉으로 내세운 목적과 달리 교원평가제 부과의 법제화 그 자체만을 목적으로 한 셈이다. 교원평가제는 근본적으로 정책의 목적과 목표가 아예 없었거나 불순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승진규정 개정의 목적으로 내세운 것은 앞에서 제시한 것처럼 ‘점수제에 의한 승진제도 합리적으로 개편’, ‘승진제도를 점수제에서 능력위주로 개편한다’는 것이었다. 점수제가 잘못되어 개편한다고 목적을 내세운 것이다. 자기들이 수십 년 동안 해온 일을 전적으로 부정한 셈이다. 그런데 개정된 규정을 보면 여전히 ‘점수제’이다. 이것만 봐도 여기에도 개정의 목적과 목표가 잘못된 것을 알 수 있다. 개정된 승진규정이 ‘능력위주’로 개편되었다고 할 수 있는가? 경력평정의 연(年)수를 낮추고 근무평정 사용 기간을 늘리는 정도의 점수 조정을 놓고 무슨 큰일이나 한 것처럼 하면서 현장을 혼란에 몰아넣고 있다. 현존 제도를 바꾸려면 교육부는 먼저 자기들이 저질러 놓은 과거의 정책에 대하여 사죄부터 했어야 할 것이다. 모든 것이 교육부의 자기부정이기 때문이다. 평가와 평정 통합해 다시 연구해야 둘째, 교원평가제와 승진규정 개정 정책의 추진방법과 절차가 적절하였는가? 우선 정책의제의 형성에 실패하였다. 교원평가제와 승진규정 개정의 논리도 개발하지 못하고 정책 타겟 집단인 교원을 설득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점수제의 승진규정을 개편한다고 해놓고 점수제를 대체하는 방법을 개발하지 못하고 점수제를 더욱 복잡하게만 만들어 놓았다. 근무평정제를 교원평가제로 바꾼다고 했어도 교원들을 설득하기 어려운데 근무평정제와 별도로 교원평가제를 부과해야하는 이유를 설득하기는 더 어려운 것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능력개발과 전문성 신장을 위해서는 교사에 대한 부적정책보다 적극적 정적정책을 썼어야 한다. 오도된 여론몰이와 언론플레이를 동원한 것도 올바른 방법이 되지 못하고 있다. 우격다짐의 정책추진 방법에 반감만 불러일으키고 혼란만 야기한 정책이다. 또 정책개발에 전문성이 없었다. 교육부의 교육연구관 1명과 교육연구사 1명이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교원평가의 정책을 개발하였으니 이 정책이 얼마나 거칠었겠는가? 교원정책과 과장과 서기관은 모두 비전문의 일반직이고 수시로 자리를 옮기는 사람들이 이 정책을 추진하였다. 그래서 처음에는 학생과 학부모를 교원평가자로 명명하고 이들이 교원을 평가한다고 했었다. 나중에서야 ‘만족도 조사’로 바뀌었으니 학부모와 국민들이 이 제도에 또 불만을 터뜨리게 되었다. 교원평가제와 승진제도를 교육부가 다뤘다는 자체도 잘못된 것이다. 지방교육자치제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정도의 정책은 시·도교육청에 맡겼어야 하는 제도이고 정책에 해당되는 것이다. 자치제를 한다면 시·도교육청에 따라 교원평가와 승진제가 달라야 한다고 본다. 학자나 학회에서 무심히 꺼내놓은 방안이나 용어를 관료들이 교묘히 포장하여 국민들을 현혹시키는 것도 문제이다. 교직발전종합방안이나 다면평가제, 학자나 학회가 간여한 보고서에서 뱉어 놓은 용어를 교육부 직원들이 엉뚱한 정책으로 포장해놓는 것을 경계하지 못한 것이다. 이제 기왕에 이 문제가 이슈가 되었으니 교육과 교육정책의 본질로 돌아와 교원평가제와 근무평정제를 통합하여 연구하고 검토해야 할 것이다. 교사평가는 교장의 책임이고 학부모와 학생, 동료교사의 의견은 교장의 평가자료 일부로 사용되어야 할 것이다. 교원의 인사에 반영 안 되는 평가와 근무평정은 아무 의미가 없다. 교원평가의 결과는 반드시 교원의 인사에 반영되어야 한다. 평가를 잘 받은 사람에게는 반드시 그 대가를 해줘야 한다. 그리고 교원의 능력개발과 전문성 신장은 평가와 별도의 방법과 정책으로 추구해야 한다. 교원들은 평가를 안 받겠다는 것이 아니다. 지금도 평가를 받고 있다. 교원은 ‘제대로 된 평가’를 받겠다는 것이다. 교육전문가는 전문가에 해당하는 전문적 평가를 받고 싶은 것이다. 평가는 최고도의 고등정신 기능이 요구되는 전문영역이며 평가라는 말 자체가 어려운 것이다. 평가라는 용어도 모르고 교원을 거칠게 아무렇게나 평가하겠다고 하는 교육부 장관과 직원들이 불쌍하다. 교원의 직급별 직무기준 설정해야 교원평가 이전에 먼저 할 일은 교원의 직급별로 직무기(표)준을 설정하는 일이다. 대한민국이 원하는 교원의 직급별 직무기(표)준을 설정하고, 이 기(표)준에 의하여 교원양성교육의 교육과정이 결정되고, 이 교육과정에 의하여 교원양성교육을 하고, 이 직무기(표)준을 수행할 수 있는지 확인하여 교원자격증을 부여하고, 이 직무기(표)준에 의하여 임용고사를 실시하여 교사를 채용하고, 근무 중에도 이 기(표)준에 의하여 근무평정이나 교원평가를 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직무기(표)준도 없이 교사양성교육을 하고, 또 임용고사는 다른 기준에 의하여 실시하여 교사를 선발하고, 평가는 또 그때그때 엉뚱한 기준에 의하여 평가한다고 하면 일관성이 없다. 기준이나 표준도 없이 학생이나 학부모에게 전문적인 교사의 일을 평가하라는 우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교감의 직무표준, 교장의 표준도 미리 설정해 이 표준에 도달한 사람을 승진시켜야 옳을 것이다. 교감이나 교장의 직무와 상관없이 승진점수의 비중만 이리저리 바꾼다고 우수한 교육행정가를 선발할 수는 없는 것이다. 교원평가를 끄집어내기 전에 먼저 교원의 직급별 직무기(표)준을 설정하는 일이 중요하다. 교원의 직무수행표준이 모든 인사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교원의 승진제는 교원의 전문성과 연결되어야 한다. 가르치는 교사의 전문성과 지도하고 행정하는 지도자와 행정가의 전문성을 어떻게 얼마나 연결시킬 것인가에 대한 깊은 연구가 요구된다. 두 전문성을 분리할 것인가, 연결시킬 것인가, 연결시키면 어떻게 어느 정도 연결시킬 것인가에 깊은 고민과 연구에 의하여 승진제도와 정책이 나와야 한다. 단순한 점수 조정으로는 근본적인 문제해결은 못하고 현장에 혼란만 야기시키게 된다. 잘 가르치는 사람은 교실에 남아서 교실에서 행복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잘 가르치는 사람을 교실 밖으로 내쫓아 교감·교장으로 승진시키는 것도 문제가 아니겠는가? 교감·교장은 교사로 하여금 잘 가르칠 수 있도록 지원해주고, 봉사하는 리더십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잘 가르치는 교사가 교감·교장보다 손해 보는 체제가 되어서는 어떤 승진제도 성공할 수 없다. 행복한 교사와 보람 찾는 교감·교장이 모든 학생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다고 믿는다. *참고문헌* 김동석(2006). 교원평가 쟁점과정과 과제, 새교육 2006. 06. 한국교총. 노화준(2006). 정책평가론(제4판). 경기, 파주: 법문사. 주삼환(2007). 한국교원행정. 서울: 태영출판사.
NEIS 시행 방법의 문제로 갈등 야기 학생 개개인의 자아실현을 위하여 학습기회를 제공한다는 교육 본래의 목적에 비추어 볼 때 학생들과 관련된 정보가 교육 목적상 생성·수집·관리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기 위하여 생성된 학생들에 대한 개별적이고 다양한 정보들은 학생들의 인권이 보호되는 범위 내에서 소중히 다루어져야 한다. 이렇게 될 때만이 생성된 정보를 통하여 학생 개개인에 맞는 교육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게 될 수 있다. 이 정보들을 공유함으로 인하여 인권침해의 논란이 불거질 수 있으나 학생 개개인의 포괄적인 인권신장을 위해서는 교육과정상 생성되는 다양한 학생들의 경험과 정보를 공유하고 적절하게 활용하는 것이 공교육의 발전의 디딤돌이 될 수 있다. 학교현장에서 생성·수집된 학생 정보는 학교생활기록부라는 규정된 양식에 맞춰 종합적으로 관리되고 50년 동안 보관하도록 되어 있다. 수기로 작성되고 관리되던 학교생활기록부는 6·7차 학교교육과정이 도입되면서 항목이 늘어남에 따라 점점 복잡해졌다. 이전처럼 수기로 규정된 양식에 기록하기가 어려워지게 되어 전국적으로 학교생활기록부를 전산화하여 사용하게 되었다. 학생들의 개인적인 이력서인 학교생활기록부의 전산화는 정보통신기술의 비약적인 발전과 함께 ‘수기 → SA → CS → NEIS → 교무업무시스템’으로 변화하였다. 수기로 작성된 생활기록부와 건강기록부에 전산화가 최초로 적용된 SA가 도입되었을 때만 해도 교단의 갈등은 없었다. 교육부에서 시행하기에 당연히 해야 되는 일로 알고 프로그램 사용법을 배우고 프로그램의 버그와 싸워가면서 전산 시스템을 사용하였다. 2002년 7월 전달 강사 연수 시 불완전한 프로그램에 대한 많은 문제점과 어려움을 지적하였으나 교육부가 무리한 강행을 시도했다. 2002년 8월에 실시한 NEIS에 대한 연수에서 사전 홍보부족과 완성되지 못한 시스템에 대하여 많은 일선 학교교사들의 불만이 쏟아지게 되었다. 처음에는 사용상의 어려움과 프로그램의 불완전함이 주된 원인이었지만 교총과 전교조에서도 반발을 하면서 점차적으로 개인정보보호, 인권, 법적근거, 보안 등과 같은 면이 부각되어 사회적으로도 점차 이슈화되었다. 교총과 전교조가 정책적인 면에서 각각 다른 입장-교총은 수정보완 후 시행, 전교조는 교무학사, 입학, 보건시스템 완전폐기-에서 반대를 표명하여 단위학교에서도 혼란과 갈등이 시작되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단위학교의 교육정보부에서 주도하여 생활기록부 및 건강기록부를 전산화하는 데 앞장섰지만 교육부의 일방적인 강행에 맞서 전교조가 강력히 반발하면서 단위학교에서는 NEIS 시행을 두고 교원 간의 갈등이 빚어지게 되었다. 1996년부터 학교에 정보화 도입 수기(手記) 방식으로 이루어져 왔던 학교행정 업무에 정보화가 도입되기 시작한 것은 사실상 1996년부터라고 볼 수 있다. 즉, 교육부가 1996년 8월 ‘교육정보화 촉진 시행계획’을 세워 21세기 열린 교육사회 및 평생학습사회 실현의 기반을 제공하고 교육의 국제 경쟁력을 높일 목표로 초·중등학교 종합정보관리시스템을 개발하여 초·중등학교의 정보화 사업을 추진하면서부터 본격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후, 1997년도부터 전국의 초·중등학교에서 학교생활기록부 관리 등 순수한 교육활동 외에 발생하는 교무/학사 업무를 종합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SA(Stand Alone)와 교원용 PC, 각 단위학교용 서버를 교내 전산망으로 연결하여 자료를 종합하는 UNIX기반의 CS(Client Server)시스템인 학교종합정보관리시스템이 개발·보급되었다. 이러한 1단계 정보화 사업의 완성이 이루어지지 못한 채, 학교행정 업무를 27개 분야로 구분, 시스템을 개발하여 2002년 9월 1일부터 초·중등학교에 적용하고자 한 것이 NEIS이다. NEIS는 기존에 운영되던 학교종합정보관리시스템(CS)이 학교 자체에 서버를 두고 관리하는 네트워크를 이용한 제한적 개방형 시스템인데 비해, Web을 이용한 개방형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교육행정정보시스템(National Education Information System : NEIS)의 시행을 둘러싸고 교육부와 교원단체 등을 통하여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졌다.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을 지지하는 측은 새 시스템이 수요자 중심의 교육행정 서비스를 실시하고 교육행정업무의 효율성을 크게 제고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 주장했다. 하지만 이에 반대하는 측은 새 시스템이 개인의 인권과 사생활을 침해할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정보인권, 개인정보보호, 정보 집적, 보안, 노동통제 및 교사의 업무 부담을 가중시킨다는 점을 들어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을 폐지하라고 주장했다. 이에 국가인권위원회는 교육적인 면보다 인권적인 측면만 고려하여 NEIS의 27개 분야 중 교무·학사, 보건 등의 분야는 NEIS를 사용하지 말고 CS를 보완 사용하라고 권고 결정을 내렸다. CS와 NEIS 문제점 비교 여기서는 CS와 NEIS의 문제점을 간략히 비교해보도록 한다. CS의 중요한 문제점은 7차 교육과정에 대한 지원이 되지 않으며, 교육정보부의 특정교사에게 업무가 가중되고, 정보보안과 자료관리가 매우 불안하다는 것이다. 특히 1997년부터 보급된 서버를 교체, 보수하려면 유지비용 또한 만만치 않다. CS시스템에서는 업무의 처리가 항상 서버가 있는 학교에서만 이루어져야 하지만, NEIS에서는 인터넷에 연결된 어떤 PC에서도 인증서만 있으면 가능하다는 점이 큰 차이를 보인다. CS시스템을 살펴보면 첫째, CS시스템은 2002년 9월 이후 패치 작업이 중단된 관계로 현재 고교 2학년 이하의 학생들에게 적용되는 7차 교육과정에 대한 작업이 프로그램 상 지원이 안 되고 프로그램의 오류로 인한 잦은 패치에 따른 불안감으로 자료의 신뢰성이 떨어진다. 둘째, CS시스템은 Unix체제의 전문 프로그래밍에 의한 것으로 각 학교에 전산학을 전공한 교사가 거의 없는 현실에서 특정 1, 2명의 운영자에 대한 업무 부담이 지나치게 높고 운영자를 포함하여 사용자 연수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운영자가 전출 갈 경우 운영상의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셋째, 단위학교 내에 서버를 두고 네트워크를 이용하는 제한적 개방형 프로그램으로 Unix시스템에 대한 전문지식 부족으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정보 유출에 대해 매우 불안정하다. 자료나 서버에 이상이 있을 경우 유지보수업체 직원에게 일임하여 처리하고 단위학교에서 그 책임을 진다. 