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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최효찬 | 경향신문 기자 호머가 지은 는 전쟁과 인간사를 그린 대서사이지만 여기에는 명가의 조건과 리더십의 덕목이 고스란히 담겨있기도 하다. 수많은 주인공들이 있지만 이들 가운데 현명한 아버지 오딧세우스, 지혜로운 스승 멘토, 유혹을 물리치고 20년 동안 가정을 지킨 어머니 페넬로페, 아버지의 뜻을 이은 지혜로운 텔레마코스 등이 명문가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명문가의 유지, 발전 비결은 교육 이타카의 왕으로 '지혜로운 자'의 대명사로 통하는 오딧세우스와 부인 페넬로페 사이에 텔레마코스가 태어난다. 불가피하게 트로이전쟁에 참여하게 되자 그는 친구 멘토(Mentor)에게 집안 일과 아들의 스승이 되어줄 것을 요청한다. 텔레마코스는 부친 부재의 20년 동안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 아버지의 지혜를 닮아간다. 오딧세우스는 아내에게 아이의 얼굴에 수염이 자랄 때까지 자신의 소식을 듣지 못하면 재혼을 하고 왕국을 아들에게 넘겨달라고 부탁한다. 이 때문에 오딧세우스가 귀국하지 않자 구혼자들이 몰려들어 페넬로페를 괴롭히지만 이에 흔들리지 않고 20년 동안 가정과 왕국을 지킨다. 아내 페넬로프는 그야말로 현모양처의 전형이다. 요즘 같아도 이러한 경우라면 재혼하는 여성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리고 끝내는 오딧세우스가 아내 페넬로페와 아들 텔레마코스를 재회하게 된다. 오딧세우스는 가문의 관리자, CEO로서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도 리더십을 발휘해 결국 왕국으로 귀환하는 것이다. 전쟁의 와중에 오딧세우스의 리더십과 집안 구성원들의 노력으로 위기를 잘 넘기면서 이 가문과 왕국은 재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던 것이다. 20년 만에 오딧세우스가 돌아왔을 때 아들이 훌륭하게 성장한 것을 보고, 그 이후 멘토라는 이름은 '훌륭한 선생'이라는 의미로 쓰이게 됐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2800여 년전에 쓰인 이야기지만 그야말로 감동을 주는 스토리텔링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지금 할아버지는 있지만 할아버지의 가르침을 외면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아버지는 있지만 아버지는 늘 바쁘다. 아이들에게 아버지는 있지만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고 자라지 못한다. 이러한 세태가 가정의 위기를 부르고 사회의 위기를 부르고 있다. 우리의 전통 명문가가 수백 년을 거치면서 온갖 풍상 속에서도 명가로서 유지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와 어머니 등의 엄한 가르침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특히 명가에는 멘토에게 자녀교육을 맡긴 오딧세우스와 같은 현명한 판단력과 자녀교육에 대한 헌신이 있었던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가 있었다. 이들이 바로 오늘날 표현을 빌자면 가문이라는 회사의 최고경영자, 즉 CEO인 것이다. 오딧세우스와 같은 현명한 CEO를 둔 가문은 수백 년 세월동안 도전과 응전을 벌이면서 가문의 영광을 지속적으로 유지, 발전시킬 수 있었다. 오늘날 세계적인 기업들의 공통점으로 꼽히는 최고의 CEO, 최고의 인재가 발전의 원동력이라면 이들 명문가들의 원동력 역시 오딧세우스와 같은 CEO와 그의 지도를 대대로 계승, 발전시켜온 텔레마코스와 같은 자녀가 있었던 것이다. 자녀교육에 헌신한 대학자 퇴계 우리나라 명문가들은 자녀교육에서 공부뿐만 아니라 사람들과 어울리고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생활교육'을 중시했다. 어떻게 보면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지식보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면서 서로 어울리며 살아가는 자세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명문가들은 부모가 먼저 솔선수범을 보임으로써 자연스럽게 자녀들이 배우게끔 교육을 했다. 조선시대 명문가들의 자녀교육에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아버지의 자녀교육에 대한 열정이다. 특히 퇴계 이황과 다산 정약용, 서애 류성룡 등 역사상 위대한 인물일수록 자녀교육에도 헌신적이었다. 이 가운데 퇴계 이황(1501~1570)은 300여 명이 넘는 수제자를 길러내고 140번이나 넘게 공직의 부름을 받았던 조선시대의 대학자이지만 그 바쁜 와중에도 자녀뿐만 아니라 친인척의 자제들까지 꼼꼼하게 챙겼다. 어떻게 보면 공(公)을 위해 사(私)를 희생했을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퇴계는 우리의 상상과 선입관을 여지없이 날려버린다. 퇴계는 자신의 평생 사업을 시로 지은 적이 있는데, 성현의 가르침을 공부하고 닦아 고향에서 '착한 사람을 많이 만드는 것(所願善人多)'이라고 했다. 그래서 권력을 쫓지 않고 고향에 돌아와 제자를 기르며 참스승으로 살았다. 선비로서, 학문하는 사람으로서 제자들을 가르치는데 힘썼을 뿐만 아니라 아들과 손자 등 가문의 후손들 교육에 심혈을 기울였다. 좋은 친구와 함께 지내며 학문을 닦는 것을 중시했던 퇴계는 아들과 손자, 조카뿐만 아니라 형의 외손, 질녀, 형의 사위, 형의 손자, 조카의 글공부와 어려움을 힘닿는 대로 보살폈다고 한다. 조카와 조카사위, 종손자, 생질, 종질과 누님의 사위, 형제의 외손자, 질녀의 외손자까지 모두 와서 배웠다. 나중에는 문중의 청소년이 모두 몰려와서 배웠다고 한다. 수많은 제자를 가르치는 스승이지만 먼저 일가의 큰 어른으로서의 역할도 다했던 것이다. 한번은 넷째형의 둘째 아들 영이 생활이 어려워 학문을 포기하려 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퇴계는 크게 상심하고는 생계 때문에 공부를 그만두어서는 안된다며 영의 뜻을 돌이키려고 '생각하고 생각하고 다시 또 생각해보라'는 편지를 보내어 달랬다. 영은 그 뒤에 학문을 계속해 결국 벼슬길에 나갔다. 퇴계는 이처럼 요즘 사람은 생각하기 힘들 정도의 세심함을 갖고 있었다. 또 퇴계는 맏형의 외손자에게도 닭 한 마리와 생선 등을 보내면서 시간을 아껴 학문에 힘쓸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아울러 퇴계는 자녀에게 충고할 때에는 자녀의 감정이 상하지 않도록 직접 말로써 훈계하기보다 편지를 활용하는 방법을 주로 택했다. 과연 요즘에 큰형의 외손자까지 챙기는 자상한 할아버지가 있을까.[PAGE BREAK]인맥 네크워크 형성을 몸소 실천 퇴계는 후손들의 교육에 세심하게 챙겼을 뿐만 아니라 좋은 친구와 함께 지내며 학문을 닦는 것을 중시했다. 후손들이 그의 제자들과 함께 공부하도록 소개시켜주면서 훌륭한 교우관계를 맺도록 주선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서로 경쟁하고 분발하면서 학문에 힘쓸 수 있기 때문이다. 퇴계는 17세인 맏아들에게 뜻이 돈독한 친구와 함께 산(절)에 가서 굳은 결심으로 맹렬히 공부하라고 권했다. 이어 20세, 22세, 25세 등 2, 3년 간격으로 아들에게 한가하게 세월을 보내지 말라고 타일렀다. 25세 된 아들에게는 "부형(父兄)이 곁에서 감독하고 꾸짖어야 공부하더냐"며 훈계하기도 했던 것. 성인으로 추앙받는 퇴계도 자녀교육에 있어서는 요즘 부모들처럼 극성스러울 정도였다. 퇴계는 집안을 이어갈 맏손자 안도에게 많은 편지를 보냈다. 퇴계는 60세 때 도산서원을 완공해 제자들이 전국에서 모여들었다. 그러나 손자는 결혼해 절에서 따로 공부하고 있었다. 퇴계는 안도에게 편지를 보내어 도산서원으로 와서 제자들과 함께 공부하라고 다그쳤다. "손자 안도에게 …김성일과 우성전이 지금 을 읽으려 한다더구나. 너는 벌써 을 읽고 있지만 도 읽지 않을 수 없으니, 이때를 놓쳐서는 안될 것이다. 읽기를 마치지 못하더라도, 우선은 중지하고 곧장 (절에서) 내려와서 이들과 함께 을 읽는 것이 아주 좋겠다." 이때 퇴계가 함께 공부하라고 권한 김성일과 우성전은 큰 학자가 되었다. 이처럼 퇴계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학식 있는 제자들 상호간에, 특히 자신의 아들과 손자와 조카들이 자신의 뛰어난 제자들과 함께 공부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권유했다. 이것은 그만큼 퇴계가 자질이 뛰어난 사람과의 교우관계가 중요함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퇴계는 출신과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학식이 깊으며 좋은 선비의 자질이 있으면 사귀게 하고 서로 학문을 닦게 하였다. "김근공이라는 사람은 지체가 낮지만 학식이 깊고 넓어서 훌륭한 선비가 될 것 같다"며 손자를 보내 함께 공부하도록 주선하기도 했다. 이미 450여 년 전에 조선 최고의 대학자였던 퇴계 이황은 요즘 강조되는 덕목인 '인맥 네트워크' 교육을 실시했던 것이다. 학문이 깊고 똑똑한 제자가 있으면 아들과 손자, 다른 제자들에게 소개해주고 함께 공부하게 했던 것이다. 굳이 대학자인 퇴계가 후손들과 제자를 위해 그런 일까지 세세하게 신경을 썼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들과 손자, 제자들을 각별하게 챙겼다. 퇴계가 제자들을 가르친 도산서원은 요즘으로 보면 사립 명문대인 연세대나 고려대, 혹은 대치동의 학원가 중에서 가장 부모들에게 인기를 끄는 학원에 해당할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인맥은 성공의 가장 큰 밑천으로 통한다. 요즘 자녀를 세칭 명문대에 진학시키려 과외를 시키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인맥 네트워크 때문이다. 심지어 일부 부모들은 어릴 때부터 사립초등학교를 보내거나 심지어 유치원부터 명문 유치원에 보내기 위해 수년을 대기하기까지 한다. 폭넓은 인맥 네트워크는 사회인으로 살아가는데 때로는 큰 힘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퇴계의 인맥 네트워크는 그 이후 영남학파라는 조선시대 최고의 학파를 형성했다. 특히 이 인맥 네트워크는 '혼맥 네트워크'로 발전하기도 했다. 퇴계가 행한 가정교육의 법도는 제자들에게도 그대로 전수되어 제자들 역시 퇴계가(家)와 같은 자녀교육의 전통을 갖게 되었다. 한국국학진흥원이 펴낸 퇴계학파의 학맥도에 따르면 퇴계 당대에 310명 등 오늘날까지 모두 715명에 달하는 학자들이 퇴계학파(영남학파)를 형성하면서 퇴계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다. 이들 가운데 학봉 김성일(1538∼1593), 서애 유성룡(1542∼1607), 한강 정구(1543∼1620) 등은 각각 제자들을 배출해 퇴계학의 소계파를 이루었다. 물론 이러한 인맥 네트워크는 당파를 형성하는 등 좋지 않은 측면을 드러내기도 했다. 