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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호 | 울산 옥현초 교사 냄새 나는 이야기 인도여행을 하다 보면 마을 근처 들판 여기저기에 쪼그려 앉아 있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대개 페트병이나 물통을 한 손에 들고 있는데요, 처음에는 설마 하고 의아해했더니 곧 익숙해져서 자연스럽게 대자연 속 한 풍경으로 다가오더군요. 그들에게 있어 자연은 곧 그들의 화장실이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남겨놓은 그것을 길가던 돼지, 소, 염소 등이 파헤칩니다. 인도에 익숙해질수록 그런 모습들이 결코 불결하고 미개하다기보다는 탁 트인 공간에서 우주의 기운을 받아들이고 공존공생하는 성스러운 과정임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중국여행에도 화장실 때문에 웃을 일이 많습니다. 급하긴 급한데 한참을 달려 도착한 휴게소란 곳에 들렀더니 남녀 공용인데다 칸막이 없이 옆 사람 혹은 뒷사람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때가 많지요. 기껏 칸막이가 있다 해도 고개를 쳐들면 옆 사람 모습이 훤히 보이고 게다가 앞문도 없는 경우도 많고…. 처음부터 냄새 나는 이야기로 시작되었지요? 이번 호에서는 은밀하고 때론 엉큼하며 나만의 공간으로 지극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뒷간을 찾아가고자 합니다. 삼국유사에는 똥과 오줌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둘 있습니다. 신라 22대 지증왕은 옥경이 너무 커서 배필을 구하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사자(使者)로 하여금 배필을 찾도록 하여 삼도를 뒤지게 되었는데 모량부 마을에서 개 두 마리가 북만큼 큰 똥 덩어리 양쪽 끝을 물고 싸우던 것을 보고는 그 똥의 주인을 찾아내 궁중으로 맞아 황후로 봉하였다고 합니다. 또 29대 태종무열왕의 비 문명황후 문희는 언니 보희의 꿈을 사서 황후가 되었습니다. 그 꿈의 내용인즉 선도산에 올라 오줌을 누는데 서라벌이 온통 오줌으로 가득 차더라는 것이죠. 둘 다 똥과 오줌으로 왕후가 되었으니 여러분도 그런 류의 꿈을 꾼다면 좋은 징조로 보이니 기대(?)하셔도 좋을 듯합니다. 우리네 건축에서 뒷간은 집을 구성하는 필수적인 시설입니다. 그러면서도 대개 ‘뒷간과 사돈네 집은 멀수록 좋다’라는 말이 있듯이 생활공간에서 저만치 떨어진 곳에 있지요. 그 으슥한 곳에는 귀신이 삽니다. 이 치귀는 더럽고 냄새 나는 뒷간에서 머물러야 하는 것도 억울한데 행여 누군가 그를 놀라게 하거나 화나게 하면 좀체 화를 풀지 않고 사람에게 해를 입히는 고약한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뒷간을 드나들 때는 인기척을 내서 귀신을 놀래지 않게 해야 했고 요강이 재산목록 1호가 된 것입니다. 휴급소와 해우소 뒷간은 다양한 이름으로 불립니다. 서양의 ‘rest room’은 휴식이라는 의미가 더 강조되고 화장실이라는 의미는 말 그대로 몸을 씻고 화장을 한다는 의미가 큽니다. 변소(便所)란 편안하게 볼일을 보는 곳이고 뒷간은 뒤, 즉 북쪽에 있는 방을 의미합니다. 측간은 집 귀퉁이에 붙은 건물을 이르며, 북수간(北水間)은 목욕이나 뒷물을 겸하는 공간을 의미하지요. 참선을 하는 절집에서는 뒷간이 동쪽에 있으면 동사(東司), 서쪽에 있으면 서정(西淨), 남쪽에 있으면 등사(登司), 북쪽은 설은(雪隱)이라고도 불렀습니다. 정방(淨房)은 몸속을 깨끗이 하는 공간을 말하며 정랑(淨廊)은 ‘깨끗한 복도’라는 의미에서 시작합니다. 절간의 뒷간은 대개 좌우 양쪽에 남녀의 칸을 두므로 좌우를 기준으로 복도가 자연스럽게 생기게 되고 선암사나 연곡사처럼 ‘丁’자 형의 건물은 들어가는 입구가 복도로 되어 있지요. 그래서 정랑이 뒷간을 의미하게 된 것이죠. 청측(圊廁)도 우리네 뒷간을 의미하는 전통적인 호칭입니다. 해우소는 사찰중심으로 쓰이다가 근래에는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말입니다. 해우소는 승당(僧堂), 욕실(浴室)과 함께 삼묵당(三黙堂)으로 말을 해서는 안 되는 곳입니다. 절 뒷간에는 입측오주(入厠五呪)라고 하여 다섯 단계에 걸쳐 주문을 외게 합니다. 화장실에 들어갈 때부터 볼일을 마치고 돌아갈 때까지 각각 외는 주문을 이릅니다. 이는 뒷간에서 똥을 먹으며 산다는 담분귀가 주문을 듣고 자리를 비키도록 하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복잡한 듯한 이 청규을 통해 배설이 또 하나의 수도의 과정임을 깨닫게 해줍니다. 입측오주는 다음과 같습니다. 버리고 또 버리니 큰 기쁨일세 탐욕과 성냄, 어리석은 마음 이같이 버려, 한 조각구름마저 없어졌을 때, 서쪽에 둥근 달빛 미소 지으리. 옴하로다야 사바하 비워서 청정함은 최상의 행복, 꿈같은 세상살이 바로 보는 길. …(이하 생략)… 해우소라는 말은 경봉 스님이 통도사 극락암에 계실 때 처음으로 등장하였다고 합니다. 6․25 전쟁 이후 하루는 스님이 나무토막에 붓으로 휴급소(休急所)와 해우소(解憂所)라는 글을 써서 뒷간에 걸었습니다. ‘휴급소’는 급한 것을 쉬어가라는 의미로 소변보는 곳을 의미하고 ‘해우소’는 몸속에 있는 큰 걱정을 떨쳐버리라는 의미로 대변보는 곳을 의미한다는 설명이었죠. 그는 세상살이에 바쁘다는 사람들이 정작 제일 중요한 자기 자신을 찾는 일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 세태를 보고 휴급소에 가서 다급한 마음 쉬어가고 해우소에서 근심 걱정 버리고 가면 그것이 바로 도 닦는 것임을 일러주었던 것이었습니다. 궁궐의 매우틀 베르사유 궁전에는 뒷간이 없었다고 하지요. 그러다 보니 우리네 요강과 같은 이동식 변기에다 볼일을 보고는 구석진 곳이나 정원, 나무 밑에다 오물을 버리기 일쑤였다고 합니다. 그 당시 서구에서는 길가에 볼일 보는 것이 흔한 일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몸에서 나는 냄새를 감추기 위해 향수문화가 발달했고, 길가다 위층에서 떨어지는 오물세례를 피하기 위해 파라솔이 발달했다고 합니다. 높은 구두가 생겨난 것도 이런 세태에서 유래되었다지요. 그렇다면 우리나라 궁궐의 경우는 어떠했을까요? 조선시대 궁궐에는 뒷간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경복궁에도 뒷간이 28군데 정도 되었다고 합니다. 단, 예외적으로 특수신분인 왕만큼은 배설작업에 있어서도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는데요, 왕의 배설물은 지칭하는 이름부터가 달랐습니다. 하늘 같은 임금님의 똥은 ‘매화(梅花)’라고 일컬었고 그의 오줌은 ‘매우(梅雨)’에 비유했다고 하네요. 임금의 눈물을 옥루(玉淚)라고 하고 임금님의 몸을 옥체(玉體)라고 일컫던 시절에 임금님의 그것마저 향기로운 것이라 해서 그렇게 이름붙인 것이죠. 그러니까 임금님 전용 이동식변기는 ‘매우틀’ 또는 ‘매화틀’로 불리었습니다. 창덕궁에서 발견된 매우틀은 높이가 21㎝, 너비가 39.5㎝ 길이가 22.5㎝ 정도 되는 크기로 나무로 틀을 만들고 주단으로 푹신하게 치장하였습니다. 장방형의 구멍이 뚫린 윗부분으로 볼일을 마치면 복이나인이라는 직책의 신하가 그릇만 빼서 처리했다고 합니다. 양쪽엔 두 발을 올릴 수 있게 발판을 만들어 두었고 앞에는 가리개를 꽂았던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매추라고 불린 잘게 썰어놓은 여물을 바닥에 깔아두었다네요. 창덕궁 경운각에는 옛날 임금님의 변을 꺼내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현지 해설사의 설명에 따르면 건물의 가장자리에 별도의 공간을 마련하여 왕이 볼일을 보면 그 아래로 떨어지고 그것을 신하들이 꺼내어 왕의 건강상태를 체크했다고 하지요. 왕의 건강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척도였던 거죠.[PAGE BREAK] 절집의 뒷간 절집의 뒷간 중 대표적인 곳이 선암사 뒷간입니다. 절집 뒷간 중 답사 1번지라고 일러도 무난할 것입니다. 처음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입구에 붙어있는 이름을 보고 ‘깐뒤’라 읽어야 할지 ‘뒤깐’이라 읽어야 할지, 오른쪽부터 읽어야하는지 왼쪽부터 읽어야 하는지 당황합니다. 그 당황함을 가라앉히고 좀 더 멀리 시선을 대하면 대변소라는 다른 이름이 붙어 있어 오른쪽부터 읽어야 함을 알 수 있지요. 그 규모가 보통이 아니지만 아래에 짚을 깔고 충분한 환기창을 마련해두어 냄새는 잘 나지 않습니다. 시인 정호승은 그의 시에서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라고, 해우소에 쭈그리고 않아 울고 있으면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 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고 노래했으니 여러분도 눈물 날 때 꼭 들러보시기 바랍니다. 영월의 보덕사는 장릉의 원찰입니다. 그곳에는 120년이 넘게 원형을 간직한 뒷간이 잘 남아 있습니다. 나무로 만든 벽면 중간중간에 창살 대신 조그만 구멍을 내서 밖을 내다볼 수 있도록 되어 있는데 그 네모나고 십자꼴의 나무 구멍이 만들어낸 좌우 대칭의 아름다움이 절묘합니다. 그곳에 쭈그리고 앉아 벽의 나무구멍으로 밖을 내다보고 있으면 밑을 간지럽히는 바람의 장난이 비데와는 비교할 수 없이 시원합니다. 실상사에서는 위생과 청결의 논리로 일관된 이른바 ‘화장실 현대화 운동’에 밀려 재래식의 뒷간이 사라져가는 현실에서도 소중한 생명줄로서의 생태 뒷간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내부에는 장애우를 위한 배려로 끈을 매달아 놓기도 하고 쪼그려 앉았을 때 앞뒤 구분 못 하는 분을 위해 ‘앗, 거꾸로네요! 뒤로 돌아앉아 주세요’라는 친절한 문구에다 ‘대변을 보신 자리에는 톱밥 반바가지를 꼭 뿌려 주세요’라는 당부까지 잊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땅을 살리고 먹거리를 살리며 농사짓는 농부님을 살리고 그 쌀과 채소를 먹는 우리들의 생명을 살려내는 길은 똥을 제대로 대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라는 큼직한 안내문까지 남아있어 뒷간 향기가 구수한 곳입니다. 비구니 절집인 동학사에는 해우실이 있습니다. 이 해우실로 건너가는 다리가 곧 해우교지요. 불국사 비로전 앞에 모아둔 돌로 된 변기를 보면 신라시대부터 수세식 변기가 있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배변기능의 복원을 위해 병산서원(屛山書院)은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병풍처럼 펼쳐진 산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만대루가 그 산을 닮아 옆으로 길게 누웠습니다. 이 병산서원 오른쪽, 그러니까 고직사 앞쪽에 미로같이 동그랗게 말린 ‘한데뒷간’이 있습니다. 지붕이 없는 이 뒷간은 돌과 흙으로 담을 두르고 짚으로 용마름까지 짜 얹었습니다. 2년 전에 서원 고직사에서 하룻밤을 묵은 적이 있습니다. 새벽에 잠이 깨어 밖을 나와보니 밤하늘에 별들이 서로 자기를 봐달라고 발광(發光)하는 것이 여간 예쁘지 않았습니다. 휴급을 위해 문을 나서서 한데뒷간에 갔더니 밤하늘의 발광이 지붕 없는 그곳까지도 따라왔더랍니다. 격식과 틀에 얽힌 엄격한 유학의 공간에서 둥그렇게 말린 형태로 짚을 뒤집어쓰고 있는 이 머슴 뒷간을 보면 덜렁이 마당쇠가 용변을 보다가 도련님의 호출을 받고 바지도 제대로 올리지 않은 채 달려 나올 것 같습니다. 도동서원 내의 뒷간은 앞뒤를 분간 못 하는 사람들에게 앞뒤를 일러주고 있습니다. 나무로 된 가리개가 설치되어 있어서 작은 놈들(?)의 일탈을 막아주고 있습니다. 청도 운강고택 솟을대문 옆에 자리한 뒷간은 그 품격이 대단합니다. 뒷간 위쪽 부분에 나무를 깎아 난초문이나 산수문 등으로 치장하였습니다. 이곳의 뒷간과 인근 임당리에 있는 400여 년 전통의 내시가의 뒷간을 비교해 본다면 더욱 흥미로운 답사가 될 것입니다. 정여창 고택은 운강 고택과 더불어 고샅이 있어 유명한 곳입니다. 고샅이란 대문까지 이르는 골목길을 말합니다. 이곳 행랑채 옆에 있는 뒷간은 칸막이가 없는 2인용인데 오른쪽에는 복숭아형으로 바닥구멍을 내고 왼쪽에는 장방형으로 바닥구멍을 내놓았습니다. 특히, 사랑채에서는 다른 곳에서 보기 드문 구시를 볼 수 있습니다. 얇은 나무를 대어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도록 하였는데 집안 어른들이 이곳에 소변을 보면 하인들이 뒷처리를 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격조 높은 사랑채 한쪽에서 그런 비밀스런 공간을 엿볼 수 있지요. 구례 운조루 대문을 들어서면 왼쪽에 뒷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바닥구멍 뒤로 짚을 마련해두어 거름으로 쓰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지요. 이 뒷간은 위성류라는 중국 원산인 나무 뒤에 자리하고 있어 숨은 멋이 느껴집니다.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 대책에도 이제는 곪고 곪아 곧 터져버릴 것 같은 거품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빈익빈 부익부에 대한 원성의 소리는 더 커져만 가는 것 같네요. 자기만 먹고는 순환시키지 않으려는 똥통 같은 생각에 사로잡힌 이들이 있는 한 원성의 소리는 더 커져만 갈 것입니다. 기업들은 기업들대로 개인은 개인대로 자기 몫 챙기기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더 퍼 줄 수 있는 메세나[Mecenat]에 대한 마인드를 가져야 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배변기능이 상실된 이 시대에 운조루에 있는 타인능해(他人能解) 쌀통을 그리워해 봅니다.