넷째, 1997년부터 보급한 CS서버는 이미 서버의 대략적인 사용연한인 4~5년을 넘었기에 현 시점에서 CS를 사용하려면 대부분의 학교에 서버교체 및 유지보수비용이 필요하다. 다섯째,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표한 개인인권침해 소지는 사실상 CS시스템에서 더 가능하다. 반면에 NEIS는 첫째, 각 단위학교에서 모든 교사가 PC로 인터넷에 접근하여 사용하는데 H/W적 지원이 다소 미흡하다. 교사들의 PC 상태와 인터넷 전용선의 속도가 제대로 지원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둘째, 개인 인증서를 사용하여 주어진 권한에 따라 각 개인의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데 인증서를 사용하지 않고는 누구라도 그 업무를 대신할 수 없다는 데 부담을 느끼는 교원들이 존재한다. 셋째, 학년 초나 학년말, 시험기간 등에는 업무가 몰려 접속이 폭주할 우려가 있다. NEIS 운영과 관련된 쟁점사항 NEIS의 운영과 관련해서 그 동안 갈등을 빚어왔던 쟁점사항들을 교육적인 면에서 분석해보면 정보인권, 법적인 근거, 정보 집적과 관련된 문제로 정리해 볼 수 있다. ① 정보인권 정보인권 측면에서 보면 수기를 포함하여 기존의 학교생활기록부 양식을 전산화해서 사용하고 있는 S·A, CS, NEIS의 경우 모두가 공통적으로 문제점을 포함하고 있다. 문제점으로는 담임교사의 교무수첩에만 기록되어 은밀히 관리되어야 할 각종 개인적인 정보들이 인터넷상에 올려서 개인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쉬워진다는데 대한 반감이 크게 일어난 것이다.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학교생활기록부의 양식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를 하여 개인적인 인권이 침해되는 항목은 모두 삭제하였다. 이를 통해서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하게 될 정보를 구분하고 정보의 기술 범위와 수준, 정보의 획득 방법과 관리에 대한 책임에 관한 기준이 재정립되는 계기가 되었다. ② 법적근거 NEIS 운영의 근거로는 전자정부법 제8조(행정기관 업무의 전자적 처리), 교육기본법 제23조(학교정보화), 초·중등교육법 제25조(교육부 장관이 정하는 기준에 따라 학교장의 학교생활기록부 기록, 관리), 전산처리지침, NEIS 운영 지침 등이었지만 법적인 근거 미비와 관련된 시비에 휘말렸다.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현재 불명확하게 규정된 상위의 법률적 근거와 하위의 지침(교육부 훈령)에 명시된 학교정보화 및 교육행정정보화 근거, 학교생활기록부 기록과 관리 책임 및 방법, NEIS 운영에 따른 이용 주체들과 관련된 역할분담과 책임과 관련된 사항들을 보다 더 명확하게 상위의 관계법과 시행령의 조문에 명문화하여 포함시켜야 했다. 관련법 또한 미비한 점을 현실에 맞게 개정해 법적인 논란을 종식시켜야 하며, 현재 이에 대한 법적 근거는 보완이 이루어진 상태이다. ③ 정보 집적 NEIS에서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된 정보가 학교 담장을 넘어서 시·도교육청 서버에 정보가 집적되어 관리된다는 점 때문에 운영주체인 시·도교육청과 교육부가 임의의 목적으로 정보를 활용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학교생활기록부의 기록, 관리의 책임주체(학교장)와 시스템 운영주체(시·도교육감)의 구분과 공인인증서 기반의 능동적인 정보 접근 제한을 통하여 당사자의 동의 없는 정보에 대한 임의적인 접근 및 활용 가능성을 배제하였다. 교육을 위한 정보 공개 이뤄져야 우리나라 교육의 질 향상을 위해 교육행정정보와 관련한 패러다임을 특정 집단(학교, 교육당국, 교사)의 독점에서 전 국민에게로의 공개로 바꾸었다. 학생 개개인의 출결이나 성적 산출과정(수행평가 포함 각 단계 모두)을 해당 학부모님에게 공개해야할 뿐만 아니라 학교의 모든 학사업무에서 개인에 해당하는 것은 해당 학부모 개개인에게 공개해야 한다. 또한 학교 학생들의 전체적인 학업이나, 자격증 등 학업성취에 관한 통계 및 학교회계 등의 정보들도 NEIS를 통해 당사자들인 학생, 학부모, 교사에게 실시간으로 공개해야 한다. 즉, 증권시장의 공시제도처럼 학교별 학업성취 및 기타 통계를 정부 뿐 아니라 지역사회와 전 국민에게 실시간으로 공개해야 하는 것이다. 정보는 장롱 속에 꼭꼭 숨겨놓으면 종이뭉치에 불과하다. 반대로 다양한 정보가 모아져 경향성이 분석되고,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밑거름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 교육계가 안으로부터의 자기반성을 통해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학생 각자도 자신의 현재 위치를 파악하고 자신의 적성과 특기를 살려서 자신의 능력에 맞는 진로를 모색할 수 있도록 새로운 각오로 학업에 임해야 한다. 학사정보의 투명한 공개를 통하여 학생의 적성과 특기에 맞는 진로를 모색한다면, 해당 학생도 학부모도 납득할 것이다. 학교현장에서는 원하는 통계를 손쉽게 산출할 수 있어야 하며, 이러한 다양한 산출물들을 학교에서 직접 활용하고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에서는 이를 통하여 공교육의 발전을 제고할 수 있어야 한다. 통계의 대상은 학생의 성적, 자격증, 봉사활동, 수상경력 등 학업뿐만 아니라 민원업무를 기본으로 하여 학교의 연간학사일정, 월중계획표, 특기적성교육 운영현황과 지출내역, 학교교육과정, 육성회비 지출현황, 학교운영예산의 지출현황 등 거의 모든 항목을 대상으로 통계자료를 공개하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교육과정상 산출되어지는 결과를 활용할 수 있고 교육의 진정한 가치를 반영하는 입력 항목들을 개발해야 한다. 교육학자들은 이러한 정보들을 통해 교육개혁의 방안과 학교별 개선점들을 연구할 수 있을 것이며, 교육부는 효과적으로 단위학교를 지원할 수 있고, 학부모는 교육 수요자로서 진정한 권리를 획득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현재 학부모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할 수 있다. 대입전형자료로의 활용도 높아져 학교생활기록부가 전산화됨에 따라 대입전형 시 제출하게 되는 학생들의 자료인 학교생활기록부 사본을 개인별로 제출하던 방식에서 필요한 항목을 추출하여 전산자료로 일괄 제출하는 방식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전에는 학교생활기록부의 원본을 복사하여 원본대조필 도장 찍고, 학교장 직인 찍고, 스카치테이프를 붙여서 위변조를 방지하였다. 대입전형자료의 경우 교육과정의 변화와 대학의 자율적인 모집요강에 따라 필요한 자료도 점점 다양해지고 모든 학생들의 자료를 확인하고 점검하면서 CD로 일괄 제작하여 자료의 신뢰성을 인정받아 대학에 배포되었다. 그러나 2003년 10월 28일 교육부를 상대로 고교생 3명이 낸 ‘대입 전형자료 CD 제작·배포 금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여 학생들의 극히 개인적인 정보를 전국의 대학에 일괄배포를 하는 것은 인격권,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에 관한 권리, 정보관리 통제권을 침해하는 위법한 행위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것은 그동안 관례적으로 처리해왔던 대입전형 자료 CD 제작 배포에 대한 학생들의 개인정보를 보호해야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는 학생들의 개인정보가 필요이상으로 남용되는 것을 방지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NEIS를 이용하면 대입전형자료를 개인정보보호법을 위반하지도 않고 현재 문제로 지적되는 지원하지도 않는 대학에 일괄 배포되는 방식을 얼마든지 개선할 수 있다. NEIS를 거쳐 교무업무시스템에서 대입전형자료인 학생의 성명, 주민등록번호, 학적사항, 봉사활동, 수상, 인증, 성적, 행동발달, 종합의견 등의 자료를 추출하는 기능을 제공하고 개인별로 대입전형자료를 생성할 수 있도록 하여 지원하는 대학에 해당 고등학교에서 자료를 전송하고 대학에서는 다운받아서 활용할 수 있도록 하여 쉽게 해결하였다. 현장 배려 없는 정책은 거부감 불러 우리나라의 NEIS 시스템이 상부에서 행정의 필요성에 의하여 오로지 자료의 효율적인 관리라는 측면에서 개발되어 현장의 필요성 및 교육적인 배려가 없는 시스템에 대하여 현장에서 거부감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으며, 일부 교원단체에서는 이를 빌미로 하여 NEIS에 대한 전면적인 반대운동을 전개하여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의 현장적용이 난항을 겪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정보기술의 발전과 함께 사회 각 분야에서 정보화에 대한 수단 선택이 다양화되며 이와 함께 개인 인권의 존중과 보호 문제는 정보인권이라는 새로운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인터넷의 등장과 이용의 일반화에 따라 사회 제반 분야는 인터넷과 웹 브라우저를 활용하지 않고서는 해당 업무의 효율적인 처리가 어려운 상태로의 전환이 가속화되고 있다. 그 동안 우리나라는 정부의 초고속정보통신망 구축 노력과 각급 학교의 인터넷 환경 구축에 힘입어 정보통신 인프라 구축 부문에서는 OECD 국가들 가운데서도 선두 그룹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아 왔다. 이러한 국제적인 평가에 따른 정보통신 분야의 위상과는 달리 국내의 현실은 NEIS의 경우를 통해서 경험할 수 있었듯이 교육행정정보처리를 위한 효율적인 수단을 선택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다양한 주체 간의 갈등의 소지가 얼마나 많고 인식의 차이가 큰가에 대하여 확인하는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다양하게 표출된 문제점들이 있는 것은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시대의 흐름과 기술발전과 궤를 함께 해 왔던 사회의 진화단계를 반추해 본다면 수단을 선택하는 문제 자체를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이전 단계로 되돌릴 만큼 국내의 현실이 여유로운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할 것 같다. 한동안 앞서 나갔던 것으로 알고 있던 우리의 국가적 규모의 정보화 사업이 세계 각국의 전자정부 추진과 인터넷 기술을 활용한 사회 변혁 움직임을 계속 선도하지 못하고 오히려 이미 추월당했거나 당하고 있는 입장으로 급격한 위상 변화를 겪고 있고 지표상의 각종 평가에 이미 빨간불이 켜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그동안 정보통신 인프라의 개선에 교육현장의 행정정보처리의 효율화를 위하여 SA → CS → NEIS → 교무업무시스템으로 진화되어온 교육행정정보처리체제 또한 시행과 더불어 더욱 발전적인 모습으로 개선하고 혁신해야 할 필요성이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다. 교육행정정보처리체제 개선과 함께 또 다른 하나의 축으로 추진되어왔던 교육정보화의 노력 또한 보조적 S/W 개발 → 교육콘텐츠 개발 → 디지털 콘텐츠 개발과 DB 구축 단계로 진화되어 왔다. 그러나 이제는 교육정보화와 교육행정정보화를 서로 분리된 영역으로 인식할 것이 아니라, 교육의 질 개선을 통한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춘 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환경 구축이라는 측면에서 하나의 틀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학생들의 자료를 전자적으로 효율성 있게 처리하고 공개하는 것은 사회적인 요구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교무업무 시스템의 교육적 활용 및 개선에 관한 교육계의 교육평가적인 관점과 공교육의 발전을 위한 투명한 정보의 공개 차원에 대한 심층적인 노력과 연구가 필요하다. 2002년도에 나타난 NEIS에 대한 논란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정보사회의 발달에 따른 효율성뿐만 아니라 개인정보보호와 정보인권, 보안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모두가 정보지킴이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더불어 개인정보보호만 강조하여 교육의 위축을 가져오기보다는 생성된 자료를 이용하여 추출되는 각종 자료의 통계에 대한 공개를 통하여 학생들도 자기 자료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통해 자기발전의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것은 학부모서비스를 활성화됨으로써 한 걸음씩 접근해가고 있다. 교육적으로 활용되는 정보를 학부모와 함께 공유하여 학부모서비스를 통하여 학부모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주고, 자녀 교육에 대한 참여 기회를 확대하여, 자녀 교육에 대한 동반자적 협력관계를 구축함으로써 교육의 질과 공교육의 내실화를 통하여 신뢰도 향상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현 시점에서 참여정부의 교육정책을 평가하는 것은 다소 섣부른 감이 없잖아 있다. 