현실적인 지침도 마다하지 않아 7남 1녀의 막내로 태어난 퇴계는 생후 7달 만에 진사(進士)인 아버지가 병으로 죽자 홀어머니(박 씨) 슬하에서 엄한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박 씨는 남들로부터 '과부 자식은 배운 게 없고 버릇이 없다'며 따돌림을 받을까 봐 남들보다 몇 배 공을 쌓지 않으면 안될 것이라고 매우 엄한 교육을 했다. 그러한 가르침으로 퇴계는 대학자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퇴계는 '나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분은 바로 어머니'라는 기록을 어머니의 무덤에 적어놓았다. 퇴계는 모든 사람들에게 차별을 두지 않고 똑같이 예를 갖추고 대했다. 귀한 사람은 잘 대접하고 미천한 사람이라고 차별해 대접하지 않았다. 제자들에게도 항상 높임말을 썼다. 이러한 겸손하고도 정성을 다하는 접대로 사랑방에는 손님과 제자들이 끊일 날이 없었다. 바로 이 점이 사상가이자 교육자로서 퇴계의 위대한 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퇴계는 자손들에게 '빚보증은 절대 서지 말라'고 엄명을 내리기도 했다. 즉 친구가 먼 길을 와서 나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요구하면 그 허실을 가리어 생각하고 이를 받아들이되, 빚보증까지는 절대 서지 말라고 훈계를 내렸다. 대학자인 퇴계이지만 자손들을 위해서는 현실적인 지침도 마다하지 않았던 것이다. 퇴계의 자녀교육법에서 또 하나 두드러진 점은 그 자신이 성현의 책에서 배운 바를 그대로 일상생활 속에서 실천을 통해 먼저 모범을 보여준 데 있다. 자녀교육에서 가장 요구되는 것이 바로 부모의 본보기 교육이라고 한다. 부모가 먼저 모범을 보이면 자녀들은 자연스럽게 이를 보고 배우게 된다는 것이다. 퇴계 집안 후손들은 퇴계라는 큰 스승의 얼굴에 먹칠을 하지 않겠다는 의식이 뿌리박혀 있다. 일부는 조상 전래의 가치관을 지키고자 하는 입장에서 개화에 반대하기도 했고, 퇴계의 14대손인 시인 이육사(본명 이원록)와 같이 시인으로 독립운동을 하다 옥사하기도 했다. 육사의 어머니 허 씨는 독립운동가의 대부격인 왕산 허위 집안 출신이다. 이처럼 육사는 대표적인 항일투사 집안을 외가로 두고 있었다. 또 3대에 걸쳐 독립 운동가를 배출한 안동의 고성이씨 종택(宗宅)인 임청각은 육사의 종고모집이다. 육사는 어려서부터 자주 임청각을 드나들었고 결국 독립운동에 몸을 바쳤다. 교육으로 후손 이끈 가문의 CEO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 있는 퇴계종가는 3대가 함께 산다. 15대 종손 이동은(李東恩 1907년생)옹은 아직도 서울에 있는 아들과 손자들을 보러 한 달에 한번쯤 외출을 할 정도라고 한다. 16대 차종손인 이근필(李根必 1931년생)씨는 1남 3녀를 두고 있다. 장남 치억 씨는 일본 유학 후 현재 성균관대에서 박사과정에 다니고 있다. 둘째 딸은 대학을 나와 사회생활을 하다 교원대에 입학해 재학 중이다. 퇴계는 450년 전에 '착한 사람들의 인맥 네트워크'를 만드는 일을 시작했다. 벼슬은 자신이 아니어도 다른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퇴계는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길을 찾았던 것이다. 퇴계는 스스로 학문을 닦아 착한 사람을 많이 키워내는 교육 사업에서 자신만의 역할을 찾았다. 특히 퇴계의 자손들과 후학들에 대한 가르침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세심하고 열성적이었다. 요즘 아버지들의 경우 항상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자녀교육을 나 몰라라 하는 동안 가정에서는 점점 입지가 좁아져가고 있다. '아빠는 돈만 벌어주는 기계'라는 자조 섞인 소리가 들리는 것도 아버지가 자녀교육에 그만큼 무관심한 자업자득이 아닐까. 퇴계의 헌신적인 자녀교육은 오늘을 사는 아버지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것이다. 명문가는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부모의 노력과 함께 자녀의 노력도 함께 수반돼야 한다. 인류 최초(?)로 지혜롭고 모범적인 자녀교육으로 위기를 돌파한 지혜로운 아버지 오딧세우스와 스승 멘토, 아버지의 지혜를 이어가려는 아들 텔레마쿠스 등 3위 일체가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퇴계는 스승이자 멘토로서 자녀들을 이끌고 학문을 독려했던 가문의 최고경영자였다. 그 후손들은 14대 450년을 이어오면서 한국 최고의 가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할 것이다.
신동호 | 코리아 뉴스와이어 편집장 언어의 힘으로 고등 동물로 진화 인간과 동물의 가장 큰 차이를 들라면 아마 말을 꼽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인간이 고등한 존재로 진화한 밑바탕에는 언어가 있었다. 언어 없는 인간은 상상할 수 없다. 언어가 생기면서 인간은 빠르고 명확한 의사소통이 가능해졌고, 획득한 지식과 기술을 대대로 문자와 구전을 통해 자손에게 전달해 문화를 발전시켰다. 뿐만 아니라 언어는 인간의 사고력을 비약적으로 향상시켰다. 소리를 통한 의사소통이 인간의 전유물은 아니다. 침팬지에게도 언어가 있다. 미국 조지아 주립대학에서 기르는 침팬지인 '칸지'는 바나나, 포도, 주스, 예스와 같은 4개의 소리를 이해한다. 사람이 이 단어를 반복해 가르쳐주고 실제로 물건을 보여주면 이들 단어에 대해 각각 독특한 소리로 맞장구를 칠 줄 안다. 그러나 침팬지가 내는 발음을 들으면 정말 실망스럽다. 침팬지들끼리는 말을 한다고 하는 데도 들어보면 꼭 울부짖는 것 같다. 소리도 다양하지 못하다. 까치가 귀청 따갑게 우는 소리 같기도 하고 톱 써는 소리 같기도 하다. 침팬지는 인간처럼 아름답고 다양한 소리를 절대 내지 못한다. 침팬지는 인간처럼 후두와 구강을 섬세하게 조절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간과 가장 가깝다고 하는 침팬지의 소리를 들으면 이들의 DNA가 인간과 98.8% 같다는 게 정말 믿어지지 않는다. 인간에게 있어서 정교한 발성 기관과 언어의 출현은 정말 기적 같은 일이었다. 게다가 인간은 의미가 담긴 20만 개의 단어와 절, 문법이 있는 언어를 사용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이는 침팬지와 비교할 수 없는 인간만의 고등한 능력이다. 언어의 진화는 인류의 진화를 푸는 가장 중요한 열쇠임이 분명하다. 언어는 뇌와 유전자에 새겨진 본능 1950년대에 언어학자 놈 촘스키는 "언어는 인간의 독특한 특성이며 유전적인 선물이다"라며 처음 언어와 유전자의 연관성을 주장했다. 어린아이의 옹알거리는 모습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은 본능적으로 말하려는 경향을 갖고 있다. 언어가 뇌와 유전자에 새겨진 본능이라는 이론을 한층 발전시킨 매사추세츠 공대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도 1994년에 《언어 본능》에서 사람이 말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유전자의 돌연변이 때문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핑커의 책은 영국에서 유전학으로 박사 학위를 밟고 있었던 사이먼 피셔란 학생에게 큰 감동을 주게 된다. 장학금을 받고 옥스퍼드의 웰컴 재단 인간유전학센터에서 일하던 피셔와 이 센터 소장인 안토니 모나코 교수에게 1996년 어느 날 런던 아동건강연구소의 한 의사가 찾아온다. 'KE'가족으로 불리는 특이한 언어장애 가족 때문이었다. 이 가족은 전체 가계의 절반인 24명이 3대에 걸쳐 심각한 언어 및 문법 능력의 장애를 겪고 있었다. 발음이나 단어의 순서가 이상하고 말을 제대로 이해 못한 것이다. 핑커의 책에 영감을 얻은 사이먼 피셔는 이때부터 혹시 이것이 언어 유전자에 이상이 생겨 그런 것은 아닌지 의문을 갖고 유전자 사냥에 나선다. 연구팀은 몇 년 동안의 고생 끝에 언어장애를 일으키는 돌연변이가 7번 염색체의 FOXP2 유전자에서 일어났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 유전자는 얼굴 근육의 움직임을 제어함으로써 언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는 능력과 관련되어 있었다. 또한 언어장애 가족들은 이 유전자가 만드는 단백질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는 언어중추의 회백질이 정상인보다 적었다. 이어 모나코 교수팀은 영장류에 대한 연구로 유명한 독일 막스 플랑크 영장류연구소 스반테 파보 박사와 공동 연구를 시작한다. 혹시 FOXP2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가 달라 원숭이나 침팬지는 말을 잘 하지 못 하는 것이 아닌지 알기 위해서였다. 아니나 다를까? 침팬지는 이 단백질을 만드는 715개의 아미노산 가운데 2개가 사람과 달랐다. 인간의 FOXP2에 돌연변이가 일어난 것은 13만∼20만 년 전으로 추정됐다. 이는 현생인류가 탄생한 시점과 일치하는 것이다. 이 연구 결과는 2002년 과학 잡지 〈네이처〉에 발표됐다. 밀리초 단위로 조화 이끄는 능력 파보 박사가 한국에 왔을 때 그를 만나 인터뷰한 적이 있었다. 그는 "이 유전자에 생긴 돌연변이로 인해 인간은 밀리초(100분의 1초) 단위로 성대와 혀 그리고 입을 매우 정교하게 조화시켜 복잡한 발음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동안 해부학자들은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30만 년 전에서 20만 년 전에 발달했다고 생각해 왔다. 이 시기에 후두의 위치가 다른 영장류에 비해서 훨씬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간 것이다. 후두가 낮아짐으로써 인간은 훨씬 광범위하고 다양한 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 반면 후두가 낮아짐으로써 음식이 기도로 들어가 질식될 가능성은 높아졌다. 물을 마시다가 사래에 걸리는 것은 말하자면 진화의 부작용인 셈이다. 다양한 소리를 내려면 혀가 둥글고, 코를 닫고 후두부를 내릴 수 있어야 하지만 이런 발성 기관이 네안데르탈인에게는 없었다. 15만 년 전쯤에 지구상에 나타난 호모 사피엔스는 네안데르탈인과 달리 혀가 둥글고 목은 길고 후두가 낮았다. 그래서 혀와 입술 그리고 후두의 정교한 협동 작업을 통해 광범위한 발음을 낼 수 있게 됐고, 이로 인해 언어가 탄생한 것이다. 하지만 언어는 아주 복잡한 인간의 기능이기 때문에 FOXP2 하나의 유전자뿐 아니라 여러 유전자가 복합적으로 관여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이번에 밝혀진 유전자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지 모르며 곧 연쇄적으로 관련 유전자가 밝혀질 가능성이 높다. 분명한 것은 언어가 발달하면서 인간은 정교한 의사소통 기술이 발달했다는 점이다. 어떤 학자들은 언어가 발달함으로써 사냥을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저기에 있는 들소를 어떻게 공격할 것인지 대화를 주고받고 사냥하는 것이 무작정 달려드는 것보다 유리하다는 것은 두 말 할 나위도 없다.