*임청각 전경* 최효찬 | 경향신문 기자 "내 자식을 왜놈 종이 되게 할 수 없다" 톨스토이의 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읽다보면 사람의 욕심이 끝없음에 절망한다. 땅을 원하는 대로 차지할 수 있다는 말에 세상을 다 가진 듯하지만 욕심으로 인해 돌아오는 것은 허무한 죽음뿐이다. 그렇다면 명가는 무엇으로 사는가. 재산인가 자긍심인가. 과연 명가의 자존심은 수천억대의 재산보다 더 값어치 있는 것일까. 명가에서 가장 위대한 유산은 다름 아닌 자긍심이다. 아마도 위기에 처한 국가를 위해 재산뿐만 아니라 자신마저 버리는 것보다 더 고귀한 것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억만금을 상속하는 것보다 더 위대한 유산일 것이다. 상해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고성 이씨 석주 이상룡(1858~1932) 가문은 서슬 퍼런 일제치하에서 일부 명문가 자녀들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명가의 전통을 잇고자 할 때도 척박하고 살벌한 간도에서 민족의 고난을 함께 해왔다. 석주는 삭풍이 몰아치던 1911년 1월 5일, 52세에 전 가족을 데리고 망명길에 올랐다. "공자, 맹자는 시렁위에 얹어두고 나라를 되찾은 뒤에 읽어도 늦지 않다"는 것이 망명의 변이었고, 나라를 찾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겠다는 각오를 새기고 걸음을 재촉했다. 석주는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던 것이다. 이에 앞서 의성 김씨 가문으로 석주의 처남 김대락이 만삭 임부인 손녀손부를 포함해 가신들을 이끌고 1910년 12월 24일 고향을 출발해 압록강을 건넜다. 의성 김씨는 일송 김동삼과 김대락의 아들 월송 김형식 등 수많은 항일독립운동가를 배출한 항일명문가이다. 또 12월 30일 우당 이회영 6형제들도 전 가족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넜다. 이들이야말로 한국판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명문가들이다. 석주는 1911년 1월 27일에 신의주에 도착하여 압록강을 건너기에 앞서 비분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시를 지었다. 旣奪我田宅(기탈아전택) 이미 내 논밭과 집 빼앗아 가고 復謀我妻努(복모아처노) 다시 내 아내와 자식을 해치려 하네 此頭寧可斫(차두녕가작) 이 머리는 차라리 자를 수 있지만 此膝不可奴(차슬불가노) 이 무릎을 꿇어 종이 되게 할 수 없도다 "내 아내와 자식을 왜놈 종이 되게 할 수 없다"는 석주의 이 시 한 구절에서 올곧은 선비정신, 그 가족 사랑이 온몸으로 전해져온다. 내 아내와 자식은 비단 석주의 처자만 뜻하는 게 아니라 바로 우리민족 전체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선조를 두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후손들은 행복하지 않겠는가. 석주는 1910년 한일합방이 강행되자 서간도 망명을 결심하고 사당에 나아가 이를 고하였다. 그는 독립이 되기 전에는 다시 돌아오지 않겠다는 결의로 조상의 위패를 땅에 묻었다. 또 망명에 앞서 집안의 노비들에게는 보상금을 지급하고 방면하는 배려도 잊지 않았다. 노비방면은 안동의 양반가에서는 흔치 않는 일이었다. 흔히 유림이라고 하면 보수주의자, 전통고수주의자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석주와 같은 일부 혁신 유림세력들은 한국 근현대사의 중심에서 독립운동이나 사회변혁의 주도세력으로 역할을 했다. 석주는 고성 이씨 17대 종손이며 임청각(1519년 건립된 것으로 보물 182호. 안동시 법흥리 20번지)의 소유주였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석주는 경제적 풍요와 종손으로서의 권위를 보장받은 사람이었지만 현실에 안주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고난의 길을 자처했고, 일제의 국권침탈에 대항해 독립운동에 일생을 바친 실천적 지성이었다. 오히려 그는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고난의 길을 자처했고 상해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내며 독립운동에 일생을 바쳤다. 석주는 1932년에 미처 조국독립을 보지 못한 채 간도에서 사망하고 그 아들인 이준형 마저 1942년에 자결로 일제에 저항했다. 독립투쟁의 불씨당긴 '호모 노마드' 50대의 망명객 석주 이상룡은 근대 최초의 '노마드'였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대대로 삶의 터전인 안동 임청각을 홀연히 떠나 서간도로 망명의 길에 올랐다. 그는 국가적인 위기 앞에서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불안정한 삶을 선택해 망명객을 자초한 것이다. 망명지인 서간도에서조차 일제의 탄압을 피해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면서도 독립운동을 주도했다. 그런 석주의 삶은 파괴와 창조를 거듭하는 21세기 인간형으로 꼽히는 '호모 노마드'를 100년 앞서 살았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이러한 망명생활을 통해 보수적인 유림의 낡은 틀을 깨고 나와 혁신 유림으로 재탄생하면서 국난극복기에 변혁적인 리더십을 발휘했던 것이다. 노마드(nomad)는 '유목민', '유랑자'를 뜻하는 용어지만,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는 특정한 가치와 삶의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를 부정하면서 새로운 자아를 찾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철학적 개념인 '노마디즘'으로 개념화했다. 자크 아탈리도 그의 저서 에서 오늘날 세계는 5억 명 이상이 이민자, 망명객, 이주노동자 등으로 노마디즘이 주류로 부상했다고 주장한다. 자크 아탈리는 "노마드는 인류 역사와 문화 전체를 역동적으로 창조한 원동력"이라고 말한다. 석주 이상룡은 의병운동을 주도하면서 노마드적 삶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전통 유림세력들이 자신의 고향에 안주하면서 정주민적 삶의 방식을 고수하고 있을 때에 일제에 맞서 실천하는 지식인, 실천하는 리더십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진실은 앎의 차원이 아니라 바로 실천의 차원인 것이다. 앎 그 자체로 머물러 있으면 그것은 공론(空論) 혹은 허위의식에 불과하다. 앓을 실천으로 바꿀 때 진실은 비로소 그 모습을 나타내며 역사 속에서 구체화되는 것이다. 체구는 작았지만 호연지기 기상이 넘쳤던 석주는 한때 합천 가야산에서 의병활동을 했는데, 오합지졸과 다름없는 의병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독립운동 및 독립군기지 건설로 나아가야 한다는 '사고의 전환'을 행한다. 이어 석주는 유교적 전통사상에서 깨어난 안동의 혁신유림들과 함께 근대적 민중계몽교육을 전개한다. 신교육을 주장하며 안동지방에서는 처음으로 현대식 교육기관인 협동학교를 설립한다. 서간도로 망명한 이후에는 신흥학교(신흥무관학교의 전신)를 건립하여 국내와 그 곳의 유능한 청년을 모아 문무겸전(文武兼全)의 신교육을 실시하였다. 이는 일제와의 독립전쟁을 수행할 무관교육과 민족운동의 전위가 된 인재의 양성인 것이었다. 석주가 서간도에서 독립운동과 함께 동포들의 자립을 돕기 위해 교육계몽운동도 펴나갔던 것은 석주 선대로부터 대물림되어 내려 온 문필중시의 가풍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시아버지가 며느리에게 공부 시켜 임청각 사람들에게는 선대로부터 내려오는 공통적인 덕목이 있는데 그 첫째가 학문과 교육에 앞장서는 학풍이다. 석주가(家)는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는 앞장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했다. 위기 때 호연지기를 실천할 수 있었던 원동력에는 다름 아닌 자녀교육의 전통이 있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녀교육에 소홀하지 않았던 것. 그래서 500여 년 동안 대대로 서첩과 문집을 내는 전통을 이어올 수 있었다. 그렇지만 석주 가문은 안동에 정착한지 500여 년, 20대에 걸쳐 과거에 합격해 벼슬길에 나아간 이는 병조정랑을 지낸 이후영 단 한명에 불과했다. 이는 엄청난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임청각은 안동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명가에 속하지만, 과거를 통해 벼슬길에 오른 이가 500년 동안 단 한명에 불과하고 관직도 높지 않았던 것이다. 정신을 중시하는 호연지기 가풍 석주가에는 아직도 전설적으로 내려오는 가정교육 에피소드가 있다. 석주의 큰아들 이준형은 간도에서 독립운동의 와중에도 며느리에게 직접 공부를 시켰다. 출산 후 몸조리를 할 때를 이용해 며느리에게 꼭 필요한 덕목을 와 등에서 뽑아 한문공부를 시켰다. 시부모가 며느리를 직접 교육하는 것은 집안의 오랜 가풍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할 것이다. 또 이준형의 아들 이병화는 한국전쟁 당시 충남 아산에 피신 중에도 스무 살 전후의 청년들을 대상으로 글을 가르쳤다. 현재 중앙중학교 교장인 이범증은 이병화의 여섯 째 아들로 그때 부친에게서 천자문을 배웠다. 이범증 교장은 중학교를 마치고 진학을 못해 1년 동안 농사를 지을 때 모친에게 맹자를 배웠다고 한다. 이와 같이 임청각 종손들에게 교육은 첫 번째로 중요한 덕목이었다. 학문에 힘써온 전통을 이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제에 항거하면서도 자녀들을 교육시키는 문제가 집안의 제일 큰 과제였다. 이병화의 부친 이준형은 일제에 항거해 자결을 하면서 종손이 될 손자의 교육문제를 유언으로 남겼다. "종손의 학업은 비록 전답을 줄이고 재물을 쏟아 부을지라도 중도에 그만두지 말아라." 일제는 독립운동가 집안이라며 온갖 압력을 행사해 종손이 중학교에 다니는 것조차 막았다고 한다. 이병화의 장남 이도증은 안동에서 공부를 못해 결국 만주로 가 하얼빈중학교를 마칠 수 있었다. 명문가의 정신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다산은 3대에 걸쳐 의원이라야 약에 효험이 있다고 했고, 또 3대에 걸쳐 글을 읽어야 다음에 제대로 된 문장이 나온다고 했다. 그만큼 명문가를 만들고 유지하기란 쉬운 게 아니다. 그래서인지 석주 이상룡과 그 자손들은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면서도 오직 한 가지 게을리하지 않은 게 바로 학문과 교육이었다. 둘째, 가문보다 국가를 위해 떨쳐 일어나는 호연지기 가풍이다.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개인이나 가문의 안위보다 국가의 안위가 먼저였다. 임청각은 임란이 일어나기 73년 전인 1519년에 지어졌는데, 정유재란 때는 이곳에 주둔한 명군에게 군량미를 지원했고(선조는 공조참의 벼슬을 내림) 의병장으로 3부자가 전사한 고경명의 장남 고종후의 부인이 바로 임청각의 딸이었다(고경명은 임란이 일어나기 1년 전에 임청각을 다녀가면서 이곳에 '제임청각(題臨淸閣)'이라는 시현판을 남겼다). 임란이후 수백 년을 지난 후에는 3대에 걸쳐 항일 운동가를 배출했다. 석주는 서간도로 가기 전에 해인사 등에서 의병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런데 일본은 이런 임청각의 기운을 말살하기 위해 훼손에 앞장섰다. 임청각의 일부 집을 허물어 중앙선 철길을 내 현재는 67칸만 남아 있다. 셋째, 재물보다 정신을 중시하는 가풍이다. 임청각의 유품을 보면 서책이 유난히 많다. 또 선조들의 숨결이 묻어있는 유품들 가운데 벼루와 거문고 등을 소중히 여겼다. 그러나 후손들은 이를 개인이 소장하지 않고 국가 등에 기증했다. 고려대 중앙도서관 '석주문고'에 기증되어있는 임청각의 서적들은 모두 395종 1309책에 이른다. 1973년에 기증할 당시 고려대 김상협 총장이 4천만 원을 보상하겠다고 하자 후손인 이범증은 등은 "조상의 정신적인 유산을 팔아먹을 수는 없다"면서 거절했다. 당시에도 이범증은 단칸방에서 사는 등 어려운 형편이었다. 오늘날 다시 부활하는 석주의 집안 안 씨(顔氏) 가훈에서 말하듯이 후손에게 재물을 남기면 십년의 재산이 되는 반면에 지혜를 가르치면 백년의 재산을 물려주는 것과 같다고 한다. 임청각 후손들은 선대의 독립운동으로 인해 고난 속에서 현대사를 살아왔다. 직계 후손들은 석주의 증손자인 이항증, 이범증 형제 등이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다. 대부분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러시아나 북한 등지에서 귀국하지 못했다. 하지만 선대들이 뿌려놓은 발자취는 결코 이들의 가슴속에서 사라진 게 아니다. 후손들은 선대들의 고귀한 희생을 바탕으로 다시 우뚝 설 날이 오지 않을까. 소설 에 나오는 다음의 구절은 자긍심을 먹고 사는 게 얼마나 인간적인 긍지를 지니는 삶인지를 역설적으로 알 수 있게 해준다. "그(조찬하)의 의식 속에는 조 씨 가문을 묻어버리고 싶은 생각이 있었는지 모른다. 형, 그 인간성에 대한 증오감은 혈통에 대한 증오감으로, 나라를 강탈한 일본으로부터 작위를 받은 조 씨 가문의 치욕스러움은 혈통에 대한 열등감으로, 찬하는 가문을 묻어버리고 말살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결국 그는 집안을 매장하고 만 것이다." 임청각의 교훈은 역설적으로 교육을 많이 받아 해방이후 많은 인물을 배출한 다른 어느 명문가보다 더 후손들에게 정신적인 유산을 많이 물려준 것은 아닐까. 고성 이씨 대종가를 이끈 석주의 리더십은 한국적인 '유교적 리더십'에 속한다고 볼 수 있겠다. 군사부일체의 전통적 덕목에 따라 석주는 망국의 그림자가 드리우자 가문의 보존을 뒤로한 채 오직 조국을 위해 리더십을 행사했다. 석주의 리더십은 단순히 전통지향적인 리더십에 머물지 않았다. 그는 집안사람들에게 강제적이고 독단적으로 권한을 행사했다고 볼 수 있지만, 가족의 구성원들은 그의 권위에 자발적으로 동참했다. 석주를 이어 아들과 손자 3대에 걸쳐 독립운동의 신산한 길을 걸은 데서 이를 증명한다. 독립운동 서훈자만 3대 9명에 이른다. 이렇게 볼 때 석주의 리더십은 또한 변혁적 리더십을 발휘했다고 하겠다. 가족 구성원에게 독립운동과 조국광복이라는 비전공유를 통해 동기부여를 했을 뿐만 아니라 몰입도를 높여 결과적으로 3대에 걸친 독립운동사의 큰 획을 그을 수 있었다.명문가의 정신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다산 정약용은 옛글을 인용하면서 3대에 걸친 의원이라야 약에 효험이 있다고 했고, 또 3대에 걸쳐 글을 읽어야 다음 세대에 제대로 된 문장이 나온다고 했다. 그만큼 명문가를 만들고 유지하기란 쉬운 게 아니다. 그래서인지 석주 이상룡과 그 자손들은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면서도 오직 한 가지 게을리하지 않은 게 바로 학문과 교육이었다. 특히 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배운 바를 실천하는 학행(學行)의 전통이 있었다. 임청각은 현재 전통문화체험장으로 개방돼 있다. 일제가 중앙선 철로를 개설하면서 독립운동을 하는 이 집안의 정기를 끊으려 마당에 철길을 냈다. 기차소리가 임청각을 뒤흔들지만 자녀들과 함께 하루쯤 묵으면서 자녀교육과 함께 나라사랑의 참의미를 되새겨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임청각을 다녀간 신용하 서울대 명예교수는 방명록에 "이상룡 선생님의 애국정신을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또 종민이네 가족은 "먼 훗날 힘들고 어려울 때 지금의 이 시간들이 우리 아이들에게 힘이 되어주길 바라며"라고 썼다. '자긍심'을 일깨워주는 훌륭한 자녀교육의 장소가 아닐 수 없다.