교육정책의 속성상 그 효과는 장기적으로 나타는 경우가 많아 기존의 정책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를 예단하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난 8월 17일, 대통령 자문기구인 교육혁신위원회(위원장 정홍섭)는 2010년께부터 교육의 큰 틀을 바꿀 수 ‘미래교육의 비전과 전망’을 쏟아낸 바 있다. 여기에 대한 평가는커녕 비전 도출 과정과 내용에 대한 검토도 아직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여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한 평가는 수시로 이뤄져 왔다. 교육관련 학회와 교원·시민단체에서 구체적인 정책을 두고 숱하게 토론회를 해 왔고 교육부도 노무현 대통령의 교육 공약 이행 정도를 점검하고 있다. 나아가 차기 정부의 교육정책 방향을 수립하기 위해서 현 시점에서 참여정부의 교육정책을 평가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이미 유력한 대선 후보들은 참여정부의 공과를 토대로 자신들의 교육공약을 마련하고 있고, 당선자의 교육공약은 인수위 과정을 거치면서 향후 5년간의 교육정책으로 발현될 것이다. 참여정부의 교육정책 방향 민주당 후보로 당선된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는 그 기조 또한 김대중 대통령의 교육정책을 이어 받은 측면이 강하다.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참여정부는 교육정책도 같은 색채를 띠었는데, 뒤에 언급할 사립학교법 개정, 대입시 3불(不) 정책 고수, 무자격 교장공모제 도입 등으로 나타났다. 이는 ‘학교의 지배 구조를 바꿔 재집권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는 의혹을 받아왔고, 추진 과정에서 참여정부의 교육정책은 숱한 갈등을 초래했다. 참여정부의 교육정책은 출범과 동시에 발표한 12대 국정 과제가 그 청사진이 됐다. 따라서 참여정부의 교육정책 평가는 국정 과제 점검부터 선행돼야 한다. ‘교육개혁과 지식 문화 강국 실현’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교육 부문 국정과제는 ▲참여와 자치를 통한 교육공동체 구축 ▲공교육 내실화와 교육 복지 확대 ▲과학기술 교육의 질적 고도화 ▲창조적 문화 역량 강화 ▲문화적 창의성을 기반으로 한 문화산업 육성 ▲지식정보산업의 전면화 추진 등의 6개 목표를 내걸었다. 이 중 초·중등 교육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두 가지 항목으로 ▲참여와 자치를 통한 교육공동체 구축 ▲공교육 내실화와 교육 복지 확대를 들 수 있다. 참여와 자치를 통한 교육공동체 구축 항목은 다시 ▲교육정책의 입안 조정 평가 기능 등을 수행할 대통령 직속 법률 기구로 교육혁신기구 상설 ▲단위학교의 참여와 자치 확대를 위해서 교사회, 학생회, 학부모회 법제화를 핵심으로 하는 학교자치 기능 강화 ▲교육주체의 참여 확대 및 대표성을 제고하는 교육감, 교육위원 선출 방식 개선 ▲교육과정 편성 운영 등 단위학교의 재량 확대와 자율운영체제 확립 ▲대학 운영의 민주성과 자율성 강화를 위해, 교수회 법제화 및 교직원 학생회, 지역인사가 대학 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방향의 대학 지배구조 개편 등이 그 주요 내용이다. 공교육 내실화와 교육복지 확대 항목은 ▲공교육과 사교육의 역할을 재정립해 나가고 공교육 내실화와 함께 장·단기적인 사교육비 경감방안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 평준화 정책의 기조를 유지하는 한편 자립형 사립고, 특수목적고, 자율학교 등에 대한 실태 파악과 평가를 통해 본래 취지대로 운영할 수 있는 학교 정책 마련을 들 수 있다. 또 학벌 타파와 대학 서열 완화를 위해 ▲서울대 학부 정원의 단계적 축소 및 대학원 중심 대학으로 집중 육성 ▲국립대와 사립대 간 역할 분담 및 영역별 대학 특성화 ▲학력 차별 금지제도 도입 등 학벌 중심에서 능력 중심으로 다양한 정책 강구를 내세웠다. 교원의 전문성 강화 및 승진제도 개선을 위해 ▲적정 수업시수 법제화 등 교원의 전문성 신장 기반 조성 ▲교원 양성 임용체제 개선과 능력 중심의 승진제도 마련 ▲초빙제, 보직제 등 학교장 임용제도 다양화를 설정했다. 유아 및 특수아 학습권 보장과 지역 간 교육격차 해소를 위해서는 ▲유아교육의 공교육화와 특수교육에 있어 통합기조 유지 및 특수교육 기회의 실질적 확대 추진 ▲농어촌 도서벽지학교 지원 육성과 취약 계층에 대한 교육격차 해소도 공교육 내실화 방안의 세부 계획에 속한다. 참여정부의 이러한 국정 과제에는 행정 도시 이전으로 상징되는 분권화, 수월성보다는 평등성에 치중하는 기본 원리가 작동되고 있다. 교육혁신위원회의 역할 참여정부의 교육정책은 청와대, 교육부, 국회가 주도적으로 이끌어 왔다. 교육정책에 관여하는 청와대 기구로는 교육문화비서관과 대통령 자문기구인 교육혁신위원회를 들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12대 국정과제에서 밝힌 대로 법률 상설 기구인 교육혁신위원회를 설치했고, 1·2·3대 위원장으로 전성은 경남 거창 샛별중 교장, 설동근 부산시교육감, 정홍섭 신라대 총장을 각각 임명했다. 전성은 위원장이 이끈 전반기 교육혁신위는 ▲2008년 이후의 대학입학 제도 개혁 ▲직업교육 혁신 ▲교육과정 교과서 현대화 방안 제시를 주요 실적으로 내세울 수 있다. 이 중에서 2008년 이후의 대학입학제도 개혁 방안이 가장 큰 파급력을 가졌다. 대학입시에서 내신을 주요 전형 요소로 삼고, 수능시험 성적도 점수 대신 1~9등급만 제공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대입시 개선 방안은 ‘방향성은 옳지만 현실과 맞지 않다’는 비판 속에 지금도 갈등 요인을 안고 있다. 가장 큰 비판은 학교 간 교육격차가 엄존하고 학교 간 차이를 반영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내신이 객관성을 가질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수능 등급만으로는 변별력을 갖지 못해, 대학이 대학별 고사 등 본고사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설동근 위원장의 후반기 교육혁신위원회는 교원정책개선특별위원회를 구성해 교원승진규정 개정, 무자격 교장공모제와 수석교사제 도입 등을 골자로 하는 교원정책개선방안을 청와대에 보고했다. 이 과정에서 전문가 그룹으로 구성된 교원정책 개선 특위가 부결시킨 무자격 교장공모제 방안을 교육혁신위 전체회의에서 통과시켜 논란이 일었고, 교육부는 이 밑그림을 토대로 추진하고 있다. 자격증 없어도 15년 이상의 교육경력만 있으면 교장 직에 공모할 수 있는 ‘무자격 교장공모제’는 교단의 핵심 논란거리였다. 전교조가 주장하는 교장선출보직제의 변형인 무자격 교장공모제는 9월 시범 실시를 앞두고 전국 41개 학교에서 공모 과정을 거쳤다. 하지만 교장공모과정에서 숱한 잡음을 발생시켜 유능하고 젊은 교장으로 교단을 혁신한다는 교육부의 취지와는 달리 교단이 정치판화 되는 것 아니냐는 교총의 우려가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교장공모제와 더불어 수석교사제가 올해 하반기 국·공립학교에서 처음으로 시범 운영된다. 1981년 한국교육개발원이 제안한 이래 25년간 교총과 교육부가 네 번이나 도입을 합의한 이력이 있다. 교육부는 상반기 중 구체적인 수석교사 도입방안을 마련, 시범학교를 선정해 9월부터 1년간 시범운영 하고 확대여부를 결정할 계획이었지만, 연구결과가 늦어져 시범실시가 늦어지고 있다. 첫 주민 직선 부산교육감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중도 하차한 설동근 위원장 후임에 신라대 정홍섭 총장이 올해 2월 9일 임명됐다. 정 위원장 체제는 앞에서 언급한 교육비전과 전망을 발표했다. 비전에는 ▲2010년부터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2~3개 학년을 묶어 하나의 학년으로 정하고 교육하는 교육학군제 도입 ▲장기적으로 교대와 사대를 폐지하는 대신 교원전문대학원을 설립해 그 졸업자에게 교사자격증을 주는 방안 ▲교사가 5, 10년 등 일정한 기간마다 규정된 연수를 받고 평가를 통과해야 교사자격증을 갱신해 주는 방안 등이 담겨 있다. 하지만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되고 법률 개정을 동반해야 하는 이런 파격적인 방안들이 제대로 된 의견수렴 과정도 없이 임기 몇 달도 채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발표됐다는 점에서 실현 가능성은 약할 것으로 보인다. 잦은 장관 교체, 정책 일관성 상실 “교육부총리는 대통령과 임기를 같이 하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초기 약속이 무색하게 벌써 여섯 번째 부총리가 바뀌었다. 잦은 장관 교체는 정책의 일관성 유지를 어렵게 할 뿐만 아니라, 업무를 파악할 만하면 물러나게 돼 소신 있는 정책을 펼 수 없게 만든다. 이런 우려는 현실로 나타나 지금까지의 부총리들은 한결같이 ‘소신보다는 정권 눈치만 본다’는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재경부장관 시절 “판교에 학원 단지를 건설하겠다”는 발언으로 곤욕을 치를 정도로 시장주의자로 손꼽혀온 김진표 부총리는 고교평준화 제도의 보완책으로 추진돼 오던 자립형사립고 확대에 반대하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해 눈총을 받았다. 김신일 부총리도 ‘학자 시절 대학의 자율성을 강조했던 철학은 팽개치고, 3불 전도사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김진표, 김신일 부총리 모두 ‘자신들의 소신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변하고 있다. 유독 안병영 전 부총리는 대통령과의 설전에서도 고집을 꺾지 않아 수능 9등급제를 유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4년 8월 교육혁신위원회가 2008년 이후의 대입제도 개선안을 확정할 무렵, 수능등급제를 두고 대학 - 교육부 - 청와대 간에는 견해차가 컸었다. 표준점수제에서 등급제로 변경할 경우 변별력 약화를 우려한 대학은 15등급,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청와대의 이정우 정책기획위원장, 문재인 시민사회수석 등은 7등급, 교육부는 절충안인 9등급제를 주장했다. 임기 내내 사학법 갈등 사립학교법 개정은 참여정부 내내 논란을 일으켰다. 개방형 이사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사립학교법 개정안은 참여정부의 대표 개혁입법으로 여겨져 이에 찬성하는 열린우리당과 민노당, 반대하는 한나라당 편으로 전 국민을 분열시켰다. 2005년 말 사학법 개정안이 통과된 이후 국회는 파행을 거듭해 왔고, 급기야 지난 7월 3일 개방형 이사회 구성 요건을 변경하는 쪽으로 재개정했다. 사학법 재개정안은 개방형 이사 추천위원회 구성과 관련해 일반사학의 경우 학교운영위(또는 대학평의회)와 이사회 추천 비율을 6대 5로 정해 학교운영위측이 과반을 차지하도록 하되, 종교사학의 경우 이사회에 해당하는 종단이 과반을 점하도록 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사학법인연합회는 재개정된 사학법에 대해 헌법소원을 새로 제기하기로 해 사학법 갈등은 새 국면을 맞았다. 재개정된 사학법 또한 개방형 이사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임시이사제도를 교육부와 산하 사학법인분쟁조정위원회의 주도 하에 운영되도록 규정해 위헌성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반쪽 된 교육자치 2006년 12월 7일 교육감·교육위원을 주민이 직접 선출하고, 시·도교육위원회를 폐지하는 대신 시·도의회의 특별상임위원회 형태로 편입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지방교육자치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에 따라 올해 2월 14일 전 주민이 선거인단이 돼 부산시교육감을 선출했다. 2010년 6월 31일 치러지는 지방선거에서는 모든 교육감들이 동시에 뽑히게 된다. 교육감·교육위원 주민직선제는 대표성 확보와 주민의 교육 참여를 극대화한다는 차원에서 교육계가 오랫동안 염원해 온 사항이다. 그러나 시·도교육위원회가 폐지되고 시·도의회의 특별상임위 형태로 편입되게 됨에 따라 교육이 일반 행정에 종속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됐다. 교육행정학회는 “지방교육자치는 교육자치라는 영역적 자치와 지방자치라는 지역적 자치가 결합한 형태로서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을 구현하기 위한 것이라고 헌법재판소가 2003년 판결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지방교육자치법 개정은 집행기관의 자치만 남겨두고 의결 기관 자치를 폐지하는 것으로 교육자치를 규정한 헌법 정신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해석이다. 아울러 “교육위원회가 폐지될 경우 교육은 지방정치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고, 교육예산은 정치적 흥정과 선거공약 이행수단으로 전락해 교육의 미래를 보장받기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교원평가, 성과급 확대 적용도 논란 이외에도 초·중등 교원평가 도입, 성과금 차등 폭 확대 실시도 논란의 중심에 있다. 교원평가 도입은 2004년 2월 서울 진선여고를 방문한 안병영 부총리가 실무진과의 충분한 협의 없이 즉흥적으로 발언한 것이 직접적인 도입 계기다. 교원평가를 사이에 두고 적극 도입을 주장하는 교육부와 학부모 단체, 이에 반대하는 교원단체 간에는 좁혀지지 않은 간극이 존재하고 있다. 성과급 확대 실시도 마찬가지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두 번 지급하던 방식을 올해는 한번으로 횟수를 줄여 지급한다는 방침이지만 차등 확대 폭을 두고 전전긍긍하고 있는 실정이다. 교원평가와 마찬가지로 성과를 도출한 교원에게는 더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발상이지만, 성과를 측정할 수 있는 논리와 도구를 제시하지 못해 설득력을 잃고 있다. 空約된 ‘GDP 6% 교육재정 확보’ 노무현 대통령은 ‘교육재정 GDP 6% 확보’를 선거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지난 4년간 교육재정은 4.9%에 그쳤다. 또 재임기간 동안 교육여건을 OECD 평균 수준으로 만들겠다고 했지만 학급당 학생 수나 교사 1인당 학생 수는 OECD보다 20년이나 후진적 상황에 머물러 있다. 학교 운영비가 부족한 교실에서는 전기료 낼 돈이 없어 찜통 여름에도 에어컨을 가동하지 못하고, 심지어 복사 용지까지 학부모에게 구걸하는 실정이다. 교육청에서 예산 지원을 기대할 수 없는 학교장은 지방자치단체장들을 찾아다니며 시설비 마련을 읍소하고 있다. 앞서 밝힌 대로 참여정부는 12대 국정과제서 교육정책의 방향을 제시했고, 실제로는 더 광범위한 분야의 다양한 정책들이 추진됐다. 하지만 지면 관계상 초·중등 교육의 극히 한정된 부문에 대해서만 언급했음을 밝힌다.
