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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앞으로 입시기관들이 특목고나 명문대에 입학한 자기 학원 출신자 수를 부풀려 발표할 경우 학원등록 말소 등 강력한 행정제재 조치와 함께 2년 이하의 징역형을 선고받게 될 전망이다. 교육인적자원부는 2일 자립형사립고와 외국어고, 과학고, 명문대 등에 들어간 수강생들의 숫자를 과장 광고해 사교육 과열 현상을 부추기는 입시ㆍ보습 학원들을 철저히 단속하라고 최근 전국 시도교육청에 지시했다고 밝혔다. 김정기 교육부 평생학습국장은 "특목고 또는 특정 대학에 대한 근거 없는 입학실적 부풀리기 광고행위 등을 적발하면 해당 학원의 운영정지나 등록말소 등 행정조치를 취하고 위반 사실을 공정거래위원회에 통보해 처벌받도록 했다"라고 말했다. 공정위는 소비자를 속이거나 소비자로 하여금 잘못 알게 할 우려가 있는 허위ㆍ과장의 표시ㆍ광고에 대해 2년 이하 징역 또는 1억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한 표시ㆍ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을 근거로 통보받은 학원들을 처벌하게 된다고 김 국장은 설명했다. 학원을 다니다 중도에 그만두거나 강의 사이트에 회원으로 가입했던 학생이 자립형사립고나 특목고에 합격하면 마치 자기 학원이 배출한 합격생인 것처럼 광고하다 적발될 경우 학원등록 말소는 물론, 철창행도 각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학원들의 입학실적 부풀리기 관행 등을 적발하더라도 대부분 시정명령이나 경고 등 '솜방망이 처분'을 내리는 데 그쳤던 교육당국이 이처럼 강경 대응키로 한 것은 급증하는 입시ㆍ보습학원들에 의해 특목고 입시 과열현상이 조장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전국 입시ㆍ보습학원은 2001년 12월 말 현재 1만3천708곳이었으나 5년이 지난 지난해 6월 말에는 무려 102.2% 증가한 2만7천724곳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국 초ㆍ중ㆍ고교(1만889곳)의 2.55배에 해당하는 수치다.
서울시내 고교 절반 가량이 선택과목 중 하나로 '진로와 직업'을 채택토록 하는 등 각급 학교에서 진로교육이 한층 강화된다. 2일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서울시내 고교 50%가 선택과목 중 하나로 '진로와 직업' 과정을 채택토록 하는 등 일선 학교의 진로교육 강화를 위한 '서울진로교육 중장기 발전계획'이 최근 마련돼 추진되고 있다. 서울시내 고교 가운데 '진로와 직업'을 선택과목의 하나로 채택한 학교는 2004년 41.3%(119/289)에서 2005년 46.0%(134/292), 2006년 47.0%(295곳 중 139곳)로 증가했지만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에 따라 올해 '진로와 직업' 선택비율을 전체 고교의 50%까지 끌어올린 뒤 매년 5%씩 늘려 2010년부터는 전체 고교의 65%가 '진로와 직업'을 선택과목의 하나로 채택토록 한다는 계획이다. 초ㆍ중학교는 그동안 재량활동과 특별활동을 이용한 진로교육이 일회성에 그치고 있다는 비판을 감안해 교과활동, 특별활동, 재량활동, 방과후 활동 등을 다양하게 활용해 진로교육을 실시키로 했다. 여학생 대상의 진로교육은 양성평등의 직업관 확립을 통해 여성의 직업의식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개, 그 일환으로 올해 여학교나 남ㆍ여 공학 고교 중에서 진로ㆍ직업의식 강화 프로그램을 운영할 22개 협력학교를 선정할 계획이다. 장애학생 진로교육은 장애 유형이나 정도별로 차별화된 진로정보가 미비한 점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전개되며 내년부터는 특수교육 담당교사와 학부모를 대상으로 1년에 3차례 정도 연수도 실시된다. 시교육청은 진로교육 강화를 위해 ▲ 진로교육 체제혁신 ▲ 교원진로교육 전문성 신장 ▲ 진로교육 교육과정 운영내실화 ▲ 맞춤식 진로교육운영 ▲ 진학진로 정보서비스 등을 5대 정책방향으로 설정했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지식기반사회로의 이행과 급격한 고령화로 각 개인이 평생에 걸쳐 진로를 개발해야 하는 시대가 왔지만 아직도 학교에서는 지식위주 교육에 치중하는 면이 있다"며 "학교교육을 통한 체계적인 진로교육을 위해 종합적인 진로교육 중장기 발전계획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필자는 인천에서 태어나 스물 일곱해를 살다가 결혼과 더불어 타향에 살게 되었다. 남편도 인천이 고향이지만 일 관계로 여러 지역에서 지내게 되었고 덕택에 필자도 여러 곳의 문화와 생활을 접하게 되었다. 필자에게 고향이라는 것이 큰 의미가 있었던가? 고향과 타향을 의식하게 된 날들은 그리 멀지 않다. 일하는 여성으로서 직장과 가정 사이에 해결해야 할 일들로 바쁘기도 했었고, 타인의 왕래가 잦았던 지역에서 살았던 때에는 외국에서 사는 듯한 차별을 느낄 수가 없었으므로 이제까지 생각해본 적도 없었던 고향을 되새길 이유는 없었다. 한국이 단일민족이라는데 동의하지도 않고, 특히 외모와 문화가 다른 외국인들과의 결혼으로 다문화 사회로 가고 있다고 하는 요즈음 필자는 외국인이 아니더라도 한국내에서 한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출신지역이 다르다는 이유로 인종차별에 버금가는 차별이 있음을 의식한다. 따라서 외국인이 한국에서 일시적 거주가 아니라 영구 거주를 하려고 할 때에 그 어려움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다. 그 강도가 미국, 유럽 또는 일본 등과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 개인의 그 사람을 보기보다 그 사람 주변의 배경을 중시하는 문화적 속성으로 볼 때 더 심할 것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필자는 요즈음 고향을 생각한다. 고향이라고 남다른 추억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앞 집 옆집이 서로 들고나며 집집의 수저의 개수까지 아는 조그마한 시골도 아닌 대도시이므로 향수를 느낄만한 것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러 사는 곳이 ‘내 터전이다’라는 의식이 조금씩 바뀔 때가 있다. 부인과 사별을 하였는데 아이 셋을 키우며 함께 살아줄 새 부인을 찾다 할 수 없이 베트남 신부를 맞아들인 가장이 주변의 눈초리가 버거워 베트남으로 이민을 갈 생각을 하고 있다는 TV방송의 인터뷰는 충분히 이해가 된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수많은 문제점이 있다 할지라도 그 곳에서 살고 싶다고 전세계에서 위험을 무릎쓰고 들어가는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이 살고 있는 그 곳에서 잘살려고 열심히 노력하면 인정을 해주고 노력에 따른 보상이 비교적 공정하기 때문일 것이다. 공정한 시스템의 덕택으로 미국은 현재 세계 제일의 부강한 나라가 되어있는 것이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인재에 대한 욕심이 무척 많다고 한다. 어느 나라 어느 구석에 뛰어난 재주를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데려갈 방법을 찾는 단다. 유비도 제갈공명을 데려가려고 ‘三顧草廬’를 하였고 제갈공명은 어려움과 분함이 있었어도 촉나라를 지키기 위해 생의 마지막까지 노력하였다. 각각의 지방자치단체들이 저마다의 색깔로 자신의 고장을 빛내고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이 때에 내 지역에 살고 있는 외지인, 외국인은 사는 터전을 가꾸는 하나의 시민을 너머 그나 혹은 그의 조상이 살던 지역을 연결시켜주는 귀중한 인사가 될 수 있다. 한국에서 살던 삶을 정리하고 미국으로 간 화교들을 미국에서 만났었다. 한국의 상권을 장악하던 화교들은 5.16 이후 하나 둘 한국을 떠났고, 남아있는 화교들은 많은 어려움 속에서 살았었다. 가난한 나라에서 외국인, 즉 화교가 많은 재물과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으므로 당시의 정부로서는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었을 지도 모른다. 필자의 친구는 아버지는 중국분, 어머니는 한국분이었는데 정원외 입학생으로 같은 대학에 다녔었다. 한국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책을 잡히지 않으려고 무척 노력을 하였었다. 대학생인 자신의 생일잔치를 퍽 대단하게 준비하고 친구들을 불렀었다. 친했던 필자가 왜 그렇게 격식을 차려 준비하느냐고 물었을 때 ‘초라하게 보이고 싶지 않다’고 하였다. 필자의 친구를 제외하고 그 아래 두 동생들은 모두 대만대학을 다녔다. 두 동생들은 방학 중에 대만의 대학생들이 한국 대학생들을 만나고 싶어한다고 하여 한국 대학생들과의 만남을 주선하였다. 덕택에 필자는 대만대학생들의 학교생활, 방학 중의 일정을 알 수 있었다. 대만의 학생들은 방학 중에 한국에 올 때에는 약초를 가지고 와서 여비를 충당하고, 중국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한국을 경험하고, 일본에 가려면 한국에서 김과 명란젓 등 일본 사람들이 좋아하는 먹거리를 가지고 가 여비로 보태고 일본에 있는 중국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일본을 체험하고, 미국이나 유럽에 갈 때에도 화교네트워트를 이용하여 적은 여행비용으로 고루 세계를 경험하고 다닌다고 하였다. 실용주의 정신과 동포애적 우애가 강하게 느껴졌다. 필자의 친구도 필자에게 대만과 중국이 서로 화교를 우대하니 자신과 함께 방학 중에 중국을 다녀오자고 하였었다. 필자의 친구와 같은 화교들은 한국과 중화문화권을 연결시켜주는 다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가슴에 맺힌 한이 얼마나 쌓여있는 지 이제라도 풀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어디에서 낳고 자랐는가가 왜 그리 중요한가? 그 자리에서 열심히 터전을 일구어 자유롭고 부강한 살고 싶은 도시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중요하지 않을까? 그 고장에서 낳고 자란 인연을 지연, 학연, 혈연과 연결하여 배타와 거세의 무기로 사용하면서 잘사는 곳을 만들려고 한다면 가능한 일인가? 우려하고 경계해야 할 일이지 않을까? 아직도 한 지역에서 나서 자라 바로 옆 고을로 시집장가를 가 외부로 나가 사는 일이 드믄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이동이 많지 않은 한국 사회에서 의식의 변화를 주문하는 것은 시기상조인가? 몽테스키외의견해에 의거하여 생각해본다면 지역에 연고가 없는 사람은 도덕적으로 더 견실하고, 보다 열심히 일하여 인정받으려고 하므로 그 사회가 부유하고 잘 유지되도록 한 몫을 한다. 고향은 어린 시절 함께 정을 나누며 지난 세월이 곰삭은 추억이 되어 어렵고 힘들 때 잠시 되돌아 삶의 활기를 찾아주는 윤활유의 기능만으로 충분해야지 그리워서 못견뎌 수십년 살던 땅을 버리고 돌아가는 곳이 된다면 그 개인에게도 또 그 지역에게도 좋은 일일 수는 없을 것이다. 고향을 절절히 느끼고 살지는 않지만 아직도 그 자리에서 살고계시는 친정부모님과 친지들, 어린 시절의 필자를 기억하는 이웃과 못 본지 30년이 되었어도 만나자마자 얼굴을 알아보는 친구들이 있는 곳에 대한 편안함과 그리움으로 세계 속의 도시로 뻗어나가려는 필자의 고향을 바라보며 보다 더 성숙되게 발전하기를 기원해 본다. 널리 인재를 구해야지 협소함과 지리멸렬함에 갇혀서 웅비의 꿈을 접지 않기를, 또한 세계 유수의 도시를 경쟁상대로 무한발전하기를 바라며 희망을 적어보았다.