박경민 | 역사 칼럼니스트 이민족에 의해 다시 혼란 속으로 통일 한(漢)제국 이래 삼국시대를 거쳐 다시 중국을 통일한 사마염(司馬炎)이 국호를 진(晋)이라 한 이유는, 물론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이유도 있었겠지만, 지금까지 중국사를 통해서 나온 국호 가운데 춘추시대 제후국 중에서 지도적 역할을 하였던 '진(晋)'의 유사 국호라도 붙이는 것이 정통성 확보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는 강남에서 마지막으로 버티고 있었던 오(吳)나라도 통합함으로써(서기 280년) 재통일의 위업을 달성하지만 이번에는 진나라[西晋]도 이민족인 흉노에게 멸망당하여 중국은 기나긴 혼란의 터널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는데, 무제 사마염은 무엇이 그리도 급했는지 즉위하자마자 자신의 일가친족들을 제후로 봉하여 영지로 보내 권력을 분산시켜 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했다. 무제가 죽자 처음부터 진나라 황실에 대한 충성연습이 제대로 되지 않은 제후들이 들고 일어났다. 이를 '팔왕의 난'이라 하는데, 10년 사이에 실로 천문학적인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 이 시대야말로 중국 역사를 통해서 인간이 어디까지 잔인할 수 있으며, 얼마나 사악해질 수 있는지에 대한 실험장이었다. 북적(北狄)은 동이(東夷)와 민족적 구별이 거의 없다. 그런데도 중국인들은 같은 민족을 이렇게 욕설적인 명칭으로 갈라놓았다. 소위 흉노라 일컬어지는 민족은 포괄적인 의미로 우리 한민족(쥬신 : 조선(朝鮮)의 이두식 한문표현, 단군이 세운 나라를 쥬신이라 부름)의 선민족이라는 개념으로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동북아시아의 터프가이 흉노는 아주 흐뭇하였다. 기회를 엿보고 있던 그들에게 마침내 때가 왔으니 말이다. 그런데 '팔왕의 난'을 일으킨 제후가 흉노의 세력을 끌어 들였는데 이번에는 한족의 전통적인 이이제이(以夷制夷 : 동이족으로 동이족을 제압한다) 책략이 아니라, 거꾸로 이이제화(以夷制華 : 오랑캐로 한족을 제압한다)라는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책략을 썼던 것이다. 그때 흉노를 통치하던 유연(劉淵)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군대를 몰고 들어와 나라를 강탈하고(315년) 전조(前趙)를 세웠는데, 여기서 유의해야 할 점은 유연(劉淵)이 멸망한 한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고 흉노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군대를 끌고 나왔다고 생각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는 한족도 아니고 더구나 한나라 황실의 유씨(劉氏)가 아니다. 일찍이 한나라 고조는 흉노에게 조공을 바치는 화친정책을 썼는데, 한나라 황실과 통혼한 흉노인이나 기타 공이 있는 사람은 '유'라는 성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북방민족의 각축장이 된 중원 한편 졸지에 나라를 잃은 진의 귀족들과 백성들은 서기 317년 강남의 건업을 수도로 하여 새 나라를 세웠는데, 이를 동진(東晋)이라 부름으로써 흉노에게 멸망당한 서진(西晋)과 구별하고 있다. 우리 민족과 근원적 뿌리를 같이 하는 북방민족의 중원진출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흉노가 선두 타자로 홈런을 치고 나가자, 이번에는 나머지 민족들이 최소한 안타 내지는 운이 좋으면 장외 홈런이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등판, 속속 진루하여 고구려와 형제국이라 볼 수 있는 북위(北魏)가 화북 일대를 통일하는 439년까지 100여 년간 서로 다투면서 10여개의 나라가 난립하는데, 이것이 바로 '5호 16국 시대'이다. 혼란해진 서진을 노리고 앞에서 이야기한 흉노의 유연이 전조(前趙)를 세우자, 온갖 나라 이름을 총 등장시킨 국호 엑스포와 같은 상황이 북방민족들의 중원 진출로 100여 년이 넘도록 혼전양상을 보이다가 전진(前秦)이 잠시 중원을 통일하였다. 그러나 동진까지 합병시키려던 전진(前秦)이 예상 밖으로 참패하자, 그것을 계기로 전진에 복속되어 있었던 나라들이 각각 독립하면서 일곱 나라로 분열되었다. 그러다가 서기 439년 약 50여 년 동안의 분열 끝에 북위(北魏)가 화북 일대를 통일함으로써, 서기 420년에 동진으로부터 선양을 받아 건국한 강남의 송(宋)과 더불어 150여 년의 '남북조 시대'를 열었다. 통일된 상태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그전처럼 극도의 혼란상은 보이지 않았다. 이로써 화북에서는 북방민족이 북위(北魏)·동위(東魏)·서위(西魏)·북제(北齊)·북주(北周) 다섯 나라가 북조(北朝)를 형성하고 강남 일대에는 송(宋)·제(齊)·양(梁)·진(陳) 네 나라가 남조(南朝)를 형성함으로써 어느 정도 혼란을 극복할 수 있는 상황까지 갔다. 남·북조시대 등장의 역사적 의미는 중국대륙이 남과 북으로 갈려 두 개의 역사 변화가 별도로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남조에서는 문화적 변화 그리고 북조에서는 사회·경제적 변화로 요약할 수 있는데, 특히 북조국가의 경우에는 통치근간을 이루는 사회제도의 시스템화가 가장 두드러졌다. 일찍이 흉노계열의 진나라 시황제는 군현제를 시행하여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꾀하였고, 두 번째로 중국을 통일한 한나라도 무제에 이르기까지 이 제도를 완성시켜 나갔다. 중원의 혼란기를 틈타 중원에 진출한 화북의 북방 민족 정권도 기본적으로는 한화정책(漢化政策)를 추진하면서도 한족과 차별화되는 사회적 시스템화를 추진하였다. 사실 그들은 무력에서는 한족을 능가할지는 모르지만, 문화적으로는 중원의 한문화에 비교가 되지 못할 정도로 후진성을 면치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다른 북조 국가들도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북위(北魏)는 고구려와 뿌리를 같이 한다는 민족적 인식이 깊었던 국가였는데, 이제는 떠돌이 유목생활을 정리하고 한곳에 정착하여 뿌리를 내리고 살고 싶었다. 어차피 한족을 지배하려면 정착해야 하고 정착하려면 차라리 자신들이 한족문화에 흡수 동화되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하여 조상대대의 유목생활을 포기하고 소위 장강 이북을 송두리째 북방민족이 접수하고 말았다. 우선 한족출신의 유능한 인재를 발탁하여 정치와 행정 분야에 종사케 함으로써 한족의 불만을 무마시키고 적극적으로 그들을 국가경영에 동참케 하여 각종 제도와 율령을 제정케 하는 한편, 조세제도도 손질하였다. 북방 이민족 가운데 가장 적극적으로 한화정책(漢化政策)을 추진한 사람은 북위의 효문제(孝文帝)였다. 그는 고구려의 장수왕이 죽자(494년) 친히 상복을 입고 깊은 애도를 표할 정도로 고구려와는 형제적 유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한족통치를 위한 북위의 이미지 관리(?)를 위해서 도읍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낙양(뤄양 : 洛陽)으로 옮기고 복식과 제도, 의식과 풍습 등을 한조 이래의 유교식으로 개혁하는 한편, 성씨도 중국식을 따르게 하고 효문제 자신의 성씨도 원(元)씨로 바꾸었다. 효문제가 추진한 여러 가지 정책 가운데 백미로 꼽히는 것은 단연 균전제 도입인데, 서기 485년 이안세(李安世)의 건의로 처음 실시된 것이다. '균전제'의 주요내용은 모든 토지는 국가의 소유이며, 토지가 없는 백성들에게 국가가 이를 나누어 주고 경작하게 하고 일정 비율의 세금을 받는 제도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 까짓 것 누군들 생각을 못하겠느냐'하겠지만, 춘추 전국시대와 진·한 시대를 거치면서 제후나 호족의 소유물이라는 토지개념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은 획기적인 것이었다. 효문제의 균전제 실시로 당시 토지를 잃고 헤매는 농민들과 전란으로 유민이 된 많은 백성들을 안정시킬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일정비율의 세금을 거둘 수 있어서 안정적인 재원을 확보할 수 있었다. 제도 개혁을 통해 한족 흡수해 효문제를 비롯하여 북조 여러 나라들이 율령국가의 틀을 만들어 사회·경제적 변화를 일으켰다면, 남조에서는 문화적 변화를 통해서 중국판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다. 남조에는 송(宋)·제(齊)·양(梁)·진(陳)이라는 네 나라가 있었으나 이들 네 나라의 평균수명(?)은 고작 40여 년 밖에 되지 않는 정치적으로 극히 불안정한 상태였으며 군사력도 상대적으로 약했으나 오직 내세울 수 있는 것은 문화(文化) 밖에 없었다. 강남 지역에 자리를 잡고 있었던 남조의 나라들은 원래 이민족의 지배를 피해서 호족들과 지식인, 귀족들이 대거 남하해서 이룩한 소위 '화이트칼라' 국가였으므로 중원보다 몇 배 화려한 귀족문화가 융성하였다. 강남에서 발달한 삼국시대의 오(吳)와 동진(東晋), 그리고 지금 이야기하는 남조의 네 나라를 합쳐서 '육조(六朝)'라 하는데 육조 시대에 발달한 귀족문화, 즉 '육조문화'를 가리켜서 '동양의 문화 중흥기'라 한다. 중국판 르네상스 시대 연 남조 예술이란 고도의 창의성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영역이다. 우선 천부적인 끼도 있어야 하겠지만 사회적 분위기도 예술문화가 꽃피울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어야 한다. 육조는 귀족사회였다. 평균수명(?)이 40여 년 밖에 안 되어 정치적으로 불안정했으니 그만큼 황제권은 상대적으로 허약했고, 전통적인 명문가는 입김이 세었기 때문에 아무리 군주라도 함부로 대하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불안정한 정국에서 조정에 출사하기보다는 차라리 집에서 예술적 창의성을 발휘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회적 분위기였다. 강남 특유의 온화한 기후와 아름다운 자연경관에 사로잡힌 귀족들은 자신만의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추구하여 수많은 문장가와 화가들이 등장하여 그들의 예술세계를 키워나갔다. 이때의 대표적 인물로는 서예에서는 왕희지(王羲之), 시인으로는 도연명(陶淵明)과 사영운(謝靈運), 회화(繪畵)분야에서는 고개지(顧愷之) 등, 후세 사람의 귀에 익은 쟁쟁한 멤버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그리고 중국 최고(最古)의 문학평론서로 알려져 있는 유협의 문심조룡(文心雕龍)도 이 시대의 작품이니 당시 예술세계에서는 자유로운 창작과 비평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혼란이 계속되면 민심이 동요하고, 동요한 민심은 심리적인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 어떤 절대적 가치를 찾아 그것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있다. 근세기에 와서 천주교와 개신교가 우리나라에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것은 사회적 혼란에서 탈피하려는 민중들의 마음과 결코 무관하지 않으며, 서학이 공인되고 서양세력이 조선을 강타하자 그에 대한 반동으로 동학이 일어나는 등, 혼란과 위기가 닥칠 때마다 고도의 정신적 활동을 통해서 이를 극복하고자 하였다. 당시에도 역시 그랬다. 혼란이 극에 달했던 시기였던 만큼 마음에 위안을 줄 그 무엇이 필요했다. 원래 후한 중기 이후부터 전해진 불교는 잠시 주춤거렸다가 남·북조 시대에 이르러 민중들의 마음을 파고 들어갔다. 불교는 특히 이민족의 침입으로 서진이 망한 이후 동진시대에 크게 유행하였는데, 남·북조 시대에 이르자 귀족뿐만 아니라 일반 서민들에게도 종교적 위안을 주게 되었던 것이다. 이 시대에 우리나라에 중국을 통해서 불교가 전래되었다. 즉 고구려에는 서기 372년(소수림왕 2년)에 전진(前秦)의 순도(順道)가 불상과 불경을 전하였고, 백제에는 384년(침류왕 원년)에 동진(東晋)의 마라난타(摩羅難陀)가 전하였다(신라에는 그로부터 한참 뒤인 528년에 고구려로부터 전해진다). 당시 귀족들은 국가중심의 유가사상에 반발하게 되었다. 언제 현실정치 문제에 연루되어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군자의 도를 익히고 통치의 경세학을 연구한다는 것 자체가 따분한 노릇이었다. 솔직히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것이 당시 귀족들의 정서였다. 귀족들의 현실 도피적 도가사상을 청담사상(淸談思想)이라 하며 이를 실천한 사람들이 바로 '죽림칠현(竹林七賢)'이다.