조국의 주권을 되찾은 해방의 기쁨과 함께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 전 해인 1947년 11월 23일에 조선교육연합회가 태동하여 정부수립 다음해인 1949년 2월 7일에 대한교육연합회로 변신하여 수많은 역경을 딛고 발전을 거듭해 오다가 1989년 5월에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라는 거대한 조직으로 성장하여 이제 회갑을 맞게 되었으니 감회가 새롭다. 16개 시·도의 지역조직과 5개의 직능단체, 산하단체 25개를 두고 교원의 지위향상과 교직의 전문성 확립을 기함으로써 교육의 진흥과 문화 창달에 기여하고 있는 한국교총은 명실 공히 건실하고 튼튼한 교원단체로 발전해 왔으며 올해는 사상처음 보통교육을 담당하는 교사가 회장으로 당선되어 학교현장에 근무하는 많은 교원들이 현장과 한발 가까워진 교총으로 변화되길 기대하고 있다. 과거를 되돌아보면 하나의 교원단체로 안주하면서 관변단체였다는 비판의 소리도 있었고 현장교원과 거리감이 있었던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그러나 1999년 전교조의 합법화와 한꺼번에 3년이나 정년단축이 되면서 학교현장은 반목과 갈등으로 얼룩졌고 안정이 흔들리면서 복수의 교원단체가 생겨나 경쟁의 대열로 들어선 후 수년이 흘러오면서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많은 발전과 변화를 가져왔다고 본다. 60주년이라는 큰 고개를 넘으면서 어떻게 하면 한국교총이 환골탈퇴하면서 교권회복을 주도하는 새로운 교원단체로 전환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몇 가지 생각을 피력해 보고자 한다. 첫째, 나무가 튼튼하게 잘 자라려면 실뿌리가 건강해야 하듯이 학교단위 1만 1000여 분회의 활성화 방안을 마련하여 단위학교 분회조직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켜야 한다. 학생과 학부모로부터 존경받는 교육자 되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둘째, 이벤트성 행사보다는 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주며 선생님을 따르는 참다운 스승의 길을 가며 학교현장에서 보람을 맛보는 단체로 학교현장교육을 주도하는 교원단체에 초점을 맞추어 현장의 조직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셋째, 교총회원의 교권(권위)을 회복하도록 자정노력과 함께 현장지원에 교총이 앞장서서 단결된 모습으로 수석교사제 실시 관철, 무자격교장공모제 철회, 공무원연금법개정저지, 교육재정 GDP 대비 6% 확충 등 현안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넷째, 젊은 교사가 교총의 매력에 푹 빠져서 회원가입에 줄을 서도록 교총이 더 젊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젊은 선생님들이 보람을 찾을 수 있는 체질개선이 필요하다. 즉, 연령층이 골고루 분포되는 조직으로 구성원이 모여야 교총 발전에 활력소가 될것이라고 본다. 교총의 조직과 운영방안을 전반적으로 재검토하여 비대한 조직은 단순하면서도 튼튼한 조직으로 체질개선을 하고 세대 간의 요구조건을 반영하여 건실하고 튼튼한 조직으로 교총회원 모두가 보람과 만족을 느낄 수 있는 조직으로 대 변신을 꾀하여야 할 것이다. ‘좋은 교육, 좋은 선생님’이라는 교총의 정신이 학교현장에 정착되도록 항상 현장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서 그 동안 교총의 수많은 업적이 더욱 빛나도록 하고, 새로운 정책개발로 회원에게 힘을 실어주고, 선생님들이 학생 앞에서 가슴을 활짝 펴고 신바람 나게 가르치는 학교현장을 만드는 데 교총이 밑거름이 되어주어야만 한국교총의 앞날은 더욱 밝아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축하합니다. 축하합니다. 교총의 육순을 축하합니다. 짝짝짝.” 한 생명이 태어나 자라서 결혼을 하고, 새 가정을 이룩해 낳은 아이가 성장해 결혼한 뒤에 한숨 돌리는 나이가 육순이다. 어린아이가 성장하여 부모 일을 계승할 때까지의 약 30년 기간을 1세대라고 한다면 정확히 2세대를 산 시기다. 강산이 두 번 변한다는 60년 동안 불귀의 객이 되지 않고 온전하게 육순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은 분명 행복한 일이다. 더군다나 자기가 이룬 세대의 후손들에게 육순 잔치상을 받는다면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일 터이다. 한 개인의 가족사도 이렇게 영광스러울진대 하물며 20만 교원의 식솔을 거느리고 있는 대규모 단체가 육순을 맞았다면 박수를 한 바가지로 받는다 해도 모자랄 것이다. 1947년의 격변기에 태어나 세대가 두 번 바뀌는 동안 수많은 외풍을 견디면서 교총이라는 단체를 굳건히 지켜왔다는 사실만으로도. 크고 작은 신생단체가 하루에도 수십개씩 생겨났다 사라지는 다변화 시대에 육순이 되도록 오직 외길만을 고집한 장인정신만으로도. 1900년대와 2000년대에 걸쳐 그 이름을 고수하며 60년을 버티고 있는 단체는 아마 우리 교총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60살이면 귀가 순해진다는 이순(耳順)이다. 耳順은 논어의 위정편에 나오는 고사 ‘六十而耳順’에서 나온 말이다. 귀가 순해져 사사로운 감정에 얽매이지 않고 모든 말을 객관적으로 듣고 이해할 수 있는 나이라는 뜻이다. 우리 교총이 耳順의 뜻풀이처럼 그런 나잇값을 하는 단체가 됐으면 좋겠다. 60년이라는 녹록치 않은 세월동안 쌓아왔던 노하우와 혜안을 바탕으로 진정으로 20만 회원뿐만이 아닌 40만 교사들의 든든한 대변인이자 후견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솔직히 교총은 격동의 시대를 홀로 고군분투하며 이룩해낸 교육적 성과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후발 주자인 젊은 단체에 밀려서 제대로 자리매김을 받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오죽하면 모 포털사이트에 ‘교총과 전교조의 차이점’이라고 검색하면 교총은 전국 교장이 주축인 연합단체, 전교조는 전국 평교사가 주축인 단체라고 나올까? 이런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교총은 40만 교사를 위해 발 벗고 뛰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6·25동란, 4·19혁명, 5·16군사정변, 5·18민주화 운동의 격변의 시대를 거치며 교원들을 위해 땀 흘렸던 그 동안의 성과를 다시 부각시키고, 다른 단체에 비해 행동력이 부족하다는 그 오점을 보완하여 명실상부한 최고의 단체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 땅의 교사들이 한목소리로 호소하는 고통은 무엇인가?”, “교사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벙어리 냉가슴 앓듯 가슴만 치고 있는 일은 없는가?”, “선생 해먹기 정말 힘들다고 하는데 왜 한결같이 그런 소리가 나오는가?” 그 어떤 일보다 먼저 교사들의 아픔을 1순위에 올려놓고 해결해주는 교총이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이번에 당선된 신임회장이 교권을 보호하기 위해 ‘교권 119’를 출범시킨 것과 ‘현장교육지원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움직이는 교총의 모습을 표방한 것은 두 손 들어 환영할 일이다. 60과 교총의 심벌이 어우러져 역동적이며 진취적인 이미지를 표현했다는 한국교총창립 60주년기념 엠블럼처럼 도전적이며 활기찬 교총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이 땅의 40만 교사들이 육순이 된 교총나무에 기대어 마음 편히 제자들을 가르칠 수 있는 그런 날을 그리며…
모든 단체와 조직은 많은 회원을 확보하고 조직력을 강화·촉진하기 위해서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변화하는 사회에서 조직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 시대 상황과 수요자의 요구에 맞는 치밀한 전략과 기획을 하고, 홍보와 조직의 기능 및 유연한 조직형태로 회원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하여야만 하는 것이다. 필자가 한국교총에 가입을 한 것은 30여 년 전 초임발령을 받았을 때 특별한 의미나 관심도 없이 그냥 교장선생님의 권유 때문이었다. 그것도 한국교총이 무엇을 하는 단체인지, 어떤 일을 하는지, 가입을 하여 어떤 혜택이나 도움을 받는 것인지, 고려해 본 일도 없다. 오랜 기간 동안 교원단체 회원이라는 것조차도 잊고 생활해 왔던 것이 어언 30여년이 넘었다. 그야말로 별다른 의식을 하지 않고 단체에 가입을 하여 남들이 흔히 한국교총이 승진자들의, 승진자들을 위한, 승진자들을 대변하는 어용단체로 활동을 한다는 이야기가 들려도, 한국교총이 어떤 일을 하는지 도통 알 수 없다고 넋두리를 하여도 계속 회원으로 유지하였던 것이다. 관료적인 제도와 정책을 개선하기 위해 참신한 새바람을 불어 넣는다며 참교육을 부르짖는 새로운 단체의 회유도 있었지만, 회원을 탈퇴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 본 일이 없었다. 그렇다고 특별한 혜택이나 도움을 받은 일도 없었던 것으로만 알고 생활해 왔다. 그래서 한때 가끔 함께하는 모임에서 교총을 비난할 때에 동조하기도 하고 회비만 내게 되어 회비가 아깝다며 목에 벌겋게 핏줄을 세워가며 열변을 토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필자도 모르고 경솔한 언행을 하였다는 점이 부끄러움으로 다가온다. 전국교육현장연구대회, 교육자료 전시회에 여러 번 출품하여 현장교육 연구보고서 작성과 자료제작 등으로 교실수업개선을 위해 노력을 해왔던 것이나, 교실현장에서 불의의 사고로 학교안전공제회로부터 경제적인 도움을 받았던 일, 또 스승의 날 동료 간 체육대회, 학습현장의 길잡이인 새교실, 교육전문 월간지 새교육, 교육관련 주간 신문인 한국교육신문 구독, 한국교육신문 e-리포터 활동하는 일 등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한국교총과 관련되지 않은 일이 없음을 어찌 부정할 수 있단 말인가. 또 필자가 무명교사나 회원들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많이 있음을 깨닫고 지난 해는 대전교총 부회장으로 입후보하여, 훌륭한 교육동지이며 선후배님들이 필자가 일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하여 대전교총부회장으로 활동하게 하였던 것도 모두 교총회원들인 것이다. 교총회원들의 교권옹호, 교권침해, 회원복지, 정책제언 등의 리포터 활동과 대전교총부회장 직을 하면서 평교사의 입장에서 비판과 대안을 제시하는 등 현장의 목소리를 정부나 교육부 또는 교육청에 확고히 전달하고 관철되도록 최선을 다하면서 어느 순간에 필자가 세월 따라 한국교총과 함께 활동중심에 서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올해로 한국교총의 역사가 60년이 된다고 한다. 중앙일보가 국내 25개 파워조직 영향력과 신뢰도 조사결과(2007. 7. 3) 한국교총이 영향력 13위, 신뢰도 13위로 1면과 8면을 통해 발표한 결과를 살펴보면, 한국교총이 주요 국가기관 및 기업체를 제외하고는 시민·사회단체 중에서는 사실상 1위를 차지한 것이나 다름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교총은 회원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 속에 국민과 사회로부터 신뢰받는 단체로 거듭나 오늘날과 같은 결과를 이루었던 것이다. 한국교총은 변화하는 지식기반 사회에서 시대 상황과 수요자의 요구에 맞는 치밀한 전략을 세우고 기획을 하여, 홍보와 조직의 기능 및 유연한 조직형태로 국민과 회원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켜줄 때 국민으로부터 더욱 사랑받고 신뢰받는 교원단체로 거듭날 수 있을 것임을 확신한다.