오늘 아침 뉴스시간에 좋은 소식을 듣게 됩니다. 울산 모비스가 2006~2007 현대모비스 프로농구 통합 챔피언에 등극했다는 소식입니다. ‘울산 모비스’는 저가 울산여고에 있을 때 울산여고 강당에 와서 연습을 하기도 하고 고등학생들과 일반인들에게 농구를 가르쳐주는 팀이기 때문에 관심이 많은 팀입니다. ‘울산 모비스’는 지난 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 서울 삼성에 한 번도 이기지 못하고 4전 전패를 당했던 수모를 털어내며 명실상부한 한국 프로농구의 강팀으로 우뚝 섰습니다. 이번 우승이 더욱 빛나는 것은 특급 선수 없이 모든 선수들이 한마음으로 이루어 낸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학교에서도 선생님들이 한마음이 되어 학생들을 잘 이끌어간다면 가장 좋은 학교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늘은 안개가 많은 아침입니다. 안개가 끼일 때마다 운전을 하기가 불편해 안개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안개가 대한 생각이 달라집니다. 방해만 놓는 안개가 아니라 몸과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안개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촉촉한 느낌이 듭니다. 시원한 느낌이 듭니다. 신선한 느낌이 듭니다. 신비를 가져다줍니다. 호기심을 가져다줍니다. 미래를 가져다주기도 합니다. 오늘은 날씨가 맑고 좋겠구나 하는 예측을 가져다주기도 합니다. 오늘은 3일간 중간고사가 있는 날입니다. 중학생이라 그런지 고등학생들처럼 긴장감이 좀 떨어집니다. 공부하는 분위기도 좀 떨어집니다. 늦게까지 공부하는 학생도 볼 수 없습니다. 일찍 와서 공부하는 학생도 보기가 드뭅니다. 중학생들은 중간고사가 바로 고입이나 대입에 바로 연결이 되지 않기 때문에 그런지 시험에 대한 인식도 다른 것 같습니다. 오늘 아침은 학생들에게 평가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해 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번 평가가 지금까지 배운 것에 대한 자기 수준의 확인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의 위치가 어디인지 점검해 보는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의 실력이 어느 정도 되는지 파악해 보는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이 공부하는 방향이 옳은지 점검해 보는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이 공부습관이 옳은지 점검해 보는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의 공부양이 적당한지 점검해 보는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발전이 있을 것 아닙니까? 그래야 기초가 다져질 것 아닙니까? 그래야 한 단계 더 높이게 될 것 아닙니까? 그래야 공부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할 것 아닙니까? 그래야 옳은 방향으로 방향을 수정할 것 아닙니까? 그래야 공부습관을 고칠 것 아닙니까? 그래야 공부 양을 조절할 것 아닙니까? 내가 반에서 몇 등이고, 내가 전교에서 몇 등이고 하는 것을 알기 위해 평가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평가는 자신이 스트레스 받고 부모님이 스트레스 받도록 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나에게 어떤 병이 있어 우리의 건강을 해치는지 알기 위해 피검사, 혈압검사 등 각종 검사를 정기적으로 하듯이 나에게 어떤 문제가 있어 학력향상에 장애가 되고 걸림돌이 되고 있는지 나의 공부상태가 건강한지를 점검하고 알아보기 위해 과목마다 정기적으로 평가를 하는 것임을 알고 진지하게 평가에 임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선생님들은 학생들의 평가에 대한 자세가 좀 더 진지했으면 합니다. 평가에 대한 준비도 좀 더 철저했으면 합니다. 좀 더 정확한 평가가 될 수 있도록 애를 써야 할 것입니다. 공정한 평가가 되게 해야 합니다. 감독도 철저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학생들의 평가 자료를 토대로 그 동안 수업에 대한 자기반성이 있어야 합니다. 수업방법에 대한 것도 검토해 보아야 합니다. 수업기법에 대한 것도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학습 자료투입에 대한 것도 검토해 보아야 합니다. 학생들의 수준도 잘 파악해야 합니다. 조금 전 평가 담당 부장선생님께서 메신저로 선생님들에게 부탁하는 메시지가 왔습니다. 그걸 소개함으로 마무리하려 합니다. ****** 부탁합니다 ***** 수고많겠습니다. 힘들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o^~♬(*^o^*) 부정행위가 적발되면 해당학생의 피해뿐만 아니라 징계 등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부정행위가 사전에 예방이 될 수 있도록 정위치에서 감독 철저히 해주시기 부탁합니다. 교실감독, 복도감독교사는 부정행위 적발보다는 예방에 최선을 다해주시기 부탁드립니다. *담임교사 1. 부정행위 방지를 위해 강력한 훈화 해주시기 바랍니다. 2. 칠판에 재적현황(응시, 결시, 결시사유 구분) 기록해주시기 바랍니다. 3. 핸드폰 수거 해주시기 바랍니다 4. 5열 8석 기준으로 책상을 돌려서 배열해주시기 바랍니다. 5. 복도쪽 창문과 교실출입문을 개방해주시기 바랍니다.(복도감독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감독교사 1.감독은 정위치에서 해주시고 타종이 울리면 퇴실해주시기 바랍니다. 2.반드시 결시자카드를 작성해주시고, 카드매수가 재적수와 일치되는지 반드시 확인 날인 후 카드 제출해주시기 바랍니다. 3.복도감독교사도 보조감독으로서 성실한 감독 부탁드립니다. 4.문제지 봉투도 재활용할 수 있도록 반납해주시기 바랍니다. 교육은 평가입니다.
괴산군 청천면 사담리에 있는 해발 857m의 백악산(白岳山)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크고 작은 바위들이 많아 100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산으로 불린다. 사람들이 즐겨찾는 낙영산, 공림사, 옥양동, 청화산, 조항산과도 가깝다. 자연미를 그대로 간직해 산 자체가 아름다운 백악산은 충북과 경북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어 충북의 대방리나 경북의 입석리에서 등산을 시작할 수 있다. 대방리 코스는 천연기념물 망개나무 자생지와 계곡의 맑은 물 때문에 요즘 등산객들이 즐겨 찾는다. 사담리 앞 냇가에서 등반의 피로를 풀기에도 좋다. 사담리의 낙영산과 공림사 입구에서 화북 방향으로 800여m 거리에 왼쪽으로 대방리 가는 길이 있고, 포장도로 가까이에 작은 주차장과 등산안내도가 있다. 비포장도로라 웃대방리까지는 승용차 통행이 어려운 구간이 몇 군데 있다. 이곳에서 등반을 시작하거나 차로 5분정도 올라가 대방리 삼거리에 차를 주차시키고 북동쪽으로 길을 따라가면 중대방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오른쪽 길로 10여분 가면 본격적으로 산행이 시작되는 웃대방리다. 건물 밖에 등산객들을 미소 짓게 하는 조형물이 서있는 식당이 끝집이다. 식당 뒤로 돌아서면 길옆에 큰 바위가 우뚝 서있는데 바로 곰바위다. 곰바위에서 가까운 곳에 학골재와 수안재의 갈림길이 있다. 오른쪽 수안재 방향으로 향하면 낙엽송 조림지를 지나고 작은 폭포도 만난다. 가벼운 마음으로 뒷동산에 오르는 느낌이 들만큼 등반길이 평탄하다. 30여분 오르면 수안재 안부 사거리에 도착한다. 입석리에서 오르더라도 옥양동을 거쳐 이곳으로 오고, 낙영산과 백악산으로 가는 갈림길 역할도 한다. 오른쪽 능선을 타고 오르면 잘 다듬어진 바위 위에 부처 바위가 남쪽을 바라보고 점잖게 앉아 있다. 자세히 보면 머리가 없는 부처바위인데 더 올라가서 내려다보면 그 모습이 뚜렷하다. 부처바위에서 능선을 따라 올라가면 커다란 바위가 앞을 가로 막는데 침니를 이룬 바위 틈새로 길이 나 있다. 침니바위에서 30여분 능선을 타면 대왕암과 백악산의 갈림길이 있는 819m봉에 도착한다. 왼쪽으로 10여분 가면 발가벗은 돔형 바위가 모습을 드러내고 그 뒤로 백악산이 보인다. 돔형바위는 멀리서 보는 것과 다르게 쉽게 오를 수 있다. 한군데 세미클라이밍 코스만 오르면 넓은 정상이 나타난다. 바위 자체가 깊은 트랙을 형성하고 있는 돔형바위 정상에서의 조망은 백악산 등반의 꽃이다. 사방이 탁 트인 정상은 어느 한 곳 막힌 곳이 없고 한번에 수십 명이 앉아서 쉴 수 있을 만큼 넓다. 바로 옆에서 바라보고 있는 백악산 정상을 비롯해 북서쪽의 낙영산, 동쪽으로 청화산ㆍ조항산ㆍ대야산ㆍ중대봉, 남쪽으로 속리산 천황봉으로 연결되는 연봉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신선이 따로 없다. 돔형바위 정상은 사람들을 신선으로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다. 든다. 이곳에 앉아 여유를 누리는 사람들이 바로 신선이다. 돔형바위를 떠나 40여분이면 정상에 선다. 정상 바로 전에 만나는 바위군도 등반길을 재미있게 한다. 정상은 길이가 20여m 되는 기차바위, 의자처럼 생긴 의자바위, 개구리처럼 생긴 개구리바위가 삼각형을 이루고 있다. 의자바위는 밑에 10여명이 비를 피할 수 있는 굴이 있다. 정상은 남쪽의 조망이 좋지 않아 속리산의 연봉들이 보이지 않고 오래 머물 만큼 주변 경치가 아름답지도 않다. 대방리로의 하산은 왔던 길을 10분쯤 되돌아 내려와 왼쪽 계곡으로 내려가면 된다. 중대방리로의 하산은 819m봉으로 되돌아 간 후 왼쪽으로 가면 나타나는 대왕암으로 간다. 대왕암 위에서 돔형바위와 백악산 정상을 바라보고 조금 내려오면 헬기장이다. 능선 길을 따라 내려오다 보면 건너편 절벽으로 돌아앉은 부처바위 주변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구경할 수 있다. 훗날 세조가 된 수양대군의 딸이 단종의 왕위를 빼앗으려는 아버지의 음모를 발설했다가 쫓겨난 후 숨어 지냈다는 석굴이 옥양폭포 북쪽의 기암절벽 위에 있고, 경북 입석리와 이웃하고 있는 충북 삼송리에는 왕송으로도 불리는 용송이 있으며 화양구곡과 선유동계곡도 가깝다. [교통안내] 1. 중부고속도로 증평 IC→청천→사담리 2. 경부고속도로 청주 IC→미원→청천→사담리 [등산안내] 산행시간 : 약 6시간 1. 대방리→웃대방리→수안재→819봉→돔형바위봉→정상→계곡갈림길→도계주능선→안부삼거리→대방리 2. 대방리→웃대방리→수안재→819봉→돔형바위봉→정상→819봉→대왕봉→헬기장→중대방리→대방리
요즘 뉴스 보기가 겁난다. 교사의 학생지도에 불만을 품은 학부모가 언제 학교로 달려와폭력을 행사할 지 모르는 세상이 되었다. 교사가 학부모로부터 폭행을 당했다는 소식은 이제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 뉴스로 변했다. 국민들도 '그런 일이 있었나 보다'하고 무덤덤하게 대한다. 위정자들이 교육자를 홀대하니까 학부모, 학생도 덩달아 선생님을 깔보고 제멋대로 함부로 대한다. 부모들은 자식 교육이 망가지는지 모르고 위정자들은 국가의 미래가 어두컴컴해지는 줄도 모르고 자기 앞날만을 생각하고 있다.과연 우리나라 교육의 현주소는 어디에 와 있고 우리나라는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학교본관 계단 좌우에 있는 스테인레스 기둥.망가진 것이 한 두개가 아니다. 학생들이 장난으로 잡아 당겨서 부서질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발로 힘차게 억지로 걷어차면 부서져 나간다. 그러니까 일부러 부순 것이다. 학교 기물 망가진 것은 이 뿐만 아니다. 화장실 변기, 유리창, 출입문 등이 매일 부서져 나간다. 수리비만도 엄청나다. 학생들이 왜 이런 일을 저지를까? 학교에 불만? 선생님에 불만? 아니면 공부에 불만이 있어서? 세상사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학원공부에 스트레스가 쌓이고 돌파구가 없어서? 그도저도 아니면 기본생활이 제대로 안 되어 있어서?시험기간 중 실내를 순회하면서복도와 계단에 있는 껌과 껌종이, 사탕껍질, 휴지뭉치 등이 수십개다. 10분 동안 주운 것이 음료수 종이 박스로 가득 찬다. 학교교육을 학부모가 앞장서 망치고 있다. 제 자식 잘못을 나무랄 줄 모르고 책임을 교사에게 뒤짚어 씌운다. 잘못한 자식을 감싸고 돈다. 그것이 자식을 위하는 길인 줄 착각에 빠져 있다. 식당 등 다중 이용시설에서질서를 어지럽히는 어린이를 바로 잡다가는 어른들 싸움이 되기 십상이다. 자식의잘못된 기(氣)를 살려 무엇에 쓰겠다는 것인지? 학교 사랑이 나라 사랑이라는 것을 지도해야 한다. 요즘 잘못된 세태 탓인지 '애국'이라는 말이 사라져가고 있다. 학교에 늘상 있었던 월요일 애국조회가 사라진지 오래되었다. 학생 조회를 아예 갖지 않는 학교도 많다. 국가 정체성 교육이 엉뚱하게 매도되고 있는현실이라면 지나친 말일까? 가정교육도 문제다. 부모는 돈벌이에 바쁘고 그 돈은 자식들 억지 공부 뒷바라지에 몰아다 넣으면서 그것이 부모의 도리인 줄 안다. 잘못된 부모의 양육 태도가 아닐까?어떻게 하는것이 자식을 사랑하고 진정으로 위하는 길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시점이다. 잘못된 자식 사랑은 자식을 망치는 것이다. 교육의 양축은 학교 선생님과 가정에서의 부모라고본다. 선생님과 부모가 자녀의 올바른 성장을 위해 힘을 합쳐야 한다. 부모가 선생님을 존경할 때 교육은 바로 서는 것이다. 선생님이 잘 나서 하는 말이 아니다. 훌륭한 부모는 제대로된 자식교육을 위해 선생님의 험담을 하지 않는다. 가정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학교교육도 바로 설 수 없는 것이다.