박준용 | 한양대 강사, 문화평론가 영향을 주고받는 사람 간의 만남 사람들은 서로 간의 만남을 통해 영향을 주고받는다. 그것이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간에 분명한 것은 관계를 통한 영향력이란 단시간 내에 그 결과를 나타나는 것이라기보다는 오랜 세월의 흐름 속에서 그 결실을 드러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사실이다. 교사와 학생의 만남을 전제로 한 교육도 여기에 예외는 아니다. 흔히 인용되듯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말은 그런 지난한 인내와 계획의 여정 끝에 개인과 한 세대의 성숙된 인격이 형성되어 간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문제는 아이들을 위해 내일은 어떨지 몰라도 오늘 당장은 그 결과를 가늠하기 힘든 수많은 선택을 결정해 나가야하는 막막함이요, 그런 이유로 막연한 내일보다는 오늘의 가시적인 성과와 결실을 요구하는 학생, 학부형 그리고 그 압력과 유혹에 흔들리는 교사가 있을 수 있는 교육 현실이다. 2차 대전 직후의 프랑스의 어느 싸구려 기숙학원을 배경으로 한 영화 의 이야기는 바로 이런 현실로부터 시작된다. 문제아들의 '이름'을 깨달은 충격 아직 생생한 전쟁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는 기숙학원의 아이들은 척박한 삶의 환경만큼이나 거칠고 제멋대로다. 이런 아이들을 효과적으로 다루기 위한 학교 측의 제1 지침은 이른바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법칙에 따라 말썽에 대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강력한 제재를 가하는 게 상책이라는 것이다. 사고와 처벌의 악순환이 만성화되어가는 학교에 새로 부임하게 된 교사 마티유(제라르 쥐노)는 쇠락한 학교, 패배주의에 빠져 있는 교사들, 천방지축인 아이들의 모습이 곧 실패한 음악가인 자신의 모습임을 깨닫게 된다. 전쟁과 같은 첫 날 수업을 마치고 숙소에 돌아온 마티유는 거의 기대하지 않으며 아이들에게 적어보게 했던 미래의 꿈에 관한 글들에서 작은 충격을 경험한다. 겉으로 보면 커다란 문제 덩어리처럼 보였던 아이들이 실은 나름대로 꿈과 소망을 간직한 각각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존재였다는,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사실에 관한 낯선 깨달음이었다. 이후 마티유는 어떻게든 아이들의 개성을 파악하고 그에 따라 학교 측과 다른 '반작용'을 실천하기 시작한다. 칠판에 자신을 우스꽝스런 모습으로 그린 학생을 마찬가지 방식으로 그려 공개적으로 망신을 줌으로서 놀림을 받는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알게 한다든가, 야단맞은 보복으로 수위 아저씨를 다치게 한 학생으로 하여금 간호를 하게 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소모적인 처벌보다는 스스로의 행동을 스스로 깨닫게 하는 식의 방법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변화의 단초는 아이들이 대머리인 자신을 약 올리기 위해 지어 부르던 장난스런 노래를 접하는 순간에 시작된다. 교장 선생님이었다면 가혹한 처벌을 면하기 힘들었을 모욕적인 장난 속에서도 그는 가사를 지어내고 곡조를 붙이는 아이들의 창의성과 개성 있는 각각의 목소리를 발견한다. 그리고 이내 합창단을 조직하기로 결정한다. 이후의 전개과정은 관객들이 이미 예측하고 있는 바와 같다. 우여곡절 끝에 훌륭한 합창단을 완성하고 아이들은 이 과정을 통해 난생 처음 인생에서 뭔가 멋지게 성취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된다. 다시 깨달은 스승의 관심과 배려 이 지점에서 어떤 이들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왜 교육에 관련된 영화는 천편일률적으로 전형적인 패턴, 즉 문제아이들, 탁월한 교사의 출현, 아이들의 변화, 성공적인 교육의 완성이라는 수순을 밟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별 문제없는 아이들을 평범한 교사가 가르쳐 적당한 진학률에 이른다는, 또는 문제아들이 무관심한 학교에서 방치되어 자포자기에 이른다는 '현실적인' 이야기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영화를 비롯한 예술의 판타지는 현실의 문제나 한계를 고민하는 교사를 비롯한 의식 있는 관객들에게 영화라는 자유로운 상상의 영역을 통해 현실에서 상상하거나 시도해 보지 못한 다양한 가능성을 구체화해 봄으로써, 현실의 구체적인 변화를 향한 매우 실질적인 자극과 통찰력, 지혜를 제공하는 장점을 가진다. 그리고 그런 자극은 겉으로 전형적으로 보이는 영화적 맥락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관점과 적용방식에 따라 다양한 삶의 모습처럼 다채로운 변화의 차별점으로 관객에게 다가서기 마련이다. 시작과 더불어 전형적인 교육영화의 맥락을 밟는 듯 보이던 영화 는 변화의 중심에 서 있는 교사 마티유를 비롯한 아이들의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으로 인하여 차별성을 획득하는데 성공한다. 여느 영화에서의 선생님들과 달리 마티유는 자신의 교육 방식에 대해 확고한 확신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는 때로 교장 선생님의 위압적인 태도를 어색하게 흉내내기도 하고, 처벌과 용납 사이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감행하기도 하며, 문제아로 전학 온 몽당과 같은 거친 아이 앞에서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언뜻 보기에 일관성이 결여된 듯 보이는 마티유의 모습은 그러나 이러한 인간적인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 아이들과 함께 무엇인가를 이루어 보고자 하는 열망을 포기하지 않는 몸부림으로 인해 도리어 영화 속 가공의 인물이 아닌 생생한 현실감을 지닌 사실적 인물로 공감을 자아낸다. 하지만 무엇보다 영화 의 인상적인 장면은 영화가 시작하면서 기숙학원 학생이었으나 위대한 지휘자가 된 모항주(자크 페렝)가 정작 자신에게 그렇게 큰 관심과 애정을 쏟았던 마티유 선생의 이름조차 기억하고 있지 못한 부분이다. 그는 자신을 찾아 온 옛 친구가 전해준 스승의 손때 묻은 일기장을 읽어 보면서 비로소 자신의 인생에 있어 마티유 선생이 얼마나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는가를 깨닫는다. 그렇다. 많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성장하여 성공한 어떤 사람이 자신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스승인 누군가를 칭송하는 장면들을 볼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기억'보다는 '망각' 쪽에 가깝다. 종종 실패는 타인의 책임으로 전가되지만 성공의 결실은 제 스스로의 것인 양 착각하기 쉽다. 더구나 어린 시절 헌신적이었던 스승의 관심과 배려의 기억은 너무나 쉽사리 사라지고 만다.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삶의 가치 하지만 영화 는 이런 현실을 질타하기 보다는 오히려 담담히 감내하며 살아가는 것이 교사의 길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한다. 중요한 것은 훗날의 기억과 칭송이 아니라 무명의 단역배우일지언정 아이들의 인생의 무대에 있어 없어서는 안 될 역할을 마티유 선생이 충실히 감당했다는 것이며, 이를 통해 아이들은 물론 교사 본인도 새로운 삶을 다시 살아갈 힘과 용기를 얻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영화 는 유럽에서의 엄청난 흥행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선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 이유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멋진 합창단을 만들었음에도 시샘어린 교장의 독단적인 결정에 의해 파면된 마티유 선생이 결국 학교를 떠난다는 비극적 설정이 헐리우드식 행복한 결말에 익숙해 있는 국내 관객들에게 맞지 않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영화 의 매력은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손쉬운 행복한 결말을 택하기 보다는, 아이들을 위한 노력과 몸부림 때문에 도리어 학교를 떠날 수밖에 없게 된 결말을 통해 부조리한 현실을 반영하는 동시에,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소신 있는 삶의 가치로움을 역설한 점에 있다. 겉으로 실패한 듯 보이나 진정 성공한, 이름 없는 교사로서 학교를 떠나는 마티유의 머리 위로, 쏟아지듯 날아드는 아이들의 종이비행기 편지에 담긴 참된 감사와 축복의 소리 없는 외침이 빛나는 영화, 이다.
김원석 | 협성대 교수·T.E.T. 트레이너 전통적으로 리더십 연구에서 많은 학자들이 관심을 가져온 것은 ‘훌륭한 리더는 어떤 자질을 갖고 있느냐’하는 문제이다. 비즈니스 리더들을 대상으로 한 수많은 연구에서도 이 같은 연구는 가장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이론을 ‘리더십 자질 이론(leadership traits theory)’이라고 부른다. 과연 리더십 자질론의 입장에서 훌륭한 교사는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지난 호에 필자는 대니얼 골먼의 감성리더십을 소개하였다. 그의 이론을 학교 상황에 맞추어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교실의 분위기는 교사의 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교사의 감정상태가 그대로 교실에 전달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얼마 전 스승의 날에 필자의 학과 학생회 임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학생들이 교수들을 평가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요지는 교실의 분위기가 교수들의 개인적인 성향(성격)에 따라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다혈질에다 유머를 즐기는 A교수는 목소리가 교실이 떠나갈 정도로 큰소리로 말하면서 좌중을 쥐락펴락 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차분하고 조용한 성격의 B교수는 언제나 강의실 분위기를 조용하고 진지하게 이끌어갔다. 문제는 교사의 영향력이 교실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교사의 말 한디는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사실을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필자는 교실의 분위기를 어떻게 끌고 가는지, 얼마나 성숙한 모습을 보였는지 자성하는 계기이기도 하였다. 교사 리더십 자질론이란? 리더십에 대해 여러 가지로 정의하지만, 리더십이란 리더가 영향력을 행사하는 과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많은 리더들이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주요 수단으로 힘(power)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여기서 힘이란 주로 물리적인 힘의 사용이 많다는 것이다. 물리적인 힘의 사용은 일시적인 효과는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부작용이 더 많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다. 전통적으로 리더십 연구에서 많은 학자들이 관심을 가져온 것은 과연 훌륭한 리더는 어떤 자질을 갖고 있느냐는 문제이다. 비즈니스 리더들을 대상으로 한 수많은 연구에서도 이 같은 연구는 가장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이론을 ‘리더십 자질 이론(leadership traits theory)’이라고 부른다. 수많은 정치학자들과 경영학자들은 훌륭한 리더십의 본질을 성공한 리더나 국민적 영웅들에게서 찾으려는 노력을 많이 하였다. 따라서 리더십 자질 이론은 ‘위대한 영웅’ 이론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리더십 연구에서 해묵은 논쟁중의 하나는 ‘리더는 과연 태어나는 것인가, 혹은 만들어지는 것인가?’라는 것이다. 많은 학자들이 리더는 태어난다기보다는 후천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는데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리더십의 본질에 대한 복고적 성향을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필자가 처음 번역한 의 스티븐 코비 박사가 이런 복고적 연구를 부추긴 대표적인 학자이다. 그는 원칙중심의 리더십을 강조하면서 결국 리더십의 자질론으로 되돌아갔다. 리더십 연구는 자질론에서 출발하여 후천적 개발론을 거쳐 상황이론 등으로 발전한 리더십 연구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아직도 신학이나 기독교 교육학 등에서는 자질론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훌륭한 교사는 어떤 교사인가? 리더십 자질론의 입장에서 훌륭한 교사는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필자는 토마스 고든의 교사역할훈련(T.E.T.) 등 교사리더십훈련과정에서 과연 나에게 가장 영향을 주었던 선생님의 모습을 함께 생각해보자고 제안한다. 그때마다 많은 교사들이 우리에게 공부를 잘 가르쳤던 선생님보다는 따뜻한 말 한마디를 던져 주었거나 혹은 등을 두드려주면서 사랑을 베풀었던 모습에서 훌륭한 선생님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얼마 전 필자는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30년 만에 고향을 찾아가서 친구들을 만난 적이 있다. 그때 대화를 나누던 중 모든 친구들이 자연스럽게 기억에 남는 선생님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수학을 잘 가르쳤던 선생님, 영어를 잘 가르쳐주었던 선생님을 거론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친구들이 자신에게 가장 영향을 주었던 선생님을 이야기하면서 선생님께 대한 고마움을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과연 교사에게 필요한 리더십 자질은 무엇일까? 여기에서 필자는 수많은 학자들이 열거하는 자질론을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필자가 처음 강단에 섰던 초심으로 돌아가 평소 생각하고 있던 자질을 몇 가지 열거하는 것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관심 있는 독자라면, 나는 어떤 자질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함께 점검해보는 것도 좋다. 1) 열정 교사가 갖추어야 할 최대 덕목은 ‘교직에 대한 열정’이다. 처음 교사로 발령받던 초심으로 돌아가 보면 많은 교사들이 이구동성으로 교직에 대한 열정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열정들이 교직에 몸담은 기간이 길면 길수록 어느새 열정과 애정은 사라지고 직업인으로써 교직에 몸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기업체 임원을 지낸 로버트 그린리프가 젊은 시절에 성인들을 대상으로 기초대수를 가르친 적이 있었다. 기초대수를 몰라서 일자리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 그들을 대상으로 일주일에 두 번씩 수학을 가르쳤는데, 그들 대부분이 가감승제도 겨우 겨우 해내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가감승제부터 조금씩 가르치면서 대수로 다시 넘어갔는데 학생들이열심히 공부하여 고등학교에서 1년 동안 배울 내용을 단 몇 주 만에 끝낼 수 있었다. 그 후 고등학교 교장을 만난 그는 당시 고등학교에서 일반적으로 가르치는 방법보다 자신의 방법이 더 좋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그때 교장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네가 계산에 넣지 않은 것이 하나 있네. 자네는 진정으로 대수를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가르친 게야. 그렇지만 우리의 문제는 대수를 배우고 싶어 하지 않는 학생들에게 대수를 가르쳐야 한다는 것일세. 우리 학생들에게는 자네 방법 역시 아무런 효과를 거둘 수 없을 거네.” 이 교장의 말이 아니더라도, 교사들을 좌절하게 만드는 일이 얼마나 많던가? 그러나 처음 교직을 선택할 때 다른 직장을 선택하지 않고(중간에 많은 교사들이 퇴직하였지만) 교직을 선택하여 굳건히 교직을 지키고 있는 이유는 교직에 대한 열정 때문이 아닌가? 얼마 전 내 강의를 들었던 대학원생 한 명이 “교수님께서 소개해 준 책 한 권이 내 인생을 바꾸었다”고 말하면서 빠른 시일 내에 찾아오겠다고 전화를 했다. 교사는 바로 이런 일 때문에 하는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변화시켜 사람들을 변화시키겠다고 한다. 선거철을 맞아 공약을 내건 후보자들은 세상을 바꾸어보겠다고 한다. 그러나 위대한 스승이었던 예수 그리스도는 한 사람을 변화시켜 온 세상을 변화시켰다. 