올해로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60주년을 맞이하였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 교육이 오늘날의 위치에 있기까지 그 역사적 시간을 함께 해온 것이다. 짧은 시간동안 우리의 교육은 역동적 소용돌이 속에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룩해 왔다. 그러한 성장이 가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의 중심에는 교총이 있었다. 이러한 기반을 바탕으로 이제 교총은 창립 60주년 및 33대 회장의 취임으로 또 한 번 새로운 도약을 시도할 시점에 있다. 현재 우리가 봉착한 여러 가지 교육 문제들에 대한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여 교육적으로 풀어나가며 교사, 학부모, 학생을 아우르는 국민적 단체로서 그 사회적 책무를 충실히 이행해 나가는 교총을 기대한다. 한국교총은 교원의 사회적·경제적 지위향상과 교직의 전문성 확립을 기함으로써 교육의 진흥에 기여하기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전문직 단체로서 우리 교육을 위하여 다각적 측면에서 노력하고 있다. 교사들에게는 교권을 확립케 하고, 교육적으로는 우리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며 공공선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오늘날의 우리 교육은 정치적 이념, 경제적 논리에 의하여 교육적 본질이 훼손되어가고 있고, 교사의 권위는 점점 낮아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에 교총은 공교육을 정상화 시키고 교사들의 사기를 진작시키는데 앞장서고 있다. 교육적 시안의 정책결정, 교사의 교권회복, 교사 연수 등 총체적 교육 활동을 통하여 우리 교육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교총은 이제 60주년을 맞이하여 한걸음 더 성숙한 교원단체로서 나아가야 할 때이다. 이에 교사 출신 이원희 회장의 취임은 그 의미가 크다. 교육 문제들은 학교 교실에서 시작되어 파생되어진다는 점을 생각할 때, 그 문제의 해결도 학교현장에서 찾아야 한다.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않은 졸속한 정책의 무리한 추진은 현재 우리 교육을 더욱 황폐화하는 데 기여해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에 현장 교사의 대변자로서의 이원희 회장을 중심으로 교총은 보다 교육적이고, 실현 가능한 교육적 해법을 제시, 추진함으로써 교육전문직 단체로서의 위상을 드높이고 우리 교육 발전에도 앞장설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교총의 힘은 바로 교사들의 단결과 화합에서 나온다. 교사 한 명 한 명이 현장에서 자신의 전문성을 확실히 확보하고, 학부모, 교사, 학생 교육 주체들의 신뢰를 다져 공교육의 중심인 교실을 바로 세우는 데 힘써야 한다. 또한 교사도 이제 교육정책에 대한 전문가로서 교실 중심적인 교육적 혜안을 찾기에 함께 관심을 가지고 협력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곧 우리 모두가 지향하는 우리 교육을 바로 세우는 첫걸음일 것이다. 교총은 지난 60년간 교사의 권익 옹호 및 교원이 반대하는 정책, 공교육의 위기를 심화시키는 정책을 막는 바람막이 역할을 행하며 우리 교육의 유지, 발전시켜왔다. 소극적으로는 교권 신장에 기여하고, 궁극적으로는 온 국민의 교육권 보장 및 교육의 질적 수준 향상에 기여해 온 것이다. 앞으로도 교총은 교사, 학생, 학부모 즉 교육의 세 주체를 포괄하는 국민 교육권 확보를 위하여 공교육의 질적 수준 향상, 교원지위 확보,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방향으로 그 역할을 확대해 나가길 바란다.
9월에 고창 선운사에 가면 진홍색의 꽃무릇이 한창임을 볼 수 있다. 백합목 수선화과 식물인 ‘꽃무릇’은 남부 지방의 절에서 심는 여러해살이풀로 ‘석산’이라고도 하고 ‘상사화’란 이름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상사화란 이름말이 붙은 연유는 잎과 꽃이 나오는 시기가 달라 서로 그리워한다는 데서 나온 이름이다. 그런데 이 꽃무릇이 선운사에만 피어 있는 게 아니다. 필자가 근무하는 교무실 앞 화단에도 성글게나마 피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누가 심지 않았는데도 몇 년 전부터 하나 둘 피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제법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점심을 먹고 난 나른한 오후, 가끔 동료들이나 아이들과 함께 가을 햇살을 받으며 꽃을 보며 정담을 나누기도 한다. 꽃말을 가지고 사랑과 마주봄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길 주고받기도 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교육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어느 때부턴가 우리나라에서 교육은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공교육과 교육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교사들에 대한 비판의 정도가 그 어느 때보다 심하다. 불신의 정도도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그 비판 속엔 애정이 담겨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교육에 대한 현실의 문제점을 이야기하면서 비판이 아닌 비난을 일삼고 있는 것이다. 헌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비난의 원인 제공이 교육정책 입안자들의 생각과 입에서 나오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사실 교육정책 입안자들은 엄밀한 의미에서 교육가가 아니라 행정가들이다. 그들은 뭔가 끊임없이 만들어내길 좋아한다. 가끔 개혁이라는 이름도 들먹인다. 그들은 그렇게 만들어 낸 정책들을 무조건적으로 현장에 적용하려고 한다. 효율성이라는 미명 하에 추진되는 정책 속엔 교사와 학생 간의 인간관계는 그다지 고려되지 않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물론 교육 행정가들의 일련의 정책들이 일면 나태함에 빠져있는 일선 현장의 교사들을 긴장하게 하는 효과도 있음을 안다. 그러나 문제는 현장의 목소리는 무시하고 무조건적으로 밀어 붙이려는 사고다. 아무리 그 정책과 이상이 좋을지라도 현장의 소리를 도외시하면 그 효과는 크지 않을 터인데도 말이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 교육은 꽃무릇처럼 잎과 꽃이 서로 떨어져서 언제까지 그리워만 하는 게 아니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가는 기찻길 같은 것이라고. 기찻길은 서로 마주보며 그리워하면서도 언제나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간다. 한쪽이 휘어가면 다른 한 쪽도 휘어 보조로 맞춘다. 상대가 지치면 팔을 뻗어 위안을 주기도 한다. 허면 기찻길의 철로는 무엇을 의미할까? 그건 교육정책 입안자와 교사가 될 수도 있고, 학교현장에서 늘 얼굴을 부딪치는 교사와 학생이 될 수도 있다. 또한 교총이나 전교조 같은 교원단체도 될 수 있다. 그런데 이 모두는 함께 가야 할 대상이지 서로 비난하고 시기할 대상이 아니다. 또 상대를 굴복시키고 굴복당하는 대상도 아님은 자명하다. 올해는 한국교총이 60주년을 맞이한 해다. 60년이면 강산이 여섯 번은 변했다는 소리이다. 그 60년의 세월 동안 우리 교육현장은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 그 변화의 물결 속에서 우리 교육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교총이 이순(耳順)의 나이에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교총이 단순히 교사의 권익을 위하기보단 우리나라 교육이 나아갈 방향을 연구하고 제시하며, 일반 서민이나 저소득층 자녀를 위한 교육정책을 세워 그들에게 희망을 주었으면 한다”는 한 교감 선생님의 말로 그 답을 대신하면 어떨까 한다.