"즐길 수 있는 영어 교육을 위해 함께 합니다" 지난 1월 교육부는 제2차 국가인적자원개발기본계획을 통해 올 하반기 전국 16개 초등학교를 상대로 1, 2학년 영어 교육을 시범 실시하고, 2008년부터 이를 전면 확대할 방침이라고 발표했다. 이 발표를 계기로 국가경쟁력강화를 위한 영어 교육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영어 교육에 대한 높은 관심에 비해, 현장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일이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영어교과수월성연구회(회장 김건용 안성 가율초 교감)는 이를 해결해 보고자 2002년 창립되어 올해로 4년째 활동하고 있다. 영어교과수월성연구회에서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학생들이 생활 속에서 필요한 영어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영어에 대한 관심을 갖고 실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는 여건이 되어야 영어를 쉽게 포기하는 학생들이 줄어든다는 것. 이를 위해 학생들이 쉽고 빠르게 영어 의사소통이 가능할 수 있도록 영어교과를 연구하고 자료집을 발간한다. 자료집에는 기억술을 이용한 영어 문장 외우기 등 독창적인 자료들이 포함되어 있다. 지난 연말 배재학습센터에서 개최된 세미나에서는 영어 체험 인프라 구축과 실제 상황에 대한 적응 능력 배양에 대하여 심도 있는 토론을 하였고 참석자들에게 높은 호응을 받았다. 또한 영어교과 수월성 향상을 위하여 전국 교육청의 학습도움센터를 이용해 연구한 자료를 공유한다. 이는 영어 교육의 필요성을 알리고, 영어 교육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선생님들을 위한 것. 교육청 단위 관련 발표회에도 꾸준히 참석하여 그 정보를 회원 상호간에 공유하는 것도 필수이다. 영어교과수월성연구회의 꾸준한 활동에 구심점이 되고 있는 김건용 안성 가율초 교감은 "우리 동호회 활동을 통하여 영어 교육의 필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며 "경기도의 경우, 컴퓨터를 모르면 폐를 끼치듯이 학교 현장에서도 영어를 모르면 주변 선생님들께 폐가 되는 상황이 올 듯한 분위기"라고 자랑했다. 영어교과수월성연구회의 또 다른 장점은 회원 구성이 초·중등 교사뿐만 아니라 대학교수와 일반인 등 다양하다는 것이다. 특히 일반인은 영어에 관심을 갖고 있는 학부모들로 교사들이 놓치기 쉬운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공하여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이 외에도 회원 상호간 교수·학습 자료 공유, 영재교육/창의성 교육 관련 대학원 세미나 참석(월1회), 영어교육의 Q&A 운영으로 현장의 문제점 해결, 우수 교육자료 전시회 탐방 등 영어 교육 활성화를 위한 영어교과수월성연구회의 장점은 많다. 영어교과수월성연구회는 앞으로도 영어 의사소통 연구 자료 발간, 영어 교수·학습 용어 자료집 발간(교과별), 교육청과 연계한 유명 강사 초청 연수 실시 등 다양한 활동을 할 예정이다. 회원 가입은 영어 교육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으면 누구나 가능하며, www.wizclass.com/kuc7을 참고하면 된다. ·이 공간은 교원동호회를 소개하는 곳입니다. 현재 활동하고 계신 동호회를 자랑하고, 널리 알리고자 하는 동호회에서는 새교육으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전화=(02) 575-4185 ·이메일=esy@kfta.or.kr
장옥순 | 전남 토지초 연곡분교 교사 “선생님, 잘 지내셨어요? 저 은주입니다.” “그래, 요즈음 소식이 뜸하더니 잘 지내니?” “예, 이번 교원임용고시에 합격하고 지금 연수중입니다.” “그러니? 참 잘했구나. 축하한다. 그러고 보니 제자 중에서 네가 제1호구나. 초등학교 선생님으로는 말이다.” 전교생이 94명이던 작은 학교에서 6학년 제자였던 아이가 벌써 발령을 눈앞에 두고 있으니 시간이 화살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려운 형편임에도 늘 욕심도 많고, 자신을 다잡아 주는 충고를 기꺼이 받아들이던 제자였습니다. 21명을 졸업시켰는데 많은 아이들이 4년제 대학을 갈 만큼 열심히 사는 제자들입니다. 졸업시킬 때, 1년에 두 번씩 동창회를 할 수 있도록 모임을 만들어 주었는데 10년째 모임을 이끌고 있는 것을 보면 마음이 흐뭇합니다. 모임에 나오라고 조르는 전화를 건 제자의 칭얼거림에 행복함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졸업한 시골 학교가 이제는 폐교의 길을 걷고 있지만 제자들과 끈끈한 인연으로 맺어져 있고 졸업생들끼리도 정기적으로 만나서 서로의 우정과 사랑을 이어가고 있으니, 모교는 가슴 속에 살아남아 언제든지 아이들을 하나로 만들어 주리라 믿습니다. “은주야, 이젠 김 선생님이라고 불러야겠구나. 그렇지?” “아니, 선생님도 참. 저는 영원한 선생님의 제자일 뿐입니다. 선생님의 교단 제자 1호라는 게 자랑스럽습니다.” 은주는 초등학교 졸업을 한 뒤 중·고생 때에도 전화를 가장 많이 하는 제자였습니다. 전화를 걸었다 하면 30분은 기본일 정도로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쏟아놓으며 어리광을 부리곤 했습니다. 전화를 받을 때마다, “은주야, 일기는 쓰고 있지? 좋은 책도 많이 읽고 있지?” “아이고 선생님도 참. 고등학생이 언제 일기를 쓰고 차분히 책을 읽습니까? 학과 공부도 바쁜데요.” “논술 포기할 거면 일기도 쓰지 말고 책 읽는 것도 포기하렴.” “옛! 즉시 실시하겠습니다. 선생님 목소리 좀 들으려고 전화 드리면 이렇게 변함없이 잔소리시리즈 멘트를 똑같이 하시네요. 6년 동안 변함없이 말입니다.” 때로는 교육대학에 간 것을 후회하고 자신이 원했던 건 수학선생님의 길이 아니라며 다시 공부하고 싶다 떼를 쓰면 귓바퀴가 뜨거울 정도로 오랜 시간 전화로 상담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랬던 제자가 이제 무사히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모습이 대견합니다. 졸업 후에도 10년 동안 잊지 않고 찾아주는 모습만으로도 기특한데 자기들 모임에 꼭 나오라고 날을 받자고 조르니 육신으로 낳은 자식은 아니지만 마음속에는 자식과 다름없습니다. 군대에 간 제자들이 돌아오고 시집 장가를 간다고 앞으로도 줄기차게 찾을 걸 생각하니 이런 맛에 6학년 담임에 중독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서슴없이 이성문제까지 내놓고 인생 상담까지 들어주는 이 자리가 새삼스럽게 소중해집니다. 졸업하자마자 발령을 받지 말고 좀 쉬었다 나가면 좋겠다고 했더니 집안 살림을 거들어야 한다며 발령이 안 나면 아르바이트나 기간제 교사 자리라도 찾아서 동생의 학비를 보태야 한다는 예쁜 마음에 다시 감동을 합니다. 교직에 나가면 동생의 대학 학비는 자신이 대주겠다는 기특한 제자의 다짐을 들으니 이제는 내가 충고해 줄 일이 드물 것 같아 서운함마저 느꼈습니다. 광주에서 근무하게 될 제자가 도시 아이들을 맡아 마음고생을 하거나 상처를 받을 때 선배로서 조언이 필요할지 모르지만, 요즈음 젊은이들은 지혜롭고 배우기를 좋아해서 뭐든 잘 헤쳐나가리라 확신합니다. 이제는 제자가 아닌 같은 길을 가는 동료로서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으니 제가 더 긴장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6학년을 가르칠 때 “선생님 하시는 것을 보면 나중에 저는 절대로 선생님하고 싶지 않아요. 제자들 때문에 너무 고생하시고 상처도 많이 받으시는 것 같아요”라고 했던 녀석이 그 길을 따라오는 것을 보며 그래도 이 길만큼 보람된 일도 흔하지 않음을 말해 주고 싶습니다. ‘은주야! 교직의 매력은 무엇보다도 가르치는 동안 나 스스로 배우는 일이 많아서 늘 깨우치게 된다는 점이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서 바람직한 방향으로 자리 잡게 하는 기쁨을 안겨준단다. 세상의 모든 직업이 다 귀하지만 평생 책을 볼 수 있는 축복, 바른길을 걷게 하려면 스스로 바르게 걸어야 하는 어려운 자리이면서도 청출어람(靑出於藍)의 기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단다. 요즘 세태가 경제적으로 가장 안정적이니 교직을 선호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부차적인 목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수를 받는 동안 품었던 처음 마음을 잘 기억해 두고 힘들 때마다 자신을 일깨우도록 하기 바란다. 은주야! 너는 항상 내 기쁨인 걸 아니? 부모의 일을 물려받는 자식이 대견하고 고맙듯이 내 길을 따라오는 네 모습도 늘 자랑이란다. 네가 발령을 받는 날, 만나서 축배를 들자꾸나'
기원전 202년 시황제에 이어서 두 번째로 천하를 통일한 유방은 한나라를 세우고 황제(고조)로 즉위하였다. 시황제가 그동안 백성들의 욕을 한 몸에 받으면서까지 국가 체제를 잘 다져 놓았던 터라 진나라 시대의 제도, 즉 중앙관료 조직이었던 '3공 9경제'를 그대로 유지하는 한편, 장안(長安)을 도읍으로 정하고 지방의 행정제도는 기존의 군현제를 보완하였다. 개국공신 처리 해법, 군국제 평민출신이었던 고조에게는 하나의 핸디캡이 있었다. 출신을 중시하는 중국사회에서 뭔가 내세울 만한 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시황제처럼 강력한 중앙집권을 실행할 입장이 아니었다. 다시 말해서 카리스마가 없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중앙집권제와 옛 봉건제도를 합친 군현제를 실시하였는데, 이러한 절충식 제도를 '군국제(郡國制)'라 한다. 사실 고조가 봉건제도를 다시 활용하고자 했던 이유는 공신들에게 대한 논공행상 문제가 깊이 깔려 있었다. 공신을 섭섭하게 대하면 물론 면전에서는 아니겠지만, '폐하께서 그 자리에 계시기까지'라고 하면서 투덜거리기 마련이다. 개국이나 정변에는 반드시 공신이 생긴다. 목숨을 걸고 주군을 도와 대업을 이룬다는 대의명분은 물론 '좋은 세상 만들기' 혹은 '왜곡된 현실을 바로 잡고 종묘사직을 위한다'는 것이지만, 주군을 도와 싸우는 대신, 나중에 성공하면 한 자리 주어야 한다는 암시적인 묵계가 깔려있는 것이다. 이미 일종의 섀도 캐비닛(Shadow Cabinet - 그림자 내각)이 구성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단 목적이 이루어지면 공신은 애물단지가 되며 공신은 공신대로 토사구팽 신세가 되지 않으려고 전전긍긍한다. 고조의 입장에서는 공신을 어떻게 섭섭하지 않게 기술적으로 처리하느냐가 현안문제였다. 우선 지방(郡)에는 관리를 임명하여 파견하는 한편, 공신들은 유씨 일가와 함께 분봉왕으로 삼고 어떻게 나오나 보았다. 생각이 단순하여 만족하고 별 생각 없이 사는 공신은 제외하고 서서히 숙청의 칼날을 들여대기 시작했다. 중국사에서 제후들이 중앙정부에 대해서 반기를 드는 예가 많았다. 중국이라는 땅이 워낙 넓어 고조의 깊은 뜻(숙청구실을 만들려는)을 알아채지 못하고 제후들은 제후들대로 마치 독립국처럼 행세하려고 하였다. 고조는 재위기간 동안에 자신에게는 물론, 태자에게도 짐이 될 공신들을 갖가지 구실을 붙여서 제거하였다. 그의 통치 스타일은 시황제를 반면교사로 삼아 점진주의를 택하였다. 급진주의가 어떤 폐단을 낳게 되었는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조세와 노역을 경감시켜주고 시황제나 초패왕의 경우와는 달리 백성들을 어루만져 줌으로써 민심을 수습하는 데 성공하였다. 무제의 국제화와 실크로드 극동은 물론 동아시아의 최강국으로 떠오른 한나라는 당시 한강 이남의 진국과 교역하고 있었는데, 고조선의 우거왕이 중계무역을 독점하기 위해서 한나라에게 진국에 대한 직접교역을 금지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고조선의 급성장에 불안을 느끼고 있었던 한무제(漢武帝 : BC 141~87)는 대군을 동원하여 고조선을 쳤으나 번번이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러나 귀족지배계층의 내부분열을 획책하여 기원전 108년 고조선을 복속시키고 한사군을 설치했다. 