화창한 봄날씨에 나들이하기 참 좋은 계절이다. 주말이면 봄철의 행락객들로 인근의 유원지나 공원등이 붐빈다. 이런 좋은 계절이지만 학생들에게는 여유가 없다. 바로 요즈음이 각급학교의 중간고사 기간이기 때문이다. 우리학교도 한창 중간고사가 진행중이다. 조금의 여유도 없이 꽉 짜여진 일정대로 움직이는 것이 학생들이다. 시험때만되면 복통이나 두통을 호소하는 학생들도 여럿 보인다. 성인들이나 청소년들이나 가릴것없이 시험에 대한 부담감은 대단한 모양이다. 학생들이 시험공부에 열중일즈음에 우리반 아이들에게 슬그머니 문자메시지를 보낸다. 내용은 이렇다. '잠을자면 꿈만꾸고 공부하면 그 꿈을 이룬다.' 핸드폰이 좀 오래되어서 한꺼번에 보낼 수 있는 메시지는 20명이다. 우리반 학생이 모두 39명이니 두번에 걸쳐 보내야 한다. 39명 모두에게 핸드폰이 있는 것은 아니다. 정확히 31명이 가지고 있다. 보통의 경우보다 다소 많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 이유는 여학생들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39명중 여학생이 26명, 남학생이 13명이다. 부모들은 보이지않게 아들보다는 딸 걱정을 더 하는 모양이다. 여학생들은 26명 전원이 핸드폰을 소지하고 있다. 메시지를 보내고나면 바로 반응이 온다. '예, 잘알겠습니다'부터 '지금 학원에서 쩔어 있어요. 잠잘 시간 어차피 없어요.' '우리 담임선생님 최고,,,,,' '저는 잠을자도 꿈을 안꾸던데요'까지 반응은 다양하다. 거의 절반정도의 학생들은 답메시지를 보내온다. 그만큼 학생들은 늦은 시간임에도 자는 경우보다는 시험공부에 매달리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래도 더러는 그 다음날이 되면 잠자느라 선생님 문자 아침에 봤다는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있다. 아직도 학생들의 순수한 모습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 다음날에도 또한번 보낸다. '돈 많으면 걱정되지만 공부많이하면 누구에게 빼앗기지 않는다.'라는 메시지를 보내면 또 반응이 제각각이다. '그렇군요. 공부한 것은 빼앗길 염려가 없군요.ㅎㅎ' '정말그러네요. 열심히 할께요.' '선생님 저는 돈이 없어요.' 등이다. 모바일시대에 핸드폰을 적절히 활용하는 좋은 방법이 아닌가 싶다. 때로는 지난해에 담임했던 녀석들이 '왜 저희들 한테는 메시지 안보내세요. 선생님 변한것 같아요.'라는 이야기를 종종 하기도 한다. 그럴때에는 그날 저녁에 지난해 아이들한테도 문자메시지를 보내게 된다. 그러면 '역시 우리선생님 최고'라는 답메시지가 온다. 학생들은 혼자이지만 리포터는 많은 학생들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처음에는 문자 한건당 30원씩 부가되는 문자를 보냈다. 한달에 문자요금만 평균 1만5천원에서 2만원가량 나왔다. 시험때 뿐 아니라 평소에도 반 아이들의 동태를 살피는데는 문자메시지가 최고이다. 학교에서 뭔가 우울해 보였던 녀석에게는 저녁시간에 문자를 보낸다. 그러면 마주보고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솔직히 털어 놓는다.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요즈음 학급의 분위기를 파악하는데도 최고의 역할을 한다. 몸이 아파서 조퇴한 학생에게도 저녁때 문자를 보낸다. 어느정도 회복되었는지 바로 알수 있어 좋다. 학생들은 공부를 하다가 질문이 있으면 바로 문자를 보낸다. 그에대한 답을 해주다보면 보통 5-6통의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때로는 학부형들에게도 문자메시지가 온다. 간단한 문의사항들을 담고있다. 이런사정때문에 문자요금이 많이 나오는 것이다. 이러다가는 안되겠다싶어 통신사에 문의해서 문자정액제로 요금제를 바꿨다. 한달에 8,000원을 추가하면 500건까지 문자를 무료로 제공해 주는 요금제이다. 요금제를 바꾼 후로는 문자요금이 훨씬 줄어 들었다. 마음놓고 학생들과 대화할 수 있어 아주 편리하다. 이렇게 이용하기도 하지만 더 큰 위력을 발휘할 경우도 있다. 가끔 중요한 내용을 잊고 종례시간에 놓치는 경우가 있다. 그럴경우 문자를 보내면 매우 효과적이다. 인터넷 메신저를 이용하기도 하지만 그때마다 모두 접속이 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따라서 문자만큼 인터넷메신저는 효과적이지 못하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이 100%옳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로인해 학생들이 필요이상으로 집에서 핸드폰을 사달라고 하거나 핸드폰을 과신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핸드폰이 없는 학생들에 대한 소외감을 가져올 수도 있다. 그런 문제점이 있지만 그래도 있는 것을 활용한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 측면도 많다. 어쨌든 모바일시대에 핸드폰을 충분히 활용하는 것은 실보다는 득이 더 많다는 생각이다.
안순일 광주시교육감은 스승의 날(5월 15일)을 변경하려는 교육계 일각의 움직임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혔다. 안 교육감은 1일 시교육청 직원 전체회의에서 "최근 스승의 날을 변경하거나 폐지하자는 등 논란이 일고 있는데 대해 참으로 우려스럽다"며 "스승의 날을 그대로 유지해 스승의 참 뜻을 새길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말했다. 안 교육감은 "5월 15일은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의 탄생일"이라며 "스승의 날을 5월 15일로 정한 것은 세종대왕이야말로 겨레의 스승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스승이 존경 받을 수 있도록 교직원 모두 모범을 보여야하며, 우리사회 구성원 모두 스승이 존경받을 수 있는 풍토를 만들어 줘야한다"고 덧붙였다.
논문을 대필시키고 대필자를 교수로 임용했다는 의혹을 받아 온 대구교대 강현국 총장이 사직서를 제출키로 했다. 대구교대는 현재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한 건강악화로 대구 동구 모 병원에 입원 중인 강 총장이 학교 사무국 직원을 통해 2일 교육인적자원부에 사직서를 제출한다고 1일 밝혔다. 대구교대는 강 총장의 사직서가 수리되는대로 총장임용추진위원회를 구성해 후임총장 후보를 선정, 교육부에 추천한다는 방침이다.