얼핏 보면 쉬울 것 같으면서도, 막상 하려고 들면 어려운 일이, 세상에는 의외로 많다. 시험 공부하는 학생들이 크게 공감하는 것 중에는, ‘시험보기 일주일 전부터 열심히 공부하기’가 있다. 리모컨에 이미 충분히 익숙해진 현대인들에게는 ‘리모컨 없이 텔레비전 채널 바꾸기’도 꽤 어려운 일이 되어 버렸다. 주식투자를 좀 해 본 사람들은 ‘주식으로 돈 벌기’가 어렵다는 것을 기회 있을 때마다 역설한다. 지적 재산권에 대한 의식이 희박한 풍토에서는 ‘컴퓨터 CD, 정품으로 구입하기’가 엄청 어려운 일에 속한다. 또 있다. 호사가(好事家)들에 따르면, ‘다리가 아름다운 여성의 각선미를 30초 동안 쳐다보기’란 여간 어렵지 않은 일이라고 한다. 쉬울 것 같은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쉬울 것 같은 데 쉽지 않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사람들이 상식의 습속(習俗)에서 벗어나 살기가 어렵다는 것을 말하는 것 아닐까. 시험공부라는 것이 계획과 실천이 따로 논다. 당일 벼락치기가 되기 십상이다. 학생들에게는 이미 상식화 된 습관이 되었다. 또 리모컨 자체가 디지털 환경에서는 상식적 기구가 되어 버렸다. ‘주식으로 돈 벌기’는 남의 이야기일 때는 쉽지만 내 이야기일 때는 어렵다. 이 사실이 곧 상식인 것이다. ‘컴퓨터 CD를 정품으로 사기’는 교과서적 원리인지는 모르지만, 현실 삶의 상식과는 거리가 멀다. 아무리 각선미(脚線美)에 정신을 잃는다고 해도, 아직은 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의 윤리가 우리의 상식임을 보여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고백하기’는 쉬운 일일까, 어려운 일일까. 쉬운 듯 어려운 일일까, 어려운 듯 쉬운 일일까. 흔히 방송에서 보면, 사람들은 ‘고백하기’를 다반사로 한다. 특히 ‘이성에게 고백하기’ 같은 것은 아주 쉬운 과업으로도 비치는 것 같다. 물론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어려운 일로도 인식되지만 말이다. 분명한 것은 ‘고백하기’를 만만히 보는 쪽으로 세태가 변화된다는 느낌이 든다. 고백이 변질되는 것일까. 가수 송창식이 불렀던 1970년대 노래 가운데 맨 처음 고백이라는 노래가 있다. 유행하던 그때는 잘 몰랐었는데, 지금 다시 웅얼거려 보니 다분히 그 때 그 무렵의 사회적 분위기와 정서가 느껴진다. 말을 해도 좋을까, 좋아하고 있다고 / 마음 한 번 먹는 데 하루 이틀 사흘 // 맨 처음 고백은 몹시도 힘이 들어라 / 땀만 흘리며 우물쭈물 바보 같으니 // 무엇을 고백했다는, 고백의 내용을 문제 삼는 노래라기보다는, 고백하기가 너무 힘이 든다는, 고백 그 자체의 어려움을 하소연하는 노래이다. 이런 노래가 널리 소통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일반인들도 고백하기의 어려움을 절실하게 느끼고, 그러한 고백의 심리적 분위기에 동조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이성에게 고백하기이든 아니면 다른 유형의 고백이든 고백은 어렵다. 고백하겠다는 마음을 먹는 것까지 가는 것도 쉽지 않으려니와, 설사 고백하기로 마음을 먹었더라도 실제로 고백의 행위를 실현하기까지 가는 데는 다시 엄청난 갈등과 머뭇거림의 난관이 놓인다. 어찌 그것이 단순한 어려움이겠는가. 고백이란 가장 진정한 자리에서 하는 말이다. 진정한 자리에 나를 세우기가 어려운 것이다. 무언가를 진정으로 고백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가. 뜯어보면 ‘고백하기’에는 참으로 복합적인 어려움이 엉켜 있다. 고백은 어렵기도 하고, 괴롭기도 하고, 막막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다. 고백은 스스로를 믿는 행위인 것 같기도 하고, 오로지 상대만을 믿는 행위인 것 같기도 하다. 아니 나도 남도 못 믿을 때, 최종적으로 나를 겸허하게 벼랑에 내세우는 행위가 바로 ‘고백하기’인지도 모른다. 고백은 스스로를 바로 세워 높이려는 행위이기도 하고, 동시에 자기비판의 십자가 위에 스스로를 처벌하는 것이기도 하다. 고백 자체는 사람의 일상의 상투적 영역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고백을 밥 먹듯이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고백을 어디까지 신뢰해 주어야 할 것인가. 오히려 고백은 특단의 그 무엇이라 할 수 있다. 요컨대 고백은 고백이기 때문에 어렵다. 모든 고백은 본질적으로 부끄러움을 토양으로 가진다. 또한 모든 고백은 자기응시(自己凝視)의 과정을 수반한다. 자기응시를 통해서 ‘부끄러운 자아’를 발견해 가는 것이다. 숨어 있던 부끄러움은 ‘고백’을 투과함으로써 비로소 단단한 자기 다스림의 세계로 승화한다. 윤동주 시인은 시 참회록에서 말한다.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이 순정한 내면의 언어를 읽는 순간, 우리는 해맑게 숙연해진다. 그런 점에서 모든 고백은 거룩하다. 아픈 마음으로 부끄러운 자아를 향하여 내 안의 눈을 뜨려고 노력한다는 점에서 모든 고백은 거룩하다. 고백이 거룩한 것은, 그것이 참회의 심정으로 말해지기 때문이다. 정치적 사회적 신념을 담은 양심의 고백일 때는 더욱 그러하고, 이성에 대한 사랑의 고백이라 하더라도 달라질 것은 없다. 한없이 자기를 낮추는 경지야말로 참회의 본령일진대, 참회에 가까운 사랑고백이 진짜 사랑고백인 것이다. 사랑을 고백한답시고 자기를 낮추기는커녕 돼먹지 않은 자존심을 앞세워, 돈이나 학벌이나 권력을 사랑고백 속에 담는다면, 그건 고백에 대한 모욕이다. 그런데 세간에는 그런 엉터리 사랑고백이 승리의 깃발처럼 세를 얻는다는데, 이는 고백의 타락이라 아니할 수 없다. 고백이 타락하면 타락하지 않을 것이 없다. 고백의 타락은 타락의 끝이다. 일찍이 고백록을 쓴 루소(Jean Jacques Rousseau)는 첫 페이지에서 이렇게 다짐한다. 자신을 돋보이려고 없었던 일을 한 줄도 보태지 않을 것이며, 부끄러운 것을 숨기려고 있었던 것을 한 줄도 빠뜨리지 않겠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는 고백록의 서두에서 부끄러운 참회를 보여준다. 소년 시절, 그가 의지할 데 없어 한 백작의 집에 기거하던 중, 그는 백작이 애지중지하던 물건을 훔치었음을 고백한다. 그뿐인가. 자신에 대한 백작의 신뢰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평소 자신에게 냉정했다는 이유로, 아무 죄 없는 한 소녀를 범인으로 덮어씌우고 일러바친다. 그 집에 고아처럼 의탁되어 있던 그 소녀는 루소의 무고(誣告)로 백작의 집에서 추방된다. 루소는 이 모두를 고백한다. 소년 루소가 질투하고, 주저하고, 후회하고, 번민했던 인간적 약점의 과정이 진솔하게 참회되어 있다. 루소의 고백록 서두에 나오는 이런 고백을 들으면서, 대부분의 독자는 고백록에 친화된다. 루소가 전하는 고백의 내용과 고백의 맥락에 대해서 한없는 신뢰를 가지게 된다. 비록 어떤 이데올로기적 편견을 가지고 있는 독자라 하더라도, 고백록이 주는 고백의 진정성에 대해서는 가슴을 열고 받아들이게 된다. 성 어거스틴(San Augstin)의 고백록 또한 자신의 죄를 적나라하게 토로하는 데서 고백의 떨림이 진솔하게 와 닿는다. 루소나 어거스틴이 고백록을 쓰기로 마음먹었을 때, 그들의 고백은 쉬운 것이었을까. 만만하고 호락호락한 것이었을까.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그의 반성적 인식을 그의 삶에서 참회하듯 소명하겠다는 것이 말처럼 그리 쉬웠을까. 주변을 둘러보면, 웬만한 고백은 만만하고 호락호락한 것처럼 보이게도 되었다. 그래서 ‘그까짓 고백쯤이야 나도 해치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게도 되었다. 고백하기는 밝은 조명과 잘 치장된 꽃다발과 막강한 미디어 매개에 의하여 찬란한 이벤트로 재탄생한다. 사랑고백만을 전문으로 해주는 이벤트 회사도 있단다. 최소한의 의지와 충분한 경비만 있으면 고백은 그 어떤 의전보다도 빛나고 당당한 이벤트로 재탄생한다. 고백의 주체인 ‘나’는 한낱 기표(記標)의 조각으로 고백하기의 껍질에 노출될 뿐이다. 이벤트로서의 고백은 한 장면의 가장무도회처럼 연출될 뿐이다. 참회의 마음[心田]이 없어도, 고백은 조명으로 빛난다. 아니 빛나는 것처럼 보인다. 진솔한 떨림을 안으로 배태하지 못하여도 무슨 잘못이 있으리오. 선거가 무지개처럼 걸려 있는 정치의 계절이다. 이 시간에도 고백의 자서전이 넘쳐 나지만 그 고백 속에 감동이 없다. 자기 자랑으로 일관하는 자서전에는 ‘고백’이 숨쉴 공간이 없다. 더러는 전지적 통찰자의 모양으로 과거의 시간을 재단하기도 하고, ‘이제는 말할 수 있다’라는 표정을 지으며 숨은 역사의 주인공인 양 당당하게 고백하기도 한다. 그러나 있어야 할 참회의 자리에 노회한 욕망들이 비집고 들어 와 있다. 지나간 스캔들을 덧칠하여서 괜찮은 로맨스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욕망을 향해 일로매진할 뿐, 희미한 회의(懷疑)조차도 머물지 않는다. 회의(懷疑)야말로 반성을 싹 틔우는 씨앗이 아니던가. 그래서 손바닥 뒤집기처럼 쉬운 고백들이, 사이비(似而非) 고백들이 천지에 난무한다. 참으로 고백은 어려운 것이다.
우리는 해방 이후 어려운 여건 속에서 헤쳐 나와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에 직면하고 있다. 어떻게 이와 같은 결과를 가져 왔을까? 필자는 여기에 대한 해답으로 우리 국민들의 근면성과 교육에 대한 열정, 즉 교육의 힘이었다고 단언하고 싶다. UN의 발표자료에 의하면 1953년 필리핀의 1인당 국민소득은 193달러였으며 우리나라는 132달러였다. 우리의 경제수준은 1960년대까지 필리핀보다 뒤졌다. 그러나 지금 필리핀과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많은 차이가 있다. 그리고 또 다른 예를 들자면 우리나라는 1960년대 1인당 GNP 규모가 가나(Ghana)와 동일한 230달러였다. 하지만 오늘날에 와서는 격차가 엄청나게 확대되었다. 두 나라는 모두 주로 농업경제에 의존해 왔고 반세기 가까이 식민통치 하에 살았었다. 그런데 수십 년이 지난 지금 가나를 포함한 서아프리카 국가들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빈곤한 국가의 부류에 속해 있다. 우리나라는 부존자원이 거의 없는 국가에서 현재는 무역대국으로 성장하였으며 이제 선진국 진입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발전상을 회고해 보면 1960년대, 수출입국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모든 국민들이 일심 단결하여 밤낮없이 일해 1964년 수출 1억달러를 달성하였다. 그 당시의 주요 수출상품으로는 외화벌이의 효자였던 가발을 비롯하여 합판, 면직 등 노동집약적인 경공업 제품들이었으며 세계 국가 중 수출 순위는 90위였다. 하지만 40여 년이 지난 우리나라의 수출액은 3260억 달러(2006년 통계)로 2700배 증가하였으며 세계 수출 순위는 11위다. 최근 수출 주요상품으로는 반도체, 자동차, 휴대폰, 선박 등으로 60년대의 수출상품과 비교해보면 엄청난 변화가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주요 수입상품으로는 원유, 반도체, 천연가스, 석유제품, 컴퓨터, 철강판 등으로 경제적으로 몇 단계 업그레이드되었다. 더구나 과거 우리나라와 생활수준이 비슷했던 아프리카의 가나, 우리보다 수준이 높았던 필리핀은 우리나라의 발전에 대해 지금 어떤 생각을 할까? 이와 같은 결과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 국민들의 근면성과 교육에 대한 열정이 가장 크게 작용되었다고 필자는 확신한다. 우리나라의 문맹률이 1% 미만이며, ‘도이치뱅크의 연구보고서’(2005년 8월)에서 한국의 인적자본 수준이 세계 6위라고 발표한 것은 지식기반사회인 오늘날 우리의 인적자원이 이러한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을 뒷받침해 준다. 그러나 최근 우리의 이웃국가인 중국이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면서 급속한 경제성장을 하고 있음을 주시하지 않을 수 없으며 아시아 경제대국인 일본은 1990년대 이후 침체기에서 빠져 나와 새로운 도약을 하고 있다. 요즘 세계 경제 환경은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으며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지 않으면 우리는 지금까지의 발전을 유지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오히려 뒷걸음치는 경우도 발생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남미의 아르헨티나, 온두라스 등의 국가들은 1900년대에는 선진국의 생활 경제 수준이었으며 특히 아르헨티나는 세계 7대 부국에 속해 있었다. 하지만 강대국의 흥망의 저자 폴 케네디는 ‘21세기 준비’라는 글에서 “아르헨티나의 몰락은 한 세기 이상 문맹률을 저하시켜온 교육이 파멸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대학은 난방이 없고 많은 공립학교 창틀에는 유리가 없다. 경력 10년의 한 초등학교 교사의 지난 여름(1990년) 월 소득은 110달러가 채 못 됐다. 주 10시간을 강의하는 부에노스 아이레스 대학의 부교수는 월 37달러를 받았다. 시립병원의 의사 월급은 120달러였다. 교사들은 교대로 남의 강의를 떠맡고 단축수업을 했는데 그것은 선생과 학생 모두가 교통수단이 여의치 못하기 때문이다”라며 아르헨티나가 몰락할 수밖에 없었음을 구체적으로 기술하였다. 1980년대에 실질소득이 감소하여 오늘날 대다수 남미 국가들은 10년 또는 20년 전보다 낮은 국민소득을 기록하게 되었다. 이러한 결과들을 볼 때 아프리카, 남미의 여러 나라들, 중동 및 동아시아 국가들은 천연자원이 풍부함에도 불구하고 인적자원에 대한 투자가 적어 발전 속도가 느리게 되었다. 역설적이지만 거대한 석유매장량의 보유나 많은 석유 외의 천연자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적자원에 대한 투자 없이는 경제적으로 발전할 수 없음을 시사해 준다. 이제, 부존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가 근면성과 교육의 열정으로 해방 후 최빈국에서 선진국 문턱까지 왔던 경험을 살려 다시 한번 도약하는 계기를 만들어야 할 때다. 우리의 인적자원으로 다시 도약해 보자. 그리고 세계를 한 번 더 놀라게 해주자. 이를 위해서는 교육에 대한 투자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교육재정을 GDP 대비 6%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육에 힘쓰지 않는 국가, 교육에 투자하지 않는 국가가 발전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우리 교육자 모두는 한마음이 되어 다시 한 번 도약하는 계기의 선두에 서서 투철한 사명감을 가지고 끊임없이 자기계발과 교육에 대한 헌신을 다짐하자! ‘교육은 百年大計’라고 하지 않던가. 우리 모두 앞으로 다가올 우리나라의 발전상을 그려보면서 노력하자. 스피노자의 ‘내일 지구의 종말이 와도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겠다’는 말과 같이 우리나라가 세계 속에서 우뚝 서는 그날까지 교육경쟁력 향상을 위해 최선을 다하자.