무제는 54년 동안 중국을 통치하면서 한족(漢族)과 중화(中華)라는 국가이념을 확립하면서 명실상부한 제국으로 만들어 놓았는데, 대내적으로는 지방제후를 억눌러 중앙집권체제를 강화하고 과거제도를 시행하는 한편, 동중서(董仲舒)의 건의를 받아들여 유학을 국가의 통치이념으로 삼음으로써 한족 중심의 중화주의 사상이 정립되어 모든 것을 이분법적 화이론(華夷論)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좋지 않은 습성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새로운 기원을 세운다는 의미에서 연호를 건원(建元)이라 하고 주변민족에게 자신의 연호를 쓰도록 강요하면서 이에 따르지 않는 주변국들을 하나하나 복속시키고 주변의 복속국에게 중국의 역법을 쓰도록 강요하였다. 또한 그의 치세 중에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가 편찬되었는데 비록 중화적 사관으로 주변 민족을 폄하한 책이지만 역사적 가치는 충분하다. 사기에는 삼황오제의 전설을 비롯하여 춘추·전국시대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으며 본기(本紀)·세가(世家)·열전(列傳)·표(表)·서(書) 등의 기전체로 쓰여 있다. 무제는 베트남을 정복하는 한편 본격적인 북방정책을 추진하였는데, 고조가 통일할 당시만 하여도 북방민족들은 한나라를 위협하는 최대의 적이었으며 특히 흉노가 대표적 존재였다. 그 무렵 소위 '모두루 대단군'이라 일컬어지는 모두찬위〔冒頓單于 : BC ?~174〕라는 영웅이 나타나 동아시아에 유목민족 최초의 대 국가를 건설하여 그 위세가 서쪽으로 파미르 지역까지 이르고 있었다. 이제 통일 한제국을 세운 고조 유방의 입장에서 흉노야말로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여서 모두찬위를 정벌하기 위해서 출병하였으나 책략에 빠져 패주하고 말았다. 눈엣가시를 빼내려다가 다래끼가 난 꼴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고조는 별 수 없이 강화를 맺고 매년 조공을 보내는 굴욕적인 외교관계를 맺었다. 그러나 무제는 흉노와의 정면대결을 북방정책의 기본으로 삼아 위청(衛靑)과 곽거병(藿去病)을 보내 흉노를 몽골초원 바깥으로 몰아냈다. 그의 야심은 흉노정벌에 이어 서역 원정으로 이어졌다. 흉노의 포로를 통해서 서역을 알게 된 무제는 장건(張騫)을 서역으로 출장을 보냈는데, 장건은 지금의 아프가니스탄〔大月氏國〕까지 가서 파르티아〔安息國〕와 페르시아〔波斯國〕 등에 관한 자세한 정보를 가지고 귀국하였다. 이 과정에서 장건에 의해서 알려진 서역으로의 교통로는 나중에 당나라 시대 이후 '실크로드(비단길)'라 일컬어지게 되었다. 서양사를 원격조정한 무제 그리고 민족이동의 도미노 현상이 바로 무제 때문에 나타난 것이다. 물론 자신의 의지 또는 시나리오에 따라 그렇게 된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렇다는 말이다. 처음에는 흉노정벌에 그 목적이 있었으나 중국 북방에서 밀려난 흉노의 일부가 서쪽으로 진출하는 바람에 세계사에서 말하는 '민족 대이동'이 이루어진 것이다. 흉노의 일부가 한나라에 밀려나 중앙아시아로 이동하자 원래 그곳에 자리를 잡고 있던 대월씨국의 여러 부족들이 남쪽으로 밀려나 중앙아시아에서 인도 북서부에 걸친 이란계 쿠샨 왕조를 열었고, 더 서쪽으로 진출한 흉노의 일부는 소아시아와 발칸반도 북부지역을 타고 유럽 중부까지 진출하여 게르만족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바람에 결국 '게르만족의 대이동'으로 이어져 로마제국의 영토를 침범케 함으로써 서로마제국은 용병장 '오도아케르'에게 멸망하고 말았다(AD 476). 또한 게르만족은 중세가 시작되면서부터 온통 유럽의 역사를 바꾸어 놓았다. 오늘날의 유럽이 역사적으로 성립된 시기가 바로 민족 대이동 기간이었고 특히 유럽 일대의 민족 구성도 이때에 이루어졌다. 게르만족에게 있어서 훈족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특히 '아틸라(Attila : 434~453)'는 온통 유럽을 휘저어 놓았다. 헝가리를 중심으로 동으로는 카프카스, 서로는 라인, 북으로는 덴마크, 남으로는 도나우 연안까지 정복하고 동로마황제로 하여금 조공을 바치게 했다. 뿐만 아니라 451년에는 갈리아를 침공하고 파죽지세로 로마로 쳐들어와 전 유럽을 전율케 하였다. 당시 교황 레오 1세가 아니었더라면 아마 유럽은 풍비박산이 났을 것이다. 그리고 훈족의 일파가 중부 유럽에 나라를 세웠는데 그들이 바로 마자르인이며 국호는 헝가리였다. 교조적 이상주의자 왕망 무제(武帝)가 죽자 잇달아 어린 황제가 등극하였다. 어린 황제가 등극하였다는 이야기는 쉽게 말해서 태후 또는 그녀가 지명하는 섭정이 등장하는 것인데, 이때부터 외척과 환관들이 전횡을 일삼아 국가의 기강이 흔들리게 되었다. 어린 나이에 황제로 등극한 군주들은 하나같이 마마보이였다. 그 중에서도 특히 결단력이 부족한 전한 제11대 황제 원제(元帝 : BC 75~33)는 나랏일을 외척에게 넘겨버렸는데, 그중 외척 가운데 왕망(王莽)이 원제 때에 권력을 휘둘러대더니 성제(成帝)가 즉위하자 대사마 겸 대장군이 되어 국사를 좌지우지하였다. 그러다가 왕망은 실권자의 수준에 만족하지 않고 평제를 독살하고 겨우 두 살 박이 어린애를 옹립하고 섭정을 맡았지만 이 역시 만족하지 못하고 스스로 황제가 되어 국호도 아예 '신(新)'이라 바꿔 버렸다(AD 8). 스스로 황제가 된 왕망은 감히 생각하지도 못한 획기적(?)인 일을 단행하였다. 나름대로는 마치 콜럼버스의 달걀과 같다고 생각했겠지만, 남들이 보기에는 교조적이며 이상주의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재정의 충실화를 기한다는 명분으로 통화량과 인플레이션은 고려하지 않고 소위 왕망전(王莽錢)이라는 오수전(五銖錢)을 마구 주조하였을 뿐만 아니라, 대지주의 전횡을 방지한다는 명분으로 중국의 모든 전답을 황제의 소유로 하였다. 물론 지주들의 반발을 샀으나 이를 힘으로 누르고 노비를 사유물로 사고파는 행위를 금지하고 상인의 활동을 억압하였다. 왜냐하면 장사한답시고 중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면서 황제를 비난하는 입을 막아 버리기 위해서였다. 물론 명분은 대상인들의 담합행위와 독과점을 방지하여 물가를 안정시킨다는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왕망의 개혁은 복고적이며 공상적이었다. 그리고 왕망은 흉노를 공략하려고 괜히 고구려를 끌고 들어가려고 하였다. 그때 고구려의 유리왕이 이에 따르지 않자, 그때부터 중국 역사서에 고구려를 비하하는 하구려(下句麗)라는 단어가 곳곳에 등장하게 되었다. 이후 중국 역대왕조의 흥망사에는 외척과 환관이 반드시 등장한다. 환관은 최고 통치자를 바로 옆에서 보필하는 존재이므로 얼마든지 '인의 장막'을 칠 수 있어 아무리 고관대작이라도 환관의 눈 밖에 나면 끝장이었다. 후한은 후환(後患)을 남기고 고조의 9대 손인 유수(劉秀)가 그의 형과 함께 거병하여 왕망을 치고 유씨 왕조를 회복하였는데(AD 25) 그가 바로 광무제이다. 그는 수도를 뤄양으로 정하고 정치적으로는 지방 호족세력과 충돌을 피하기 위해서 황실-호족 연합통치를 하였지만, 이러한 통치제도는 나중에 삼국시대의 군웅할거(群雄割據)라는 후환으로 이어져 한나라의 명운을 재촉하게 되었다. 또한 새로운 관료정치를 구축하기 위해서 유학을 더욱 장려하여 여러 학파가 생겨났다. 이에 비례하여 한족 중심의 중화사상이 중국의 고질병으로 확실하게 자리를 잡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광무제 역시 전한(前漢)의 무제와 마찬가지로 서역에 대해서 관심이 많아 무제시대의 판도를 회복하고 계속 여세를 몰아 여러 나라를 복속시켜 그 위세가 파미르 지역 동서에 걸쳐 있었다. 광무제의 서역진출은 서기 1세기 후반에 시작되었다. 그는 서역경영의 책임자로 반초(班超 : AD 32~102)를 임명하여 출장을 내보냈다. 반초는 서역으로 떠나면서 지금도 사람들이 즐겨 쓰는 아주 멋있는 유행어를 남겼다. '호랑이 새끼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한다'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과연 반초는 호랑이 새끼를 잡았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때까지 중원에 알려지지 않았던 넓은 세계가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서역경영의 천재인 반초는 부하 감영(甘英)을 대진국(大秦國), 즉 로마제국에 파견하였다. 비록 로마에 도착하지는 못했지만, 대진국(大秦國) 황제 안돈(安頓 : 오현제의 한 사람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의 사신이 해로를 통해서 중국에 와서 당시의 황제 환제(桓帝)를 알현하였다(AD 166). 그러나 두 제국은 모두 깊은 병이 들어 있었다. 후한은 환관과 외척이라는 병이요, 로마 제국 역시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었다.
늘 그랬듯 남으로부터 봄바람이 불어 왔습니다. 그 봄바람으로 찔레꽃이 피었는지 어느 시인은 그 모양을 보고 찔레꽃이 봄바람을 껴안는다고 했지요. 아마도 시인은 찔레꽃 가시에 찔리는 아픔으로 4월을 맞이했던 듯합니다. 이맘때 이렇게 봄바람이 살랑이며 치맛자락을 간질이기 시작하면, 시인이 아니어도 그렇지 않은가요. 그립지만 볼 수 없는 그런 사람 생각으로 한번쯤은 가슴이 저려오지 않나요. 어젯밤에 꿈을 꾸었습니다. 언젠가부터 꿈을 꾼 아침은 머리가 무거웠는데 오늘 아침은 맑고 상쾌했으니 좋은 꿈이었던 모양입니다. 넓은 벌판 위에 이름 모를 들꽃들이 가득 피어 있었습니다. 하양, 노랑, 진달래, 자주…. 들판이 빛으로 가득했습니다. 저는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한 움큼씩 꽃을 꺾어 가슴에 안았습니다. 그렇게 뛰어다니다가 문득 어느 장소에 와서는 아주 낯익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왜 언젠가 와본 듯, 그런 느낌을 주는 곳이 있잖아요. 거기서 설핏 당신을 본 것도 같습니다. 가슴에 안고 있던 꽃을 당신에게 주려 했었는지, 아니면 몽유병자 마냥 거실 화병에 꽂혀 있던 꽃을 들고 와 이불 속에 넣으려 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꿈이 거기서 끝나 버렸으니까요. 어쨌든 오늘 아침 제 마음은 그 꿈 덕분에 꽃물이 들은 양 설레고 또 설레었답니다. 초봄의 햇살을 받으며 한적한 주택가 골목길을 걸어보고 싶은 마음이 든 것은 그래서일 겁니다. 낮은 담장 너머로 흰 빨래가 널려 있고, 발자국 소리에 잠을 깬 개가 짖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 그런 곳이 아직도 서울 거리에 있다는 걸 아시는지요. 우리가 그저 없을 거라고 여겼던 풍경들이, 가까운 골목길에 아직 남아있음이 얼마나 반가웠던지…. 하늘을 절벽처럼 막아선 고층 아파트와 거리를 가득 메운 자동차 길에서 고작 수 백 미터 남짓 거리를 걸었을 뿐인데 말입니다. 그 주택가 낮은 언덕을 내려와 큰길과 마주치는 귀퉁이에서 “아!”하고 탄성을 지르고 말았습니다. 흰 빨래와 개 짖는 소리보다 더 반가운, 우체국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정겨운 돌계단과 그 옆에 서 있는 오래된 목련 나무 한 그루. 그리고 빨간 우체통. 잔뜩 부풀어 있는 저 목련 나무에는 곧 희고 소담한 목련꽃이 피어나고, 또 얼마 있지 않아 빨간 우체통 위로 하얀 꽃눈이 내리게 되겠지요. 이 풍경을 보기 위해 몇 번이고 이곳을 찾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우리, 그 앞에서 마주칠지도 모르겠습니다. 편지를 부친 적이 언제였던가요. 마른침으로 우표를 붙이던 기억이 있습니다. 혀로 느껴지는 우표 뒷면의 매끈한 감촉과 종이 풀 냄새, 그리고 편지 한 통을 들고 빨간 우체통 앞에서 망설이던 때가 내 생애 가장 아름다웠던 시간이었음을 이제 알았습니다. ‘러브레터’(1995)라는 영화가 있지요. 죽은 사람, 실존하지 않는 남자 친구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됩니다. 그 처음 편지에 썼던 여인의 말, 생각나시나요? “잘 지내고 있나요? 전 잘 지내요.”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편지 한 통을 들고 우체국을 찾았습니다. “잘 지내고 있나요? 전 잘 지내요.” 너무 평범한 말 한마디 전하려 하는데, 밤새 쓴 편지를 부칠 때처럼 빨간 우체통 앞에서니 여전히 망설여집니다. 봄바람 부는 4월이기 때문일까요? | 한국교육신문 기자