4월이 지나갔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T.S 엘리엇이란 시인이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개인의 이혼 같은 내면세계와 더불어 어려운 시대상황을 결부지은 시 "황무지"에서 표현한 가장 잔인한 달 4월이 지나갔다. 이제 계절은 바야흐로 계절의 여왕이라 불리는 5월로 접어들었다. 달력을 펼치자마자 보이는 것이 5월 1일 ‘근로자의 날’이라는 글자다. ‘어라. 노동절이라는 말은 많은 들어 봤는데 지금까지도 생경한 근로자의 날이라?’ 애초 노동절은 일제시대인 1923년 5월1일 우리나라 최초로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전국 규모의 노동절 행사를 열었고, 그 전통은 해방 뒤까지 계속됐다고 한다. 그런 것이 이승만 정권과 미군정때 “잔인무도한 공산정권과 같은 날에 행사를 치를 수 없다”는 이유로 3월10일(대한노총 설립일)로 바꾸었고, 한술 더 떠 박정희 군사독재정부는 그 이름도 현행과 같은 ‘근로자의 날’로 바꿔 1994년까지 이른 것이다. 그나마 문민정부가 들어섬에 따라 1994년 5월1일 우리나라 노동자들이 전 세계의 노동자들과 함께 노동절을 지키게 되기까지 100년 이상의 세월이 걸린 셈이다. 그러나 현행법상 5월1일의 명칭은 아직도 '근로자의 날'이다. 기념 일 날 하루 쉬면되는 것이 이름 하나 바꾼 것이 그리 중요한가라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알고 있다. 단어 하나에 녹아들어가 있는 그 오묘한 언어의 진리를. ‘백성’이라는 중세시대의 수동적인 단어 대신 근대화된 개념의 ‘국민’을, 시절이 민주화되어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개념인 ‘민중’이라는 단어를 스스럼없이 사용하고 그런 개념으로 불리어지기를 바랄 것이다. 고분고분 시키는 대로 열심히 일하는 수동적인 '근로자'만 필요했던 박정희 정부의 개발독재를 위시한 잘못된 정부가 우리에게 남긴 상처는 그렇게 깊다. '참여정부'가 그 작은 흔적조차 지우지 못한 데에는 ‘공부 안 하면 공장가서 공돌(순)이 된다’는 말이나, ‘공장가서 미싱할래 대학가서 미팅할래’라는 우리 사회에 그릇되게 만연된 '노동'에 대한 몰이해 현상이 교실의 급훈까지 침투하도록 한 몫 했을 것이다. 이런 사례는 굳이 전교조 결성때 거론되었던 이상한 이데올로기인 ‘聖職인 선생님이 무슨 노조냐?’라는 말과 그 궤적을 같이한다. 한때는 산업역군이라고 치켜세우며 살인에 가까운 야근과 잔업을 밥 먹듯 시켰던 그 공돌(순)이와 같은 부류로 전락하여 그렇게 창피했다는 말인가? 전문계고에서 근무하는 교사들이 전문계고 학생들에게 무슨 말을 양심껏 해줄 수 있겠는가? 사회현실을 도외시한 채 교과서적인 얘기를 한다면 정보화 사회에 수많은 정보를 들었던 그 아이들이 사회가 가르치는 거짓된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런 이상한 논리는 지금까지도 횡행하고 있다. ‘국민의 녹을 받는 공무원이 무슨 노조냐’부터 ‘철밥통이라 배가 불렀다’는 비아냥거림까지 고스란히 듣고 있으니 말이다. 이른바 ‘무노조 경영’이라는 타이틀로 일류기업을 이끈다는 소리를 듣는 국내 굴지의 삼성기업이 있다. 이에 대해 어떤 노동전문가는 무노조 경영이 일류 기업을 이끌었다기 보다는 일류기업이라는 자부심과 그에 상응하는 다른 기업 보다 나은 노동조건이 그 결과물을 얻지 않았나 말한다. 그러므로 노동조건이 그 업체 보다 못할 경우에는 그 신기루는 언제나 사라지고 노동자들이 새로운 탈출구를 모색하는 일이 발생할 것이다. 이런 사례는 삼성 계열사인 이마트와 삼성SDI 등의 여러 계열사에서 노조를 만들려다가 회사 측의 위치추척 등 협박과 한 가정을 파괴하는 살인적인 손배소에 못 이겨 좌절된 사례를 볼 수 있다. 위와 같이 노동자가 노동한 것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는 황금만능주의 시대에 제대로 된 노동의 가치를 알려주기 위해서는 노동과 사회현상에 대한 올바른 교육이 초등학생 때부터 필요하다. 유럽이나 선진국에서는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노동교육과 사회현상에 대한 교육이 정규 교과목으로 편성되어 있다고 한다. 이 커리큘럼에는 노사간 협상 실습, 노사관계 까지도 들어 있다고 하니 부러움을 느낀다. 이런 체계적이고 비판적인 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사회를 올바르게 보는 눈을 가지는 것이다. 오히려 우리나라처럼 고등학교까지는 무비판적인 학생으로 사육되다가 대학교에 들어가서 극단적인 이론과 이념으로 무장하게 만드는 사회적 괴물을 낳게 하는 사회풍토는 어떤가? 지하철 파업때 우리나라 대부분의 언론들이 노조에 보낸 적대적인 시각과 짜증내는 시민들의 모습을 연이어 방송한 것과 달리, 프랑스 언론은 프랑스 철도 파업때 성숙한 시민들이 노동자들의 요구조건을 이해하고 지지한다는 똘레랑스 정신을 방송한 사례는 많은 것을 가르치고 있다. 이것이야 말로 지식인이 아닌 지성인을 키우는 교육의 힘이 아니었을까?
인천성지초(교장 류기상)는 5.1일 새로 조성된 인조 잔디운동장에서 인천시장 및 교육감 등 지역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어린이날 기념 운동회 겸 ‘인조잔디 운동장 개장식을 가졌다. 성지초는 지난 2006년 11월 학부모들이 인조잔디 운동장 필요성을 제기하자 국민체육진흥공단에서 2억8천만원, 지자체(시청)에서 1억2천만원 등 총4억원의 사업비를 지원받아 운동장에 인조잔디와 육상트랙을 설치, 5개월만인 지난 20일 공사를 마무리 오늘 준공식을 겸한 어린이날 기념 체육대회를 가졌다. 한편 성지초등학교 류기상교장은 인조잔디구장 개장을 계기로 전천 후 학생들의 체력증진과 체육수업 환경개선은 물론, 지역주민들의 체육공간으로써 큰 역할을 해 신흥 명물로 자리 매길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날로 증가하는 새터민(탈북) 학생들의 학교 적응을 돕기 위해 학력 인정 방식이 변경되고 교육보호 담당관제가 신설된다. 교육부는 수학연한 기준인 새터민 학생들의 학력인정제도를, 수학연한 뿐만 아니라 능력과 연령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방식으로 변경할 계획이라고 1일 밝혔다. 현재 초중등교육법시행령에는 ‘외국 또는 군사분계선 이북지역에서 6년 이상의 학교교육과정을 수료한 자’만이 초등학교 졸업학력을 인정받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인민학교(4년)를 졸업하고 해외에서 2년 이상 체류한 새터민 학생이 초등학교 5학년으로 편입해 나이 어린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면서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게 교육부 설명이다. 지난 1년간 새터민 중,고교생의 중도 탈락률은 각각 10.1%와 12.8%로 이는 2005학년도 일반 중,고교생 중도탈락률 0.8%, 1.4%에 비해 10배가량 많은 수치다. 올 4월 현재 새터민 초중고교생은 모두 602명으로 지난해(444명)에 비해 35.6% 늘었다. 교육부는 또 새터민 학생들의 학교생활을 돕기 위해 교원이나 퇴직교원을 교육보호담당관으로 지정해 서울 노원·양천·강서구 등 새터민 청소년 밀집지역에 시범 실시키로 했다. 아울러 기초생활수급자가 아닌 새터민 학생 200명에게도 1년 30만원 상당의 방과후 학교 수강권을 지급할 계획이다.
광주지역 초.중.고등학생 4명 중 1명 가량은 쉬는 토요일(매월 둘째주.넷째주 토요일, 일명 놀토)에 부모 등 보호자 없이 지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1일 광주시교육청에 따르면 지난 4월9-13일 초.중.고등학교 15개교 학생 1만1천445명을 대상으로 주5일 수업에 따른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놀토에 집에 부모 등 보호자가 있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25.4%가 "없다"고 답했다. 부모의 주5일 근무 실시 여부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34.8%가 "실시하지 않는다"고 답했고, 32.6%는 "실시한다"고 대답했다. 이어 "월1회 실시한다"(7.0%), "월2회 실시한다"(18.7%), "월3회 실시한다"(6.9%) 등으로 조사돼 아직까지 주5일 근무제가 완전히 정착되지 않았음을 보여줬다. 이에 따라 일선 학교의 격주 토요일 휴무제로 인한 학생들의 놀토 선용방안과 특히 초등학생 저학년생들의 보호대책 등에 대한 가정과 학교의 지도가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다. 쉬는 토요일 실시 전.후 학력에 변화가 있느냐는 질문에 59.3%는 "변화없다"가 답했고, 33.0%는 "신장됐다", 8.0%는 "저하됐다"고 각각 응답했다. 쉬는 토요일 효과에 대해서는 38.0%가 "과중한 학습부담에서 탈피해 여유를 확보했다"고 답했고, 이어 "체험학습 기회가 확대됐다"(23.7%), "자기주도에 따른 학습능력이 신장됐다"(21.3%), "가정교육 기능이 확대됐다"(8.3%) 순으로 대답했다. 한편 이번 설문조사 결과, 학생 대다수(87.2%)가 놀토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도교육청이 교육인적자원부의 지방교육혁신평가에서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일 도 교육청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교육부가 지방교육혁신, 재정운영성과 등 5개 분야에 걸쳐 시지역과 도지역으로 나눠 실시한 전국 16개 시.도교육청 대상 지방교육혁신평가에서 9개 도지역 교육청 가운데 경기도교육청이 종합순위 6위를 차지했다. 이는 인근 수도권 광역 교육청인 서울시교육청과 인천시교육청이 7개 시지역 교육청 중 종합순위 2, 3위를 차지한 것과 비교되는 결과다. 도 교육청의 분야별 평가결과를 보면 학교정책.현안정책.지방교육지원.평생학습진흥 등 국가주요정책 Ⅰ과 Ⅱ 분야에서 4위와 3위를 차지했으나 혁신역량 등을 평가하는 지방교육현신 분야와 예산편성의 합리성.재정운영성과 등을 따지는 재정운영성과 분야, 고객만족도 분야에서는 모두 하위권인 7위를 차지했다. 이 같은 평가결과에 따라 도지역 평가 1위를 차지한 경남도교육청은 교육부로 부터 177억여원의 특별교부금을 받은 반면 경기도교육청은 이보다 훨씬 적은 95억여원을 받는 데 그쳤다. 도 교육청은 평가항목이 다소 달랐던 2005년 평가에서도 혁신과제 분야에서는 도 지역 1위를 차지하고 핵심교육분야에서도 4위를 차지했으나 혁신역량 분야와 재정운영 분야에서는 9개 도 교육청중 8위를 차지했다. 