문명은 위생을 먹고 자란다 1884년 갑신정변의 주역이었던 김옥균은 ‘치도약론’이란 글을 쓴다. 이 글은 일종의 시정개혁서였다. 여기서 김옥균은 서양의 중요한 정책을 위생(衛生)과 농상(農桑)과 치도(治道)라고 말한다. 이 중에서 그는 치도가 가장 중요하다고 피력했다. 치도는 단순히 도로 개량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김옥균은 수십 년 이래로 괴질(怪疾)과 역질(疫疾)이 가을과 여름 사이에 성행해서, 한 사람이 병에 걸리면 그 병이 전염(傳染)되어 백 명, 천 명에 이르고, 죽는 자가 계속해서 늘어난 이유를 “거처(居處)가 깨끗지 못하고 음식물에 절제가 없는 것뿐만 아니라, 더러운 물건이 거리에 쌓여 있어 그 독한 기운이 사람의 몸에 침입하는 까닭”이라고 판단했다. 더욱이 김옥균은 외국 사람들이 조선에 대해서 논평한 말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한다. 조선에 다녀간 외국 사람들은 “조선은 산천이 비록 아름다우나 사람이 적어서 부강해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보다도 사람과 짐승의 똥오줌이 길에 가득하니 이것이 더 두려운 일이다”라고 말했다. 이런 외국인들의 반응에 대해서 김옥균은 “더러운 냄새가 사람을 핍박하여 코를 막아도 견디기 어려움의 탄식이 있으니, 실로 외국의 조소를 받을 일이다”라며 개탄하였다. ‘외국의 비웃음’을 받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국가의 부강을 위해서는 먼저 위생 문제가 선결되어야 한다는 것이 김옥균의 생각이었다. 비위생적이고 불결한 환경이야말로 야만국으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위생이 곧 국가의 부강과 문명의 첩경이라는 인식이 근대 초기 조선을 휩쓸었다. 오리엔탈리즘은 야만을 낳고 조선을 여행한 서양인들은 조선의 첫 인상을 말하면서 대부분 불결하다는 표현을 썼다. 1897년 일본의 나가사키에서 음악회가 열렸다. 영국 해군들과 상인 그리고 각국 사람들이 모여 음악회는 인산인해를 이뤘다. 그때 영국군의 장교가 조선에 대한 노래를 지었고, 이를 백여 명의 어린이들이 따라 불렀다. 저 바다 건너 나라 하나 있으니/ 세상에서 이 나라를 조선이라 하더라/ 그 나라 안에는 사람을 즐겁게 하고/ 정결하다는 말은 참 뜻을 모르더라/ 그 나라 사람들과 그 나라 사정을 말하려면/ 제일가는 문장이라도 이루 기록할 수 없더라/ 저 멀리 있는 조선 땅을 노래하려면/ 조선 생각이 시객의 비위를 역하더라/ 조선 갓은 확이 머리보다 적고/ 갓 도래는 어깨보다 더 넓더라/ 방에 불은 침상 밑에 피고/ 굴뚝은 땅에다가 구멍을 뚫었더라/ 모군군은 소리를 질러야 일을 하고/ 쉬는 시간은 일 하는 시간보다 더 하더라/ 담뱃대는 석자 기럭지를/ 저 먼 조선 땅에서 먹더라/ 군함들이 정한 나라에서/ 혹 며칠 동안 식 거기 가는데/ 영국 군함 피칵은 무슨 일인지/ 제물포에 가서 세월을 허비 하더라/ 다행히 제물포서 도망질 하야/ 한 번 나오면 다시 가기는 다 싫어하더라/ 아침이면 밝다고 하는 나라에/ 아무것도 사람을 즐겁게 할 건 없더라/ 원컨대 우리는 다시 동양에 있을 때에/ 그 흉악한 나라에는 가지 않게 하여 주오/ 이 넓은 세계에 사람을 즐겁게 할 것은/ 저 멀고 먼 조선 안에는 업더라. (독립신문 ‘외국통신’, 1897. 4 .6) 영국군이 지은 노래를 열심히 부른 일본 어린이들에게 조선이 어떻게 비춰질지는 명약관화하다. 노래 속에 투영된 조선의 모습은 철저하게 서양의 시선을 전제로 한다. 조선의 입장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들이 이(異)문화권의 영국인에게는 하나같이 비난의 대상으로 지적된다. 영국인이 조선을 바라보는 시선의 전제는 서양의 근대 문명이다. 도로, 복장, 위생, 시간, 기호품 등 서양에서 새롭게 만들어낸 사회적·문화적 제도의 틀로써 조선의 실상을 재단한 결과인 셈이다. 영국인은 조선의 문화와 풍속을 다른 문화권에 대한 ‘차이’의 관점에서 바라본 게 아니라 근대적 서구 문명이라는 단일한 관점에서 조선의 문화와 풍속을 바라본 것이며, 그 시선으로 투사된 조선의 표상은 ‘야만’인 것이다. 근대 초기 외국인들이 바라본 조선은 이렇듯 야만의 온상지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이때 독립신문 편집인의 반응은 영국인의 비난보다 더욱 주목할 만하다. 독립신문의 편집인은 앞의 노래를 게재한 후, “우리가 기록하니 조선 사람들은 이런 걸 보면 외국 사람들이 조선을 어떻게 생각하는 줄을 알고 분히 여겨 아무쪼록 남과 같이 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었다. 타자의 시선에 비친 조선의 모습에 대해서 독립신문의 편집인은 ‘분하게’ 여긴다고 말했지만, 그들에게 욕먹지 않기 위해서는 조선인들이 “남과 같이 되기를 바란다”는 말은 결국 서양인들처럼 되라는 명령인 셈이다. 서양이라는 타자(他者)의 거울을 통해 조선의 문화와 풍속은 철저하게 비판되었다. ‘서양인처럼 된다’는 말 속에는 서양인들이 지적한 조선의 문화와 풍속의 특성들을 모두 서양의 표준에 맞춰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서양의 표준이란 근대적 문명이며, 이 표준에 따라 조선인들의 모든 삶의 습속들은 ‘개량’되어야 한다. 결국 독립신문의 논조는 서양과 동일화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독립신문의 편집인들에게는 일종의 오리엔탈리즘의 역투사가 녹아 있었다. 특히, ‘외국통신’은 세계사적 지형에서 조선을 상대화하기 위한 객관적 역할보다는 ‘세계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비참하며 또한 우리는 얼마나 열등한가’를 반복적으로 주입하는 수사학적 전략으로 가득하다. 이는 독립신문뿐만 아니라 근대 초기 개화사상가였던 윤치호의 1887년 6월 26일자 일기에서도 발견된다. 윤치호는 중국 상하이의 거리를 묘사하면서, 중국인들이 “거처하는 방안의 더러운 냄새, 똥오줌 냄새는 사람으로 하여금 코를 가리게 한다. 그리고 식당 안에는 한 자리의 똥통을 놓아 더러운 냄새는 참으로 다른 사람이 맡을 수 없다”고 비판하면서, 그 비판의 화살을 조선으로 되돌린다. “우리나라 사람의 도로, 거처, 음식의 더러움이 지나인과 다를 바 없음을 아는 까닭이다. 이런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떨리고, 기가 막힌다”고 하였다. 서양인들은 이문화에 대한 차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철저하게 서양의 문명화 담론을 통해 조선의 풍경을 재단하였다. 선교사 알렌은 조선의 고유 풍속인 석전(石戰)을 “가장 야만스런 의식”이라고 거침없이 말했다. 서양인들에게는 조선의 한의학, 무당, 복장, 음식, 예절 등이 모두 야만의 표상으로 비춰졌고, 이 세상에는 존재할 수 없는 ‘악’으로 규정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의 시선이 아니라, 그들의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자기비하 하는 우리들의 모습이었다. 조선을 여행했지만, 조선은 없었다? 서양인들의 조선 기행의 하이라이트는 어쩌면 다른 곳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조선에 왔으나 조선을 보지 못했던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영국 ‘왕립지리학회’ 최초의 여성 회원이었던 이사벨라 버드 비숍의 발언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894년 그녀가 조선을 방문했을 때, 그녀의 눈에 처음 들어 온 것은 조선이 아니었다. “부산에 닻을 내리며 만나게 되는 것은 조선이 아니라 일본”이었다. 비숍뿐만 아니라 다수의 서양인들도 마찬가지였다. 비숍을 비롯한 다수의 서양인들은 조선의 풍경을 세세하기 기록하려고 애써 노력하였다. 그리고 서양인들의 글 속에는 조선의 순박하고 아름다운 풍경도 녹아있다. 그러나 그들의 시선의 중심은 어떤 면에서는 조선에 있지 않았다. 조선을 판단하는 근거는 조선 그 자체가 아니었다. 조선은 일본과 중국과 비교대상이 되었다. 서양인들이 조선인을 일본인과 중국인보다 우수하다고 말할 때조차도, 그들의 인식 속에는 이미 일본과 중국이 먼저 존재하고 있었다. 일례로 오페라의 유령을 쓴 가스통 르루는 1904년 제물포의 영웅들이란 르포르타주를 출간했다. 여기서도 짝퉁 제국주의 국가 일본은 문명화에 성공한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똑같은 동양이지만 조선은 지지리 궁상맞은 모습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처럼 조선의 풍경은 언제나 제국 사이에 존재했다. 서양인들은 일본과 중국, 즉 떠오르는 제국 일본과 몰락해 가는 구(舊)제국 중국을 프리즘으로 조선을 보았던 것은 아닌지. 그런데 더욱 문제적인 것은 서양인들이 만들어낸 조선에 대한 인식을 조선인이 조선을 바라볼 때도 사용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시안에서 우루무치까지 중국 실크로드를 다녀왔습니다. 시안[西安] 일대-천수-난주-가욕관-주천-둔황-투루판-우루무치를 거치는 일정이었습니다. 세계지도를 펴놓고 볼 때 이 일정은 실크로드 전체의 반에도 미치지 않는 짧은 거리입니다. 하지만 서쪽으로 달려 갈수록 눈에 띄게 달라지는 자연환경이나 사람들의 생김새는 ‘역시 실크로드다!’하고 감탄하게 합니다. ‘사막에서도 흰 눈이 덮인 산맥을 볼 수 있다’는 이야기를 수차례 듣고 사진으로 확인도 했지만 정작 두 눈으로 확인하지 않으면 그것은 하나의 가설일 뿐이요, 나와 상관없는 남의 집 이야기일 뿐입니다. 그렇게 뻣뻣했던 나그네에게, 감탄에 익숙지 않은 내게 실크로드는 말로 못할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새벽을 종착지로 해서 밤새 서쪽으로만 달리던 기차는 종착지에 다다를 무렵 드디어 저 멀리서 흰 눈을 뒤집어 쓴 채 나를 향해 비웃음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분명 코 앞에는 누렇고 메마른 사막인데도 말입니다. ‘어리석은 중생아, 세상은 네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넓단다’하는 가르침을 던져주었던 것이었습니다. 지금이야 에어컨이 설치된 버스를 타고 편안한 숙소에서 머물며 실크로드를 다닐 수 있다지만 그 옛날 척박한 이 땅에서 생활했을 사람들을 떠올리면 아찔합니다. 수많은 이름 모를 사람들이 열사의 사막에서, 훼방꾼의 침입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사라져 갔을 것입니다. 이제 한 해를 한 달여 남겨 놓은 이즈음에 순례자의 마음으로 실크로드로 다시 떠납니다. 그 속에서 우리 것, 우리 역사, 우리 문화와 관련한 것들을 찾아내고자 합니다. 실크로드의 시작 시안은 중국 고도의 한 곳으로 이곳에서부터 본격적인 서역으로의 여행이 시작됩니다. 중국의 절세의 미인이었다는 양귀비가 목욕했다는 화청지, 최초로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의 무덤과 병마용갱 등 볼 것 많고 들을 것 많은 곳이라 이곳 가이드는 중국에서도 1급에 속한답니다. 시안에서는 몇 인물을 떠올립니다. 먼저 진시황. 