박준용 | 한양대 강사·문화평론가 무례한 애정으로 변화 이끈 클락 영화 는 영화 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만큼 거칠고 과격한 어느 교사의 이야기이다. 미국 뉴저지 페터슨에 위치한 이스트 고교 교사인 '조 클락'은 학생은 물론 교사들 사이에 별명이 '미친 조'로 일컬어질 정도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에 대한 광기에 대한 성급한 상상은 금물이다. 클락의 '미침'은 오직 학생들을 위한 교육에 방해가 되는 일체의 내·외적인 억압과 압력들과의 몸을 사리지 않는 저항으로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이다. 언제나 자신의 안위보다 학생들의 유익을 먼저 생각한 클락은 결국 노조의 미움을 받아 초등학교로 좌천되는 신세가 되고 만다. 이후 20여 년의 세월이 흐른다. 지나간 시간 속에 이스트 고교는 지역의 몰락과 더불어 쇠락의 길을 피할 수 없었고, 이제 학생들의 만연된 폭력과 마약거래, 무분별한 섹스로 황폐화된 학교는 교육 당국에 의해 폐쇄가 논의되는 지경에 이른다. 마침내 교육위원회는 최후의 수단으로 '미친 조' 클락을 교장으로 임명한다. 폐해로 변해버린 학교로 돌아온 클락의 처방은 그의 별명처럼 거의 미친 짓에 가까워 보인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모든 학생들을 강당에 모이게 하고 각 반의 심각한 문제아들을 무대 위에 오르게 한 후 이들을 퇴학 조치한 것이다. 대개의 교육에 관련된 영화 속에서 교사들이 어떻게든 문제 학생을 변화시키기 위해 몸부림치는 감동적인 모습을 보이는 데 비해 클락의 극단적인 '격리' 조치는 당혹스럽기 짝이 없다. 그의 돌출 행동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클락은 늘 확성기를 손에 들고 규칙을 위반하는 학생들은 물론 무사안일에 빠진 동료 교사들에게 독설과 엄격한 시정명령을 발한다. 심지어 교가를 우습게 여기고 다만 자신의 예술세계에 빠져 모차르트의 음악만을 고집하는 음악교사의 수업에 예고도 없이 들이닥쳐 언쟁을 벌이다 일방적인 해고를 통보하는가 하면, 사소한 지시를 어기고 자신에게 대든 교사에게는 정직처분을 내린다. 또한 퇴학당한 아이들이 여전히 학교 출입구로 드나들며 말썽을 일으키자 정문을 제외한 모든 문에 쇠사슬을 묶도록 명령하고 보안요원들을 배치한다. 외견상 클락의 이 모든 결정은 권위주의적이고 폭력적이며 무례하고 독선적인 모습의 전형으로 비춰진다. 그러나 이 모든 행위의 전제가 되는 클락의 '분노'는 오직 방치된 채 자멸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아이들에 대한 뜨거운 사랑으로 말미암은 것이기에 자기중심적인 무분별한 성냄과는 궤를 달리한다. 거리의 폭력과 마약에 깊이 빠진 300여 학생들이 나머지 2700여 명의 학생들마저 같은 길로 빠지게 하고 있는 그악스런 학교의 현실은 생사를 가르는 극약처방 없이 복구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클락은 '격리'를 남발하는 교사가 아니었다. 이후 남은 학생들 가운데 문제를 야기하는 아이들에 대한 그의 특별한 관심과 애정은 앞서의 결정이 최후의 선택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동시에 교사들에 대한 거친 행동은 아이들을 이 지경이 될 정도로 무책임하게 방치한 채, 그저 직장생활을 하고 있을 뿐인 무기력한 동료 교사들에 대한 깊은 배신감과 분노로 인한 것이었고, 예의 강한 도전과 지시는 그런 매너리즘에 빠진 교사들을 새롭게 하기 위한 나름의 몸부림이었던 것이다. 클락은 예의바르고 평화로운 무관심으로 가득 찬 세상보다는 무례해 보일지 몰라도 상대방에 대한 뜨거운 애정으로 가득 찬 삶을 선택하겠다는 의지를 온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변화되는 순수한 감성의 아이들 겉으로는 거칠고 엄격하지만 그 따뜻한 이면의 사랑을 먼저 감지한 것은 동료 교사들보다는 감각적으로 예민한 아이들이었다. 청소년기의 민감성은 말과 행동이 다른 어른들의 위선과 이중성을 직감적으로 감지하고 이에 반항적인 태도를 만들기도 하지만, 반대로 진실된 사랑과 배려의 마음을 누구보다 먼저 느끼게 하는 예민함으로 기능하기도 한다. 학교 안팎의 일상에서 그저 방치되어 있던 아이들은 클락 선생의 끊임없는 참견에 짜증을 내면서도 한편으로는 버려진 자신들에 대한 그의 지칠 줄 모르는 관심과 지도에 점차 고마움을 느끼기 시작한다. 물론 이런 신뢰의 근저에는 일시적이고 우발적인 동정이 아니라, 한번 시작한 일은 끝장을 보고 마는 클락의 꾸준하고 일관성 있는 삶의 태도가 자리 잡고 있다. 점차 정상화 되어 가는 학교와 학생들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클락의 개혁에 불만을 품은 일부 학부모와 교사 그리고 어떻게든 물의가 일어나는 것을 원치 않는 정치가, 행정가들은 골치 덩어리인 그를 제거하려 하고, 클락은 문에 쇠사슬을 걸었다는 이유로 소방법에 의해 구속되는 시련을 겪게 된다. 이제 학교는 다시 참담했던 과거로 돌아가야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지게 되고, 이를 결정하기 위한 교육 위원회가 열리게 된다. 깊은 좌절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클락과 학교를 구원한 손길은 뜻밖에도 학생들이었다. 회의장 밖 광장은 자발적으로 모인 이스트 고교 학생들로 가득 차고, 아이들은 클락의 조치가 자신들의 안전을 위한 피치 못할 선택이었기에 속히 교장 선생님을 석방해 달라고 외치기 시작한다. 한 때 학업은 고사하고 거의 인생을 포기한 채 습관처럼 학교에 나가 사고를 치던 그 아이들이, 이제는 가치 있는 삶을 위해 다시 공부할 수 있도록 자신들을 도왔던 클락 선생을 돌려달라고 부르짖고 있는 것이다. 변화는 방법이 아닌 진실로 통해 모두가 포기했던 학교와 아이들을 이처럼 변화시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것은 한마디로 '헌신'이다. 이제는 다소 생경한 단어가 되어버린 듯한 말 '헌신'을 달리 말하면 곧 어떤 일이나 대상에 온 몸과 마음을 바쳐 '미치는' 것을 의미한다. 영화가 끝이 난 후에도 여전히 클락의 행동에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분명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정할 수 없는 진실 하나는 그가 아이들을 위해 완전히 미쳐 있다는 것, '헌신'해 있었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교육은 엄격하거나 부드러운, 이러저러한 방법론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실화를 토대로 한 조 클락이 보여주는 것은 그 방법이 어떠하든 간에 선생님이 아이들을 향해 품고 있는 진득한 사랑의 마음을 불굴의 의지를 가지고 일관성 있게 실천하기만 한다면, 결국 진심은 통하고 만다는 생의 진리, 그 한 편린이다. '우리 인생에는 아픔과 슬픔이 있지만, 우리는 똑똑하니까 내일이 있다는 걸 알아요. 약해질 땐 내게 기대요. 내가 친구가 되어 도와줄게요. 나도 곧 누군가가 필요할 거예요. 도움이 필요할 땐 나를 불러요. 우린 모두 기댈 사람이 필요해요'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면서 영화의 제목이자 주제가인 'Lean on Me'와 함께 졸업모를 쓴 채 환히 웃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빛나는 영화 이다. * 영화정보 제목 : 고독한 스승 (Lean on me) 감독 : 존 아빌드슨 배우 : 모건 프리먼 / 비벌리 토드 / 로버트 길롬 제작년도 : 1995년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 DVD, VIDEO 출시
김원석 | 협성대 교수·경영학, TET 트레이너 내부에서 외부로 향하는 리더십 2월 초 필자는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교사 리더십 공개강의를 하였다. 처음 공개강의를 기획할 때 제목을 무엇으로 해야 하나 고민할 정도로 교사 리더십이라는 주제에 대해 반신반의했다. 왜냐하면 정치학에서 시작된 리더십 연구가 경영학에서 주류를 이루고 있는 요즘 교육학 전공자들이 주를 이루는 교사들을 대상으로 어떻게 설명하고 이해시켜야 하나 고민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고민은 기우로 끝났다. 교사 리더십 공개강의는 성황리에 끝났고 많은 일선 교사들이 관심을 가져 주었다. 필자가 공역하여 널리 소개된 은 교사들에게 널리 알려진 책이다. 이 책이 갖는 의미 중에서 단연 첫 번째는 리더십 교육의 방향을 바꾸었다는 것이다. 과거의 리더십 교육은 다른 사람을 이끌어간다는 개념이 강하였고, 아직도 이런 차원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우리가 다른 사람을 이끌어갈 수는 없고 유일하게 이끌어갈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다. 나 자신을 변화시켜 다른 사람도 변화시키겠다는 패러다임을 우리는 ‘내부에서 외부로 지향하는 리더십’이라고 명명한다. 간단히 말해 ‘인사이드 아웃’ 방식이다. 실제로 사람들은 많은 사람을 변화시켜 세상을 바꾸려고 하지만(‘아웃사이드 인’ 방식) 예수 그리스도는 한 사람을 변화시켜 온 세상을 바꾸려고 하였다. 바로 이러한 원리를 리더십에 적용한 것이 바로 코비박사이다. 지난 2월 5일 미국의 아메리칸 풋볼 결승전(슈퍼볼)에서 한국계 미국인 하인스 워드가 자신이 속한 피츠버그 스틸러스 팀의 승리를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자신도 최우수선수(MVP)로 선발되어 마침내 미국의 영웅으로 탄생하였다. 미국의 최대 일간지 《USA투데이》가 “워드가 스틸러스의 전설로 자리 잡았다”(Ward takes place among Steelers' Legends)라고 헤드라인을 달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아 미식축구선수라면 한번쯤 꿈꾸어 볼 MVP에 등극한 것이다. 연일 국내외 언론들은 스포츠면 뿐만 아니라 사회면에서 ‘절반의 한국인(Half-Korean)’이라고 말한 하인스 워드에 대한 미담들을 다루기에 바쁘다. 우리는 교육자로서, 하인스 워드를 길러낸 어머니에게서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많은 교사들이 수많은 학생을 가르치다 보면 숫자상으로 우리는 많은 제자를 길러낸 것으로 착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수많은 학생 중에서 훌륭한 인물로 성장했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훌륭한 선생님’으로 나를 기억해줄 수 있을지 반문해보아야 한다. 하인스 워드의 어머니는 아들 하나를 키웠지만 남부럽지 않고 훌륭하게 그를 키웠다. 그야말로 가장 훌륭한 어머니이자 교사가 아니겠는가? 워렌 베니스는 리더십의 3원칙으로서 야망과 비전, 실력과 역량 그리고 품성과 도덕성을 들었다. 앞에서 말한 스티븐 코비 박사는 품성과 역량 2가지만 말했고, 매릴랜드 대학교의 로크 교수는 여기에다 실행력을 추가하여 4원칙을 말했다. 여기서는 워렌 베니스의 리더십 원칙을 적용하여 하인스 워드의 리더십을 배우고자 한다. “꿈은 이루어진다”-야망과 비전을 가진 청년 누구나 꿈을 꾸지만 반드시 그 꿈이 이루어진다고 보장할 수는 없다. 그러나 모든 역경을 딛고 일어나 꿈을 실현했을 때 그 감동이란 본인뿐만 아니라 주위사람들에게도 잔잔한 감동과 함께 교훈을 주게 되는 것이다. 하인스 워드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미식축구 선수라면 누구나 꿈꾸는 최고의 경사”라며 MVP 등극에 성공한 비결을 묻는 질문에 “열심히 땀 흘리며 훈련하는 것 말고 다른 길이 있겠느냐”면서 반문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또 다른 비결은 어머니”라고 말하면서 “엄마는 하루 세 가지 일을 하며 나를 키우면서도 절대 남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 그런 모습이 오늘날 나를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라고 말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효자로 알려진 워드가 엄마를 위해 성공해야 하겠다고 마음먹고 열심히 연습하고 또 연습하였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절반의 한국인이라는 것이 부끄러웠지만 철이 들면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라고 마음을 고쳐먹고 어머니를 위해, 그리고 자신을 위해 열심히 운동연습을 했다는 것이다. 미국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언제든 기회를 제공하는 ‘기회의 땅’이기도 하다. 