특히 민원서비스 등 교육행정서비스 만족도를 평가하는 고객만족도 분야에서는 최하위인 9위로 나타났다. 도 교육청 관계자는 "지역도 방대하고 학교수.학생수가 전국 최다 규모를 보이면서 갖가지 민원이 많아 고객만족도 등 전체적인 평가결과가 좋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며 "올해는 더욱 분발해 좋은 평가를 받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다만 재정이 열악한 상황에서 대규모 신도시가 계속 생겨나 발생하는 신설학교 문제 등 경기도 지역의 특수상황을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도시 속으로 떠나는 환경테마여행’은 서울 및 수도권 내 4~6학년 초등학생 35명을 선발하여 5월부터 10월까지 주말(주로 놀토) 및 여름방학에 체험환경교육 캠프(창단식, 수료식 포함 - 총 2회), 수도권 내의 자연생태탐사(총 2회), 기초환경시설 견학 및 조사활동(총 2회)을 지속적으로 실시하여 우리가 살고 있는 수도권 지역의 자연 생태와 환경기초시설들을 활용하여 모둠별 활동을 통해 환경체험교육을 실시할 것입니다. 관심있는 청소년들의 많은 참가를 바라겠습니다. ○ 교육기간 : 2007년 5월 ~ 10월 중 주말(주로 놀토) 및 여름방학 ○ 주 최 : (사)한국환경교육협회 ○ 후 원 : 국가청소년위원회 ○ 교육장소 : 환경체험교육 캠프 - ‘환경체험학교’ (충남 연기군 소재) 자연생태탐사, 기초환경시설 견학 및 조사활동 - 서울 및 수도권 환경기초시설 ○ 참가대상 : 서울 및 수도권 지역 초등학교 대표 4~6학년 35명 ○ 신청기간 : 2007년 5월 11일(금) 18:00까지 ○ 참 가 비 : 무료(단, 국가청소년위원회 방침에 의해서 참가약정금 30,000원 부담) ※ 참가약정금은 최종 선발이 된 후, 별도의 안내에 따라 납부함 ※ 참가약정금은 전체 예산에 편성되어 사용되므로, 반환하지 않음 (중도 탈락시에도 반환하지 않음) ○ 선발기준 - 서울 및 수도권 지역 초등학교 4~6학년 중 학교장의 추천 확인을 받은 학생 - 주말과 여름방학 때 실시할 교육 일정에 지속적으로 참가할 수 있는 학생 - 단, 학교장 추천자가 정원 35명을 넘을 경우에는 [참가신청서] 상의 ‘내가 꼭 참가하여야 하는 이유’, ‘봉사활동 여부’ 등을 보고 서류심사하여 선발함 ○ 참가신청방법(모든 서류는 팩스 02-571-2882로 접수하신 후 확인전화 요망) - 참가신청 및 추천확인서 : www.greenvi.or.kr -> ‘공지사항’에서 다운받으신 후, 작성해서 학교장 추천과 보호자 확인 - 자기소개서 : 자유양식으로 글 A⁴1장 내 ○ 기 타 : 모든 교육 종료 후 소정의 교육시간(80% 이상)을 이수한 참가자에게 수료증 및 자원봉사확인서(해당 부분), 체험활동확인서 등 발급 가능 ○ 참가문의 : Tel 02)571-1195, 018-288-4367 (담당 : 태원섭) / 이메일 79youth@hanmail.net
(사)한국환경교육협회는 2007 서울특별시 체험환경교육 프로그램 "흙에서 배우는 아이들" 을 진행합니다. 본 프로그램은 서울시 초등학생 4-6학년40명을 선발하여 총 4회(각 1박 2일) 의 농촌을 방문, 농촌체험활동(농산물 재배, 민속놀이 등) 을 통해 아이들에게 자연 과 건강한먹거리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 줄 것입니다.관심있는 청소년들의 많은 참가 바랍니다. ▶ 주최/주관 : 서울특별시 / (사)한국환경교육협회 ▶ 기간 / 횟수 : 2007년 5월 ~ 10월 / 총 4회(각 1박 2일) ▶ 프로그램 장소 : 삼기마을 일대(충남 연기군 고등리 소재) - 2006년 농림부 녹색농촌마을로 지정 ▶ 참가 대상/선발인원 : 서울 지역 초등학교 대표 4~ 6 학년 / 총 40명 선발 ▶ 프로그램 내용 5월 ∘ 체험환경교육 : 환경보전과 농업의 중요성, 밤의 세계로의 맨발 탐사 ∘ 농촌체험활동 : 옥수수, 여름 과채류 아주심기 등 ∘ 전통문화체험 : 풀피리․버들피리 만들기 6월 ∘ 체험환경교육 : 건강한 먹거리와 친환경 농업의 중요성, 지렁이 화분만들기 ∘ 농촌체험활동 : 김매기, 채소 솎기 및 김매기 ∘ 전통문화체험 : 창포물 머리감기/봉숭아 물들이기 9월 ∘ 체험환경교육 : 녹색서울만들기, 수질오염검사 ∘ 농촌체험활동 : 김장채소 아주심기 및 김매기 ∘ 전통문화체험 : 전통놀이(제기차기, 자치기, 널뛰기 등) 10월 ∘ 체험환경교육 : 지속가능한 발전, 소감문 발표회 ∘ 농촌체험활동 : 고구마 캐기, 김장채소 가꾸기 등 ∘ 전통문화체험 : 솟대(진또배기) 만들기 ▶ 신청 기간 : 2007년 4월 18일(수) ~ 5월 11일(금) 18:00 까지 ▶ 참 가 비 : 무료 (단, 서울시 방침에 의해 참가약정금 30,000원 부담) ※ 참가약정금은 본 프로그램 3회이상 참여시 반환함. ▶ 선발기준 ○ 서울지역 초등학교 4~6학년 중 학교장의 추천 확인을 받은 학생 우선 선발 ○ 단, 학교장 추천자가 정원 40명을 넘을 경우에는 [참가신청서] 상의 ‘참가 이유’, ‘봉사활동 여부’ 란에 기재한 내용을 토대로 서류 심사하여 선발 함 ▶ 참가신청 방법 : 본 협회 홈페이지(www.greenvi.or.kr) 첫 장 우측에 있는 [자료실] 게시판에서 소정의 양식을 다운로드 받아 작성한 후 E-mail 로 전송 ▶ 참가자 발표 : 2007년 5월 14일(월) 본 협회 홈페이지 [공지사항] 게시판에 발표. ▶ 접수 및 문의처 : 전화 02)571-1195, 016-477-2842 담당 :박효인 / E-mail : p9957011@empal.com
5월 첫날 보슬비가 내립니다. 가정의 달인 5월을 축복하는 듯합니다. 가정가정 축복의 단비가 내리는 것 같습니다. 5월은 가정의 달이요 행복의 달입니다. 가정의 어려운 일이 많아도 행복했으면 합니다. 자라나는 자녀들로 인해 행복했으면 합니다.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소망스런 자녀들 때문에 기쁨을 찾는 달이 되었으면 합니다. 학교도 마찬가지입니다. 5월은 행복의 달이 되었으면 합니다. 저는 어제 교무실에서 선생님들에게 5월은 학생들로 인해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저가 행복 메이커로 나서겠다고 했습니다. 어제 저녁 부장 식사모임 때는 교무부장 선생님께 과제를 하는 내겠다고 했습니다. 뭐냐고 하기에 어떻게 하면 선생님들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겠는지에 대한 좋은 안을 여러 선생님들에게 물어서 10가지 정도 만들어 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정말 선생님들에게 만족을 주고 기쁨을 주고 만족을 주고 행복을 줄 수 있도록 고민해 보겠다고 했습니다. 실제 그러하도록 할 것입니다. 사소한 관심과 배려부터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교장이 선생님들에 대한, 교직원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없다면 선생님들이 어찌 행복해질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면서 오늘 아침은 교육은 관심이구나 하는 생각에 젖게 됩니다. 관심이 있으면 보입니다. 관심이 없으면 보이지 않습니다. 관심이 있으면 더러운 곳이 보입니다. 관심이 없으면 더러운 곳이 보이지 않습니다. 관심이 있으면 낙서한 곳이 보입니다. 관심이 없으면 낙서한 곳이 보이지 않습니다. 관심이 있으면 버려진 음료수 캔이 보입니다. 관심이 없으면 버려진 음료수 캔이 보이지 않습니다. 관심이 있으면 주민들이 버려둔 쓰레기도 보입니다. 관심이 없으면 주민들이 버려진 쓰레기가 보이지 않습니다. 관심이 있으면 골마루에 버려진 휴지가 보입니다. 관심이 없으면 골마루에 버려진 휴지가 보이지 않습니다. 관심이 있으면 유리창의 손자국이 보입니다. 관심이 없으면 유리창의 손자국이 보이지 않습니다. 관심이 있으면 교실 뒷부분의 정리가 되지 않는 것이 보입니다. 관심이 없으면 교실 뒷부분이 어지럽게 되어 있어도 보이지 않습니다. 관심이 있으면 골마루 화분이 보이지만 관심이 없으면 골마루에 있는 화분이 보이지 않습니다. 관심이 있으면 들립니다. 관심이 없으면 들리지 않습니다. 관심이 있으면 학생들이 욕설하는 것이 들립니다. 관심이 없으면 학생들이 욕을 해도 들리지 않습니다. 관심이 있으면 조례시간에 훈화도 들립니다. 관심이 없으면 들리지 않습니다. 관심이 있으면 부장선생님들의 전달사항도 들립니다. 관심이 없으면 부장선생님들의 전달사항도 들리지 않습니다. 우리 선생님들은 관심이 있는 쪽입니까? 반대쪽입니까? 특히 학생들에 대한 관심은 어떠합니까? 자주 바라보는 것이 자주 관심을 갖는 것 아닙니까? 학생들의 두발상태를 자주 바라봅니까? 학생들의 복장상태를 자주 바라봅니까? 학생들의 언어상태를 자주 바라봅니까? 학생들의 공부하는 상태를 자주 바라봅니까? 자주 바라보고 계시다면 관심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지만 자주 바라보지 않는다면 관심이 없거나 적다는 증거입니다. 관심은 대단한 힘을 발휘합니다. 자라나는 식물도 농부가 관심을 가져주면 힘을 얻습니다. 탄력을 얻습니다. 쑥쑥 성장합니다. 생기를 얻습니다. 날마다 변화합니다. 학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관심을 받은 학생은 쑥쑥 성장합니다. 날마다 변합니다. 날마다 힘을 얻을 것입니다. 날마다 탄력을 받을 것입니다. 날마다 생기가 넘쳐날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녀에게 관심을 가져주면 힘을 얻듯이 내가 맡은 학생들에게 관심을 가져주면 분명 힘을 얻을 것 아닙니까? 어떤 분은 관심 가운데서도 집중된 관심이 사랑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자녀를 사랑하듯이 형제자매를 사랑하듯이 나에게 맡겨진 학생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되면 자연히 관심을 집중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나에게 맡겨진 학생들에게 집중적으로 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 집중해서 생각했으면 합니다. 말 안 듣고 애 먹이는 학생들에게 집중적으로 관심을 가져야죠. 집중해서 생각해야죠. 그렇게 관심을 보이고 사랑을 보이면 학생과 선생님은 생각도 하나가 되고 마음도 하나가 되고 행동도 하나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학생도 힘을 얻게 되고 선생님도 힘을 얻게 될 것이며 나아가 학생도 웃게 되고 선생님도 웃게 될 것입니다. 교육은 관심입니다.
