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서로 혹은 자신과 소통을 하는 데는 얼마동안의 시간이 필요할까. 간단한 의사 전달에서부터 진정성이 묻어나는 감정 교환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많은 종류의 소통을 하며 살아간다. 우리는 이것을 온전히 이루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 실습을 경험하며 사람 사이의 소통에 대해 다시금 떠올리게 되었다.
5일동안의 참관 실습을 다녀왔다. 나는 조금의 기대와 설렘, 약간의 안정감을 명찰과 함께 달고 교실로 향했다. '이제 어른이니까 아이들을 좀 더 편하게 대할 수 있겠지'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려움과 떨림 때문에 잠을 설치거나 걱정에 사로잡히지도 않아, 나는 내가 너무 태연한 것이 아닌가 생각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은 오산이었다. 교실에 들어서며 아이들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난 '헉'하고 숨을 들이쉴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고,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건네도 제대로 대답하기가 힘들 것 같았다. 그만큼 아이들에게 다가서기 힘들어졌다.
이러한 증상은 아이들을 대하는 데 있어서 실습이 끝날 때까지 그다지 호전될 기미가 없었다. 그도 그러할 것이, 참관 일정에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다 보니 정작 아이들과 함께 할 시간이 하루에 채 1시간도 되지 않았다. 마지막 날 담임 선생님께서 마련해 주신 대화의 시간에도, 그저 평범한 화제들을 꺼내 이야기하는 것마저 힘이 들었다.
아직도 사람을 대하는 면에 있어서는 어른이라고 할 수 없구나, 더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는 마음이 고개를 드는 순간이었다. 그것도 꽤나 기나긴 순간이었다. 아이들과의 대화 시간 40분 중, 나는 단 1분이라도 아이들과 제대로 된 소통을 한 것일까. 5일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정이 든다거나 마음이 통하는 일은 드물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적어도 아이들이 우리가 좋은 인연으로 만났다는 느낌을 가지길 바랐다.
담임으로서의 내 모습을 상상해본다. 실습에서처럼 4명의 담당 학생들이 아니라, 30~40명의 아이들과 마주하는 나의 모습을. 한 아이마다 주의를 집중하고 관심을 두는 시간은 그만큼 적어질 것이고, 어떤 아이들은 본의 아니게 소홀히 여겨질 때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모든 아이들과 최대한 온전하고 왜곡되지 않은 소통을 하길 바라는 것은 나의 지나친 욕심일까.
그 때는 실습에서처럼 아이들이 날 귀찮아 하진 않을까 두려워하는 내가 아니라, 먼저 아이들을 믿고 다가서는 나를 만나고 싶다. 그래야 나의 욕심에 한 걸음 더 다가가는 것일 테니까.
믿음을 받고 싶다면 먼저 믿음을 주라는 말이 있다. 누군가의 마음을 열고 싶다면, 내가 먼저 마음을 열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 믿음이 내가 참관 실습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수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