워드 열풍에 힘입어 만일 워드가 국내에서 성장하였다면 그렇게 성공할 수 있었겠느냐는 질문이 많이 나온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독자에게 맡기겠지만, 적어도 워드에겐 미국이 성공의 기회를 제공하였다. 지금도 수많은 운동선수가 미국 등 선진국으로 꿈을 실현하기 위해 가고 있지 않은가? 박찬호가 야구선수로 갔다면, 박세리는 골프선수로 미국행을 택했다. 지난 2002년 월드컵은 한국인들에게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메시지를 심어주었다. 워렌 베니스의 리더십 제1원칙을 다시 들먹이지 않더라도 훌륭한 교사는 꿈을 심어주는 사람이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교사는 학생들에게 용기를 북돋우어주고 잘할 수 있다고 격려해주어야 한다. 박정희는 ‘잘 살아보자’는 꿈을 심어주었고, 존 에프 케네디는 ‘인간을 달나라에 보내자’는 꿈을 말했다. 지금 우리가 힘든 것은 지도자가 꿈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워드는 우리에게 꿈을 꾸게 하라고 말해주는 것이다.[PAGE BREAK]겸손한 성품의 소유자 워렌 베니스가 말하는 리더십 제2원칙은 훌륭한 성품과 도덕성이다. 성품에 대해서는 스티븐 코비 박사도 매우 강하게 어필한다. 스티븐 코비 박사는 그의 책《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에서 성품은 좋으나 실력이 달리는 의사와 성품이 나쁘나 실력이 좋은 의사가 있을 때 ‘당신의 두 의사 중에서 어느 분에게 수술을 맡기겠는가?’라는 질문을 한다. 이 질문에 대해 많은 사람이 후자를 선택한다. 물론 정답은 둘 다 아니다. 코비 박사는 성품도 좋고 실력도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즉, 좋은 성품과 훌륭한 실력을 갖춘 의사에게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워렌 베니스도 이 점에 동의한다. 워드는 그의 어머니에게서 겸손의 철학을 배웠다고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강조하였다. 그의 어머니는 미국으로 남편을 따라갔으나 곧 이혼하였고, 혼자 워드를 키우면서 자식을 뒷바라지하느라 갖은 고생을 다하였다. 억만장자의 아들을 둔 그는 지금도 어느 고등학교 식당에서 일하고 있으며 힘 있는 날까지 계속해서 일하겠다고 말하여 우리를 감동시켰다. 그의 어머니는 그에게 항상 겸손할 것을 요구하였고, 실제로 그는 어머니의 말을 잘 따랐다. 유명인사가 된 뒤에도 출신 고등학교를 자주 찾아갔고 선생님들을 만났다. 그리고 고등학교 유니폼 비용을 모두 그가 대었다고 한다. 많은 교육자가 인성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인성교육은 어렸을 때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특히 윤리 도덕 교육은 빠를수록 좋다. 워드가 슈퍼볼 경기를 끝내고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은 플로리다 올랜드에 위치한 디즈니 월드이다. 물론 광고 촬영 차 달려갔지만 어려운 환경하에서 절대 울지 않고 미키 마우스처럼 웃으면서 살아간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그는 실제로 울지 않으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우리는 그의 미소 속에서 긍정적 사고를 배운다. 교사의 성품은 리더십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지만 외부에서 관찰이 용이하지 않으며 오랜 시간에 걸쳐 그 사람됨을 알게 되는 것이다. 성품은 심리적인 건강성을 말하며, 남을 배려하고 사랑하며 남을 좋게 보려는 아름다운 정신을 말한다. 이는 높은 수준의 도덕성과도 연관되어 있다. 교사에게는 종교지도자보다도 더 높은 수준의 도덕성과 훌륭한 성품이 요구되는 것이다. 실력으로 당당히 맞선 워드 워렌 베니스의 리더십의 제3원칙은 실력과 역량을 갖추라는 것이다. 앞에서 스티븐 코비 박사의 말처럼 품성과 실력을 갖춘 리더가 훌륭한 리더라는 것이다. 유에스에이 투데이를 인용한 중앙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워드는 십자인대 손상, 홀어머니와의 힘든 유년 시절, 후보 선수에 가까운 3라운드 지명의 어려움을 모두 이겨냈다. 포레스트파크 고교시절 코치 파리스는 그를 “어디서도 찾기 힘든 만능 스포츠맨이다. 타고난 운동감각으로 어느 포지션을 맡겨도 잘 해냈다”라고 말했다. 워드는 고등학교 때 쿼터백을 맡았으나 조지아 대학 입학 이후에는 와이드 리시버(공을 받는 선수)로 두각을 나타냈다고 한다. 어떤 어려운 공도 잘 받아낼 수 있는 ‘황금의 팔’을 가진 그는 몸집이 작아 대학 입학 후 와이드 리시버로 변신하였던 것이다. 워드는 통산 574개의 패스를 받아내 스틸러스의 전설적인 인물들보다 더 많은 기록을 달성하였다. 이는 슈퍼볼의 MVP일뿐만 아니라 프로풋볼 명예의 전당에 들어 갈만큼 슈퍼스타로 공인 받았음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번 슈퍼볼 경기에서도 동료 선수가 패스한 공을 잘 받아서 터치다운한 것이다. 한 장의 그림 같은 장면이다. 지난 2월 10일 애틀랜타 자택에서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워드는 “마침내 제 꿈이 이루어졌습니다.(Finally my dreams come true)”라고 말할 정도로 아메리칸 드림의 실현자가 되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미국은 기회의 나라이고, 실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통쾌한 소식임에 틀림없다. 앞으로 우리나라도 실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노력을 통해 그 꿈을 달성할 수 있도록 돕는 조력자(helper)역할을 해야 한다. 때로는 코치 혹은 멘토(mentor)의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이제 더 이상 교사는 지시명령하면서 가르치는 인스트럭터(instructor)나 티처(teacher)가 아니다.
한국 대학에서 학생들의 '등록금 인상 반대투쟁'이 연례행사화 되는 등 갈등을 빚고 있는 가운데, 미 하원이 30일 대학들이 일방적으로 학비를 대폭 인상하는 것을 견제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미 하원은 이날 연방정부로부터 교육 재정지원을 받는 대학들이 이전 3년 물가인상률의 평균치보다 2배 이상의 등록금을 인상하려고 할 때는 그 이유를 제시토록하는 것을 골자로 한 고등교육법 개정안을 상정, 논란끝에 가결처리했다. 미국에서도 최근 10여년간 등록금이 물가상승률 이상으로 크게 인상돼 학부모들과 학생들로부터 불만을 사왔다. 또 법안은 가장 큰 폭으로 등록금을 올린 대학 중 상위 10%는 학교의 재정과 지출 등 경비분야를 연구할 수 있는 태스크포스를 구성토록 했으며, 이를 준수하지 않을 경우 연방정부는 2만5천달러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하워드 맥케온 의원(공화.캘리포니아주)은 "대학들이 학비를 지속적으로 인상해온 만큼 이젠 고등교육의 소비자들에게 이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많은 대학들이 신입생 전형 과정에서 수상이나 봉사활동 실적 등 비교과 영역을 거의 반영하지 않으며 ‘반영 확대’ 의지도 없는 것으로 조사돼, 내신 위주로 전형하려는 정부의 2008학년도 대입시 정책이 무색해지고 있다. 고교 내신에 대한 대학들의 낮은 신뢰도가 원인이다. 교육부 자문기구인 교육발전협의회 학교생활기록부 개선 분과위원회(위원장 최현섭 강원대 총장)가 대학관계자들과 교사 369명, 전문가 등을 대상으로 지난해 11월 설문 및 심층 면담한 결과이다. ◇대학들 “비교과 영역 확대 반영 않겠다”=위원회가 2006학년도 205개 4년제 대학 신입생 전형계획을 분석한 결과, 학생부 비교과 영역 중 자격증이나 수상실적을 전형에 반영하는 대학은 9곳, 봉사활동 실적을 반영하는 대학은 30곳이었다. 그나마 반영 비율도 5% 미만으로 미미한 편이라고 보고서는 밝혔다. 계량화가 쉽고 신뢰성이 높은 출결상황은 114개 대학이 반영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비교과영역으로 학생을 뽑으려는 대학 의지도 매우 낮아, 120명 대학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다’는 답변은 13.3%에 불과했다. ‘교과성적 중심으로 뽑겠다’(40%), ‘현행 수준 이상으로는 어렵다’(32.5%), ‘학교간 성적차가 존재하는 한 비교과 영역 개선은 의미 없다’(14.2%)는 순으로 답변했다. ◇내신 신뢰도 방안 제시 못해=대학들은 “수상기관이 난립돼 있고 공정성이 의문시 된다”며 “상을 받은 실적만 존재하고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통해 수상했는지를 보여주는 내용이 없다”고 지적했다. 수상실적에 대한 공정성과 신뢰성 확보가 어려운 만큼 이를 계량화하기 쉽지 않다는 언급이다. 봉사활동 기록에 대해서도 “대부분 시간만 채우는 쓰레기 줍기가 봉사활동인지, 소풍가서 식사하고 청소하는 것도 자연보호운동이라면서 봉사활동이라는데 동의할 수 없다” “심지어 서류조작 등 범법행위마저 조장되고 있다”고 대학들은 지적한다. 학생부 신뢰도 제고방안으로 교사와 대학관계자들은 ‘교사들이 정직한 평가를 할 수 있는 퉁토 조성’ ‘기록 및 관리 지침의 명확성’을 공통적으로 요구했다. 이에 더해 교사들은 학급당 인원 감축 및 잡무경감, 대학 측은 교사 및 학교에 대한 지도감독 강화를 덧붙였다. 보고서는 학생부에 질적 평가(서술형, 정성적)를 강화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나 학급당 인원 감축 등이 선행돼야 한다고 밝혔으며, 결과적으로 교육부가 정책으로 채택할만한 대안은 제시하지 못했다.
퇴근 무렵. 책상 위에 놓여있던 휴대폰이 갑자기 울리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휴대폰 액정 위에 나타난 전화번호가 왠지 낯익어 보였다. 그 전화는 다름 아닌 올해 졸업한 장애우 익진이로부터 걸러온 것이었다. 사실 2월 졸업 후, 익진이와 통화를 한 적이 거의 없었다. 학창시절 항상 내 주위를 맴돌던 아이였기에 졸업 후에도 대학 생활을 잘해낼지 의구심을 가지고 있던 차였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 탓도 있겠지만 학기초 워낙 바쁜 학교 일정과 담임업무로 그 아이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내 마음 한편에는 장애우 익진이가 늘 자리잡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그 아이가 나에게 전화를 한 것이었다. 반가움에 통화 버튼을 누르자 늘 그랬듯이 정확하지 않는 익진이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들러왔다. “선생님, 안녕하셨어요? 저 익진이예요.” “그래, 너구나. 대학생활은 잘하고 있니? 힘든 것은 없니?” “네~에. 그런데 고등학교 학창시절이 그리워져요. 선생님도 보고 싶고요.” “처음이니까 아마도 그럴 수도 있을거야. 앞으로 괜찮아 질거야.” 익진이의 목소리는 예전에 비해 그렇게 맑아 보이지가 않았다. 대학 생활이 무척이나 힘들어 보이기까지 했다. 사실 뇌성마비 2급 장애우인 익진이가 정상적인 아이들도 하기 힘든 대학 생활을 잘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3월 대학 생활 한 달을 잘해온 것에 대해 고맙기까지 했다. 익진이는 대학에서 있었던 일을 비롯하여 그동안 하지 못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리고 첫 미팅을 한 이야기를 할 때에는 다소 흥분하여 말을 하기도 하였다. 무엇보다 손이 불편하여 교수님의 강의 내용을 필기할 때가 제일 힘이 든다며 그 안타까움을 토로할 때는 왠지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지기까지 했다. “익진아, 그렇다고 포기는 하지마. 알았지? 선생님은 너를 믿는다.” “선생님, 자신은 없지만 열심히 할게요.” 익진이와 전화를 하고 난 뒤, 여러 생각들이 교차되었다. 어쩌면 앞으로 익진이에게는 이보다 더 큰 힘듦이 기다리고 있으리라. 지금 이 순간, 대학 1학년인 익진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용기와 희망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4월 장애인의 달을 맞이하여 진정 장애우를 위한 장애인의 달이 되길 기대해 본다.