“고구려, 7년여의 격전 끝에 나·당연합군에 대승해 나라를 보전하다.” 안타깝지만 사실은 정반대로 전개되었다. 고구려는 당과 신라에 패해 668년(보장왕 27)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더불어 넓은 만주 또한 우리 민족의 생활무대에서 거의 벗어나 버렸다. 고구려가 나·당연합군을 물리쳤을 경우 오늘날 동북아시아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동북공정(東北工程, ‘동북변강역사여현상계열연구공정(東北邊疆歷史與現狀系列硏究工程)’의 약어)’이란 낱말은 무슨 공업화 프로젝트를 연상시키지만 실로 무서운 작업이다. 중국은 근래에 해괴하기 이를 데 없는 엉뚱한 일을 벌이고 있다. 5만여 고구려 유민이 세운 발해를 슬금슬금 자국 역사에 편입시키더니 급기야 고구려까지 자국 역사로 만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중국은 우리나라가 강릉 단오제를 유네스코 ‘인류 구전(口傳) 및 무형문화재 걸작’으로 등록하려 하자 단오절이 중국의 전통 명절임을 내세워 문화약탈이라 비난하고 나섰다. 2004년 7월 1일 중국의 쑤저우[蘇州]에서 열린 28차 세계유산위원회(WHC)는 결국 중국과 북한의 고구려 유적을 나란히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켰다. 평양 동명왕릉 등 진파리 고분 15기, 평양 호남리 사신총과 호남리 1-16호분 등 고분 34기, 평안남도 대동군 덕화리 1-3호 고분, 강서 삼묘·덕흥·약수리 고분과 용강대총 및 쌍영총, 안악 1-3호 고분이 등재된 북한 소재의 고구려 유적들이다. 오녀산성·국내성·환도성 등의 왕궁과 태왕릉과 장군총 등 왕릉 13기, 각저총·무용총·장천 1, 2, 4호 고분 등 귀족묘 26기와 광개토왕비 등 43건이 등재된 중국 소재의 고구려 유적이다. 더불어 중국의 언론들은 세계유산위원회의 결정 후 고구려가 중국의 지방정부였음을 재강조하고 나섰다. 로마제국의 후예 이탈리아가 스페인·터키·프랑스 등을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 않듯이 고구려의 후예이기도 한 우리도 간도를 제외한 만주를 우리 땅이라고 우기지 않는다. 다만 고구려는 백제·신라와 함께 우리 조상이 세운 나라였고, 천만번 당연하지만 따라서 고구려 역사는 우리 역사의 한 부분이라는 것일 뿐이다. 탈취, 탈취하지만 역사탈취라니? 별일도 다 있는 세상이 되었다. 아무리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관계라지만 역사는 마음대로 바꾸고 어쩌고 할 수 없는 엄연한 객관적 실체 아닌가? 부끄러워 버리거나 숨기고 싶어도 버리고 숨길 수 없는 것이 역사고 탐나서 뺏고 싶어도 빼앗지 못하는 것이 역사 아닌가? 고구려 동북아 정세 변화 못 읽어 한반도 북부와 만주일대를 통치한 고구려는 유목·농경·해양 문명을 고루 갖춘, 참으로 대단한 나라였다. 한강유역을 중심으로 신라·백제와 겨루기도 했지만 5세기엔 중국 남북조와 더불어 동북아시아 4강 체제를 이루었고 6세기말 7세기 초에는 중국의 수·당과 대결했다. 도대체 당이 어떤 나라였는가? 당은 중국 역사상 가장 광대하고 강력한 세계제국이었다. 그런 당나라, 더욱이 전성기 당나라에게 치욕을 안겨준 고구려가 아니었던가? 주지하듯이 영양왕의 고구려는 요하를 건너 요서를 공략했다(598). 수나라의 문제가 보복공격에 나섰으나 실패하자 이번에는 양제가 100만으로 일컬어지는 대군으로 침공했다. 요동성 공격이 여의치 않자 양제는 평양을 겨냥해 30만 별동대를 투입했지만 청천강에서 을지문덕의 고구려군에게 참패했다. 어디 그뿐인가? 수를 이은 당의 태종은 대당(對唐) 강경파 연개소문이 득세하자 대군을 투입하여 요동성을 함락한 후 안시성으로 쳐들어왔지만 양만춘의 고구려군은 이번에도 그들에게 패배의 쓴맛을 보게 했다. 중원을 통일한 당나라의 최전성기를 연출한 야심만만한 태종이었지만 고구려를 당해낼 수 없었다. 그러나 고구려는 불행하게도 당의 위상을 현실적으로 고려해 유연한 외교를 펴지 않는 등 변화하는 동북아시아 정세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 쿠데타를 일으켜 영류왕을 제거하고 영류왕의 조카(보장왕)를 옹립한 연개소문은 당과의 관계에서 강경책을 고수했다. 사실 태종이 당나라의 황제로 즉위하기 이전까지만 해도 고구려와 당의 관계는 대결로만 치닫지는 않았다. 당이 건국되자 영류왕은 사신을 파견하는 등 친선을 도모했다(619). 당 고조는 고구려-수 전쟁이 남긴 포로의 교환을 제의했고, 고구려는 1만명의 중국인 포로를 귀국시켰다. 뿐만 아니라 영류왕은 624년에도 당에 사신을 보내 역서(曆書)를 얻는가 하면 당은 영류왕을 ‘상주국 요동군공 고구려 국왕(上柱國 遼東郡公 高句麗 國王)’으로 봉했다. 625년에 신라와 백제가 당에 사신을 보내 고구려가 조공을 방해하며 자주 침공한다고 고해 고구려와 당 사이에 외교적 문제가 발생했을 때도 영류왕은 세자를 당에 파견하고 자제들을 당에 유학 보냈다(640). 하지만 당나라 태종은 즉위 이후 줄곧 고구려 침공을 노렸다. 수가 당한 패배를 되갚을 겸 요동으로 영토를 넓히기 위함이었다. 동(東)돌궐을 평정하고 천산산맥 남쪽의 서역을 장악해 실크로드를 확보하고 토번을 회유하는 데 성공한 태종은 고구려 침공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641년에 진대덕이란 자를 파견하여 고구려를 정탐케 한 태종은 고구려와 백제의 공격에 시달리던 신라의 선덕여왕이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당의 출병을 요청한 643년에 결국 고구려 침공을 결심했다. 그때 태종은 고구려에 사신을 보내 백제와 연합해 신라를 공격하지 말 것이며, 만약 당의 권고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출병하여 징벌하겠다고 통고했다. 물론 연개소문은 당 태종의 위협을 일축하고 오히려 당의 사신을 구금시키는 등 한발도 물러서지 않았다. 위에서 지적했듯이 당나라 태종은 644년에 대군을 직접 지휘해 고구려를 공격했다. 당군은 요하를 건너 요동성을 비롯해 몇 개의 고구려 성들을 함락시켰으나 안시성에서 크게 패해 회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의 대군은 작은 산성에 불과한 안시성을 하루에도 6, 7회 공격하는 등 60여 일 동안 집요하게 포위·공격했으나 고구려군은 완강히 저항했고 결국 성을 지켜내었다. 647년에 재침하는 등 태종은 그 후에도 몇 차례 고구려에 재침했으나 번번이 패하고 말았다. 외환(外患)보다 무서운 내우(內憂)로 무너져 한편 한강유역을 장악한 이래 줄곧 당나라와의 친선교류를 위해 노력해 온 - 사실 그 때문에 결국 삼국통일을 실현시켰지만 - 649년에 태종을 이어 고종이 즉위한 후 신라는 대당외교를 더욱 강화했다. 고종 역시 두 차례나 고구려 공격에 실패한 후 신라와의 관계를 강화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신라는 백제에게 신라-백제 국경지대의 요충지 대야성을 빼앗겼는가 하면 방어선을 낙동강까지 후퇴시켜야 했다. 위기에 처한 신라의 김춘추는 고구려를 찾아가 원조를 요청했으나 연개소문이 오히려 한강유역의 반환을 요구해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에 김춘추는 당을 방문해 양국이 연합해 백제를 공격기로 하는 합의를 이끌어내었고, 양국의 연합군은 합의한 데로 660년에 백제를 협공했다. 소정방이 이끈 당나라군은 백강(금강)을 거슬러 올라오며 공격하고 김유신의 신라군은 현재 대전의 동쪽인 탄현을 넘어 공격했다. 계백이 지휘한 백제의 결사대가 황산(현재의 연산)에서 패하고 수도 사비성이 함락되자 웅진(공주)으로 몸을 피했던 의자왕은 결국 항복했다(660). 백제를 제거한 신라와 당은 다시 고구려 공격에 나섰다. 보장왕 20년(661), 소정방의 당군이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와 평양을 공격했다. 연개소문의 고구려군은 초기엔 힘겹게나마 당군을 막아냈고, 그리하여 소정방의 당군은 다음해에 퇴각했다. 하지만 불행스럽게도 방어력은 날로 무디어가고 적군의 공격은 역으로 강화되었다. 당시 고구려는 거듭되는 전쟁에 국력이 낭비되었을 뿐만 아니라 가장 무서운 적인 ‘내분’에 빠져들었다. ‘내우외환’이라지만 내우야말로 흔히 외환을 불러와 나라를 멸망으로 이끌지 않는가? 백제를 정복한 나·당의 다음 목표가 고구려임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일이었으되 고구려는 상하가 결속해 방비를 튼튼히 하기는커녕 안타깝게도 더 심한 내분으로 치달았다. 주지하듯이 연개소문 사후 내분은 결국 고구려를 반신불수로 만들었다. 그의 장남 남생은 아우인 남건에 패해 국내성으로 도주해 당에 항복했고 동생 연정토는 신라에 투항했다. 역사는 고비마다 반역자를 마련해 두지만 마라톤전으로 유명한 2회 페르시아전쟁 때 한동안 아테네를 통치한 히피아스가 페르시아군의 길 안내자로 나섰듯이 남생 또한 당나라군의 길 안내자로 나섰다. 당의 이적은 남생의 안내를 받으며 총공격을 감행했고 때맞추어 신라군도 출동했다. 고구려 굳건했다면 동북공정은 없어 고구려가 내분에 휩싸이지 않고 부국강병한 국가로 남아있었더라면, 동돌궐 정복 후 동북아시아 제패를 시도하던 당과 유연한 외교를 폈더라면, 혹은 청천강과 안시성 전투처럼 661∼668년에도 나·당군을 꺾었더라면 오늘의 한국은 어떠할까? 물론 신라의 통일도 그것대로 평가받아야겠지만 신라에 의한 통일 이후의 우리 역사와는 사뭇 다를 것이다. 무엇보다도 한국은 한반도와 만주 일대를 영토로 하는 동북아시아의 대국으로 존재할 것이다. 또 멀게는 임진왜란도 병자호란도 없었고 가까이는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지도 남북으로 분열되지도 6·25가 일어나지 도 않았을 것이다. 또한 남만주에 흩어져 있는 고분을 비롯해 고구려의 빛나는 문화유산을 첨성대나 미륵사지 석탑처럼 언제든지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퉁거우에 있는 장군총의 위용, 삼실총 벽화 공성도·12호분의 숨막히는 기마전도·무용총의 기마상 등등. 모두가 우리 조상의 늠름한 기상과 뛰어난 솜씨를 자랑하는 귀중한 문화재다. 중국은 얼마 전부터 동북공정 작업의 일환으로 각각 약 2억 8천만원과 1억 4천만원을 투입해 발해와 고구려의 유적을 보수·정비했다. 중국은 그 후에도 3조원도 더 투입한 동북공정을 통해 만주의 사람·역사·문화 모두를 중국화하려 해왔다. 위에서 지적했듯이 만주에 흩어져 있는 고구려의 문화재들이 결국 유네스코에 의해 중국이 남긴 인류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지만, 만약 고구려가 이겼더라면 동북공정이니 고구려의 중국역사화 등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일 텐데 말이다. 중국이 이른바 동북공정을 무리하게 추진하면서 만주의 역사와 사람이 중국에 속한다고 주장하는 깊은 의도는 무엇일까? 혹 만주가 역사적으로 자기들의 영토임을 기정사실로 함으로써 한반도, 특히 북한에 대한 현재나 미래의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것일까? 아니면 간도지방에 대한 우리의 주장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원려(遠慮)의 소산일까? 간도는 청나라와 조선이 1712년에 합의해 세운 백두산정계비가 말해주듯이 우리의 영역임에도 을사보호조약으로 외교권을 빼앗은 일본이 중국에 넘겨주어 현재에 이르지 않았는가? 지금 중원에서 기세 좋게 피어오르는 패권주의(覇權主義)의 끝은 어디일까? 고구려에 대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게 한다. 고구려가 내분에 휩싸이지 않고 부국강병한 국가로 남았었더라면, 동돌궐 정복 후 동북아 재패를 시도하던 당과 유연한 외교를 폈더라면, 혹은 청천강과 안시성 전투처럼 661~668년에도 나·당 연합군을 꺽었더라면 오늘의 한국은 어떠했을까? 무엇보다 한국은 한반도와 만주일대를 영토로 하는 동북아의 대국으로 존재했을 것이며 동북공정처럼 중국의 역사왜곡도 없었을 것이다. 진원숙 대구 계명대 사학과 명예교수(문학박사)로 인문대학장을 역임했다. 마키아벨리와 국가이성, 증보 서양사산책, 서양사 이야기1, 2, 뒤집어 읽는 역사 이야기 55, 주니어를 위한 역사 이야기, 시민적 휴머니즘과 인간·역사·과학, 십자군, 성전과 약탈의 역사, 서양 근대사 1500∼1815 등 여러 권의 저서와 역서 외에 수십 편의 논문을 집필했다.