2) 헌신 교직에서 다른 직장과 달리 요구되는 덕목은 ‘헌신’이라고 생각한다. 나눔과 베풂의 정신이 없다면 교직은 정말 따분한 직업일 수도 있다. 어느 선생님은 노동절에 근로자들이 쉰다면 스승의 날에는 교사들도 쉬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해 함께 웃기도 하였다. 교사는 노동절이나 스승의 날에 놀거나 놀지 않거나 관계없이 가르치는 일에 헌신하기로 작정한 사람들이다. 오래 전 연세대 민경배 교수의 강의시간에 들은 내용이다. 어느 학교에서 신임교사가 배정되어 왔다. 그 선생님께는 학생 명단과 함께 ‘85, 90, 95, 97, 100…’이라는 숫자가 적힌 종이가 전달되었다. 선생님은 학생들을 열심히 가르친 후 시험을 치렀는데 학생들의 점수는 평균 60점을 넘지 못했다. 선생님은 실망했지만 낙심하지 않고 가르치고 또 가르쳤다. 심지어는 방과 후까지 남아서 열심히 학생들을 가르친 결과 1년이 지날 즈음 학생들의 성적은 향상되었고, 마침내 처음 반을 맡았을 때 받았던 성적에 가깝게 되는 성과를 거두었다. 학기말에 교장 선생님은 이 선생님께 큰 상을 내리었다. 이유인즉 처음 선생님께 드렸던 종이쪽지는 학생들의 성적 점수가 아니라 그 반 아이들의 아이큐 점수였던 것이다. 그러나 선생님은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열심히 반 아이들을 가르친 결과 우수한 학생들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선생님의 헌신적인 희생과 노력이 학생들을 변화시킨 것이다. 역사상 위대한 작가 중의 하나였던 헬렌 켈러의 곁에는 셜리번 선생님이 계셨다. 그분의 헌신이 삼중고의 헬렌 켈러를 위대한 인물로 만든 것이다. 3) 사랑 교사가 갖추어야 할 세 번째 덕목은 학생에 대한 ‘배려’와 ‘사랑’이다. 학생에 대한 사랑이 없이는 교사의 열정과 헌신이 아무 소용없을 수 있다. 필자가 대학시절부터 지금까지 여러 교수님들로부터 배웠지만 그중 두 분의 선생님을 가까이에서 모실 수 있었다. 한 분은 내가 대학원에서 공부할 때 지도교수였고, 또 한 분은 안식년을 맞이하여 모국에 와서 우리에게 미국식 경영을 소개해준 분이다. 지금은 모두 정년을 하셔서 자주 뵙지는 못하지만 이 분들의 공통점은 모두 제자에 대한 사랑이 깊다는 사실이다. 두 분 교수님은 필자에게 있어서 학문적 스승이기 이전에 인생의 조언자이고 멘토요, 코치였다. 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 결혼하는 문제부터 주택 구입에 이르기까지 자질구레한 일도 모두 의논할 수 있었고 그때마다 인생의 선배로써 이런저런 조언을 들었다. 우리 제자들은 매년 1월 초가 되면 항상 지도교수님댁에서 모인다. 처음에는 전공 제자들만 모였지만 지금은 여러 전공의 제자들이 모인다. 지난 겨울에 그 숫자가 40명을 넘어섰다. 그래도 선생님은 귀찮은 내색을 전혀 하시지 않고 반기시기 때문에 매년 숫자가 조금씩 늘고 있다. 20대에 만난 선생님을 이제 50대가 되어서도 여전히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우리의 행복이다. 필자가 번역을 많이 하다 보니 지금까지 20여 권의 책을 번역했다. 좋은 책이라면 무조건 우리말로 옮겨서 소개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또 한 분의 선생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조교수 때에는 많은 책을 번역을 해도 괜찮지만, 부교수가 되면 번역서보다는 자기 저서를 준비하라는 당부이시다. 학자로서의 본분은 자기 생각과 주장을 펴는 저서를 세상에 내어 평가받는 것이라고 덧붙이셨다. 그동안 몇 권의 저서를 낼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선생님들의 배려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안경애 | 경기 부천교육청 장학사 1. 왜 새교육으로부터 원고청탁을 받고, 바쁜 업무와 일상에서 한 박자 쉼표를 찍으며 작년 이 맘 때를 되돌아본다. 20여년을 아이들 가르치는 일에만 매달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며 생활하였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만큼이나 급격하게 변화해나가는 교단 분위기 속에서 20여년은 빛나는 경력이 아닌 무능과 무기력이라는 스스로에 대한 자책과 함께 뒤처지고 낡은 빛바랜 이름표가 되고 말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인터넷을 통해 우연히 접하게 된 한국교육신문사의 전문직시험대비 연수 강좌는 빛바랜 이름표 뒤에 꼭꼭 숨겨놓은 의욕에 발화점이 되었다. 하고자 하는 의욕과 해야겠다는 결심은 굳혔지만 무엇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던 그 때 한국교육신문사의 전문직 특강은 가뭄의 단비였다. 연수를 통해 학습 계획을 세우고, 공부를 해 나가야 할 방향을 잡았으나 산 너머 산! 돌아서면 잊어버리기가 일쑤인 40대 중년 아줌마의 건망증과의 긴 싸움이 시작되었다. 2. 무엇을 가. 교직, 교양(교육학 및 교직실무, 25점) 나. 전공(논술, 25점) 다. 기획능력(20점) 라 면접(30점) 마. 서류 전형(30점) 5개 항목이 130점 만점 척으로 구성 3. 어떻게 가. 교직, 교양(25점) (1) 교육학 이론서를 손에서 놓은 지 오래되고 보니 교육학은 어휘조차도 생소하고 원리나 개념의 정립이 무척 어려웠다. 그래서 학습 계획이 마음먹은 대로 순탄하게 진행되지 않았다. 교직, 교양은 범위가 무척 광범위하여 장기간에 걸친 자기 학습 계획 수립이 필요하고 특히 전문직 대비 연수나 강좌 수강을 통해 기본적인 이론 배경 구축이 우선되어야 한다. 교육학 강좌 수강을 통해 기초적인 개념이 정립되면 ① 대충 읽고 책장만 넘기자 처음에는 알든 모르든 그냥 읽어가며 책장만 넘기며 교육학의 전반적인 흐름을 파악한다. ② 내용을 파고들자 전반적인 흐름과 개념이 정립되면 정독을 하면서 학자, 이론, 원리 등을 면밀하게 익혀 나간다. ③ 챕터별로 분철하여 내용을 정리하자 챕터별로 분철하여 내용을 요약 정리하는데 정리할 때에는 방대한 내용임을 감안하여 확실히 알고 있는 내용은 제목 제시 정도만으로 그쳐야 한다. ④ 나만의 표기법을 만들자 워낙 광범위한 내용이다 보니 읽고 나서 뒤돌아서면 잊어버리기 일쑤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내용들은 나만의 표기법(암기)을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면 콜버그의 도덕성 발달 이론을 익히기 위하여 ‘(주)(상)이 (객)(사)(일)이 (궁)금해요’라는 표기법을 만들었다. 이는 주관화, 상대화, 객관화, 사회화, 일반화, 궁극화에 해당되는 표기법이다. ⑤ 교육학 책을 버려라 시험일 한 달 정도를 앞두고는 교육학 책을 볼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 다른 것들을 준비하기에도 모자라기 때문에 그 시기에는 요약노트를 중심으로 학습해야한다. 그렇다고 교육학을 완전히 덮어버리면 건망증이 활성화 되고 말기 때문에 꾸준히 내용을 접하고 있기는 해야 한다. 하지만 책을 볼 시간은 없으므로 책은 잊어버리고 노트중심의 학습을 한다. (2) 교직실무 교직실무 책자 속에 제시된 실무 내용을 중심으로 꼼꼼히 살피고, 특히 관련된 여러 가지 법 규정은 ( )넣기 식 암기가 될 정도로 보고 또 보고, 읽고 또 읽어야 한다. 왜냐하면 전문직은 교육행정직이기 때문에 법적 근거를 바탕으로 모든 일을 추진하게 되기 때문이다. 관련 규정과 지침 및 새롭게 시달되는 공문 내용을 통해서도 실무의 방향을 읽어나가야만 한다. (3)그 외에도 신문기사나 교육관련 보도자료를 찾아보고 또 시사상식, 한자, 고사성어 익히기도 필수이다. 교직, 교양이라는 이름으로 치러지는 내용은 시사상식과 한자, 고사성어 까지를 포함하고 있으며 말 그대로 교양이기 때문에 교육과 관련된 내용뿐만 아니라 다양한 상식 범위 까지도 광범위하게 익혀야 한다. 나. 전공(25점) 전공은 논술이란 이름으로 불려 지는데 도교육청 및 교육부 각종 계획을 다운받고, 현장에서 이슈화되고 있는 내용들을 중심으로 논술 목록을 작성하고 그것과 관련된 내용들을 교육마당, 새교육 등의 교육 잡지를 통해 전문가의 관점을 분석해 둘 필요가 있다. 관련도서나 전문가의 관점 분석을 통해 이론적 배경이 정립되면 나름대로의 논조를 가지고 글을 써 본다. 자신이 쓴 글에 대해서는 반드시 다른 사람들에게 평가를 받는 것이 필요하다. 자신의 글로는 논조가 분명한지 마인드 정립이 확실한지 스스로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평소에 써 보지 않았던 글이기 때문에 논술 목록을 작성하고 하루에 3~4개정도의 글을 정해진 시간(10분에 1개정도)에 반복해서 써 보는 훈련 과정을 거쳐야한다. 특히나 논술은 ‘서와 결’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피력해야만 한다. 다. 기획력(20점) 기획의 경우에는 대부분의 교사들이 부장경력을 통해 많은 기획유형을 접해보았고, 스스로도 기획을 하고 있기 때문에 준비에 별 어려움은 없지만 그래도 전문직의 관점에서 자신만의 창의력과 노하우가 어필될 수 있는 참신한 아이디어의 기획이어야 한다. 특히 기획은 실행을 전제로 하는 조직적이며 효율적인 목표 달성 수단이기 때문에 추진근거와 관련 규정을 꼼꼼히 체크하여 계획 수립과정이 시작부터 끝까지 일목요연하여야 한다. 주어진 시간 60분 내에 기획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문제를 접하면 전체적인 개요를 짜고 기획의 배경, 추진근거, 의도 및 목적, 실천내용, 실천기간 및 장소, 예산 등이 명시 되도록 하여야 한다. 시간 안배를 잘 해야 하므로 꼭 필요한 내용부터 채워나가고 세부추진계획과 같이 자세한 내용을 모두 작성하기에 시간이 부족할 경우에는 물결선처리 등으로 생략해 나갈 수도 있다. 만약 기획을 다 하고 나서도 시간이 남을 경우에는 기획내용과 관련하여 협조 공문, 내부 기안 등의 기안을 덧붙여도 좋을 것이다. 라. 면접(30점) 교사의 경우는 다양한 관계 속에서 늘 일상적인 대화를 해나가고는 있지만 막상 면접시험이라는 이름을 접하게 되면 누구나 떨리게 마련이다. 또한 면접 문항 자체도 일상적인 대화 내용이 아닌 교육과 관련된 자신의 태도나 신념, 의지, 관점을 피력해야 하기 때문에 그와 관련하여 평소 1분 스피치 노트를 마련해 두고 혼자서 1분 스피치를 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면접을 위한 준비로서 복장과 용모를 들 수 있다. 복장은 너무 화려하거나 튀는 복장보다는 차분하고 안정감을 주는 수수한 복장이 좋고 용모는 단정한 느낌을 줄 수 있어야 하며 긴장하지 않으면서도 밝고 당당한 표정과 태도를 갖도록 한다. 면접실을 들어서면서 나오는 순간까지도 면접의 한 과정이다. 면접실 문을 열고 들어서서 면접관을 향해 공손하고 예의를 갖추고 손을 가지런히 모아 무릎에 올려놓고 의자에 앉는 등 자세까지도 신경을 쓰는 것이 좋다. 면접이 시작되면 침착하고 진지한 자세로 질문을 경청하고 질문에 대한 요점을 파악하여 또박또박 분명하고 자신감 있게 말하여야 하며 반드시 경어를 사용하도록 한다. 또한 밝고 온화한 표정으로 긍정적인 사고와 진취적인 신념을 지니고 있음이 드러나도록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 특히 면접관은 많은 응시생으로부터 같은 질문에 대한 답변을 장시간 들어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답변을 할 때에는 그러한 점을 고려하여 자신의 의견이나 생각을 결론부터 간결하게 답하도록 한다. 결론을 먼저 이야기한 다음 필요한 부분을 부연 설명하는 것이 좋다. 만약 질문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였거나 잘 못 들었을 경우에는 정중하게 잘 못 들었음을 시인하고 다시 한 번 말 해 줄 것을 요구하여 질문의 정확한 의도와 내용을 파악하는 것이 필수이다. 마. 서류전형(30점) 서류의 경우에는 단기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교직 생애 전반에 걸쳐 이루어야 할 자신의 이력서로써 평소 서류전형 내용과 관련하여 연구, 표창, 위촉활동 등에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노력하여야 한다. 특히 위촉장은 도 단위 이상에만 해당되며 위촉기간도 1개월 이상인 것을 1년에 1개만 사용하게 되기 때문에 꾸준히 활동을 하여야 한다. 표창의 경우에는 교육장 표창까지도 모두 사용할 수 있으며 이것 또한 1년에 하나만 쓸 수 있다. 그러므로 여러 가지 시험 전형 중 가장 오랜 기간에 걸쳐 준비되어야 하는 사항이라고 할 수 있다. 4. 맺으면서 학습하는 데는 왕도가 없다는 말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전문직 시험이야 말로 학습하는 방법에 왕도가 없는 것 같다. 누가 아무리 좋은 방법이라고 권해주어도, 또는 어떤 이는 이런 방법으로 학습하고 좋은 결과를 얻었다 하더라도 내게 모두 맞을 수는 없다. 학습을 해 나가는 동안 자신만의 방법을 찾는 것이 무엇보다 급선무이다. 결코 쉬운 길이 아니기에 걸어가는 동안 자신과의 싸움이 가장 어렵다는 것을 느끼게 되고, 그럴 때 자신과의 싸움에서 결코 물러서거나 져서는 안 된다. 어렵고 힘든 길로 들어선 만큼 건강과 자신의 학습 페이스를 잃지 말고 한 걸음 한 걸음 노력하다보면 분명 노력한 만큼의 성과는 반드시 되돌아온다는 것을 나는 경험을 통해 힘주어 말할 수 있다.
신태식 | 본사 교육전문직 특강 교수 1. 원인분석형 유형 간 논점의 차이 원인분석형 논술의 출제형식으로는 '…의 원인을 분석하고 그 대책을 논술하시오', '…향상방안에 대해 논술하시오', '…문제점과 대책을 논술하시오'라는 식으로 서술된다고 하였다. 원인분석형 중 전 호에 소개한 교육 전반에 관한 문제와 청소년관련 문제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크게 원인과 대안 분석의 틀과 내용에서 차이가 있다. 교육 전반에 관한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크게 3가지 하위 논점 즉 인간과 관련된 문제, 정책과 관련된 문제, 환경 및 여건과 관련된 문제로 구분해서 제시할 수 있다. 예컨대, 참교사가 부재한 원인을 분석할 때, 인간으로서 가장 중요한 교사의 전문성(도덕성, 사명감, 윤리성, 교과지도능력 등) 부족 문제, 교육정책(교사의 사기나 동기를 떨어뜨리는 정책이나 제도-부적격교사 퇴출을 위한 교사평가제, 교사의 복지정책 미흡 등)의 문제, 근무환경 여건(과밀학급, 과중한 업무, 관료적 통제체제 등)의 열악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면 되는 것이다. 이 같은 분석이 가능한 것은 모든 체제나 조직의 하위요소를 크게 조직의 구성원과 조직을 통제하는 규범 그리고 조직을 둘러싼 주변 환경으로 영역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영역화한 후 세부적으로 분석한다면 비교적 명료하고 논리적이기 때문에 독자나 평가자가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것이다. 반면, 청소년관련 문제의 원인분석은 크게 4가지 하위 논점 즉 청소년 개인의 성격이나 정체성의 미확립, 가정의 문제(핵가족화로 인한 가정교육 부재, 대화부족, 이기적 자녀교육관으로 지나친 기대와 과보호 등), 학교의 문제(입시위주의 지식전달교육과 지식중심의 평가체제), 사회의 문제(각종 유해환경이나 사이버상의 유해한 정보, 폭력 등 상업주의적 매스컴과 영상매체)로 구분하여 원인과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개인, 가정, 학교, 사회 또는 개인을 포함한 가정, 학교, 사회로 분석한다면 청소년의 거의 모든 문제가 세 영역에 속하게 되므로 원인이 빠짐없이 분석된 논술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위에서 제시한 바와 같이 교육전반의 문제와 청소년 관련 문제의 하위 논점 분석방법을 정확히 이해한다면, 교육전반의 문제나 청소년 관련 원인분석형에서는 자신감을 갖고 답할 수 있을 것이며, 일상적인 토론이나 협의에서도 문제의 원인분석이나 대안제시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2. 원인분석형의 기출 및 예상 1) 중·고생들의 비행원인과 지도방안에 대해 논술하시오.('95 경북) 2) 현대사회에서의 청소년 비행원인과 그 지도방안에 대해 논술하시오.('91 경북·대구 초등, 경남 '92 서울, 제주) 3) 오늘날 청소년들의 비행이 격증하여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청소년 비행의 원인을 가정적 요인, 사회적 요인, 학교생활요인으로 분류진단하고 학교교육을 통한 지도방안에 대해 논술하시오.('96 대구·전북, '97 경기) 4) 청소년 비행의 원인을 진단하고 학급 담임으로서의 지도방안에 대해 논술하시오.('98 경기) 5) 집단 따돌림의 원인을 분석하고 학교에서의 대처방안을 논술하시오. 6) (동아일보 1999년 1월 8일자 '왕따' 관련 기사를 제시하고) 이를 참고하여 왕따의 원인과 문제점, 해결방안에 대해 3가지 이상 논하시오.('98 대전) 7) 집단 따돌림의 원인과 지도방안에 대해 논술하시오.('99 전담교사 추가) 8) 학교폭력의 원인과 지도방안을 가정, 학교, 사회의 측면에서 논술하시오. 9) 학교폭력의 원인을 밝히고 우리 교육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시오. 10) 학교폭력의 원인을 밝히고 교사의 입장에서 예방책을 논술하시오. 11) 학교폭력예방특별법의 제정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이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학교폭력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제시해 보시오. 12) 학교폭력의 원인을 진단하고 학교교육 차원에서의 대처방안에 대해 논술하시오.('96 경기·강원, '97 경기) 3. 원인분석형의 개요작성방법 1) 서 론 원인분석형에서 서론은 크게 주의환기, 문제의 심각성이나 중요성, 문제들이 사회와 국가에 미치는 영향 등을 제시함으로써 호기심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효과적인 문제제기는 논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읽어보고 싶도록 하는 것이다. 