수원제일중학교(교장 강수남)는 2006학년도 교육실습생 오리엔테이션을 3월 31일 오후 3시 30분 교장, 교감, 연구부장, 교생 9명이 참석한 가운데 교생정보실에서 교육실습생활을 안내하였다. 이 자리에서 강 교장은 "우리 학교에 온 9명의 교생을 진심으로 환영한다"면서 "점차 황폐화되어 가고 있는 학교 현장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지혜를 교생실습을 통해 익히는 소중한 실습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영관 교감은 대학 시절 교생 실습과 지도교사가 되어 교생을 맞이한 사례를 소개하면서 "학교와 학생에게 도움이 되고 교생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는 윈윈(Win-Win)의 실습이 되길 바란다"며 "직업인으로서의 교사가 아니라 사명감을 지닌 교사가 되어 줄 것"과 "배우려는 자세로 '자율적, 긍정적, 적극적, 능동적, 교육적'으로 실습에 임하여 줄 것"을 당부하였다. 이어 김지경 연구부장은 자체 제작한 '교육실습 생활' 책자를 중심으로 실습 안내와 유의사항을 전달하였고 교생들은 교과 지도교사와 학급 지도교사를 찾아가 상견례를 하면서 교육실습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하였다. 수원제일중학교는 경기도교육청 지정 교생실습 대용학교로서 1차로 4월 3일부터 4월 29일까지 교생 9명(학부생 1명, 교육대학원생 8명), 2차로 5월 1일부터 5월 27일까지 교생 8명(학부생 1명, 교육대학원생 7명)을 대상으로 참관실습, 수업실습, 실무실습의 과정을 지도한다.
‘교육력 제고를 위한 수석교사제 도입방안’을 주제로 지난 30일 교총 대회의실에서 개최 되었던 제2차 교육정책포럼에서 美·英·濠·中에서 명칭만 다른 수석교사제를 도입하여 운영하고 있다는 인천대 이윤식 교수의 사례발표가 있었다고 한다. 본 리포터도 수석교사제에 대한 의견을 여러 차례 기고한 바가 있었고 1981년 한국교육개발원 보고서에서 처음 소개된 이래 2004년 교육부 교원승진체제발전연구위원회가 교원자격·승진체계 2원화 방안을 제시해 공론화가 됐었으며 이듬해 교육부 등 관계 부처가 정책화를 논의한바 있다고 한다. 교육계의 수많은 사람이 수석교사제에 공감하고 있는데도 예산을 이유로 아직도 시행을 미루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이다. 수업 잘하는 교사를 모두가 원하고 있으며 매우 중요한 현안임을 알면서 수업의 전문가인 교사에게 힘을 실어줄만한 아무런 인센티브도 주지 않고 있는 것은 교사를 전문가로서 인정해 주지 않고 방치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전문가로서의 자긍심을 가지고 2세 교육에 전력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가 하루속히 마련되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조종사의 비행거리와 시간을 누적마일로 합산하여 상응하는 인센티브를 주는 것처럼 수업을 열심히 하는 교육전문가인 교사가 학생을 가르친 시간을 누적 포인트로 계산하여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인센티브를 주어 사기를 진작시키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1만 포인트 단위로 격상하여 수당을 주거나 휴가 또는 해외연수기회제공 등의 인센티브를 주면 사기는 충천할 것이다. 교사면 누구나 포인트가 비슷하지 않겠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노력여하에 따라 포인트를 얻을 수 있도록 하면 된다. 정년 때 수여되는 훈 포장도 수업 포인트를 반영한다면 가르치는 일에 혼신을 다하고 교사로서 보람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이때, 평소일반수업과 공개수업(학교, 지역교육청, 도교육청, 전국단위), 수업연구대회 수상등급(1,2,3등급)도 그 정도에 따라 일정 점수를 부여하여 합산하는 방식으로 이제도를 운영하면 교사의 생명이 수업이라는 교단분위기 조성과 수업의 질 향상을 위해 노력하게 될 것이고 수업전문가로서의 보람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제도를 심도 있게 연구하여 제도화 한 다음 학교현장에 정착하게 되면 과열승진현상이 완화 될 것이고 이런 저런 사정으로 승진의 기회를 놓친 수업우수교사들이 수업전문가로서 인정을 받으며 정년 때 수많은 시간의 수업기록을 남기고 명예롭게 퇴임하는 아름다운 모습이 제자들과 학부모들에게 스승으로서 존경이 대상이 되지 않을까? 진정한 교육의 전문가는 학생을 직접 가르치는 교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교사에게 가르치는 보람을 안겨 줄 수 있는 제도적장치가 필요한 것이다.
4월 1일, 오늘은 만우절입니다. 저는 만우절을 일년 동안 정직하게 양심을 지키며 살아온 사람을 위해 하루쯤은 거짓말을 해도 좋다고 허용하는 의미에서 생겨난 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사람은 오늘 하루만큼은 정직하게 보내야 한다고 아이들에게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만우절은 약간 다른 연원을 가지고 있더군요. 16세기 프랑스에서 1년의 시작은 4월 1일이었습니다. 그러나 1562년 교황 그레고리 13세가 1월 1일이 새해의 시작인 새로운 달력 '그레고리력'을 유럽 세계에 가져왔고, 샤를 9세가 이를 공포하면서 새해의 시작은 1월 1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소식을 듣지 못한 사람들은 여전히 4월 1일이 새해의 첫날이라고 믿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4월 1일에 예전 방식대로 새해를 축하하는 파티를 준비했고, 여러 사람들에게 신년을 축하하는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들을 4월의 바보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장난 삼아 그들에게 진실을 이야기해 주지 않고 이들이 여러 사람에게 놀림감이 되도록 하였습니다. 이것이 만우절의 기원이라고 합니다. 교사인 저는 오늘 교실에 들어가기가 괜히 망설여졌습니다. 악동이들이 혹시 이상한 짓을 하지 않을까 염려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어떤 반은 칠판이 아닌 교실 뒤쪽을 보고 앉아 있고, 어떤 반은 다른 반 학생들과 반반씩 섞여 앉아 선생님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습니다. 더러는 짓궂은 거짓말도 걸어옵니다. “선생님, 남대문이 열렸는데요?” “선생님반 아이들이 아까 쉬는 시간에 싸워 유리창이 깨졌어요.” 다소 유치해 보이지만, 그래도 얼마나 귀엽습니까? 입시 교육에 찌든 현실 속에서 그나마 작은 추억이라도 만들어 보겠다는 이들의 여유로움이…. 그 덕에 저도 같이 한번 웃어보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아이들에게 만우절에 대한 거짓말에 대해 이야기 해보라고 했습니다. 대부분은 살짝 웃고 넘어갈 만한 작은 거짓말이었지만, 개중에는 심각한 것도 있었습니다. 이런 것들입니다. '119에 장난삼아 화재신고를 했다' '중국집에 옆집 동호수를 대고 자장면을 시켰다' '어머니께 교통사고가 났다고 빨리 병원으로 오라고 했다'는 등. 이런 것들은 그냥 웃고 넘기기에는 자못 심각한, 장난 수준을 넘어서는 것들이어서 저를 놀라게 하였습니다. 인터넷뉴스를 보니, 누리꾼들 사이에서 만우절에 가장 흔히 쓰이는 거짓말은 '선생님이 부른다'인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포털사이트 엠파스에 따르면 '만우절에 가장 많이 써먹은 거짓말'을 조사했더니, 응답자 2천450여명 중 32%가 '너 큰일났다. 선생님이 부르셔'였다고 답했습니다. 이어서 14%가 '로또 1등 당첨됐다', 11%가 '애인 생겼다', 8%가 '나랑 사귀자', 4%가 '바지 지퍼 열렸다', 3%는 '교통사고 당했으니 병원에 와달라'를 꼽았습니다. 또한 만우절로 난감했던 경험으로는 44%가 "내 거짓말에 아무 반응이 없을 때", 22%가 "거짓말로 사귀자고 고백했는데 상대가 진짜 믿을 때"라고 답했습니다. 오늘은 교무실의 선생님들도 만우절 얘기로 꽃을 피웠습니다. 그 중에서 압권은 학생부장 선생님의 복수담이었습니다. 학생부장 선생님은 만우절이면 늘 아이들에게 당하기만 하는 선생님들을 위해 복수를 준비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방송을 한 거죠. "전교생에게 알립니다. 오늘은 운동장 조회가 있겠습니다. 교실에 있는 학생 여러분들은 빨리 운동장으로 집합해 주기 바랍니다. 가장 늦게 집합하는 반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벌칙이 주어질 것입니다!" 만우절에 웬 운동장 조회? 혹시 거짓말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기도 했겠지만, 학생부장 선생님이라면 믿을 수밖에. 아이들은 늘 무표정하고 엄하기만 한 학생부장 선생님이 설마 전교생을 상대로 거짓말을 할까 싶어 의구심을 떨쳐버리고 운동장에 우르르 모였습니다. 하지만 잠시 후 다시 마이크를 잡은 학생부장 선생님. "오늘은 만우절이라 제가 거짓말 한번 해보았습니다. 학생 여러분은 속히 교실로 들어가기 바랍니다." 야호! 당하기만 하는 선생님들을 대신해 학생들에게 통쾌한 복수를 한 것이지요. 저는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권했습니다. 놀라지 마세요. 다른 게 아니라 부모님을 상대로 '좋은 거짓말'을 한번 해보라는 말이었습니다. 먼저 어머니께 전화해서 긴히 말씀드릴 것이 있다고 해서 저녁 7시쯤에 약속을 잡는 겁니다. 같은 방법으로 아버지와도 약속을 잡는 거죠. 그 다음 보기 좋게 두 분을 만나게 해서 모처럼 엄마 아빠가 자식 덕분에 멋진 데이트를 하게 하는 겁니다. 부모님이 좋아하는 영화표나 음악회 티켓을 준비하면 더욱 좋겠지요. 너희들을 키우느라 데이트도 한번 제대로 못한 부모님을 위해 한번쯤 거짓말을 해도 괜찮다는 것이 선생님인 저의 논리였습니다.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거짓말 하라고 부추겨도 되나, 뭐 이런 생각이 들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착한 거짓말, 그것도 일년에 한번 하는 거짓말이니 하느님도 용서해 주시지 않을까요.
한국스카우트 경기남부연맹(연맹장 최재복)은 2006년도 스카우트 직무연수 프로그램 운영 준비위원회를 3월 30일 오후 연맹 사무실에서 가졌다. 오늘 회의에는 준비위원장인 백선흠 교장(수원 명인초)을 비롯해 초·중·고 7명의 위원이 전원 참석하였는데 경기도교육청 직무연수 승인기준 변경에 따라 야영훈련에 대한 시간을 인정하지 않으므로 10일간 출퇴근하면서 받을 수 있는 스카우트 직무연수 프로그램 과목 개발에 관한 진지한 토의가 있었다. 새롭게 신설되는 직무연수 안으로는 연수목적을 실천중심의 스카우트 지도자 교육에 두고 비야영, 강의, 실연 중심으로 40명 단위 총 4개반 160명을 예상인원으로 직무연수를 개설하기로 의견을 모으고 교사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면서 연수 목적에 맞는 과목을 구안하여 연맹에 의견을 제시하기로 하였다. 이렇게 할 경우, 스카우트 교육에 접근이 용이하고 폭넓은 지도자를 양성할 수 있으며 학교 중심의 대활동을 실질적으로 지원할 것으로 보았다.