“조용, 조용, 우리 아가. 아무 말도 하지 마라. 아빠가 너에게 앵무새를 사줄게. 만약 앵무새가 노래를 부르지 않으면 아빠가 너에게 다른 걸 사줄게… 응, 뭐가 좋을까…유럽?” 미국의 한 칼럼니스트는 빌 게이츠가 자신의 딸 제니퍼에게 자장가를 불러주는 장면을 상상하며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세계에서 돈이 제일 많은 갑부에 대한 일종의 조크인데, 기분이 참 묘하다. 빌 게이츠의 재산이 50조 정도 되는데, 그 돈이면 아마도 조그만한 나라 정도는 살 수 있을 것이다. 빌 게이츠가 가난한 집 출신에 자수성가한 사업가로 오해하는 이들도 있으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빌 게이츠는 대은행가인 미국 서부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윌리엄 H. 게이츠 2세는 워싱턴주립대 법대를 나온 변호사로 시애틀에서 법률회사를 경영했으며 주(州) 변호인협회 회장이었다. 할아버지는 대은행가였고 증조부는 시애틀은행인 내셔널시티뱅크(National City Bank)의 설립자로 시애틀시가 생겨날 때부터 시민들로부터 존경받을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그의 어머니는 시애틀 은행가의 딸로 워싱턴대학교의 사무처장을 지냈다. 특히 그의 어머니는 자선사업가로 시애틀의 사교계를 주름잡을 만큼 활발한 활동과 폭넓은 인간관계를 맺고 있고 자선단체의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빌 게이츠는 3대에 걸쳐 시애틀 최고 명문가였고 지금은 세계 최고 갑부가 된 것이다. 이름도 대물림하고 있다. 할아버지는 윌리엄 게이츠 시니어, 아버지는 윌리엄 게이츠 주니어, 그리고 빌 게이츠는 윌리엄 게이츠 3세가 원래 이름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아들이 이름이 같다는 것은 가문에 대한 자긍심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아들은 아버지의 정신을 존중할 수 있어야 그 이름에 흠이 가지 않도록 더 열심히 살 것이기 때문이다. 가문에 대한 자부심이 없다면 오히려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물려준 이름이 부담스럽거나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돈 잘 쓰는 방법을 더 고민하는 가문 빌 게이츠가 최근에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영보다 세계적인 ‘자선사업가’로 더 활동하고 있는 것은 이미 3대에 걸쳐 돈에 대한 모든 것을 소유했기 때문인지 모른다. 증조할아버지는 은행을 설립할 정도로 막대한 돈을 소유했고 할아버지도 그랬다. 빌 게이츠의 아버지는 돈뿐만 아니라 변호사로서 사회적 명예도 얻었다. 그야말로 3대에 걸쳐 재물과 명예를 모두 얻은 것이다. 빌 게이츠는 증조부나 할아버지, 아버지 등 3대가 이룬 부와 명예보다 더한 것을 이루고 있다. 4대째 빌 게이츠는 이제 자신의 선조들이 못다 한 세계적인 자선사업가로 나서고 있는 것이다. 이미 빌 게이츠에게 돈은 어떻게 버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잘 쓰느냐에 있는 것이다. 티베트의 라마승의 이야기기인 영화 ‘삼사라(Samsara)’를 보면 주인공은 스승에게 이런 말을 한다. “5살 때부터 중이 된 나에게 또 무엇을 버리라고 하십니까. 뭘 가져보지도 못했는데 무엇을 버리라는 것입니까.” 이는 재물이든 결혼이든 가져보거나 경험해본 후에 그에 대한 미련을 접을 수 있다는 말이다. 빌 게이츠가 돈에 대해 미련을 두지 않는 것은 그의 가문이 더 이상 돈에 연연하지 않을 만큼 대대로 부자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하겠다. 돈벼락을 맞을 정도로 부자가 되어보지 않고서는 결코 돈에 대한 욕심을 버릴 수 없다. 예컨대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철강재벌의 아들이었는데, 그는 부모가 엄청난 재산을 상속해주자 돈이 싫다면서 형에게 그 돈을 주고 평생 유유자적하게 살았다. 또 케임브리지대 교수직도 마다하고 노르웨이의 시골에서 보냈다. 그의 철학은 돈을 돌같이 본데서 나왔다고 할 수 있다. 평생 돈을 벌려고 직장을 전전했다면 그는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달리 말하면 은행가 가문인 빌 게이츠 집안은 돈에 대한 갈증이 더 이상 없다고 할 수 있다. 세계적인 갑부가 아직도 돈에 대해 미련을 두고 있다면 그것 또한 난센스일 것이다. 이제 게이츠 가문은 더 높은 곳을 지향하고 있다. 즉, 이제는 돈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골몰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빌 게이츠를 미국의 저명인사들이 대통령 후보로 추대하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세계 최고 갑부이지만 가난한 이웃들을 위해 자선사업가로서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부자의 전형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역사상 빌 게이츠와 같은 인물이 다시 나타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빌 게이츠는 자녀를 키우는 모든 부모들에게도 우상이 아닐 수 없다. 빌 게이츠는 그야말로 공부를 잘 할 뿐만 아니라 비즈니스에도 탁월한 세계 최고의 CEO이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공부만 잘하는 아이가 최고였지만 이제는 공부만 잘하다가는 평생 부모 속을 태울 수 있다. 요즘은 공부도 잘하고 ‘이재’에도 밝아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1978년 찍은 11인의 마이크로소프트 창립멤버. 아래 맨 왼쪽이 빌 게이츠, 맨 오른쪽이 폴 앨런. 그렇다면 오늘날 빌 게이츠는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첫째, 돈에 대한 부모자녀 간의 원칙 공유를 꼽을 수 있다. 만약 빌 게이츠가 ‘부자 아버지’에 의지했다면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해도 성공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부자 아버지’ 의지않고 사업 키워 빌 게이츠 아버지가 한번은 기자들로부터 “당신 아들이 아버지로부터 많은 재산을 상속받을 수 있었더라도 지금처럼 열심히 노력했을 거라고 생각하나?”라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말했다. “만약 빌 게이츠에게 많은 재산을 상속해 주었다면 아들은 아마 마이크로소프트를 세우지 못했을 것이다. 그 애가 아주 안락한 환경에서 자랐다면, 지금처럼 의욕을 갖고 사업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부족한 것을 느끼지 못하고 자라면 새로운 것에 도전하려는 의욕이 적어지기 마련이다. 빌 게이츠 아버지는 부자였지만 아들에게 창업자금마저 주지 않았다. 빌 게이츠 또한 부자 아버지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 아닐 수 없다. 빌 게이츠는 자기의 재산 가운데 99%를 자선사업에 사용할 계획이라고 한다(대부분 집안에서 재산의 99%를 사회에 환원한다고 하면 필시 큰일이 일어날 게 뻔하다). 빌 게이츠를 있게 한 두 번째 요인으로는 ‘두 명의 똑똑한 친구’를 들 수 있다. 빌 게이츠는 레이크사이드 중·고와 하버드대에서 만난 두 명의 친구 덕분에 컴퓨터 황제에 오를 수 있었고 세계 최고의 갑부가 될 수 있었다. 특히 두 친구는 빌 게이츠의 단점을 완벽하게 보완해준 똑똑한 친구들이었다. 빌 게이츠는 시애틀의 사립명문인 레이크사이드에 다녔는데, 여기서 컴퓨터광인 폴 앨런을 만나 컴퓨터를 알게 되었다. 폴 앨런은 빌 게이츠에게 컴퓨터에 눈을 뜨게 해준 친구로 1975년 마이크로소프트를 함께 창업했다. 또 하버드대에서 만난 스티브 발머(현재 마이크로소프트의 CEO) 덕분에 마이크로소프트를 세계 최고의 회사로 만들 수 있었다. 빌 게이츠는 어릴 시절 부잣집 아들답게 모난 성격으로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기도 했다. 그는 특히 돈에 관심이 많아 컴퓨터 기술로 백만장자가 될 궁리를 일찌감치 했다. 특히 그는 많은 친구를 사귀지 못했지만 한 번 사귀면 깊게 사귀는 편이어서 주변에 자신의 일을 도와 줄 충직한 친구들을 둘 수 있었다. 그의 운명을 결정한 동반자를 만난 곳은 다름 아닌 레이크사이드 중·고와 하버드대이다. 명문학교에서 만난 똑똑한 친구들 덕분에 빌 게이츠가 오늘날 컴퓨터 황제에 올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친구와 함께 컴퓨터 황제 올라 빌 게이츠의 인생에서 만난 최고의 친구는 먼저 고등학교에서 만난 2년 선배인 폴 앨런이다. 폴 앨런은 그때 이미 게이츠보다 훨씬 컴퓨터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이들은 컴퓨터를 직접 조립하면서 앞으로 소프트웨어 사업에 매진해야겠다는 확신을 가졌다. 고교시절의 이러한 경험으로 그들은 몇 년 후인 20살에 사업의 동반자로 다시 만나게 됐다. 빌 게이츠는 하버드대, 폴 앨런은 워싱턴주립대를 중퇴하고 1975년에 마이크로소프트를 만든 것이다. 그는 폴 앨런이 컴퓨터와 컴퓨터 칩에 대해 가르쳐주기 전까지만 해도 장차 아버지처럼 변호사가 되거나 과학자가 될 생각을 품고 있었다. “우리가 아직 십대였을 때, 폴 앨런은 나에게 컴퓨터 하드웨어에 관해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마이크로프로세서에 목숨을 걸라고 격려해주었다. 나는 참으로 운이 좋았다. 그토록 젊은 나이에 친구 때문에 내가 사랑할 수 있고 나를 완전히 매혹시키는 무언가를 발견했으니 말이다.” 빌 게이츠는 폴 앨런을 만난 것을 최대 행운이라고 말한다. 빌 게이츠의 부모님은 빌 게이츠를 될수록 질문하기를 권장하는 분위기 속에서 크도록 했다. 질문을 잘했던 빌은 폴에게 “가솔린이 어떻게 차를 움직이느냐”고 물었다. 그는 아주 재미있게 머리에 쏙쏙 들어오게끔 요령 있게 설명해주었다. 이들이 우정을 맺게 된 것은 가솔린에 대한 게이츠의 호기심 때문이었다고 게이츠는 말한다. 호기심이 많은 아이였던 빌 게이츠가 선배와 같은 아이에게 질문을 했고 그 질문을 잘 설명해주자 이들은 둘도 없는 친구 사이가 되었던 것이다. 그게 이들을 사업동반자로 만들었고, 세계적인 갑부가 되게 한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게이츠와 앨런이 각각 60%, 40%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데, 창업한 지 11년 후인 1986년에 주식시장에 상장되면서 이들은 억만장자가 된다. 빌 게이츠의 나이 31살 때이다. 앨런은 아직 미혼으로 세계 갑부 서열 4위이다. 앨런은 건강이 좋지 않아 마이크로소프트를 떠났는데, 현재는 스티븐 스필버그와 영화사업을 하면서 미국 프로농구단과 미식축구단 등을 운영하며 자선사업가로 살아가고 있다. 또 공상과학박물관을 설립하는가 하면 우주에 대한 연구 및 투자에도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다. 수학영재였던 게이츠는 대학에 들어갈 때 하버드대뿐만 아니라 프린스턴, 예일대에서 국립 장학금으로 입학 허가를 받기도 했다. 하버드를 선택한 그는 그곳에서 스티브 발머를 만난다. 그는 게이츠에게는 폴 앨런에 이어 그의 운명을 결정지은 두 번째 친구가 된다. 하버드대 시절에 풋볼팀 선수에 문학잡지 편집장, 교내신문 기자로 활동하던 스티브 발머는 같은 기숙사에서 빌 게이츠와 만나 인연을 맺었다. 빌 게이츠가 법학과에 들어갔다 수학과로 전과를 했지만 1학년 때 학업을 그만둔 것과 달리, 발머는 하버드대를 졸업했다. 졸업 후 회사에 취직해 일하던 발머는 다시 스탠포드대에서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받았으며, 1980년 친구 게이츠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들여 마이크로소프트에 입사했다. 빌 게이츠 회장이 모든 비밀을 털어놓을 정도로 가까운 친구 사이인 발머는 영업력이 떨어지는 게이츠 회장을 대신해 지난 20여 년간 판매 영업을 담당했고 2000년에 최고경영자에 올랐다. 신문을 통해 관심분야 넓혀 오늘의 빌 게이츠를 있게 한 세 번째 요인을 꼽는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책과 신문이었다. 