서론에서 문제와 관련된 최근의 사건이나 사례, 통계치 등을 간단하게 소개한다면 참신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즉 단도직입적 표현을 제시하고, 문제와 관련된 심각한 사례나 사건을 제시함으로써 원인과 대책을 알아보고 싶은 마음을 갖도록 동기를 유발하는 것이다. 예컨대, '청소년의 집단 성폭력의 원인과 대책에 대해 논술하시오'가 출제되었다면, ①청소년은 우리의 미래다(단도직입적 표현). 그런데 얼마 전 울산에 사는 여중생이 밀양에서 수개월 동안 고교생 44명으로부터 집단성폭행을 당했다고 한다(심각성을 제시한 사건소개). 또, '성폭력의 원인과 대책에 대해 논술하시오'라고 출제되었다면 ②청소년은 우리의 희망이다(단도직입적 표현). 그런데 최근 우리 사회를 이끌어 온 사회지도층의 성폭력이 불거져 나오면서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주고 있다. 민주시민사회 건설에 크게 공헌한 시민운동가의 성추행 사건, 모 대학교수의 여대생 성추행 및 성희롱 사건 등 지도층 인사들의 성폭력 사건이 심심찮게 기사화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유사사건 소개). 이러한 문제는 성폭력의 피해자가 인격살인으로 인해 평생 악몽과 수치심에 시달릴 수도 있다는 데 성폭력의 심각성이 크다는 것이다. 단도직입적 표현과 문제의 심각성이나 중요성에 대한 사례나 사건을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서론의 내용이 부족할 때는 이를 방치함으로 개인이나 학교 더 나아가 사회문제화되고, 국가의 기능약화(신용도 하락, 국가경쟁력 약화, 국가의 신뢰 상실 등)로 이어질 수 있음을 암시하는 것도 문제에 대해 호기심을 갖게 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2) 본론 본론은 논술문의 핵심부분으로써 원인과 대안이 체계적으로 제시되어야 한다. 주의할 점은 원인이나 대책을 제시할 때 상식적인 수준의 지식이나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고, 본 문제와 관련하여 교육전문가들이 분석한 원인과 대책들을 나름대로 소화하여 재구성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청소년 관련 문제에서 원인의 하위 논점은 개인, 가정, 학교, 사회로 영역화 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청소년의 성폭력의 원인과 대책에 대해 논술하시오'의 문제였다면 우선, 청소년들의 성격성의 결함이나 자아 존중감 부족 등을 들 수 있다. 다음으로 가정교육의 문제를 들 수 있다. 어려서부터 남성위주의 성문화로 인해 여성이 경시되고, 불평등하게 대우받는 가정환경에서는 여성의 성이 보호되기 어렵다.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는 체계적인 성교육 프로그램이 없고, 성상담이나 폭력예방을 위한 체계적인 지도가 미흡한 실정이다. 끝으로 여성의 성이 상업화되고 있는 각종 유해환경이나 인터넷 사이트의 범람은 청소년들을 유혹하여 성폭력 등의 비행을 유발하게 하는 원인이 된다. 다음으로 대책에서는 원인에서 구분한 영역에 따라 대안을 제시하되, 원인과 상관없이 보다 적극적으로 추가할 대안이 있다면 추가하면 될 것이다. 주의할 점은 영역마다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천방법이 제시되지 못하면 주장만 공허하게 메아리칠 뿐 구체성과 실천성이 약하기 때문에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렵다. 따라서 각 하위영역마다 '주장(…해야 한다) + 이유나 설명(왜냐하면, 즉, 예컨대) + 실천전략(이를 위해 ○,○,○이 필요하다)'을 제시하면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느낌이 든다. 물론 이유나 설명은 꼭 써야하는 것은 아니고 주장에 대한 보충 설명이나 이유를 제시할 필요가 있을 때 제시해야 할 것이다. 3) 결론 결론은 재강조하는 부분이다. 서론에서 문제제기를 했다면 본론에서는 문제가 요구하는 내용을 논점에 따라 충실하게 제시하고, 결론에서는 지금까지 제시했던 내용을 핵심내용 중심으로 마무리하는 것이다. 결론의 내용은 단도직입적 표현, 요약, 전망이나 과제로 구성된다. 요약은 본론의 원인과 대책을 핵심용어 중심으로 묶어서 제시하는 것이다. 효과적인 표현으로는 '(원인)이 ~에 있는 만큼 ~의 (대책)이 요구된다' 등으로 제시할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제시한 대로 실천된다면 어떤 긍정적 결과가 예측된다는 전망과 이를 위해 교사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마지막으로 강조한다면 좋은 인상을 줄 것이다. 예컨대, 청소년의 성폭력에 관한 문제라면 청소년은 우리의 희망이다. 청소년폭력의 원인이 남성위주의 성문화, 학교의 성교육 프로그램 부재, 여성의 성을 상업화하는 사회 풍조에 있는 만큼 남녀 평등한 대우, 가정과 학교에서의 체계적인 성교육, 유해환경 감시 등이 필요하다. 이렇게 될 때 성폭력문제는 사라지고, 남녀가 동등하게 대우받는 건전한 민주사회가 정착될 것이다. 이를 위해 남성들의 성에 대한 의식전환이 필요할 것이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결론 부분에서는 새로운 문제제기보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마무리하면서 채점자에게 강한 인상을 주어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4. 원인분석형의 개요작성방법(예시) 논제 1 : 학교폭력의 원인을 밝히고 그 대처 방안(해결 방안)을 제시하시오. Ⅰ. 序論 청소년은 우리의 희망이고, 학교는 즐거운 곳이어야 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일본의 이지메가 우리나라 매스컴에 소개되곤 하였으나, 이제는 우리의 교육현장에서도 학생 간의 학교폭력이 상당히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어 충격을 더해 주고 있다(최근 학교폭력 피해학생수가 16만 여명에 이른다고 한다). 최근의 학교폭력은 중·고교생에서 초등학생으로, 남학생에서 여학생으로 번지고 있으며 단순한 탈선을 넘어 조직화·범죄화 되고, 인터넷 폭력사이트를 모방한 범죄도 속출하고 있다. 이로 인해 살해되거나 자살 또는 정신 질환 등에 이른 경우가 늘고 있는 것이 학교폭력의 현실이다. Ⅱ. 本論 (1) 학교폭력의 원인 이처럼 심각한 지경에 이른 학교폭력의 개인적 요인으로 공격적인 성격장애에 원인이 있다. 이러한 성격 결함으로 인해 이들은 반사회적 행위를 하고도 반성하거나 고민하지 않으며, 자아조절능력이 부족하고 윤리의식이나 도덕의식이 제대로 형성되어 있지 않아 반항적, 충동적, 파괴적 행동을 하며 타인을 괴롭히게 되는 것이다. 가정 요인으로 오늘날 가정은 핵가족화로 인해 공동체의식과 연대의식이 약화되었으며 또한 가정의 교육적 기능의 약화, 부모의 바람직하지 못한 양육태도, 과잉보호 또는 지나친 규제, 결손 가정의 증가, 상대적 빈곤가정의 증가 등에도 원인이 있다. 이러한 가정 배경하에서 학생들이 반항적이며 공격적, 부정적인 성격으로 길러지고 있다. 학교 요인으로 입시위주의 지식중심교육은 이기주의적 학력주의 교육풍토를 낳게 하였고 지식중심의 교육에서는 입시과목을 잘하는 학생들과 그렇지 못하는 학생들을 구별하여 차별함으로써 반항, 도피, 폭력, 자살 등의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과대학교, 과밀학급의 교육환경으로 인해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 간의 인간관계가 소홀히 되었을 뿐만 아니라 개별지도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또한 정서교육이 부재하여 심신의 조화로운 교육과 건전한 정서함양, 예절교육 등이 제대로 실시되지 못하고 교사와 학생과의 관계는 단순히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 또는 평가자와 피평가자, 학생과 학생과의 관계는 경쟁의 상대라는 인식을 가지게 하고 있다. 사회 요인으로는 고도산업사회로 인한 가치체계의 혼란과 공동체의 유대 관계가 단절되고 인간소외현상이 심화되어 폭력과 비합법적인 방법이 성행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상업주의에 편승한 매스미디어에 의한 폭력물 방영은 학생들로 하여금 폭력의 모방과 학습을 유도하고 있으며 사회의 유해환경은 학생들을 비행의 구렁텅이로 몰아가고 있다. (2) 학교폭력의 대책 이에 학교폭력의 대책을 제시하면 먼저 개인적인 문제를 가진 학생은 예방을 위한 지속적인 관찰과 상담활동을 강화하며 상담과정에서 자기성찰의 기회를 갖게 하는 것이 중요하며, 가정에서는 부모의 긍정적 모형을 제시하고 가정의 교육적 기능과 가정 공동체의 회복이 절실하며 부모와 자녀 간의 대화, 부모의 올바른 자녀교육관 확립, 부모와 자녀 간의 시간같이 보내기, 자녀에 대한 건전한 여가지도 등이 필요하다. 또한 학교에서는 학생 스스로 남의 인격을 존중하면서 자신의 인격도 지킬 수 있는 민주인권교육과 더불어 공동체의식을 함양하는 인성교육이 강화되어야 한다. 동시에 학교 내·외의 비교육적 환경을 개선하고 학생들의 생활지도도 강화되어야 한다. 학습에 있어서는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여 개별화지도를 해야 할 것이며 학습자중심의 수준별 학습지도도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겠다. 또한 사회적으로 비폭력 지향의 건전한 사회문화건설과 인간중심의 가치관이 확립될 수 있도록 캠페인을 벌여나가야 하며, 각종 유해환경의 제거와 대중매체폭력에 대한 자율규제가 있어야 할 것이며 청소년의 건전한 놀이문화와 전용공간의 확보도 시급히 필요하다. Ⅲ. 結論 학교는 인간적인 교육이 이루어지는 장소이다. 학교폭력 심화의 원인이 가정, 학교, 사회 전반에 복잡하게 얽혀 있는 만큼 가정은 가정의 본래의 기능을 회복하고, 학교교육은 전인적 인간 육성을 위한 교육적 목표에 부합하도록 교육이 정상화되어야 하며, 사회 전반에 도덕적이고 건전한 사회문화가 정착되고 인간중심의 가치관과 공동체의식이 확립되어 모든 청소년들이 안심하고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논제 2 : 학교폭력의 원인을 학교차원에서 밝히고 우리 교육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논술하시오. ※ 주의 : 이 문제는 본론에서 주의해야 할 것이다. 원인과 대책을 제시할 때 모든 원인과 대책을 제시하지 말고, 학교차원에서의 원인과 대책을 논술하라는 문제이기 때문에 학교의 문제를 3가지 정도로 유형화해서 제시해야 할 것이다. 이 문제의 본론만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1) 학교 폭력의 원인 이처럼 심각한 지경에 이른 학교폭력의 원인에는 다양한 요인이 있겠으나 학교 차원에서의 원인을 살펴보면 먼저, 입시위주의 지식중심교육에 문제가 있다. 이러한 교육풍토 하에서는 교사들이 자연히 입시과목을 잘하는 학생들과 그렇지 못하는 학생들을 구별하여 차별하는 경향이 강하게 되고 이에 따라 학생들은 반항, 도피, 폭력, 자살 등의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 또한 시험 준비 때문에 학생들에게 가하는 학교와 교사와 부모의 기대는 학생들에게 긴 시간 긴장을 유발시키면서 인격적, 정서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영향을 주게 된다. 이러한 긴장에 대한 도피 책으로 저학년에서는 등교거부나 수업시간 중에 심신장애로, 고학년에서는 현실 도피성의 가출이나 장기결석 등으로 표출되고 나아가 주위의 친구들에게 폭력을 가하는 학생 간의 폭력으로 나타나게 된다. 둘째, 과대학교, 과밀학급 등을 비롯한 우리나라 교육환경에도 문제가 있다. 이러한 교육환경은 교사와 학생 간, 학생과 학생 간의 인간적인 만남과 관계형성에 큰 장애를 주게 된다. 이러한 상태에서 학교에서는 학생 개개인의 사정과 성장에 대한 관심과 배려, 학생과의 대화, 학생들의 의견을 들어주는 상담 등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게 되어 교사나 친구들에게 인정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은 그 울분을 폭력으로 해소하는 경향이 강하게 된다. 셋째, 인성교육이나 정서교육 등 인간교육이 소홀해진 데에도 학교폭력의 원인이 있다. 학교에서는 지나친 지식중심교육에만 치중하고 심신수련이나 건전한 정서함양, 도덕성 함양, 가치의식의 육성, 예절지도 등은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교육은 지·덕·체의 조화로운 인간육성임에도 불구하고 정의적 영역이 도외시됨으로써 학생들에게 누적된 욕구불만, 실패감, 무시, 불안감 등이 순화되지 못하고 그대로 표출되어 학교폭력으로 나타나게 된다. (2) 학교 폭력의 대책 따라서 학교폭력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나아갈 교육 방향을 다시 설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에 우리 교육은 이제까지의 지식중심만의 교육을 탈피하고 인성교육과 정서교육을 비롯한 인간교육으로 나아가야 한다. 구체적으로 교과교육에도 인간을 생각하게 하며 인격형성을 중시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의식을 함양토록 해야 하며 학생들 스스로 남의 인격을 존중하면서 자신의 인격을 지킬 수 있는 민주인권교육도 강화해야 한다. 또한 학생들의 현재의 생활, 경험, 취미, 성향 등에 깊은 관심을 가지면서 상호 인격적인 관계에서 교사와 학생 간의 만남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획일화된 평가체제를 탈피하고 성취도 중심의 평가가 이루어져 상대적 열등감을 해소시켜 줘야 할 것이다.
예전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 의약분업이 시작되기 훨씬 전에 있었던 이야기로 기억된다. 정확히는 알수 없지만 이 말의 뜻은 두말할 필요없이 '전문성'의 강조였을 것이다. 약사와 의사가 해야 할 일이 다름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동안 비교적 오랫동안 교육부총리로 재임해왔던 김진표 교육부총리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이 30일 사의를 표명했다. 곧 후임부총리가 임명될 것으로 보인다. 재임기간이 1년 6개월여로 짧지 않았고 교원평가추진에 따른 교원들과의 갈등을 겪기도 했다. 경제전문가가 교육부의 수장으로 임명되면서 교육이 경제논리에 휘말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으나 이들 모두가 지난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표면적으로는 최근의 대규모 급식사고와 외고지원제한 파문등이 사의 표명의 이유이지만 실제로 이들 문제로 교육부총리의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의 없었는데도 사의 표명을 한 것은 예견된 교체가 아니냐는 추측이 무성하다. 실제로 일부언론에서는 지난 27일경부터 조심스럽게 한덕수 부총리와 김진표 부총리의 교체를 예측하기도 하였다. 이번의 사의표명이유가 다른곳에 있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런데, 문제는 후임으로 거론되는 김병준 전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도 교육전문가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는 점이다. 김 전 정책실장은 국민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2002년에 '새천년민주당 노무현대통령후보 정책자문단장' 2002.12 ~ 2003.4월까지 ' 대통령인수위원회 정무분과위원회 간사'를 지냈으며. 2003.4 ~ 2003.6월까지는 지방분권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이후 2004.6 ~ 2006.5월까지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으로 재임하다가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책실장에서 물러났다. 대충 살펴보아도 교육과 관련된 업무를 수행한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만일 김병준 전 정책실장이 교육부총리에 임명되면 또다시 교육전문가가 아닌 인사가 교육부의 수장으로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앞으로의 교육정책 방향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참여정부에서는 교육전문가, 교육비전문가가 교육부장관을 역임하였다. 따라서 그 장,단점이 어느정도 검증되었다고 본다. 결론은 그래도 교육은 교육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전문가를 임명하여 어느정도의 성과를 얻었다고 판단할 수도 있지만 깊이있는 정책의 추진은 교육전문가가 아니면 실천하기 어렵다고 본다. 그 이유는 정확히 알고 맥을 짚을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노무현대통령의 임기가 후반기로 가고 있다. 이번에 새로 임명되는 교육부장관은 대통령의 임기와 함께 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관점에서 볼때 교육부의 수장은 교육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다. 여기서 한가지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 교육전문가를 임명하되, 편향된 시각을 가지고 있지 않은 전문가, 즉 보편, 타당한 논리를 펼치는 전문가를 임명해 달라는 것이다. 어느 한쪽의 입장을 대변하는 전문가는 원하지 않는다. 모든 교육관련자들의 아픈곳과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없애줄수 있는 그런 교육전문가의 임명을 기대하는 것이다.