김진표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장관은 31일 경기도를 비롯한 일부 지방자치단체의 잇단 영어마을 설립과 관련해 "영어마을은 그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부총리는 이날 오후 3시 경기도교육청에서 도내 초등학교 교장, 도 교육청 직원 등 9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올 전반기 초등학교장 회의에 참석, 올 교육정책 방향과 과제를 설명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경기도는 지난 2003년 8월 영어마을 안산캠프를 개원한데 이어 다음달 3일 파주캠프, 2008년 양평캠프를 개원할 예정이며 서울.인천.제주 등 전국적으로 영어마을조성 붐이 일고 있다. 그는 "영어마을 하나 만드는데 2천억-3천억원이 들고 운영하는데도 연간 비슷한 돈이 들어간다"며 "연간 운영비만도 경기도내 각 학교에 1억원이상씩 지원할 수 있는 규모"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각 학교에 1억원씩 지원하면 원어민 교사 3명을 채용할 수 있다"며 "원어민교사 채용이 학생들의 영어능력을 향상시키는데 (영어마을보다) 더 효과적"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건물만 좋다고 학생들의 영어실력이 향상되는 것이 아니며 학생들이 영어마을을 이용하는데도 부담이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강남구와 서초구 등 강남교육청 관할 입시학원 종합반 수강료가 강북지역의 2배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소비생활연구원은 7∼8일 서울지역 10개 교육청 20개구의 입시종합학원과 영어전문학원, 논리논술학원 172곳을 상대로 학원수강료 실태조사를 한 결과 서초, 강남구 등 강남교육청 관할 입시종합학원 종합반 수강료가 49만8천882원으로 서울지역에서 가장 높았다고 31일 밝혔다. 반면 종로, 용산, 중구가 포함된 중부교육청 관할 입시종합학원 종합반 수강료는 22만7천857원으로 서울지역에서 가장 낮아 강남 대표 학원가와 강북 대표 학원가 간의 입시학원 종합반 수강료 차이가 2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한강 이남지역의 입시학원 종합반 수강료도 여타 강북지역보다 대체로 높았다. 한강 이남인 강서.양천구는 33만2천400원, 송파.강동구는 26만3천200원, 관악.동작구는 26만4천원, 구로.금천.영등포구는 24만1천282원인 반면 한강 이북인 성북.강북구는 23만3천636원, 서대문.마포.은평구는 23만원, 동대문.중랑구는 22만9천91원이었다. 영어전문학원이나 논리.논술전문학원 수강료도 강남은 높고 강북은 낮았다. 영어전문학원 수강료는 송파.강동구가 포함된 강동교육청이 23만5천원으로 가장 높았고 서대문.마포.은평구가 속한 서부교육청이 11만9천91원으로 가장 낮았다. 논리.논술전문학원은 강남교육청 관할 학원수강료가 26만6천667원이나 돼 동대문.중랑구가 포함된 동부교육청 관할 학원수강료 5만2천500원의 5배에 달했다. 연구원 관계자는 "교육당국이 기준수강료를 정해두고 있지만, 50분 단위로 책정된 것이라 대개 90-100분 단위로 수업을 하는 학원들의 현실과 맞지 않는 등 유명무실하다"며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적절한 수강료 기준을 마련하고 정기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학원들이 이를 준수하는 지 감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목요일은 도서관가서 1시간 책을 읽고 옵니다. 11명이 차례로 읽은 책에 대하여 발표했습니다. 책의 제목과 느낀점을 발표하라고 했습니다.11명의 친구들이 다 발표하고 나자 어떤 녀석이 "선생님은 뭐 읽었나요?" 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너무나 뜨끔하고 챙피해서 눈 앞이 캄캄했습니다. 책을 안 읽고 학생들 독서 지도를 하다가 컴퓨터를 했으니까요. 다음 주 부터 들어 갈 시간표를 만들었지요. 귀여운 우리 반 친구들은 "선생님은 시간표 만드느라 못읽었어요. 자 이것 내일 나누어 줄게" 하고 보여 주었더니 시간표가 너무 예쁘다고 감탄까지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너무나 뜨끔했었는데 말입니다.
잡담... 아, 따분하다. 정말 따분해. 따분하긴 뭐가 따분해? 매달 17일 꼬박꼬박 돈 나오겠다, 여름방학, 겨울방학에 학기말 방학까지. 푹 쉬다 지친 그대들은 떠나지, 해외 방방곡곡으로. 니들이 게 맛을 모른다고 해도 이런 맛은 충분히 알잖아. 모르는 소리 말라구. 하루하루가 똑같이 굴러가는 게 얼마나 넌덜머리가 나는데. 너희들이 아직 배가 덜 불렀구나. 그러니까 교직이 철밥통이라는 소리나 듣는거야. 철밥통? 그래, 철밥통이지. 그치만 우리도 그만큼 애쓰고 있다구. 매일매일 공문처리하지, 수업해야 되지, 그 많은 아이들 일기검사도 해줘야지.. 끼어들기... 도저히 귀를 막지 않을 수가 없군요. 뭐가 그리 불만이십니까? 지루한 일상이 싫으시다구요? 수업만 하고 싶다구요? 그러기 전에 내가 교사로서 어떤 노력을 했는지 생각해 보시죠. 혹시 교장선생님 앞에서 두 손바닥만 문지르고 계셨나요? 아님 단 몇 분이라도 아이들이 어떻게 하면 즐겁게 공부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보셨나요? 항의... 왜 우리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죠? 가뜩이나 공문 때문에 머리 아픈데 말이에요. 우리를 비난하기 전에 교육에 투자나 좀 하세요. 영양사가 그렇게 많이 필요합니까? 공문 담당직원이나 뽑으라죠. 그렇게만 해준다면 우리가 교재연구를 왜 안 하겠어요? 교육부... 자, 다들 조용히 좀 하세요. 내년 2학기부터 당신들을 평가하겠습니다. 아마 이제부터는 따분하지 않을 거예요. 반항은 하지 않는 게 좋아요. 어차피 밥그릇 싸움이라고 손가락질이나 받을 테니까. 교육부가 교원평가제 실시에 따른 의지를 밝혔다. 당연히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은 교원평가제를 반기고 있다. 공교육에 대한 불신에 따른 자연스런 반응이다. 물론 기존의 평가방식인 근무평정제가 있긴 했지만, 결과가 비공개였고 승진자료로만 이용되어 수업은 뒷전, 연수는 열심인 현상을 야기했을 뿐이었다. 어쨌거나 교원평가제의 시행은 교사들에게 매우 신선한(?) 자극이 될 거라고 예상된다. 교원평가제의 시행에 따른 가상현실 교육부는 이르면 내년에 교원평가제를 시범적으로 실시하고, 2007년부터 전면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이 제도를 시행하게 되면서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상황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1 2007년 5월 어느 날 초등학교 6학년 딸을 둔 학부모 김모씨는 최근 담임교사의 달라진 모습을 생각하면 여간 즐겁지 않다. 학교의 인터넷 온라인 학급을 통해 묻는 질문에 항상 친절한 답장을 써주기 때문이다. 아이가 5학년 때만 해도 답장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인터넷으로 상담은 물론 아이의 학교생활을 한 눈에 파악하고 있다는 이웃집 엄마의 자랑을 생각하면 서운하기도 했지만 ‘혹시라도 내 아이를 무시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항의 한 번 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 담임은 교원평가제를 의식해서인지 학기 초부터 무척 열심이다. 김씨는 담임교사의 열성과 노력을 공개수업을 통한 교사평가에 반영하기로 하고 교사의 활동을 꼼꼼히 메모하고 있다. 교원평가제는 자의든 타의든 간에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교사들의 생각을 깨울 것이라고 생각된다. 교사가 되기까지 교직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수업을 이끌어가던 교사들도 점점 시간이 지나면 예전에 가지고 있던 열정을 잃어버리게 된다. 이런 상황으로 미루어 볼 때, 원래 그들이 가지고 있던 능력을 일깨워 주는 데 교원평가제가 한 몫 할 거라고 본다. 또한 학부모들의 공교육에 대한 불신을 완화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교육의 질에 대한 만족감도 커질 것이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을 수 없다는 말도 있듯이 교사의 수준을 향상시킨다면 교육 전체의 수준도 함께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2 2007년 9월 사립 고등학교 교사인 박모씨는 예상치 못했던 고민에 빠졌다. 박 교사를 대하는 다른 동료 교사들의 분위기가 예전과 다른 탓이다. 2006년만 해도 교과연구를 위해 의논도 하고 함께 여가도 즐겼던 교사들이 인사조차 받아주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이유는 없었다. 다만 지난 6월 실시한 공개수업에서 독특한 수업방법으로 학부모들의 박수를 많이 받은 것이 전부였다. 자신이 동료교사들 사이에서 집단따돌림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 것은 한참 뒤였다. 그는 사립학교의 특성상 평생 어울릴 수 없는 이 학교에서 근무해야 한다는 생각에 심각하게 전직을 고려하고 있다. 이 점이 바로 교원평가제의 한계라 할 수 있다. 교육의 질을 높이겠다는 취지가 무색하게도, 열심히 노력하는 교사가 동료 교사의 눈에는 평가를 의식하는 교사로 비춰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교원평가제의 문제점은 이게 다가 아니다. 학생들과 학부모까지도 평가자에 포함시킴으로써 무조건 인기 있는 선생님, 잔소리 안하는 선생님, 맛있는 거 잘 사주는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게 될 수도 있다. 또한 공개수업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평가를 해야 하는 학부모들이 과연 얼마나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를 할 수 있을 지도 의문이다. 이렇게 되면 교사도 ‘보여주기식 수업’에 충실할 수 밖에 없다. 과연 올바른 해답은 무엇인가? 사실 교원평가제가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미 많은 나라들이 교원평가제를 도입하여 시행하고 있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는 각국 정부에 현직교사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교원평가제를 권고하고 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얼마나 객관적인 기준으로 평가를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교장, 교감, 동료교사는 그렇다 치더라도 한 학기에 한두 번 공개수업을 참관하여 교사를 평가해야 하는 학부모들은 어떠한가?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는 아이들의 평가는 어떠한가? 교사들의 상호평가 또한 공정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교육부는 교원평가제의 이른 시행을 지양하고, 부족한 점을 좀 더 보완하여야 한다. 교사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가르침이라는 행위가 이제 심판대 위에 오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에게 확신을 가진 교사는 심판대 위에 오르더라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을 것을 안다. 교원평가제가 어찌됐건 예비교사인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그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준비된 교사가 되는 일일 것이다.
한나라당은 31일 대학 기여입학제를 허용하고 국.공립 대학 등록금을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인하하는 내용의 지방선거 공약 시안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책위 관계자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지방선거 주요 공약으로 국.공립 대학의 등록금을 반값으로 내리는 정책을 발표할 것"이라며 "재정 운영에 문제가 없도록 기여입학제를 포함한 기금 마련 방안도 함께 도입될 것"이라고 밝혔다. 기여입학제란 대학 입시에서 해당 대학에 물질.정신적으로 기여한 당사자나 자손에게 시험을 보지 않거나 최저 시험점수로만 입학을 허가해주는 제도이며, 교육부의 3불정책(고교등급제, 대학별 본고사, 기여입학제 금지)에 포함돼 있어 도입 추진시 논란이 예상된다. 이와 함께 한나라당은 강북지역에 9~20개 정도의 자립형사립고를 집중 설립해 강남.북간 교육격차를 해소하고, 저소득층 자녀의 자립형사립고 입학시 장학금을 전액 지원토록 하는 방안도 추진키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부동산 후속 대책과 관련, 그린벨트 재정비를 통한 제3기 신도시 조기착공을 비롯해 뉴타운 개발 활성화와 중.대형 아파트를 포함한 수도권 대규모 렌털타운 조성 등 공급확대 방안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다른 관계자는 "주택공급확대를 위해 3기 신도시 계획 조기 발표를 촉구할것"이라면서 "현재 비체계적으로 관리되고 있는 그린벨트를 정비하면 수도권역내에 얼마든지 부지를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뉴타운 건설시 학교 등 기반시설조성 비용에 대해선 국가가 비용의 50%를 부담토록 의무화하는 내용의 도시재정비촉진법 개정안과 판교 등 대규모택지 및 토지 원가조성 공개 추진 방안도 대책에 포함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