만리장성과 아방궁을 짓고 불로초를 찾아 영원한 삶을 누리고 싶었던 그였지만 정작 불로초를 찾아 떠난 신하들은 함흥차사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 또한 불로초를 얻을 수 없음을 미리 감지했을까요? 생전에 자신의 죽음에 대비해서 거대한 무덤을 만들었지요. 병마용의 호위 속에 그 무덤 속에서 영생을 누리고 싶었는지는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판 결과가 되어 버렸습니다. 거대한 무덤 바닥에는 수은이 흐르는 강이 있고 행여 침입자가 있을까 독묻은 화살을 설치해두고 자동 발사 장치까지 해놓았답니다. 그렇지만 정작 자신은 이미 죽은 사람일 뿐입니다. 하지만 무모하리만큼 파격적이었던 그의 스케일답게 그의 사후에도 그가 남긴 유적은 시안을 먹여 살리는 대표적인 관광지로 남아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으니 사후까지도 그 영향력이 참 대단한 사람이네요. 진시황이 중국 역사상 황제의 시발에 해당하는 위상을 갖는 과거의 인물이라면 양지발이라는 사람은 어쩌면 시안에서만큼은 진시황에 견줄 만한 현존인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는 진시황릉을 지키는 거대한 지하군단인 병마용을 처음 발견했던 사람입니다. 1974년 극심한 가뭄 끝에 우물을 파다가 우연히 발견한 병마용갱, 이것이 인연이 되어 그는 지금껏 박물관에서 자신의 책을 팔면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의 출근지는 박물관, 하는 일은 책에 사인하기. 병마용갱의 위력에 놀란 사람들은 병마용갱을 처음 발견했다는 이 사람을 보기 위해 몰려듭니다. 그의 책은 윤전기에서 쉴 새 없이 신문을 찍어내듯 팔립니다. 매일 매일 사인만 해주고 돈을 버는 사람, 그와 진시황과의 인연이 부럽습니다.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사랑이라는 현종과 양귀비의 파격적인 러브스토리는 지금껏 회자되고 있기에 충분합니다. 하지만 요즘의 기준이라면 양귀비는 미인 축에 들지 못할 것 같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녀는 시대를 잘 타고 난 것 같습니다. 중국 절세미인으로 잊혀지지 않고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비극적인 그녀의 죽음, 그래서 파격적인 러브스토리는 결국 윤리를 넘지 못했나 봅니다. 시안은 현장스님과도 인연이 깊습니다. 인도에서 불교를 공부하고 돌아온 현장이 그가 가져온 수백 권의 불경을 모셔두었던 탑이 시안 시내 자은사라는 사찰에 있는 대안탑입니다. 서유기의 삼장법사로 잘 알려진 현장에게는 신라승인 원측이라는 제자가 있었습니다. 원측에 대한 논의는 우리나라보다 중국에서 활발하게 진행 중이라고 하네요. 대웅전 뒤 위패를 모신 사당에는 원측의 위패도 볼 수 있으며 그의 사리는 흥교사라는 곳에 보관되어 있다고 합니다. 역시 인도를 다녀온 신라승 혜초 또한 이곳 장안에서 머물렀습니다. 원측과 혜초 스님을 비롯한 신라의 학승과 유학생들이 머나먼 장안까지 와서 국제화교육을 받았을 터입니다. 얼마나 많은 신라인들이 이곳을 찾아왔을지 모르지만 그들을 생각하며 고개를 조아려 봅니다. 시안 회족거리는 야시장으로 유명합니다. 이곳에는 서부 지역의 건조한 지대에서 많이 생산되는 견과류를 파는 가게가 가득합니다. 그 야시장에서 한글로 쓴 글귀를 봅니다. ‘고급곶감’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 옛날 이 당에 있었을 신라 사람들을 발견한 듯 반갑기 그지없네요. 경주에서 찾아낸 서역 신라는 황금의 나라로 유명합니다. 금관, 금 허리띠, 드리개, 귀걸이 등을 비롯한 신라의 황금문화는 북방 유목민족의 황금문화가 신라에 유입된 것입니다. 특히, 관모와 같이 사용했던 관식의 형태로 볼 때 고구려의 고분벽화에서도 나타나듯 신라와 고구려가 깃털이나 새 날개 모양의 장식을 즐겼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같은 관점으로 볼 때 장회태자묘 출토 사신도에 등장하는 조우관을 쓴 인물이 신라인이냐, 고구려이이냐에 대한 논란이 많습니다. 시안에 있는 산시성[陝西省] 역사박물관에는 이 사신도를 크게 확대하여 전시하고 있는데 마침 사신도 앞에 신라에서 발견된 서역인의 토용과 무척 닮은 토용이 자리하고 있어 심정적으로는 신라일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황금문화와 함께 유리제품이나 장식보검 등도 실크로드를 거쳐 신라에 직접 전래되었습니다. 미추왕릉 지구에서 발견된 장식보검은 철제 칼집과 칼은 썩어 없어져 버리고 금으로 된 장식만이 남아있던 것입니다. 이 유물은 시신의 허리 부분에서 발견되었는데, 자루의 끝부분이 골무형으로 되어 있고 가운데에는 붉은 마노를 박았으며 칼집에 해당되는 부분 위쪽에 둥근 무늬를 넣었습니다. 이러한 형태는 동양에서는 발견되는 일이 없어 신라의 대외교류를 짐작하게 하는 대표적인 유물입니다. 그 밖에 천마총에서 출토된 유리잔, 황남대총에서 발견된 유리병 및 유리잔 등 로만글라스라고 불리는 유리제품은 지중해 연안에서 출발하여 중앙아시아와 중국을 거쳐 신라에 전해진 서역물품들입니다. 특히, 황남대총에서 발견된 유리병의 경우 페르시아계 제품과 흡사하고 유사한 물품이 없어 서역에서 수입된 것으로 확실시되고 있습니다. 당시 신라와 활발하게 교역했던 서역계의 인물상도 남아 있습니다. 지난 호에 말씀 드린 괘릉의 석상과 함께 용강동에서 발견된 문관 토용(土俑), 미추왕릉에서 출토된 상감유리구슬 목걸이 등에서 신라인인 아닌 외국인의 모습이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경주 천마총은 천마도가 발견되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천마도 또한 북방미술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이 천마를 간쑤성[甘肅省] 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간쑤성 무위라는 곳에서 출토된 청동분마는 천마총의 천마와 매우 흡사합니다. 이 청동분마는 한쪽 발아래 제비를 밟고 있는 모습입니다. 천마가 얼마나 속도감 있는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한나라 무제가 그토록 갖고 싶어 했던 바로 그 천마로 한혈마(汗血馬)라고도 부르지요. 경북 칠곡에 있는 송림사에는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오층전탑이 있습니다. 1959년 이 탑을 수리하기 위해 해체할 때 탑 안에서 많은 유물들이 나왔는데 특히 사리장치는 신라의 황금문화와 서역의 유리가 만난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막고굴에서 생각해 보는 침탈의 역사 실크로드는 동양과 서양을 잇는 과도로서 대상(隊商)들이 만들어낸 길입니다. 그들이 목숨을 걸고 만든 길인 것입니다. 당시 로마를 비롯한 서양에서는 동양에서 넘어온 비단에 대한 관심이 대단했습니다. 그래서 대상들은 그 물건을 팔기 위해 위험을 마다하며 떠났던 것이죠. 실크로드를 통해 비단, 자기, 종이 등을 서쪽으로 전파시키고 동쪽으로는 향신료, 유리, 보석이 오갔습니다. 대상들은 곳곳에 있는 오아시스에 의지하여 몇 달 혹은 몇 년에 걸쳐 낙타를 이용해서 그 길을 오갔습니다. 이렇게 장사에 나섰던 캐러밴은 그 후 약탈한 문화재를 싣고 가는 낙타의 행렬로 이어지다 요즘은 관광객을 싣고 나르는 낙타의 행렬로 이어져 왔습니다. 실크로드는 많은 문화유산을 남겨 두었습니다. 생활용품과 무역품 외에 신앙과 관련한 유적지가 많습니다. 그 험로를 움직이는 일정 자체가 신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불교가 들어오면서 곳곳에 불교사원을 많이 남겨 두었지요. 하지만 실상 제자리에 남아 있어야 할 문화재가 제자리를 잃고 전 세계에 퍼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크로드에 불어 닥친 문화적 침탈의 여파입니다. 실크로드 문화유산에 대한 침탈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절정을 이루게 되는데 스웨덴의 헤딘, 영국의 스타인, 프랑스의 펠리오와 같은 이들이 중앙아시아 지역의 석굴 등을 뒤져가며 각종 문서 및 공예품 등을 수집해 본국으로 가져가기에 혈안이었습니다. 막고굴(莫高窟·둔황 석굴)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막고굴은 모래 우는 소리가 들린다는 명사산(鳴砂山) 동쪽 절벽에 석굴사원으로 천불동이라고 불립니다. 벌집처럼 구멍이 뚫린 석굴은 무려 천 년 동안 만들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막고굴이 있는 둔황[敦煌]은 수많은 장사꾼들이, 순례자들이 이곳에 휴식하며 재충전하던 오아시스 도시였습니다. 동서양을 잇는 통로로 한창 번성을 했던 실크로드는 점차 동양과 서양을 잇는 바닷길이 개척되어 가면서 그 경쟁력을 잃게 됩니다. 생존보장조차 없는 험난한 육로보다는 비교적 안전한 바닷길을 선호했기 때문입니다. 청나라가 기울어가는 혼란기였습니다. 막고굴에 머물고 있었던 왕원록이란 자는 이곳을 찾아온 각국의 탐험대에게 수많은 문물을 팔아버렸습니다. 그렇게 해서 귀중한 문서와 유물이 세계 곳곳으로 나눠지게 된 것입니다. 또 이곳에 머물렀던 백러시아 군인들이 동굴에서 숨어 지내면서 둔황문서를 불태워 추위를 막기도 하고 벽화에 조성된 금박을 떼어 내어 팔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막고굴의 역사는 번성과 쇠퇴를 거듭하면서 급기야 문화적 침탈을 받다 지금은 다시 세계 관광객들의 주목을 받으며 번성하고 있지요. 막고굴 17번 굴에서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이 발견되었습니다. 신라에서 태어나 중국에서 인도로, 중앙아시아로 험한 여정을 끝낸 그는 분명 앞선 국제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고향은 항상 아른거렸나 봅니다. 그가 남긴 망향가가 그의 심정을 대신해 주고 있습니다. 달 밝은 밤에 고향 길을 바라보니 / 뜬 구름은 너울너울 고향으로 돌아가네 / 편지를 봉하여 구름 편에 보내려 하나 / 바람은 빨라 내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네 / 내 나라는 하늘 끝 북쪽에 있고 / 다른 나라는 땅 끝 서쪽에 있네 / 해가 뜨거운 남쪽에는 기러기가 없으니 / 누가 내 고향 계림으로 소식 전해줄까 국제화시대라며 외국어 열풍이 식을 줄 모릅니다. 교통수단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면서 이제 전 세계가 성큼 가까워진 만큼 국제화에 대한 대비는 필수적이라 하겠습니다. 하지만 우리보다 앞서 국제화시대를 살았던 이들을 떠올려 봅니다. 앞선 국제인, 선구자였던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여행을 마치고 귀국하였습니다. 국적기를 타고 며칠 만에 받아본 우리나라 신문 1면에는 아직도 여행오기 전 읽었던 기사가 그대로입니다. 온통 책임론 타령이었습니다. 누가 잘 했고, 누가 못 했고…. 과거에서 현실로 돌아왔다는 증거입니다. 이 시대에 좀 더 거시적인 안목으로 세계를 상대로 정치를 펼치고, 물건을 팔고, 우리 문화를 알려야 할 때인데…. 다음 호까지 실크로드 기행이 이어집니다. 독자 여러분, 환절기 건강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