임시국회에서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설치 운영에 관한 법률안'이 통과되지 못함에 따라 로스쿨 도입시기가 2009년 3월로 1년 연기됐다. 교육인적자원부는 30일 로스쿨 관련 법안이 6월 임시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해 당초 2008년 3월 도입 예정이었던 로스쿨 도입 시기를 2009년도 3월로 1년 늦추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따라 그동안 로스쿨 설치를 준비해온 대학들은 시설 및 교원 확보 등 과잉투자에 따른 재정적 부담을 안게 됐으며 로스쿨 입학을 준비해온 수험생들도 혼선이 빚어지게 됐다. 교육부는 그러나 이번 로스쿨 도입 시기 조정에도 불구하고 법학전문대학원 제도 도입 자체에 대한 정부 의지는 확고하다고 강조했다. 교육부는 일단 원활한 제도 도입을 위해 조속한 법률제정이 필요하다고 보고 늦어도 9월 정기국회에서는 법률이 통과되도록 범정부 차원에서 총력을 기울일 방침이다. 교육부는 또한 법학전문대학원 설치인가 심사기준 마련, 법학적성시험 연구 개발, 교육과정 개발 등은 변경된 일정에 맞춰 지속적으로 추진키로 했다. 교육부 변기용 대학원개선팀장은 "정치적 상황으로 불가피하게 도입시기가 조정됐지만 수험생들이 충분한 기간을 두고 입학전형 자료의 종류 및 내용, 시험일정 등에 대한 내용을 숙지하고 진학준비를 할 수 있다"며 "법학전문대학원을 준비해온 대학들도 교육과정 개발, 교원 채용 등에 충분한 시간을 갖고 준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농촌진흥청은 올해 1학기용으로 초.중.고교생들이 사용하고 있는 사회 교과서 10종의 농업.농촌 관련 내용 가운데 16가지가 바로 잡거나 신규 수록된 것이라고 30일 밝혔다. 개정된 교과서에는 농촌의 전통문화와 경관보전, 식량 안보 기능 등 9개 공익적 기능을 새로 수록했으며 첨단농업기술 내용 역시 1개가 신규 수록됐다. 반면 농업.농촌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사진 및 삽화 4개를 빼고 농약과 화학비료 로 인해 농촌이 환경오염의 온상이 된 것처럼 묘사된 문장 2개를 삭제했다. 특히 문을 닫은 농어촌 소규모 학교를 비관적으로 묘사한 중 3 교과서의 내용을 수정해 도시 문제의 해결 대안으로 오히려 농촌이 부각돼 '돌아오는 농촌'으로 변하 고 있다는 점을 소개했다. 또 고1 교과서의 '인구의 이동은 전통 사회에서부터 유지되었던 강력한 공동 체 의식을 붕괴시켜서 농촌 주민들은 농촌에 대한 애착심마저 잃게 되었다'는 표현 은 '...강력한 공동체 의식을 약화시키고 있다'로 대체됐다. 농진청은 일선 학교에서 사용된 사회 교과서 20종의 농업.농촌 관련 내용을 검토해 지난해 9월 의견서를 교육인적자원부에 제출, 교과 담당 편수관과 교과 집필진의 검토를 거쳐 해당 교과서에 새로운 내용을 반영시켰다고 설명했다. 새로운 내용이 반영된 교과서는 대한출판사의 초등학교 3∼5학년용 교과서 5종 과 교학사, 금성, 중앙교육진흥연구소의 중3 교과서 3종, 교학사와 두산출판사의 고 1 교과서 2종 등이다. 농진청은 올 2학기에도 초등학교 교과서에 농촌의 환경보전기능과 지역사회유지기능, 농진청과 농업기술센터 소개 등 4개 내용을 신규수록할 예정이다. 농진청 농촌자원환경과 김은자 연구사는 "이번 교과서 내용 개정은 자라나는 어 린이에게 농업이 지니고 있는 미래적 생명 가치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라며 "앞으로 도 농업과 농촌이 떠나고 피할 대상이 아니라 돌아가고 체험할 대상임을 강조할 계 획"이라고 밝혔다.
30일 전격 사의를 표명한 김진표(58)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은 지난 1년6개월 동안 많은 논란과 이야깃거리를 남겼다. 풍부한 행정 경험과 강한 소신으로 이해관계가 대립되는 교육계를 무난히 이끌어왔다는 평이 있는 반면 자립형 사립고(자사고) 등의 교육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청와대와의 코드'를 맞추기 위해 소신을 저버렸다는 공격을 받기도 했다. 최근에 김 부총리는 공영형 혁신학교 시범 운영계획을 발표하면서 내년(2008학년도)부터 외국어고의 모집단위 지역을 현행 전국에서 광역으로 제한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아 외고는 물론 일부 시민ㆍ학부모단체로부터 큰 반발을 샀다. 이 와중에 김 부총리의 딸이 외고를 졸업하고 1997년 어문계열이 아닌 경영학과에 진학했던 사실까지 밝혀져 논란을 증폭시켰다. 김 부총리는 이날 사의를 표명하는 자리에서 "재경부 국장 시절에 딸이 대원외고에 들어갔고 그 때 과외하지 않고 고교를 마치자고 딸과 약속했으나 딸이 1년 동안 과외를 받지 않으면서 성적이 떨어졌고 2~3학년에는 과외를 할 수밖에 없었다"며 "그 때 외고가 잘못됐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 부총리는 5.31 지방선거를 앞둔 3월31일 '영어마을을 그만 만들어야한다'는 발언으로 지방자치단체와 마찰을 빚었다. 당시 김 부총리는 '무분별한 영어마을을 만들기보다는 원어민 교사를 배치하는 것이 낫다'는 논리를 폈으나 학부모들로부터 '돈이 없어 외국에 못보내고 영어마을이라도 보내는 부모 심정을 몰라도 한 참 모르는 말'이라는 비난을 받아야했다. 그는 이해찬 국무총리의 3.1절 골프 파문과 관련해서도 "3.1절 같은 시기에 등산을 하면 우리 사회에서 아무도 시비 안하는데 왜 골프를 치면 반드시 문제가 될까"라는 '두둔성' 발언으로 사퇴압력에 시달렸다. 김 부총리는 철도 파업 첫날인 3.1절에 골프를 친 이 총리의 처신이 학생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겠느냐는 한나라당 이군현 의원의 질의에 대해 "어떤 시기냐, 어떤 운동을 한 것이 옳았느냐 하는 것은 각자 보기에 따라 다르게 판단할 수 있다"며 이같이 답변했다. 재임기간 그를 가장 곤혹스럽게 한 발언은 부동산대책의 일환으로 학군조정을 검토할 수 있다는 국회 답변과 자사고 관련 발언을 꼽을 수 있다. 김 부총리는 지난해 8월 국회 예산결산 특위 이계안의원(열린우리당)의 질의에 대해 "학군문제는 교육자치단체의 소관"이라는 전제 아래 "부동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긍정적으로 검토될 수 있다"고 답변, 큰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자사고 확대 여부와 관련해서도 그는 작년 12월22일 천주교 수원교구청 이용훈 주교(가톨릭사립학교법인연합회장)를 만난 자리에서 "자사고를 20개 정도로 확대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가 올해 초 자사고 확대방침을 백지화했다.
김진표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의 30일사의 표명은 급식사고와 외국어고 응시 지역제한 등 최근 잇따라 불거진 교육정책과 관련한 파문에 대해 교육수장으로서 책임지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김 부총리는 이날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지방선거 결과에 상당한 충격을 받았고 당으로 돌아가 국회의원으로서의 일에 충실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교육부총리를 맡은지 1년6개월이 된다"며 배경을 설명했다. 명분은 '이제 할만큼 했고 당으로 돌아갈 때가 됐다'는 것이지만 사의 표명 시기가 급식사고와 외국어고 응시 지역제한 논란과 맞물려 있다. 김 부총리는 간담회에서 대통령께 사의를 표명한 시기를 6월 중순이라고 밝혀 이미 외고 모집제한이나 급식사고 이전에 사의를 표명했음을 시사했다. 외고 모집제한 정책이 발표된 것은 지난 19일이었고 급식사고는 22일 처음 터져나왔다. 따라서 김 부총리의 설명대로라면 외고모집 제한이나 급식사고 파문이 번지기 이전에 대통령께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정부내에서도 이미 이달초부터 김 부총리를 포함한 개각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따라서 김 부총리가 외고 정책 발표 이전에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했으나 최근 급식파문과 맞물려 교육정책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자 책임을 지는 모양새를 띠면서 공개적으로 사의를 표명하기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김 부총리가 이날 사의 표명에 앞서 "급식사고로 인해 학부모와 국민들에게 걱정을 끼쳤다. 이를 미연에 방지하고 관리해야 할 책임이 있는 장관으로서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사과한 점도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하는 대목으로 해석된다. 실제 교육당국은 급식사고가 확대되는 와중에 일선 학교에서 교육청, 교육부로이어지는 사후 보고 체계가 제대로 가동되지 못하는 등 대응이 미흡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또 외국어고 응시자격을 전국 단위에서 시도단위로 제한하는 정책을 발표한 뒤 정책 결정이 졸속으로 이뤄졌다는 지적이 잇따른 점도 김 부총리의 사퇴 의지를 굳히는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김 부총리는 특히 정책의 옳고 그름을 떠나 시행시기를 2008학년도부터 적용함으로써 시험을 준비해온 일부 학생과 학부모로부터 최소한 시행시기를 유예해야 한다는 여론에 상당한 압박을 받아온 것으로 전해졌다. 교육부 관계자는 "김 부총리가 당으로 복귀하기 위해 외고나 급식파문 이전에 임명권자에게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외고 모집단위 제한과 급식사고 파문이 확대되면서 책임지는 모양새를 띠면서 사의 표명 시기를 앞당긴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진표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이 30일 사의를 표명함에 따라 김 부총리가 주도해온 외국어고 모집단위 제한정책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주목된다. 김 부총리는 그동안 "외국어고는 실패한 정책으로 이 문제를 더이상 방치하는 것은 책임있는 정부의 자세가 아니다"는 입장을 되풀이해 왔다. 그는 특히 "평준화제도로 인한 미흡한 수월성 교육, 학교선택권 제한 등의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과학고, 외국어고, 자립형사립고, 특성화고교 도입 등이 추진됐지만 외고는 사회적인 문제가 될 수 있는 상황에 이르렀다"며 외고 모집단위 제한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이날 기자간담회에서도 퇴임뒤 외고정책의 변화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김 부총리는 "광역 모집단위 제한은 현재로서는 그대로 가야한다. 정부내에서 공감을 갖고 추진한 것이다"고 강조했다. 그는 시행시기 유예에 대해서는 "현재로서는 당초 방침에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부총리가 외고 모집단위 제한과 급식사고 파문의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한 마당에 당초 발표대로 2008학년도부터 외고 모집단위 제한이 추진될지는 다소 불투명해졌다고 볼 수 있다. 청와대와 교육부내에 외고 모집단위 제한이 정책적으로는 타당하다는 목소리가 높기 때문에 전국 단위에서 시도 단위로 모집을 제한하는 기본 방향 자체가 틀어질 가능성은 없다. 교육부와 청와대의 핵심 정책 라인에서는 대부분의 초중고생들이 학군 또는 해당 시ㆍ도에 있는 학교에 다니고 있는 상황에서 31개가 설립돼 있고 앞으로 우후죽순으로 생겨날 것이 우려되는 외고만 유독 전국단위로 학생을 모집해야 할 명분과 논리는 없다는 판단이 확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단지 외고교장협의회를 비롯해 학부모들이 요구하고 있는 시행시기 유예는 후임 부총리가 정해지면 충분히 재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 관계자는 "기본 정책방향에 대해서는 이론이 없지만 시행시기를 촉박하게 잡은데 대해서는 정부내에서도 일부 반론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며 "후임 부총리가 정해지면 시행시기 유예 등의 문제가 재검토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김진표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이 30일 사의를 표명했다. 김 부총리의 사의 표명은 최근 발생한 급식사고 및 외국어고 모집제한 논란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킨 것과 관련해 교육당국 수장으로서 책임을 지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보인다. 김 부총리는 이날 오후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브리핑실에서 기자간담회를 통해 학교급식법 개정안 등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교육관련 현안 법률을 설명하면서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지방선거 결과에 상당한 충격을 받았고 당으로 돌아가 국회의원으로서의 일에 충실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 부총리는 이어 "임시국회 끝나면 임기가 1년6개월이 되기때문에 6월 중순께 대통령에게 국회로 돌아가겠다는 뜻을 전했다"며 "들어주실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부총리는 "대통령께서 고생했는데 국회로 돌아간다니까 존중해야 되지 않겠느냐는 취지의 말씀을 하셨다"고 전했다. 김 부총리는 사의 표명에 앞서 "급식사고로 인해 학부모와 국민들에게 걱정을 끼쳤다. 이를 미연에 방지하고 관리해야 할 책임이 있는 장관으로서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최근 급식파문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김 부총리는 또 외국어고 모집단위 제한 방침과 관련,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혼선이 있는 것으로 비쳐졌으나 분명한 것은 금년들어 여러차례 간부회의 논의를거쳐 결정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부총리는 또 "5월에 열린 교육감 회의에서 외고를 더이상 확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뜻을 전했다"며 "정책결정 과정에 청와대 지시 같은 것은 없었으며 처음부터 생각을 갖고 논의를 거쳐 발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외고 문제는 적어도 10년 전에는 정책의 변화가 있어야 했는데 지금까지 끌고와서 어문계열로 진학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 시스템이 된 것은 잘못된 것"이라며 "정부내에서도 의견을 모았기 때문에 제가 바뀌더라도 외고 모집제한 방침을 유예하는 등의 변경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부총리는 또 "우리나라 중등교육은 형평과 경쟁이 잘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생각하고 평준화 틀을 지켜가야 한다"며 "일부 언론에서 제가 코드를 맞추느라고 자립형 사립고 등과 관련해 소신을 바꿨다고 혹평하는데 삼십 몇년 공직생활하면서 자리에 연연하지 말자는 생각을 늘 갖고 있었고 정책이 옳다고 믿었기 때문에 선택해서 추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선생님, 오늘은 마음이 좀 가볍지 않으십니까? 학생들은 기말고사로 인해 힘이 들겠지만 선생님들은 4일간 수업을 하지 않으니 그나마 부담이 적으리란 생각이 듭니다. 우리학교의 꽃인 백합이 드디어 꽃을 피우기 시작했네요. 작년보다 키도 훨씬 크고 꽃도 더 하얗고 큼직하며 우리 학생들의 순결을 뽐내듯이 환히 웃고 있는 모습이 참 좋습니다. 우리의 교목인 태산목도 함께 새하얀 꽃을 피우고 있으니 학생들의 무궁한 성장을 기대하고 있으니 더욱 볼 만합니다. 더위를 식혀줄 만큼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이제 시험기간이고 하니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는 여유를 가졌으면 합니다. 시험을 앞두고 아름다운 모습과 안타까운 모습이 함께 나타남을 보게 됩니다. 시험기간 때는 학생들이 알아서 공부를 잘 하기 때문에 늦게 출근해도 될 법한데 보통 때와 마찬가지로 출근시간이 일정함을 봅니다. 학생부장 선생님은 일찍 오셔서 교문지도를 하네요. 부장 선생님을 비롯한 모든 선생님들이 평소와 조금도 다름없이 출근하셔서 근무하시는 모습이 참 보기 좋습니다. 아침 8시 교실을 둘러보니 2층에서 한 선생님께서 학생 한 명과 함께 골마루를 쓸고 있었습니다. 정말 보기가 좋네요. 보통 때보다 더 아름답게 다가옵니다. 어떤 학생들은 시험을 앞두고 등교하면서까지 책을 보는 학생들도 있는데 그 귀한 시간에도 자기의 할 일을 하는 학생의 모습이 우리의 백합처럼 환하게 다가옵니다. 선생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소에도 구석구석 청소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는데 오늘도 변함이 없으니 정말 감동적이더라구요. 평소와 같이 교실을 지키시는 선생님이 눈에 띄네요. 학생들의 휴대폰을 일일이 보자기에 넣는 선생님도 보이시구요. 교실탁자에 앉아 함께 공부하시는 선생님도 계시구요. 구석구석 정리하시는 선생님도 계시구요. 마른 더위에 마음까지 말라가는데 오늘은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다시 생기가 돕니다. 교장실에는 오늘 시험감독으로 수고해 주신 학부모님께서 20명이 와 있더군요. 교무부장 선생님과 함께 사전준비를 하는 모습도 진지했으며 보기가 아름다웠습니다. 담임선생님 한 분은 자기반 학생이 며칠 전 맹장수술을 했는데 상처도 아물지도 않고 다시 꿰매야 하는데도 고통을 참으면서 시험을 치려고 하는 의지와 집념의 학생도 만납니다. 이런 아름다운 모습을 보는 반면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모습들을 봅니다. 교실 골마루에는 보통 때보다 더 많은 머리카락이 보입니다. 학생들이 시험에 대해 얼마나 중압감을 느끼고 있는지,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머리카락 한두 개가 아닙니다. 상당히 많은 머리카락이 무더기로 곳곳에 보입니다. 빗자루로 쓸고 주워도 끝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래도 참고 인내하며 공부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희망을 느낍니다. 또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어제 한 선생님께서 여러 선생님들에게 메신저를 보냈는데 내용을 보니 이러했습니다. ‘씨크리트 체크 펜 소개입니다. 학교 앞 애플 팬시에서 현재 팔고 있는 상품인데 1000원이랍니다. 보기에는 평범한 형광펜이지만 글씨를 쓰면 보이지 않고 불빛 아래에서는 글씨가 드러납니다. 펜 끝에 후레쉬가 달려 있습니다. 책상 위나 손등, 허벅지, 어디든 쓸 수 있습니다. 컨닝용으로 악용될 수 있을 소지가 있어 게시판에 견본 제품을 붙여 두겠사오니 감독시에 참고로 하시기 바랍니다. 드러내 놓고 말하려니 오히려 역으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선생님들께만 이런 방법도 있구나 아시라는 노파심에서 쪽지를 돌립니다. 이런 펜을 보시거든 그냥 뺏어 주세요.’ 학생들은 점수를 조금이라도 올릴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를 만들어내는 업체도, 이를 파는 문방구가 있음을 보면서 이들도 함께 반성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자기들에게 유익이 된다고 학생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는 그런 행위는 삼가는 게 좋지 않을까요? 또 아쉬운 것 중 하나는 오늘 감독으로 나오시기로 되어 있는 학무모님 중 두 분께서 아무 연락도 없고 참석도 하지 않음을 봅니다. 이렇게 무성의하고 책임의식이 없으니 정말 안타까울 뿐입니다. 차라리 처음부터 못 한다고 해야지요. 또 안타까운 것은 방송이 갑자기 되지 않아 이를 고치기 위해 열심히 뛰는 모습을 봅니다. 오늘 아침 메신저에 이렇게 양해를 구하네요.‘어제 날씨로 인해 학교 차단기가 내려가서 지금 복구를 하고 있지만 안 되어서 기계담당자가 9시 5분경에 오시기로 되어있습니다. 불편하시겠지만 이해해 주십시오..빠른 시간 내에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학생들의 공정한 평가를 위해 선생님들께서 이렇게 자기의 맡은 업무를 하시는 모습들이 우리들의 꽃 백합만큼이나, 우리들의 교목 태산목의 새하얀 꽃만큼이나 아름답고 보기 좋습니다. 정말 좋은 하루의 시작입니다. 오늘 전국적으로 비가 내린다고 하네요. 더위를 식혀줄 좋은 소식이니 힘내시고 기쁜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셨으면 합니다.