빌 게이츠는 매일 한 시간 이상 책을 읽는 습관을 유지해오고 있는 독서광으로 잘 알려져 있다. 또 날마다 신문과 잡지를 읽는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요즘 신문을 안보는 추세다. 하지만 빌 게이츠의 충고를 들어보면 신문은 관심분야를 넓혀주는 ‘지식의 창고’ 역할을 한다. 빌 게이츠는 “우선 신문을 보면 또 어떤 기사가 중요하고 덜 중요한지 뉴스가치를 통해 세상을 보는 안목을 기를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온라인을 통해 관심 있는 기사만 읽는다면 읽기 전이나 읽은 후의 자신은 조금도 달라진 점이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신문을 통해 기사를 읽으면 자신의 관심분야 이외의 기사도 자연스럽게 시야에 들어오고 흥미 있는 기사를 읽게 된다는 것이다. 그게 신문의 장점이라고 빌 게이츠는 말한다. “최소한 나는 일주일 동안의 신문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빼놓지 않고 읽는다. 신문이 나의 관심분야를 넓혀주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과학면이나 경제면 등 관심이 있는 기사만 읽는다면 읽기 전이나 읽은 후의 나는 조금도 달라진 점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모든 기사를 다 읽는다.” 컴퓨터황제인 빌 게이츠이지만 그는 컴퓨터가 책을 완전히 대체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책이 사람으로 하여금 애착을 느끼게 하는 장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두 아이들에게 컴퓨터를 갖게 하기 전에 먼저 책을 갖게 해주었다고 한다. 이는 부모들이 마음속에 새겨놓아야 할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그가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해 세계 제일의 갑부가 될 수 있었던 것으로 은행가 가문출신답게 이재에 관심이 컸던 것을 꼽는다. 빌 게이츠가 부자집에서 태어났지만 돈에 대한 관심으로 일찍 비즈니스에 눈을 떴다. 고등학교 때 회사에 다니기도 했던 것이다. 빌 게이츠는 1972년에 여름방학 동안 국회에서 사무보조원으로 봉사활동을 했다. 한 국회의원 후보가 공천에서 떨어지자 게이츠는 그 후보의 선거 캠페인 배지를 개당 5센트에 사들였다. 이 배지는 곧 수집가들의 애호품이 되어 개당 25센트에 되팔았다. 또 빌 게이츠와 친구 폴 앨런은 회사에 취직해 근무하기도 했다. 이 회사에서 게이츠는 폴 앨런과 함께 회사의 급료지불기록 프로그램을 만들어주기로 계약을 하고 성공적으로 끝내 큰돈을 벌었다. 게이츠는 집으로 돌아와 다시 공부를 해 18살인 1973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당시 그는 컴퓨터광에 수학교사보다 더 수학계산을 잘하는 수학천재로 평가받았다. 그는 학교의 추천으로 하버드대에 들어갔다. 결국 아이가 빌 게이츠처럼 자라기를 바란다면 무엇보다 아이에게 결코 큰 돈을 줄 생각을 하지 말아라. 반면에 돈에 대해 부모와 자녀 간에 원칙을 공유하라. 똑똑한 친구를 사귀게 하고, 책과 신문을 읽어라. 이것이 빌 게이츠의 오늘을 만든 비결이다. 이러한 원칙들은 쉬운 것 같지만 결코 쉽지가 않다. 빌 게이츠가 말한 다음의 문장은 세상을 밝혀주는 가장 아름다운 글이 아닐까. “현명하게 돈을 쓰는 것은 돈을 버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궁극적으로 나는 내 돈의 대부분을 내가 믿는 대의를 위해 사회에 환원할 것이다. 그리고 한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 자식들에게 많은 돈을 남겨주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을 위해서 그다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덴마크의 외진 시골 마을에 청교도적인 신앙의 목사와 그의 딸들인 ‘마르티나’와 ‘필리파’ 자매가 살고 있었다. 세속을 멀리하고 다만 구제와 말씀 그리고 예배 모임만을 삶의 전부로 알았던 자매의 아버지는 신앙을 이유로 딸들의 사랑이나 결혼을 허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가르침에 자발적으로 순종했던 자매는 오히려 이를 기쁨으로 받아들인다. 여성으로서의 삶이 전해주는 일체의 즐거움이나 기쁨도 경험해 보지 못한 채, 평생을 신에 대한 헌신과 이웃에 대한 봉사 속에 살아온 두 여인의 일상에 어느 날 작은 파문이 일어난다. 1871년 비바람이 몰아치던 어느 밤, 초라한 몰골의 지쳐 쓰러질 것 같은 한 프랑스 여인이 그들을 방문한 것이다. ‘바베트’라는 이름의 그녀는 필리파가 젊은 시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랑의 감정을 느꼈던 오페라 가수 ‘아킬’의 편지를 가지고 있었다. 내용인즉 프랑스에서 내전이 일어나 남편과 자식을 잃은 여인이니, 부디 그녀를 받아들여 달라는 것이었다. 모든 재정을 봉사하는 일에 써야 했던 자매는 바베트를 요리사로 고용할 여력이 없었지만, 아무런 조건 없이 다만 머물기를 간청하는 그녀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한다. 인간은 결국 이기적 욕망의 노예일 뿐 이렇게 자매들과 함께 생활하는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바베트는 검소하고 숭고해 보이는 삶이 마치 매일 계속되는 말린 생선과 약간의 빵을 넣어 끓인 멀건 죽처럼 무미건조한 일상으로 가득 차 있음을 발견한다. 뿐만 아니라 겉으로 순박하고 경건한 듯 보이던 평온한 마을 사람들 사이의 관계도 실상은 오랜 시간 동안 켜켜이 쌓여온 서로를 향한 서운한 마음, 증오와 분노, 질투 등의 감정들로 점철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도시의 때가 묻지 않은 시골이나 오지의 사람들이 탈속한 천사와 같은 심성을 가졌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낭만주의적 감상에 빠진 일부 도회지 사람들의 상상에 불과하다. 어느 시대, 어느 문화권에 살아갈지라도 인간은 인간이다. 이기적인 욕망에 쉽사리 유혹되고 넘어지는 연약한 인간일 뿐이다. 두 자매는 찬양과 기도로써 이러한 불화를 가라앉혀 보려 애쓰지만, 이미 근본부터 깨져 버린 마을 사람들의 관계는 점점 도를 더해만 간다. 그러던 어느 날 바베트에게 복권에 당첨되었다는 놀라운 소식이 전해진다. 프랑스를 떠나 있는 대신 고국을 잊지 않기 위해 친구에게 매년 사주기를 부탁했던 복권이 당첨되었다는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자매는 이제 1만 프랑의 상금으로 부자가 된 바베트가 고국으로 돌아갈 것이라 생각하고 근심에 잠긴다. 그동안 그녀는 자매들의 삶은 물론 마을 전체에 있어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상금을 받은 바베트는 한 가지 엉뚱해 보이는 부탁을 한다. 작고하신 목사님을 기념하는 만찬을 자신의 솜씨와 비용으로 준비하게 해 달라는 것이다. 그것도 프랑스 요리로 말이다. 만찬 준비는 몰라도 그 비용까지 감당하게 할 수 없다는 두 자매의 만류에도, 바베트는 지난 세월 간의 처음이자 마지막 부탁이므로 들어줄 것을 간청한다. 결국 자매는 그녀의 청을 수락하고 바베트는 식재료를 구하기 위해 14년 만에 프랑스로 돌아간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베트는 외진 마을 사람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진귀한 식재료들과 함께 돌아온다. 최고급 포도주와 각종 새와 짐승들, 그리고 거대한 거북이에 이르는 낯선 식재료들에 충격을 받은 자매는 악몽에 시달리기까지 하면서 그녀의 만찬 준비를 걱정스런 마음으로 지켜본다. 근심스런 것은 두 자매뿐만이 아니다. 온 마을 사람들은 한데 모여 사악한 음식을 먹게 될지도 모른다며 걱정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리고 모두가 맹세하기를 음식에 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바베트를 생각해서 혀를 악물고 부정한 재료로 만든 음식을 삼키기는 하겠지만, 결코 그것을 감탄하거나 칭찬하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프랑스 정식으로 준비되는 만찬은 아이러니하게도 마을 사람들이 다시 의기투합하는 계기가 된다. 타인을 위한 정성, 마음을 여는 묘약 드디어 만찬의 날. 서로 간의 앙금이 가시지 않고 있는 마을 사람들과 불현듯 마을을 방문한 왕실 근위대 장군 일행, 그리고 자매가 함께 하는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프랑스 정식 요리 만찬은 시작된다. 음식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마을 사람들의 침묵은 그러나 연이어 터져 나온 장군의 감탄에 허물어져 간다. 1846년산 클로 부조(프랑스 부르고뉴 부조 지방산 포도주), 최고급 거북이 스프, 블러디 드미로프(원래 러시아 요리, 흰 빵에 캐비어와 사워크림을 얹어 낸 러시아 요리), 카유 엉 사르코파주(메추라기를 페스트리로 싸서 여섯 가지 이상 소스를 끼얹어 먹는 요리) 등 연이어 나오는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음식들의 미묘한 맛과 색 그리고 향은 단조로운 음식으로 굳어버린 마을 사람들의 입술을 부드럽게 풀어내 버린다. 그렇게 마을 사람들은 하나둘씩 마음의 빗장을 열고 오래전 목사님의 훌륭했던 가르침을 되새김질 하며 나누기 시작한다. 장군은 이들에게 새로 나오는 요리에 얽힌 사연과 각각의 미묘한 맛의 조화를 계속 설명해 간다. 점차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이 먹는 요리가 얼마나 귀하고 가치있는 것인가를 깨달아가면서, 그저 먹어 배를 채우는 것으로부터 음미하고 즐기며 향유하는 태도로 변화를 거듭해 간다. 자기만 아는 인생의 각박함이란 여유 없이 분주히 살아가는 일상의 태도로부터 생기게 마련이다. 설령 그러한 여유 없음이 ‘신앙’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에서 기인한 것일지라도 때로 그것은 삶을 옥죄는 굴레가 될 수 있다. 좋은 음식을 통해 새삼 몸과 마음을 여유를 가지게 된 마을 사람들은 드디어 자연스럽게 마음을 열고 어제의 고통과 상처, 의심과 회의의 생각들을 치유하고 회복시켜 나간다. 영화 바베트의 만찬은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함께 나눈다는 것만으로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이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을 복잡한 구성이나 심오한 철학적 논설 없이, 다만 음식을 준비하고 더불어 먹고 마시는 일련의 과정을 보여주는 지극히 단순한 방식으로 풀어낸다. 함께 식사하는 것은 단순히 같이 먹는다는 것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어렵지 않게 뚝딱 끓여주시던 김치찌개의 깊은 맛이 들어가 있다. 늘 아이들과의 만남을 통해 그들의 변화를 고민하고 기대하는 교사를 향해 아마도 바베트는 이렇게 말할 는지도 모른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한 끼의 좋은 식사가 무수한 교육적 장치들 이상으로 아이들과 교사 자신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이다. 필자 역시 불우한 가정형편으로 방황하던 시절, 총각 담임선생님이 자신의 자취방에 불러 손수 끓여 주신 라면 한 그릇의 기억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고 남아있다. 필자에게 있어 그것은 단순한 한 그릇의 라면이 아닌, 선생님의 위로와 격려 그리고 응원의 마음 그 자체로 다가왔다. 물론 그것이 꼭 음식일 필요는 없다. 자신이 받은 상금 전액을 이 한 차례의 만찬을 준비하는데 다 써버린 바베트는 위로의 말을 건네는 자매에게 정색을 하고 말한다. “예술가는 가난하지 않아요. 예술가의 마음속 진실한 외침은 온 세상을 울립니다.” 그렇다. 누구든 정직한 예술가와 같이 장인 된 마음으로 타인을 위해 준비한 시나 음악, 이야기와 춤, 음식 그리고 돌봄을 실천하는 삶은 결국 이를 보고 들으며, 먹고 마시는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도 남음이 있다. 여기에 아이들이라고 예외일 수 있을까?