사상 최대 규모의 학교급식 사고가 터진 뒤 위탁급식업체의 부실한 위생 관리에 비난의 화살이 몰리면서 상대적으로 안전한 것으로 알려진 학교직영급식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회 교육위원회는 28일 이러한 여론을 기반으로 초ㆍ중ㆍ고교에서 직영급식을 의무화하도록 하는 학교급식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이미 직영급식을 실시하고 있는 일선학교들은 "직영으로 전환한 뒤 음식의 맛과 위생에 대한 학생ㆍ학부모 평가가 좋아졌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서울 성산고 급식관계자는 "지난해 8월까지 소규모 업체에 급식을 위탁했는데 음식의 질과 양에 대한 학부모 불만이 많아 9월부터 직영으로 전환했다. 이후 아이들이 맛있다고 좋아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학교 급식게시판을 보면 위탁으로 운영할 때는 '하얀색 벌레가 나왔다. 위생에 신경써달라', '반찬 양이 너무 적다'는 불만 글이 이어진 반면 직영으로 전환한 뒤 '음식이 너무 맛있어졌다'는 감사 글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이 학교 영양사는 "초기에는 경험이 부족해 음식 양 조절 등에서 실수를 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익숙해져서 특별한 학생 불만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서울 잠실고에서도 식중독 사고가 발생한 뒤 학부모로부터 "학교가 직영급식을 해왔다는 것을 예전에는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직영으로 급식을 운영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칭찬이 쇄도했다. 이 학교는 까다로운 항목으로 구성된 서면심사와 현장심사를 거쳐 식품납품업체를 선정하고 10여명의 조리사를 채용해 교육청에서 신축자금을 지원받은 급식실에서 매일 신선한 음식을 만들어 제공하고 있다. 직영급식에 대한 만족도는 높지만 한편에서는 학교와 학부모에 지워지는 부담이 큰 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적지않다. 직영 급식을 실시하는 서울 금천구 모 고등학교 교장은 "저소득층 학생이 많아 급식비를 지원받는 200명을 제외하고도 장기간 급식비를 미납하는 학생이 많아서 재정에 어려움이 있다"고 전했다. 이 교장은 "조리원 등 인력관리도 쉽지 않고 음식재료나 식품 검수과정에 학부모가 매일 참여해줘야 하는데 참가율이 저조하다"며 "만일의 사태에 발생하는 모든 일의 책임이 학교장에게 전가되는 것도 어려움"이라고 토로했다. 특히 직영급식이 의무화되면 조리나 배식 과정에 필요한 인력을 학교가 모두 제공할 수 없으므로 학부모의 참여유도가 절실한데 맞벌이 부부가 일반적인 상황에서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어머니 급식당번 폐지를 위한 모임' 박은미씨는 "초등학교가 어머니들을 급식당번에 강제 배정하고 있는 현재의 관행이 사라지지 않는 한 직영 의무화로 인해 어머니에게 전가되는 부담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 수준의 학업성취도 평가결과에 대한 학교별 또는 시ㆍ군ㆍ구별 공개가 사실상 금지된다. 교육인적자원부는 30일 학업성취도 평가의 대상 교과, 주기, 평가결과를 공개할 수 있지만 구체적인 공개범위 등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하는 내용의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는 전국 초등6년, 중3년, 고1년생의 3%를 표집해 매년 실시되고 있다. 평가 결과는 현재 대도시, 중소도시, 읍ㆍ면지역 등 3개 범주로 나눠 평균과 성취수준을 공개하고 있으나 그동안 법적인 규정이 없어 공개범위 등을 놓고 논란이 제기돼왔다. 한나라당 이주호 의원은 전수조사를 통해 평가결과를 완전히 공개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을, 열린우리당 정봉주 의원은 공개를 제한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을 각각 제출해 놓고 있다. 김영윤 초중등교육과장은 "여야 간, 교직단체 간, 학부모단체 간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돼 있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한 뒤 평가결과를 어느 정도까지 공개할지 대통령령에서 정하게 된다"며 "현 수준대로 대도시, 중소도시, 읍ㆍ면지역 등 큰 범위로 나눠 공개한다는 것이 교육부 방침"이라고 말했다. 교육부는 학업성취도 결과를 시ㆍ도간 또는 자치구별, 학교별로 비교할 수 있을 정도로 공개하는 데 대해 학교 간, 지역 간 불필요한 경쟁을 야기하고 지역별 학력격차를 고착화시킬 수 있다는 이유로 부정적인 입장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방침대로 대통령령이 정해지면 학업성취도 평가결과를 시ㆍ도 간 비교하거나 자치구별, 학교별로 공개하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개정안은 이와 함께 학업성취도를 평가하는 데 관련된 학교, 지역, 학생, 교원 관련 정보를 수집할 수 있으나 특정 지역ㆍ학교ㆍ학생ㆍ교원을 식별할 수 있게 하는 정보는 관리ㆍ공개되지 않도록 했다. 관리ㆍ공개 금지 대상 정보는 설립유형, 학교규모, 교사 성별, 교직경력, 학생취학전 학습, 학습준비물 정도, 교과에 대한 흥미 정도 등이다. 개정안은 또한 현재 교육부장관만 할 수 있도록 돼 있는 학업성취도 평가권한을 교육감에게도 주도록 했다.
요즈음 편식이 많은 아이들에게 음식의 중요함을 배우게 하려고, '공복 체험'을 실천하고 있는 초등학교가 있다. 아동이 369명인 조에쓰시립 오오테마치 초등학교는 아동들에게 공복 체험교육을 실시한 지 벌써 20여년에 이른다. 일본의 식량 자급율이 낮은 것을 배운 당시의 아동들이, '겨울 4개월 동안 눈에 갇히는 타카다 지구에서 만약 쌀 수입이 스톱되고 식량이 손에 들어오지 않게 되면 어떻게 할까'라는 것을 가정하여, 공복체험을 실시한 이래, 5학년생들은 정례 행사로 실시한다. 공복 체험은 매년 가을, 학교에 일박을 하면서 행해진다. 합숙하면서 음식은 스스로의 손으로 만든 것이다. 그 때문에 학교 밭에서 나온 무나 고구마, 감자 등을 사용한다. 이를 위하여 학교 가까운 곳의 논을 빌리고 벼도 기른다. 가을까지 수확된 이 식량만으로 겨울의 4개월 사이를 보낸다는 가정 아래 1인당의 1식분의 식사량을 계산하여 합숙 중에는 그 식량만으로 식사를 해결한다. 2005년도에는 세계의 식량 문제에 관심을 갖게 하려고, 기아에 허덕이는 나라의 아이가 먹는 칼로리 정도만 설정했다. 메뉴는 몇 톨 안 되는 밥과 고구마, 돼지고기가 조금 있는 것으로 113킬로 칼로리 정도이다. 식사후 잘 때까지는 건강해도 아침에 일어나면 녹초가 되어 아침 식사를 먹을 수 없거나, 머리가 아프다고 양호실로 뛰어들어 간 아동도 있었다고 한다. 이 학교에서는 종합 학습의 시간에 영양사나 식량 유통 관계자 등을 강사로 불러 이야기를 듣는다. 일본의 식량 사정이나 식생활 문화, 음식과 건강 등, 음식을 둘러싼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배우기 위해서이다. 가을에 실시하는 공복 체험 후는, 자신에게 무엇이 가능한가를 생각해 실천하고 작문으로 정리한다. 그 문집 중에서 일부를 소개하면 「공복 상태에서 너무 속이 메스꺼워져, 아침에 견딜 수 없어서 양호실에 갔다. 단지 하루인데 몸이 매우 나른해져서 움직일 기력이 없었다. 합숙 후에 엄마들이 만들어 준 소금 뿌린 주먹밥을 받고 매우 맛있고 「밥이 이렇게 맛있었던가?」라고 생각하면서 30초 정도에 다 먹어버렸다」 또 한 학생은「배가 고파서 움직일 수 없게 되었고, 「어째서 지금까지 음식을 남겨 왔는가?」라고 반성하면서 생각했다. 공복의 체험이 없었다면 쭉 남기고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합숙 후는 급식 잔반이 줄어들어, 거의 전원이 졸업할 때까지 「완전한 식사」를 한다. 음식뿐만이 아니라 건강의 고마움도 실감하게 된다고 한다. 교무주임 아베 교사(42살)는 「음식에 대한 감사, 소중하다는 가치를 백번 말해도 전달되지 않는 것이, 불과 1박 2일의 공복 체험으로, 아이는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이 바뀌게 된다. 음식의 중요함을 가르치는 것은 탁상공론이 아니고, 몸으로 기억하여 실천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음식의 잔반은 사라지고, 식사에 대한 감사의 기분으로 연결되게 된다」라고 이야기 한다. 나는 학생들에게 6.25전쟁에 대한 간접 체험을 갖게 하기 위하여 전교생에게 옥수수 죽을 끓여 먹게 한 적이 있다. 처음 먹어 보는 옥수수 가루, 역시 아이들은 오후가 되자 배가 고프다는 반응이었다. 만일 우리 아이들에게 이러한 공복체험을 학교에서 실시하겠다고 하면 과연 부모님들이 찬성을 할 것인가? 풍요 속에 음식에 대한 감사를 잊어가는 아이들에게 꼭 한 번은 실시해 볼 만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초, 중학교의 급식을 사실상 직영급식으로 전환하도록 하는 학교급식법이 개정되었다. 이에따라 현재 위탁급식을 실시하는 대부분의 초, 중학교가 3년내에 직영급식으로 전환될 것으로 보인다. 학교급식의 위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궁여지책이라는 생각이다. 근본적인 해결책으로는 미흡하다고 본다. 그렇더라도 학교급식의 진일보한 것이 직영급식이라고 보면 어느정도의 효과는 분명히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의 법률 개정이 학생들의 안전한 급식에 일조하기를 기대해 본다. 이를 위해서는 학교장과 교원들의 책임있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번의 법률개정에 따르면 급식시설과 설비를 갖춘 학교에는 반드시 영양교사와 조리사를 두도록 했다. 당연한 조치이다. 현재 위탁급식에서도 나름대로 영양사와 조리사를 두고 있다. 교육부는 당초 약 5800여명의 영양교사가 필요할 것으로 분석했지만 현재 위탁급식교가 직영으로 대거전환한다면 1000명 이상을 더 채용해야 할 전망이다. 이 부분에 주목하고자 한다. 학교의 교원수는 총 정원제 내에서 결정된다. 그런데, 영양교사가 채용되어서 이들이 교원으로 편입되면 사서교사와 함께 총정원에 포함될 것이다. 영양교사들이 들으면 발끈할 일이긴 하지만, 실제로 이들이 편입되면 기존의 교과담당 교사는 수업부담을 어쩔수 없이 느낄 수 밖에 없다. 영양교사들 입장에서는 자신들도 수업을 할 수 있다고 하겠지만, 할 수 있는 것과 실제로 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 영양교과가 없는 상태에서 수업을 한다고 해도 실효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은 어느과목의 일부를 대신 맡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해당교과만 수업이 경감될 뿐이다. 이런 문제는 실제로 학교의 보건교사가 수업을 담당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 것에서도 쉽게 알 수 있다. 체육교과의 보건 부분을 일부 담당할 뿐이다. 또한 올해 신규로 사서교사를 배정받지 않은 시,도교육청의 경우 이들 때문에 교과교사의 수업부담증가가 나타날 것을 우려해 신규배정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당장 내년이 되면 영양교사 문제도 대두될 것이다. 안전한 급식을 위해 직영으로 전환하면서 반드시 두도록 한 것이 영양교사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급식업무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이들을 교원 총정원에서 분리해야 옳다. 분리한다는 의미는 교원으로서의 신분을 유지하되, 총정원에서는 분리해서 별도정원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전에 보건교사(양호교사)처럼 관리하면 될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교육부에서 교원의 수업부담을 경감한다는 취지에 어긋남은 물론 실제로 일선교원들의 수업이 가중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우선 시작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시작전에 정원외 관리로 정리하고 시작해야 한다. 물론 학교에서 교과교사만이 전부냐고 따지면 할말은 마땅치 않지만 수업부담을 가볍게 보아 넘겨서는 안된다. 급식관련 법률 개정으로 안전한 급식을 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긴 하지만 이 문제를 그냥 지나치면 안된다는 생각이다. 아울러 영양교사와 함께 사서교사도 정원외 관리를 해야 한다. 어쨌든 수업부담이 가중되는 것은 교육의 질을 떨어뜨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전적으로 교육부에서 나서야 한다. 그동안 교육부에서 추진하겠다고 밝힌 교사의 수업부담 경감과도 맞물리기 때문이다. 교육부의 노력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